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 신문 - 주일강단 - 온전한 거룩

주일강단

주일강단 - 온전한 거룩

 2020-02-23      제12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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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거룩


단 1:1~9


/ 이재훈 목사

온 맘 다해 하나님만 사랑하는 성도는 온전히 거룩함을 지키는 성도입니다. 거룩의 본래 뜻은 ‘구별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피조물과 구별된 분입니다. 그분만이 홀로 존재하실 수 있고, 그분만이 영원히 홀로 존재하십니다. 그분만이 그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는 분이요, 모든 것을 존재케 하신 분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능력 차원에서 거룩하실 뿐만 아니라 성품에 있어서도 거룩하신 분입니다. 우리는 미움과 분노를 이길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진노 가운데서도 자비와 긍휼과 용서를 베푸실 수 있는 거룩하신 분입니다. 우리는 슬픔을 이길 능력이 없지만, 하나님은 슬픔 가운데서도 소망을 가지시고 기뻐하시는 거룩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거룩하라고 요구하시는 것은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원래 하나님은 인간을 거룩한 존재로 창조했습니다. 타락 이전에는 ‘거룩하라’는 명령이 필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자체가 구별된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지으셨다는 것은 하나님을 닮은 존재요, 연결된 존재로서 구별된 존재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만물의 통치자요, 하나님의 대리자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구별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가 아닙니다. 자연 속에 살지만 초자연이신 하나님과 연결된 존재이기에 자연과 초자연의 중간연결 역할을 하는 존재입니다. 구별된 존재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죄가 이 모든 것을 망가뜨렸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했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놓았습니다. 우리가 거룩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죄를 씻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분이 의가 되시고, 거룩함이 되심으로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거룩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거룩하심이 됩니다. 우리는 그분을 덧입어야만 거룩한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종교적인 노력, 열심, 인간이 만든 규례로 거룩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잘 구별해야 합니다. 인간 스스로 만든 규례들을 엄격하게 지키는 것이 거룩이 아닙니다. 거룩이란 무엇입니까? 우리가 슬픔 가운데 있지만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나아갈 때 기쁨을 노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절망적이었지만 하나님의 소망을 바라며 다시 새 힘을 얻을 수 있고,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손뼉 치며 찬양할 수 있는 것이 거룩입니다. 세상은 슬픔이지만 우리에게는 기쁨이 있다는 것이 거룩이요, 세상에는 미움과 분노가 가득하지만 우리에게는 용서와 사랑이 있다는 것이 거룩입니다. 세상은 절망이지만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다는 것이 거룩입니다. 

 

거룩을 포기하지 않은
다니엘과 세 친구

 

세상의 모진 풍파를 이기는 사람들을 보면 거룩이 중심에 있습니다. 흔들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붙잡을 수 있는 기둥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도 언제나 거룩합니다. 거룩을 선택할 때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다니엘이 살았던 시대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을 때입니다. 나라는 완전히 망하고, 백성들은 죽임을 당하고, 일부는 포로로 잡혀가고, 어떤 이들은 전염병으로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던 그 시대 다니엘은 바벨론에 전쟁 포로로 붙잡혀 왔습니다. 얼나나 절망적입니까? 그러나 다니엘서가 기록된 것은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은 역사를 버리지 않으셨고, 그 역사를 반전시키고 회복시킨다는 것을 다니엘과 세 친구들과 같은 거룩함을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통해 보여주신 것입니다. 
죄는 지식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많은 지식을 잘못 이용하는 것입니다. 바벨론이 그랬습니다. 한 나라를 무력으로만 정복하지 않았습니다. 정신까지 빼앗으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런 경험을 했었습니다. 이주시키고 고립시켜서 그 나라의 문화와 철학을 교육시켜서 정체성을 빼앗는 시도까지 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바벨론 왕궁학교에서 교육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들이 가르치는 학문과 교육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이름까지 바꾸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이름은 영혼같이 소중했습니다. 그들 정체성의 상징이었습니다. 정통 유대인들의 이름은 ‘엘’이나 ‘야’로 끝납니다. 스가랴, 히스기야, 예레미야 등 ‘야’는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뜻이고, ‘엘’은 ‘엘로힘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니엘과 친구들의 이름도 야와 엘로 끝납니다. 그 이름이 바뀌는 수치 속에서 그들에게 엄청난 신앙도전이 다가왔습니다. 그들은 먹고 싶은 것을 먹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것을 먹어야 했습니다. 금신상에 절을 하도록 강요받았고, 느부갓네살왕 외에 다른 신에게 기도하면 사자굴에 던져지는 엄청난 핍박 속에 있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엄청난 절망적인 상황과 신앙의 핍박을 이기고 승리했습니다. 거룩함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그들은 환경과 타협할 수도 있었습니다. 굳이 그 땅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주장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진로가 보장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고통 속에 있지만 그들은 안락한 환경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모든 것보다 중심에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교통과 하나님의 말씀 속에 나타난 뜻을 지키기를 원했습니다. 다니엘서 1장은 그 첫 번째 사건을 기록한 내용입니다. 왕이 정한 음식을 거절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사고방식으로는 바벨론 신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자신들이 믿는 신의 은총을 받는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왕궁에서 정한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바벨론 신을 섬긴다는 상징이었고, 순종을 맹세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도저히 먹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거절하기로 결심합니다. 

 

세상을 이기는 믿음은
‘거룩’을 선택하는 믿음

 

“그러나 다니엘은 왕이 먹는 특별한 음식과 왕이 마시는 포도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내시의 우두머리에게 자신을 더럽히지 않도록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8절).
매우 위험한 선택이었습니다. 처벌을 받을 수도 있고,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들은 생명을 내걸고 거절했습니다. 거룩함을 지키는 것이 역사적 소명이라는 의식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바벨론 신에게 바쳐진 음식을 거절했을 때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하시는 증거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다니엘이 내시의 우두머리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셨습니다”(9절).
하나님이 은혜와 긍휼을 베푸신 시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거룩을 결심했을 때 하나님이 그들에게 은혜와 긍휼을 베푸시는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떤 위기 상황, 문제, 고난,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앞에 부딪히게 되면 그 문제를 해결할 지혜와 능력을 먼저 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든지 먼저 거룩을 선택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지혜를 먼저 구하지만 하나님은 거룩을 먼저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거룩을 먼저 택할 때 하나님께서 그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지혜를 주신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바벨론 문화와 그 상황을 순교하듯 거부하며 다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대안을 제시하면서 거부했습니다. 감독관에게 “10일 동안 기회를 주십시오. 10일 동안 우리는 물과 채식만 하고, 그래서 왕이 정한 음식을 먹는 다른 소년들과 비교하고 평가해 주십시오”라고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주신 지혜로운 선택이었습니다. 그리고 정중하게 부탁했습니다. 그것을 통해 그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바벨론 한복판에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거룩이 승리의 길이라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런 것들을 말하는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가 이 세상에서는 고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미 이겼다”(요 16:33).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은 누구나 세상을 이깁니다.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바로 우리의 믿음입니다(요일 5:4).
세상을 이기는 믿음은 거룩을 선택하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함께 하시고, 보호하시고, 지혜를 주십니다.
다니엘과 친구들이 승리를 경험한 또 하나의 비결은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처음 뜻을 정한 것은 다니엘이었지만 같은 마음으로 함께 한 세 친구들이  있었기에 더욱 용기 있게 할 수 있었습니다. 믿음이 또 다른 믿음을 만나면 용기가 됩니다.
역사의 가장 밑바닥에 떨어졌을 때 하나님이 그 나라와 민족을 다시 일으키시는 일에 사용하셨던 사람들은 온전히 거룩함을 지키기로 결단한 영혼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거룩이 승리의 길임을 보여주셨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는 다니엘 시대의 바벨론 같은 제국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러나 바벨론 같은 인본주의적인 이념, 철학, 사상으로 우리의 영혼을 세속화시키는 시대입니다. 몸으로는 자유를 누리는 것 같지만 영으로는 바벨론의 포로 된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대야말로 우리가 눈을 뜨고 거룩을 선택해야 할 시기입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은 우리가 이 시대를 이길 수 있는 능력과 보호와 지혜를 허락해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통해 대안을 제시하고,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보이시며, 거룩에서 나온 지혜와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 나라와 민족을 살리는 일에 거룩한 백성을 사용하십니다. 우리는 순교가 어렵다고 하지만 순교보다 어려운 것이 다니엘과 세 친구처럼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온누리교회 성도들이 바벨론 제국 같은 이 시대에 영혼을 빼앗기지 않고, 거룩하게 그리스도를 위해 죽기로 결심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가며 거룩으로 세상을 이기기를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작성자   홍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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