온누리 신문 - 말하는 순간, 당신의 품성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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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순간, 당신의 품성이 드러난다!

 2019-07-28      제12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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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_크리스천과 품성 시리즈
3. 당신의 말에 숨어있는 품성
 
 
인정, 격려, 감사, 사랑, 긍정, 희망의 말이 크리스천의 언어 
말은 역사하는 힘이 크다 … 그리스도의 품성 담은 말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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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은 되는 대로 함부로 하거나 속되게 말함을, ‘망언’은 이치에 맞지 않고 허황된 말을 뜻한다.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막말과 망언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특히 대중의 모범이 되어야 할 사회지도층과 선망의 대상인 연예인들이 도가 지나친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들의 말 속에 숨어 있는 저급한 품성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교회와 크리스천들은 어떨까? 막말과 망언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성도들을 영적으로 이끌어야 할 목사들의 막말과 망언에 믿지 않는 사람들까지 교회를 걱정할 지경에 이르렀다. 교회와 크리스천들이 아름다운 입술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뿜지는 못하고 비방, 경멸, 무시, 분노,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 크리스천의 말에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깃들어 있어야 한다.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사실 한 가지는 말하는 순간, 당신의 품성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 정현주 기자 joo@onnuri.org
 
 
“사람이 지닌 고유한 향기는 사람의 말에서 뿜어져 나온다.”
책 <말의 품격>의 저자 이기주 작가는 말에 고유한 향기가 있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말의 향기는 개인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인향(人香)에서 비롯되는데, 친절하고 배려심 있는 품성을 가진 사람은 그 품성처럼 따뜻하고 부드러운 인향의 말을 한다. 반면 무례하고 난폭한 품성을 가진 사람의 말에서는 폭력적인 인향이 난다. 이는 그럴듯한 말, 미사여구로는 절대 가릴 수 없는 개인의 품성(본성)이 말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의미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는 
‘막말과 망언’ 논란
 
K자매(39세, 타교회)는 남자친구의 과격한 언어습관 때문에 이별했다. 
“하루는 남자친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차가 끼어드니까  남자친구가 돌변을 하더라고요. 화가 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쌍욕과 막말을 하면서 위협운전까지 하는 것은 도가 지나치잖아요. 평소에는 그런 쌍스러운 말을 전혀 하지 않아서 정말 많이 놀랐어요. 그의 이중적인 모습이 너무 무섭고 싫어서 더 이상 사귈 수가 없겠더라고요.” 
L자매(43세)는 말에 대한 결벽증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보통 결벽증하면 청결상태를 따진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저는 말에 대한 결벽증이 있어요. 사이가 좋았던 친구나 후배라도 어느 날 욕 한마디라도 하면 정나미가 뚝 떨어져요. 택시나 버스를 탔을 때도 마찬가지에요. 기사아저씨가 욕설을 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내려버려요. 욕하는 사람은 사람 취급하기 싫을 정도로 불쾌해요.”
막말과 망언 논란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한다. 미국의 방송인 댄 아이무스는 막말로 인해 30년 방송생활을 중단해야만 했다. 그는 대학농구시합에서 우승한 락거스대학교 여자농구팀 선수들을 향해 “우둔한 창녀 같다”고 말해 논란을 빚었다. 락거스대 여자농구팀 선수 8명이 흑인이었기 때문에 이 말은 인종차별 발언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는 전에도 소속 방송사 특파원에게 “청소부 같다”, 당시 민주당 대통령 대선 주자였던 버락 오바마를 “그 유색인 친구”라고 부르면서 깔보고 비방한 적이 있었다. 그의 말 속에는 저속한 품성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막말과 망언 수위는 누가 뭐라 해도 정치인들을 따라갈 수 없다. 지난달에는 한 국회의원이 권력을 이용해서 누군가를 협박하는 것 같은 말을 쏟아냈고, 한 기초단체장은 다문화가족 행사에서 ‘잡종강세, 튀기, 잘못 지도하면 파리 폭동’ 등의 막말을 내뱉었다. 정치인들이 쏟아내는 비속어와 과격한 발언으로 국민들이 눈살을 찌푸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정치인들의 막말과 망언 논란은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 더 안타깝다. 비단 비속어 사용만이 문제가 아니다.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편협하고, 수준 낮은 가치관, 겁박하고 비하하는 품성이 그들의 막말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진정한 영성은 언어의 수준과 비례한다
 
목사들의 막말과 망언도 둘째가라면 서럽다. 얼마 전에는 한 목사가 본분을 망각하고 극단적인 정치적 성향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막말을 쏟아내 교회가 세상의 조롱거리를 넘어 걱정거리가 되는데 크게 일조했다. 그 목사는 현행법 위반으로 수사까지 받게 될 처지에 놓였다. 목사들의 막말과 망언 논란이 어디 이뿐인가. 인천의 한 목사는 세월호 참사 때 희생자들과 유가족, 국민들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세월호 침몰로 경제도 멈춰 섰다. 세월호 침몰로 대한민국호까지 침몰될 수 있다. 이제 그만 노란 리본을 내리자”고 발언해서 공분을 샀다. 
진재혁 목사(前 지구촌교회 담임)는 그의 책 <언어의 영성>에서 “진정한 영성은 언어의 수준과 비례한다. 기도의 골방에서의 영성이 이제는 우리의 삶과 관계 가운데 언어의 영성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말에 비춰보면 막말과 망언 논란을 빚는 사회지도층과 일부 연예인과 목사들의 가치관과 영성은 수준 이하임이 틀림없다. 성경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잠 23:7)이라고 했다. 말과 생각이 품성을 형성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격려와 칭찬의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의 일생을 바꾼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말해야 좋은 품성을 드러낼 수 있을까? 빌리 그레이엄 목사와 영국 시인 윌터 스콧의 사례가 그 해답이 될 수 있다. 
미국이 낳은 위대한 부흥사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어렸을 때 동네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골칫덩어리였다. 사람들은 그를 볼 때마다 머리를 흔들며 “저 아이가 커서 도대체 뭐가 되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할머니만은 달랐다. 할머니는 개구쟁이 손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늘 격려의 말을 했다. 
“너는 말을 잘하고 사람을 끄는 재주가 있어. 너의 개성만 잘 살리면 장차 크게 될 거야.” 
이 말 한마디가 빌리 그레이엄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소설 <아이반호>로 유명한 영국의 계관시인 윌터 스콧은 어린 시절 ‘멍청한 아이’로 놀림을 받았다. 그는 열등생들이 쓰는 종이 모자를 쓰고 교실 한구석에서 침울하게 지냈다. 
스콧은 문학에 관심이 있어 좋은 시를 보면 열심히 외웠다. 그가 13살쯤 되었을 때 유명한 문필가 모임에 참석했는데, 그곳에서 그의 운명이 변했다. 당시 유명한 시인이었던 로버트 번즈가 우연히 스콧의 시 암송을 듣고는 “꼬마야, 너는 언젠가 영국의 위대한 인물이 될 거다”라고 칭찬했다. 번즈의 칭찬을 들은 열등생 스콧은 그때부터 용기와 꿈을 가지고 인생을 개척했다. 결국 그는 영국이 자랑하는 위대한 시인이자 소설가, 법관으로 명성을 날렸다. 격려와 칭찬의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의 일생을 바꿔버린 것이다. 
말은 역사하는 힘이 크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도 갚을 수 있다. 말 한마디로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 독한 말, 날카로운 말, 경박한 말 대신 인정과 격려의 말, 감사와 사랑의 말, 긍정과 희망의 말을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크리스천의 언어이자 품성이다. 잘 차려입고 건실해 보이는 사람이라도 거칠고, 경박한 말을 하는 순간 좋은 이미지가 한순간에 사라져버리고 만다. 남루한 모습일지라도 사랑이 담긴 격려와 칭찬의 말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만의 향기가 은은하게 퍼질 것이다. 그리스도의 품성을 담은 크리스천의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운명을 결정할 수도 있다.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잠 16:24).
 
 
<기고>
 
올곧은 품성은 올바른 언어에서 나온다!
크리스천의 올바른 언어생활을 위한 성경적 제언 
 
 
지도자를 세울 때 가장 중요한 덕목 2가지를 꼽으라고 한다면 ‘능력’과 ‘도덕성’일 것이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경륜(經綸)’과 ‘인품(人品)’이라고 할 수 있다. 조직이나 나라를 운영하는 일 또는 그 계획과 포부를 뜻하는 경륜(經綸)은 많은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그런데 경륜이라는 말은 사실 엉뚱한 데서 유래했다. ‘경(經)’은 실(絲)이 물줄기처럼 뻗어가는 ‘날실’을 뜻하는 말로 ‘날 경’이라 한다. 날실이란 처음에는 ‘곧게 뻗은 세로줄’을 뜻하다가 나중에는 ‘곧게 이끌다, 다스리다’란 뜻으로 바뀌었다. ‘륜(綸)’은 낚싯줄을 가리키는 본뜻에서 낚싯줄을 조정하듯 나라를 다스리는 임금의 말씀이라는 뜻을 품어 ‘다스릴 륜’이라 한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꼬일 대로 꼬인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하나님과 백성과의 신뢰 관계가 완전히 엉켜버린 사람이었다. 사울에 이어 2대 왕에 등극한 다윗은 온 이스라엘을 통치함에 있어서 뒤엉켜버린 실타래처럼 꼬인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펴는 일에 집중했다. 성경은 그가 모든 백성들을 올바르고 의롭게 다스렸다고 한다(삼하 8:15).  
다윗의 올바른 다스림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흔히 ‘올바르다’가 ‘옳고 바르다’의 뜻을 나타내므로 ‘옳다+바르다’의 합성어인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말 어원사전에 따르면 올바르다는 ‘올(絲條)+바르다(正)’에서 온 말이다. 이때 ‘올’은 실의 낱낱의 가닥을 뜻하는 명사이고, ‘바르다’는 비뚤어지거나 굽은 데가 없다는 뜻을 나타내는 형용사이다. 즉, 다윗의 통치는 온 이스라엘 앞에 놓여있는 수많은 실낱같은 현안들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바르게 펴가는 통치를 했다는 것이다. 
 
비폭력대화 프로세스
‘관찰-느낌-필요-부탁’
 
강원도 깊은 산골에 사는 한 초등학생의 짧은 동시가 매우 인상적이다. 제목은 ‘마을 회관 문’이다. 
 
아침에 밖에 나가보니  
마을 회관 문이 깨져있다
우리들은 바람이 깼다 생각하고 
어른들은 우리가 깼다 생각한다
 
이 동시를 읽으니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때가 떠오른다. 어느 날 학생식당에서 급식 지도를 하고 있었는데, 창가에 있던 화병이 떨어져 깨졌다. 나는 대뜸 “누구야? 누가 깼어?”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학생들이 멈칫하고 내 눈치를 살폈다. “누구야? 범인 빨리 안 나올거야?” 내 목소리와 표정에는 화가 잔뜩 묻어있었고, 학생들의 마음은 이내 두려움과 불안, 짜증과 억울함까지 밀려 올라왔을 것이다. 이처럼 섣부른 판단과 오해, 성급한 결정과 과도한 감정노출로 서로의 마음에 생채기만 남기는 폭력적인 대화는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소외와 분노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어떻게 하면 단 한 명이라도 진실한 관계를 맺고, 나와 세상에 대해 화해를 청할 수 있을까? 그것은 자신의 언어를 새롭게 하는 것이다. 사람의 사유(思惟)가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이 바로 언어이기 때문이다.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가장 파급력 있는 도구는 언어이다. 언어(言語)는 글과 말의 합성어이다. 기록이 되어 역사로 남는 글과, 주로 대화로 표현되는 말의 중요성은 인간관계의 시작과 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내재된 죄성으로 인해 우리의 언어는 하나님과 세상에 매우 폭력적으로 변질되었다. 
미국의 마셜 로젠버그 박사는 ‘관찰-느낌-필요-부탁’이라는 비폭력대화 프로세스를 만들었다. 비폭력대화는 ‘너’를 주어로 하는 말하기에서 ‘나’를 주어로 하는 말하기로 바꾸는 것이다. “너 왜 맨날 늦어? 좀 빨리빨리 다녀라.” 약속시간에 늦은 친구에게 말하는 전형적인 ‘너’를 주어로 말하기였다면, “나 걱정했어. 늦으면 미리 좀 알려줄래?”라고 ‘나’ 주어로 말하도록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를 주어로 내가 본 것과 들은 것(관찰), 내 느낌, 내가 원하는 것(필요, 부탁)을 말하는 대화법으로 바꿔가는 것이 바로 비폭력대화라고 하는 것이다. 몇 가지 사례를 가지고 비폭력 대화를 연습해 보자.
 
첫 번째 사례, 새로 산 옷을 입고 나가려는데 옷장에 옷이 없어 동생에게 보내는 문자이다. 
관찰: 옷장에 넣어둔 내 원피스가 보이지 않아.
느낌: (지금 입고 나가야 하는데 없어서) 당황스러워. 
필요: 혹시 네가 입고 나갔는지 알고 싶어.
부탁: (입고 갔다고 하면) 입고 싶으면 미리 말해줄래? 
 
두 번째 사례, 분명 방청소를 했는데 엄마가 “이게 한 거냐?”라고 할 때, 보통 우리 아이들은 폭발한다. 
관찰: 엄마한테 “이게 청소한 거냐?”라는 말을 들으니
느낌: 솔직히 맥이 풀려요.
필요: 어떻게 청소해야 하는지 자세히 알고 싶어요.
부탁: 다시 해야 할 부분을 알려주시겠어요?
 
처음에는 ‘나’를 주어로 말하는 것이 어색하고, 힘들고, 듣는 사람 역시 심리적 저항을 일으킬 수 있다. 오른손을 쓰던 사람을 갑자기 왼손으로 쓰게 하려는 것처럼 그렇게 서툴고 어색할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의 말하기는 말을 배우는 어린이처럼 연습을 통해 배우고 바뀌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나 자신과 세상과 하나님과 화해를 선포하고, 평화를 이뤄야 하는 목적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혀가 모든 관계의 실마리를 쥐고 있다
 
성경은 지혜서인 잠언 말씀을 중심으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해야 할 언어생활에 대해 많은 지침을 주고 있다. 
첫째, 들을 준비를 하고 상대방이 말을 끝내기 전에 대답하지 않는다. “듣기도 전에 대답하는 사람은 미련함 그 자체고 망신만 당한다”(잠 18:13).
둘째, 말하기를 천천히 하고 성급하게 말하지 않는다. “적절한 대답은 사람을 기쁘게 하니 때맞춰 하는 말이 얼마나 좋은지!”(잠 15:23).
셋째, 상대가 알아들을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배려하며 말한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이것을 명심하십시오. 사람마다 듣기는 빨리 하고 말하기는 천천히 하며 노하기도 천천히 하십시오”(약 1:19).  
넷째, 진실을 말하되 언제나 사랑으로 말한다. 사실을 부풀리거나 축소하여 말하지 않는다. “사랑 가운데 진리를 말하며 범사에 머리 되시는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나야 합니다”(엡 4:15). 
다섯째, 말다툼을 벌이지 않는다. 다투지 않고도 얼마든지 의견을 달리할 수 있다. “다툼을 시작하는 것은 댐에 구멍내는 것과 같으니 다툼이 일어나기 전에 말다툼을 그치라”(잠 17:14). 
여섯째, 분노를 다스리고 부드럽고 친절하게 대한다. “화를 내어도 죄를 짓지 마십시오. 해가 지도록 화를 품지 말며”(엡 4:26).
일곱째,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상대가 잘못을 고백하면 용납하고 용서한다. “서로 친절하고 인자하며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서로 용서하십시오”(엡 4:32). 여덟째, 섣부른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말이 많으면 죄를 짓기 쉽지만 말을 조심하는 사람은 지혜롭다”(잠 10:19).
아홉째, 상대를 책망하거나 비판하지 않는다. 회복시켜주고 격려한다. “그러므로 화평을 이루고 서로 세워주는 일에 힘씁시다”(롬 14:19). 
열 번째, 누가 말로 공격하거나 비판하거나 책망한다고 해서 똑같이 대꾸하지 않는다. “아무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힘써 행하십시오”(롬 12:17). 
올바른 표현은 올곧은 관계의 시작이다. 가정, 회사, 국가를 경영함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덕목은 ‘올바름’이다. 올바로 표현하고, 올바로 수용할 때 올바른 관계가 시작된다. 그 올바른 관계는 언제나 우리의 혀가 출발점이자 종착점이 된다.  
우리의 혀가 모든 관계의 실마리를 쥐고 있다. ‘헝클어진 실타래에서 실마리를 끌어내 가지런히 하다’는 뜻에서 시작돼 ‘조직을 다스리다’는 뜻으로 발전한 경륜이란 단어처럼, 혀로 시작되는 모든 일상의 경영은 올바른 표현으로 시작해서 올곧게 인간관계망을 지어가는 것이다. 
“여러분은 분명히 여러분을 위해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에 대해 들었을 것입니다”(엡 3:2). 
에베소 교인들이 분명히 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도 바울의 올바른 표현과 올곧은 삶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올바른 표현이 올곧은 품성으로 이어지듯 말이다. 
/ 곽상학 목사(온누리교회 협동목사, 前 고교 국어교사, 다음세움선교회 대표) 


 
<발문>
올바로 표현하고, 수용할 때, 올바른 관계가 시작된다. 
올바른 관계는 언제나 혀가 출발점이자 종착점이 된다. 
우리의 혀가 모든 관계의 실마리를 쥐고 있다. 

 작성자   정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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