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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멋진 만남, '청년과 멘토' 진짜 멋진 만남, ‘청년과 멘토’ 멘토는 삶으로 보여주는 스승, 경험을 나눠주는 아버지 멘토, 현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상담 상대, 지도자, 스승, 선생의 의미로 쓰이는 말.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막막한 현실 속에서 하루하루 팍팍하게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 청년들이 꼭 듣고 싶어하는 말이 있다. 인생 선배들의 경험담이다. 그만큼 살아있는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대 청년들은 인생 선배들의 경험담을 들으려고 그들의 강의를 찾아보기도 하고, 서적을 구입해서 읽기도 한다. 그렇게 만난 인생 선배들의 말 한마디라도 놓칠까봐 빼곡하게 메모도 해놓는다. 그런데 여기, 청년들이 딱 한 번만이라도 만나고 싶어 하는 인생 선배들과 정기적으로 그것도 일대일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대학청년부에서 활발하게 실시하고 있는 멘토링 프로그램이다. / 홍하영 기자 hh0@onnuri.org 살아있는 인생 경험을 주고받는 멘토와 청년들 (위 박일환 장로와 김창식 형제, 아래 신현우 집사와 안선명 형제). ‘멘토’라는 단어는 <오디세이(Odyssey)>에 나오는 오디세우스의 절친한 친구의 이름에서 유래됐다.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에 출정하면서 친구 멘토에게 자신의 집안과 아들 텔레마코스를 부탁한다. 멘토는 오디세우스가 전쟁에서 돌아올 때까지 1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친구의 아들 텔레마코스의 친구이자 스승, 상담자, 때로는 아버지가 되어줬다. 전쟁에 나간 친구 오디세우스 대신 텔레마코스 왕자를 지혜롭고 현명한 왕으로 키워냈다. 텔레마코스는 중요한 결정을 할 때마다 현명한 선택을 하기 위해 멘토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때마다 멘토는 그의 곁에서 진심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 이후 지금까지 멘토라는 이름이 ‘지혜와 신뢰로 한 사람의 인생을 이끌어주는 현명한 지도자(충실한 조언자)’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인생의 멘토를 만나고 싶어 한다. 미래에 대한 막막함이 있는 청년들은 더욱 그렇다. 수많은 청년들이 인생 선배들에게서 교훈을 얻고자 한다. 선배들의 인생 경험 그 자체가 그들이 찾아 헤매는 문제의 해답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인생을 먼저 산 선배들의 경험과 진심어린 조언이 청년들에게 정말 큰 도전과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온누리교회 대학청년부에도 청년들에게 도전과 위로, 사랑을 선물하는 사람들이 있다. 멘토들이다. 청년들이 멘토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멘토들과의 대화에서 신앙과 삶에 대한 고민과 문제를 극복하고 있다. 오디세우스의 친구 멘토가 그랬듯이 대청 멘토들도 청년들의 스승이자 부모, 상담사이자 친구가 되어주고 있다. “나도 멘토님처럼 살아야겠다” 안선명 형제(부천드림플러스공동체)는 신앙적으로 혼란스러울 때 멘토 신현우 집사(부천드림플러스공동체 멘토)를 만났다. 안선명 형제는 어릴 적부터 교회에 다녔는데 2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신앙적인 어려움과 마주했다. 이 무렵 성경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기도 했는데 마땅히 물어볼 데가 없었다. 교회를 옮긴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에 신현우 집사를 만났다. 안선명 형제와 신현우 집사는 7개월 동안 식탁교제를 나누면서 대화했다. 신현우 집사는 안선명 형제와 만나는 시간을 전혀 아까워하지 않았다.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살아오면서 실수한 경험을 나누는 것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7개월 동안의 만남이 안선명 형제의 신앙을 성장시켰다. 교회에 정착하지 못하고 헤매던 안선명 형제가 지금은 부천 온누리교회 찬양팀을 섬기고 있다. 그룹홈 사역도 하면서 어린이들에게 예수님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고 있다. 가치관에도 변화가 생겼다. 일터를 ‘능력에 맞게 들어가 돈을 버는 곳’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처소’라고 생각하게 됐다. 신우회를 만들어서 동료들과 말씀을 나누고, 섬기는 신현우 집사를 보면서 일터에 대한 가치관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또한 신현우 집사의 연애이야기를 들으면서 신앙 안에서 아름답게 교제하는 방법을 배웠다. 매일 함께 QT하면서 교제했다는 신현우 집사 부부의 이야기가 안선명 형제가 가지고 있던 연애에 대한 가치관을 바꿔놓았다. 무엇보다 신현우 집사가 삶으로 보여주는 신앙이 도전이 됐다. “멘토님 덕분에 제 신앙과 삶이 많이 변화 됐어요. 멘토님이 제게 해주셨던 조언들을 삶으로 직접 보여주시니까 더 와 닿고 도전이 되더라고요. 항상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시는 멘토님을 보면서 ‘아 나도 저렇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려운 일 마주할 때마다 떠오르는 ‘멘토’ 부모는 자녀가 자신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미리 길을 닦아준다. 먼저 걸어온 그 길에 대한 경험을 아낌없이 들려준다. 멘토도 멘티에게 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한다. 김창식 형제(요셉공동체)는 요셉공동체에서 자신의 인생 경험을 아낌없이 나눠주는 든든한 아버지 같은 멘토를 만났다. 요셉공동체 대표멘토 박일환 장로다. 김창식 형제는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올바른 신앙관과 재물관, 인격을 갖춘 크리스천 CEO가 되는 것이 인생의 목표다. CEO 출신 박일환 장로에게 도움을 받고자 찾아갔다. 박일환 장로는 김창식 형제를 너무나 따뜻하게 맞아줬다. 크리스천으로서 경영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도 알려 줬다. 얼마 전에는 조급한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배웠다. 김창식 형제가 준비하고 있는 일들이 번번이 잘 풀리지 않아서 조급한 마음이 찾아왔다. ‘과연 잘 할 수 있을까?’하는 두려운 마음도 밀려왔다. 박일환 장로는 김창식 형제에게 본인의 실패담을 들려줬다. 그러면서 “기다리다보면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신다”고 조언했다. “조급하다 보면 꼭 봐야할 다른 부분을 놓치게 된다”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박일환 장로의 조언대로 김창식 형제는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차근차근 일을 해나가기로 결심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마주하게 될 수많은 선택 앞에서 어떻게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지도 배웠다. “박일환 장로님이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있어요. ‘인생은 의사결정의 연속’이라는 거예요.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일에 최선을 다 하는 것도,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제 선택으로 인해 결정된다고 하셨어요. 그 말씀을 제 삶에 적용해 보니까 마음가짐부터 달라지더라고요.” 일적인 고민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문제, 신앙적인 고민, 결혼, 인간관계 등에 대해서도 큰 도움을 받고 있다. 어려운 일을 마주할 때마다 자연스럽게 박일환 장로가 떠오를 정도다. 웃음 가득한 멘토들의 고백 “청년들과 소통할 때 가장 행복하다” 청년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멘토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신현우 집사는 “청년들과 삶을 나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행복”이라며 “청년들을 더 섬기고, 그들을 돕기 위해 더 노력하는 멘토가 되고 싶다”고 고백했다. 실제로 신현우 집사는 청년들과 더 가까워지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다. 청년부 공동체 예배에 참석하는 것은 물론이고, 생일을 맞은 청년들을 챙기고 있다. SNS 카카오톡에 생일을 맞은 청년의 이름이 뜨면 잊지 않고 간단한 선물을 전달하고 마음을 표현한다. 순모임 단체 채팅방에서 은혜 받은 말씀을 나누기도 한다. 지난해에는 청년부 리더십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함께 윷놀이를 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청년들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박일환 장로 역시 청년들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청년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공부하고, 순모임에도 참석하고 있다. 박일환 장로는 “청년들과 소통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고백했다. 박일환 장로가 이 시대 청년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토기장이가 진흙을 빚어 좋은 그릇을 만들 듯이 하나님도 여러분을 보시기에 좋은 걸작으로 빚으셨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걸작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인생을 소중하게 살아가십시오.” 박일환 장로와 신현우 집사 외에도 대학청년부에는 수많은 멘토들이 있다. 청년들과 함께 예배드리고, 그들을 위해 중보기도 한다.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일대일 멘토링도 해주고 있다. 인생 선배들의 도움이 필요한 청년이 있다면 주저 없이 다가가기만 하면 된다.
2019-07-14 제1254호
캠퍼스 전도집회‘희망노트’4월 30일 시작 대학 신입생 수련회 ‘Be The Man’도 실시 대학부가 캠퍼스 전도집회 ‘ 희망노트’ 를 개최한다. 4월 30일부터 5월 2일까지 오전 11시와 정오에 45분씩 명지대학교 용인캠퍼스 60주년 채플관에서 열린다. 캠퍼스 전도집회 ‘ 희망노트’ 는 말씀영상, 찬양 및 간증,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강사는 최성민 목사(온누리교회)이며 특별게스트는 가수 이미쉘, 가수 김신의(그룹 Monni), 가수 홍이삭이다. 최성민 목사(온누리교회)는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많은 대학생들이 캠퍼스 전도집회 ‘ 희망노트’ 에 참석해서 교회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직접적으로 경험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캠퍼스 전도집회 ‘ 희망노트’ 는 매년 열리고 있다. 한편 허브공동체와 Pole2공동체는 대학 신입생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수련회 ‘ Be The Man’ 을 개최한다. 허브공동체는 4월 28일 토요일오후 3시 양재 온누리교회 비전홀, Pole2공동체는 5월 12일부터 5월 13일까지 1박2일 동안 경기도 가평에서 실시할 예정이다. 하늘공동체는 지난 4월 7일 홍익대학교 프리스타일 스페이스 이벤트홀에서 수련회를 실시했다. / 권찬송 기자 kcs123@onnuri.org
2018-04-24 제1192호
[멘토가 멘티에게] 하나님이 찾으시는 일꾼 멘토가 멘티에게 하나님이 찾으시는 일꾼 “저는 습관적으로 자꾸만 미루는데 게으름도 죄 인가요? 게으름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있을까요?” 단순히 어떠한 일을 미루는 것 자체로 ‘죄’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미루는 게 습관이 되어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게으름으로 발전한다면 이는 ‘죄’로 간주 된다. 예수님이 달란트 비유에서 “주인이 맡긴 달란트로 장사해서 이문을 남긴 종들은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주인과 함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주인이 맡긴 달란트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종은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 불리며 맡겨진 한 달란트조차 빼앗긴 채 바깥으로 쫓겨나 어두운 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하늘 아래 모든 일에는 목적에 따라 때가 있으니”(전 3:1). “그 날짜와 그 시각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른다.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 정신을 바짝 차리라! 항상 깨어 있으라! 그때가 언제 올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막 13:32~33). 게으름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면 먼저 시간의 주인이시고, 인생의 주권자 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해야 한다. 일을 자꾸 미루는 마음의 뿌리에는 인생의 주인이 나인 것처럼 시간을 자기 마음대로 쓰고 싶은 욕망과 자의식이 숨겨져 있다. 나의 존재와 삶이 하나님의 계획과 뜻 안에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나에게 주어진 모든 일 또한 그 섭리 안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사소하고 작은 일처럼 보일지라도 그 안에는 일에 대한 바른 자세와 태도를 갖추기를 원하시고, 잠재력이 발현되기를 원하시며, 실력이 쌓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훈련 도구로 사용하신다. “하나님은 또한 다윗을 선택해 그분의 종으로 삼으셨고 그를 양 우리에서 끌어내 새끼를 둔 어미 양을 치던 그를 불러 그분의 백성 야곱을, 그분의 소유 이스라엘을 치는 목자가 되게 하셨다. 그리하여 다윗은 참된 마음으로 그들을 먹이고 능숙한 솜씨로 그들을 인도했던 것이다”(시 78:70~72).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질병과 아픔을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처럼 시달리고 방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구나. 그러므로 추수할 주인에게 추수할 들판으로 일꾼을 보내 달라고 요청하라’”(마 9:35~38). 하나님께서는 맡겨진 영역에서 그 사람에게 부여된 ‘오리지널 디자인’으로 하나님을 드러낼 일꾼을 찾고 계신다. 우리의 시선이 하나님이 아닌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상황에 매여서 주어진 일이 아니라 자신의 연약함과 씨름하고 있을 때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구나’라며 애통해하시는 하나님의 시름이 더욱 깊어질 것이다. 하나님께 충성되고, 반복된 훈련을 거쳐 숙달된 솜씨를 지닌 한 사람의 등장을 간절히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이다. 애끓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 받고 싶다면 더는 할 일을 미루지 말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라. 하루의 삶을 내 생각과 감정, 뜻이 아닌 하나님의 계획과 마음, 뜻으로 살아내도록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를 구하는 기도로 준비하라.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베드로전서> 5장 7절, <고린도전서> 10장 13절, <빌립보서> 4장 6~7, 13절 말씀을 붙들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라. 우리가 게으름의 덫에 걸려 넘어지더라도 포기가 없으시고, 다시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나기를 바란다. / 김정은 멘토(허브대학부)
2024-03-16 제1483호
[목사님, 질문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혜 목사님, 질문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혜 “반복되는 실패를 경험하고, 다시 도전하는 게 두렵습니다. 어떻게 하면 담대하게 도전하고, 하나님 안에서 꿈을 이룰 수 있을까요?” 인생을 살다 보면 밝은 미래가 손에 잡힐 듯 기대될 때가 있다. 그때 우리는 그 기대에 힘입어 용기 내어 도전한다. 하지만 그 기대가 실패가 되어 돌아오면 인생이 생각처럼 순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깨달음이 두려움이 되어서 다시 도전하는 것을 주저하게 만든다. 기회가 주어져도 ‘어차피 실패하고 말 텐데’하고 비관적으로 생각하거나 도전하기 전에 일찌감치 포기하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의 삶은 매일 도전과 실패를 반복한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늘 ‘죄의 유혹’이라는 도전을 받는다. 이 도전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가정과 캠퍼스, 직장을 비롯한 삶의 모든 자리에서 도전받게 된다. 하나님 안에서 꿈을 이룬다는 게 무엇일까? 세상에서 세상과 다르게 살아가는 것, 즉 모든 삶에서 거룩을 지키면서 사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그리스도인이 죄의 도전 앞에서 거룩을 지키지 못하는 순종의 실패를 경험한다. 실패가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계속 실패를 낳는다. 그때 우리의 연약함과 한계를 마주하면서 하나님 안에서 꿈을 이루는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거룩을 지키기 위한 그리스도인의 도전과 실패가 계속될 것이다. 그럼 우리는 계속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일까? <전도서> 7장 12~14절은 우리가 미래를 알지 못하기에 단편적인 시각을 갖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한다. 단편적인 시각은 두 가지로 나타나는데 ‘낙관주의’와 ‘비관주의’다. 인생에 기분 좋은 요소만 가득하고, 모든 게 잘 풀릴 거라는 낙관주의는 위험하고 편협한 생각이다. 이것은 실패에 대한 자기반성을 가볍게 여기는 원인이 된다. 실패로 인한 두려움을 잠깐 덮을 수는 있겠지만, 오히려 궁극의 비관으로 향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비관주의도 마찬가지다. 비관주의는 인생을 현실적으로 보고, 한계가 있음을 인정한다. 웃음이나 거짓으로 실패를 피하지 말고, 그대로 직면하라고 한다. 하지만 직면에 대한 결론은 늘 냉담하고 부정적일 뿐이다. 계속된 실패와 비관적인 결론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나를 거세게 짓누른다. 그러다 보면 처절한 실패의 늪에 빠져 다시 일어설 수조차 없게 된다. 인생은 낙관만 해서도 안 되고, 비관만 해서도 안 된다. 그렇다면 낙관과 비관 사이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까? 그렇지 않다. <전도서> 저자는 “지혜가 방패막이가 된다”, “지혜가 그것을 가진 사람에게 생명을 준다”고 말한다. 성경이 말하는 지혜는 바로 ‘하나님을 아는 지혜’다. 반복된 실패 앞에서도 다시 담대하게 도전하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원동력이 있어야 한다. 그 원동력은 하나님 안에서 거룩을 지키면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또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예수를 아는 지혜만이 도전을 멈추지 않게 하고, 하나님 안에서 꿈을 이룰 수 있게 한다. 하나님을 아는 지혜가 우리의 삶을 말씀 그대로 살린다. 예수님은 우리 삶을 의미 없고, 비관적으로 만드는 모든 죄와 싸우셨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모든 죄를 이기셨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다. 반복된 실패로 괴로워하고 있는가? 실패로 인한 상처로 다시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가? 예수님이 순종함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것처럼, 내 삶을 순종함으로 온전히 하나님께 맡겨드려야 한다. 그때 우리는 모든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들을 보게 되는 부활을 경험할 것이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순종과 승리가 실패를 넘어 하나님의 꿈을 이루는 확실한 증거가 된다. 그래서 또다시 담대하게 도전할 수 있다. “그리스도는 약한 가운데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 안에서 약하나 여러분의 일에 대해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분과 함께 살 것입니다”(고후 13:4). / 전진 목사(CHPLUS청년부)
2024-03-02 제1481호
[목사님, 질문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 목사님, 질문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 “우울감과 좌절감에 빠져 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을 누리는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울증 환자가 급증하면서 지난해 백만 명을 넘어섰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낸 통계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우울증으로 진료받은 환자가 4년 만에 32.8% 급증했다. 20대가 19만 4천여 명으로 가장 많았다.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의 자살률이 일반 자살률에 비해 4배 높다는 통계가 있어서 오늘날 주요한 정신건강 문제로 자리매김했다. ‘나는 우울증이 아닌데?’, ‘나랑은 상관없는 이야기인데?’, ‘나는 하나님을 믿으니까 우울증에 걸리지 않아’와 같이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통계에서 보여주고 있고, 주변에서도 우울증을 겪는 사람을 보게 된다. 우울증은 특정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고, 그리스도인들도 충분히 겪을 수 있는 정신적 질환이다. 원인이 다양한 만큼 단순하게 우울증을 믿음이 연약한 것의 결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치료 과정에서도 반드시 전문가의 상담이나 의학적 치료 및 내적 치유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먼저 말하고 싶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울하게 살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사랑하는 아들과 딸이 늘 우울하고, 불안과 걱정으로 살아가기를 원하는 부모는 없다. 불면증과 두통, 무력감과 패배감, 좌절감과 상실감의 노예가 되어 살기를 원하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하나님은 우리가 우울하게 살기보다 기쁘게 살기를 원하신다. 어떻게 하면 우울할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을 누리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첫째, 상실에서 벗어나라. 우울증은 그 원인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다고 한다. 현대인이 앓고 있는 대부분 우울증은 반응성 우울증이다. 대표적인 원인은 대상 상실이다. 인생에서 의미 있던 사람, 의존하는 대상을 상실할 때 우울증이 온다는 것이다. 돈을 의존하다가 상실하거나, 권력을 의존하다가 잃어버리거나, 다른 의존했던 대상을 상실하면 우울증이 온다. 우리가 사랑했던 것을 놓아주지 못함으로 우울증이 더욱 깊어지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이나 어떤 것을 상실하는 일이 결코 가벼운 게 아니다. 우리에게 큰 괴로움을 준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우리와 함께 하시고, 위로자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봐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상실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도 우리를 버리지 않고, 떠나지 않으신다. 심지어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에도 찾아오셨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그분의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롬 5:8).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셔서 우리와 함께하신다. 상실의 순간 하나님이라는 대상과 함께 있을 때 우울과 좌절에 빠졌던 하루를 회복해 나갈 수 있다. 둘째, 자기 비하에서 벗어나라. 우울증의 또 다른 원인 중 하나가 자기 비하다. “내 인생은 다 끝났어”, “아무도 내게 관심 가져 주지 않아”, “나는 누구로부터 사랑받을 수 없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등으로 자신을 비하하면서 우울해한다. 자기 비하 사고가 있으면 늘 우울하게 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네 안에 계시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구원을 베푸실 용사이시다. 그분께서 너 때문에 무척이나 기뻐하실 것이다. 그분의 사랑 안에서 너를 새롭게 해 주시고 너로 인해 노래를 부르시며 기뻐하실 것이다”(습 3:17). 하나님이 ‘우리 때문에 무척이나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비천하게 취급하지 않으신다. 존귀한 자라고 말씀하신다. 사람들은 내가 가지고 있는 조건이나 스펙으로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존재 자체로 기뻐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임을 다시 한번 고백할 때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 최재윤 목사(길청년부)
2024-02-24 제1480호
[멘토가 멘티에게] 나를 단련시키고, 쓰시는 하나님! 멘토가 멘티에게 나를 단련시키고, 쓰시는 하나님! “교회에서 만난 친구 때문에 마음이 어렵습니다. 그 친구를 진심으로 용서하고 품고 싶은데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나는 30대에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그동안 크리스천 상사와 고객, 동료들을 많이 만났다. 하지만 때로는 그들로 인해 마음이 어려워지고, 분노하는 일들이 있었다. 옳지 않은 사고나 신념, 잘못된 업무 관행임을 알면서도 스스럼없이 행동하는 모습, 관계 속에서 본인의 사익과 출세만 지향하고, 목적과 결과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이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라 마음이 더욱 어려웠다. 그런데 내 마음속 괴로움과 갈등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기회가 되었다. 세례 받은 이후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들을 용서하고 오히려 더 큰 은혜를 받은 놀라운 경험을 했다. 나의 회사 생활은 상상했던 것 이상의 척박한 근무 환경이었다. 나는 독실한 크리스천인 사장님의 응원에 힘입어 신제품 개발과 사업화에 성공하면서 중소기업을 중견기업으로 성장시키는 주역으로 활동했다. 그런데 회사가 성장하면서 사장님의 사익이 우선되는 경영철학과 재무, 불합리하고 정직하지 못한 회사 경영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회사 생활에서 보람을 느끼지 못하고 정든 회사를 사직했다. 사직서를 제출한 이후부터 거짓 음해와 모욕, 나를 괴롭히기 위한 법적 소송과 취업 방해 활동까지 수많은 고초를 겪어야 했다. 정신적, 경제적 어려움은 물론이고 한국에서 취업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서 지인의 도움으로 간신히 일본으로 도망치듯 떠나게 되었다. 사장님에 대한 원망과 분노로 잠을 못 이루던 그때 일본에서 신앙의 선배들을 만났다. 목사님과 성도들의 도움으로 나와 아내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다. 목사님과 성도들의 중보기도와 성경 공부를 하면서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나를 핍박했던 그분을 용서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하나님이 나와 항상 동행하신다는 믿음과 자신감이 생기면서 인생이 달라졌다. 어릴 때부터 꿈꾸던 미국회사에도 취업했다. 그곳에서 일과 신앙생활 모두 행복하고 보람 있게 했던 값진 경험을 하면서 나와 가족들이 영적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사장님과의 만남을 통해 젊은 시절 열정적으로 업무를 배우면서 사업을 성공시키는 큰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분과 헤어지는 힘든 과정을 겪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 외국으로 나가게 되었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해서 그분을 용서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분도 지금은 굴지의 대기업을 이루고, 한국 산업의 큰 역할을 하고 계신다. 하나님이 그분도 사랑하시고, 귀하게 쓰고 계신다는 것을 느낀다. 직장이나 교회에서 친구들과 자주 부딪치고, 마음이 어려운 청년들이 많을 것이다. 청년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것은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탐색하고, 인정하라는 것이다. 화가 나거나 상처받았거나 혹은 배신감을 느껴도 괜찮다.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거나 부정하기보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게 치유의 첫걸음이다. 신뢰할 수 있는 신앙의 선배나 동역자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좋다. 자신의 어려움을 털어놓고, 공감과 조언을 얻는 게 큰 위안이 될 것이다. 마음을 어렵게 하는 친구와의 관계에서 건강한 경계를 설정하고, 때로는 그 친구에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와 말씀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경험하고, 힘과 용기를 얻는 것이다. 조용한 시간을 내서 기도하고, 하나님께 마음을 털어놓으며 도움을 구하자.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를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자신을 돌보고 치유하는 시간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 필요하다면 주저하지 말고 신앙의 친구나 선배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하나님은 시련이나 갈등을 통해 나를 단련시키고, 쓰신다. 사랑의 하나님은 그 친구 또한 귀하게 쓰시는 분이다. / 이상호 멘토(여호수아청년부)
2024-02-17 제1479호
[목사님, 질문있습니다!] 먼저 좋은 배우자가 되는 기도! 목사님, 질문있습니다! 먼저 좋은 배우자가 되는 기도! “하나님이 예비하신 배우자가 있나요? 하나님이 예비하신 배우자를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요?” 요즘 청년들이 배우자를 만날 때 연애를 하거나 누군가의 소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고대 근동에서는 배우자를 정할 때 하나님 안에서 순적하게 만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창세기> 24장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의 아내를 맞이할 때 믿음직한 종을 보내서 신부감을 구한다. 부모가 자녀의 배우자를 위해 먼저 기도했다. 종을 보낼 때도 “걱정하지 말고 하나님이 네 앞에 천사를 보내실 것”이라고 권면했다. “… 성 중 사람의 딸들이 물 길으러 나오겠사오니 내가 우물 곁에 서 있다가,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하건대 너는 물동이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낙타에게도 마시게 하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말미암아 주께서 내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창 24:12~14). 리브가는 아브라함의 종에게만 아니라 낙타에게도 물을 줬다.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였고, 믿음의 후계를 이어갈 하나님의 준비된 사람이었다. 아이와 함께 ‘장래 배우자를 기도로 준비하자’고 하다가 이 말씀이 생각났다. 하나님이 ‘좋은 배우자를 만나게 해 주십시오’, ‘좋은 가문의 사돈을 만나게 해 주십시오’가 아니라 ‘먼저 좋은 배우자가 되는 기도를 하라’는 마음을 주셨다. 이 마음을 아이와 나누면서 함께 기도했다. 아이는 ‘내가 먼저 좋은 배우자가 되게 해주세요’, 나는 ‘먼저 좋은 사돈이 될 준비를 하고, 우리 집이 좋은 가문이 되게 해 주십시오’로 기도 내용을 바꿨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배우자를 만났을 때 아이가 먼저 좋은 배우자로 준비되고, 부모인 나도 좋은 사돈이 될 준비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가정을 잘 가꾸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하나님이 만나게 하실 언약의 짝인가? 많은 사람 중에 결국 한 사람, 평생 살아갈 배우자를 선택해야 한다. 도대체 하나님이 예비하신 짝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남편과 교제를 막 시작하던 때의 일이다. 남편이 나에게 자기의 형편과 상황을 솔직하게 나눠주었다. 나와 결혼하고 싶은데 자신은 전역하고 직장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아버님이 사업에 실패하신 이후 돌아가셔서 가산이 기울었으며, 어머니는 중풍으로 어려운 처지임을 이야기했다. 지금 가진 것은 직장에 들어가면서 저축해 둔 돈뿐이고, 그것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서 결혼하고, 방을 얻어야 한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이 사람이구나!’하는 생각이 들고, 내 마음이 편안했다. 진실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연약함을 거침없이 말할 정도로 당당한 사람이라는 것도 느꼈다. 상황은 복잡하고 어려웠지만, 그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만약 누군가 이와 같은 어려움이 문제가 되어 돌아선다면 그 사람이 잘못되었다기보다 더 여유가 있는 누군가를 만나야 하기에 서로 짝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 형성은 좋은 조건의 사람끼리만 만나는 게 아니다. 외부적 조건이 미약해도 그 어려움으로 내적 근력이 형성되고, 다른 좋은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서로의 차이가 있지만 그것을 보완해서 하나님 형상으로 다듬어져 간다면 하나님 나라를 이루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언약의 짝은 상대의 연약한 부분을 보았을 때 그것을 채워주고 싶고, 보듬어 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예를 들어 자매가 ‘나는 어린 시절 부모의 사랑을 못 받고 자랐다’고 고백했을 때 짝이 아닌 사람은 부모의 사랑도 못 받은 사람이라고 치부해 버릴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가 남편으로 그 사랑까지 채워주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면 하나님의 마음으로 연결된 언약의 관계일 것이다. 자기중심의 배우자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에서 좋은 배우자로 설 수 있는 기도가 축복이다. / 강미향 목사(가정사역공동체)
2024-02-03 제1478호
[목사님, 질문있습니다!] 먼저 사랑하라! 목사님, 질문있습니다! 먼저 사랑하라!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주변 사람에게 복이 되는 삶을 살고 싶은데,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나와 굳이 맞지 않는 사람과 잘 지내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 차라리 그 시간에 나와 맞는 사람들에게 집중하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 인간관계에 대해서 누군가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런데 정말로 그럴까? 평생을 같이 살아온 가족과도 안 맞을 때가 많은데, 세상에 나와 꼭 맞는 사람이 존재하기는 할까? 신앙의 관계에서 평생을 하나님 안에서 사랑하기로 작정한 ‘에제르(돕는 배필)’를 만나도 동상이몽의 일상을 벗어나기가 어렵다. 물론 나와 잘 맞는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사람이 정말 나와 잘 맞는 사람일까? 그 사람이 나에게 맞춰주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게 아닐까? 결국 우리는 ‘관계’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부터 다시 정립할 필요가 있다. 나와 찰떡같이 맞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완벽하게 맞는 것 같은 사람도 시간이 흐르면 단점이 보이고, 맞지 않는 점이 보이기 마련이다. 상황과 감정, 미세한 컨디션의 변화에도 천차만별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무한히 넓은 세계에서 내가 허용하고, 통제가 가능한 사람만 만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어울리고, 서로를 세워주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한쪽의 일방적인 노력은 결국 서로를 지치게 하고, 관계적인 어려움으로 몰아갈 뿐이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나와 잘 맞는 사람을 찾아 그들과 함께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관계 맺음의 핵심은 ‘먼저 사랑하라’였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요일 4:19). 예수님은 우리를 먼저 사랑하시기 위해서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으시고, 인간의 형체로 낮아지신 하나님이셨다. 우리와 온전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고, 배려하신 분이다. 예수님의 성육신(incarnation)으로 인해서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름다워질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 사랑은 일방적인 사랑인가? 모든 관계는 서로 노력하고, 반응하는 가운데 온전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요한일서> 3장 18절에서 “자녀들이여,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동과 진실함으로 사랑합시다”라고 권면하고 있다.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들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게 되었다면 그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모든 인간관계의 시작은 나와 잘 맞는 사람을 만나는 것에 있지 않다. 수많은 리스트를 세우고, 그 기준에 통과한 사람을 만났을 때 완성되는 것도 아니다. 진정한 관계는 내가 먼저 잘 맞는 사람이 되어주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가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아간다면 모든 허물어졌던 관계들이 회복될 것이다. 그곳에 하나님이 주시는 샬롬과 하늘의 복이 임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이 실천하신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때는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던 여러분이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화평이시니 자기의 육체로 둘을 하나로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중간에 막힌 담, 곧 원수 된 것을 헐어 내셨고”(엡 2:13~14). / 최대흥 목사(요셉청년부)
2024-01-27 제1477호
[멘토가 멘티에게] 크리스천의 건강한 소비 습관 멘토가 멘티에게 크리스천의 건강한 소비 습관 "크리스천 청년이 가져야 할 건강한 소비 습관이 무엇인가요? 건강한 소비 습관을 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크리스천이 가져야 할 건강한 소비 습관은 ‘재물을 어떻게 하나님 뜻에 부합하게 소비하는가?’다. 이 부분을 점검하기 위해서는 우선 재물과 돈에 대해서 성경이 제시하는 바를 명확하게 점검하고, 성경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돈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이 크다.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재화다. 그 영향력이나 존재감이 정말 크다. 물론 돈 이외에도 명예나 건강 같은 중요한 요소들이 많지만, 돈은 성경이 각별하게 언급할 만큼 막강한 영향력과 힘을 가지고 있다. 불신자뿐만 아니라 크리스천도 자칫 소홀히 다루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돈이 우상으로 전락할 수 있다. 그렇기에 몇 가지 점검을 해 보는 게 필요하다. 첫째, 성경은 하나님과 거의 동급의 경쟁자로서 돈을 언급한다.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한다. 돈을 사랑하는 것은 일만 악의 뿌리라면서 돈에 대한 우상화를 경계하고 있다. 크리스천은 돈을 하나님보다 사랑하거나 집착하고 있지 않은지 각별하게 경계하고 주의해야 한다. 둘째, 소득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도록 명령하셨다. 이를 순종했을 때 명확하게 우리의 창고를 채워 주신다고 했다. 하나님은 왜 십일조를 명하셨을까? 과연 십일조의 명령을 반드시 지켜야 할까? 크리스천뿐만 아니라 불신자에게도 십일조에 관한 질문을 종종 받곤 한다. 단순히 궁금해서 물어보는 일도 있지만, 내심 지키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는 듯하다. 십일조를 지켜야 할지, 말아야 할지 접근보다 우리가 재물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확인하는 게 더 중요하다. 그 방법이 십일조다. 재물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온전한 십일조를 드린다면 돈을 하나님보다 낮게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진정으로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를 알고, 믿을 때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두 가지 돈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태도를 정했을 때 그 여분의 재물은 적절히 사용하면 된다. 다만 성경에서 ‘재물이 있는 곳에 나의 마음이 있다’고 하셨기에 자신의 소비지출 비중을 따져보면 어느 곳에 마음이 있는지 알 수 있다. 만약 소비지출 구성이 특정 영역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다면, 자신의 마음이 그곳에 있는 것이고, 그것이 크리스천의 재물 사용에 합당한 지는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35살 이후 철저하게 십일조를 지키고 나서 나의 소비에 치우침이 없게 되었다. 어떤 영역에 치우치지 않고, 크게 신경 쓰지 않고, 편의대로 소비하고, 자유롭게 사용한다. 필요에 대한 소비 외에 타인의 필요에 아무 대가 없이 부응하는 지출을 일정 부분 가져가려 한다. 식사를 섬기고 싶은 분이나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분과 차를 마신다든지, 조그만 선물을 한다든지, 사회적 약자에게 기부한다. 성경에서 이야기한 고아나 과부는 사회적으로 약자인 사람들이기에 소비의 일정 부분은 항상 나의 필요가 아닌 타인의 필요에 지출하려고 한다. 그 범위는 대략 전체 소득의 30분의 1 정도다. 이 범위 또한 성경의 가르침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건강한 소비 습관을 점검하기 전에 먼저 재물에 대한 기본적인 자신의 태도와 인식을 하나님 말씀 안에서 명확하게 확인해야 한다. 확인하고, 소비 습관을 점검하면 하나님의 섭리와 뜻에 부합하도록 재물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 김성훈 멘토(허브대학부)
2024-01-20 제1476호
[목사님, 질문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 목사님, 질문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 “유명해지고 싶고, 성공하고 싶은데 이런 마음이 욕심일까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공이 무엇인가요?” 참 하나님이시자, 참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은 40일 동안 광야에서 금식하셨다. 인간적 욕망에 대한 처절한 거절로 십자가가 준비되었고, 공생애가 시작됐다. 탐욕의 뿌리를 뽑아내는 금욕의 40일 동안 사탄이 예수님을 찾아왔다. 그리고 세 가지를 시험했다. “돌을 빵으로 만들어라” 예수님의 식욕을 자극했다. “내게 경배하면 세상을 주겠다” 예수님의 물욕을 자극했다.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도 넌 말씀대로 안전하겠구나” 예수님의 명예를 자극했다. 인간은 배불러지고 싶고, 부를 소유하고 싶고, 명예를 얻고 싶어 한다. 누구도 굶주림을 즐거워하지 않고, 가난과 고통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다. 무시당하는 것을 기꺼이 여기는 사람도 없다. 바벨탑을 쌓아 성취하고 싶고, 고지의 시원한 공기를 누리고 싶어 한다. 사탄은 우리의 본능을 명확히 알고 있다. 그래서 본능의 향긋한 냄새로 우리의 정욕을 자극하면서 유혹한다. 순간의 향기를 쫓아 바벨탑을 쌓으면 그 길에는 입을 벌리고 기다리는 사탄이 있다. <베드로전서> 2장 11절에서는 “사랑하는 사람들이여, 나는 외국 사람과 나그네 같은 여러분에게 영혼을 대적해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멀리할 것을 권면합니다”라고 말씀한다. 예수님은 육체의 필요가 절실한 극한의 상황에서 사탄의 시험을 물리치셨다. 말씀으로 승리하셨다. 그 승리가 바로 우리가 추구하고, 소망해야 할 성공이다. 성공의 사전적 의미는 ‘목적하는 바를 이룸’이다. 목적에 따라 성공이 결정된다. 우리의 정욕은 깨진 항아리와 같다. 따라서 목적을 정욕의 성취로 두면 성공은 채울 수 없는 공허가 된다. 잠깐의 성공을 이루는 것처럼 보여도 늘 부족하고, 괴로운 상태에 머물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인생의 목적을 알려주셨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구하는 목적, 그 한 가지 유일한 목표를 바라보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더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요셉은 이 언약의 성취를 증거하는 증인의 삶을 살았다. 요셉은 형제들의 손에 이끌려 노예로 팔려 갔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과 함께함으로 형통했다. 그가 하는 일마다 잘 됐고, 그를 통해 주인의 삶에도 축복이 임했다. 주인은 그에게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맡겼다. 이 형통함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누명을 썼다. 항소할 수 없는 노예의 신분으로 결국 감옥에 갇혔다. 그러나 감옥에서도 요셉은 형통했다. 간수가 요셉에게 모든 일을 맡길 정도로 그를 신뢰했다. 성경은 요셉의 형통함에 대해 단 한 가지 근거만을 말한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므로 형통했다”고 말씀한다. 세상에서 보면 노예가 되고, 감옥에 갇히는 사건은 성공이 아니다. 오히려 실패한 삶이다. 그러나 요셉은 땅의 성공, 눈앞의 성취를 삶의 기준으로 두지 않았다. 하나님과의 동행만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공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동행을 최우선시하는 것이다. 정욕을 멀리하고,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 오직 십자가로 향하셨던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삶, 그래서 그리스도의 담대한 증인이 되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그 삶을 목적으로 두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공을 누리기를 소망한다. / 최종현 목사(하늘대학부)
2024-01-06 제1474호
[멘토가 멘티에게] 선교를 준비하는 세 가지 방법 멘토가 멘티에게 선교를 준비하는 세 가지 방법 “선교갈 때 어떤 마음가짐으로 가야 할까요? 선교지에 가기 전에 부담되고, 걱정되는 마음이 잘못된 것일까요?” 선교란 무엇일까? 평신도가 생각하는 선교의 정의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긴 시간 비행을 마다하지 않고 만나러 가는 것이다. 그러다 그들이 있는 곳으로 거주지를 옮기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건 기쁘지만 휴가를 내야 하고, 항공료도 준비해야 한다. 요즘같이 전염병과 전쟁 등 불확실성이 큰 시기에는 더욱 부담을 느낄 수 있다. 어쩌면 당연한 마음이다. 그래서 더욱 귀하다. 부담을 느끼는데도 사랑하는 그들을 만나러 가는 모습을 하나님이 귀하게 보실 것이기 때문이다. 단기 선교를 떠나려는 청년들에게 세 가지를 권면하고 싶다. 첫째, ‘프론티어’를 사모하라. 프론티어란 최전방을 의미한다. 핍박이 있는 곳, 거리가 멀고 문화적 장벽이 크고, 선교사들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은 곳이다. 찾는 이가 적은 그곳을 사모하고, 도전하기를 바란다. 내가 병원을 개원하기 전에 1년 정도 섬기고자 선교지를 추천받았다. 한 곳은 우즈베키스탄의 치과병원이었고, 다른 한 곳은 시베리아 사하공화국이었다. 우즈베키스탄은 당시 어느 정도 선교사들이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시베리아 사하공화국의 야쿠츠크는 목사님 한 가정 외에 공식적으로 한국인 선교사가 없던 지역이었다. 더 개척 지역이라 생각된 시베리아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7개월 동안 학원을 다니며 러시아어를 공부했다. 2000년 1월, 현지 상인과 함께 그 땅을 밟았다. 현지 사정으로 1년 머무는 것이 미뤄졌지만, 그 이후 헌신자들과 팀을 이뤄 4년 동안 매년 방문했다. 팀원 중 한 부부가 선교사로 현지에 안착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시베리아 혹한의 겨울밤 길을 잃었던 일, 정부 관계자들을 설득하던 긴장된 순간들, 아쉬웠던 시행착오들, 모기떼와의 전쟁이었던 여름 사역, 현지인들이 좋아하는 망아지 생고기를 함께 먹으며 서툰 러시아어로 담소를 나눴던 시간이 내게 감사한 선교적 자산으로 남아있다. 둘째, 선교지 언어를 공부하라. 예를 들어 베트남으로 아웃리치를 간다면, 3~4개월 전쯤 기초문법 인터넷 강의를 듣는 것이다. 어학 플랫폼에서 베트남 선생님과 영상으로 공부한다면 현지의 정확한 발음으로 배울 수 있다. 베트남어 예배팀의 도움을 받아서 전도지의 발음을 녹음해 오는 것도 방법이다. 물론 아웃리치 기도모임과 공연 준비 등 바쁜 일정이 있어서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도전해야 한다. 그들의 언어로 이야기할 때 흔들리는 눈동자를 느껴보기를 바란다. 궁극적 선교는 그들의 언어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셋째, 이제는 행동해야 한다. 한 선교사님께 안부전화를 드렸는데 “생각만 하고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올해는 선교지에 꼭 방문하라”는 단호한 권면이 나의 가슴에 깊이 새겨졌다. 당시 현지에서는 코로나19에 감염되면 귀국이 불허되던 시기였다. 어려운 상황에 잠시 망설였지만, 레바논의 시리아 난민촌을 방문지역으로 정하고 의약품을 들고 가서 사역했다. 머뭇거리지 않고, 행동했을 뿐인데 하나님이 내 인생 마지막 프론티어가 시리아 난민과 레반트 지역을 섬기는 일임을 깨닫게 하셨다. 올해 레바논에 다시 방문했을 때 그 부르심을 확인시켜 주셨다.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프론티어를 사모하고, 선교지 언어를 공부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제는 행동하라. 하나님을 사랑해서 자신의 인생을 드리기로 헌신하는 청년들을 축복한다. / 양윤석 멘토(허브대학부)
2023-12-30 제1473호
[멘토가 멘티에게] 빚의 금.단.증.상 멘토가 멘티에게 빚의 금.단.증.상 “크리스천은 빚을 지면 안 되나요? 어쩔 수 없이 대출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잠언> 22장 7절을 보면 “부자는 가난한 사람을 다스리고, 빚진 자는 채권자의 종이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물질의 빚은 빚진 사람을 심리적으로나 실제 관계에서 노예 상태로 만드는 힘이 있다. 성경에도 빚을 지는 사람(채무자)들과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사람(채권자)들이 등장한다. 빚으로 인한 어려움과 죄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적 말씀을 볼 수 있다. 빚은 타락 이후 인류의 경제 생활과 함께 한다. 그렇다면 크리스천은 빚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금. 우선 빚이 무섭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빚은 당연하게 금리가 있다. 금리의 영향력을 최근 상황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최근 2년 동안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기준금리가 급격히 오르면서 돈줄이 말라 세계 경제가 엄청난 요동을 겪고 있다. 빚이 무서운 이유는 고금리 장기화나 금리의 급격한 변동이 경제 주체인 개인, 기업, 정부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핵심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빚을 진 사람은 늘어난 이자를 감당하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거나 신용카드 대금을 다른 신용카드 대출로 돌려막는 등 빚으로 빚을 갚아야 한다. 지금보다 금리가 조금만 더 오르면 파산할 개인과 기업이 많이 늘어날 거라는 전망이 현실로 다가올 수도 있다. 변동성이 큰 금리는 선량한 채권자 개인과 기업에게 돌이킬 수 없는 파산 상태를 가져올 수 있다. 빚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 빚을 절대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단. 빚은 실체적으로 단순하지 않다. 현대 금융사회는 빚으로 굴러간다고 할 정도로 경제 주체인 정부, 기업, 개인 대부분 빚을 지고 있다. 선진국이나 우수 기업, 부자들도 예외가 아니다. 적정한 부채비율의 기준을 놓고도 어느 정도가 적정한지 전문가들도 의견이 분분하다. 특히 개인의 경우, 살기 위한 집을 사거나 더 나은 교육을 위해 대출을 받는 것을 매우 건전한 일로 여길 수 있다. 하지만 남의 눈을 의식해서 호화롭게 살려고 하거나 빠른 성공을 위해 과도하게 대출을 받거나 빚을 지는 것은 탐욕의 영역으로 매우 비성경적이다. <골로새서> 말씀처럼 탐심은 우상숭배이니 탐욕적 대출은 우상숭배로 연결되는 죄를 짓는 것이다. 요즘 세상의 현상인 ‘영끌’과 ‘빚투’, ‘빚테크’를 경계해야 한다. 증. 돈을 빌려줄 때는 증여를 감당하는 마음과 금액 수준으로 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교회 안팎에서 용돈 수준이 넘는 빌려준 돈을 돌려받기가 쉽지 않다.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 조건은 상대방이 빚을 꼭 갚겠다는 의지를 가진 양심적인 사람이고, 상대방의 경제적 형편이 현격히 나아지는 경우다. 신앙인이라면 교회 안에서 금전 거래를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급전이 필요할 수 있다. 교회 안에서 금전 거래는 긍휼한 마음, 못 돌려받는다는 마음, 감당할 수 있는 정도로 하는 게 바람직하다. 상. 빚은 꼭 상환해야 한다. 모든 것을 면밀하고 신중하게 고려하고도 불가피하게 대출을 받아야 한다면 가장 낮은 금리로 받을 수 있는 금융기관을 알아보고, 금리 변동에 대비해야 한다. 갚을 방법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도 잘 세워야 한다.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일해서 상환 재원을 더 확보해야 한다. 이자도 꼬박꼬박 갚아야 하고, 신용관리도 잘해야 한다. 깔끔한 금전 거래의 모습과 높은 신용도는 크리스천이 사회에 해야 할 이웃사랑의 모습이다. 빚의 본질을 알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선용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발전을 기뻐하시고, 우리가 비전을 꿈꾸며, 행복하게 살기를 기뻐하신다. 우리는 물질에 연약하기에 욕심으로 과도한 빚을 지기 전에 먼저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해야 한다. 대출금이 있다면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일해서 원리금 연체 없이 갚아서 신용도를 고도로 유지해야 한다. 나의 신용이 크리스천의 신용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신용도 키우고, 빛과 소금의 역할로 세상에서 하나님을 높여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 은혜의 보혈에 빚진 자다. 우리는 모든 죄의 빚을 탕감받은 자다. 오직 서로에게 사랑의 빚을 지워 세상을 빛내자. / 박기일 멘토(길청년부)
2023-12-16 제147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