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 신문 - 예수님은 한 번도 불평하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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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한 번도 불평하지 않으셨다!

 2019-10-20      제12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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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크리스천을 위한 ‘미니멀 라이프’
2. 불평불만
 
불평불만, 자신과 주변 사람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다
예수님처럼 불평하거나 이익 채우려고 따지지 말아야 
 
요즘 미니멀 라이프(Minimal Life)가 유행이다. 미니멀 라이프는 불필요한 물건을 줄이고, 최소한의 것으로 살아가는 생활방식을 말한다. 필요한 것 외에는 가지지 않음으로써 여유를 가지고 다른 중요한 부분에 집중하는 것이다. ‘단순하고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미니멀 라이프다. 
신앙생활에서도 미니멀 라이프가 꼭 필요하다. 그토록 자유로워야 할 크리스천들을 옥죄고 부자유하게 만드는 것들이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 우리가 실천해야 할 미니멀 라이프 그 두 번째 제안은 불평불만 하지 않기다. 
/ 정현주 기자 joo@onnuri.org
 
 
불평은 ‘마음에 들지 아니하여 못마땅하게 여김’ 또는 ‘못마땅한 것을 말이나 행동으로 드러냄’을 의미하고, 불만은 ‘마음에 흡족하지 않음(불만족)’이라는 뜻이다. 불만족해서 언짢은 마음과 그 못마땅함을 말과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이 바로 불평불만이다. 
불평불만에서 기인한 사건이 한 두 개가 아니다. 태초 이래 사건사고의 가장 큰 원인이 불평불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사건들을 분석했더니 그 이면에 불평불만이 숨어있었다. 음주운전 단속에 불만을 품은 60대 남성이 파출소를 찾아가 경찰들에게 엽총을 쏜 사건(2016년), 지도교수에게 불만을 품은 대학원생이 사제폭탄을 제조한 사건(2017년), 한 지방의회 의원이 자신의 의견이 관철되지 않자 회의장에서 유리창을 깨고 자해하며 겁박한 사건(2018년), 수도사용 문제로 주민과 마찰을 빚은 70대 노인이 면사무소 직원에게 엽총을 발사한 사건(2018년)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불평불만에서 기인한 사건사고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2017년 인사평가에 불만을 품은 일본 오사카 시청 직원이 상사 머리에 술을 들이붓기도 했고, 지난 4일 프랑스 제5공화국 헌법 60주년 기념식에서 한 노인이 연금이 적다고 마크롱 대통령에게 불평하자 마크롱이 “국민이 불평불만을 그만하면 프랑스가 지금보다 훨씬 나았을 것”이라고 탄식하기도 했다. 이처럼 불평불만에서 기인한 사건사고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발생하고 있다. 약하게는 언어적 불평불만에서 끔찍한 사건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성경에도 나타난 ‘불평불만’ 
 
성경에도 불평불만에서 기인한 사건들이 많다. 민수기에는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불만이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때 백성들이 불평하는 소리가 여호와의 귀에 들렸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는 진노하셨습니다. 그러자 여호와의 불이 그들 가운데 타올라서 진의 바깥쪽을 태웠습니다”(민 11:1). 
시내 광야를 떠나 가나안을 향해 진군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불평불만을 쏟아놓기 시작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광야 여행으로 인한 고생 때문이었다. 시내산 근처에서 근 1년 동안 평안한 생활을 하다 메마르고 험난한 광야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 불평불만의 원인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불만을 들은 하나님이 노하셔서 진영 끝을 불살라 버리심으로써 징벌하셨다. 모세의 중보기도로 다행히 징벌을 멈출 수 있었다(신 11:2).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불만은 끝이 없었다. 이번에는 만나에 싫증났다면서 고기를 달라고 불평불만 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울면서 말했습니다.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먹게 해 줄 수 있을까? 이집트에서는 생선, 오이, 멜론, 부추, 양파, 마늘을 공짜로 먹을 수 있었는데 이제 우리가 식욕을 잃어버리고 말았구나.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이 만나뿐이니!’”(민 11:4~5).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애굽에서 끌어낸 것도 잘못이고, 하나님은 자신들에게 고기를 줄 능력도 없는 분이며, 지금 하나님이 주시는 양식(만나)은 너무 한심스럽기 그지없다며 불평불만을 쏟아냈다. 백성들의 불평불만을 잠재워야 할 모세조차 불평불만을 했다.  
“저 혼자만으로는 이 모든 백성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이 제게는 벅찹니다. 주께서 제게 이렇게 하시겠다면 제발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지금 당장 저를 죽이시고 이 곤란한 일을 보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민 11:14~15). 
불평불만을 쏟아내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국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 단 한 명도 들어가지 못했다. 이외에도 성경에 나오는 불평불만 사례가 많다. 선악과를 먹은 아담은 “하나님께서 함께하라고 제게 주신 그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제게 주어서 제가 먹었습니다”(창 3:12)며 불평하고 책임을 회피했다. 아담의 아들 가인은 자신의 제물을 받지 않는 하나님께 불만을 품고 동생 아벨을 죽였다(창 4:5~8). 요나는 니느웨 사람들이 자신의 경고를 듣고 모두 회개함으로 하나님이 그들을 멸망시키지 않게 되자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며 불평불만을 늘어놓았다(요나 4:1~3). 초대교회에서는 당시 그리스파 유대인들이 구제에서 자신들 파의 과부들이 홀대받는다고 불평했다(행 6:1). 
 
불평불만이 손해인 세 가지 이유
 
불평불만을 하면 왜 좋지 않은지가 과학적으로도 입증되었다. 뇌과학 전문가들에 따르면 반복적이고 습관적인 불평불만은 세 가지 이유에서 손해라고 말하고 있다. 
첫째, 불평을 하면 할수록 뇌 건강을 악화시킨다. 한 가지 일을 반복하다보면 뇌의 시냅스가 발달해서 점점 숙련이 되는데, 이 원리가 감정이나 생각에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불평할수록 뇌는 더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되고, 결국 수시로 불평불만이 나오는 악순환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둘째, 불평불만은 쉽게 전염된다. 불평불만은 주변 사람들까지 기분 나쁘게 만든다. 1948년부터 미 매사추세츠의 프래밍험 마을에서 주민 5천2백 명을 대상으로 60년 동안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우울증이나 분노조절장애, 외로움 등은 한 번 발생하면 주민들에게 빠르게 퍼져나가는데, 행복한 감정은 쉽게 전파되지 않았다고 한다.
셋째, 무엇보다 몸을 망친다. ‘코르티솔’이라는 호르몬은 스트레스에 반응해서 분비된다. 아칸소주립대 연구팀에 따르면 ‘회사나 가정에서 부정적인 생각을 자주 하는 편’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보통 사람에 비해 코르티솔 호르몬 분비량이 2배가량 많다고 한다. 코르티솔 호르몬 때문에 면역력이 더 낮았고, 혈압은 높았으며, 심장병 발병 확률과 비만, 당뇨병에 시달릴 확률도 더 높게 나타났다. 
솔직히 세상을 살다보면 불평불만이 없을 수는 없다. 크리스천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교회에서 수많은 불평불만거리가 있다. 그렇다고 과격하고, 직설적이고, 습관적으로, 타인에게 상처를 주면서까지 불평불만을 늘어놓아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 2000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소프트뱅크의 주가가 세계 IT시장에 닥친 ‘닷컴버블’ 붕괴로 100분의 1로 곤두박질쳤다.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은 이때 인터넷이 곧 부활할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초고속인터넷 서비스(ADSL)를 확장시키려고 했다. 이를 위해서는 총무성(우리나라 행정안전부에 해당하는 일본 행정기관)과 일본 거대 통신기업 NTT가 움직여야 했는데 지지부진했다. 두 기관이 전혀 협조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ADSL 서비스를 성공시킨 이후 손정의 회장이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세상이 잘못된 거고, 정치인이 문제고, 경기가 나쁘다느니 그런 변명 따위를 해봐도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불평불만은 결국 자신의 그릇을 작게 만들 뿐이다. 그럴 틈이 있다면 목숨 던질 각오로 맞서라. 그때야 파문이 시작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조상들이 원망과 불평으로 광야에서 멸망당했던 예를 들면서 “불평하지 말라”고 경고했다(고전 10:10). 베드로도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다”며 “정신 차리고 불평하지 말라”고 했다(벧전 4:7~9). 
그 누구보다 예수님은 단 한 번도 불평한 적이 없다. 부당하거나 억울한 상황을 수도 없이 직면했지만 단 한 번도 불평하거나 자신의 이익을 채우려고 따지지 않으셨다. 불평불만은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도 좋지 않다. 불평불만 하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불만거리(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자. 꼭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은 한 번도 불평하지 않으셨다!
 

<전문가 기고>
 
오늘 당신의 옥수수는 무엇입니까?
일상의 선물 인정하고, 이웃과 나누고, 매사에 감사하자!
 
넓은 옥수수밭 한가운데에 길을 만들어놓고 달리는 경기를 상상해보자. 이 경기의 목표는 그곳을 달려가면서 가장 큰 옥수수 하나를 따서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다. 빨리 달려야 하고, 옥수수는 하나밖에 고를 수 없다. 지나온 길은 다시 돌아갈 수도 없다. 그러니 어느 순간 가장 크다고 생각되면 그 옥수수를 따야만 한다. 이 경기의 이름은 무엇일까? 바로 ‘시간(Time)’이다. 국민대학교 이의용 교수는 시간의 개념을 옥수수밭 경주에 비유했다. 시간은 한번 흘러가면 되돌릴 수 없다. ‘오늘 하루 무엇을 했지?’라는 허탈한 마음이 들 때도 있고, 뿌듯하게 잠자리에 드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날의 옥수수에 따라 달라진다. 당신의 오늘 하루의 옥수수는 무엇인가? 조금 더 범위를 넓혀서 당신의 인생에서 꼭 따야 하는 옥수수 하나를 생각해본다면 무엇이 되겠는가?
 
당신의 감정의 하수구는 누구인가?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우리의 인생이 어떤 옥수수를 잡아야 할지에 대한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과정이라면, 일상에서 버려야 하는 것을 분별해서 꼭 필요한 것만을 선택하는 미니멀 라이프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한번쯤 점검해봐야 하는 키워드가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일상에서 어떤 것을 선택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1~33). 
믿음의 경주에서 빠질 수 없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를 조금만 고민하라고 하지 않으셨다. 완전히 “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계신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고 단정 지어 말씀하셨다. 구약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모세와 함께 출애굽 했을 때 “광야에서 굶어죽게 되었다”며 염려를 넘어 불평을 하였다. 그들의 필요에 따라 매일 수고하지 않아도 먹을 수 있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하나님께서 주셨는데도 그들은 “물이 없다”며 또 불평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어떠한가? 며칠 전 버스를 탔는데, 맨 뒷좌석에 앉은 사람이 주변 사람들이 모두 들을 수 있는 큰 목소리로 통화하면서 욕을 남발했다. 듣고 싶지 않았지만 같은 공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남자의 육두문자 가득한 통화내용을 들어야 했다. 점점 불쾌한 마음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 불쾌한 느낌은 생각보다 오래 남았다. 통화하는 그 사람과 전혀 관계도 없고 상황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는 제3자인 내가 이렇게 불쾌한데, 이스라엘 백성들을 택하시고 친히 그 걸음을 인도하신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이 쏟아놓는 불평을 들으셨을 때 마음이 어떠셨을까? 
‘불평’의 ‘사전적 의미는 못마땅한 것을 말이나 행동으로 드러냄’이다(표준국어대사전). 못마땅한 상태 즉, 불만 상태에서 말이나 행동을 했을 때 우리는 그것을 ‘불평’이라고 한다. 불평이 일어날 때는 상황과 대상이 존재한다. 한 가장이 회사에서 좋지 않은 일로 인해 불만을 가득 품은 채 퇴근했다고 가정해보자. 준비된 밥과 반찬이 가장의 불만을 잠재울만한 잡곡밥과 맛난 고기반찬이 아니라 식은 밥과 아침에 먹다 남은 나물이 전부였다면 가장의 기분은 더욱 나빠질 것이다. 밥에서 돌 같은 것이 나왔다면 자연스레 가장의 입에서 아내를 향한 불평이 쏟아질 것이다. 갑자기 화내는 남편에게 일격을 당한 아내의 화가 옆에 앉은 큰아들에게 향한다. “너 숙제 다했어?” 큰아들은 기분 나쁜 엄마의 불평에 대충 식사를 마친다. 그리고 일어나려는데 동생이 분위기 파악 못하고 형을 보며 웃는다. 큰아들의 불평은 자연스레 동생에게 향한다. 형한테 쓴 소리를 들은 동생은 방으로 들어가서 놀아달라고 쫓아오는 강아지에게 화풀이한다. 이렇게 불평은 위에서 아래로 흘러간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불평은 힘이나 권력이 있는 대상에게서 시작되어 그룹에서 가장 약한 구성원을 향해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소아정신과 서천석 의사는 공동체 내에서 불평의 대상이 되는 약한 대상을 가리켜 ‘감정의 하수구’라고 표현하였다. 평소 쌓여있던 감정의 찌꺼기는 불평을 통해 감정의 하수구에게 전달되고, 감정의 하수구는 다른 감정의 하수구를 만든다. 당신의 감정의 하수구는 누구인가? 만약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평소 부정적 감정을 제대로 해소하지 못하고 전혀 관련이 없는 대상에게 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또한 사소하지만 일상의 날씨와 같은 상황에 대해서 자주 불평한다면 불평의 대상이 무의식중에라도 존재한다는 것을 의식해야 한다. <일상영웅>의 저자 팀 체스터는 “이유 없이 화가 나거나 자주 화가 난다면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하나님에게 화가 나 있는 것일 수 있다. 삶을 하나님 편에서 마땅히 하셔야 할 일을 잘 이행하고 있지 않은 계약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금도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신 하나님에 대해서 불평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존재 이유는 하나님을 기뻐하고 경외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와는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이 버려야 할 행동 아닐까?   
 
일상을 감사로 채우기
 
우리의 옥수수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그리스도인이 선택해 채워야 할 것은 무엇일까? 바울 사도는 디모데전서에서 어떤 상황에서도 자족하는 것을 배웠다고 이야기한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빌 4:11). 
불평을 잠재울 수 있는 것은 일상에서 받을 자격 없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선물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기억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매일 주시는 새로운 선물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매일 주어지는 선물이 있다. 그러나 매일 주어지기에 그 선물이 ‘만나’와 같아서 좋은 것으로 여기지 못할 때가 있다. 따라서 만나를 보면서 또 다시 없는 것을 찾으며 불평하는 모습으로 되돌아가곤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만나를 제대로 음미하는 방법인 감사(gratitude)로 일상을 채워야 한다. 
감사는 어떻게 그리스도인에게 매일의 만나를 음미할 수 있도록 돕는가? 한번은 수원에서 서울로 향하는 용서고속도로를 타고 가던 중에 터널 안에서 멈춰야 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시설 관계자가 다급히 뛰어와 내 차를 멈추고 터널 밖으로 나가라고 다급히 손짓했다. 알고 보니 차 한 대가 전소(全燒)되는 바람에 터널 안에 있던 모든 차가 그대로 멈춰 선 것이었다. 그 결과 예정된 미팅도 못 가고 터널 밖에서 몇 시간 동안 발을 구르며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사건을 통해 크게 깨달은 게 있었다. 그동안 그 터널을 수도 없이 다녔지만 이런 사건이 처음 일어났다는 사실과 별 문제 없이 터널을 다닌 것이 하나님이 주신 일상의 선물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사고가 일어나봐야 그 이전의 평범한 상태가 얼마나 좋은 상태였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주변을 천천히 돌아보라. 평범한 일상 같지만 그 안에서 찾을 수 있는 만나가 주변에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만나로 인한 기쁨이 첫날보다는 둘째 날, 둘째 날보다는 셋째 날 줄어드는데 이를 심리학에서는 ‘쾌락적응(Hedonic adaptation)’이라고 한다. 미국 시카고대 심리학자 에드 오브라이언 연구팀은 매일 동일한 선물을 받을 때 점차 만족감이 떨어지곤 하는데 이를 유지할 방법이 있음을 증명하였다. 그것은 받은 선물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이다. 동일한 선물을 받아도 다른 사람과 나누는 그룹이 그렇지 않은 그룹에 비해 기쁨이 오래 유지되었다. 받은 선물에만 집중할 경우 어느 순간 더 좋은 선물을 받은 사람이 눈에 들어오고, 행복감 하락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나누는 사람은 행위 자체에서 얻는 기쁨으로 인해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우리가 멈추지 말고 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매일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을 인정하는 것과 그것을 이웃과 나누는 것이다. 모든 상황에서 자족하는 감사를 선택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이 땅에서의 큰 복을 누리는 비결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오늘도 우리가 선택한 옥수수는 무엇인가? 그것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향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 한건수 교수(수원 온누리교회, 국민대 겸임교수, 감사연구소장)
<발문> 
“우리가 멈추지 말고 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매일 주시는 선물을 인정하고,
그것을 이웃과 나누며 감사를 선택하는 것이다.”

 작성자   정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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