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 신문 - 주일강단 - 믿음으로 미래를 열라

주일강단

주일강단 - 믿음으로 미래를 열라

 2020-01-05      제1277호

공유하기

주일강단

믿음으로 미래를 열라

사 43:16~21

/ 이재훈 목사

 

사람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불확실한 미래입니다. 사람들은 불확실성을 나쁘고, 악한 것이라 여기기까지 합니다. 그 이유는 모든 것을 계산적으로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목표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이라고 단정합니다. 그러나 성공인지 실패인지에 대한 평가는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은 우리 자신이, 혹은 세상이 정한 기준에 따라 수학적으로 계산할 수 없습니다. 올바른 평가는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영적인 삶, 믿음의 삶은 도리어 그 미래가 불확실합니다.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걸어갔습니다. 믿음의 삶은 불확실한 미래를 걸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난 사람을 가리켜 “마치 바람의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성령으로 난 사람은 어디로 갈지 모르고 가는,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가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은 예상할 수 없고 계산할 수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평가는 우리의 계산법과 다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적은 우리가 만들어낸 확신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낸 확실성이 도리어 참된 믿음을 가로막을 수 있습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은 “모든 인간적인 확신들은 영적인 죽음을 가져 온다”고 했고, 체스터턴도 “모든 인간적인 확신은 죽은 확신”이라고 했습니다. 영적 분별력이 있었던 사람들은 인간적인 확신이 도리어 하나님과 동행하는 믿음의 삶을 방해한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이란 나 자신에 대하여 죽음을 선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에 대하여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그분을 의지하고, 따라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믿음의 삶은 미래의 불확실성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것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모든 일이 불확실하다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래에 대하여 한숨을 쉬고, 두려워하며, 맞이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매일매일 불확실성 자체를 기뻐하고,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행하실지를 기대하며, 기대와 믿음으로 내일을 맞이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할 때 미래의 불확실성을 두려움이 아니라 믿음으로 맞이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 연연하지 않는 것

 

믿음으로 미래를 여는 첫 번째 태도는 자신의 과거에 연연하지 않는 것입니다.   
“지나간 일들을 기억하지 말라. 과거에 연연하지 말라”(18절).
과거는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좋은 기억도 있고, 나쁜 기억도 있습니다. 문제는 그 기억이 우리 미래를 결정하도록 우리 스스로 확신을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기억은 반드시 확신을 만들어냅니다. 부정적인 확신도 있고, 긍정적인 확신도 있을 것입니다. 과거에 성공을 계속한 사람은 미래에도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을 것입니다. 과거에 실패를 계속한 사람은 미래에도 실패할 것이라고 확신할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긍정적인 확신이든 부정적인 확신이든 하나님께서 주시는 믿음의 삶을 가로막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할 일은 과거의 삶에 있었던 죄악의 습관을 기억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상을 숭배했던 죄와 이별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철저한 회개로 과거의 죄를 끊어야 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공이라고 생각했던 것에도 죄가 있을 수 있고, 실패라고 한 것에도 죄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옛날 로마에서 쓰던 단어 중에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말이 있습니다.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원정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개선행진하는 장군이 노예를 시켜서 행렬 맨 뒤에서 ‘메멘토 모리’라는 말을 외치도록 했다고 합니다.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우쭐대지 마라. 오늘은 개선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 죽을 수 있다. 그러므로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지혜로운 외침이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메멘토 모리를 외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성공했기 때문에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실패했기 때문에 나를 버리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과거에 성공한 사람에게만 미래를 주시지 않습니다. 실패한 사람에게는 미래를 허락하시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과거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이 믿음으로 새로운 미래를 열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남아있는 기억들을 하나님 앞에서 다시 점검하고, 기억해야 할 것과 기억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하며, 우리 삶에 있었던 죄악을 철저하게 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새 일 행하실 것을 믿는 것

 

믿음으로 미래를 여는 두 번째 태도는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야곱아, 이스라엘아, 이것들을 기억하여라. 너는 내 종이다. 내가 너를 만들었다. 그렇다. 너는 내 종이다. 이스라엘아, 내가 너를 잊지 않겠다”(사 44:21).
“예전의 일, 오래전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니 나밖에 다른 신이 없다. 나는 하나님이니 나 같은 이가 없다”(사 44:9).
우리의 기억에 있어야 할 가장 중요한 내용은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이시다. 나는 그분의 백성이요 그분의 종”이라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끝난 것이 아닙니다. 섭리하고 계시고, 이 땅을 심판하실 것이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십니다. 지금도 육신의 생명을 계속 창조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또한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창조해주고 계시지 않습니까?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임재하심,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우리의 진정한 미래를 여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미래에 대해 두려워하는 것은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라지만 사실 그것은 틀린 말이요, 거짓말입니다. 미래에 일어날 일을 다 알면 두려움이 없어지겠습니까? 아닙니다. 더 두려워합니다. 신명기 1장을 보면  광야 여정에 대한 해석이 나옵니다. 가나안 정탐 사건을 모세가 해석합니다. 그 사건을 잘 읽어보면 가나안 정탐은 하나님께서 먼저 하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백성들로부터 아이디어가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땅에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이고, 그 땅을 주셨다고 했으니 두려움 없이 들어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백성들 마음에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정탐꾼 12명을 보낸 것입니다. 확실성을 갖기 위해, 미래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 정탐을 했는데 두려움이 없어졌습니까? 아닙니다. 지혜가 생겼습니까? 아닙니다. 두려움이 더 커졌습니다. 절망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미래에 꼭 알 필요가 있는 것만 알려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다 내놓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나침판을 주십니다. 나침판은 가만히 있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움직여야 합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때 나침판이 방향을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하루하루 창조주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실 것을 기대하며, 그 하나님은 변치 않으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음으로 걸어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을 줄 때는 이스라엘 역사 중에서 가장 어두웠던 암흑기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벨론에 의해 남왕국 유다가 멸망한다는 예언이 주어진 직후입니다. 정치, 도덕, 경제, 외교가 붕괴되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때입니다. 심판이 임박한 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떤 약속을 주셨는지 보겠습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하고 있다! 이제 막 솟아나고 있는데 너희는 느끼지 못하느냐? 내가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만들고 있다. 들짐승과 자칼과 부엉이가 나를 공경할 것이다. 내가 광야에 물을 대고 사막에 강을 만들어서 내가 택한 백성들이 마시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19~20절).
가장 불확실한 미래를 앞둔 이때, 나라가 소멸될 것 같은 바로 그 때, 가장 확실한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합니다. 놀라운 말씀입니다. 상황을 바라보면 믿음이 생길 수 없습니다. 믿음이란 상황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통계를 내는 것이 아닙니다. 숫자를 분석하는 것이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실 것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광야를 걷고 있을 때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을 걷고 있을 때 사막에 강을 내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세상은 광야고, 사막은 사막입니다. 들어가지 말아야 할 곳입니다. 그곳은 피해야 할 곳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내심으로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새 일은 광야를 피하는 것입니다. 사막을 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새 일은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는 것입니다. 내가 결코 들어서지 말아야 할 것 같은 그 길로 들어섰다고 생각할 때 하나님을 바라보면 피할 길을 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내일을 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 나라와 민족을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한국 교회를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우리 삶을 내버려 두시는 분이 아닙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 새 일을 행하실 하나님, 우리 마음속에 있는 모든 두려움을 쫓고 전능자의 그늘 아래 머물겠다는 믿음으로 나아갈 때 새로운 길이 열릴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 찬양하며 미래를 맞이하는 것

 

믿음으로 미래를 여는 세 번째 태도는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미래를 맞이하는 것입니다.
“이 백성은 나를 찬양하게 하려고 내가 손수 만든 사람들이다”(21절).
우리 계산의 기준은 목표를 달성한 성공인가 아닌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계산의 기준은 가장 불확실한 미래를 눈앞에 두었지만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가 아닌가입니다. 욥은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다니엘도 신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고난을 맞았을 때 하나님을 찬양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원망하는가가 성공과 실패의 기준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이 하나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함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에 대한 목적은 세상의 계산법과 다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미래를 여실 것입니다. 시험에 합격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을 포기하면 계속 시험이 주어집니다. 합격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도저히 찬송을 부를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새로운 일을 행하실 것을 믿고 하나님을 찬송하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찬송은 우리의 불확실한 미래를 여는 가장 중요한 열쇠입니다. 미래가 분명하게 보이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을 찬양하며 미래를 맞이하십시오. 나의 미래가 하나님의 찬송, 하나님의 기쁨,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인생이 되기를 결단하며 하나님을 찬송하십시오. 현재는 너무나 불확실하고, 답답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광야와 사막과 같을지라도 믿음으로 신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모세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는 죽을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시대였습니다. 히브리인들이 번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바로가 살해 명령을 내렸습니다. 히브리인의 아들이 태어나면 무조건 죽이라고 했습니다.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모세를 3개월 동안 숨겼지만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었습니다. 갈대상자를 준비하고, 역청과 송진을 바르고, 아기를 나일강 둑을 따라 나 있는 갈대사이에 두었습니다. 요게벳이 모세를 갈대상자에 뉘어서 떠나보낼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나라 전체의 불행한 환경도 중요하지만 어머니에게는 모세가 더 중요하지 않았겠습니까? 모세의 미래를 하나님께 맡겨 드린 것입니다. 모세만큼 불확실한 미래가 어디 있습니까?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누가 돌봐주지 않으면 굶주려 죽을 수도 있고,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몰랐습니다. 잠시 보호할 수 있는 갈대상자만이 모세의 생명을 보호하는 유일한 수단이었습니다. 그 불확실한 미래에 요게벳은 모세를 갈대상자에 두고 하나님께 맡겨 드린 것입니다. 삶이 모세가 처한 삶처럼 죽음 앞에서 절박할 수 있습니다. 자녀의 삶이 부모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절망적일 수 있습니다. 이 나라와 민족의 상황이 우리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한숨을 쉬면서 맞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기대하시겠습니까? 요게벳이 모세를 갈대상자에 넣어 하나님께 맡겨드렸듯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미래를 맞이해야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 우리의 참 주인이시며 참 부모이신 하나님께 믿음으로 내어드릴 때, 하나님께서 새로운 미래를 여실 줄로 믿습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작성자   홍하영 기자

901개 글

리스트보기
검색
게시판 처음으로 가는 버튼 게시판 처음으로 가는 버튼 1 2 3 4 5 6 7 8 9 10 게시판 처음으로 가는 버튼 게시판 처음으로 가는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