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 신문 - [주일강단] 복음과 하나님의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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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복음과 하나님의 심판

 2022-06-18      제139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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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하나님의 심판 
 
로마서 2:1~11
/ 이재훈 목사
 
로마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기 전에 하나님의 진노를 먼저 말하고 있습니다. 왜 인간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습니까? 하나님을 명백하게 알 수 있는 계시가 주어졌음에도 불의로 진리를 막는 인간의 타락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 불순종 때문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피조물의 형상으로 바꾸게 되고, 우상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상실한 마음, 타락한 마음, 어두운 마음 가운데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인간은 죄악의 공장처럼 온갖 죄악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죄악에 대해 순간순간 심판하심으로 찾아오시기도 하지만, 때로 내버려 두심으로서 우리가 최악의 결과를 겪으며 고통 가운데 살도록 하기도 합니다. 내버려 두심 그 자체가 하나님의 심판이요, 진노의 한 표현입니다. 
명백하게 죄의 모습을 나타내는 사람들만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겉으로 죄가 명백하게 나타나지 않고, 사람들 보기에는 의롭고, 스스로 자부할 만큼 도덕적인 사람들까지도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습니다. 스스로 ‘나는 비난 받을 만한 죄를 지은 적이 없다’는 의식을 가진 사람들, 다른 사람들을 훈계할 수 있고 지적할 수 있는 사람들도 여전히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읽는 사람들 가운데도 그런 생각을 하는 이들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그들은 도덕적으로 깨끗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그렇게 살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생각하는 도덕은 절대적으로 선하신 하나님 앞에서의 판단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 보기에, 그 사회의 기준에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삶을 도덕적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의 기준에 합당한 도덕에 의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있다고 말하면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정당성을 설명하기 위해 로마서 2장에서 어법을 바꿉니다. 로마서 1장에서는 논술형으로 설명했는데, 2장에서는 헬라 시대 전통적인 수사법을 사용합니다. 가상의 인물을 설정해 놓고, 그 가상 인물에 대해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통렬하게 털어놓는 수사법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사람이여’라는 단어가 두 번 나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이여, 그대는 변명할 수 없습니다. 그대는 남을 판단하는 그것으로 그대 스스로를 정죄하고 있습니다. 남을 판단하는 그대가 똑같은 일들을 행하기 때문입니다”(1절). 
남을 판단하는 사람은 타인의 죄와 문제를 판단하지만, 그 이면에는 스스로 도덕적으로 의롭다고 여깁니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판단하려는 사람은 도덕적인 삶을 추구하려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자기 의에 빠진 사람은 다른 사람의 잘못에는 분을 내지만, 자신의 그런 행동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 아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를 원하지 않고, 거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아무도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서 제외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의로움은 인간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인간에게서 나오는 의로는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추구하고 만든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서 보면 더러운 옷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욥에게 엄청난 고난을 주셨습니다. 욥은 동방의 의인입니다. 그 시대 사람 중에 가장 의로운 이를 꼽으라면 선택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욥에게 엄청난 고난이 오도록 허용하셨습니다. 욥은 고난과 고통 속에서 몸부림쳤습니다. 그 결과로 욥이 ‘자신의 모든 의가 도금된 것과 같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겉은 의인이었지만, 그의 밑바닥에 있었던 불의함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자신의 출생을 원망하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는 욥의 불의함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고통과 고난이 우리 삶을 휘젓기 시작하면 엄청난 불의함이 쏟아져 나옵니다. 욥이 그 모습을 보여 줬습니다. 인간에게서 나오는 의로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부할 수 없고, 인간에게서 나타나는 모든 의로움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선 앞에서 더러운 옷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남을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선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도리어 자신이 얼마나 판단 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에 빠집니다. 
 
진리대로 이뤄지는 하나님의 심판
 
“그런 일을 행하는 사람을 판단하면서 똑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이여, 그대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을 줄로 생각합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그대를 회개로 이끄시는 것을 알지 못하고 그분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오래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합니까? 그대의 고집과 회개하지 않는 마음 때문에 그대는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나타날 그날에 그대에게 임할 진노를 쌓고 있습니다”(3~5절). 
온갖 흉악한 죄들, 우상숭배, 더러운 마음, 타락한 마음, 어두운 마음으로 죄를 나타내는 사람이라기보다 도덕적으로 의로움을 추구하는 사람들조차 진노를 쌓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착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남을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도덕적으로 의롭고 깨끗한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의 심판은 피할 수 없다는 말씀 속에서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심판은 진리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의로운 심판입니다.  
“우리는 그런 일을 행하는 사람에게 진리대로 하나님의 심판이 내린다는 것을 압니다”(2절). 
진리란 절대적으로 옳은 것입니다. 절대적으로 선한 것입니다. 절대적으로 의로운 것입니다. 이 시대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단어가 진리입니다. 수십 년 전만 해도 “복음이 진리입니까?”라고 질문했는데, 요즘은 “당신은 진리가 있다고 믿습니까?”라고 묻습니다. 각자 옳은 대로 생각하는 것이 진리이고, 모든 사람이 받아들여야 할 객관적인 진리는 없다는 것이 이 시대 사람들의 사상이자 사고방식입니다. 진리를 절대적인 기준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진리를 양분화합니다. 공적인 영역에서의 진리가 있고, 사적인 영역에서 진리가 있다고 말합니다. 공적인 영역에서는 과학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만 진리로 받아들이고, 초자연적인 기적이나 신앙의 영역은 사적인 영역으로 구분합니다. 잘못된 구분입니다. 우리가 진리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모든 영역에서의 진리입니다. 예수님은 예배당에서만 주님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삶,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으로 인정되어야 합니다. 진리란 절대 기준이며, 절대적으로 의롭고 선하신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절대 기준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그 절대적인 의로움과 선함에 합당하지 못한 것은 모두 죄악 된 상태요,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 처한 것입니다. 하나의 답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우주 만물을 다스리는 자연 질서에도 과학의 법칙이 있습니다. 절대적입니다. 증명된 과학적 진리가 있듯이, 모든 세상에도 절대적인 도덕적 진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상대적으로, 자신을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절대적인 진리대로 이루어지기에 의로운 심판입니다.
 
행한대로 이뤄지는 하나님의 심판
 
둘째, 하나님의 심판은 우리가 행한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의로운 심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의 행위에 따라 갚아 주실 것입니다”(6절).  
“악을 행하는 모든 사람의 영혼에 환난과 고통이 있을 것입니다. 먼저는 유대 사람에게 있을 것이며 다음으로는 그리스 사람에게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선을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을 것입니다. 먼저는 유대 사람에게 있을 것이며 다음으로는 그리스 사람에게 있을 것입니다”(9~10절). 
하나님이 우리가 행한 대로 심판하시기에 의로운 심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행함을 기억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남을 판단하는데 사용했던 모든 기준을 스스로 지켰는가를 물으십니다. 스스로 의롭다 여기며 다른 사람을 판단했던 우리의 모든 삶이 녹음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말과 행동을 하나님이 녹음하고 기억하십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을 기초로 심판하시기 때문에 의롭습니다. 프란시스 쉐퍼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의 때에 보이지 않는 녹음기를 틀어 네 입으로 사람은 마땅히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고 한 말을 기준 삼아 심판하신다.” 
“죽은 사람들이 책들 안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았는데 그 안에는 그들의 행위가 기록돼 있었습니다”(계 20:12).  
하나님의 생명책에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모르는 기준으로 심판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너무 잘 알기에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준으로 판단하십니다. 
저의 대학 동아리 후배가 어느 날 충격적인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신이 꿈을 꿨는데 심판대 앞에 섰다는 것이었습니다. 거기 있는 생명책에 자기 이름이 없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없어서 놀랐다고 했습니다. 마침 천사가 자리를 비워서 볼펜을 꺼내 자기 이름을 거기다 적으려는 순간 천사가 나타나서 야단맞고 꿈에서 깼다고 했습니다. 그 후배가 그 꿈을 통해서  요한계시록 20장 12절 말씀을 실제로 느끼고, 생명책 앞에 서서 떠는 경험을 통해서 신앙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모든 행위는 영원으로 연결됩니다. 우리는 단지 육체적 탄생에서 육체적 죽음으로 끝나는 인생이 아닙니다. 우리가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영원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늘에 선한 열매를 쌓거나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쌓느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행위로 심판하시는 까닭은 그것이 참된 구원을 받는 믿음의 근거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소유한 계시를 기준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심판
 
셋째, 하나님의 심판은 자신이 소유한 계시를 기준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의로운 심판입니다.  
“율법 없이 죄짓는 사람은 모두 율법 없이 멸망하고 율법 안에서 죄짓는 사람은 모두 율법대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12절). 
‘율법 없이 죄짓는 사람’은 이방인입니다. ‘율법 안에서 죄짓는 사람’은 유대인을 말합니다. 이방인은 율법을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어떻게 심판하십니까?   하나님이 율법과 대등한 역할을 하도록 주신 게 있습니다. 양심과 도덕입니다. 하나님이 유대인에게는 율법을 주셨기에 그것을 기준으로 심판하시고, 이방인에게는 율법을 주지 않으셨기에 양심을 기준으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심판하실 때 각 사람이 전혀 알지 못하던 기준으로 심판하지 않으십니다. 고대 페르시아 시대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역사와 운명을 판단했던 사람들에게는 별의 징조를 통해서 메시아가 오셨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사람들에게만 준 계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각양각색의 계시를 통해서 모든 시대,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고, 변명할 수 없는 계시를 주셨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율법을 주셨고, 율법을 모르는 동시대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부인할 수 없는 계시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기준으로 판단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알려주시지 않은 기준으로 심판하지 않습니다. 학생들에게 가장 미움받는 선생님이 누구입니까? 시험 범위를 알려 주셨는데, 그 범위 밖에서 문제를 내시는 선생님입니다. 불공정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불공정한 선생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부인할 수 없고, 변명할 수 없는 계시를 통해서 심판하십니다. 그 중요한 증거가 양심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도덕적인 본성, 양심의 소리가 유대인에게 주어진 율법과 같은 기능을 제공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도 부인할 수 없고, 누구도 변경할 수 없고,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서게 됩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기에 구약의 율법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연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 양심과 도덕적인 본성에 새겨주신 절대적으로 옳으신 하나님의 존재 앞에 서게 됩니다. 
 
하나님은 진리대로 심판하시기에 공정하다!
 
하나님은 진리대로 심판하시기에 공정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행한 대로 심판하시기에 공정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계시대로 심판하시기에 공정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심판하실 때 세상적인 기준에 의해서, 어떤 사람들의 통념, 각자에게 주어진 사회적 역할에 따라서 심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공정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쓰고 있는 가면을 보지 않으십니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십니다. 하나님 앞에 누가 심판을 피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 할 수 없습니다. 누구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누구도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해 보이고, 훌륭해 보이고, 모든 사람을 판단할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일지라도, ‘하늘 아래 한점 부끄럼이 없다’고 자부하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여길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의로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의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선물로 주시는 의로움이 없으면 우리가 심판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의로 죽음 이후에 있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 이후 영원을 만나기 전에 하나님의 의로 덧입음을 받아야 합니다. 바로 이것을 설명하시기 위해서 하나님 심판의 정당함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가 왜 필요한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의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더 깊이 깨닫기를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작성자   홍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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