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따르라(11)
여러분의 구원을 이루십시오
<빌립보서> 2:12~18
/ 이재훈 위임목사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의 의지와 힘만으로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없으며, 은혜를 주셔야만 비로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와 반대로 브리튼 출신 수도사 펠라기우스는 하나님이 명령하셨다면인간에게는 이미 그것을 행할 능력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이 아우구스티누스와 펠라기우스의 논쟁입니다. 결론은 펠라기우스의 주장이 이단으로 정죄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논란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은혜 없는 노력, 올바른 복음이 아니다
우리는 구원이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구원을 이루라고 명령합니다(빌 2:12). 그리스도가 자신을 낮추시고 순종하셨으므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주어지는 명령입니다.
“여러분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분이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그 일을 성취하실 것을 나는 확신합니다”(빌 1:6).
그 ‘선한 일’ 은 구원의 역사입니다. 구원의역사를 시작하신 하나님이 이루실 줄 믿는다는 고백입니다. 이들은 이미 구원받은 사람들이고, 하나님의 자녀이며, 사랑받는 자녀이자 순종하는 이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이미 구원받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어떻게 구원을 받은 자로 살아갈 것인가를 말씀합니다.
12절은 ‘철저히 끝까지 시작된 것을 끝까지 완성하라’ 라는 말씀입니다. ‘구원을 위해서 일하라’ 가 아니라, 이미 구원을 받은 자로, 구원이 시작된 자로 끝까지 이루어 내라는 것입니다. 구원을 향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으로부터 일하는 것입니다. 구원이라는 자체가 ‘건져냄을 받았다’ 는 뜻입니다. 자기 스스로 건져낼 수 없으므로 이미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질문이 남습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여러분의 구원을 이루십시오”라는 말씀만 붙잡으면 자신의 의지력과 노력으로 스스로 거룩해질 수 있다고 믿게 됩니다. 그러나 이 가르침을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판정한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설 자리를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인간 스스로 거룩해질 수 있다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실 필요가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은혜 없는 노력은 올바른 복음이 아닙니다.
반대로 “여러분 안에서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따라 결단하게 하시고 행동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라는 말씀만 붙잡게 되면 “하나님이 다 하신다면 내가 할 일이 없다”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손을 떼고 하나님이 하시게 하는 것입니다. 언뜻 들으면 경건한 말씀 같지만, 결국 신앙생활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하시는 것으로 여기게 됩니다.
여러분, 은혜의 교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면제해 주지 않습니다. 은혜를 말씀하는 본문에서 어떻게 우리의 행함이 어우러지는지를 깨달으려면 12절과 13절을 연결해서 읽어야 합니다.
부담이 아니라 약속
12절 말씀은 인간의 책임을 말하는 명령이며, 13절은 하나님의 주권을 말씀하시는데,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한글 번역에는 빠뜨린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라는 접속사입니다. 12절과 13절을 읽을 때는 접속사 ‘왜냐하면’ 을 붙여야 합니다.
“구원을 이루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이 너희 안에서 행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둘은 연결되어야 하고, 순서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너희 안에 행하고 계시기 때문에, 너희 안에 뜻을 주시고, 그 뜻에 따라 행하게 하고 계시기 때문에 너희는 구원을 이루어갈 수 있다’ 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우리의 일함을 대체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일함을 부정하고, 무효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창조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일하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이루는 일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부담이 아니라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행하라고 명령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 명령에 순종할 힘을 친히 공급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소원을 주시고, 그 소원을 행할 힘도 함께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힘으로 순종했을 때 기뻐하십니다.
구원의 세 가지 시제
이것을 신학자들은 ‘구원의 세 가지 시제’로 나눠서 설명합니다.
첫째, 과거의 구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우리 과거의 모든 삶을 의롭다고 선언하는 구원입니다. 곧 칭의(Justification), 의롭다 칭하시는 구원입니다. <로마서> 5장 1절에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라고 했습니다. 이미 끝난 일입니다. 이것은 100% 은혜의 영역입니다. 우리의 행함과 노력에 따라 달라지지 않습니다.
둘째, 미래의 구원입니다.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는 날, 죄의 존재 자체에서 완전히 건져집니다. 우리의 몸까지 새로워지는 것을 영화(Glorification)라고 부릅니다. 우리의 낮은 몸이 그리스도 영광의 몸과 같이 변화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셋째, 그 사이에 현재의 구원, 성화(Sanctification)가 있습니다. 이미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이 아직 다가오지 않은 완성의 날까지 걸어가는 오늘입니다. 그것을 오늘 말씀에서는 “여러분의 구원을 이루십시오”라고 한 것입니다. 칭의의 구원과 별개가 아닙니다. 칭의의 구원이 있기 때문에 오늘의 구원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오직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그 은혜 위에서 내가 행하는 모든 것도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앞서 구원이 없었다면 현재의 구원은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은혜 위에서 모든 행함도 은혜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노력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현재의 구원을 계속 이루어 갈 때 장차 온전한 구원이 우리에게 약속되어 있습니다. 칭의를 흔드는 말씀이 아니라, 칭의 위에 서 있는 말씀입니다. 죄악의 습성이 구원을 가리지 않도록 끊임없이 우리 자신을 제거해 나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두렵고 떨림으로”라는 말씀의 의미가 여기에 있습니다.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무서운 종의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할까 조심스러운 자녀의 두려움입니다. 내 안에서 일하고 계신 하나님이 얼마나 크고 거룩하신 분인지를 아는 사람은 그분의 일하심을 가볍게 여길 수 없습니다. 바울처럼, 많은 수고를 했지만 내가 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의 수고와 노력은 서로 경쟁하는 것이나 반대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수고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모든 일을 불평과 분쟁이 없이 하라”
그렇다면 구원을 이루어 가는 모습은 어떨까요? 모든 일을 불평과 분쟁 없이 합니다(14절). 우리 삶에 불평과 분쟁이 없는 것, 원망과 시비가 없는 삶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구원을 이루는 삶입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의 놀라운 축복을 적용할 때 관계와 마음속에 원망과 불평, 시비와 분쟁이 사라집니다. 이 말씀은 원망과 시비가 없으면 구원받는다는 게 아닙니다. 거꾸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구원받은 자로서 원망과 시비, 불평과 분쟁이 나타나는 것은 구원받은 자에 합당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이유이든 원망과 불평, 시비와 분쟁은 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반짝이는 별들을 보십시오. 어둠을 이기는 길은 어둠을 분석하는 게 아닙니다. 빛을 밝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잡는 것, 원망과 시비, 불평과 분쟁 없이 행하는 것이 빛의 자녀로 세상을 밝히는 것입니다(15절). 어둠이 얼마나 어두운가를 가르고 분석하는 것이 세상의 일입니다. 빛이 드러날 때만 어둠이 밝혀지는 것입니다.
“이제 내가 여러분의 믿음의 제사와 예배에 내 피를 붓는 일이 있을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여러분 모두와 함께 기뻐할 것입니다. 여러분도 함께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십시오”(17~18절).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을 높이고 자신을 부속적인 것으로 여겼습니다. 여러분의 수고와 헌신이 믿음의 본 제물이고, 자신은 부속적인 걸로 드릴지라도 기뻐하고 기뻐했습니다. 구원을 이루는 삶은 이를 악물고 견디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감옥에 갇히고, 죽음에 처할 상황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삶입니다. 이것은 즐거움의 길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은 고행과 고통의 삶이 아닙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원망과 불평, 시비와 분쟁을 뛰어넘는 기쁨의 삶으로 초대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이루십시오”라는 명령은 은혜를 취소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은혜가 지금 내 안에서 일하고 있다는 고백과 선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일하고 계시기에 그렇게 살아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루신 구원을 누리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기쁨의 제자도를 이어가십시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