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 칼을 버리고 십자가를 들다
<누가복음> 6:12~16, <사도행전> 1:12~14
/ 이재훈 위임목사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을 살펴보면서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동일한 이름을 많이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 전후 500년 동안 유대인들의 이름을 모은 <고대 후기 유대인 이름 사전>이 2002년 발간됐는데, 이 사전에서 분석한 내용을 살펴 보면, 당시 가장 빈번하게 사용된 이름이 ‘시몬’이었습니다. 그다음이 요셉, 엘르아살, 유다, 요하난, 여호수아 등의 이름이 사용되었습니다. 유대 남성 중에서 18.2%가 시몬 혹은 여호수아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여성 이름 중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이름은 ‘마리아’와 ‘살로메’였습니다. 당시 여성 38.9%가 마리아 혹은 살로메라는 이름을 가졌었습니다.
당시 유대 사람들이
같은 이름을 사용한 이유
왜 이 이름들이 당시 유대 사람들에게 많이 사용되었을까요? 같은 이름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 이름을 짓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리차드 보컴(Richard Bauckham)이라는 저명한 신학자가 이것을 잘 분석했습니다.
당시 가장 빈번하게 사용된 남성 이름 아홉 중에서 여섯은 하스몬 가문의 아들의 이름에서 왔습니다. 즉, 맛다디아와 그의 다섯 아들 요한, 시몬, 유다, 엘르아살, 요나단의 이름이었습니다. 여성 이름 중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마리아와 살로메도 역시 하스몬 가문의 가족의 이름이었습니다.
여러분, 하스몬 가문은 어떤 가문입니까? 주전 2세기에 독립을 쟁취하고, 국가를 이룬 마지막 유대인 정권 통치 가문이었습니다. 이들 가문의 구성원 이름이 로마 통치 시대에서도 계속 인기를 얻고, 빈번하게 사용된 것은 당시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하스몬 가문의 애국심에 대한 존경 때문이었습니다. 하스몬 가문이 유대인들에게 가장 존경을 받게 된 계기는 ‘마카비 혁명’ 때문입니다.
주전 167년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4세가 예루살렘 성전을 더럽히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성전에 제우스 신상을 세우고, 유대인들을 탄압하기 시작했을 때 당시 제사장이 맛다디아였습니다. 하스몬 가문의 제사장인 맛다디아와 그의 아들들이 봉기를 일으킵니다. 특히 그의 아들 유다 마카비는 불가능해 보였던 전쟁에서 승리해서 성전을 탈환하고 다시 정결하게 만듭니다. 그것을 기뻐하며 기념하는 절기가 오늘날까지 유대인들이 큰 축제로 지키는 ‘하누카’라는 수전절입니다.
그 이후 100년 동안 유대인들은 하스몬 가문을 통해서 다윗 왕조 이후 처음으로 실질적인 독립 자치 국가를 이루게 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하스몬가를 존경했습니다. 그들의 자립정신과 독립 정신, 그리고 실제적으로 독립 자치 국가를 이루었던 것에 대한 존경이 계속 이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에도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제2의 하스몬 가문과 같은 사람들이 나타나서 자신들을 로마의 통치로부터 구원해 주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스몬가의 가족들과 후예들의 이름을 자녀들에게 붙이기 시작했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그 이름을 자주 사용하고 불렀던 것입니다.
열심당원이었던 ‘시몬’
당시 가장 많이 사용됐던 ‘시몬’이라는 남자 이름은 하스몬 가문의 2대 통치자였던 시몬 타시의 이름에서 나온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이 시몬이라는 남자 이름을 많이 지은 이유가 있습니다. 로마에 저항하고, 로마에게 승리하기를 바라는 민족의 염원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12제자 중에도 ‘시몬’이라는 이름을 가진 제자가 두 명 나옵니다. 베드로도 시몬이었고, 오늘 살펴볼 열심당원도 시몬이었습니다.
우리가 오늘 살펴볼 시몬은 열심당원입니다. 영어로는 젤롯(Zealot)인이라고 합니다. 과거 영어 성경을 번역할 때, 킹제임스 번역에서는 ‘가나안인 시몬’이라고 표기해서 마치 그가 가나안 출신 사람인 것처럼 여겼는데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말 성경은 정확하게 번역해서 ‘열심당원’이라고 표기합니다. 그러나 옛날 한글 성경에서도 ‘가나안인’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영어 성경의 킹제임스 버전 번역을 가져온 것인데, 히브리어의 ‘깐나나’, 즉 ‘열정’이라는 뜻을 지역 이름으로 잘못 번역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문서나 성경 번역에서도 ‘가나안인’이라고 되어 있는데 잘못 번역한 것입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정확하게 열정이라는 뜻을 가진 ‘젤로스’라는 헬라어에서 나온 ‘젤로인’이라고 표기합니다. 영어의 젤롯(Zealot)도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율법에 열심을 내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지어진 것인데, 한국어 번역에서는 ‘열심당원’이라고 번역한 것입니다. 열심, 열정이라는 원래 단어의 의미와 같습니다.
칼로 싸우는 사람이 아니라
성령의 검을 든 하나님 나라 군사로
열심당원들의 정신적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민수기> 25장에 나오는 사건입니다. 비느하스가 하나님의 거룩함을 범한 자들을 창으로 찔러 심판했습니다. ‘비느하스의 열심’이 열심당원들의 모델이었습니다. 그 열심을 이어받은 하스몬 가문이 당시 독립을 위해서 헌신했고, 투쟁했던 것을 이어받은 사람들이 열심당원들이었습니다.
열심당원은 주전 6년 가말라 출신의 ‘유다’라는 사람이 로마의 인구 조사에 저항하면서 시작됩니다.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구도 유대인들을 다스릴 수 없다는 신앙과 애국심으로 인해서 사람들 사이에서 퍼져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열심당원 활동은 제1차 유대 로마 전쟁 마사다 요새 전투에서 비극적인 절정에 다다릅니다. 주후 70년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성전을 불태우고 도시 전체를 함락했을 때, 유대인들이 유다 광야 절벽에 있는 해발 400m 높이의 마사다 요새로 피합니다. 그곳에서 3년을 버팁니다. 967명이 완전히 로마군에 의해서 포위된 마사다 요새에서 3년을 기적적으로 버팁니다. 주후 73년 1만 5천명의 로마 군인들이 거대한 흙을 쌓아 올려 경사로를 만들어서 성벽을 돌파했을 때, 그들은 로마의 노예가 되는 것보다 자유인으로 죽겠다는 선택을 해서 960명이 자결합니다. 그곳이 지금도 성지순례 가면 꼭 방문하는 ‘마사다 요새’입니다. 지금도 그때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들의 타협 없는 신념, 민족을 위한 열정이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습니다.
열심당원이라는 글자는 단순한 별명이 아니라 목숨을 건 이념과 신념의 표시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존재는 유대 사회에 한편으로는 존경, 또 한편으로는 공포를 가져다줬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칼’이라고 믿었습니다. 로마에 세금을 바치는 것은 우상숭배로 여겨졌고, 가이사에게 절하는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열심당원 중에서도 핵심 분파가 있는데, ‘시카리’라고 불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시카’라는 것은 작은 칼, 중동 지방의 곡선형 단검입니다. 늘 품에 작은 단검, 곡선형 단검을 가지고 다니면서 암살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스몬 가문이 칼을 들어 싸워 성전을 청소했듯이, 열심당원들도 칼을 들어 로마를 청소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시몬도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칼로 여겼던 열심당원이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나서 변화됩니다. 이제 칼로 싸우는 사람이 아니라 성령의 검을 든 하나님 나라의 군사가 된 것입니다.
시몬이 경험한 세 가지 변화
이념을 뛰어넘는 복음
열심당원 시몬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서 경험한 구체적인 변화가 무엇이겠습니까?
첫째, 이념을 뛰어넘는 복음이었습니다. 열심당원의 눈에는 예수님이 돋보였을 것이고, 그분께 이끌렸을 것입니다. 예수님께 권세 있는 말씀과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이 있다면 그분을 중심으로 로마 제국을 무너뜨리는 것은 너무나 쉽게 보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열심당원 중에 여러 사람이 예수님이 그 일을 해주기를 바랐습니다.그러나 예수님은 열심당원들이 추구하는 일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을 우상숭배로 여겼던 열심당원과 달리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열심당원들이 추구하는 일에 참여하지 않으셨고, 칼을 사용하는 무력적인 행위를 책망하실 뿐이었습니다.
시몬이 처음 예수님을 따를 때는 언젠가 열심당원들이 꿈꾸는 대로 로마로부터 독립을 이루어 주실 수 있는 분이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유대의 독립에는 전혀 관심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시몬이 깨닫게 된 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는 단순한 한 나라와 민족의 독립을 뛰어넘어 모든 인류를 사로잡고 있는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시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로마의 압제에서 벗어나면 행복한 나라, 새로운 세상이 올 것으로 믿었지만, 로마의 압제보다 근원적인 죄의 압제에 사로잡힌 영혼들의 실체를 보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이념으로도 고칠 수 없었던 귀신 들린 자들이 자유케 되고, 죽은 자가 살아나는 능력 앞에서 생명의 능력, 영원한 생명의 능력을 발견합니다. 이념을 뛰어넘는 복음의 역사를 체험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념은 인간의 불행의 원인을 외부적인 환경 혹은 법과 제도에서 찾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하나님과 단절된 죄에 있으면 사람들이 아무리 법과 제도를 만든다고 해도 그것 자체가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다고 여깁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 그 사랑의 바다에 감격해서 자발적인 선택에 의해서만 세상이 변화된다고 가르칩니다. 이념은 사람의 겉모양만 변화시킬 뿐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인간의 본성을 재창조합니다. 시몬은 예수님을 따르면서 이념을 뛰어넘는 복음의 역사, 하나님의 나라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극단을 뛰어넘는 화해
둘째, 극단을 뛰어넘는 화해입니다. 예수님의 12제자 중에는 열심당원들이 증오할 뿐만 아니라 암살하려고 했던 세리 출신 마태가 있었습니다. 예전의 시몬의 입장에서 볼 때 마태는 제거해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반역자와 그 반역자를 처단하는 암살자가 같은 밥상에 앉아 있는 충격적인 장면입니다.
예수님이 이 두 사람을 12제자 일원으로 부르신 이유는 갈등이 아니라 화해를 만드신 것입니다. 두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 공동체에서 만나서 화해를 이루었습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일까요? 당시 사회 분위기로 봐서는 이 두 사람이 계속 문제를 일으켜야 하고, 그것이 복음서에 기록될 법도 한데 두 사람이 다퉜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도리어 다툼의 주인공은 야고보와 요한이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 좌우편에 앉겠다고 함으로써 다른 제자들과 늘 다툼의 주인공이었습니다.
1942년 인종 차별이 매우 심했던 미국 사회에서 특히 조지아주에 흑인 노예들이 많았습니다. 흑인에 대한 차별이 많았던 주였습니다. 그때 클라렌스 조던(Clarence Jordan)이라는 한 목사가 코이노니아 농장을 만들었는데, 그곳은 흑인과 백인이 평등하게 노동하고 수익을 나누는 공동체였습니다. 백인 우월주의 단체들의 많은 협박과 테러, 보복 속에서도 꿋꿋하게 흑인 농부들을 보호하고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화평과 하나 됨을 이루는 공동체였습니다.
이 공동체가 훗날 해비타트(Habitat for Humanity) 운동의 모태가 됩니다. 클라렌스 조던이라는 목사의 제자로 함께하게 된 밀라드 풀러(Millard Fuller)라는 백만장자가 당시 어렵게 살고, 집이 없는 흑인들을 위해서 집을 만들어 주는 사역을 했는데, 그것이 전 세계적으로 확장되어서 해비타트 사역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적대적이었던 두 인종이 하나가 되는 일은 복음으로만 이루어집니다. 시몬과 마태가 같은 공동체에 있었다는 것 자체가 복음의 능력을 경험한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모든 극단을 뛰어넘어서 하나 되게 하는 역사와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 공동체는 다양함 속에서 하나 됨을 이룰 수 있습니다.
열정을 뛰어넘는 성화
셋째, 열정을 뛰어넘는 성화입니다. 열정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방향이 잘못될 때 위험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은 열정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바꿔주시는 것입니다. 하스몬가의 열정을 이어받은 열심당원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헌신하겠다는 열정은 소멸하지 않고 방향이 바뀐 것입니다.
여러분, 열정을 소멸시키는 것이 성화가 아닙니다. 교정하는 것입니다. 로마를 향한 분노, 그 엄청난 에너지가 복음을 전하는 창조적인 열정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올바른 지식이 없는 열정은 때로 잘못된 도구를 사용하게 되며,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향한 열심을 가지고 일했다고 했습니다. 그 열심을 가지고 예수님 믿는 이들을 핍박했었습니다. 그러나 그 열정이 복음을 온 열방에 증거하는 에너지가 되었습니다. 성 어거스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매우 열정이 많았고, 마니교에도 심취해 탐욕의 노예로 살던 그가 변했습니다. 지적인 열정도 많았던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향한 깊은 갈망과 열정으로 바뀜으로 초대 교회의 중요한 지도자이자 신학자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열심당원의 전사에서
다락방의 기도자, 전도자로!
시몬이 자신이 믿고 의지했던 칼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게 됩니다. 예수님이 잡히시던 그 밤에 시몬은 다락방의 제자들과 함께 있었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실 때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오순절 사건 현장에도 있었고, <사도행전> 제자들의 명단에서도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습니다. 오순절 성령을 경험한 이후 그의 무기는 칼이 아니라 기도가 되었습니다. 로마를 향한 저항 대신에 성령님을 향한 갈망으로 그의 열심이 채워졌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거룩하게 되는 성화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온도를 낮추는 게 아니라 불꽃을 옮기는 것입니다. 세상 나라에서 하나님 나라로 옮기는 것입니다. 칼을 드는 힘이 선교에 자신을 드리는 힘이 된 것입니다. 유대 민족만 사랑하는 국수주의자, 민족주의자가 온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통로가 된 것입니다. 시몬이 열심당원의 전사에서 이제 다락방의 기도자, 전도자로 변화된 것입니다. 과거에 그가 가졌던 열정은 누군가를 죽이는 열심이었지만, 이제는 사람을 살리는 열심이 된 것입니다. 여러 전승의 의하면, 그는 에티오피아, 이집트, 페르시아 등에서 복음을 전하다 순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열심당원 시몬처럼 우리 안에 있는 이 세상에 대한 모든 열정이 하나님 나라의 열심,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증거자의 열심으로 변화되어 쓰임 받기를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