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따르라(10)
곁에 계시던 분이 이제 안에 계십니다
<요한복음> 14:15~21
/이재훈 위임목사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15절).
이 말씀 순서에 답이 있습니다. 순종이 사랑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사랑이 순종을 낳습니다. 순종은 사랑의 뿌리가 아니라, 열매입니다. 그런데도 이 말씀은 여전히 무겁습니다. 15절 만 읽으면 제자도는 하나의 율법적인 숙제가 되고 맙니다. 그러나 16절 말씀이 이어집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할 것이니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다른 보혜사를 보내셔서 너희와 영원히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다”(16절).
계명을 주신 분이 우리가 지킬 힘을 받도록 아버지께 구합니다. 예수님은 명령만 남기고 떠나시는 스승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원하시는 것을 명하시되, 명하신 것을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언제나 공급하심과 함께 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을 구하시는 성자 예수님, 구한 대로 능력을 주시는 성부 하나님, 그 능력의 근원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성령님이 계십니다. 제자도는 내 힘으로 버티고, 해내야 하는 과제가 아닙니다. 제자의 길을 걷도록 삼위일체 하나님이 합력하셔서 우리를 이끌어 주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
승천 그리고 성령의 오심
“이것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받게 될 성령을 가리켜서 하신 말씀이었습니다(그때까지 성령을 주시지 않았던 것은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요 7:39).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먼저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을 의미합니다. 거룩하신 성령님이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시려면 먼저 죄가 처리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성령님이 우리 안에 오시는 일의 준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예수를 높이 올리셔서 그분의 오른편에 앉히셨습니다. 높임 받으신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받아 우리에게 부어주셨는데, 지금 여러분이 보고 듣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행 2:33).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실 근거를 마련하셨습니다. 부활의 목적은 예수님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고, 성령님이 오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 승천 그리고 성령의 오심은 연결된 사건입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이 십자가로 값을 치르시고 부활하신 왕으로서 그 백성들에게 주시는 첫 선물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가 이 땅에서 구원받을 뿐만 아니라 제자로 살아갈 힘을 주십니다.
제자도의 능력,
보혜사 성령님께 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할 것이니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다른 보혜사를 보내셔서 너희와 영원히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다”(요 14:16).
‘보혜사(保惠師)’라는 단어는 성경 밖에서는 들을 길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다른 보혜사’라고 부르신 표현에 깊은 위로가 있습니다. 다른 보혜사라고 한다면 첫 번째 보혜사가 계셨다는 말입니다. 첫 번째 보혜사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보혜사는 제자들 곁에 계신 분이었습니다. 제자들 속에 계실 수는 없었습니다. 성령님은 동일한 하나님이시면서 다른 분이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시던 일을, 예수님이 가지셨던 마음으로, 예수님과 같은 사랑으로 그 일을 이루실 분입니다. 예수님은 곁에 계셨지만, 성령님은 우리 속에 계시는 분으로 오셨습니다.
“그분은 진리의 영이시다. 세상은 그분을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기 때문에 그분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러나 너희는 그분을 안다. 그분이 너희와 함께 계시고 또 너희 안에 계실 것이기 때문이다”(17절).
마지막 문장이 중요합니다. 함께 계실 뿐만 아니라 안에 계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로운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로운 영을 줄 것이다. 내가 너희 육신으로부터 돌과 같이 굳은 마음을 없애고 너희에게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내 성령을 너희 안에 주어서 너희로 하여금 내 법령을 따르며 내 규례를 지키고 행하게 만들 것이다”(겔 36:26~27).
옛 언약, 곧 모세의 율법 아래 계명은 돌판에 새겨져서 사람 밖에 있었습니다. 밖에 있는 계명은 무엇이 옳은지 방향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것을 행할 힘까지 주지는 못합니다. 계명을 돌판이 아닌 마음 판에 새겨준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제자도의 능력은 나의 결심에 있지 않고, 내 안에 임하신 보혜사 성령님께 있습니다.
“여러분 안에서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따라 결단하게 하시고 행동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빌 2:13).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키라”는 말씀은 우리에게 능력으로 임하신 성령님을 통해 이루시는 약속입니다.
“나는 너희를 고아처럼 내버려 두지 않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18절).
당시에는 스승을 잃은 제자도 ‘고아’라고 불렀습니다. “고아처럼 내버려 두지 않고 다시 오겠다”는 말씀은 종말의 때에 다시 오시는 재림만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고아처럼 제자들을 버려두지 않겠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오시겠다’는 것은 성령님으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 안에 임재하신다는 것입니다.
“조금 있으면 세상은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볼 것이다. 내가 살아있고 너희도 살 것이기 때문이다. 그날에 너희는 내가 내 아버지 안에 있고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며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19~20절).
‘그날에’는 성령님의 오심으로 이루어지는 그 날입니다. 예수님이 아버지 안에 계시고, 제자들이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이 제자들 안에 있음을 알게 되는 날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성령님이 오신 뒤 알게 됩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그 깊은 사귐 안으로 제자들이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통해서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부활의 생명을 함께 소유하게 되고, 그 부활의 생명으로 인해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귐 속에 우리가 함께 들어가게 됩니다. 이 신비로운 일을 우리가 어떻게 다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게 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누구든지 내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것이고 나 또한 그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람에게 나를 나타낼 것이다”(21절).
15절 말씀이 사랑과 계명에 대한 순종으로 시작했고, 다시 사랑과 계명에 대한 순종으로 끝납니다. 그대로 반복이 아닙니다. 약속 하나 더해져 있습니다.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성령 안에서 순종의 길을 걷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자신을 더 깊이 보여주십니다. 사랑하면 순종하게 됩니다. 순종함으로 더 예수님을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됩니다. 사랑에서 사랑으로, 순종에서 순종으로 계속 올라가는 것입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삶,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도
어떤 일을 행하시기에 제자들이 따르는 능력이 되는 것일까요?
첫째, 성령님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십니다.
“그러나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며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26절).
성령님을 생각할 때 특별한 체험이나 현상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장 먼저 알려주신 성령님의 역할은 우리 내면에 말씀이 생각나게 하시고, 사랑하게 하시고, 순종하도록 이끄시는 것입니다.
둘째, 성령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부어주십니다.
“이 소망은 우리를 낙심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인해 그분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롬 5:5).
성령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십니다. 성령의 열매 첫 번째가 사랑인 것도 그 때문입니다.
셋째, 성령님은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도록 능력을 주십니다.
“내가 또 말합니다. 여러분은 성령을 따라 행하십시오. 그러면 결코 육체의 욕망을 채우려고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갈 5:16).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욕망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산다면 또한 성령을 따라 행합시다”(24~25절).
성령을 따라 행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 십자가가 우리의 옛사람과 함께 죽음에 넘기는 십자가가 될 때 성령님이 새 생명의 능력으로 살 수 있게 해 주십니다. 육체의 욕심은 십자가에 넘겨주고,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삶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도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어떤 결단과 결심보다, 성령님께 의탁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나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계신 분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계명을 지킬 힘과 능력을 주실 성령님을 아버지께 구하고,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을 통과해서 성령님이 오심으로써 그분을 믿고 따르는 모든 제자가 스스로 걷지 않도록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곁에 계시던 분이 이제 안에 계시게 되었습니다. 제자들 곁에 계신 분이 제자들 안에 임하셨고 그들을 변화시킨 것처럼, 성령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을 걸어가기를 바랍니다. 자기 자신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자신의 결심도 신뢰하지 마십시오. 우리 안에 임하신 성령님을 신뢰하고, 따라가는 제자의 삶을 체험하십시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