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 신문 - [혐오 사회에 사랑 심기-노인 혐오] 당신도 노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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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사회에 사랑 심기-노인 혐오] 당신도 노인이 된다!

 2022-06-04      제13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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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의 또 하나의 사명 
‘혐오 사회에 사랑 심기’
 
당신도 노인이 된다!
노인혐오 벗어나기 … 노인이 존경받는 사회 만들어야
 
갈등과 다툼, 분열이 만연하다. 그래서 오늘날을 가리켜 ‘혐오의 시대’라 하는 것 같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차별하는 게 일상이 되어버린 시대다. 혐오(嫌惡)는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데서 시작한다. 다른 세대와 성별을 이해하지 못하고, 다른 모습의 이웃을 품지 못하고, 다른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나’를 잣대로 세우고 내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은 경계 대상이 된다. 그 잣대에 만족하지 못하면 자기 자신도 혐오 대상이다.
혐오 시대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이 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교회와 크리스천은 이 삭막한 사회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심어야 한다. 이 지면에서는 ‘장애인 혐오’, ‘아동·청소년 혐오’, ‘노인혐오’, ‘젠더혐오’, ‘자기혐오’를 주제로 우리 사회 민낯을 드러내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치유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크리스천들이 사회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하는지도 알아본다. 그 세 번째 주제는‘노인혐오’다.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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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 너무 나무라지 마라. 내가 걸어왔던 길이다. 노인 너무 무시하지 마라. 내가 갈 길이다.”
배우 박중훈이 한 방송에서 한 말이다. ‘혐오 사회에 사랑 심기’ 기사를 기획하면서 독자들에게 이 말을 가장하고 싶었다. 아이와 노인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일은 과거의 나를, 미래의 나를 미워하는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어린아이였고, 누구나 노인이 된다.
 
경로 사회에서 혐로 사회로
 
‘혐로(嫌老, けんろう)’라는 말이 있다. ‘노인을 혐오한다’는 뜻을 가진 말로 고령사회(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이 전체 인구의 14% 이상을 차지하는 사회)인 일본에서 시작된 신조어다. ‘노인을 공경한다’는 뜻을 가진 ‘경로(敬老)’와 대비되는 이 단어가 참 씁쓸하다.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도 옛말이다. 우리나라도 고령화(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고령자의 비율이 높아지는 현상)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고령화 사회(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이 전체 인구의 7% 이상을 차지하는 사회)를 넘어 초고령화 사회(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이 전체 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5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한다. 
유례없이 빨리 진행되는 고령화 속도만큼이나 노인을 혐오하는 사회 분위기가 극에 달하고 있다. 우리 사회도 ‘혐로 사회’가 된 지 오래다. 온라인에서만 보더라도 틀딱충(틀니를 딱딱거리는 벌레), 할매미(매미처럼 시끄럽게 떠드는 할머니), 연금충(나라에서 주는 연금으로 생활하는 벌레) 등 노인을 비하하는 말들이 유행한다. 이런 말을 대수롭지 않게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다 같이 웃고 즐기는 하나의 유행어가 되어버렸다.
2018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표한 <노인 인권 종합보고서> 자료에 따르면, 청장년층 80% 이상이 노인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전국 청장년층(18~64세) 500명과 노인층(65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청장년층 87.6%가 노인을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대’로 보고 있다. ‘노인과 청장년 간 갈등이 심하다’고 생각하는 청장년층 비율이 80.4%나 된다. 노인을 향한 젊은 세대의 눈길이 너무 따갑다.
 
그것은 노인들의 잘못이 아니다
 
혐오(嫌惡)라는 말은 ‘싫어하고 아주 미워한다’는 뜻이다. 원어로는 ‘역겹고 구역질 날 정도로 미워하다’라는 의미다. 누군가를 이만큼 미워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노인이 정말 혐오 받을 만큼의 잘못을 했을까? 과거 공경의 대상이었던 노인이 왜 혐오의 대상이 되었을까? 국가인권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노인에 대한 청년들의 부정적 인식이 복지와 일자리 등 사회적 자원의 배분 문제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청년 77.8%가 ‘노인 복지 확대로 청년층 부담 증가가 우려된다’고 답했다. 청년 55.4%는 ‘노인 일자리 증가 때문에 청년 일자리 감소가 우려된다’고 응답했다.
과연 노인이 청년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OECD 국가 중에서 우리나라 노년층 고용률이 높은 건 사실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노인이 하는 일과 청년이 하는 일이 다르다. 노인들은 대부분 청년들이 회피하는 업종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 높은 고용률이 질 좋은 일자리와 연결되는 게 아니다. 청년들이 원하는 일자리에 노인이 고용되기란 쉽지 않다. 노인이 청년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 결코 아니다.
노인 복지 확대로 청년층의 부담이 확대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문제가 노인을 혐오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고령화로 인한 청년들의 재정 및 부양 부담은 노인이 만든 문제가 결코 아니다. 노인의 비율이 높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회 현상이다. 이를 두고 노인 개인을 혐오해서는 안 된다. 사회 현상에 맞춰 알맞은 제도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정치권과 기업이 할 일이다. 사회에 해야 할 요구와 사회 현상으로 인해 생긴 불만을 누군가를 혐오하는 것으로 표현하는 것은 옳지 않다. 
 
결국 세상은 돌고 돈다
 
노인이 되면 대부분 존재의 위치가 달라지는 경험을 한다. 많은 경우 가르치는 존재에서 배우는 존재로 변화된다. 이제 막 글자를 배우던 어릴 적 기자에게 한글을 가르쳐주시던 할아버지는 지금 기자에게 스마트폰 사용법을 배우신다. 몇 번을 가르쳐드려도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잊으실 때가 많아 사용법을 공책에 하나하나 적어드렸다. 
조부모님과 키오스크(무인단말기)가 설치된 매장에 갈 때면 주문부터 결제까지 모두 기자의 몫이다. 어릴 적에는 계산할 줄 몰라 슈퍼마켓에 갈 때면 할머니 등 뒤에 숨어 수줍게 좋아하는 과자를 골랐는데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부모님과 기자의 역할이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그런데 그 시간이 귀찮거나 싫지 않다. 이제껏 받아온 사랑을 돌려드릴 수 있어서 감사하고 기쁜 마음이 크다. 
노인의 존재 위치가 달라졌다고 해서 존재 가치까지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노인들은 젊은 시절 배곯아가며 자식들의 배를 채우고, 본인은 글자 하나 못 읽어도 자식은 대학에 보내고, 나라를 지키고자 목숨을 내걸고, 산업 전선에 뛰어들어 지금 이 나라를 일으켜 세웠다. 노인들이 현역에서 물러났다고 해서 그 노고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노인이 사회에 설 자리가 좁아진다고 해서 무가치한 존재가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늙어도 가치 있고, 노인들이 존재 자체로 존경받아 마땅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결국 세상은 돌고 돈다. 노인들이 피, 땀, 눈물 흘리며 지켜온 이 땅에 청년들이 살고 있다. 또 청년들이 일구는 세상에서 노인들이 살아간다. 언젠가 청년들도 노인이 되고, 우리의 자식이 청년이 된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똑같이 흐른다. 분명 우리는 누군가의 배려와 희생으로 자라왔고, 우리가 베푸는 배려와 희생을 곧 다시 돌려받는다. 

 작성자   홍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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