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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 신문 - 주일강단-솔로몬의 기도 

주일강단-솔로몬의 기도 

2019-04-14 제1241호

솔로몬의 기도 
왕상 3:4~14 
이재훈 목사 
 
성경 인물 중에서 가장 본받지 말아야 할 인물을 꼽으라면 솔로몬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죄악의 도구로 바꿔버린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물질적 풍요를 추구하려고 이방인들과 정략결혼을 했기 때문에 민족 전체가 우상숭배에 빠져 배교하게 만든 지도자입니다. 외부적인 화려함을 추구하려고 백성들에게 세금과 노역을 부과해서 큰 고통을 겪게 했습니다. 무엇보다 이스라엘의 존재 목적인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세상 속에서 거룩한 문화를 이뤄가는 일에 실패했습니다. 솔로몬이 뿌린 씨앗으로 인해 나라가 분열되고, 정략결혼으로 들여온 이방신들로 인해 우상숭배에 빠지게 되고, 바벨론과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될 때까지 나라 전체에 우상이 번성하게 되었습니다. 그 악한 영향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솔로몬에게는 본받지 말아야 할 모습이 많았는데 배울 점도 있었습니다. 그가 왕이 된 초기에 겸손하고 정직하게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던 모습입니다. 아무리 본받아야 할 점이 많은 사람일지라도 본받지 말아야 할 점이 있고, 본받지 말아야 할 것이 많은 사람에게도 본받을 점이 있기 마련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진노를 자초했던 지도자지만 그에게도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기사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지는 못했을지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의 태도를 가졌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솔로몬의 기도를 가르쳐 주시는 이유는 이 기도만큼은 기뻐하신다는 뜻입니다.
 
 
“내가 무엇을 줄까?”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왜 솔로몬의 기도를 기뻐하셨고, 그 기도에 응답하셨는지를 자세하게 가르쳐 줍니다.   
“여호와께서 밤중에 기브온에서 솔로몬의 꿈속에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구하여라. 내가 네게 무엇을 주랴?’하고 말씀하셨습니다(5절). 
‘1천 번제’란 1천 마리의 제물로 드린 번제입니다. 어떤 분은 이것을 천 번 드리는 헌금으로 해석해서 매일매일 천 번을 헌금하면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데 잘못된 적용입니다. 1천 번제는 국가적 제사로 드려져서 횟수가 많아졌을 뿐입니다. 우리가 많이 드림으로써 하나님의 임재를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은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기도에 응답하신 것은 1천 번의 번제를 드렸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받았기 때문에 선물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제물이 아니라 마음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제물의 양이 아니라 마음의 태도를 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마음에 주목하신 이유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 헌신 그 자체로 드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내가 무엇을 줄까?”라는 질문으로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미리 보셨기 때문에 먼저 찾아오신 것입니다. 솔로몬은 자신에게 무엇이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황 가운데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기에 먼저 찾아오십니다. 원하지 않는 고난과 슬픔까지도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채워주시기 위해 먼저 찾아오시는 하나님 임재의 통로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을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참된 기도란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기에 찾아오시는 하나님께 응답함으로서 시작됩니다.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두드리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계 3:20). 
이 말씀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라오디게아 성도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문 밖에 서서 두드리시는 하나님의 두드리심에 문을 여는 것이 참된 기도입니다. 솔로몬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은 질문으로 찾아오셨습니다. “내가 무엇을 줄까?”라는 질문 앞에 깨어있지 않은 영혼은 대답할 말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질문하실 때 그 질문에 대답할 내용이 없다면 깨어있지 못한 영혼입니다. 자기 자신을 의지하는 영혼은 하나님의 질문에 대답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성령 안에 깨어있지 않은 영혼은 대답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에 찾아오셔서 질문하신다면 어떤 대답을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마음과 영혼 속에 그 대답이 있어야 합니다. 늘 깨어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동행하는 영혼은 하나님의 질문에 대답할 내용이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분별의 지혜를 구하는 솔로몬 
 
 
“솔로몬이 대답했습니다. ‘주께서는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에게 큰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가 주께 충성스러우며 의롭고 정직했기 때문입니다. 또 계속해서 이 큰 은총을 베풀어 오늘과 같이 그 왕위에 앉을 아들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내 하나님 여호와여, 이제 주께서 제 아버지 다윗을 대신해 주의 종을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나 아직 저는 나이가 어리고 어떻게 제 임무를 수행해야 할지 모릅니다. 주의 종이 여기 주께서 선택하신 백성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의 큰 백성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니 주의 종에게 옳고 그름을 가려내는 마음을 주셔서 주의 백성들을 잘 다스리고 선악을 분별하게 해 주십시오.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들을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6~9절).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한 가지만 말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한 가지를 구했습니다. 그의 마음에 가득했던 소원이 하나님 중심의 소원이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솔로몬은 분별의 지혜를 구했습니다. 솔로몬이 왜 이 지혜를 구했는지 그의 기도 속에 두 가지 이유가 나옵니다. 
첫째, 솔로몬은 자신이 왕이 된 것은 자신의 능력과 자질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과거에 다윗에게 베푸신 큰 은혜 때문에 이루어졌다는 것을 겸손히 고백했습니다.  
“주께서는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에게 큰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가 주께 충성스러우며 의롭고 정직했기 때문입니다. 또 계속해서 이 큰 은총을 베풀어 오늘과 같이 그 왕위에 앉을 아들을 그에게 주셨습니다(6절). 
자신이 왕이 된 것이 아버지 다윗의 믿음과 충성과 의로움과 정직 때문이라고 연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진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베푸신 은혜, 다윗과 맺으신 언약, 다윗의 헌신을 받으시고, 그의 아들에게 베풀어 주시는 은혜 속에 솔로몬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과거와 선조들의 희생과 헌신을 통해 주시는 은혜에 대한 감사가 없다면 미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믿음의 조상들을 통해 베풀어 주신 은혜에 대한 깊은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이 땅에 오신 선교사님들에 대한 깊은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나라와 민족을 위해 희생한 조상들의 눈물과 헌신에 대한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부모님의 헌신과 희생과 사랑에 대한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껏 어떻게 인도하셨는지를 돌아보지 않고 는 현재 우리에게 주시는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솔로몬은 참된 겸손의 자세를 가진 것입니다. 
둘째, 솔로몬은 자신이 왕으로서 능력과 지혜를 갖지 못했다는 것을 정직하게 인정하며 분별의 지혜를 구했습니다. 7~9절을 보면 솔로몬은 “내가 아직 제 임무를 수행할 줄 모릅니다. 이 많은 백성을 내가 어떻게 인도할 수 있겠습니까? 저에게 필요한 것은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입니다”라고 구했습니다. 
 
 
겸손과 정직 그리고 목적
 
 
하나님께서는 겸손과 정직한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간구를 기뻐하셨습니다.
“솔로몬이 이렇게 구하자 주께서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이것을 구했구나. 너 자신을 위해 장수나 재산을 구하지 않고 네 원수들의 목숨도 구하지 않고 판결할 때 필요한 분별의 지혜를 구했으니 내가 네가 구한 대로 할 것이다. 내가 네게 지혜롭게 분별하는 마음을 줄 것이다. 전에도 너와 같은 사람이 없었고 네 이후에도 너와 같은 사람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네가 구하지 않은 것, 곧 부와 명예도 내가 네게 주겠다. 그러면 네 평생에 왕들 가운데서 너와 같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또 네가 만약 네 아버지 다윗이 한 것처럼 내 길을 걷고 내 규례와 명령을 지키면 네가 장수하게 될 것이다’”(10~14절).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구한 분별의 지혜를 주셨을 뿐만 아니라 구하지 않은 부와 명예와 장수까지도 약속하셨습니다. 적어도 이 기도만큼은 솔로몬이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말씀을 받아들일 때 어디에 초점을 두는지를 정직하게 구별해야 합니다. ‘더하시리라’는 부분에 관심이 있어서 구하는지 아니면 구하는 것 자체가 목적인지를 구별해야 합니다. 여기에 따라 솔로몬처럼 하나님께 응답을 받을 것인지 아니면 받지 못한 것인지가 결정됩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기도를 기뻐하시고 응답하신 것은 그가 구한 분별의 지혜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잘 읽어보면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지혜를 구한 것을 기뻐하셨지만 구하지 않은 것으로도 기뻐하셨습니다. 솔로몬이 구하지 않은 것은 그 자신을 위한 재물, 장수, 원수를 향한 복수 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구하지 않은 것도 기뻐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솔로몬 같은 왕이 아닙니다. 그러나 솔로몬처럼 기도해서는 안 된다는 법은 없습니다. 도리어 솔로몬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왕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왕 같은 제사장’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분별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일을 많이 하는 위정자들과 지도자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맡은 모든 직임에도 솔로몬이 구했던 분별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 무엇이 최선인지를 분별하는 지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지혜, 매순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지혜, 이웃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를 아는 지혜, 세상의 헛된 이념과 잘못된 우상을 분별하는 지혜, 자신에게 들려오는 것이 자기의 음성인지 세상의 음성인지 하나님의 음성인지를 분별하는 지혜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자녀를 위해 기도할 때도 이 세상의 명예, 재물, 부, 장수를 위해 기도하는 것보다 분별의 지혜를 구힐 때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기뻐하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
  
 
“지혜가 무엇보다 중요하니 지혜를 얻어라. 네가 가진 모든 것을 희생하고서라도 깨달음을 얻어라. 지혜를 존경하여라. 그러면 지혜가 너를 높여 줄 것이다. 지혜를 붙잡아라. 그러면 지혜가 너를 영광스럽게 할 것이다”(잠 4:7~8). 
세상의 많은 정보는 지식에 불과합니다. 지식이 곧 지혜는 아닙니다. 지혜는 지식을 뛰어 넘습니다. 지혜는 분별력입니다. 많은 지식과 돈과 명예가 있어도 지혜가 없어서 스스로 망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솔로몬은 자신이 그렇게 부르짖었던 지혜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지혜의 근본인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많은 축복의 근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 없이 부어지는 축복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되고, 저주가 되고,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는 길이 됩니다. 솔로몬이 분별의 지혜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 많은 축복이 그를 망하게 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지혜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에게 솔로몬의 지혜를 언급하시며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마태복음 12장에서 예수님은 “솔로몬보다 큰 이가 여기 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의 지혜이십니다. 예수님이 왜 솔로몬보다 크다고 하셨을까요? 그 말씀 속에 솔로몬의 실패를 포함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분별의 지혜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부와 명예와 장수의 복을 얻었지만 실패했습니다. 솔로몬의 실패의 근원은 죄였고, 십자가를 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솔로몬보다 큰 이가 여기 있다”고 하신 것은 솔로몬처럼 실패하지 않는 여기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춰져 있습니다”(골 2:3).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지혜는 영원한 지혜, 완전한 지혜입니다.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입니다. 하나님을 계속 경외하게 하는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게 하는 지혜입니다. 완전한 지혜입니다. 솔로몬의 실패와 같지 않은 지혜입니다. 잠시 있다 떠나는 지혜가 아닙니다. 죄가 무너뜨릴 수 없는 지혜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이루신 하나님의 완전한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지혜 중에 가장 지혜롭지 못하게 보이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세상 사람들에게는 어리석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어 보이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파합니다. 이것이 유대 사람에게는 마음에 걸리는 일이며 이방 사람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유대 사람이든 그리스 사람이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하나님의 지혜입니다(고전 1:23~24).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솔로몬의 지혜는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최고의 지혜라 할지라도 십자가 앞에 서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지혜로운 선택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분과 함께 죽기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에게 영원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솔로몬의 지혜를 동일하게 받을 수 없습니다. 사실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자신을 부인하고, 죽고, 함께 부활해서 생명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 이 땅을 살아가는 최고의 지혜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지혜 앞에 날마다 서고, 자신을 부인하고, 이 세상 속에서 성령을 따라 행할 때 하나님의 완전하신 지혜가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 지혜가 바로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 지혜로 세상에서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날마다 구하기를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작성자 권찬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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