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강단] 브니엘
브니엘
<창세기> 32:27~31
/ 박종길 목사
야곱은 우리가 잘 아는 인물입니다. 어쩌면 우리와 가장 비슷하고, 이해하기 쉬운 인물입니다. 야곱은 형 에서와 끊임없는 갈등을 겪었고, 부인이었던 레아와 라헬도 끊임없는 시기와 경쟁 관계였습니다. 참 힘든 인생을 살았던 믿음의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야곱이 아버지를 속여서 장자의 축복기도를 받고, 형 에서가 자기를 죽이려는 계획을 피해서 어머니의 고향이고 외삼촌 집이었던 라반의 집에서 20년을 보냅니다. 14년은 부인을 얻기 위해서 일합니다. 그 과정에서 외삼촌이자 장인인 라반에게 사기를 당합니다. 그는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얻고 많은 가축도 가졌지만, 더는 장인의 집에 머물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이제 얍복 나루만 건너면 되는데, 형 에서가 400명을 데리고 온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두렵고 괴로워서 고민합니다. 에서와의 20년 만의 재회는 원하는 장면이 아니고, 피할 수 있는 장면도 아닙니다. 그래서 형에게 미리 선물과 가축을 보내지만, 결국 그와 가족들, 남은 가축들 모두 얍복 나루를 건너게 하고, 야곱 홀로 남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변화시키기를 원하셨습니다. 천사를 보내서 야곱을 만지시고, 인생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을 나누고자 합니다.
홀로 있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야곱을 변화시킬까요? 첫째, 홀로 있게 하십니다(창 32:23~24).
정확히 말하면 야곱은 홀로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야곱이 그동안 애써 모았던 재물도 도움이 되지 않고, 사랑하는 가족도 그와 함께할 수 없었습니다. 얍복 나루에서 야곱은 혼자 남게 됩니다. 형 에서와 갈등을 해결해보려고 많은 노력을 했지만, 결국 홀로 남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홀로 남는 시간이 있습니다. 많은 재물, 많은 권세, 많은 경험조차 우리를 도와주지 못한 채 홀로 있을 수밖에 없는 시간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홀로 남게 하심으로 그를 만지시기 시작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홀로 남을 수밖에 없는 시간이 있습니다. 야곱은 얍복 나루에서 혼자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을 홀로 두지 않고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우리가 홀로 있을 수밖에 없을 때 하나님이 야곱을 포기하지 않은 것처럼, 야곱에게 천사를 보낸 것처럼, 천사를 보내십니다.
<창세기>에는 ‘어떤 사람’이라고 되어 있는데, 호세아 선지자는 이 사람이 ‘하나님의 천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주셨습니다. 야곱은 이 천사를 이겼지만, 호세아 선지자는 “그가 울면서 천사에게 은총을 구했다”고 기록합니다(호 12:4). 야곱은 은혜와 은총을 받기 위해 천사에게 매달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엄청난 고통을 겪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야곱의 엉덩이뼈를 쳐 골절시켜서 똑바로 걸을 수도, 똑바로 설 수도 없는 고통을 줬습니다(창 32:25). 야곱이 그동안 원하는 것을 갖고자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욕망과 야망을 꺾는 상징적인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홀로 두는 시간이 있지만, 그분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천사를 보내주시고, 엉덩이뼈를 골절시키듯 우리의 고집과 세속적인 찌꺼기들, 자신의 힘과 방법을 의지하는 옛 자아와 옛 습관, 옛 욕망을 치십니다.
그의 이름을 묻습니다
둘째, 그의 이름을 묻습니다(창 32:26~27).
어떤 사람이 이제 자기를 놓아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야곱은 자신을 축복하기 전까지 놓아줄 수 없다고 합니다. 야곱은 뼈가 골절되는 아픔과 고통, 상처 속에서도 은혜를 구합니다. 야곱은 이제 물러설 데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외에는 더 이상 기회가 없다는 것을 알고 은혜를 구합니다. 하나님이 야곱의 마음을 받아주셔서 그의 이름을 묻습니다. 이름을 몰라서 묻는다기보다 진짜 준비가 되었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야곱은 더 이상 속이지 않습니다. 더 이상 세속적인 방법을 쓰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자기 이름을 댑니다.
야곱이라는 이름은 ‘발뒤꿈치를 잡았다’라는 뜻입니다. 약탈자, 사기꾼, 속이는 자, 남을 등쳐먹는 자, 불명예스럽고 부끄러운 이름입니다. “제 이름은 야곱입니다”라는 고백은 아버지를 속여서 형의 장자권을 훔쳤던 지금까지의 인생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변화되기 원한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얻기 원한다면, 정직해야 합니다. 정직해야만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야곱은 더 이상 하나님 앞에 속이지 않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갑니다. 우리의 이름으로는, 우리의 살아온 삶의 방법과 방식으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이제 이름을 바꿔야 합니다. 세속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이름을 얻어야 합니다(엡 4:22~24).
우리의 이름을 물으시는 하나님 앞에 새 이름으로 정직하게, 있는 모습 그대로 고백하고, 죄악과 교만, 옛 생활을 치시는 하나님 앞으로 나가기를 소망합니다.
브니엘의 소망으로 야곱과 함께하십니다
셋째, 브니엘의 소망으로 야곱과 함께하십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이름을 바꿔 주십니다. 야곱을 새롭게 하십니다. “너는 이제 이스라엘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 32:28).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 승리자다. 이제는 하나님이 너를 다스리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이름을 바꿔 주심으로 더 이상 옛 사람으로 살아가지 않고 새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붙들고 의뢰하는 삶을 살게 합니다.
야곱이라는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꿔 주셨습니다. “이제 너는 다른 사람의 것을 뺏어가는 인생, 다른 사람의 발뒤꿈치를 붙잡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남의 아픔을 치료하고 베푸는 인생을 살라”는 뜻으로 이름을 바꿔 주셨습니다.
야곱은 천사와 씨름했던 장소를 ‘브니엘’이라고 이름 짓습니다. 브니엘의 ‘엘’이 하나님을 말하는데,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야곱이 “죽어야 될 인생이었지만, 죽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는 의미의 이름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서 변화된 삶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홀로 두지 않으시고 그와 씨름을 하며 환도뼈를 치시며 이름을 바꿔 주셨습니다. 그가 새로운 삶을 살게 해 주셨습니다. 브니엘의 소망을 갖게 해 주셨습니다. 새로운 삶, 새로운 인생, 새로운 결심, 새로운 하루를 보내게 하셨습니다.
제가 이 본문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야곱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천사를 보내 환도뼈를 치시며 그의 이름을 바꿔 주시는 장면이 우리에게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바뀌어야 하고, 새로워져야 하고, 환도뼈가 골절되어야 하는 삶 아닙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얼굴, 브니엘을 만나기를 소망합니다. 성경은 브니엘의 아침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야곱이 브니엘을 떠날 때 해가 떴습니다. 그는 엉덩이뼈가 어긋나서 절뚝거렸습니다”(창 32:31).
야곱은 환도뼈가 위골돼 서 있을 수 없었지만, 아마도 어떤 사람, 천사를 붙잡고 늘어졌을 것입니다. 끝까지 놓지 않고. 고통이 너무 커도 하나님을 붙들고 의지하고 의뢰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의 이름을 바꿔 주시며 인생도, 삶도 바꿔 주셨습니다. 야곱이 건강한 두 다리로 복을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보다 아프지만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택하는 장면입니다.
그가 떠날 때 ‘해가 떴다’
31절에서 하나님을 대면했지만 죽지 않은 은혜를 입은 야곱이 떠날 때 ‘해가 떴다’라고 했습니다. 야곱이 홀로 얍복 나루에서 밤새 씨름하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됐는데, 이제 ‘해가 떠올랐다’고 합니다.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절망과 두려움의 밤이 끝나고, 야망과 욕망에 찌들었던 야곱을 붙잡고 있던 저주의 밤이 끝나고 소망의 아침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새롭게 떠오르는 브니엘의 소망, 브니엘의 아침이 있기를 원합니다. “내 이름은 더 이상 야곱이 아니다, 내 이름은 이스라엘”이라면서 새로운 삶,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됐습니다. 비록 몸은 지치고 다리는 절뚝거려야 하지만, 그의 영혼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소망 가운데 나아갔습니다. 더 이상 형에 대한 두려움으로 불안해하지 않고, 떠오르는 햇살처럼, 브니엘의 소망으로 나갔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세속의 힘이 빠지고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지는 브니엘의 아침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어려움의 시간, 좌절과 절망의 시간, 홀로 남을 수밖에 없는 그 시간에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를 홀로 있게 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이름을 물으시는 하나님, 우리를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 이름을 바꿔서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해 주시고 하나님과 함께 새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6-04-17
제158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