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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세계관으로 살아가기-영적 전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

 2024-09-07      제15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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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세계관으로 살아가기-영적 전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
 
R. C. 스프룰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법>에서 그리스도인이 살면서 벌이는 영적 전쟁을 ‘가공할 적들인 세상, 육체, 마귀와의 전투’라고 설명한다. 여기서는 세상과의 전투인 세계관 전쟁을 성경을 기준으로 바로 보고자 한다.
우리는 기존에 습득된 인본주의적 생각과 성경적 세계관이 뒤섞인 가운데 갈등하는 순간을 만난다. 믿는다면서 예수님을 잘 모르고, 삶이 바뀌지 않으면서 그 위에 성경적 지식만 쌓아 올린다. 세상에서는 세상의 법을, 교회에서는 교회의 법을 따르는 적당히 이중적 삶을 살게 된다. 그렇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우리 믿음의 전진을 위해 두 팔로 안으려고 기다리고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기억하면 되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를 ‘포스트모더니즘(개인주의) 사회’라고 한다. 중세 유럽에서는 하나님의 진리가 중요했고, 근대(인본주의+마르크스주의)에서는 이성으로 알 수 있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사실이 중요했다. 포스트모던 시대인 지금은 ‘나의 주관과 느낌’이 중요하다. 그 어떤 것도 각자의 상황과 처지에 따라 옳을 수도 있다는 열린 태도를 보여야 한다. 이러한 상대적인 태도로 서로를 인정하고, 이해할 때 인류는 더욱 다양하고 풍요로운 사회, 평화롭고 행복한 사회를 누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절대적인 것은 없고, 모든 것은 상대적이라고 주장한다.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족은 ‘인생은 한 번뿐이니 현재를 충분히 즐기라’는 삶의 방식을 권면한다. 욜로족의 소비행태인 ‘탕진잼’(소소하게 탕진하는 재미),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이런 맥락에서 나온 말이다. 니체(Nietzsche)적 세계관을 계승한 포스트모던을 잘 표현한 말이 “너 자신을 사랑하라”다. 다른 사람이 강요한 성공의 기준에 맞춰 살지 말고, 너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며 지금, 이 순간 너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라고 말한다. 이 매력적인 메시지는 자기혐오와 절망에 빠진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희망을 불어넣어 주기도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포스트모던의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는 데서 그치는 존재가 아니라 자기 사랑을 넘어 이웃과 사회 공동체를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여러분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십시오.(롬 12:2)”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지식을 쌓기에는 열심이지만, 세상의 주도적, 지배적 시대 정신인 세속적 인본주의, 자유주의, 성문화혁명(차별금지법)이 가져올 가정과 교회의 파괴 등 세상을 아는 지식은 매우 부족하다. 앞으로 자녀들이 하나님의 참된 말씀을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어떻게 준비시켜야 하는지 거룩한 고민이 밀려온다.
성경은 인간 세상의 모든 고통과 악의 근원이 ‘죄’라고 말한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이 죄를 짓지 않게 하려고 절대적인 도덕 규범을 주셨다. 성경은 인간사회의 악과 고통의 문제를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한다. <창세기 3장>의 ‘선악과 사건’ 단순하게 과일 하나 따먹은 사건이 아니다. 선과 악의 절대적인 도덕 기준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영역에 속한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처럼 선과 악의 기준을 정하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겠다고 불순종을 의도한 사건이다. 
인간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지가 있다. 그 자유의지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도 거부도 할 수 있는데, 거부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 모습이 사사시대로 이어졌고, 지금 그 현상이 극에 달한 것 같다. 성경은 해결책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과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그 이후 순종과 성화에서 찾는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동성애와 젠더리즘을 이슈화하고 있다. 특히 차별금지법 등을 통과시켜 국가 차원에서 동성애와 젠더리즘을 옹호 조장하려고 한다. 그런데 성경의 기준은 명확하다.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은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차별금지법 등에서 말하는 분류할 수 없는 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결혼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성적인 결합만을 허락하셨다. 그런데 세상은 하나님이 정해 놓은 기준이 맘에 안 들어 스스로 성 정체성을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내가 선택한 사람을 사랑하는 게 무슨 ‘죄’냐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어떤 행위를 금지하셨을 때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신명기> 10장 13절은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고 말씀한다. 하나님이 규례를 주신 이유가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드리고, 믿어드리고,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이다. 그것이 곧 우리의 가장 큰 기쁨이기도 하다.
/ 윤상우 집사(강남D공동체, 온누리세계관학교)
 

 작성자   김다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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