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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 신문 -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2026-03-21 제1581호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엄학실 성도가 압록강 건너 예수 따르기까지
 
“나를 따르라”(마 16:24).
2026년 온누리교회 표어는 자기 부인과 십자가를 전제한 그리스도의 엄중한 명령이다. 2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은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치열한 삶의 자리에서 예수의 제자로 살기로 결단한 모든 이들을 향하기 때문이다.
<온누리신문>에서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을 만난다. 삶의 자리에서 묵묵히, 그리고 뜨겁게 예수의 발자취를 따르는 성도들의 삶과 고백을 듣는다. 그 네 번째 주인공은 엄학실 성도(부천한사랑공동체)다. 
/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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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배운 역사 교과서 속 미국 선교사들은 '하느님을 전한다면서 사과를 훔쳐먹어 이마에 도적이라 새긴 자들'이었습니다.”
엄학실 성도에게 하나님은 첫인상이 아주 나빴다. 북한의 역사 교과서에 등장하는 하나님은 경계해야 할 대상이었고, 선교사는 나라를 어지럽히는 존재로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의 두메산골에서 자란 엄학실 성도에게 신이라는 개념은 삶의 영역 밖에 있었다. 국가가 곧 절대였고, 김일성 일가는 신을 넘어선 존재로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김일성 일가의 우상화를 담은 <혁명역사도록>을 줄줄 외우며 사는 삶 속에서 하나님은 스쳐 지나는 왜곡된 이야기 속 인물, 나쁜 사람으로만 남아 있었다.
엄학실 성도의 삶이 한순간에 무너뜨린 끔찍한 경험이 있었다. 2남 3녀 중 장녀로 태어났고, 가정을 이루고 평범하게 살던 그녀는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삶의 방향을 잃었다.
“생계를 책임지던 남편이 떠나고 나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남은 것은 막막함뿐이었습니다. 손주들 밥을 축내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어차피 죽을 거라면 중국에 가서 돈을 벌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결심은 곧 국경을 향한 발걸음으로 이어졌다. 압록강으로 향하던 길 위에서 엄학실 성도는 자신도 모르게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나님을 찾았다.
“3월의 압록강은 녹지 않은 얼음과 불어난 물로 가슴 높이까지 차올라 있었습니다. 한 걸음 내딛는 것조차 두려웠습니다. 저도 모르게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느님, 하느님, 내가 압록강을 무사히 건널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두려움 속에서 무심코 내뱉은 말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도 모른 채 드린 저의 첫 번째 기도였습니다.”
압록강에 다다른 그녀의 눈앞에 믿기 어려운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강 위로 쓰러져 다리처럼 놓여 있었다. 그 덕분에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었다.
 
그 한 구절이 나를…
 
중국에서의 삶 역시 쉽지 않았다. 공안의 단속을 피해 더 깊은 곳으로 몸을 옮겨야 했다. 이전보다 형편은 조금 나아졌지만, 불안은 여전했다. 함께 중국으로 건너온 딸은 가사도우미, 엄학실 성도는 농장에서 일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마음 한편에는 늘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때마다 엄학실 성도의 입술에서 다시 같은 이름이 흘러나왔다.
“하느님, 우리 딸과 손자가 공안에 잡히지 않게 해 주십시오. 우리 가족이 한 집에 모여 살게 해 주십시오.”
그때도 여전히 그것이 기도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다만, 절박한 순간마다 무심코 부르게 되는 이름이었다. 전환점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딸이 한국으로 떠나자고 제안했다. 점점 자라는 손자를 위한 선택이었다. 선뜻 용기를 내지 못했는데, 그날 밤 꿈이 엄학실 성도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미 중국으로 도망쳐온 상태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또 다른 곳으로 떠나려니 너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딸에게 ‘너희가 먼저 가서 좋으면 나를 데리러 와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꿈을 꿨습니다. 넓고 길고 곧은 길 위에 큰 개 세 마리가 죽어있는 꿈이었습니다. 북한에서는 꿈에 나온 개가 경찰을 뜻합니다. 그 꿈을 꾸고 나서 ‘아, 안전하구나!’라는 마음이 들었고, 딸에게 함께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일터에 거짓말하고 나온 딸과 손자와 함께 밤 11시에 창문을 넘어 도망쳤습니다.”
엄학실 성도는 여러 경로와 재판을 거쳐 한국대사관 방콕 수용소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난생처음 성경책을 봤다. 
“방콕 수용소에는 한국 영화와 책 그리고 성경책 등이 있었습니다. 문득 ‘북한은 왜 그렇게 성경을 두려워하고 사람들을 핍박했을까?’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중국에서 일하려고 국경을 넘나들던 시절 성경책을 겉옷에 숨겼다가 공안에 붙잡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성경책이 무엇이길래 그렇게까지 할까?’ 호기심에 읽기 시작했습니다."
호기심에서 시작된 성경 읽기가 곧 ‘통독’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대부분 내용은 이해할 수 없었다. 단 한 구절이 마음에 남았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 7:7).
이 한 구절이 엄학실 성도의 마음을 붙잡았다. 나도 하나님을 믿어야겠다고 결심하게 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마침내 한국에 도착한 엄학실 성도는 하나원에서 만난 동기에게 교회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인도받은 곳이 부천온누리교회 한사랑공동체다. 그곳에서 엄학실 성도의 신앙이 비로소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하나님 말씀과 사랑이 그녀를 감쌌고, 김혜경 목사와 한사랑공동체의 돌봄 덕분에 하나님 앞에 서는 믿음이 조금씩 생겼다.  
그녀는 혼자 있는 시간마다 하나님께 말을 걸었고, 새벽과 밤을 기도로 채웠다. 그 아름다운 삶을 이어가던 어느 날, 또 한 번 놀라운 경험을 했다.
"평소처럼 새벽에 혼자 기도하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머릿속에 <레위기> 11장 45절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성경책을 펼쳐서 확인해 봤더니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그 말씀이 하나님이 제게 주신 명령이라고 느꼈습니다. 연약한 저는 매일 넘어지고 또 엎어지겠지만, 하나님의 그 명령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엄학실 성도에게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다. 말씀 앞에 서는 삶, 말씀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며 순종하는 삶이다.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을 첫 자리에 두는 것이 그녀가 이해하는 예수 제자의 모습이다.
"온누리교회 성도님들을 보면 저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뜰만 밟듯 형식적으로 교회를 다니는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동시에 세상의 것을 붙들고 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두 가지를 함께 섬길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첫 자리에 모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면 필요한 모든 것을 더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삶의 첫 자리에 놓고, 삶의 모든 순간에 기도하며, 예배의 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삶의 현장이 곧 선교지가 되어야 합니다."
엄학실 성도는 복음 통일을 바라보며 그날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도 덧붙였다.
“북한에 남아 있는 친구들과 가족들이 어떤 경로로든 하나님을 만나고, 부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복음 통일이 아직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고 계신다고 믿습니다. 언젠가 다시 만날 가족들에게 하나님을 전하도록 그분을 더 깊이 알아가고, 훈련받으며, 준비해야 합니다.”
작성자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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