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 타고 교회 가자! SNS청년부 온누리교회 첫 메타버스 수련회 <지난 11월 226~28일 SNS청년부가 메타버스 수련회를 개최했다.> SNS청년부가 온누리교회 첫 메타버스 수련회를 개최했다. 지난 11월 26일(금)부터 28일(주일)까지 ‘킹덤 파이오니아’를 주제로 오프라인(예배당)과 온라인(메타버스 가상공간)에서 수련회를 진행했다. 메타버스는 초월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우주, 세계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다. 온라인 속에 존재하는 가상세계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예배당 예배 인원이 제한됨에 따라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이 모여서 수련회를 할 수 있을까 고심하고 기도한 끝에 메타버스 수련회를 개최했다. 그 역사적인 순간에 동행했다. / 정현주 기자 joo@onnuri.org SNS청년부에서 알려 준 메타버스 수련회 링크를 클릭했다. 한때 유행했던 SNS(Social Network Service) ‘싸이월드(Cyworld)’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캐릭터(아바타)를 정하고 닉네임을 만들었다. 아바타는 메타버스 세상의 또 다른 나다. 최대한 현실의 나와 비슷하게 머리, 피부색, 옷, 액세서리 등을 장착했다. 마스크를 안 써서 좋았던 건 안 비밀이다. 드디어 온누리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본관, 선교관, 2천만광장 등 서빙고온누리교회와 너무나 흡사했다. 집회 장소도 있고, 특강을 듣는 곳도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교회에서는 예배 외 다른 모임을 할 수 없는데 여기서는 다르다. 소그룹모임을 할 수 있고, 함께 게임도 할 수 있다. 선교 체험관 구경도 할 수 있다. 가장 좋았던 건 둘째 날 특강 때였다. 무려 4개 특강이 본당, 경찬홀, 한동홀, 비전홀에서 진행됐다. 장소도, 강사도, 주제도 각각인 특강을 모두 들을 순 없다. 시간이 겹쳐서, 장소가 멀어서, 행사장 정원 초과 등의 이유 때문이다. 일반적인 현실 세계라면 말이다. 그러나 메타버스에서는 그 불가능이 가능해진다. 본당에서 경찬홀로, 비전홀에서 2천만광장으로 순식간에 옮겨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강의를 놓쳤다고 아쉬워할 필요가 없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를 클릭하면 다시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잠깐의 경험이었지만 신세계(新世界)를 맛본 느낌이었다. 물론 아쉬움도 있다. SNS청년부 메타버스 수련회에는 한정된 인원(500명)만 메타버스 공간을 체험할 수 있었다. 2박3일 짧은 시간 안에 구현된 가상공간을 모두 돌아보는 것도 무리가 있었다. 접근성도 아쉬웠다. 가능하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용어부터 우리말로 바꿨으면 좋겠다. 메타버스 수련회에 참여한 SNS청년부 지체들의 반응은 어떨까? 이한나 자매(SNS청년부, 31세)는 메타버스 수련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대감보다 걱정이 앞섰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트렌드에 민감하며, SNS 활용에 능숙한 MZ세대도 메타버스 수련회가 생소하고 어렵긴 마찬가지다. “메타버스를 실제로 경험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어떻게 하는지도 생소한데 이걸 준비했습니다. 조작법도 잘 모르고, 지체들이 메타버스 공간을 잘 받아들일 수 있을까, 메타버스 수련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할까 등 설렘보다 걱정이 많았습니다.” 정말 어려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실제로 해봤더니 어려움보다 새로운 경험에 흥분이 됐다. “줌(Zoom)으로만 보던 지체들을 실제로 (가상공간에서) 만났습니다. 교회와 비슷한 공간이라 친숙하고, 아바타(캐릭터)들끼리 돌아다니다가 가까워지면 얼굴을 볼 수 있고, 대화도 나눌 수 있습니다. 실제로 교회에서 만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너무 반갑더라고요. 영상예배만 드리던 사람들도 직접 체험하는 예배를 드릴 수 있어서 좋았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이한나 자매는 앞으로 교회에서 메타버스를 활용할 목회와 사역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쳤다. “처음에는 낯설고 생소해서 어려웠는데 해보니까 어떻게 만들면 좋을지,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지 등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쉬운 점들을 보완하면 정말 좋은 미래형 플랫폼이 될 것 같습니다.” 메타버스와 메타처치 메타버스란 말이 생소한 용어 같지만 이미 우리 생활과 밀접하다. 사회적으로도 메타버스를 많이 활용하고 있다. 가장 많이 활용하는 분야가 교육이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메타버스(Second Life)를 활용해서 수업하고 있고, 한국도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대학 입학식(순천향대)과 축제(건국대) 등을 메타버스 플랫폼을 활용해서 개최했다.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메타버스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라이브 콘서트, 360 VR 박물관, 전시회 등을 메타버스 가상공간을 만들어서 체험할 수 있게 했다. 걸그룹도 메타버스를 적용했다. SM엔터테인먼트가 ‘에스파’라는 걸그룹을 데뷔시켰는데, 4명의 멤버와 그 멤버들을 모티브로 한 아바타가 함께 활동한다. 실제는 4명이지만, 8명이 한 그룹인 셈이다. 게임과 기업에서도 메타버스를 적극적으로로 활용하고 있다. 메타버스가 대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교회는 어떨까. ‘2021 국민미션포럼’에서 이재훈 담임목사가 ‘메타버스 시대의 메타처치 목회’를 주제로 발표한 내용이 의미심장하다. 이재훈 담임목사는 “한국 교회에서는 온라인(영상)으로 예배드리는 것이 타당한지를 논의하고 있는데, 세상은 이미 인터넷(영상)을 뛰어넘어 가상현실을 삶으로 끌어 들여오는 변화 속에 있다”며 “새로운 시대 변화에 대처하는 교회(메타처치)만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별히 다음세대 목회에 메타버스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터넷 가상세계, 메타버스가 일상이 되는 시대의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면 메타버스는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다.” 메타버스, 더 이상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바로 메타버스에 올라타야 한다. 목회칼럼 메타버스와 선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비대면 시대가 가속화된 느낌이다. 비대면 사회에서 만남을 제공할 수 있는 여러 기술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개발되고 있다. 팬데믹이 아니었다면 이 정도로 기술들이 급속하게 개발될 수 있었을까 할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프로그램과 플랫폼이 등장하고 있다. 요즘 각광받고 있는 새로운 개념의 공간이 메타버스(Metaverse)다. 교회는 메타버스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일반 사회에서 메타버스는 엄청난 자본이 오가는 마케팅 시장이다. 마케팅 시장에 교회가 경쟁하듯이 뛰어들 필요는 없다고 본다. 메타버스는 현실 세계를 가져다 놓은 일종의 거울 세계이기 때문에 현실에 충실하지 못하다면 가상세계에서도 볼 것 없기는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현실의 만남, 현장의 예배이며, 그것을 제대로 경험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온라인으로 최대한 현장의 경험을 살릴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다. 그것이 메타버스 기술이다. 교회가 메타버스 공간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기에 앞서 현실 세계에서 ‘열려 있는 교회’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온라인 영상예배를 드릴 수 있음에도 대부분의 성도들이 예배당 예배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면 교회가 무엇에 더 집중해야 하는지 명확하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메타버스라는 공간은 굉장히 유용한 툴(tool; 도구)이라는 것이다. 세계화로 인해 전 세계가 일일생활권에 들었다고 하는데 아직도 직접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것은 재정적으로나 시간적으로 한계가 많다. 그런데 메타버스 공간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분 단위 혹은 초 단위로 장소와 장소를 넘나들며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복음을 전할 수 있다. 종교의 자유가 없는 국가들은 많지만, 메타버스에서 종교의 자유를 제한하는 국가는 없다. 또한 선교지에서 사용할 수 없는 다양한 미디어 기술들을 사용해서 더 쉽고 재미있게 복음을 이야기할 수 있고, AI를 사용한다면 언어의 장벽도 큰 문제 없이 해결할 수 있다. K팝, K드라마, K문화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지금, 종교를 떠나 전 세계 젊은이들이 대한민국에 오고 싶어 줄을 서 있다. 선교적 측면에서 본다면 지금은 추수할 시기다. 추수의 시기에 메타버스라는 공간으로 그들을 데려와 복음을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 어느 때보다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SNS청년부에서 진행한 메타버스 수련회는 미래 선교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준비 단계였다. 이번 수련회를 통해서 아직 대한민국의 젊은 세대에게도 낯설게 느껴지는 메타버스 공간을 친근한 공간으로 만들었다. 이번 수련회에 참여했던 청년들은 메타버스 선교사 훈련 과정을 받은 것이다. 한국 교회를 그리워하는 선교사들을 온누리교회 메타버스로 초청해서 위로하고, 선교사들에게 메타버스 공간을 선교 친화적인 공간으로 소개하고 싶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을 메타버스 선교사로 세운다면 선교지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있게 된다.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죽어가는 수많은 젊은이들을 메타버스 공간에 초청해서 복음을 이야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그런데 코로나19로 갈 수 없는 시기가 되었다. 땅끝까지 갈 수 없다면 땅끝을 끌어오면 되지 않을까? 포기하지 않으면 선교의 기회는 항상 우리 앞에 있음을 기억하고, 주님 오실 그날까지 선교의 열정을 불태우는 온누리교회 성도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 최성민 목사(SNS청년부, 미디어사역본부장)
2021-12-05 제1371호
음악으로 마음 위로하는 하나님의 사람들 1 도전하는 청년 응원 프로젝트 인디밴드 ‘러브 레시피’ 이소리 김임춘 부부 경기불황, 좁은 취업문, 설상가상 코로나19 팬데믹까지…. 가뜩이나 우울한 청년들의 앞날에 먹구름이 가시지 않고 있다. 이 어려운 와중에도 하나님이 주신 비전과 목표를 가지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청년들이 있다. ‘도전하는 청년 응원 프로젝트’는 하나님의 비전과 목표, 젊음과 패기로 끝까지 도전하는 크리스천 청년들을 응원하는 코너이다. 그 두 번째 주인공은 인디밴드 ‘러브 레시피(Love Recipe)’ 이소리, 김임춘 부부(SNS청년부)다. 음악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다. / 정현주 기자 joo@onnuri.org 달달함이 느껴졌다. 풋풋함도 보였다. 순수함이 전해졌다. 꾸밈없는 노래처럼 꾸밈없는 모습이 인상적인 인디밴드 ‘러브 레시피’ 이소리, 김임춘 부부의 첫인상이다. 인디밴드는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위해 독립적으로 음악 활동을 하는 그룹을 말한다. 곡 작업부터 녹음, 뮤직비디오 촬영, 앨범 재킷 디자인까지 직접 한다. 이소리, 김임춘 부부가 인디밴드 활동을 하는 이유가 있다. “기획사를 만나면 편해서 좋긴 합니다. 같이 일하자는 기획사도 있었고요. 그런데 고사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정체성이 변질될 것 같았거든요. 자극적인 가사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끝까지 선한 음악을 하고 싶은 게 저희의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야기를 들었더니 ‘러브 레시피’라는 이름이 새롭게 다가왔다. 하나님께서 세상 사람들에게 속삭여주고 싶어 하시는 달달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선한 음악, 거짓 없는 노래 빛과 소금이 되는 인디밴드 이소리, 김임춘 부부(SNS청년부)가 인디밴드를 결성하게 된 사연이 재밌다. 이소리 자매가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면서 틈틈이 노래를 만들었는데 그 노래를 남편이 듣고 혼자 듣기 너무 아깝다면서 인디밴드를 결성했다. “제 습작(習作)을 누구한테 보여주기 부끄러워서 감추고 있다가 남편에게 딱 한 번 들려줬어요. 그런데 남편이 너무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때부터 자신감이 생겼고 인디밴드 활동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때가 2017년이었다. 그런데 첫 앨범을 발매하기까지 3년이나 걸렸다. “음악 작업을 열심히 하면서 음반이 발매되기를 고대했습니다. 그런데 3년 동안 문이 안 열리더라고요. 좌절도 하고 실망도 했는데 하나님께서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재정 상황도 그렇고, 기술적으로도 미숙한 부분이 있어서 앨범을 못 내고 있었다. 그래서 앨범을 발매하기까지 3년이나 걸렸다. 이소리, 김영춘 부부의 이름으로 앨범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 덕분이었다. “뮤직비디오 촬영, 스튜디오 녹음, 마음 맞는 연주자들을 만나는 게 정말 쉽지 않은데 하나님께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도와주셨습니다. 그 덕분에 앨범도 만들고, 뮤직비디오도 찍을 수 있었습니다.” 인디밴드 러브 레시피는 지금까지 3개의 싱글 앨범을 발매했다. 대표곡은 ‘듣고 싶은 말’, ‘나의 벗’, ‘사랑하는 너에게 실망한다는 건’이다. 노래 제목과 가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보다 복음적인 노래가 없다. ‘듣고 싶은 말’은 실의에 빠진 사람에게 힘을 주고, 그들이 가장 듣고 싶은 말 “넌 잘하고 있어”를 건네면서 위로와 용기를 선물하는 노래이다. ‘나의 벗’은 각박한 세상에서 진정한 벗의 의미를 되새기고, 주변에 있는 벗을 살펴보라고 권면하는 노래이다. ‘사랑하는 너에게 실망한다는 건’은 ‘가족, 친구 등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분명히 사랑하는데 왜 그들에게 실망하게 될까’라는 의문에서 깨달은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했다. “‘듣고 싶은 말’이라는 노래는 힘들어하는 남동생을 생각하면서 만들었습니다. 남동생이 일하다가 한쪽 눈을 다쳤거든요. 다들 그 상태로 어떻게 사냐면서 안 좋은 소리를 하고, 남동생도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면서 실의에 빠졌었습니다. 너무 힘들어하는 동생에게 ‘충분히 괜찮고, 하나님은 우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신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었습니다. 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했습니다. ‘사랑하는 너에게 실망한다는 건’이라는 노래는 사람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실망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신다는 것을 말해주는 노래입니다.” 러브 레시피의 진심이 통했다. 이소리 자매의 남동생이 그 힘든 시기를 누나가 만든 노래를 듣고 큰 위로를 받았다. 하나님을 다시 만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러브 레시피의 음악을 듣고 위로받고 있다고 고백한다. “저희가 만든 노래를 듣고 큰 힘이 된다, 위로 받았다고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때마다 노래 만들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가 만든 음악을 듣고 단 한 사람이라도 위로를 받고, 힘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저희는 진심이 담긴 말 한마디의 힘을 믿습니다. 그래서 지친 하루의 끝에서 누군가에게 위로와 공감, 쉼이 될 수 있는 음악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구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대변하는 선한 음악, 거짓 없는 노래, 빛과 소금이 되는 인디밴드가 되고 싶습니다.” 러브레시피 유튜브 채널: ‘러브 레시피 룸(Love Recipe Room)’
2021-06-26 제1350호
음악으로 마음 위로하는 하나님의 사람들 2 도전하는 청년 응원 프로젝트 칼림바 전도사 '장진영 자매' 경기불황, 좁은 취업문, 설상가상 코로나19 팬데믹까지…. 가뜩이나 우울한 청년들의 앞날에 먹구름이 가시지 않고 있다. 이 어려운 와중에도 하나님이 주신 비전과 목표를 가지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청년들이 있다. ‘도전하는 청년 응원 프로젝트’는 하나님의 비전과 목표, 젊음과 패기로 끝까지 도전하는 크리스천 청년들을 응원하는 코너이다. 그 세번째 주인공은 국내 1호 칼림바 연주자 장진영 자매(W청년부)다. 음악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 정현주 기자 joo@onnuri.org 국내 1호 ‘칼림바’ 전도사 장진영 자매 하프 소리 같기도 하고, 오르골에서 흘러나오는 영롱한 음악 같기도 하다. 모습도 신비롭다. 손바닥 두 개 합친 것 같은 나무판에 17개의 금속 막대기(건반)가 대칭 구조로 달려있다. 힐링 악기, 집콕 악기, 반려 악기, 엄지 피아노, 손가락 하프, 악마의 악기 등 부르는 이름도 다양하다. 이 악기는 양손 엄지손가락으로 건반을 퉁기듯 연주하는 ‘칼림바(Kalimba)’다. 장진영 자매(W청년부)는 첼로 연주자다. 그런 그녀가 이 생소한 악기 칼림바를 알리는데 온 힘을 쏟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로 칼림바 협회(한국칼림바음악교육협회)를 만들기도 했다. 칼림바 지도사 민간자격증 국내 1호 발급기관이다. 칼림바 전용 교재(엄지피아노 칼림바 기초곡집, 엄지피아노 칼림바 연주곡집)를 처음으로 출판하기도 했다. 사단법인 ‘칼림바코리아’도 만들었다. 명실상부 우리나라 칼림바 1호 전도사인 셈이다. 장진영 자매는 칼림바라는 악기를 접하자마자 매료됐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여러 악기를 가르치고 있는데 더 쉽고 재미있는 새로운 악기를 찾다가 우연히 칼림바 연주 영상을 보게 됐습니다. 온몸에서 전율이 느껴지더라고요.” 그 악기 이름이 무엇인지, 어디에서 배울 수 있는지 찾아봤다. 그런데 정보를 찾을 수가 없었다. “국내에서 칼림바를 배울 수 있는 곳이 없고, 책(교재)도 없고, 자격증도 없더라고요. ‘이 좋은 악기가 왜 알려지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자료가 없더라고요. 민간자격증이 있어야 강사를 양성하고,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데 난감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직접 협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국내 1호 칼림바협회 ‘한국칼림바음악교육협회’가 탄생했다. 장진영 자매는 그 다음 일도 속전속결로 해나갔다. 사실 그 모든 과정이 ‘맨땅에 헤딩’하는 것 같았다. “칼림바 강사를 양성하려면 커리큘럼과 교재가 있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하지만 사보 프로그램을 독학하며 직접 칼림바 기초곡집과 연주곡집을 만들었습니다. 체계적인 교육과정(커리큘럼, 자격증)도 만들었고요. 이 모든 과정정이 짧은 시간 안에 가능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모든 상황을 열어주시고 이끌어주셨기에 가능했다고 확신합니다. ” 물론 어려움도 있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활동할 일만 남았는데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졌다. 여기서 반전이 있다. 코로나19 시국이 오히려 칼림바의 장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칼림바는 입으로 부는 악기가 아니라서 코로나 시대에 안전하게 연주할 수 있는 악기에요. 또 기본 연주법 자체가 워낙 쉽고, 좌우대칭이라 온라인 화상수업을 하기에 최적화된 악기입니다.” 장진영 자매가 수줍지만 강단있게 포부를 밝혔다. “칼림바는 아프리카 토착민들이 종교의식에서 조상과의 영적 교류를 위해 사용한 악기라서 ‘악마의 악기’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저는 칼림바가 더 이상 악마의 악기가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는 악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칼림바의 울림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한 매개체가 되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악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꿈이 곧 실현된다. 장진영 자매가 7월 <엄지피아노 칼림바 찬송가 연주곡집>(세광음악출판사)을 출판한다. 그녀는 지금 칼림바로 찬양을 가르치고, 칼림바로 찬양을 연주하는 꿈에 한껏 부풀어있다. 문의: 사)칼림바코리아/한국칼림바음악교육협회 010-8915-5728
2021-06-26 제1350호
한글도 가르치고, 복음도 전하고 사역, 놀면 머하니? 온라인으로 문을 연 일본어예배부 ‘한국어교실’ 사회적 거리두기, 5인 이상 모임 금지(집합금지), 이동 자제, 종교활동 제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멈춘 것 같다. 하지만 결코 멈출 수 없는 게 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다. ‘사역, 놀면 머하니?’는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쉬지 않고 하늘나라 복음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역팀을 소개하는 코너이다. 그 주인공은 일본어예배부 ‘한국어교실’이다. 일본어예배부 한국어교실은 동부 이촌동에 사는 일본인 주재원 아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면서 복음을 전하는 사역이다. 코로나19로 인해 1년 동안 열리지 못했던 한국어교실이 1년 만에 온라인(Zoom)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초급, 중급, 상급반에서 총 12명의 일본인 주재원 아내들이 한글도 배우고, 복음도 듣고 있다. / 정현주 기자 joo@onnuri.org <일본어예배부 한국어교실을 섬기는 김혜영 집사, 이혜연 집사, 이경순 성도(왼쪽부터)> ‘리틀 도쿄’. 동부 이촌동의 별칭이다. 지난 4월 발표한 출입국 외국인정책 통계월보에 따르면 주한일본인이 27,280명인데 그중에서 동부 이촌동에만 1천여 명 거주한다. 온누리교회 일본어예배부가 동부 이촌동에 사는 일본인 전도를 위한 기도모임에서 태동했을 정도다. 일본어예배부 한국어교실은 남편을 따라 한국에 오게 된 주재원 아내들을 전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치면서 교회와 복음도 전하는 한글강좌가 한국어교실 전신이다. 반응이 가히 폭발적이었다. 일본인 주재원 아내들 태반이 어린 자녀가 있는 젊은 엄마들이기 때문에 반응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일본인 주재원 아내들에게 한글과 한국 문화를 알려주고, 아이도 봐주는 한글강좌보다 좋은 프로그램이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일본어예배부 한국어교실은 따로 광고할 필요가 없었다. 신청자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기자까지 속출할 정도였다. 그 생동감 있는 한국어교실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1년 동안이나 문을 열지 못했다. 계속 안타깝고 속상한 마음만 간직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아무리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해도 복음을 전하는 일을 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어예배부는 1년 만에 온라인으로 한국어교실을 열기로 했다. 한국어교실 강사로 섬기는 이경순 성도, 이혜연 집사, 김혜영 집사의 다시 섬기는 기쁨이 두 배, 일본인 참가자들의 호응도 두 배 커졌다. 함께 밥 먹고, 한국 TV도 보고 이경순 성도의 굿 아이디어 이경순 성도(일본어예배부)는 한국어교실 상급반을 섬기고 있다. 현재 학생이 3명이다. 이경순 성도는 한국어교실을 온라인으로 개강하면서 어떻게 하면 실제적이고 재미있는 교육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을 참 많이 했다.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는 곳이 정말 많습니다. 온누리교회 일본어예배부 한국어교실만의 차별성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몸으로, 실전으로 배우는 한국어를 가르치려고 노력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일본인 참가자들의 관심사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본인 엄마들이 한국에 와서 가장 관심이 많은 분야가 ‘한국 음식’과 ‘자녀교육’입니다.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재미있는 교육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기도했습니다.” 고민과 기도 끝에 생각해낸 방법은 일본인 참가자들을 집으로 초대하는 것이었다. “한국어교실 상급반에 저를 포함해서 네 명이 소속되어 있습니다. 5인 이하는 모일 수 있기 때문에 일본인 참가자들을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함께 한국 음식을 먹고 한글을 가르쳤습니다. 지난주에는 된장찌개, 제육볶음, 김치 등을 만들어서 먹었습니다. 함께 밥 먹는 것보다 의사소통이 잘 되는 방법이 없거든요. 일본인들이 의외로 한국 사람 만날 기회가 없습니다. 한국인의 집에 초대받아 갈 일은 더더욱 없고요. 그래서인지 집에 초대해서 함께 식사하고, 한국어 공부를 하니까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이경순 성도는 일본인 참가자들과 한국 음식을 배부르게 나눠 먹고 한국 TV를 시청한다. 주로 보는 프로그램은 오은영 박사(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육아법을 코칭해주는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새끼’이다. “그 프로그램이 자막이 잘 되어 있어서 일본인 엄마들이 보기에도 정말 편합니다. 한번은 그 프로그램에서 ‘으쓱으쓱’이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일본어에는 쌍시옷 발음이 없어서 이해하기 굉장히 어려워하는데 제가 어깨를 위아래로 으쓱으쓱하면서 ‘남편을 칭찬해보라. 그러면 남편들의 어깨가 으쓱으쓱할 것’이라고 했더니 다들 한 번에 알아듣더라고요. 전문가가 알려주는 자녀교육법도 배울 수 있고, 한국어 표현도 배울 수 있어서 그 프로그램 보는 것 자체가 일거양득입니다.” 이경순 성도는 한국어교실 참가자들과 일본어예배부에서 만나는 모든 영혼이 너무 귀하다고 고백했다. “한국어교실과 일본어예배부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특히 일본어예배부 봉사자들께 감사합니다. 온갖 신을 믿는 일본에서 온 사람들에게 유일신인 하나님을 전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인을 전도하는 일은 혼자 해서는 안 되고, 공동체가 함께 해야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합력해서 선을 이루는 일본어예배부 지체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그래도 섬겼더니… 이혜연, 김혜영 집사의 헌신 이혜연 집사는 한국어교실 중급반을 섬기고 있다. 2010년부터 한국어교실을 섬겼다.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다. 당시 이혜연 집사는 10년 넘게 일하던 회사를 그만두고 일본어예배부 한국어교실 봉사자가 되었다. “당시 일본인 직원들 사이에서 한국어 공부 붐이 일었습니다. 그때 외국인들에게 제대로 한국어를 가르쳐주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때마침 온누리신문에서 한국어교실 베이비시터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지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기뻤습니다.” 이혜연 집사는 일본어예배부 한국어교실 베이비시터로 1년 동안 봉사했다. 동시에 서울대학교 언어교육원에서 한국어교사 양성과정도 수강했다. 그리고 한국어교실 교사로 섬겼다. 이혜연 집사는 자신이 만난 하나님을 일본인 엄마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그런데 고비가 찾아왔다. “정말 열심히 한글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려고 노력했는데 눈에 보이는 열매가 없었습니다. 지치기도 하고 고비가 찾아왔습니다. 그때 새벽예배에서 들은 설교가 저를 다시 일으켰습니다. ‘보배인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자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불쌍한 자’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일본인 엄마들이 한국에서 아무리 편안하고 풍족하게 지내도 그녀들에게는 예수님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다시 힘이 샘솟더라고요.” 잘 보이지 않던 열매도 맺혔다. 그것도 정말 탐스럽고 아름답고 감동적인 열매다. “소위 말하는 독박육아를 하던 쌍둥이 엄마가 있었습니다. 그분이 얼마나 힘들었던지 저에게 고충을 토로하더라고요. 그분을 진심으로 안아주고 섬겼더니 복음을 듣더라고요. 그분이 일본으로 돌아가 쌍둥이를 데리고 동네 교회에 나갔습니다. 또 한 분은 재작년 일본으로 출국한 엄마입니다. 세례를 받을 예정이었는데 남편이 ‘세례받으면 이혼한다’고 해서 세례도 못 받고 출국했습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나서 일대일제자양육을 받고 싶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김혜영 집사는 초급반을 섬기고 있다. 온라인 한국어교실 수업을 하면서 컴퓨터를 사용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섬기고 있다. “제가 컴퓨터 사용이 익숙하지 않아서 온라인 수업이 힘들기는 합니다. 그래도 결코 포기할 수 없습니다. 일본인들이 교회 오기가 정말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일본어예배부 한국어교실에 참가하면서 교회를 접하고, 일본어예배부를 알게 됩니다. 더 나아가 복음을 듣게 됩니다. 이 귀한 과정의 시작이 일본어예배부 한국어교실입니다. 한국어교실이 일본인들을 더 많이 전도하고 섬길 수 있도록 관심 가져 주시고 기도해주십시오.” 문의: 02-3215-3702
2021-06-19 제1349호
주일 강단 -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기까지 주일강단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기까지 갈라디아서 4:12~20 / 이재훈 목사 기독교를 여러 종교 중에 하나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기독교는 예수님을 본받으려는 종교”라고 이해합니다. 완전한 오해입니다. 하나님은 죄악 가운데 있는 인간들에게 그리스도를 본받으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그런 말씀이 없습니다. 대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죽음과 함께 우리의 옛 사람을 못 박으라고 말씀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죽음을 나의 죽음으로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그분과 연합되어 옛사람을 죽음에 넘기는 것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죄인인 인간이 그리스도를 본받을 수 없습니다. 불가능합니다. 우리 옛사람은 죽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예수님의 죽음과 함께 죽게 될 때 죽음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안에 임해서 새 생명이 태어나고, 그 생명이 자라고, 그 생명이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절정은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는 것은 예수님을 흉내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의 생명이 우리 안에 성령으로 임해서 재생산되는 것입니다. 모방이 아니라 재생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임해서 태어난 새 생명이 자라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믿음 생활의 본질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성도들을 책망한 이유는 그들이 거짓 교훈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는 교훈이 아니라 모세의 형상, 율법이 이루어지는 가르침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윌리엄 템플은 이 문제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셰익스피어의 희곡 작품을 쓸 수 있겠는가? 그리고 어떻게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갈 수 있겠는가?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만일 셰익스피어의 천재성이 우리 안에 들어올 수 있다면 우리도 그러한 수준의 희곡 작품을 쓸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가운데 들어온다면 그리스도의 형상이 우리 가운데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의 천재성이 우리 가운데 들어올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다. 그러나 기쁜 소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은 우리 가운데 들어오실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셰익스피어의 천재성과 같은 작품을 동일하게 만들어 낼 수는 없지만, 그리스도의 형상이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은 가능한 것이다.” 이것이 믿음 생활의 본질입니다. 그리스도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가운데 임하셔서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재생산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해산의 고통이 따릅니다. 한 생명이 태어나고 자라는데 필요한 어머니의 고통과 부모의 수고가 요구되듯이, 우리 안에 잉태된 그리스도의 새 생명이 잉태되는데 누군가의 헌신, 수고, 고난이 필요합니다. 그 생명이 잉태되는데 반드시 해산의 수고가 필요하고, 그 생명이 자라나는데도 해산의 고통이 필요합니다. 사도 바울이 생명을 낳는 고통뿐만이 아니라 그 생명이 자라는데 필요한 수고까지를 포함해서 ‘해산의 고통’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내 자녀들이여, 여러분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기까지 나는 다시 여러분을 해산하는 고통을 겪습니다”(19절). 복음은 언제나 해산의 고통과 함께 전해졌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영혼이 복음을 듣는 성도들을 부모의 마음으로 중보기도하고, 때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완고함, 강퍅함, 불순종을 인내와 사랑으로 품을 때 놀랍게도 복음이 그들 가운데 생명으로 역사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복음이 전해질 때는 언제나 반대가 있었고, 불신이 있었고, 때로는 대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해산의 고통과 함께 전해지는 생명의 역사는 끊임없이 새 생명을 낳았고, 그 생명이 자라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도록 만들었습니다. 육체의 연약함을 통해서 사도 바울이 따뜻한 사랑의 언어로 호소했습니다. 19절에서 “내 자녀들이여”라고 부릅니다. 사도 바울의 서신서 중에 단 한 번 사용되었습니다. “복음으로 낳았다”는 표현은 나오지만, “자녀들이여”라는 표현은 처음 등장합니다. 12절에서는 “형제들이여”라는 단어를 씁니다.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을 형제 혹은 자녀들이라고 부르면서 그들을 품고 사랑하며 권면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12절에서 15절까지 복음이 처음 갈라디아에 전해질 때 그들과 나누었던 따뜻한 사랑의 관계를 회상시키면서 호소하고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 갈라디아에 복음이 전에 전해졌는지를 기억시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도 바울 육체의 연약함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내가 처음에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게 된 것은 육체의 연약함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내 육체의 연약함이 여러분에게 시험거리가 될 만한 것이었는데도 여러분은 비웃거나 멸시하지 않았고 도리어 나를 하나님의 천사처럼, 그리스도 예수처럼 환영해 주었습니다”(13~14절).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지역을 여행할 때 육체의 질병으로 고통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병이었느냐가 아니라 이 질병이 매우 고통스러웠고, 이 질병이 때로는 시험거리가 되고, 멸시하고, 배척할 수 있는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육체의 연약함이 방해 거리가 아니라 통로가 되어서 복음이 전해지도록 하나님이 역사하셨습니다. 사도행전 역사를 보면 사도 바울을 통해서 기적과 표적이 나타났습니다.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표적을 통해서도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사도 바울 육체의 연약함을 통해서도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사도 바울을 통해서 질병을 고치기도 하고, 능력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사도 바울의 질병은 하나님이 고쳐주시지 않았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을 보면 사도 바울이 육체의 질병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세 번 기도했다고 나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기도를 응답하시지 않고 거절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내 능력은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지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도 바울 육체의 질병을 고쳐주지 않음으로써 그를 연약함 가운데 처하게 하고, 그 육체의 연약함을 통해서도 복음이 능력있게 전해지고, 하나님의 능력이 더 온전하게 나타나는 체험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 지역이 갈라디아입니다. 사도 바울이 육체의 연약함 가운데 전하는 복음에 사람들이 더 귀 기울였습니다. 시험거리가 될만하고, 멸시하고, 무시할수도 있는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에게 “저의 이 강함을 보십시오. 저의 강함을 보니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 같지 않습니까?”라고 말하는 사람과 지극히 연약한 가운데 있는 사람이 “여러분, 저의 약함을 보십시오. 그러나 저는 이 약함 속에서도 절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도리어 감사하고 기뻐합니다”라고 전하는 사람의 소식 중에서 어느 소식에 더 귀를 기울일까요? 사도 바울은 후자였습니다. 육체의 연약함 속에서 하나님이 고쳐주시지 않는 질병을 안고 갈라디아에 머물렀을 때 그를 보는 많은 불신자들이 오히려 그를 환대하고 천사처럼, 예수님을 맞이하듯 사랑하고 축복해 주었습니다. 하용조 목사님의 삶 속에서도 육체의 연약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신 것이 분명히 나타났습니다. 하용조 목사님의 생애 마지막 몇 년 동안 일본에서 러브소나타, CGNTV, 두란노서원 사역에 열심을 내셨습니다. 걸어서 단에 오르기도 힘든 상태일 때도 있었습니다. 서서 설교하지 못하고 앉아서 해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 설교를 듣는 대상은 불신자들입니다. 믿는 성도들이야 “목사님이 건강이 안 좋으신데도 설교하려고 하시는구나”라고 이해할 수 있겠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볼 때는 “저렇게 건강이 안 좋으신데 왜 저러실까?”라고 무시하고 배척하고 시험거리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많은 믿지 않는 분들이 왜 예수를 믿게 되었냐면 건강이 좋지 않은 연약함 가운데 있는 분이 목숨을 걸고 나와서 호소하는 메시지에 더 귀를 기울였기 때문입니다. 많은 일본 목사님들이 지금까지도 러브소나타 사역에 열심히 참여하는 이유는 그분들의 마음과 기억 속에 목숨 걸고 일본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사역하던 하용조 목사님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용조 목사님이 돌아가셨을 때 한국의 성도들 이상으로 슬퍼하고 진심으로 추모하며 도시 곳곳에서 추도예배를 드리던 기억이 납니다. 어느 일본인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이 그렇게 빨리 돌아가신 것이 우리 때문인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그렇게 육체의 연약함 가운데 다른 사람 같으면 건강을 돌보는 데 최우선순위를 두었을 텐데 연약함 가운데 사역하신 것에 대하여 빚진 마음이 있다.” 빚진 마음을 가진 일본의 목회자들이 지금도 러브소나타 전도집회를 도시마다 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연약함을 통해서도 하나님이 능력을 보이시고, 복음의 역사를 이루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입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지역에서 그것을 체험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육체의 연약함으로 고통 가운데 있어서 복음전파에 방해가 될 것 같았는데, 도리어 하나님의 역사는 연약함을 통해서 더 능력있게 나타났습니다. 하용조 목사님이 온누리교회가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건강하게 성숙하고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많이 아파서 그래”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목사님이 많이 아파서 꼭 해야 할 것에 집중할 수 있었고, 고통 속에서 건강한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를 늘 준비하며 집중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사셨기 때문에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전적으로 마음을 기울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온누리교회 성장과 성숙의 원인입니다. 하나님이 하용조 목사님 육체의 연약함을 사용하셨듯이 여러분 가운데 육체의 연약함이 있습니까? 세상적으로 볼 때는 사람들이 무시하고 시험거리가 될 만한 문제가 있습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의 연약함을 통해서도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놀라운 능력이 나타나는 성공을 통해서만 역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육체의 연약함을 통해서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사도 바울을 통해 나타났고, 하용조 목사님을 통해 나타났고, 여러분의 삶을 통해서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사랑 안에서 진리를 “그런데 여러분의 복이 어디에 있습니까? 나는 여러분에게 증언합니다. 여러분은 만약할 수만 있었더라면 여러분의 눈이라도 빼서 내게 주었을 것입니다”(15절). 연약함을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버린 것은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은혜를 바라보지 않고 타락한 인간에게서 나오는 행위를 강조하는 신앙으로 흘렀기 때문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진실을 말해서 여러분의 원수가 됐습니까?”(16절). 진실을 말하는 것이 때로 원수를 만들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가까운 사람, 아는 사람에게 진실을 말하기를 두려워합니다. 원수가 될까 봐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이 인생 경험을 통해서 그것을 압니다. “누군가 원수가 되고 싶은가? 진실을 말해 줘라”는 격언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진실을 말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원수가 됩니다. 사탄은 그것을 이용합니다. 타락한 인간의 마음은 진실을 말해 주는 사람을 거부하게 만듭니다. 미워하게 만듭니다. 담을 쌓게 만듭니다. 사탄이 교묘하게 그것을 이용합니다. 진실이 우리를 얼마나 변화시키고 거룩하게 할 수 있는지를 생각지 않고 상한 감정으로 받아들여서 거부하게 만들고, 관계를 깨뜨리고, 원수처럼 만듭니다. 스스로 복을 차는 것입니다. 참된 진리가 전해진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화목하게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진실을 전할 때 원수처럼 여기는 사람이 있고, 사탄은 그것을 이용해서 갈등으로 유발합니다. 미국에 한참 부흥운동이 일어났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거짓 영이 침투하고, 거짓된 교훈을 받아들이는 이들에 의해서 발생하는 갈등이 교회 역사에서 계속 이어져 왔습니다. 사람들은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내 편을 들어주면 옳은 것이고, 나를 지지해주지 않으면 나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보면 정말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우리 편이냐 아니냐를 따져서 몰아갑니다.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해 줘야 합니다. “사랑 가운데 진리를 말하며 범사에 머리 되시는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나야 합니다”(엡 4:15). 범사에 머리 되시는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나는 방법입니다.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두려워합니다. 진실을 말하면 원수가 될까 봐 사랑으로만 끝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지 않는 사랑은 오염된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연약해지기 마련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랑의 마음 없이 정죄의 마음, 판단과 복수의 마음으로 진실을 말합니다. 진실은 진실이되 사랑이 없는 진실이기 때문에 역사가 되지 않습니다. 사랑 안에서 진실을 말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고,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도 분쟁 일어나면 확연하게 두 그룹으로 나누어집니다. 사랑파와 진리파입니다. 한쪽은 사랑으로 덮자고 하고, 한쪽은 진리로 모든 것을 판단하자고 합니다. 양쪽 말을 들으면 다 맞습니다. 그러나 둘 다 틀린 것은 한쪽은 진리를 버렸고, 한쪽은 사랑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므로 범사에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야 합니다.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을 책망하는 것은 사랑 가운데 진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진실을 말함으로 원수가 된다는 것은 이간질하는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거짓이라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해산의 고통이 따른다! “그들이 여러분에게 열심을 내는 것은 좋은 뜻으로 하는 게 아니라 여러분을 이간하고자 함입니다. 이는 오직 여러분으로 하여금 그들을 열심히 따르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17절). 여러분, 열심을 분별해야 합니다. 그 열심 속에 이기심이 있는지, 자기를 따르게 하는 것인지 그리스도를 따르게 하는 것인지. 그 열심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게 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형상을 심어주려고 하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우리 신앙의 목표를 바로 잡아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형상이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더 많이 닮는 것입니다. 죄인 된 인간 스스로는 불가능합니다. 우리 옛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히고, 우리 안에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의 새 생명이 자라야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집니다. 거기에는 해산의 고통이 따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죄로 오염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고통은 죄를 끊는 고통이요, 모든 이에게 죄를 떠나도록 하는 고통입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가 죄와 붙어있도록 만들기 위해서 몰아갑니다. 그래서 우리를 공격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고통을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그 고통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고통이요, 우리를 성장하게 하는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게 하는 고통이기에 사랑 안에서 진실을 말하고, 죄를 떠나 거룩함으로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도록 서로를 세워줘야 합니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사랑 안에서 진실을 말해 주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고 이루어지도록 일깨워 주는 것이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삶의 가장 중요한 목적입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기까지 사도 바울처럼 해산의 고통을 다 하기를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1-12-04 제1371호
주일 강단 - 율법의 종인가 하나님의 자녀인가(2) 주일강단 율법의 종인가 하나님의 자녀인가(2) 갈라디아서 4:1~11 / 이재훈 목사 믿음 생활은 쉽지 않습니다. 어려울 뿐만 아니라 불가능합니다. 하나님 은혜의 역사가 임하지 않으면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죄의 세력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삶을 끊임없이 저지합니다. 타락의 본질은 불순종입니다. 불순종의 본질은 불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믿음을 져버린 것이 불순종으로 나타나고, 불순종이 우리 삶을 타락으로 이끕니다. 타락한 인간의 마음에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습니다. 믿으려 해도 올바로 믿지 못합니다. 죄와 사탄의 세력은 성도들이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가로막습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때 어떤 능력과 축복이 나타나는지를 잘 알기 때문에 끊임없이 방해하고 저지합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일과 동시에 타락한 인간의 마음에 파괴되고, 존재하지 않는 믿음을 일으켜주시는 일을 하셔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는 일을 이루어주셔도 인간이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각자에게 축복으로 전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는 믿음이 형성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운 역사로 인간 안에 믿음을 만들어 주시고, 믿음을 자라게 하셔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셔야 합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있다면 그 믿음조차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믿음을 만들어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 택하신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약속이요, 또 다른 하나는 율법입니다. 약속을 주신 목적은 하나님이 얼마나 믿을 만한 분인지, 얼마나 신실하신지, 우리가 왜 그분을 믿어야 하는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그 약속을 지키는 대상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선물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신실하게 지키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시고,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는 믿음이 일어나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목적은 우리가 얼마나 믿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기보다 자신을 믿고 의지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방해하는 결정적인 요소는 자기중심적인 태도입니다. 율법의 목적은 인간 안에 있는 자기중심적인 태도, 교만, 악함을 깨뜨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바라도록 이끄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때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에서 사도 바울은 2000년 역사를 요약하면서 아브라함과 모세, 예수 그리스도를 연결합니다. 아브라함을 통해 주신 약속의 의미와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의 의미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연결되고 성취되는지를 알려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은 모세를 통해 준 율법보다 430년 전에 주어졌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모세의 율법이 폐하거나 대체할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까지 유효합니다. 그 약속은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모세를 통해 준 율법은 그 약속을 보완하고, 그 약속을 빛나게 하고, 그 약속이 약속되게 하고, 우리가 그 약속을 바라보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때는 제한적이고 일시적입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때에 따라 정확하게 역사하심으로 이루어 가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주신 시점과 그 약속들 이루어 가는 모든 때를 완벽하신 능력과 섭리로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의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율법을 주신 시점과 율법이 마무리되는 정확한 때를 맞춰서 하나님이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 온전히 이루어지고, 율법이 더이상 필요 없게 되는 때가 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때입니다. 이제는 믿음의 때가 왔고. 은혜의 때가 왔습니다. 율법의 일시적인 기능은 끝나는 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인해서 모든 율법의 기능이 끝났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 4절에 “때가 차매”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때는 하나님의 완전한 때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일을 완벽하게 이루어주시는 그때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탄생의 때를 살펴보면 하나님의 완벽하신 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 역사가들은 크게 세 가지로 그때가 준비되었다고 합니다. 정치적으로 로마제국에 의해서 평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당시 로마제국이 그 지역을 평정하기 전까지는 바다에는 해적이 들끓었고, 내륙에서는 내전과 강도들이 들끓었습니다. 그러나 로마제국이 법으로 통치하면서 치안이 잘되는 안전한 제국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행이 자유롭고 안전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여행할 수 있는 도로를 곳곳에 깔았습니다. 왜 도로가 만들어졌을까요? 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생겼을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 세상에 전해지는 데 그 길이 필요했고, 평화와 안전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다녔던 지역은 로마제국의 길로 연결되었습니다. 문화적으로는 알렉산더 대제에 의해서 헬라어가 모든 로마제국에 통용되었습니다. 구약 성경조차 헬라어로 번역된 ‘70인역’이 나왔습니다. 헬라어를 아는 모든 사람이 구약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어를 몰라도 구약의 모든 역사가 어떻게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졌는지, 하나님의 때를 분별할 수 있는 성경 지식이 전파되기 시작했습니다. 영적, 정신적으로는 유대인들이 메시아를 갈망했고, 당시 로마제국 사람들에게 범신론이 팽배했기 때문에 마음이 허무했습니다. 이단과 사이비들도 급증했습니다. 인간에게 나오는 모든 것들이 얼마나 허무하고 허망하며 소망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래서 때가 찼다고 했습니다. 이제 구원의 때, 은혜의 때, 믿음의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 3장에서 비유를 많이 들었습니다. 율법의 기능을 설명하기 위해서 그 시대에 있었던 여러 예화를 드는데 4장에서는 또 다른 예를 듭니다. 어린 상속자를 예로 듭니다. 큰 재산을 물려받게 된 어린 상속자가 있었는데 너무 어려서 재산을 관리할 능력이 없어서 약속이 주어졌습니다. 상속자로서 약속이 주어졌지만 그것을 행사할 수 없는 시기를 둔 것입니다. 후견인 혹은 재산관리인을 두어서 상속받은 자녀를 훈련하고, 감독하고, 통제하는 권한을 부여했습니다. 실제 로마제국에서는 15세까지는 보호자의 아래에 두고, 25세까지는 후견인이 반드시 있어야 그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는 후견인이나 재산관리인의 통제 아래 존재해야 했습니다. 어린 자녀가 엄청난 재산을 상속받았을 때의 위험과 재산을 귀하게 사용할 줄을 모르는 등의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기간 어린 상속자는 겸손을 다지고, 합당한 상속자가 되는 훈련을 할 것입니다. 아버지가 정한 때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역할을 하는 것이 율법입니다. 율법은 최종 단계가 아니라 중간 단계입니다.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상속자로 부르신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통로로써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포로가 되고, 율법 아래 계속 있고자 하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율법을 주신 모든 때가 이루어지는 때에 하나님은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때가 차자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을 보내셔서 한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셨습니다. 이는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을 구속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아들의 신분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4~5절). 때가 차매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죄가 없으신 분입니다. 그 아들을 ‘한 여자에게 나게 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피조물 된 인간이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서 ‘여자에게서 난 그분이 사단의 머리를 부수고 승리하시는 사단을 이기고 악에서 승리하시는 승리자가 여자에게서 태어난다’는 예언을 주셨습니다. 죄가 없으신 아담의 혈통과 다른 두 번째 아담입니다. 전혀 새로운 인간, 죄인이 아닌 의인입니다. 그분은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분이 율법 아래 태어나셨습니다. 그분은 죄가 없는 분이기에 율법 아래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율법은 그에 대해 전혀 권리가 없습니다. 죄가 있는 인간에게는 율법의 효과가 있고 할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에게는 율법이 할 일이 없습니다. 흠이 없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스스로 율법 아래 나셨습니다. 율법의 선생이 아니라 율법 아래 순종하는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그 목적은 율법의 저주를 받아 마땅한 인간들을 구속하고, 하나님의 자녀 됨의 명분을 선물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저주를 받으시고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구속해 주셨습니다. 기록되기를 ’나무에 달린 사람마다 저주를 받았다‘라고 했기 때문입니다’”(갈 3:13). 우리를 대신해서 율법의 저주를 받아 우리가 담당해야 할 모든 값을 치르기 위해서 율법 아래 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나으신 분이고, 우리는 하나님이 지으신 존재입니다. 전혀 다른 영역입니다. 피조 된 인간은 죄를 범해서 율법 앞에 섰을 때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야 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유일하신 아들이 모든 피조물 된 인간들을 구속하기 위해서 율법 아래 섰습니다.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이 인간들을 구속하기 위해서 피조물이 되시고, 율법 아래 나심으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십자가는 율법의 저주를 담당하신 사건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는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을 구속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아들의 신분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5절). 우리를 구속하신 목적은 자녀 됨의 신분을 허락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타락한 피조물을 구속할 뿐만 아니라 인간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하셨습니다. 모든 인간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려고 하나님의 아들이 피조물이 되시고, 율법 아래 나셔서 십자가로 우리를 구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에 보내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아들들이므로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속에 보내셔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더이상 종이 아니고 아들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아들이면 또한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상속자입니다”(6~7절). 4절에서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셨고, 6절에서 아들의 영을 보내셨습니다. 다른 차원입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여자에게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셔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에게 자녀의 명분을 주셨습니다. 하나님 편에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우리 밖에서 객관적으로 이루어진 일입니다. 우리 모두 자녀 됨의 축복과 은혜를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됨의 축복과 은혜를 이 땅에서 누리도록 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셨을 뿐만 아니라 아들의 영이신 성령님을 우리 마음에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통해서 예수님이 이루신 일을 우리 마음에 확신을 주시고, 확증하게 하셨습니다. ”성령은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언합니다“(롬 8:16). 믿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열심이 아니라 증거입니다.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에 보내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확신하게 합니다. 이 확신이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자녀 됨을 확신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확신하는데 왜 연옥이 있고 면죄부를 삽니까? 그래서 마틴 루터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교리를 확증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가질 수 있는 확신에 대해서 도전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말씀처럼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게 했습니다. ‘아바 아버지’는 사실 유일하신 아들 예수님만 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도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영을 통해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왜 이 부르짖음이 우리에게 필요합니까? 사단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부르짖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죄로 인하여 실패하고 죄를 지을 때 “너는 죄인이야. 너는 소망이 없어. 너는 하나님의 율법 앞에 죄인이야”라면서 고소하고 “너는 멸망을 받아야 한다. 너는 절망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부르짖는 사단의 부르짖음을 이기기 위해서입니다. 사단은 틀린 말로 우리를 공격하기보다 맞는 말로 공격합니다. 율법 앞에 맞는 말입니다. 사단은 율법을 가지고 공격합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중간 단계로 우리 죄를 드러내고,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약속으로 향하게 하는데, 사단은 거기서 머무르게 하고 그것을 종착점으로 만듭니다. 그러므로 율법 아래 다시 들어가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입니까? 사도 바울이 그것은 무력하고 천박한 것이라 비판한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사단의 부르짖음을 예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부르짖음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못한 모습들, 좌절하고 절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며 나아갈 수 있는 축복과 은혜가 우리에게 있음을 확신해야 합니다. 그 일을 행하시는 분이 아들의 영이신 성령님입니다. 믿음의 확신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사도 바울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너희들이 엄청난 약속과 은혜가 주어졌는데 어찌하여 다시 율법으로 되돌아가려고 하느냐? 어찌하여 자신의 행위로 돌아가려고 하느냐? 어찌하여 세상의 초보적인 것들로 돌아가려고 하느냐?”고 안타깝게 호소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허랑방탕한 삶을 살다 돌아온 탕자가 나옵니다. 아버지는 그 아들이 보이자마자 달려가서 끌어안고 더러운 옷을 벗기고 가장 좋은 옷을 입히고 잔치를 베풀며 환영했습니다. 아버지는 이미 아들을 용서하고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아들이 아버지에게 “저는 아버지 아들로 여김이 합당치 않으니 저를 종의 하나로 여겨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겸손이 아닙니다. 교만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부정하는 불신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서 행하신 용서와 사랑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온전한 아들로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죄 밖에 없는 아들을 가장 좋은 아들처럼 여겨주셨는데도 그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종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아시는 그 사랑에 확신이 없을 때 자꾸 우상을 만들고 자기 자신을 섬깁니다. 오늘 말씀에 “너희들은 이제 하나님을 알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아신 바 되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사랑을 받은 것은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아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아들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구속하시고, 자녀 되게 하시고, 확신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있는 믿음의 확신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 아들을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며, 아들의 영을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더이상 율법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 됨의 축복을 누리고, 믿음으로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1-11-27 제1371호
주일 강단 - 율법의 종인가 하나님의 자녀인가 주일강단 율법의 종인가 하나님의 자녀인가 갈라디아서 3:15~29 / 이재훈 목사 죄인 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베푸신 은혜를 오직 믿음으로서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고, 의롭게 된다는 복음의 진리를 분명하고 확실하게 깨닫는 것이 너무 중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진리를 무너뜨리고 믿음만이 아니라 율법을 함께 지켜야 한다는 이들과 싸우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것에 불편함을 느낍니다.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을 더욱 확실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행위에 대한 보상으로 얻는 그 무엇인가를 더욱 확실하다고 느끼고 편안해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타락한 실상을 깨닫지 못한 것이요,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행하신 놀라운 구원 계획을 거부하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하나님 구원의 복음은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죄인인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의인이 죽임을 당하는 것이 어떻게 합리적입니까? 영광스러운 분이 영광을 내려놓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수치와 모욕을 당한 것이 어떻게 합리적입니까? 합리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은 그 아들을 내어 주시면 안 됩니다. 죄인인 인간이 죄 가운데 죽도록 처벌하시면 됩니다. 죄를 지은 자는 합당한 대가를 치르면 되고, 의로운 이는 의를 지키면 되는데, 의로운 분이 불의한 이들을 대신해서 희생제물이 된다는 것은 불합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복음을 세상 사람들이 어리석게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를 위하여 바보가 되고, 사랑하는 이를 위하여 불합리한 희생을 합니다.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일 뿐입니다. 율법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하나님은 구원의 복음을 이루시기 위하여 많은 인물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행하신 일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성경 인물과 하나님이 말씀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 만나지 못했고, 알지도 못했고, 과거 문서들을 후대 사람들이 읽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성경 인물들은 한가지 목표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마틴 루터는 성경의 모든 주제를 한 단어로 요약하면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제외한다면 껍데기밖에 남지 않은 책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진리를 알려주시기 위하여 먼저 부르심을 받은 인물이 아브라함입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 이외에도 율법을 함께 지켜야 한다는 이들과 싸우면서 구약에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인용합니다. 그들이 중요시하는 모세의 율법과 대조함으로써 그들의 주장이 왜 잘못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은 모세에게 주신 율법보다 430년 전에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의로 여기셨습니다. 율법이 있지도 않았을 때 이미 하나님이 인간을 의롭다 하셨기 때문에 율법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논리입니다. 이 약속과 율법은 하나님이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데 사용한 중요한 축입니다. 바울의 설명은 구약의 역사 흐름을 이해하는 매우 중요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약속이 등장합니다. 아브라함과 다윗, 여러 선지자를 통해서 많은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은 율법을 계속 상기시킵니다. 선지자들이 백성들을 꾸짖을 때 언제나 율법을 인용합니다. 약속이 강조되고, 또 한편으로는 율법이 강조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무엇이 우선이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430년 전에 먼저 주어졌기 때문에 약속의 출발점이 율법의 출발점보다 훨씬 이전입니다. 따라서 이후 주어지는 모든 관계에서는 율법이 약속을 보완하는 역할을 합니다. 율법은 약속을 무력화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약속을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이 율법입니다. 율법은 그 통로이자 보완하는 역할을 합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율법이 쓰임 받은 것입니다. 율법, 약속된 자손이 오기까지만 유효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430년 후에 생긴 율법이 하나님에 의해 미리 정해진 언약을 무효화해 그 약속을 취소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17절). 모세의 율법이 주어졌을 때 백성들은 율법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그것을 중심으로 삶의 패턴을 만들었습니다. 이해되는 면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세가 율법을 하나님의 천사에게 받을 당시 그런 수준의 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동시대에 주어진 법들과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공동체, 국가, 세상을 보는 관점이 율법에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자부심을 느낄만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왜 율법을 주셨는지를 역사적인 관점에서 생각해야 하는데 그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통해서 율법의 목적을 봐야 하는데 율법에서 그들의 삶이 시작된 것처럼 착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핵심은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 앞에 서면 우리가 그것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이미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율법에 자부심을 느끼고 자랑스럽게 여기던 이들이 율법 앞에 불순종해서 포로로 잡혀가고, 나라가 망하는 역사가 이스라엘의 역사입니다.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을 빛나게 하고, 그 약속을 바라보게 하고, 그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약속을 빛나게 하는 배경입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일수록 별이 반짝이는 것처럼, 율법 아래 있는 이들이 하나님 약속을 바라보게 하는 배경입니다. “그러면 율법은 무엇입니까? 율법은 약속된 자손이 오시기까지 죄 때문에 더한 것입니다. 이 율법은 천사들을 통해 한 중보자의 손으로 주어졌습니다”(19절). ‘약속된 자손’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자손을 주신다고 했는데, 복수형이 아니라 단수형입니다. 후대에 오해가 없도록, 신학적 오류가 없도록 하나님이 단수로 쓰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약속된 후손은 곧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별과 같이 많아질 거라는 약속은 예수님을 믿는 수많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혈통적으로 유대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적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 후손들을 가리킵니다. 그것을 알려 주시기 위해서 단수형으로 썼다고 사도 바울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약속된 자손이 오기까지만 유효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모든 율법의 기능을 폐하셨습니다. 십계명을 비롯한 도덕법은 그 원리가 이어지지만, 의식법, 제사법, 음식법 등 모든 법은 폐해졌습니다. 복음은 오직 믿음 율법은 오직 행위 “그러나 성경은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습니다. 이는 믿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근거한 약속을 주시기 위함입니다”(22절). 여기서 성경은 율법을 가리킵니다. ‘가두었다’는 것은 죄수를 감옥에 가둘 때를 의미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의 감옥에서 태어납니다. 태어날 때부터 죄의 감옥에서 태어나고, 스스로 선택하는 것도 죄의 감옥 가운데 있습니다. 누구도 죄의 문제에서 ‘상관없다’고 주장할 수 없도록 율법을 통해서 죄 아래 가둔 것입니다. 율법 앞에 설 때 모든 사람이 죄인임이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오기 전에는 우리가 율법 아래 매여 장차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혀 있었습니다”(23절). 여기서 ‘매여, 갇혀 있다’는 단어는 전쟁 용어입니다. 전쟁 포로가 되어서 감시받고 자유가 박탈되어 포로수용소에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우리 모두 죄의 포로가 되어 사탄의 종이 되어 있습니다. 죄를 짓는 순간 우리는 죄의 빚진 자가 되어서 포로로 끌려다닙니다. 포로된 자는 자유를 갈망하게 됩니다. 율법은 우리가 죄의 포로가 되고, 죄에 매여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함으로써 자유를 갈망하게 하는 기능을 합니다. “그래서 율법은 그리스도의 때까지 우리를 인도하는 선생이 됐습니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믿음이 왔으므로 우리는 더이상 율법이라는 선생 아래 있지 않습니다”(24~25절). ‘선생’이라는 단어를 번역하기 어렵습니다. 선생이나 교사는 아이들이 지식과 교양을 쌓도록 인도하는 긍정적인 의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선생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파이다고고스(παιδαγωγ)’는 우리가 생각하는 교사와 선생의 기능이 아닙니다. 특수한 기능을 가진 사람입니다. 오늘날에는 그 기능이 없습니다. 그래서 번역이 힘듭니다. 당시 파이다고고스는 경제적으로 안정된 가정의 자녀를 훈육하기 위해서 등하굣길에 보호자나 인도자가 될 뿐만 아니라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면서 잘못을 꾸짖고, 야단치는 사람들입니다, 당시 그림들을 보면 파이다고고스가 아이 앞에서 매를 들고 있습니다. 그들은 부모가 아니라 종인데 자녀를 훈육하는 권한을 준 것입니다. 당시 일반적인 의미의 교사와 선생을 말하는 단어는 ‘디다스칼로스(διδσκαλο)’입니다. 파이다고고스는 오늘날 찾아보기 힘든 훈육관입니다. 잘못을 지적하기 위해 존재하는 기능입니다. 파이다고고스를 선생이라는 단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율법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미워서 그 기능을 준 게 아니라 우리를 살리려고 기능을 준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율법의 기능은 구원을 주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길과 진리를 갈망하게 하고, 참된 진리에서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를 깨닫게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생명줄인지를 깨닫게 하고, 그 약속을 붙잡게 하는 기능으로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을 더 빛나게 하고, 약속을 바라보게 하고,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 내용을 잘 요약한 존 스토트 목사님의 글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율법이 우리를 쳐서 상하게 해야 비로소 우리는 상처를 싸맬 복음의 필요성을 인정하게 된다. 율법이 우리를 체포하여 옥에 가두어야 비로소 우리는 자신을 해방 시켜 주실 그리스도를 갈망하게 된다. 율법이 우리를 정죄하고 죽여야 비로소 우리는 칭의와 생명을 얻고자 그리스도를 부르게 된다. 율법이 우리를 자신에 대한 절망으로 몰아가야 비로소 우리는 예수님을 믿게 된다. 율법이 우리를 지옥에까지 낮추어야 비로소 우리는 자신을 천국으로 올려줄 복음으로 돌아서게 된다.” 그래서 율법 앞에서 서게 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만으로 하나님이 이끄셨다면 그 백성은 약속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이 행하신 것을 자신이 했다고 우길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의 율법 앞에서 그들이 절망하고, 율법 앞에서 자신들이 얼마나 더럽고 추악한 존재인지를 깨달을 때 하나님이 약속을 이루셨다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우리에게 철저하게 행위만 요구합니다. 완전한 행위를 요구합니다. 일체의 타협이 없습니다. 율법의 저주 아래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은 완전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완전하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우리에게 철저하게 믿음만 요구합니다. 우리의 행위는 선한 행위일지라도 그 안에 죄가 스며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의 행위는 오직 믿음만을 요구합니다. 율법은 오직 행위만 요구합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우리에게 행위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오직 믿음만 요구합니다. 오직 은혜로 받는 구원을 스스로 이룬 것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그 믿음을 의로 여기십니다. 오직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의롭게 된 사람들은 선한 행실을 합니다. 의롭게 되기 위한 행실이 아니라 의롭게 된 자로서 변화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오직 은혜에 대한 응답입니다. <천로역정> 저자 존 번연은 이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율법은 달리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손도 발도 주지 않는다. 복음은 훨씬 더 좋은 소식을 전해준다. 그것은 우리에게 날아가라고 하며 날개를 준다.” 아름다운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믿음 외에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이들의 주장은 허구입니다. 거짓이고, 잘못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믿음의 때가 왔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행하신 일을 받아들이는 때를 위하여 역사하셨고, 그것이 역사의 분기점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나타난 세 가지 변화 우리에게 어떤 변화가 있는지를 세 가지로 요약합니다. 첫째,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됐습니다. 그리스도와 합해 세례를 받은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로 옷 입었기 때문입니다”(26~27절).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 넣은 피조물입니다. 피조된 우리가 타락해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악에 속한 죄의 종이 되었을 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희생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것을 ‘그리스도로 옷 입혔다’고 합니다. 피조물인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분 안에 있는 생명을 우리에게 넣어주시고, 그분으로 우리를 옷 입혀 주시고, 그분의 의로 우리를 덧입혀 주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 놀라운 변화를 이루셨습니다. 둘째,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유대 사람도 없고 그리스 사람도 없고 종도 없고 자유인도 없고 남자도 없고 여자도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28절). 율법이 모든 사람을 예외 없이 죄 아래 가둠으로써 죄인임을 깨닫게 하는 것처럼, 복음도 모든 사람이 예외 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함으로 하나 되게 합니다.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평등한 존재가 되게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사회적 차별을 없애려는 수많은 법과 제도가 존재했지만, 차별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우리 모두 죄인이고, 율법 아래 죄 아래 갇힌 자였지만 그리스도로 인해서 의롭게 용서받은 죄인이라는 하나님 은혜에 대한 고백만이 공동체와 사회에서 차별이 없게 만듭니다. 셋째, 우리는 약속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면 여러분은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을 따른 상속자입니다”(29절). 예수님을 믿는다면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고,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약속을 따른 상속자입니다. 구약과 신약이 연결될 뿐만 아니라 신약과 내가 연결됩니다. 성경의 역사가 살아있는 문서가 되고, 나의 믿음이 역사적인 계승을 이어갑니다. 아브라함의 모든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가 됩니다.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은 혈통적인 유대인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입니다. 그리스도께 속한 자가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에 아브라함의 모든 약속이 우리에게 주어졌고, 율법이 폐해졌습니다. 율법을 통하여 우리에게 구원의 약속이 나타났습니다. 그 약속이 주어졌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이요, 그 약속의 권위, 가치, 능력을 부여받은 상속자입니다. 이 믿음 가운데 굳게 서십시오. 하나님의 복음이 우리를 사로잡고,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능력 있게 하고, 영원한 나라로 이끄실 것입니다. 복음을 확신하고 더 깊이 체험하십시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1-11-20 제1369호
주일강단 -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소서 주일강단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소서 합 3:17~19 / 이재훈 목사 하박국서 마지막 세 구절은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드리는 위대한 신앙고백이며, 믿음의 정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박국서 1장에서 하박국은 하나님 앞에 항의하고, 도전했는데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하박국은 악이 세상을 다스리는 것 같은 상황을 두려워하며 하나님 앞에 나왔는데 하박국서를 마무리할 때는 선하신 하나님께서 승리하실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불투명한 미래로 인하여 염려했었는데 이제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습니다. 하박국은 하나님께 질문하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과정에서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되었고, 더욱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하박국의 위대한 고백을 읽으면서 감동하기는 쉽지만, 우리가 이 고백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머리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머물러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박국은 영혼 속에 찾아오신 하나님의 임재로 인하여 하나님을 깊이 신뢰를 하게 되었고, 친밀함으로써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만을 기뻐하기 하박국의 고백 속에 중요한 믿음의 비밀을 담겨 있습니다. 하박국은 하나님만을 기뻐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주신 어떤 것을 기뻐한다면 그것이 상실되었을 때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사라질지라도 하나님이 여전히 살아 계신다면 하나님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욥도 동일한 시험을 받았습니다.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많은 축복 때문이 아닙니다. 만일 욥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간다면 하나님을 배반할 것입니다. 이전처럼 하나님을 경외하게 않았을 것입니다. 사단이 준 도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도전을 받아주셨고 욥이 모든 것을 상실하는 고통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욥이 가진 모든 것을 상실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여전히 경외할 수 있는지, 하나님만을 기뻐하고 사랑할 수 있는지를 시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신앙을 시험하실 때 반드시 이 과정을 적어도 한 번은 겪게 하십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사라진다 해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뻐할 수 있는지 말입니다. 왜냐하면 언젠가 우리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믿음의 시험 본질은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기뻐할 수 있는가’입니다. 하박국은 “여호와 그분을 기뻐하였고”라고 고백했습니다. 여호와만을 기뻐한다는 뜻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1조는 “인간의 제일 되는 의무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인간의 참된 의무이자 창조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행위 목록을 만들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율법주의를 만들어 낼뿐입니다. 그 어떤 드림이나 헌신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없습니다. 시편에서는 “감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고 했습니다. 하박국은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만 가장 기뻐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영광을 받으십니다.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을 기뻐하는 믿음의 삶을 산다면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믿음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기뻐하는 삶이 바로 하박국이 경험한 믿음의 삶입니다. 구원하시는 하나님 기뻐하기 둘째, 하박국은 심판을 통해서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기뻐했습니다. 하박국이 기뻐한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입니다. 하박국은 처음에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용하시는 뜻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박국서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입니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ㄹ은 구원입니다. 회복입니다.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은 재앙이 아닙니다. 때로 우리의 죄를 심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허용적인 뜻입니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은 구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실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의 불순종과 죄악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허용적인 뜻이 있습니다. 두 번째는 지시적인 뜻입니다. 우리를 구체적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시적인 뜻을 우리가 이해하기 힘듭니다. 죄 때문입니다. 불순종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기뻐하는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때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에 대한 감격과 기쁨이 사라질 때가 있습니다. 구원의 감격이 사라지는 것만큼 신앙의 위기가 없습니다. ‘구원’이라는 단어 이면에는 ‘나는 심판받아 마땅한 존재였고,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피할 길이 없는 존재였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나를 구원하신 그 구원의 하나님’이라는 고백이 들어 있습니다. 구원의 하나님에 대한 기쁨을 잊었다면 신앙에 위기가 온 것입니다. 구원은 죽어 마땅한 존재에서 다시 살아난 생명이 된 것입니다. 구원의 하나님을 기뻐하는 믿음이 회복되기를 축원합니다. 하박국이 그것을 체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이라도 온 세상의 악을 완전히 심판하시는 일을 끝내신다면 얼마나 많은 이들이 구원받지 못하고 심판의 이르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은 심판조차 구원에 이르도록 이용하십니다. 마지막 심판을 피할 수 있는 길을 우리에게 허락하셨습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왜 믿어야 합니까?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피할 유일한 구원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모든 심판을 담당하셨기에 그 아들 안에서 우리를 이미 심판하신 것으로 간주하시고, 그분의 의로움을 우리에게 덧입혀 주심으로 새 생명을 주신 이 놀라운 구원이 신앙생활의 전부입니다. 그것 외에 다른 교리는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구원이 너무 단순하기 때문에 무시합니다. 잊어버립니다. 그 안에 거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일평생 묵상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구원을 진정 기뻐한다면 하박국이 경험한 힘이 되시는 하나님을 기뻐할 수 있습니다. 힘의 원천 되시는 하나님 기뻐하기 하박국은 힘의 원천이 되시는 하나님을 기뻐했습니다. 구원의 하나님을 기뻐하는 영혼에게 계속 힘이 되어주십니다. 그 영혼을 강건하게 하십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 기쁨이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통을 견딜 힘을 부여해 주었습니다. 하박국은 이 기쁨으로 인한 힘을 ‘사슴’으로 표현했습니다. 사슴의 발이 힘이 있고 능력이 있어서 높은 곳을 경쾌하게 뛰어다니는 것처럼, 구원의 하나님을 기뻐함으로 힘을 얻은 영혼의 발걸음은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희망으로 가득한 사람의 발걸음과 절망에 사로잡힌 사람의 발걸음이 다릅니다. 목적이 분명한 사람의 발걸음과 방황하는 인생의 발걸음이 다릅니다. “주께서 내 발을 암사슴의 발과 같이 만드시고 나를 높은 곳에 세우십니다”(삼하 22:34). “그분은 야곱이 그 땅 높은 곳을 타고 다니게 하셨고 들판의 열매로 그를 먹이셨다. 그분은 바위에서 꿀을 내어, 딱딱한 바위틈에서 기름을 내어 그에게 힘을 북돋우셨다”(신 32:13). “이스라엘아, 너는 행복하다. 여호와께서 구원하신 민족인 너 같은 자가 누구겠느냐? 그분은 네 방패이며 도우시는 분이고 네 영광스러운 칼이시다. 네 원수들이 네 앞에서 움츠리고 노는 그들의 높은 곳을 발로 밟을 것이다”(신 33:29). 높은 곳은 원수를 이기는 승리자의 발걸음을 가리킵니다. 땅에 속한 것에 무너지지 아니하고 하늘에 속한 것으로 승리하는 인생입니다. 죄와 탐욕에 휩쓸려가지 아니하고 주께서 허락하신 믿음의 축복을 누리며 승리하는 승리자의 발걸음을 ‘높은 곳을 뛰어다니는 인생’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발걸음이 사슴의 발과 같이 되어 높은 곳을 뛰기를 축원합니다. 그것이 승리자의 발걸음입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이 찬양의 원제목 이 ‘높은 곳을 향하여(Higher Ground)’입니다. 저 높은 곳은 우리가 죽어서 가는 영원한 천국 만이 아니라 이 땅에서 하나님만을 기뻐하고, 구원의 하나님을 기뻐하고 그 하나님이 영혼의 힘이 되어 주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땅의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을 추구하는 승리자로 살아갈 수 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만을 기뻐하며 즐거워하기를 원합니다. 구원의 하나님을 기뻐하며 새 힘을 얻어 우리의 발걸음이 사슴의 발과 같이 되게 하옵소서. 죄와 어둠이 가득한 곳을 다니지 않게 하시고, 하늘에 속한 인생으로 승리하며 살게 하옵소서. 하박국의 고백으로 승리하게 하여 주옵소서.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절망하지 않고 승리자의 발걸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21-07-10 제1352호
신년특집 세상의 소금과 빛 온누리_① 하나님의 사람 ‘최도성 장로’ 신년특집 세상의 소금과 빛 온누리 ① 하나님의 사람 ‘최도성 장로’ “크리스천 글로벌 시민을 양육하는 꿈!” 한동대학교 제7대 총장 최도성 장로 “너희는 이 땅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 5:13, 14). 2022년 온누리교회가 ‘세상의 소금과 빛’을 표어로 내걸고 힘차게 출발했다. 크리스천들이 촉매제인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할 때 비로소 세상이 천국으로 변하게 될 것을 강조하는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따라서 크리스천이라면 세상의 소금과 빛이어야 한다. 본지에서는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는 온누리 사람들, 기관, 사역 등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 첫 번째 주인공은 하나님의 사람 최도성 장로다. 한동대학교 제7대 총장으로 선임된 최도성 장로(OCC공동체)는 2022년 2월부터 2026년 1월까지 한동대학교 총장으로 섬긴다. 최도성 장로가 이끌어갈 한동대학교의 모습이 어떠할까? 최 장로는 한동대학교의 모든 학생들을 ‘크리스천 글로벌 시민’으로 양육해서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는 꿈을 꾸고 있다고 했다. 다음은 최도성 장로와의 일문일답. / 정현주 기자 joo@onnuri.org 온누리교회 성도님들께 새해 인사 부탁드립니다. “온누리교회 성도 여러분, 새해에도 성령 충만하시고, 하나님의 빛 가운데 사는 풍성한 한 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올해 온누리교회 표어처럼 세상의 소금과 빛처럼 사십시오. 온누리교회 성도님들로 인해서 세상이 더 맑아지고, 더 밝아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한동대학교 총장으로 선임되셨습니다. 소감과 비전을 듣고 싶습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부르신 일인 만큼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실 것을 믿고, 굳게 나아가고자 합니다. 한동대학교는 27년밖에 안 되는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성원들이 우리 사회와 전 세계로 뻗어나가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초대총장이셨던 김영길 장로님의 교육철학인 ‘공부해서 남 주자’, ‘Why not Change the World?’를 실천하는 대학입니다. 특히 개발도상국에 복음과 지식을 전해서 그 지역을 밝히고 있습니다. ‘일어나 빛을 발하라’(사 60:1)는 말씀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한동대학교 신임총장으로 섬김을 시작하면서 하나님이 제게 주신 비전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기독 대학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회복시키고, 둘째, 한동대학교 졸업생들이 세계로 나가고, 세계의 학생들이 한동대학교로 공부하러 오는 글로벌 대학의 비전을 새롭게 하며, 셋째, 세상이 꼭 필요로 하는 인재이자 섬김과 나눔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인재인 ‘크리스천 글로벌 시민’을 양육하는 것입니다. 글로벌 시민이란 정직하고, 성실하고, 한결같고, 남을 배려하고, 긍휼을 베풀고, 섬기는 사람입니다. 한 마디로 정직하고 성실하며 남을 배려하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저는 이 세 가지 비전을 이루기 위하여 파송된 하나님의 파수꾼일 뿐입니다. 끝까지 순종할 것입니다.” 한동대학교의 정체성을 회복시키고 싶다고 하셨는데 그 말씀처럼 기독 대학으로서의 정체성과 사명을 지키기가 몹시 힘든 시대인 것 같습니다. 정체성을 회복시킬 방법이 무엇입니까? “결국 하나님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식과 배움의 바탕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그리스도입니다. 세상의 모든 지식과 배움은 그리스도의 바탕 위에 서 있습니다. 아브라함 카이퍼가 세상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께서 ‘이건 내 것’이라고 하지 못할 곳은 단 한 뼘도 없다고 했습니다. 대학의 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을 읽고, 배우며, 그대로 행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배움과 신앙, 거기에 개인의 삶이 통합되고 하나가 되면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렇게 훈련되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주 유능한 제자가 될 것입니다. 제가 꿈꾸는 크리스천 글로벌 시민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신앙과 삶과 배움이 통합되는 크리스천 글로벌 시민을 반드시 양육할 것입니다. 본 회퍼 목사님의 저서 <나를 따르라>에 보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다.’ 우리는 이미 세상의 소금과 빛입니다. 소금은 짜서 맛을 내야 하고, 그 짠맛으로 부패를 막아야 합니다. 빛은 밝게 비춰야 존재합니다. 비추지 않고는 빛이 아닙니다. 한동대학교의 교육은 학생들 스스로 소금과 빛이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이 주신 비전과 소명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고 준비해서 세상에 나가는 과정입니다. 기독 대학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기 어려울 때일수록 더욱 말씀에 충실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소금과 빛이라는 정체성을 확실하게 알고 있다면 기적이 일어날 것이고, 세상은 변화될 것입니다.” 한동대학교의 정체성을 회복시키고, 하나님이 주신 세 가지 비전을 이루는 구체적인 실행 목표와 방법이 궁금합니다. “공부해서 남 주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직해야 합니다. 이 세상은 거짓이 팽배한 사회입니다. 거짓을 이기는 힘은 정직함(integrity)에서 나옵니다. 겉과 속이 일치하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 믿는 것이 하나 되는 것입니다. 한동대학교 학생들에게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긍휼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을 끊임없이 강조할 것입니다. 이 세상은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싫어하고, 질투하는 삶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배려하고, 사랑하고, 용서하고, 포용해주는 방법을 한동대학교 학생들이 생활관에서 배우도록 도울 생각입니다. 또 항상 예배에 참여하도록 할 것입니다. 학교에서 지식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신앙관을 토대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타락한 이 세상을 회복시키려고 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회복사역에 동참하는 제자들입니다. 교수들이 먼저 이러한 세계관과 신앙관을 가지고 학생들을 가르친다면 학생들도 지식뿐만 아니라 소명과 정체성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변화시키라고 자신을 한동대학교로 부르셨다는 것과 어두운 곳에 빛을 밝혀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크리스천 글로벌 시민을 양육하고 배출함으로써 그들이 세상의 부패를 막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한동대학교의 정체성을 회복시키고, 하나님이 제게 주신 세 가지 비전을 이루는 구체적인 실행 목표이자 방법입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 혼자서는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고, 모두 함께 참여해야 합니다.” 한동대학교가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온누리교회가 도울 일이 무엇입니까? “기도와 관심이 절실합니다. 후원도 필요합니다. 인재를 키우는 일은 재정이 많이 들고, 결과가 눈에 바로 보이지 않습니다. 하용조 목사님께서 ‘하나님이 주시는 일을 할 때 돈이 없어서 못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믿음과 비전, 성도들의 기도가 있다면 재정은 따라오게 되어 있다’고 하셨습니다. 온누리교회 성도님들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한동대학교와 저를 위해서 기도해주십시오. 후원해주십시오. 한동대학교를 많이 홍보해주시고, 특히 믿음의 학생들이 입학 지원을 하도록 홍보해 주십시오.” 장로님이 생각하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 무엇입니까?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버려질 뿐이고, 등잔이 빛을 비추지 못하면 쓸모없는 물건일 뿐입니다. 소금의 짠맛, 빛의 밝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믿는다면서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짠맛 잃은 소금이고, 밝히지 못하는 등잔일 뿐입니다. 믿음 없는 선행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믿음과 순종이 함께 가야 합니다. 본회퍼 목사님이 ‘믿는 사람만이 순종할 수 있고, 순종하는 사람만이 믿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순종하지 않는 믿음은 진짜 믿음이 아닙니다. 순종하고 믿는 온누리교회 성도님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온누리교회의 모든 사역이 소금과 빛의 사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열악하고 제한된 상황에서 기적 같은 일을 해내고 있는 CGNTV와 NGO 더멋진세상, 모든 선교사님들, 장애인 예배공동체 사랑부 교사 등 이름도 없고 빛도 없지만 묵묵히 섬기는 모든 분들이 세상의 소금과 빛입니다. 스스로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는 사실을 알고 행동하면 그때부터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2022-01-07 제1375호
신년특집_세상의 소금과 빛 온누리 ② 하나님의 기관 ‘온누리복지재단’ 신년특집_세상의 소금과 빛 온누리 ② 하나님의 기관 ‘온누리복지재단’ “이웃을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신 이웃을 위해” 송영범 장로가 들려주는 온누리복지재단의 사명과 존재 이유 <온누리복지재단 기관장들과 함께. 이성희 관장, 백혁 관장, 임은정 관장, 홍태임 센터장, 박준기 관장, 조혜진 관장, 엄준 센터장, 엄재홍 센터장, 박하늘나라 원장, 김형근 소장, 김정진 사무처장, 송영범 대표이사, 김갑록 소장, 정성우 원장(사진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2022년 온누리교회가 ‘세상의 소금과 빛’을 표어로 내걸고 새해를 힘차게 출발했다. 본지에서는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는 온누리 사람들, 기관, 사역 등을 소개하고 있다. 그 두 번째 주인공은 하나님의 기관 ‘온누리복지재단’이다. 온누리복지재단은 청소년부터 노인까지, 사회취약계층(장애인, 노숙인), 1인 가구부터 다문화가정까지 모든 계층과 세대를 아우르는 총체적 복지를 실현하고 있다. 이웃을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신 이웃을 섬기기 위해 16개 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다음은 온누리복지재단 대표이사 송영범 장로와의 일문일답. / 정현주 기자 joo@onnuri.org 성도님들께 새해 인사를 부탁드립니다. “끝날 것 같았던 코로나19 팬데믹이 계속되고 있고, 사회의 패러다임이 급격하게 변화되고 있습니다. 자칫하면 미래 방향성과 목적성을 잃어버리기 쉽고,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하지 못해서 고립감이 들 수 있습니다. 이 혼란한 시기 온누리교회 성도님들이 주님과의 친밀함을 회복하고, 자신이 처한 곳에서 거룩한 삶을 통해서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는 능력 있는 주의 자녀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 함께 2022년을 아름답게 수놓기를 기도합니다.” 온누리복지재단이 곧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적 약자, 돌봄이 꼭 필요한 이웃들을 누구보다 정성껏 섬기고 있는 온누리복지재단 기관들을 소개해주십시오. “온누리복지재단은 7개 분야 16개 시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산은 370억 정도, 직원은 370명에 이릅니다.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비장애인부터 장애인까지, 1인가구부터 다문화가정까지 모든 대상을 아우르고 있습니다. 노인시설은 ‘온누리요양센터’, ‘용산데이케어센터’, ‘시립용산노인종합복지관’, ‘용산구립청파노인복지센터’, ‘서초구립중앙노인종합복지관’, ‘서초구립느티나무 쉼터’가 있습니다. 중장년 시설은 인생 이모작을 준비하는 중장년(50세~64세)을 지원하는 ‘서초50+센터’가 있고, 취약계층 시설은 쪽방촌 주민과 노숙자를 지원하는 ‘서울특별시립 서울역쪽방상담소’가 있습니다. 장애인 시설은 ‘번동코이노니아 장애인보호작업시설’, ‘소망의집(장애인 그룹홈)’, ‘용산구발달장애인평생교육센터’가 있습니다. 아동청소년 시설은 ‘군포하나로남자중장기청소년쉼터’, ‘꿈의집지역아동센터’, ‘경기남부청소년자립지원관’이 있습니다. 지난해부터는 온누리복지재단이 가정 분야까지 지경을 넓혔습니다. 지역주민 가정과 다문화가정, 1인 가구 지원시설인 ‘서초구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 ‘서초1인가구지원센터’를 신규로 수탁받아 운영하고 있습니다. 건강한 가정을 만드는데 온누리복지재단이 쓰임 받게 되어 기쁘고 감사합니다.” 온누리복지재단 산하 시설이 16개나 된다니 참으로 놀랐습니다. 기관이 많은 만큼 은혜와 열매도 풍성할 것 같습니다. “운영하는 시설이 많아서 일일이 다 말하기가 힘들 정도입니다(웃음). 대표적으로 온누리요양센터의 철저한 방역을 꼽고 싶습니다. 코로나19 전파로 인해 전국의 많은 요양병원이 코호트 격리(환자와 의료진을 통째로 격리하는 조치)되거나 많은 노인 환자들이 사망했는데 감사하게도 온누리요양센터에서는 단 한 건의 불미스러운 일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직원들이 한마음으로 철저하고 엄중하게 방역을 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대면 복지 서비스가 어려워지면서 온누리복지재단 사회복지사들이 비대면(전화, 문자메시지)으로 독거노인들과 취약계층들을 더욱 촘촘하고 철저하게 돌봤습니다. 한번은 할아버지 한 분이 계속 연락이 안 됐습니다. 온누리복지재단 직원이 너무 걱정돼서 그 할아버지 집 문을 뜯고 들어갔는데 할아버지가 쓰러져 있었습니다. 서둘러 병원으로 옮긴 덕분에 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었습니다. 진심과 전심,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섬기는 온누리복지재단 직원들 덕분에 취약계층 이웃들이 큰 어려움 없이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이겨내고 있습니다. 군포하나로남자중장기청소년쉼터에서도 열매가 있었습니다. 가정폭력으로 집을 나온 학생이 있었는데 군포하나로남자중장기청소년쉼터에서 지내면서 1년 만에 꿈과 방향성을 찾았습니다. 비전과 꿈이 생기니까 공부를 열심히 했고 이번에 동남보건대 치기공과에 합격했습니다. 또 한 친구는 하사관으로 입대했습니다. 가정 밖, 학교 밖 청소년들이 군포하나로남자중장기청소년쉼터에서 보호받고, 쉼을 얻고, 비전과 꿈을 찾아 사회로 나가고 있습니다. 군포하나로남자중장기청소년쉼터가 지역사회에 좋은 소문이 났는지 어떤 분이 거액의 후원금을 기부해주시기도 했습니다.” 다양한 기관, 신규 수탁까지 온누리복지재단이 할 일이 참 많아 보입니다. 새해 세상의 소금과 빛을 꿈꾸는 온누리복지재단의 비전과 계획이 무엇입니까? “온누리복지재단의 존재 이유는 ‘이웃을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신 이웃을 위해’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는 게 온누리복지재단의 존재 목적이자 설립이유입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온누리교회 목회적 방향과 온누리복지재단의 방향이 일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명과 가정을 살리는 교회의 목회적 방향을 온누리복지재단도 함께하기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9월 ‘서초구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와 ‘서초1인가구지원센터’를 온누리복지재단이 수탁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온누리복지재단이 가정 분야에도 진출한 만큼 가정을 살리고, 건강한 사회와 국가를 이뤄가는 일에 보탬이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장학사업도 확대하고자 합니다. 2000선교본부와 협업해서 기업의 후원금을 후원받아 그 기금으로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는 ‘온누리복지재단 장학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저는 온누리복지재단 장학위원회의 역할과 기능을 더욱 확장하고 싶은 계획이 있습니다. 각 기업에서는 수익금의 일부를 복지기금이나 공익사업기금으로 책정해놓았습니다. 그 기금을 온누리복지재단에 후원하도록 제안할 생각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더 많은 청소년에게 꿈을 심어주고, 밝은 미래를 선물할 수 있습니다. 장학지원사업도 확대할 수 있습니다. 취약계층을 더 많이 더 따뜻하게 섬길 수 있습니다.” 온누리교회 성도님들께 당부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가 온누리복지재단 대표이사로 섬기기 시작할 때 이재훈 담임목사님이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고후 4:5)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온누리복지재단은 더욱 철저하게 투명하고, 더욱 정직하고, 더욱 건전하게 운영할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는 것이 온누리복지재단의 역할이자 소명이기 때문입니다. 더 낮아지고, 더 녹아지고, 더 스며들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온누리복지재단이 되겠습니다. 온누리복지재단 가족 370명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의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섬기겠습니다. 성도님들께서도 온누리복지재단에 더 많이 관심 가져주시고, 기도해주시고, 후원해주십시오. 물질기부, 재정기부, 재능기부 등으로 함께 해주십시오.”
2022-01-08 제1376호
세상의 소금과 빛! 2021-22 작은예수 40일 새벽기도회 시작 12월 13일~1월 21일 오전 6시 각 캠퍼스 본당 2021-22 작은예수 40일 새벽기도회가 시작된다. 12월 13일(월)부터 내년 1월 21일(금)까지 온누리교회 모든 캠퍼스 본당에서 오전 6시에 진행된다. 이번 작은예수 40일 새벽기도회의 주제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다. 메시지는 이재훈 담임목사, 박종길 목사(서빙고온누리교회), 이상준 목사(양재온누리교회), 이기원 목사(회복사역), 강동진 목사(보나콤공동체 대표), 이주연 목사(산마루교회), 김규철 대표(NIBC), 이기훈 목사(사회선교), 노규석 목사(온누리M미션), 천종호 판사가 전한다. 작은예수 40일 새벽기도회는 예배당 예배와 영상 예배(유튜브, CGNTV)로 참여하면 된다. 서빙고온누리교회 새벽기도회 실황을 모든 캠퍼스에 송출한다. 작은예수 40일 새벽기도회 기간 동안 온누리교회에서는 순별 단체채팅방을 활용해서 말씀과 중보기도 등에 참여하도록 독려할 방침이다. 교회에서 매일 문자메시지로 새벽기도회 메시지, 중보기도제목 등을 순장에게 발송한다. 순장은 순원들과 함께 순별 단체채팅방에서 새벽기도회 은혜를 ‘한줄 기도문’으로 나누고, 중보기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된다. 요일별 중보기도도 한다. 월요일 나라와 민족, 화요일 차세대와 대학청년부, 수요일 선교, 목요일 교회, 금요일 가정을 주제로 중보기도한다. 특순도 풍성하다. 주찬양, 주사랑, 주향한, 장로합창단, 주기쁨, 대학청년부, 권사합창단, 차세대, 워십콰이어, 일본어예배, 버금콰이어, 샤이닝키즈, 온사랑합창단, 교역자합창단이 특순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재훈 담임목사는 지난주일 예배에서 “한 해를 기도로 마무리하고, 새로운 한 해를 기도로 시작하는 작은예수 40일 새벽기도회에 온누리교회 모든 성도들이 참여하기를 바란다”고 권면했다. 작은예수 40일 새벽기도회에 대한 성도들의 기대감이 벌써 고조되고 있다. 조항진 장로(서빙고공동체)는 “작은예수 40일 새벽기도회에 참석하면서 고난 중에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하며 한 해를 마무리하고, 소망의 주님과 친밀하게 교제하는 새해가 되면 좋겠다”고 했고, 서승옥 권사(고양은평공동체)는 “작은예수 40일 새벽기도회에 적극적으로 참석해서 이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나에게 주시는 말씀에 집중하는 새해를 맞이하고 싶다”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 정현주 기자 joo@onnuri.org
2021-12-05 제1371호
코로나19와 학교폭력 / 시공간 가리지 않는 폭력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야 코로나19와 학교폭력 시공간 가리지 않는 폭력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야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 단계에 맞춰 학교에도 변화가 생겼다. 지난 11월 22일부터 수도권을 포함한 전국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전면등교를 시작했다. 모처럼 학교에 활기가 도는 것 같다. 그런데 우려되는 일이 있다. 대면수업이 전면 시행되면서 학교폭력이 다시 급증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폭력은 온라인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사이버 학교폭력이 증가하고 있다. 학교폭력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어린 영혼들을 괴롭히고 있다. 학교폭력은 아이들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 교회와 어른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도움이 절실하다.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어려웠다. 학교폭력 기사를 작성하는 것 말이다. 학창시절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제는 정말 괜찮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때때로 떠오르는 기억이 기자의 마음에 자꾸 생채기를 냈다. 그 상처가 쉽게 아물지 않는다. 기자가 중학교 2학년 때 일이다. 아빠가 사역지를 옮기면서 3학년 새 학기를 얼마 남기지 않고 전학을 갔다. 모든 학교가 그렇듯이 학생들은 전학생에게 관심이 많았다. 기자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가 금세 학교에 퍼졌다. 문제는 기자가 1형 당뇨 환자라는 소문이 퍼진 것이다. 그때만 해도 생소한 병명에 아이들의 관심이 더 많이 쏠렸다. 짓궂은 아이들 몇 명이 “쟤 단 거 많이 먹으면 쓰러진대. 한 번 먹여보자”라는 말을 하고 다녔다. 지금 같으면 가볍게 무시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사춘기라 그랬는지 그 말이 정말 큰 상처였다. 한동안 방학이 얼른 찾아오기를 바라면서 잔뜩 주눅 든 채 학교에 다녔다. 밥 먹기 전에 꼭 맞아야 하는 인슐린 주사를 학교 화장실에 숨어서 맞았다. 그 짓궂던 아이들은 기억조차 못 할 그 말을 기자는 12년이 지난 지금까지 곱씹는다. 기자는 늘 학교폭력 피해자였을까? 그건 또 아니다. 기자의 학창시절을 곰곰이 돌아보면 때때로 방관자 위치에 있었고, 어느 날은 가해자가 되기도 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우리 반에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잘 씻고 다니지 못하는 친구가 한 명 있었다. 다른 친구들이 그 친구에게 냄새가 난다며 괴롭힐 때 모른 채 지나갔다. 반에서 함께 앉을 짝꿍을 바꾸는 날이면 그 친구와 앉기 싫다고 말하는 친구들 틈에 끼어서 “나도”라고 한마디 보탠 적도 있다. 크든 작든 학교폭력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한 날이 많았다. 그 어릴 적 상처와 기억들은 어른이 된 지금까지 기자를 괴롭힌다. 24시간 멈추지 않는 괴롭힘 ‘사이버불링’ 기자의 상처와 부끄러운 과거를 서두에 쓴 이유가 있다. 누군가는 별일 아니라고, 그냥 장난이라고 넘어가는 일이 누군가에는 씻지 못할 상처가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기자가 겪은 일이 10여 년 전인데 아직도 학교폭력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해를 거듭할수록 오히려 심각해지고 있다. 학교폭력 강도가 더 심해지고, 피해는 더 짙어지고 있다. 올해 1월 교육부가 발표한 ‘2020년 학교폭력 실태 전수조사’ 결과에 따르면, 초중고등학교 학생 295만 명 중에서 9천 3백명이 “학교폭력 가해 경험이 있다”고 했고, 2만 6천9백명은 “학교폭력 피해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보복이 두려워서 조사에 응하지 않은 학생도 적지 않으리라고 추정한다. 문제는 학교폭력이 학교 장면을 넘어 온라인에서까지 이어진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를 기점으로 사이버불링(Cyber Bullying: 가상공간을 뜻하는 ‘사이버’와 집단따돌림을 뜻하는 ‘불링’을 합해서 생겨난 신조어. 사이버상에서 특정인을 집단적으로 따돌리거나 집요하게 괴롭히는 행위)이라 불리는 학교폭력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지난 7월 22일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표한 ‘코로나19 이후 사이버 학교폭력 실태 및 개선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학교폭력 피해 유형 중에서 전년 대비 사이버 학교폭력 증가 폭이 가장 큰 것으로 조사됐다. 언어폭력은 2019년 35.6%에서 2020년 33.6%로 2% 감소했고, 집단따돌림은 2019년 23.2%에서 2020년 26%로 2.8% 증가했다. 사이버 학교폭력은 2019년 8.9%에서 2020년 12.3%로 1년 사이 3.4%나 증가했다. 코로나19로 대면수업이 줄어들면서 학교 장면에서 일어나던 언어폭력, 스토킹(8.7%→6.7%), 신체폭력(8.6%→7.9%), 금품 갈취(6.3%→5.4%), 강요(4.9%→4.4%), 성폭력(3.9%→3.7%) 등의 물리적인 폭력은 줄었지만, 온라인에서 새로운 폭력 형태가 많이 나타났다. 사이버 학교폭력 문제가 심각한 이유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시도 때도 없이 폭력에 노출된다. 흔히 사용하는 모바일 메신저(카카오톡, 페이스북 메신저 등)와 SNS(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인터넷 카페 등)에서 사이버 학교폭력이 이뤄진다. 피해 학생을 단체채팅방에 초대해서 비하하는 발언이나 욕설 등을 게시하기도 하고, 성적 수치심을 주는 사진이나 영상을 촬영해서 올리기도 한다. ‘떼카(카카오톡 단체채팅방에 피해자를 초대한 다음 단체로 욕설과 비난을 하는 행위)’, ‘방폭(카카오톡 단체채팅방에 피해자를 초대한 다음 한꺼번에 나가버려 피해자만 남겨놓는 행위)’, ‘카톡감옥(욕설을 참지 못한 학생이 단체채팅방을 나가면 끊임없이 초대해서 괴롭히는 행위)’, ‘와이파이 셔틀(스마트폰 핫스팟 기능을 이용해서 피해자의 데이터를 빼앗아 금전적 손해를 입히는 행위)’, ‘기프티콘 셔틀(피해자에게 억지로 기프티콘을 선물하도록 강요하는 행위)’, ‘안티 카페(피해자를 비방하기 위한 카페를 만들어서 험담하는 행위)’ 등이 모두 사이버 학교폭력의 예다. 우리나라 청소년 중에서 사이버 학교폭력으로 인해 ‘청소년 모바일센터’에 상담을 요청하는 사례가 최근 4년 사이 50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처럼 사이버 학교폭력의 피해가 상당한데도 아직도 많은 사람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그 경험이 쌓일수록 청소년들은 폭력에 더욱 무감각해진다. ‘청소년 사이버폭력의 유형분석 및 대응방안 연구’ 결과에 따르면, 온라인 폭력 가해자 중에서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한 학생들이 학교급이 올라갈수록 증가했다. 초등학생은 27%, 중학생은 39.9%, 고등학생은 49.5%가 잘못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그에 반해 24시간 쉬지 않고 온라인에서 피해에 노출되는 피해 학생은 우울증, 대인기피증, 학습장애 등 심각한 정신적 트라우마를 입는다. 스마트폰 알림이 울리면 맥박이 빨라지거나 숨이 거칠어지는 등 신체적인 증상도 빈번하게 나타난다. 교회와 어른들의 끊임없는 관심과 적극적인 도움 필요 학교폭력은 아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친구들끼리 장난으로 여기던 시대는 지났다. 교회와 어른들의 끊임없는 관심과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푸른나무재단에서 발표한 ‘2021 전국 학교폭력·사이버폭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학교폭력피해자 학생이 피해를 호소할 수 있는 사회적 대응 시스템이 너무 약하다. 학교폭력 피해 이후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응답한 학생이 18.8%나 됐다. 학교폭력 가해 이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답한 학생은 21.5%를 차지했다. 선생님이나 부모님에게 도움받지 못하고, 잘못해도 혼나지 않은 학생 비율이 너무 높다. 기자가 학교폭력의 피해, 가해 경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교회와 어른들의 관심과 도움 덕분이었다. 새 학기 자기소개 시간에 기자가 직접 친구들에게 1형 당뇨 환자인 것을 밝히고 1형 당뇨를 설명하는 시간을 마련해주셨던 국어선생님이 계셨다. 그 시간 이후 친구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으면서 남은 중학교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잘 씻지 못해서 따돌림당하던 친구를 눈여겨보던 담임선생님이 기자와 몇 명 친구를 따로 불러 그 친구를 부탁하셨다. 그 친구의 상황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셨고, 우리의 잘못을 따끔하게 혼내셨다. 그 친구를 도울 방법을 일러주셨다. 그날 이후 그 친구에게 기자를 포함한 몇 명의 친구들이 생겼다. 학교는 학생들이 사회성을 기르고, 인간관계를 배우고, 자아정체성을 확립하는 곳이다. 학창시절은 사회인으로서 꼭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그래서 학교를 작은 사회라고 부른다. 아이들의 작은 사회가 더 단단해질 수 있도록, 더 넓은 사회를 경험하고 살아가는 교회와 어른들의 관심과 도움이 꼭 필요하다.
2021-11-27 제1371호
정말 힘들었지만 도전할 수 있었던 이유! [도전하는 크리스천을 응원합니다' 장문석 장로가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삶 그리고 신앙 <장문석 장로(에코니티 대표)가 에코니티 멤브레인 필터 전시장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부드럽고 신사답다. 조곤조곤한 말투에서는 따뜻함이 묻어있었다. 삶과 비전 그리고 신앙을 말할 때에는 눈빛부터 달라졌다. 강단 있고 단단했다. 기자가 만난 장문석 장로(강남A공동체)의 인상이다. 장문석 장로는 분리막(멤브레인) 수처리 전문회사 에코니티(주)의 대표다. 세계적인 대기업(수에즈, 듀퐁, 미쓰비시레이욘 등)이 시장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이 분야에서 토종 중소기업으로서 어깨를 겨루고 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수처리 전문회사를 만든 장문석 장로를 만나 창업 비화와 비전, 신앙훈련으로 거듭난 삶의 고백을 들었다. 너무 힘든 시대를 사는 이 시대 청년들을 향한 메시지가 담겨있다. / 정현주 기자 joo@onnuri.org ‘분리막(멤브레인) 수처리’라는 용어가 낯설다. 머리카락 두께 200분의 1크기의 아주 미세한 구멍으로 하수를 통과시켜 여과시키는 기술 및 공정을 말한다. 쉽게 말해 ‘멤브레인’이라는 필터 기술을 이용해서 하수를 깨끗한 물로 여과하는 기술이다. 장문석 장로가 에코니티 회사를 창업한 것은 1998년이다. IMF 때였다. “IMF 때 다니던 회사가 망했습니다. 다른 회사에 취직할까, 창업해서 새 출발 할까 고민하다 창업을 선택했습니다. 요즘 말로 ‘영끌’해서 회사를 차렸습니다.” 장문석 장로가 다니던 회사는 그의 큰아버지가 창업한 회사였다. 그 충격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큰아버지가 평안남도 출신인데 1924년 고향에서 양조(釀造)장을 세우셨습니다. 6.25 한국전쟁 당시 이북에서 부산으로 피난 오셔서 다시 양조장을 만들고 키우셨는데, 23개 계열사를 거느린 대기업이 되었습니다. 큰아버지를 비롯해서 아버지와 어머니, 친척들이 모두 그 회사를 위해서 일했습니다.” 온 집안 식구들이 가업에 열과 성을 쏟았다. 그렇게 세운 가업이 IMF 때 한순간에 무너졌다. 설상가상 가족을 잃는 슬픔마저 겪어야 했다. “1998년 화의에 들어갔고, 5년 뒤 경영권이 완전히 다른 기업으로 넘어갔습니다. 어머니는 온 가족이 일구고, 자신도 몸 바쳤고, 자식들이 대를 이어 물려받을 줄 알았던 회사가 완전히 날아갔다는 충격에 쓰러지셨고 소천하셨습니다.” 온 식구가 매달려 일군 가업이 다른 회사에 넘어간 일이 얼마나 안타깝고 속상했을까? 그런데 장문석 장로가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그 일 덕분에 제가 하고 싶은 회사를 창업해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합니다.” 힘들고, 어렵고, 지칠 때마다 교회에서 배운 대로, 성경에서 가르치는 대로 장문석 장로는 호기롭게 회사를 창업했다. 그러나 회사 운영은 마냥 순탄치만은 않았다. 어려움이 많았다. “저는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입니다. 그래서 저를 아는 모든 사람이 창업을 반대했습니다. 제가 회사를 만들면 망한다고 걱정하셨습니다. 사업하면서 만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가 사업가 유형(type)이 아니라고 만류하더라고요.” 장문석 장로가 성향에도 맞지 않는 사업을 지금까지 끌어올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일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가 아니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습니다. 제가 회사를 경영하면서 느낀 것은 교회에서 배운 대로, 성경에서 가르치는 대로 사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경영하거나 내 힘으로 하려고 하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장문석 장로는 교회에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여느 가부장적인 아버지들과 마찬가지였다. 아내와 자식들에게 무뚝뚝한 남편이자 아버지였다. “당시 저는 신앙으로 인생의 문제를 극복한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아내가 교회에 가자고 해서 온누리교회에 오긴 했는데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아내 혼자 순예배에 참석하고 저는 가지 않았습니다.” 장문석 장로가 변화된 것은 2003년이다. 두란노아버지학교를 다니면서부터 조금씩 달라졌다. “내 또래 남자들이 모여서 안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가족들에게 그 말을 하라고 숙제를 내주더라고요. 정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두란노아버지학교를 수료하고 스태프로 섬기면서 장문석 장로의 신앙이 대전환점을 맞았다. “두란노아버지학교 스태프 기도모임을 갔는데 그곳에 온 남자들이 그동안 제가 알던 세상의 남자들과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기도를 정말 많이 하고, 헌신적으로 섬기는 그분들을 보면서 속으로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여러 가지 신앙훈련을 받으면서 제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저녁 교회에 가고 있더라고요. 매일 교회에 가면서 술 마실 시간이 없어져서 끊게 되었습니다(웃음). 제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바로 그 사람이 되어 있더라고요. 저의 변화를 가장 기뻐한 것은 아내와 아이들입니다. 딱딱하고 가부장적인 아버지에서 아들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는 친구 같은 관계가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받은 신앙훈련은 사업의 고비마다 그가 넘어지지 않는 길라잡이가 되어주었다. 포기하지 않는 용기를 배웠다. “한번은 제가 너무 힘들었을 때 교회 지체들이 저에게 계속 ‘용기 내라’는 말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그분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저를 위로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얼마나 큰 힘이 됐는지 모릅니다. 제가 회사를 포기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입니다.” 또 회개하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바라시는 회사의 방향을 설정할 수 있었다. “교회에서 여러 신앙훈련을 하면서 제가 배운 것이 ‘회개’입니다. 사람들은 어떤 일이 잘 안 되면 ‘너 때문에 안 됐다, 나라가 문제야’라고 남 탓을 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회개하면서 남 탓할 게 아니라 저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회사가 어려워진 이유를 남이 아니라 제 안에서 발견했습니다. 2015년 매출이 반 토막 나면서 대규모 적자가 난 적이 있었습니다. 설상가상 3년 동안 엔지니어링(설계)한 현장에서 클레임(이의제기)까지 발생했습니다. ‘회사도, 집도 다 날라갈 수 있겠구나’ 싶어서 정말 큰 두려움과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그때 제가 회개를 했습니다. ‘완벽하지 않은 제품을 과대포장해서 팔았구나, 절대 과대포장이나 과대광고하지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사업하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없는 것도 있어 보이게 과장하고, 마케팅해야 물건이 잘 팔린다는 것을 말이다. 회사의 큰 위기 속에서 장문석 장로는 회개하며 회사의 나아갈 방향을 뒤집었다. 직원들 간에 발생하는 커뮤니케이션 오류와 갈등도 교회에서 배운 것을 적용해서 해결했다. “임원들과 직원들의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오류가 많았습니다. 그때 교회에서 지체들이 서로 협력하고, 섬기는 것처럼 직원들과 대화하며 갈등을 풀려고 노력했습니다. 교회에서 배운 대로 하는 게 답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바로 그것이 창업 멤버 4명이 회사를 그만두지 않고 지금까지 함께하는 비결이다. 온 국민이 힘들어하던 IMF때 가업이 망했다. 절망하거나 현실에 안주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고비마다 신앙의 힘으로 버티고 이겨냈다. 장문석 장로가 유난히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많이 힘들어서 좌절하고, 모험하는 것을 주저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 될 거라고 미리 단정하지 말고 끝까지 도전하십시오.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를 내십시오. 그 과정에서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패도 경험입니다.” 모두가 안 된다고 반대할 때, 장문석 장로는 스스로 단정 짓지 않고 끝까지 도전했다. 힘든 일이 정말 많았지만 두려워하지 않았다. “용기 내”라고 격려해주는 믿음의 지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도전은 계속됐고, 교회에서 배운 대로 적용한 덕분에 지금의 그가 존재하게 되었다. “선한 기업이 우수한 기업을 만듭니다. 우리 회사가 선한 기업이 되어서 다른 회사를 변화시켰으면 좋겠습니다. 아내에게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잘 참아준 아내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2021-11-27 제1370호
[2021 회복축제] 팬데믹을 이기는 힘은 ‘예수 그리스도!’ 온누리회복축제 2,852명 참석(3일 합계/ 현장 1,093명, 온라인 1,759명)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불안과 정신적 아픔(어려움)을 극복하는 힘은 예수 그리스도다. 마음과 정신을 치유하고, 관계를 회복하는 방법도 예수 그리스도다. 2021 온누리회복축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아픔 마음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은혜의 장(場)이었다. 지난 11월 17일(수)부터 19일(금)까지 온누리회복축제가 ‘팬데믹을 이기는 힘’을 주제로 막 올랐다. 서빙고온누리교회 본당과 온라인(Zoom)으로 진행된 집회에는 성도 2,852명(3일 합계/현장 1,093명, 온라인 1,759명)이 참석했다. 11월 17일 ‘마음의 치유’ 집회 첫날부터 상처받은 마음을 인지하고 치유했다. 포문은 이재훈 담임목사의 오프닝 메시지가 열었다. 이재훈 담임목사는 “구원이 곧 회복”이라며 “하나님을 바라보고, 구원으로 가는 여정으로 나아갈 때 진정한 회복을 경험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첫 번째 강의는 박성심 사모(미국 심리치료사, 결혼과가족 상담가)가 ‘네 안의 아이들을 내게 오게 하라’를 주제로 했다. 박성심 사모는 “우리 안에 트라우마에 반응하는 고통받는 아이들(안간힘을 쓰는 아이, 울고 있는 아이, 공포에 얼어붙은 아이, 굴복하는 아이, 도망가는 아이 등)이 있는데 그 아이들이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살려달라고 도움을 구하면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신다”고 강조했다. 덧붙여 “아픔과 고난을 겪을 때마다 우리를 예술작품으로 만드시는 하나님, 금가루를 뿌리시는 하나님, 비전의 하나님, 늘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이 있음을 기억하라”고 권면했다. 박상미 소장(더공감마음학교)은 ‘마음과 관계의 회복’을 주제로 강의하면서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는 방법을 소개했다. 박 소장은 “크리스천들이 마음의 병(우울, 무기력, 불안, 트라우마, 강박)을 앓는 이유는 믿음이 부족해서도, 의지력이 약해서도, 마귀의 시험에 빠져서도, 기도가 부족해서도 아니다”라고 위로했다. 그러면서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상처 입은 치유자’를 제안했다. 그 이유는 “고통의 터널을 먼저 건넌 경험이 있는 사람이 가장 좋은 치유자가 될 수 있고, 고통으로 힘들어하는 사람과 함께 울어주고, 따뜻하게 손잡아주고, 함께 기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11월 18일 ‘정신의 치유’ 온누리회복축제 둘째 날에는 ‘정신의 치유’를 주제로 강의가 이어졌다. 박성덕 소장(연리지부부가족연구소)이 ‘거리 좁혀서 극복하라’를 주제로 강의했다. 박 소장은 “코로나19는 두려움과 경계심을 증가시키고, 갈등과 고립을 유발하며, 이로 인한 우울과 불안증세를 낳는 위기의 악순환을 초래했다”고 진단하고 “혼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서로 강하게 결합할 때 비로소 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덧붙여 “나를 가장 잘 알고, 가장 친한 친구이자 부모, 안식처이자 반석이며, 언제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사랑과 생명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할 것”을 당부했다. 오원웅 박사(마음공장심리코칭연구원 원장)는 ‘사랑의 비용을 지불하는 치유의 공동체’를 주제로 강의했다. 오 박사는 “코로나19로 인해서 사람 간의 접촉을 꺼리고, 타인의 고통에 둔감해진 게 사실”이라며 “그러나 예수님은 나병 환자를 고치실 때 그들에게 손을 대서 고치셨는데; 그 마음이 코로나19 팬데믹을 이기는 힘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고통 받는 사람을 보듬고, 지켜주고, 책임지고, 치유의 기적을 일으키는 교회와 공동체가 되어달라”고 부탁했다. 11월 19일 ‘관계의 회복’ 온누리회복축제 셋째 날에는 ‘관계의 회복’에 대한 메시지가 선포됐다. 최의헌 박사(연세로뎀정신의학과의원 원장)가 ‘불확실한 미래를 준비하는 마음과 관계회복’을 주제로 강의했다. 최 박사는 “모든 미래는 불확실하고, 불확실성의 영역이야말로 하나님의 영역”이라며 “상처 입은 마음과 관계회복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하되, 그 결과는 하나님께 달렸음을 믿고 고백한다면 불확실한 미래를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마지막 강의는 이기원 목사(회복사역본부장)가 ‘친밀한 관계의 힘’을 주제로 했다. 이기원 목사는 “관계는 훈련이고, 관계훈련은 절대로 혼자서는 안 된다”면서 “주님과 함께, 공동체, 믿음의 지체, 교회와 함께 친밀한 관계를 회복하는 훈련을 하면서 코로나19 팬데믹을 이겨나가기를 바란다”고 권면했다. 윤정순 권사(서초B공동체)는 “내 안에 있는 상처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영적 전쟁을 일으킬 때마다 나를 잘 보살피고, 다독여주고, 위로해주는 연습을 하면서 이 위기와 고통을 이겨내겠다”고 다짐했다. 김승진 집사(관악공동체)는 “상처받은 마음을 회복하는 크리스천의 방법은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 것임을 새삼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 정현주, 홍하영 기자 팬데믹, 이렇게 승리하겠습니다! 온누리회복축제에서는 정신건강 전문가들의 강의뿐만 아니라 소그룹 나눔도 이어졌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어떠한 어려움을 겪고 있고, 그 어려움을 어떻게 이겨낼지를 다짐하는 자리였다. 그 내용을 소개한다. / 편집자 주 감사 그리고 함께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많은 이들이 다양한 이유로 힘들어하고 있다. ‘관계’의 어려움이 큰 것 같다. 가정에서 많은 시간을 머물러야 하는 아이들과의 관계가 어렵고, 코로나19를 대처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을 응대하느라 힘들고 경제적 손실을 메꾸느라 지칠 대로 지치고 예민해진 남편과의 관계도 어렵다. 단조롭고 반복되는 주부의 일상을 살면서 무기력을 경험하기도 한다. 또한 교회 사역이 온라인으로 전환되면서 생기는 다양한 상황에 적응하고 대처하기도 쉽지 않았다.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기술(영상 촬영 및 편집, 줌(Zoom) 사용법, PPT 활용, 유튜브 운영, 영상송출 프로그램 등)을 배우는 것도 힘들었다. 새로운 도구를 다루면서 생기는 미숙함, 두려움, 실수하지 않으려는 긴장감과 스트레스도 굉장했다. 여러 사람의 피드백을 끊임없이 들어야 하는 부담감도 상당했다. 사역과 가정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가족들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어려움도 감내해야 했다. 이 어려움은 현재진행형이다. 온라인으로 사역을 하면서 소통의 어려움도 많이 느끼고 있다. 갈등과 오해가 생겨도 온라인에서는 함께 안아주고, 격려하고, 식사교제 하면서 오해를 풀 수 없기 때문이다. 억울한 시간을 보낼 때도 있었다. 역설적인 상황도 있다. 외출하면서 쓰는 시간과 에너지가 절약되어서 코로나19 이전보다 도리어 많은 관계 속으로 들어갔던 것 같다. 평일 저녁 외출이 부담스러워서 한 번도 참여하지 못했던 양육과정(OBC)을 수강했고, 온라인(Zoom) 큐티방과 성경통독 소그룹 모임도 지속했다. 이 힘든 시기 가장 큰 도움은 ‘관계기술훈련학교’에서 들은 강의였다. 관계기술훈련학교 과제를 일상에서 훈련한 것이 주효했다. 매일 감사일기를 쓰는 것이 힘든 일상과 상황을 이기는 도구였다. 불안하고, 힘든 상황에서도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고, 감사를 고백하면서 감사가 기도가 되고, 찬송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나님의 다스림과 인도하심을 믿고 확인하는 하루를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가장 큰 축복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번 온누리회복축제에서 전문강사들이 애타는 심정으로, 때로는 울먹이며 강의하는 모습을 보면서 새로운 소망을 갖게 되었다. 나는 다소 예민한 편이다. 내 이야기를 사람들과 나눌 때 눈물 흘릴 때가 많다. 그래서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곤 했다. 움츠러들 때도 많았다. 그러나 강사님들의 말씀처럼 상처 입은 치유자는 상처가 온전히 회복된 사람만이 아니라 상처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에 공감하고, 위로할 수 있다. 누군가의 상처와 아픔을 고스란히 느끼고 공감해주는 조력자이자 치유자가 될 수 있다는 소망을 갖게 되었다. 상처와 아픔이 치료되는 경험을 하고, 좋은 치료를 안내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나의 약함과 상처를 드러내고, 회복하는 과정을 멈추지 말아야겠다. 생각지 못한 순간 우울과 무기력이 찾아와 몹시 힘들었던 적이 있다. 거기서 벗어나려고 얼마나 절박한 마음으로 몸부림쳤는지 모른다. 그때마다 나를 회복시켜준 힘이 ‘함께’였다. 때로는 엄마같이, 때로는 언니같이 나와 함께해 준 이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 이번 온누리회복축제에서 나는 소그룹 조장으로 섬겼다. 우리 조에는 어린 자녀를 둔 엄마가 5명이 있었다. 아이가 장염에 걸려 현장에 올 수 없는 엄마, 어린 자녀와 함께 화면에서 인사하는 엄마, 아이 낮잠 시간에 참여하는 엄마 등 각자의 사연을 들으면서 그들이 얼마나 절박하고 절실한 마음으로 온누리회복축제에 참여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공감하고, 위로하고, 함께할 수 있어서 좋았다. 앞으로도 누군가를 위로하고 공감하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들과 함께하며 살아갈 힘을 주고 싶다. 우리 가족들에게도 그런 아내이자 엄마가 되려고 노력할 것이다. 앞으로도 도망가고 싶은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때마다 피난처 되신 예수님께 나아가 머무르는 기술을 적용할 것이다. / 이윤희 성도(경기A공동체, 관계기술훈련학교 트랙3) 한결같은 하나님 사랑으로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이 시작되고 벌써 2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몇 달이면 나아지겠지 생각했던 기대가 좌절로 바뀌었다. 진행하려 했던 일들과 사역의 길이 막히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단절되면서 답답함과 좌절감을 느꼈다. 지난해부터 재정적인 어려움이 연거푸 찾아와 어찌할 바를 알지 못했다. 우울감이 깊어졌고, “빨리 주님께 가고 싶다”는 말을 남편과 나누는 날이 많아졌다. 하늘을 보고 농담처럼 “오늘 주님 오시기에 딱 좋은 날인데”라고 말하면서 웃어보려 애썼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는 힘들 때마다 사람들을 찾아가서 하소연하거나 쇼핑과 운동 등 취미생활을 했다. 그렇게 내면의 어려움을 외부로 돌릴 수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정에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서 관심을 외부로 돌릴만한 에너지마저 잃어버렸다. 공황장애 증세까지 나타났다. 상담 치료와 주변 사람들의 기도, 도움으로 조금씩 나아졌다.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이 임마누엘 일기다. 매일 임마누엘 일기를 쓰면서 남편과 교제했다. 관계기술훈련과 임마누엘 일기 쓰기는 코로나19 팬데믹 전부터 집중적으로 훈련했다. 이 어려운 상황을 이겨나가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예방주사를 맞혀 주신 것 같다. 임마누엘 일기 쓰기 덕분에 내면에 집중하면서 어려운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다. 트라우마를 깨닫고, 그 아픔을 직면하는 방법도 배웠다. 무엇보다 긴 터널 같은 어둠 속에서도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언제나 주님께서 함께 해주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은 내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다. 나는 여전히 부족하지만 관계기술학교 조장으로 섬기면서 다른 사람의 회복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이번 온누리회복축제는 관계기술학교의 연장선이었다. 첫날 강의부터 강한 울림이 있었다. 박성심 사모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안에서 나를 채찍질하고 있던 아이의 정체를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나는 왜 쉬지 못하고, 어떤 잘못도 용납하지 못했는지 선명하게 알 수 있었다. 상처를 한 가득 안고 있는 자라지 못한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려 한다. 주님과 함께 그 아이와 함께 머무르면서 그 아이의 짐을 주님 발 앞에 내려놓는 작업을 할 것이다. 박상미 소장님 강의를 들으면서 “그동안 살아있어 준 것만으로도 수고했다”는 주님의 마음이 느껴졌다. 눈물이 왈칵 터졌다. 트라우마로 힘들어하는 내게 사람들이 “왜 그것밖에 못 하냐”, “언제까지 그렇게 살거냐”며 비난했었다. 나조차 그 말이 옳다고 여기고 있었다. 사실은 누군가 나를 인정해주고 용납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 크신 하나님이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를 건네시면서 나를 용납하시고, 인정해주시니까 얼어있던 마음이 눈 녹듯 풀어졌다. 이 경험을 남편과 나누고 싶었다. 남편에게 “숨 쉬고 살아있어 준 것만으로도 고마워”라고 했다. 남편도 이해를 받아서 그런지 마음이 풀어지는 듯했다. 주님께서 내 안에 친정아버지에 대한 긍휼의 마음도 부어주셨다. 아버지 전도를 위해서 오랜 시간 기도해왔다. 그러나 변화되지 않는 아버지의 모습에 실망하고 속상했다. 그 마음을 하나님께 솔직히 털어놓았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내가 일하니까 너는 쉬라”고 말씀하셨다.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친정아버지를 올려드릴 수 있었다. 앞으로 또 어떤 고난과 시련이 닥칠지 모른다. 그러나 한결같이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그 고난을 이길 힘을 주신다. 그리고 나와 함께 하신다. 그 어려움을 넉넉히 이길 수 있도록 넘치는 사랑을 부어주실 하나님을 찬양한다. / 홍현정 성도(강남D공동체, 관계기술훈련학교 트랙1 조장) <온누리교회 회복사역 소개> □ 금요회복예배 _매주 금요일 오후 7시 20분 _서빙고온누리교회 본당(유튜브 중계) □ 한마음정신회복예배 서빙고 _매주 주일 오전 11시 20분 _서빙고 선교관 101호 및 온라인(Zoom) 양재 _매주 주일 오전 11시 30분 _양재 트리니티 304호 및 온라인(Zoom) □ 월요어노인팅집회 _매주 월요일 오후 7시 30분 _서빙고 비전홀 □ 내적치유학교 _내면의 상처와 아픔을 성경 말씀과 기도로 치유하고 회복하여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변화와 성장을 이루는 학교 _62기 내적치유학교(Zoom): 12월 10일~11일 / 12월 17일~18일 오후 3시~9시 □ 프리덤스쿨 _‘나는 누구인가?’ 각 개인의 부르심과 삶의 목적(Original Design)을 이해하고 진정한 정체성과 참된 자유를 찾는 여행의 과정 _매년 4월, 10월(10주 일정) □ 관계기술훈련학교 _영적으로 성숙한 그리스도인, 관계와 감정이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은 온유한 보호자가 되는 기술들을 훈련하는 학교 _매년 4월, 10월(8주 일정) □ 정서적으로 건강한 영성훈련 EHS _진정한 삶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영성의 비밀. 정서적 건강과 영적인 성숙을 통합하여 예수님과의 깊은 인격적 관계와 진정한 삶의 변화 누리기 _매년 3월, 10월 개강(8주 일정) □ 어린이 부모 성장학교 하트스쿨 _자녀의 정체성 회복과 부모자녀 간의 관계회복을 위해 미술, 음악, 놀이 등 예술과 예배를 통한 어린이의 회복과 전문강의를 통해 건강한 부모 역할을 돕는 학교 _대상: 초등학교 1~6학년 및 부모 _매년 4월, 9월(8주) □ 청소년 부모 성장학교 파워임팩트 _청소년들을 건강한 자아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으로 성장하게 하고 부모와 자녀관계를 회복하도록 도우며,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기쁨과 자유를 누리는 가정이 되도록 돕는 학교 _대상: 중학교 1학년~고등학교 3학년 및 부모 _매년 6월, 10월(아웃리치 있음) □ 치유와 기름부음스쿨 _예수님의 이름으로 치유를 원하는 사람, 치유의 은혜를 나눠주기 원하는 사람, 성령의 기름부음을 사모하는 사람을 위한 학교 _매년 4월, 10월 개강 □ 회복소그룹 _6~10명 내외의 참여자들이 비밀유지가 보장된 안전한 공간에서 각자의 삶을 진솔하게 나누며, 그 삶을 성경적으로 조명하며 변화와 성숙을 도모하는 모임 _일정: 매년 4월, 10월 □ 상담센터 _인생의 여정 가운데 심리적, 관계적, 영적 문제를 해결하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성잘할 수 있도록 기독교 전문 상담가들이 성경적 관점과 전문성을 통해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상담센터 _상담방법: 개인상담, 부부상담, 가족상담, 청소년상담, 집단상담, 심리검사, 미술치료 _운영시간: 화~금요일 오전 10시~오후 5시 토~일요일 오전 10시~오후 3시 _서빙고 02-793-2997~8, 양재 02-570-7536~7(사전예약 필수) □ 회복사역 문의: 02-3215-3532
2021-11-20 제1369호
코로나19 순직 선교사와 유가족을 위한 다큐 <미씽유> CGNTV가 다 하지 못한 이야기 “선교사들의 울타리가 되어주십시오” 코로나19 순직 선교사와 유가족을 위한 다큐 <미씽유> 선교 현장에서 만났고, 선교를 위해 부부가 됐다. 코로나19가 이 부부를 잠시 갈라놓았지만, 아내는 남편을 천국에서 만날 날을 기다리며 또다시 선교지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공숙자 선교사와 故 수라지 방게라 목사의 가슴 시린 이야기다. CGNTV가 또 한 번의 감동을 선물하고 있다. 정기후원의 달 특집 다큐멘터리 <미씽유>을 제작해서 방영했다. <미씽유>는 코로나19로 순직한 선교사와 유가족들의 이야기다. 공숙자 선교사와 故 수라지 방게라 목사의 이야기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공숙자 선교사는 “코로나19 순직 선교사와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해준 CGNTV에 무한한 감사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또 “일면식도 없는 선교사들과 함께 울어주고, 그들을 섬겨준 온누리교회 성도들에게도 감사 인사를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코로나19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선교사들에게 끝까지 관심 가져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 김영선 기자 k4458@onnuri.org 총 확진자 3440만 명, 사망자 46만 4천 명. 코로나19가 인도에 남긴 상처다. 그 상처는 지금도 회복되지 않고 인도 사람들을 계속 괴롭히고 있다. 故 수라지 방게라 목사는 이 처참한 현장에서 성도와 이웃들을 돌보는 일에 자신의 목숨을 바쳤다. “자기가 코로나19에 걸릴 수도 있다는 생각과 염려보다 성도들과 이웃들의 안전과 건강이 우선이셨습니다. 아시다시피 인도는 환경이 좋지 않습니다. 저희 부부가 섬기는 빈민촌은 말할 것도 없고요. 저희 부부는 인도에 코로나19가 급속도로 확산하면서 봉쇄령이 내려졌을 때 지자체로부터 통행권을 받아서 빈민촌에 식량을 보급했습니다.” 목숨 걸고 전쟁터로 나가는 것과 똑같았다. 그런데 빈민촌에 식량과 구호품을 보급하던 故 수라지 방게라 목사와 청년들은 해맑기 그지없었다고 한다. 코로나19로 위기에 처한 이웃을 돌보는 일을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한다면서 기쁜 마음으로 자처했기 때문이다. 한국으로 잠시 들어오라는 선교본부의 만류에도 故 수라지 방게라 목사는 날마다 이웃들을 찾아갔다. 故 수라지 방게라 목사는 청년들과 함께 2천여 명분의 식량과 7천여 명분의 구호품 등을 전달했다. 말씀과 기도가 필요한 곳이라면 거기가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찾아갔다. 그날 만남이 마지막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 코로나19 확산과 델타변이 바이러스 확산까지 이겨냈던 故 수라지 방게라 목사는 한국행을 하루 앞둔 지난 6월 1일 코로나19 바이러스 양성 판정을 받았다. 4주 동안 사투 끝에 6월 30일 하나님 품에 안겼다. “일찍부터 선교본부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도인이 인도를 두고 떠날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이제는 인도 사람이 다되었습니다. 목회자 가족이 성도들을 두고 떠나면 그들을 누가 돌보겠습니까? 코로나19와 싸우면서 일 년 반을 인도에서 보냈는데 선교비를 받아 쓰는 카드에 문제가 생겨서 제가 한국에 갈 일이 생겼습니다. 잠시 쉬기도 할 겸 한국행을 준비하면서 코로나19 검사를 받았는데 양성이 나왔습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걸렸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치료를 받았습니다. 저는 힘겹게 회복했는데 우리 남편은 하나님 품에 안기셨습니다.” 선교하며 만났고, 부부 선교사가 됐다 “남편은 참 청렴한 청년이었습니다.” 청년 수라지 방게라 목사는 10전을 주면 버스비 8전을 쓰고 2전을 돌려주는 청렴한 동역자였다. 1994년 6월 공숙자 선교사가 동료 선교사의 단기 아웃리치를 돕다가 통역자로 온 청년 수라지 방게라를 만났다. 그게 첫 만남이었다. “한국에서 의료 선교를 오는데 동료 선교사님이 일이 생겨서 제가 선교팀을 맞이했습니다. 통역자 두 명만 붙여 달라고 했더니 사역자 한 명과 사역자의 친구가 왔는데 그 친구가 청년 수라지 방게라였습니다. 그때 어느 슬럼가에서 동네 아이들 50명을 모아 놓고 사역했는데 그 아이들이 이제는 가정을 이뤘고 교회도 나옵니다.” 그 이후 함께 사역했다. 그때만 해도 공숙자 선교사는 수라지 방게라에게 연애 감정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1997년 비자에 문제가 생긴 공숙자 선교사가 인도를 떠나야 할 처지가 됐는데 그때 둘 사이에 변화가 생겼다. “제가 인도를 떠나야 하니까 수라지 방게라 형제를 후임자로 생각하고 사역 인수인계를 하고 있었습니다. 수라지 방게라 형제가 가정을 이루면 좋겠다는 생각에 중매까지 섰는데 저랑 결혼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저희 엄마가 철수를 도와주러 인도에 와계셨었는데 한 집사님이 저희 엄마에게 수라지 방게라 형제를 두고 기도해보라고 하셨데요. 엄마가 기도를 해보고는 괜찮겠다고 생각하셨는지 저에게도 기도를 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하나님의 뜻이라면 괜찮다는 응답을 받은 공숙자 선교사는 수라지 방게라 형제에게 기도해볼 것을 권면했다. 며칠 뒤 수라지 방게라 형제도 승낙했다. 그다음 일은 일사천리였다. 인도에서 약혼식을 하고 2주만에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감리교의 파송을 받고 다시 인도로 돌아와 사역했다. 공숙자 선교사 부부는 인도 빈민들을 섬기는 ‘마히마교회’와 크리스천 학교 ‘스타 크리스천 스쿨’을 세우고 섬겨왔다. 계속 이어질 하나님의 비전 ‘마히마교회’와 ‘스타 크리스천 스쿨’ 기자가 공숙자 선교사를 만나러 갔을 때 인도 마히마교회 주일예배가 한창이었다. 공숙자 선교사의 스마트폰으로 전송되는 마히마교회 주일예배에서는 피터 형제가 설교하고 있었고, 양아들 조니가 통역을 하고 있었다. 불과 몇 개월 전에 담임목회자를 코로나19로 하나님 품으로 보낸 교회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열정적이고 뜨거운 예배였다. 공숙자 선교사와 딸 수지 자매는 마히마교회 예배가 그리워서 하루빨리 인도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차세대 예배에 적용할 주일학교 교제와 프로그램 연수가 끝날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제 눈에는 조니와 수지, 교회 성도들이 마냥 아이 같았었는데 이제 다 컸나봅니다. 자라는 환경이 사역지고, 선교지여서 그런지 저희 아이들과 성도들 모두 하나님의 사역자로 준비된 것 같습니다. 남편이 소천하고 제가 아무것도 못 하고 있었는데 우리 교회 성도님들이 3주 동안 번갈아 가며 음식을 해오셨습니다. 그 음식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됐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 참 큰데 우리 교회 성도님들과 함께라면 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故 수라지 방게라 목사와 공숙자 선교사는 인도 크리스천 학교 ‘스타 크리스천 스쿨’을 인도 전역에 세우는 비전이 있었다. 그 비전을 양아들 조니 형제와 딸 수지 자매, 마하마교회 성도들이 이어받았다. 공숙자 선교사는 자신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라면서 더 위험하고 힘든 상황에 있는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감사해야지’라고 속으로 기도하면서 슬픔을 견디고 있습니다. 뜻밖의 위로를 참 많이 받고 있습니다. 온누리교회와 CGNTV는 저희 부부와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습니다. 그런데도 저를 비롯한 코로나19로 순직한 선교사들과 유가족들을 위해 기도해주시고, 후원해주셨습니다. 그 덕분에 정말 큰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서 선교사들이 정말 많이 힘듭니다. 저희보다 더 힘든 상황에 있는 선교사들이 정말 많습니다. 저희에게 큰 위로가 되어주신 것처럼 선교사들을 위한 기도를 멈추지 마십시오. 후원도 계속해 주십시오. 그 기도와 섬김이 선교사들이 살 수 있는 울타리입니다.” 시청방법: CGNTV 정기후원의 달 특집 다큐 <미씽유>는 CGNTV 유튜브 채널에서 다시볼 수 있습니다. 후원문의 : 02-796-2243
2021-11-20 제1369호
전도하는 보드게임 ‘로스트 트레져’ 건강한 공동체 놀이문화 전도하는 보드게임 ‘로스트 트레져’ 가장 소중한 보물을 들고 왕궁으로! ‘로스트 트레져’는 보물을 들고 왕궁에 먼저 도착하는 보드게임이다. 상대가 왕궁에 도착하기 전까지 상대의 보물을 맞추기 위해 질문을 주고받는다. 왕국에 가장 먼저 도착하거나 상대의 보물을 맞춰서 점수를 많이 획득한 사람이 최종 승자가 된다. 게임 시나리오, 그림, 진행과정을 모두 성경을 기반으로 제작했다. 보드게임 ‘로스트 트레져’의 핵심은 질문과 경청이다. 기존의 보드게임들이 경쟁이 목표라면 ‘로스트트레져’는 서로의 가치관이 무엇인지 묻고 경청하면서 관계 맺는 데 초점을 뒀다. 보드게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상대방의 보물을 맞추기 위해서 질문을 주고받으면서 가치관, 신앙 등을 파악한다. 보드게임이 끝난 뒤에는 보물을 설명하면서 자연스럽게 간증을 나눌 수도 있다. 한국어,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등 4가지 버전으로 제작됐다. ‘로스트 트레져’는 도시선교 사역단체 랜드마커 미니스트리에서 개발했다. 랜드마커 미니스트리는 도시에 있는 청소년과 청년, 외국인 유학생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단체다. 건강한 공동체 놀이문화를 만들자는 목표를 세우고 ‘랜드마커랩스’라는 보드게임개발회사를 창업했고, ‘로스트 트레져’를 개발했다. 가격은 5만5천 원이다. 랜드마커랩스 홈페이지에서 구매할 수 있다. * 구입문의: 010-3121-1604
2021-11-20 제136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