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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 신문 - 주일강단- 성령의 검

주일강단- 성령의 검

2018-10-28 제12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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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검
엡 6:10~20
이재훈 목사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립에 서는 것을 좋아합니다. 세상의 많은 일들이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앙에 있어서 중립은 없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진리는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느냐 사탄의 편에 서느냐 둘 중 하나밖에 없습니다. 선과 악, 옳고 그름, 하나님과 사탄, 진리와 거짓 둘 중 하나의 길밖에 주어져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피할 수 없는 싸움을 해야 하는 그리스도의 전사들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전사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도움이 필요해서 우리를 군사로 부르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미 사탄을 정복하셨고, 그 승리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들이 여전히 거짓에 속고, 계속 사탄의 편에 서기 때문입니다.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계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유의지를 가진 인격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변화된 우리가 진리가 무엇인지 깨닫고, 거짓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아직도 거짓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구원하면서 이 세상을 변화시켜 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해주셨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전신갑주라고 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입니다. 진리의 허리띠, 의의 가슴받이, 평안의 복음의 신,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등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은혜의 선물입니다. 이 모든 것을 우리가 경험하고, 체험하고, 복음 안에 살아갈 때 영적 승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성령의 검이라는 하나님께서 주신 승리의 무기를 살펴볼 차례입니다. 성령의 검은 성령님께서 준비하시고, 성령님께서 사용하시고,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무기입니다. 앞서 살펴본 전신갑주는 대개 방어용 무기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검은 방어와 공격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무기입니다. 전쟁을 할 때 방어만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공격해야 합니다. 가만히 있는 것이 승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적을 무
 
 
찌르고 승리를 누려야 합니다. 
 
 
보혜사 성령님과 성령의 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의 검을 가지라, 성령의 검을 너희가 취하라, 성령의 검을 너희가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계발하라, 성령의 검을 차고 그것으로 승리하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의 검은 단검을 의미합니다. 로마 군사들은 긴 창과 긴 칼만 사용한 것이 아니라 허리춤에 단검을 차고, 가까이 공격해 오는 적들과 싸워 이길 수 있도록 준비했습니다. 어느 나라 어느 군대에도 단검이 지급됩니다. 소위 백병전이라고 하는 적들과 가까이 맞서 싸우는 싸움에서는 반드시 단검이 필요합니다. 영적 전쟁은 백병전과 같습니다. 매일매일 가까이 다가와 공격하는 적들과 싸워 이기기 위해서는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단검이 필요합니다. 
성령의 검은 성령님께서 사용하시는 검입니다. 우리 마음대로 사용하는 검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사용하시고 역사하시는 검입니다. 성령님은 비둘기같이 온유하고 평화로운 분입니다. 기름같이 부드러운 분입니다. 바람처럼 시원하신 분입니다. 아침이슬처럼 조용하신 분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위로와 평화로서 성령님을 상징하는 표현들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표현들이 있습니다. 성령님은 불같이 임하셔서 우리를 태우시는 분입니다. 칼처럼 예리하게 우리를 찌르시는 분이시기도 합니다. 이것은 성령님께서 우리를 책망하시고 심판하시는 심판의 영이기도 하심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떠나시면서 제자들에게 성령님을 설명하실 때 ‘보혜사’라는 단어를 쓰셨습니다. ‘보혜사(保惠師)’라는 단어는 성령님을 표현하는 최고의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헬라어로 ‘파레클레토스’는 ‘곁에 늘 있도록 부르심을 받은 분’이라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위로자 혹은 상담자라고 번역했지만 사실 그 어떤 번역보다 ‘늘 함께 있어서 보호해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분’이라는 보혜사라는 번역이 참 좋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보혜사 성령님을 소개할 때 ‘진리의 영’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보혜사 성령님을 가장 먼저 소개한 단어는 위로나 평화가 아니라 진리입니다. 거짓이 무엇인지를 드러내고, 우리를 참되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라고 소개하면서 요한복음 16장 8절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보혜사가 오시면 죄에 대해, 의에 대해, 심판에 대해 세상을 책망하실 것이다.” 
성령님께서 죄에 대해 책망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죄에 대해 책망하실 뿐만 아니라 불처럼 심판하십니다. 성령님께서 사용하시는 검은 사람의 마음을 찌르되 그 마음에 있는 죄를 책망하시고, 심판하십니다. 성령님은 심판의 영으로 오셨습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을 떠난 세상을 책망하시고, 세상 속에 있는 죄를 심판하시는 영입니다. 따라서 성령의 검은 우리의 대적인 사탄 마귀를 무찌르는 무기 이전에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을 떠난 죄를 책망하시는 무기입니다. 따라서 ‘성령의 검을 가지라’고 할 때 나는 전혀 변화 없이 내 밖에 있는 영들만 내가 공격하는 무기라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성령의 검은 대적하는 적을 공격하기 전에 내 안에 있는 죄를 수술하는 무기입니다. 병든 내 마음 속에 있는 죄를 수술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검이 내 마음을 찌를 때 더러운 피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회복을 위한 수술입니다. 내 마음 속에 있는 죄를 불태우고, 육체는 그대로 두신 채로 우리 마음에 있는 죄를 수술하는 칼로서 성령의 검이 사용되는 것입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성령의 검은 두 날이 있는데 한쪽 날로는 죄에 대한 우리의 애착을 치고, 다른 날로는 자기 의에 빠진 교만을 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적 전쟁에서 ‘성령의 검을 가지라’는 말씀은 성령님께서 나를 수술하신다는 것입니다. 내 안에 있는 죄를 제거하는 영적 수술을 성령님께서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수술대 위에 우리를 올리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검은 하나님의 말씀
 
 
성령의 검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님을 만드셨기 때문에 성령의 검이 됩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에서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베드로후서 1장 21절에서도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은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직역하면 그들은 강한 바람에 의해 운반되듯이 성령님에 의해 운반된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 하나님의 마음에 있는 뜻을 성령님이 우리에게 전달하시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깊은 뜻과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성품을 우리에게 나타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해 이것을 우리에게 깨달아 알게 해 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들까지도 자세히 살피시는 분이십니다”(고전 2:10).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기록으로 남겨주신 까닭은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고,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깊은 뜻을 우리에게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동시에 성령님께서 이 말씀을 주신 것은 우리 안에 있는 깊은 죄들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양날 선 어떤 칼보다도 더 예리해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해 냅니다. 그러므로 어떤 피조물이라도 하나님 앞에 숨을 수 없고 오히려 모든 것은 우리에게서 진술을 받으실 그분의 눈앞에 벌거벗은 채 드러나 있습니다”(히 4:12~13).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의 검이라는 것과 연결되는 말씀입니다. 어떤 칼보다도 예리해서 혼과 영과 골수를 찔러 쪼갤 수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에 대한 말입니다. 악한 영을 대적하기 전에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까지 쪼갠다는 것은 그만큼 깊이 우리의 영혼을 파헤친다는 것입니다. 목표는 우리의 마음의 생각과 그 의도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숨을 수 없고 감출 수 없는 하나님 앞에서 벌거벗은 것처럼 우리를 드러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묵상하면 두 가지가 드러납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깊은 뜻입니다. 동시에 우리 자신의 깊은 상태가 드러납니다. 성경을 잘못 읽는 사람들은 성경을 통해 세상만 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사회가 이렇다, 세상이 저렇다 합니다. 하나님의 깊은 뜻과 자신의 깊은 상태는 보지 못한 채 다른 사람에게만 적용하려고 할 때 성경은 잘못 사용될 위험이 있습니다. 성경의 일차적 목적은 하나님의 깊은 뜻과 자신도 몰랐던 모습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역사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내 안에 숨어 있는, 너무나 오랫동안 죄 가운데 거했기 때문에 인간의 지식, 판단, 의식으로도 깨닫지 못하는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죄의 모습들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또 읽고, 묵상하고 또 묵상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오는지 아십니까? 예레이먀 선지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여호와의 말이다. 내 말이 불과 같지 않느냐? 또 바위를 조각으로 깨뜨리는 망치와 같지 않느냐?”(예 23:29). 
하나님의 말씀이 불처럼 그리고 망치처럼 우리를 깨뜨리고 칼로 찌르시는 것 같이 죄를 책망하시고, 불로 태우시고, 깨뜨리시는 역할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영적 수술을 거쳐야 합니다. 성령의 검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를 수술하는 경험을 한 사람만이 사탄과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안에 있는 죄를 심판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지 않고서는 사탄 마귀를 공격할 수 없습니다. 
 
 
성령님과 살아있는 관계 맺기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은 악한 자를 공격하는 효과적인 무기입니다. 사탄을 우리의 생각, 경험, 세상의 지식으로 공격할 수 없습니다. 비웃습니다. 사탄은 적어도 나보다 오랜 세월 인간을 다뤄왔고, 더 많은 지식과 정보가 있습니다. 사탄은 수많은 사람을 죄에 빠지게 하고, 인간의 약점, 욕망, 심지어 역사의 흐름까지도 바꿉니다. 사탄은 한 시대의 사상을 변화시키는 전략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한 시대를 살기 때문에 아무리 기발한 생각을 해도 그것은 한 시대에 속한 사상에 불과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사탄을 이기겠습니까? 오직 사탄이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하신,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모든 것을 주관하시며, 하나님의 말씀 속에 나타난 진리만이 사탄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가장 좋은 사례가 예수님께서 사탄을 물리치신 예입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공격을 받으실 때 사탄을 이기신 무기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 성령의 검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굶주린 상태에 있을 때 사탄이 시험했습니다. 돌로 떡을 만들라고 했습니다. 이 유혹은 어떤 의미입니까? “네가 메시아인데 이렇게 굶주릴 필요가 있느냐? 이런 고생할 필요가 있는가? 이런 고난은 메시아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능력만 있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고난을 통해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자신을 위해 능력을 발휘하고, 자신의 필요만을 위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사용하게 함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를 떼어놓으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신명기 말씀으로 대응하셨을 뿐만 아니라 공격하셨습니다.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신 8:3).
진정한 생명은 육신의 생명만이 아니라 하나님과 교통하는 영적 생명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첫 번째 공격에 실패한 사탄은 두 번째 공격에 들어갑니다. 예수님을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로 데리고 가서 시편 91편에 보니까 “천사들이 손으로 너를 붙잡아 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도록 할 것이다”라는 말씀이 있던데 그대로 한번 해보라고 합니다. 놀랍게도 사탄도 말씀을 알고 있습니다. 사탄도 성경을 암송합니다. 그러나 왜곡된 인용으로 우리를 혼란케 합니다. 이단들을 보면 성경을 암송하게 합니다. 그러나 올바르지 않은 해석을 합니다. 사탄이 시편 91편을 인용하면서 공격하자 예수님은 신명기 말씀으로 또 다시 대응하시며 공격하셨습니다. “주 네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신 6:16). 
세 번째 시험에 이르러 사탄은 무척 당황한 기색을 보입니다. 교묘하게 포장하지 못하고 적나라하게 본성이 드러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응할 때만 사탄이 당황합니다. 인간의 지식, 경험, 문화 그 어떤 것도 사탄을 당황하게 할 수 없습니다. 사탄이 경험해 본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응할 때만 사탄이 당황합니다. 사탄의 본색이 드러납니다. 세 번째 시험은 높은 산에 올라가서 내게 경배하면 모든 것을 주겠다고 한 것입니다. 사탄의 한계는 예수님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원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악한 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두가 원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탄의 본성이 드러난 것입니다. 이미 예수님은 영광스러운 분이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지신 분입니다. 뭐가 더 필요하겠습니까? 사탄이 주겠다고 하는 것은 모두 예수님의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해서 사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주 네 하나님께 경배하고 오직 그분만을 섬기라”(신 6:13). 
예수님께서 왜 신명기 말씀을 인용하면서 사탄에게 대응하셨습니까? 우리에게 모범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너희의 생각과 경험을 의지하지 말고 사탄의 공격에 대하여는 하나님의 말씀만 의지하고 진리의 말씀만으로 성령의 검만으로 대응해라 그래야 사탄이 떠나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대응할 수 있는 말씀이 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을 매일 공부하고, 읽고, 묵상할 때 어떤 공격이든지 대응하고 공격할 수 있는 성령의 검이 우리 마음의 칼집에 늘 꽂혀 있어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간에 떠오르는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유혹을 당할 때, 어떤 시련 속에 있을 때,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할 때 떠오르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적의 공격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늘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떠오르고 그 말씀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신명기 말씀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대응할 수 있는 말씀으로 무장되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탄아 물러가라”고 쫓아버릴 수 있었지만 이 과정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렇게 대응하라”고 설명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탄을 이기신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도 예수님처럼 성령의 검을 사용해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성령님과 살아있는 관계를 맺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검은 우리 마음대로 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되기 위해서는 늘 성령님과 살아 있는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 성령님과 살아 있는 관계를 맺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연구, 성경공부의 목표가 바로 이것입니다. 통독, 묵상, 암송, 연구이건 간에 모든 종류의 성경공부의 목표는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님과 친밀한 교제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성경연구가 나의 지식을 채우는 것으로, 지적 즐거움을 채우는 것이 되면 교만할 수밖에 없습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마다, 연구할 때마다 “성령님과 더 친밀해졌는가?”라는 각도로 살펴봐야 합니다. 말씀과 성령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과 성령을 분리시킨 모습이 역사 속에 많이 나타났습니다. 말씀이 없는 성령님의 역사를 추구할 때 신비주의에 빠집니다. 내적인 빛, 내적 조명만을 추구하면 신비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 성령님의 역사 없이 기계적, 문자적, 지식적으로 성령을 이해하려고 하면 생명 없는 종교적 생활로 치우칠 때가 많았습니다. 말씀을 연구할 때는 성령님의 임재를 구하고, 성령님 안에서 친밀해지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일이 끊임없이 일어날 때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마음에 새기고, 묵상하고, 암송하고, 적용하면서 날마다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의 칼집에 꽂아야 합니다.  미움의 칼, 분노의 칼을 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검을 늘 예리하게 묵상할 때 승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우리는 영적 전쟁을 준비해야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우리가 옷을 입을 때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는다고 생각하십시오. 진리의 허리띠를 차고, 의의 가슴받이를 붙이고, 신을 신을 때 평안의 복음의 신을 신고,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구원의 투구를 쓰고, 보이지 않지만 마음의 칼집에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을 지니고 세상을 향해 나갈 때 영적 승리를 경험하게 됩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하루 동안에 있었던 영적 전쟁을 돌아봐야 합니다. 그리고 승리의 기록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 오늘도 선한 싸움을 싸웠습니다. 저는 아무런 힘과 능력이 없었지만 하나님이 공급해 주신 신형 무기로 오늘도 승리했습니다. 특별히 오늘 새벽 새롭게 공급해 주신 성령의 검이 아주 효과적이었습니다. 내일은 어떤 말씀을 주실지 기대가 됩니다. 
오늘 신고 나간 군화가 산 넘고 물을 건너다니다 젖었습니다. 방패는 적들의 화살을 막느라 거의 못쓰게 되었습니다. 제가 자는 동안 천국의 무기고를 활짝 열어서 내일 아침 싸우러 나가는데 차질이 없도록 공급해 주십시오.”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은 먼저 내 안에 있는 죄를 찌르시고, 내 안에 있는 죄를 심판하시고 불태우십니다. 그리고 적을 내쫓고 당황케 하고 무너뜨리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의 검으로 마음의 칼집에 꽂혀 있어서 늘 승리하기를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작성자 권찬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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