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마리아행전 '엎드림'] 메시지
첫째 날
용서의 엎드림
<마태복음> 6장 12~15절
/ 이재훈 위임목사
용사의 엎드림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죄지은 자가 용서를 구할 때 하는 엎드림입니다. 지극히 당연한 엎드림입니다. 용서를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의 엎드림은 어렵지 않습니다. 둘째, 피해당한 사람이 용서할 때 엎드리는 것입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우리의 본성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엎드림이 요구됩니다. 용서는 우리의 자존심과 이기심을 모두 십자가 앞에 못 박아야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주권 앞에 엎드리지 않고는 누군가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일의 최종 심판자라는 것을 인정하고, 엎드리지 않으면 그 누구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용서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드리는 기도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오늘 본문은 주기도문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주기도문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기도입니다. 주기도문을 깊이 묵상하면 우리가 기도할 때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가 보입니다. 예수님은 주기도문 전반부에서는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뜻,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기도를 했고, 후반부에서는 우리의 필요를 구하는 기도를 하셨습니다. 우리의 필요를 구하는 기도에서 용서를 가르치셨습니다(12~15절).
예수님이 가르치신 용서는 조건적인 용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기 위해서, 하나님의 기쁨에 참여하는 은혜를 누리기 위해서 용서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친밀함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용서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만일 우리에게 피해준 사람을 용서하지 못한다면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누리는 용서의 기쁨을 체험하지 못합니다. 구원을 받는 용서의 차원이 아니라 구원 받은 자로서 살아가는 성화의 기쁨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막는 것은 용서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친밀함으로 가는 길을 스스로 막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 덕분에 용서를 받았습니다. 우리의 행함이나 선택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행함과 공로로 인해서 용서받았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친밀함을 누리는 데 필요한 용서는 우리에게 달려있습니다. 그 용서를 체험하기 위해 엎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만일 끊임없이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하나님과 더욱 친밀해지면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게 됩니다. 우리가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됩니다(마 5:43~45). 하나님을 가장 닮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녀가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닮기를 가장 원하십니다. 그것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이고,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신 목적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용서받은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체험하는 길은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할 때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용서를 위해 우리는 매일 엎드려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주권 앞에 엎드리고, 십자가 앞에 이기심과 자존심을 내려놓고, 용서할 수 있는 영혼이 되기를 원한다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용서하는 영혼에게 무한한 기쁨과 사랑을 부어주십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온전하심을 닮아가는 영혼이 되게 하십니다. 용서의 엎드림을 통해서 하나님과 친밀함을 누리는 마리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날
미스바의 엎드림
<사무엘상> 7장 5~11절
/ 이인호 목사(더사랑의교회)
마리아행전 둘째 날 주제가 ‘간구의 엎드림’입니다. 이 주제를 묵상하면서 미스바에서 있었던 이스라엘의 기도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미스바 기도회는 이스라엘이 민족의 어려움을 두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기도한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미스바 기도회를 통해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고, 백성들을 구원하셨습니다. 미스바 기도회 중심에 사무엘이 있었습니다. 사무엘 한 사람을 통해 기도운동이 일어나고, 하나님 구원의 역사가 이뤄졌습니다. 사무엘에게 아주 특별한 세 가지 모습이 있었습니다. 첫째 선지자, 둘째 제사장, 셋째 다스리는 자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사무엘을 통해 선지자요, 제사장이요, 왕이신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무엘을 통해 우리의 구원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한국 교회가 어떻게 해야 놀라운 회복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는지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한국 교회가 예수님의 선지자 되심을 온전히 회복해야 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블레셋의 압제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사무엘을 등장시키셨습니다. 사무엘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우상숭배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개시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 말씀 곁에서 자란 사람이고(삼상 3:3),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사무엘을 선지자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 말씀이 육신 되어 이 땅에 오신 참 선지자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십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우리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백성으로 세우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면 이스라엘 백성처럼 우상숭배의 죄에 빠지고, 압제와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우리를 말씀으로 돌아가게 하는 일은 참 선지자이신 예수님만 하실 수 있습니다.
둘째, 예수님의 대제사장 되심을 회복해야 합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을 미스바로 모이게 하면서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고 말합니다(삼상 7:5). 하나님이 사무엘을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중보자이자 제사장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제사장 사무엘은 우리의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성경을 보면 모세, 엘리야, 다윗 등 믿음의 지도자들이 민족의 죄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며 회개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회복을 경험시켜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앞에 나아가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면, 대제사장 되신 예수님이 중보기도해 주십니다. 그때 회복이 일어납니다.
셋째, 그리스도 기도의 통치, 즉 다스림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렸습니다(삼상 7:6). 사무엘이 사사로 등극하고, 왕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지도자가 된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을 기도로 다스렸습니다. 여기서 또 한 번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왕이신 예수님은 백성들의 기도를 통해 세상을 통치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과 권세를 믿고, 이 땅에서 기도할 때 하나님의 뜻이 이뤄집니다. 사무엘이 기도로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리는 동안 하나님이 블레셋을 막아주셨습니다(삼상 7:13). 이스라엘이 회복되고, 평화가 임했습니다(삼상 7:14).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전심으로 기도할 때 회복됩니다. 예수님이 평화의 통치로 가정과 교회, 민족을 다스리십니다. 사무엘처럼 나라와 민족,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으십시오. 우리의 선지자요, 제사장이요, 왕이신 예수님을 의지하며 나라와 민족, 교회를 위해 전심으로 엎드려 기도하십시오.
셋째 날
탄식에서 예배로
<시편> 150편 1~6절
/ 이한영 부총장(아신대학교)
우리는 과연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있습니까? 이번 마리아행전 주제 말씀이 <시편> 95편 6절입니다. 이 말씀의 핵심 문장은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입니다. 엎드려 기도하는 것입니다. <시편> 말씀을 통해 기도의 본질과 목적, 결과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기도의 본질입니다. 기도에는 고백, 원망, 불평, 회개, 경배, 찬양, 감사, 회고 등 다양한 내용과 형태가 있습니다. 기도는 독백이 아니라 대화입니다. 하나님과 나누는 숨김없는 진솔한 대화입니다. 또 기도는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입니다. <시편> 말씀을 토대로 기도를 살펴보면, 기도는 부르짖고(시 119:145, 시 61:1, 시 77:1), 묵상하고(시 55:17), 질문하고(시 122:6), 구하는(시 119:76)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부르짖고, 묵상하고, 질문하고, 구할 때 하나님이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우리와 교제하시고 동행하십니다.
둘째, 기도의 목적입니다. 성경은 어원적으로 기도를 ‘엎드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목적은 엎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기도의 더 깊은 의미는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에 전제되어야 할 조건이 엎드림입니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엎드림을 통해 선한 뜻을 깨닫게 하십니다. 기도는 나의 바람과 요구를 관철시키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 땅 가운데 이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내 뜻을 내려놓는 것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기도 외에는 내 뜻을 내려놓을 방법이 없습니다. 기도를 통해 내 생각과 욕심, 자아를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깊은 내면에 있는 교만과 편견, 세계관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기도할 때 하나님이 더욱 새롭고, 온전하고, 선한 것들로 채워주십니다.
셋째, 기도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이 만약 우리가 기도로 구하는 것을 빠짐없이 들어주신다면 행복할까요? 사탄이 인간의 욕구에 타락의 요소들을 은밀히 희석해 놓았습니다. 우리의 욕구가 채워질 때마다 무의식에 조금씩 교만과 오만이 쌓이고, 결국에는 하나님과 멀어지게 합니다. 엎드림의 기도 결과는 우리가 예배자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시편>을 1편부터 150편까지 자세히 살펴보면, 탄식의 기도에서 점점 찬양과 예배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기도가 욕구에 맞춰 있다면 신령과 진정의 자리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왕관과 통치에 맞춰진다면,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는 데 맞춰진다면 예배자의 모습으로 승화되고 거듭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전무후무한 번영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눈으로 바라보면 불신과 배반, 음란과 방탄 등으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하나님과 우상을 같이 섬기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엎드림의 기도를 멈추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고 다시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고, 예배하는 민족으로 거듭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백성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날마다 엎드림의 기도를 올려드리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백성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2024-06-15
제149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