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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 신문 - [주일강단] 사사기 강해(7) 성공이 더 위험합니다

[주일강단] 사사기 강해(7) 성공이 더 위험합니다

2026-11-06 제1611호

사사기 강해(7) 
성공이 더 위험합니다 

<사사기> 7:1~8
/ 이재훈 위임목사
 
<사사기> 6장은 두려워 숨어 있는 자를 찾아 세워 주시는 하나님에 관한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다음 장면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기드온이 아버지의 집에 있는 바알 제단을 부수고 난 뒤 일어난 일입니다. 미디안과 동쪽 지역의 지파들, 아말렉 사람들이 요단을 건너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쳤다고 합니다. 성경은 그들의 수가 메뚜기처럼 많았다고 말씀합니다. <사사기> 6장 34절을 보면, “그때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직역하면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을 옷 입히셨다”입니다. 숨어 있던 사람이 하나님의 영을 옷처럼 덧입고 담대하게 나팔을 불었습니다. 그러자 므낫세와 아셀과 스불론과 납달리에서 3만 2천 명의 백성들이 모여들었습니다. 7년 동안 동굴에 숨어 살던 백성들이 담대하게 나선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드온 한 사람을 부르신 것 같지만, 그를 통해 백성들을 부르신 것입니다. 3만 2천명이 함께 나섰을 때 백성들도 뿌듯했을 것입니다. 이 정도 숫자면 미디안과 아말렉과의 전투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백성들이 너무 많다”
 
기드온이 또 하나님의 표적을 구합니다. 첫 번째는 “이 양털만 물에 젖게 되고 그 주변의 땅은 다 마르게 해 주십시오”, 두 번째는 “주변만 다 물에 젖고 양털만 마르게 해 주십시오”라며 하나님의 표적을 구합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이 구하는 표적대로 응답해 주시며 그에게 확신을 주셨습니다. 기드온의 마음속에 의심과 두려움, 불안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구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기도온의 믿음을 강건하게 해 주시기 위해 표적을 여러 번 보여 주셨습니다. 그로 인해서 백성들이 기드온을 중심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롯 샘이라는 곳에 진을 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백성이 너무 많다”라는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여러분, 우리는 무엇이든 많아야 마음이 놓입니다. 사람이 많이 모이면 안심이 되고, 적게 모이면 불안합니다. 통장의 숫자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백성들이 너무 많다”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승리 이후가 더 위험하다
 
첫째, 하나님은 패배보다 승리 이후를 더 위험하게 보셨기 때문입니다. 지금 기드온과 그 백성들이 상대해야 할 숫자는 13만 5천 명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3만 2천 명입니다.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너무 많다고 말씀합니다(2절). 
기드온이 귀를 의심했을지도 모릅니다. “적이 너무 많다”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우리 편이 너무 많다”라는 말은 처음 들어 보았기 때문입니다. 3만 2천 명으로 상대하기에도 벅찬 13만 5천 명이 대적인데, 하나님은 왜 왜 많다고 하셨을까요? 사람들은 미디안의 숫자를 세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 백성들의 마음을 세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위험하게 보신 것은 패배가 아닙니다. 승리였습니다. 승리한 다음 날 이스라엘이 하게 될 말이었습니다.
“내 손이 나를 구원했다.”
하나님은 이 말을 경계하신 것이고, 이 말이 나오지 않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기드온과 그 백성들에게 미디안을 넘겨주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공은 보장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성공 이후에 그들의 위험이었습니다. 그들이 성공 이후에 빠지게 될 위험을 미리 없애기 위해 자만심과 교만을 미리 제거하는 것이었습니다. “내 손이 나를 구원했다”라는 말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백성이 너무 많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미디안에게 넘겨진 이유는 비와 수확을 약속하는 바알을 섬기며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런 백성이 이제 3만 2천 명으로 이기고 나면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우리 힘으로 이겼다”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미디안에게서 건짐을 받아도 우상을 믿고, 자신을 의지하는 마음에서는 건짐을 받지 못합니다. 그 마음에 여전히 우상숭배가 자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미디안의 손에서 건지실 뿐만 아니라, 동시에 자신을 믿는 우상도 건지기를 원하셨습니다.
<신명기> 8장에서 모세는 “내 마음에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라고 말하지 않도록 하라”면서 가나안에 들어갈 백성들에게 여러 차례 경고합니다. 모세는 광야의 굶주림보다 가나안의 배부름을 더 경계하도록 했습니다. 배부름이 가져오는 영적 위험을 하나님이 여러 번 경고하셨는데, 그 경고를 기드온을 중심으로 한 전쟁터에서 또 주고 계십니다.
존 웨슬리(John Wesley)가 18세기 영국 국교회에서 시작한 메소디스트(Methodist) 운동이 오늘날의 감리교 운동으로 이어졌습니다. 메소디스트 운동을 일으키고, 부흥이 영국 전역에 퍼졌을 때 그는 매우 비관적인 말을 했습니다. 참된 신앙의 부흥이 오래 지속하기 어려운 이유를 <메소디즘에 대한 생각(Thoughts Upon Methodism)>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나는 메소디스트라 불리는 사람들이 유럽에서든 미국에서든 언젠가 사라질까 두렵지 않다. 내가 두려운 것은 그들이 경건의 모양만 있고 능력은 없는 죽은 분파로만 남게 되는 것이다. 그들이 처음 출발할 때 지녔던 교리와 정신과 규율을 함께 굳게 붙들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그렇게 될 것이다.”
또 다른 문장입니다.
“나는 두렵다. 재물이 늘어난 곳마다(예외는 지극히 드물다) 신앙의 본질, 곧 그리스도 안에 있던 그 마음이 같은 비율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참된 신앙의 부흥이 어떻게 오래 지속할 수 있는지 사물의 이치상 알지 못하겠다. 신앙은 반드시 부지런함과 검소함을 낳고, 이 둘은 재물을 낳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재물이 늘어나면 교만과 분노와 온갖 모양의 세상 사랑도 함께 늘어난다. 그렇다면 메소디즘, 곧 마음의 신앙이 지금은 푸른 월계수처럼 무성하다 해도 어떻게 이 상태로 지속될 수 있겠는가? 메소디스트들은 어디서나 부지런하고 검소해지고 그 결과 재산이 늘어난다. 그만큼 교만과 분노,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늘어난다. 신앙의 모양은 남아 있어도 그 영은 빠르게 사라져 가고 있다.”
존 웨슬리는 메소디스트가 사라질까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두려워한 것은 성공한 메소디스트였습니다. <사사기> 7장 2절에서 하나님이 보고 계신 것과 같은 것을 존 웨슬리도 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 수를 줄인 이유
 
둘째, 그래서 하나님이 조치하신 일은 바로 사람 수를 줄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무것도, 아무도 자랑할 수 없는 수가 될 때까지 줄이셨습니다. 
“그러니 지금 너는 백성들의 귀에 선포하여라. ‘누구든 두려워 떠는 사람은 돌아서서 길르앗 산으로부터 떠나라.’ 그러자 백성 가운데서 2만 2,000명이 돌아갔고 1만 명만 남게 됐습니다”(3절).
“두려운 사람은 다 떠나라”고 했더니 2만 2천 명이 돌아가고, 1만 명만 남게 되었습니다. 합당한 조치입니다. 여기서 끝났다면 우리가 이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4절에서 “아직도 사람이 너무 많다”고 말씀하시며 물가로 백성들을 데리고 가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물을 마시게 하는데, 혀로 핥아먹는 자와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시는 자로 구분합니다. 그때 손으로 물을 먹은 자가 300명이고, 나머지 9,700명이 무릎을 꿇고 물을 먹었습니다. 하나님은 “손으로 물을 떠서 먹은 300명만 남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결과입니다. 하나님은 300명을 택하셨습니다. 더 적은 수를 택하신 것입니다. 어떤 행동에 의미를 두고 사람을 구분한 것이 아니라, 더 적은 쪽을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택하셨습니다. 어떤 행위를 가지고 정예부대를 뽑은 게 아니라, 스스로 자랑할 수 없는 수치까지 내려가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300 대 13만 5천 명이 된 것입니다. 
종종 이 말씀을 근거로 ‘기드온의 300 용사를 본받자’, ‘깨어 있는 소수가 되자’는 메시지로 이용하는데, 본문이 강조하는 바는 아닙니다. 300명이라는 소수를 칭찬하는 게 아닙니다. 기드온의 300 용사를 프로그램화해서 “우리는 300명으로 이런 일을 해냈다”라고 말하면 잘못 적용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3만 2천 명에서 300명으로 의도적으로 줄이셨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내 힘으로 구원했다”라는 말이 나오지 않게 하려고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숫자를 줄이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물을 핥아먹은 사람 300명으로 내가 너희를 구원하고 미디안 사람들을 네 손에 넘겨주겠다. 다른 모든 백성들은 각각 자기가 사는 곳으로 돌려보내라’”(7절).
하나님이 끝까지 경계하시고자 한 것은 “내 손이 나를 구원했다”라는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충분히 약할 때까지 기다리시고, 충분히 약해졌을 때 승리를 주십니다.
 
믿음을 보충해 주시고, 친히 싸우셨다!
 
셋째, 하나님은 그들의 연약한 믿음을 보충해 주시고 친히 싸우셨습니다. 300명이 손에 든 것은 칼과 창이 아니었습니다. 돌아간 사람들이 두고 간 양식과 나팔, 항아리였습니다. 
“그리하여 기드온은 300명만 남기고 다른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각각 자기의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들은 돌아간 백성들의 식량과 나팔을 손에 들었습니다. 미디안 군대는 기드온이 있는 평원 아래쪽에 있었습니다”(8절).
그들은 돌아간 백성들의 식량과 나팔을 손에 들었습니다. 미디안 군대는 기드온이 있는 평원 아래쪽에 있었습니다. 평원 아래쪽에는 13만 5천 명이 있고, 300명이 그 위에 있는데, 칼과 창이 아닌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었습니다. 어느 쪽이든 무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일어나 내려가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넘겨주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의 마음에 있는 두려움을 보셨습니다(10절). 
하나님은 기드온의 두려움을 아셨습니다. 3만 2천 명이 있었더라면 덜 두려웠을 텐데, 그것을 300명으로 하나님이 줄이셨으니 기드온이 두렵지 않았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확신이 부족해서 하나님의 표적을 구하던 기드온인데, 사람을 300명으로 줄었으니 두려웠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이 표적을 구하기도 전에 그에게 표적을 주십니다.
“적진 가까이 내려가 들어 보아라. 그들이 하는 말을 들어라.”
한 병사가 말합니다.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영으로 굴러와 그 장막을 무너뜨렸다.”
다른 병사가 해석합니다.
“그 꿈은 다름 아닌 이스라엘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이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미디안을 그의 손에 주셨다.”
적들의 입을 통해서 하나님이 확신을 주셨습니다.
그날 밤 전투가 벌어집니다. 300명은 한 손에 나팔을, 한 손에 횃불을 감춘 빈 항아리, 양손에 무기가 아닌 것들을 들고 섰습니다. 그리고 일제히 나팔을 불고 횃불을 들고 외칩니다. 항아리를 깨뜨리며 이렇게 외칩니다.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다!”
그들이 외치면서 속으로 웃었을지도 모릅니다. 칼이 없는데도 항아리를 깨뜨리며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다!”라고 외쳤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결코 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바로 그때, 미디안 군대가 자신의 칼로 서로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칼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기드온의 칼을 외쳤지만, 미디안은 서로 칼을 사용함으로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아무것도 한 일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3만 2천 명을 1만 명으로 줄이시고, 다시 300명으로 줄이심으로써 원하시는 것은 단 한 가지였습니다. 그들이 “내 힘으로 이를 이루었다”라고 말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내 손이 나를 구원했다”라고
말하지 않게 하려고
 
<사사기> 8장에서 백성들이 또다시 사람을 바라보며 세웁니다. 그리고 “당신의 손이 우리를 구원했다”라고 기드온을 높입니다. 기드온이 올바른 대답을 합니다.
백성들은 기도온에게 “당신이 구원해 주셨으니 우리를 다스려 주십시오”라고 말하지만, 기드온은 “아니다. 하나님이 하신 것이므로 오직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릴 것이다”라고 정답을 말합니다(삿 8:22~23). 그런데 기드온에게서 안타까운 모습이 나타납니다. 백성들에게서 약탈한 귀고리를 자신에게 달라고 말합니다.
“기드온이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너희 각자가 약탈한 귀고리를 내게 주라.’ 이는 미디안이 이스마엘 사람들이므로 그들이 금귀고리를 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삿 8:24).
이스마엘 사람들이기 때문에 미디안이 금귀고리를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기드온이 금으로 에봇을 만들어 자신의 성읍인 오브라에 두었고,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우상으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기드온은 그 금으로 에봇을 만들어 그것을 자기의 성읍인 오브라에 두었습니다. 그곳에서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우상으로 섬기게 됐습니다. 결국 그것이 오히려 기드온과 그의 집안에 덫이 됐습니다”(삿 8:27).
여기서부터 기드온의 성공 이후의 문제가 나타납니다. 기드온은 귀고리 금으로 에봇을 만들고, 그것이 어떤 이유이었든 우상이 되었습니다. 잘못한 것입니다. 그것이 기드온과 그의 집에 올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성공을 위험하게 보신 것은 지나친 염려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성공 이후에 백성들이 나아가는 방향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숫자를 줄여서 이기게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백성들의 우상숭배는 제거되지 않았습니다. 3만 2천 명을 300명으로 줄여서 이기게 하심으로 오직 하나님만 높이기를 원하셨는데, 백성들은 또 기드온을 높였고, 기드온은 일면 잘 관리했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우상숭배를 만들어 내는 인간의 연약함을 보였습니다. 하나님이 오직 은혜로 구원하셨는데, 여전히 스스로 구원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인간들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미디안에 대항하는 백성을 300으로 줄이셨지만, 우리를 구원하실 때는 ‘제로(Zero)’로 만드셨습니다.
복음에는 “내 손이 나를 구원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자리가 조금도 없습니다. 우리의 노력, 열심, 착함, 신앙 경력이 구원에 보탠 것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누구도 자랑치 못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을 줄이실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떠나시려는 것이 아니라, 구원이 누구에게서 오는지를 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반대로 많은 것을 가지고, 일이 잘되고, 성공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그 성공을 위험하게 보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성공 이후에 “내 손이 이루었다”라고 말하는 것을 하나님이 주목하고 계십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손을 자랑하는 교회를 통해 일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통해 일하시는 법칙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자신을 자랑하고, 의지하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노하십니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과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만을 기대하십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기를 바랍니다. <시편> 115편 기자가 고백한 대로, “여호와여 우리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우리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오직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십시오”라는 고백만 있기를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작성자 남현영 기자 hyun0@onnu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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