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 신문 - 주일강단 - 부모가 붙잡아야 할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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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 부모가 붙잡아야 할 복음

 2021-05-15      제13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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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붙잡아야 할 복음 
 
엡 6:1~4
/ 이재훈 목사 
 
이 시대에 불법이 성행하는 것은 가정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끔찍한 범죄가 가정 안에서 일어나는 것은 문명이 붕괴할 때 일어나는 공통적인 현상입니다. 자녀를 돌보고 보호하고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부모됨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입니다. 그런데 어린 영혼들을 유기하고 학대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는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말세의 현상입니다. 죄와 상처로 깨어진 가족만이 아니라 겉으로 보기에는 문제없고, 훌륭한 가정처럼 보이는 가정에서도 부모와 자녀 간의 깨어진 관계가 존재합니다. 완벽한 가정이 없고 완벽한 부모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 깨어진 가정에서 자라나 깨어짐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복음이 필요합니다. 깨어진 가정의 회복은 무엇으로 이룰 수 있습니까? 교육을 많이 받으면, 지식을 많이 쌓으면, 물질을 많이 쌓으면 가능할까요? 그 모든 것이 도리어 인간의 죄악을 감추고, 교활하게 만들 뿐입니다. 오직 십자가의 복음만이 깨어진 가정을 회복하게 하고, 참된 하나님의 가정으로 변화 시킵니다.  
 
부모의 책임 있는 양육과 
자녀에 대한 사랑
 
하나님의 말씀에는 자녀에 대한 명령과 부모에 대한 명령이 모두 있습니다. 성경 전체 맥락에서 보면 부모의 책임 있는 양육과 자녀에 대한 사랑을 우선적인 명령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부모가 먼저 십자가 복음으로 구원받고, 부모가 먼저 복음 안에서 굳게 세움 받지 않으면 그 부모를 통해 자라나는 자녀가 복음 안에 거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최근 이어령 교수님의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키스>라는 책을 보았습니다. 먼저 천국에 가신 고 이민아 목사님에 대한 그리움이 일어날 때마다 떠오르는 추억들을 딸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쓴 책입니다. 딸의 출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생각나는 모든 추억과 못다한 이야기를 더해서 쓴 책입니다. 책 제목에 ‘굿나잇키스’가 들어간 이유가 서론에 나옵니다. 이어령 교수님께서 열심히 글을 쓰는데 집중했던 시절, 어린 딸이 잠자리에 들기 전에 아빠에게 인사하기 위해 서재에 들렀습니다. “아빠, 굿나잇”하고 인사를 하는데, 책 쓰는데 몰입한 나머지 서재에 문이 열리는 것도, 딸의 발소리도 듣지 못하고 돌아보지 못한 채 “아빠 굿나잇”이라는 음성만 듣고 그냥 손만 흔들며 “굿나잇”하고 대답만 하신 것이 그렇게 후회가 된 것입니다. 딸이 인사할 때마다 30초만 시간을 냈다면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고 인사할 수 있었을 텐데 그 시간을 내지 못한 후회를 하면서 책 제목을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키스>라고 지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일 그 30초에 시간을 기적을 통해 다시 허락하신다면 이제 나는 글 쓰는 일을 멈추고 뒤돌아 딸을 안아 주며 딸의 뺨 위에 굿나잇키스를 해주고 싶다.”
이 마음으로 이 책을 쓰셨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이 나타나는 귀한 책입니다. 책 뒷부분에는 고 이민아 목사님이 부모님에게 보냈던 편지들이 첨부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어려서부터 저는 늘 아빠가 어려웠어요. 아빠가 늘 바쁘시고, 너무 유명하시고, 너무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라 저와는 다른 세계에 사는 외계인처럼 멀게 느껴졌어요. 아빠에 대한 저의 사랑은 동경과 그리움 같은 것이었어요. 아빠가 곁에 계셔도 만질 수 없고, 먼 곳에 계신 것 같은 거리감이 저를 늘 외롭게 했어요. 아빠의 마음에 들 만큼 똑똑하고 유능한 딸이 될 수 없을 것 같은 패배감이 늘 제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어요. 아빠가 저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또 사랑하셨나를 깨닫고 나니 그 모든 쓸데없는 외로움이 어리석게만 느껴져요. 아빠에게 저는 딸이기 때문에 사랑스러운 것이지, 저의 어떤 능력이나 모습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님에도 저는 아빠의 깊은 마음을 몰랐기에 혼자 사랑에 늘 굶주리고 목말라 했어요. 
저에게 하나님과 아빠의 사랑을 체험하게 하고 누릴 수 있게 해준 축복의 헌사가 이선(Ethan)이에요. 저희 마음에 차지 않는 아이, 저를 늘 실망시키는 아이, 저를 늘 아프게 하고 걱정시키는 아이. 그 아이와 10년을 씨름하면서 슬퍼하고 노하고 걱정하고 답답했던 시간에 단한순간이라도 그 아이를 위해서라면 당장이라도 죽을 수 있을 만큼 강렬한 사랑이 끊어진 적이 없었어요. 제가 그 아이를 낳았다는 그 한 가지 사실 때문에 저는 그 아이를 천하보다도, 제 생명보다도 더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러면서 저도 그와 똑같이 이유 없이, 자격 없이 제가 자녀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하나님께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아빠에게는 제가 딸이기 때문에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깊이 체험하고 누리게 되었어요. 아빠 사랑해요. 아빠의 사랑에 감사드려요.” 
모든 부모에게는 이어령 교수님 같은 아쉬움과 후회가 있습니다. 자녀들과 보낸 많은 날 중에서 후회스러웠던 때가 한순간도 없는 부모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또한 모든 자녀에게는 고 이민아 목사님처럼 부모가 됨으로써 비로소 부모의 사랑을 깨닫는 체험이 있습니다. 자녀들은 늘 부모의 사랑이 부족하다고 섭섭해하지만, 부모는 늘 자녀에게 베푼 사랑이 적음을 미안해하고 아쉬워합니다. 
한 생명이 세상에 태어나면 한 여인이 어머니로 바뀝니다. 또한 한 남자는 아버지로 바뀝니다. 가장 먼저 그 영혼을 돌보고 책임지는 마음을 품게 됩니다. 
끊임없이 줘도 빚진자의 마음으로 더 줄 것이 없어서 안타까운 마음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많이 배워서 깨달은 것이 아닙니다. 많은 재물이 가져다주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일부를 넣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보내신 모든 영혼이 부모를 통해 이 사랑을 깨닫게 하십니다. 때로 그 사랑이 왜곡되어 부모로부터 상처받고 아픔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근원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만난다면, 하나님 아버지를 경험한다면 부모의 사랑이 부족할지라도, 부모에게 버림받을지라도 사랑 안에서 강건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부모가 그 통로가 되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때로 그 통로가 되기에는 너무 많은 죄와 상처로 무너지고, 얼룩진 부모들이 그 사명을 감당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자녀들이 부모에 대한 상처와 아픔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를 때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하나님께 나오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육신의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와 아픔이 아무리 커도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사랑의 근원이요 원천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으로 인하여 우리는 부모를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모의 사명은 매우 소중하고 고귀하고 신성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에 태어난 생명에게 가장 먼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려줘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먼저 복음을 붙잡고 복음 안에 거해야만 자녀들을 하나님의 올바른 사랑으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자녀는 하나님의 소유
 
부모가 붙잡아야 할 복음이 무엇입니까? 첫째, 자녀는 부모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입니다. 죄의 본성은 끊임없이 자녀가 부모의 소유라고 착각하게 만듭니다. 자녀가 부모의 소유라고 착각하는 부모들은 자녀의 반응과 태도에 지나치게 왜곡된 감정으로 대하게 됩니다. 에배소서 6장 4절에서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자녀의 마음에 쌓여 있는 분노는 대개 부모의 왜곡된 감정으로 인해 쌓인 경우가 참 많습니다. 대개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자녀에 대한 염려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자녀의 행동에 과민반응하고, 부모의 감정이 지나치게 왜곡되어서 자녀가 상처를 받고 분노가 생깁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손주들을 사랑할 때 관대하기 마련입니다. 손주들이 예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두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오랜 인생의 경험을 통해 미성숙과 불순종을 분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해결될 문제인 경우에는 그 시점에서 아이들을 나무랄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자녀에게 가졌던 소유의식으로부터 자유로워졌기 때문입니다. 손주는 분명히 자녀의 자녀이고, 자신의 자손이지만, 자녀에게 가졌던 소유와 집착, 관심으로부터 자유로워졌기 때문에 보다 관대하고 객관적으로 대할 수 있습니다. 손주를 있는 그대로 기뻐하고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입니다.  
자녀들이 하나님의 소유임을 인정한다면, 부모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도 않고, 부모의 왜곡된 감정으로 반응하지도 않습니다. 마치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주를 대하듯이 하게 됩니다. 그러나 부모가 자녀를 자신의 소유라고 생각하면 자녀를 통해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고 합니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려고 합니다. 자신의 정체성, 더 나아가 명예까지 자녀를 통해 얻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자녀가 예상하지 않은 길로 가면 실망하고, 자녀의 자유를 빼앗고 싶어합니다. 모든 것이 왜곡된 것입니다. 자녀가 자신의 일부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자녀는 부모의 연장이 될 수 없습니다. 자녀의 인생, 하나님께서 주신 고유한 부르심, 하나님께서 그 자녀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고유한 정체성을 인정해줘야 합니다.
 
자녀 변화시키는 능력은 오직 하나님께
 
둘째, 자녀를 변화시키는 능력은 부모에게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부모가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만 양육할 때 자녀가 변화됩니다. 자녀를 변화시키는 것은 십자가의 복음뿐입니다. 부모가 교훈과 훈계를 만들어 자녀를 양육하면 또 하나의 율법을 만드는 것입니다. 자녀가 노엽게 되고, 자녀의 마음에 분노가 쌓이는 원인은 부모가 만든 철학, 규율, 법칙을 강요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부모에게 도움이 되고, 그것을 행한다고 해서 해가 되거나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녀에게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부모의 옷이 자녀에게 맞지 않듯이 부모에게 적합했던 인생 철칙이 자녀에게는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 곧 십자가의 복음만이 자녀를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임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자녀를 부모의 교훈과 훈계로 가르치려 할 때 율법적인 통제수단을 사용하게 됩니다. 첫째, 두려움을 줘서 변화시키려는 것입니다. “한 번만 더 이런 행동을 하면 다시는 너를 내 자식으로 생각하지 않겠다. 그렇게 살 바에는 집 나가라. 난 너 같은 자식 둔 적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둘째, 보상을 통해서 변화시키려는 것입니다. “네가 만일 이 일을 하면 이걸 해줄게”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삭이 얼마 살지 못할 것을 알고 아들 에서를 불러 축복하기를 원했습니다. 이삭이 에서에게 “이제 내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아 너를 축복하기를 원하니 너는 사냥한 고기로 음식을 만들어 오너라”고 말합니다. 아들을 축복하는데 고기를 꼭 먹어야 축복이 나올까요? 이삭이 그렇게 살아온 것입니다. 이삭이 아들을 그렇게 대했기 때문에 에서가 들사람이 된 것입니다. 동물적이고, 아주 거칠고, 사냥만 좋아하는 인성이 형성된 것은 이삭에게 사냥해서 고기를 가져다주면 축복해 주고 사랑을 줬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사랑과 인정을 받으려고 에서는 늘 사냥하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이삭은 죽는날까지 아들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고기를 사랑한 것입니다. 셋째, 자녀에게 수치심을 줘서 변화시키려는 것입니다. “나는 가끔 내가 너를 왜 낳았는지 의심스럽다. 후회된다. 네가 나를 이렇게 부끄럽게 망신시킬 수 있니? 너는 우리 집안의 망신이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두려움과 보상, 수치심으로는 결코 자녀가 변화되지 않습니다. 자녀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십자가의 복음뿐입니다. 주의 교훈과 훈계는 십자가의 용서요, 사랑입니다. 회개입니다. 십자가 앞에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용서를 받고, 서로를 용서하는 십자가의 복음만이 자녀를 변화시킵니다. 참된 회계에 이르지 않고서는 인간은 절대로 변화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죄성은 십자가의 회계로만 씻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만 씻음 받을 수 있습니다.
 
부모가 먼저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 
 
셋째, 자녀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일은 부모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길뿐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기 전에 하나님의 자녀로서 사랑받는 자녀로 회복되는 일이 우선입니다. 사랑은 경험하지 않고는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온전한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면 자녀에게 줄 사랑이 없습니다. 원가정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상처와 버림받은 부모가 어떻게 자녀를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부모 입장에서 보면 받지 못한 것을 달라고 하니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러나 미안한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미안하다는 말 속에 많은 단어가 포함되어 있는지 모릅니다. 자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만, 그것을 줄 능력이 없다는 것이 많은 부모들의 고백입니다. 사랑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사랑,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 부어진 하나님의 사랑을 만난 부모만이 자녀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습니다. 자녀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궁극적인 책임은 부모에게 있습니다. 
자녀에게 참된 회개를 가르치는 것은 부모가 먼저 참된 회개에 이르는 길뿐입니다. 자녀를 십자가의 복음으로 인도하는 것은 부모가 먼저 십자가의 복음을 깨닫고 체험하는 길뿐입니다. 모든 가정은 깨어져 있기에 그 깨어짐 속에서 복음을 깨닫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부부관계가 그리스도와 교회를 체험하는 관계로 이 땅에 존재하게 하신 것처럼, 이 땅의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체험을 하도록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듯이,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서의 체험을 깨닫게 하려고 이 땅에서 부모와 자녀의 관계로 존재하게 하셨습니다.  
성어거스틴이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도록 이끈 사람이 그의 어머니 모니카입니다. 어거스틴은 젊은 시절 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이단에 빠졌고 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를 포기하지 않았고 쉬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성어거스틴의 고백록 후반부에 어머니에 대한 회고가 몇 페이지 나옵니다. 그의 어머니는 아주 성격이 불같은 남편하고도 다툼없이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숙한 여인이었습니다. 아들이 방탕한 인생을 살 때 어머니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그러나 그 어머니는 아들을 포기하지 않았고, 십자가의 복음을 붙잡았고, 아들이 복음을 깨닫기를 기도했습니다. 모니카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어거스틴이 함께 여행하면서 어머니의 유언을 듣습니다.  
“아들아, 나는 이제 이 세상에서 누릴 즐거움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이 세상에서 나의 바라던 것이 다 이루어졌는데 내가 이 세상에서 더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내가 더 세상에 남아있어야 하는지 나는 모르겠다. 내가 이 세상에 잠깐이라도 더 오래 남아있기를 원했던 단 한 가지 이유는 죽기 전에 네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보고 싶었던 것이었다. 나의 하나님은 내가 바라던 것보다 더 풍성하게 보답해 주셔서 네가 세상의 행복을 끊고 그의 종이 된 것을 나로 하여금 보게 하셨다. 내가 이 세상에서 할 일이 더이상 무엇이 있겠느냐?” 
모니카의 삶의 목적은 어거스틴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머니의 기도에 넘치게 응답하셨습니다. 어거스틴이 그리스도인이 될 뿐만 아니라 초대교회사의 가장 중요한 신학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어거스틴의 신학이 종교개혁의 신학으로 우리에게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사이 교회에 많은 방황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돌아갈 중요한 신학이 있었습니다. 만일 어거스틴의 신학이 없었다면, 초대교회의 중요한 교리적 뼈대가 형성되어야 할 시점에 중세로 들어갔다면 종교개혁이 일어날 수 있는 기초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도 어거스틴의 어머니 같은 부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자녀들에게 어떤 성공을 기대하기보다 존재 자체로 기뻐하고, 또 자녀의 실패와 실망스러운 모습에도 사랑으로 붙잡아 주며, 무엇보다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는 것을 가장 소망하는 부모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는 어머니, 기도하는 아버지의 자녀는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절대 버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부모의 소명은 힘들고 어렵지만,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소명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신성합니다. 부모됨의 소명을 잘 감당하기를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작성자   홍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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