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강단] 저항하라! 순교로써
저항하라! 순교로써
<요한계시록> 12:7~12, 13:1~10
/이재훈 위임목사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온통 전쟁터입니다. 군사전쟁, 경제전쟁, 체제전쟁, 정치전쟁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주 잊어버리는 것은 더 근본적인 전쟁, 하나님과 사단의 전쟁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반역의 세력을 정복하고, 하나님의 통치권을 다시 세우는 전쟁입니다. 그리스도가 왕으로 통치하는 나라를 세우는 전쟁입니다. 전 우주적인 전쟁입니다.
“일곱 번째 천사가 나팔을 불었습니다. 그때 하늘에서 큰 음성이 나며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됐으니 그분이 영원토록 왕 노릇 하실 것이다’”(계 11:15).
세상 나라가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었다는 선언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요한은 유배되어 있고, 주와 그리스도의 통치를 거부하고 대적하는 로마 제국의 권력이 보입니다. 여전히 세상의 제국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이 상황을 해석해 주는 말씀이 <요한계시록> 12장과 13장입니다.
“그때 나는 하늘에서 큰 음성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제 구원과 능력과 우리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확립됐으니 이는 우리 형제들을 고소하던 이,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으로 그들을 고소하던 이가 쫓겨났기 때문이다’”(10절).
‘하나님 나라와 그리스도의 권세가 확립되었다’고 선포합니다. <요한계시록> 11장 15절에서 ‘세상 나라가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었다’는 선언과 같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추가적인 설명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고소하던 이가 쫓겨났다’는 것입니다. 사단은 땅으로 쫓겨난 존재라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땅으로 쫓겨난 사단이 계속 반역의 몸부림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아직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들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
그 자체가 우주적인 전쟁
<요한계시록> 12장 전반부에서는 어떻게 하나님 나라와 그리스도의 권세가 확립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한 표징이 나타납니다. 아이를 잉태해서 해산하는 한 여자와 그 여자가 낳는 아이를 삼키려는 큰 용의 모습입니다. 이 모습은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를 다른 관점에서 전해줍니다. 생명을 탄생시키는 한 여인과 그 생명을 죽이려는 용이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그 아이를 구출하는 데 성공합니다. 아이는 하나님 보좌 앞에 올려졌고, 여자는 광야로 피신해 하나님이 예비하신 장소를 얻습니다. 용은 먹이를 빼앗긴 셈입니다.
“여자가 아들을 낳았는데 그 사내아이는 장차 쇠지팡이로 만국을 다스릴 분입니다”(5절 a).
큰 용이 여자의 아이를 삼키려고 한 이유는 <시편> 2편에서 예언했던 바로 그 메시아이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가 장차 자신을 무너뜨릴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내게 구하여라. 그러면 내가 이방 민족들을 네게 기업으로 주어 온 세상이 네 소유가 되게 하리라. 너는 그들을 쇠지팡이로 다스리며 토기장이가 자기 그릇을 부숴 버리듯 그들을 부수리라”(시 2:8~9).
쇠 지팡이로 부숴버릴 수 있는 분. 모든 민족과 열방을 통치하실 하나님의 아들, 바로 그분이 사단을 무너뜨리러 오십니다. 그래서 사단이 그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그 자체가 우주적인 전쟁입니다. 성탄은 하나님과 사단과의 전쟁터에서 일어난 엄청난 사건입니다.
“내가 너와 여자 사이에, 네 자손과 여자의 자손 사이에 증오심을 두리니 여자의 자손이 네 머리를 상하게 하고 너는 그의 발뒤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창 3:15).
<창세기> 3장에서 주신 이 말씀이 <계시록>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고,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 진멸시킨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여자는 그 뱀으로부터 발꿈치를 상하게 됩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나 부활하심으로 인해서 상처가 남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구원을 위해 고난 받으신 일은 하나님과 사단 간의 전쟁터에서 일어났습니다. 십자가와 예수님의 죽으심은 우리를 종노릇하게 하는 사단의 모든 세력에 대한 승리입니다.
우리는 지상에서 사단과 싸우는 군사들
“그때 하늘에는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미가엘과 그의 천사들이 용과 대적해 싸우고 용도 이에 맞서 자기의 사자들과 함께 싸웠으나 용이 이기지 못했으므로 그들은 하늘에서 더 이상 있을 곳을 찾지 못했습니다. 큰 용, 옛 뱀, 곧 마귀와 사단이라고도 하는 이, 온 세상을 현혹시키는 이가 쫓겨났습니다.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쫓겨났습니다”(7~9절).
하늘에서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천사장 미가엘과 천사들이 용과 그의 사자들과 싸워 이겼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하늘에서는 있을 곳을 찾지 못해 땅으로 쫓겨났습니다. 용이 이제는 사내아이를 낳은 여자를 쫓아갑니다. 뱀이 자기 입에서 물을 강같이 토해내 여자를 휩쓸어 버리려고 했으나 이 땅이 여자를 도와 그 모든 강물을 삼켜버립니다. 용이 두 번째 먹이를 놓쳤습니다. 더는 공격할 대상이 없어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공격 대상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러자 용이 여자에게 분노를 품고 여자의 후손의 남은 사람들,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의 증거를 붙잡고 있는 사람들과 더불어 전쟁을 하려고 떠나가 바닷가 모래 위에 섰습니다”(17절).
여자가 낳은 아이, 곧 메시아를 무너뜨리지 못한 용, 여자마저 무너뜨리지 못한 용이 여자의 후손들을 공격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의 증거를 붙잡는 사람들입니다. 곧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어린 양을 따르는 이들을 공격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이 땅에서 어린 양 예수님이 받으신 고난에 함께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 존재하는 사단의 역사로 인해서 교회는 고난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최후의 심판이 임해서 악의 영혼이 제거될 때까지 사단의 공격은 끊임없이 이루어집니다. 여러분, 우리는 지상에서 사단과 싸우는 군사들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린 양의 피로 순교함으로
“그들은 어린양의 피와 그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 인해 그를 이겼고 죽기까지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므로 하늘과 그 안에 거하는 사람들아,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에 재앙이 있을 것이니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 알고 분을 품고 너희에게 내려갔기 때문이다”(11~12절).
마귀도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압니다. 분을 품고 땅에 내려와 그리스도인들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이기지 못합니다. 어린 양의 피와 말씀을 붙잡고 있는 이들이 죽임당하는 것 같지만, 승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죽기까지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순교를 통해서 사단의 공격을 이긴다는 것입니다.
사단은 하늘에서 쫓겨나 이 세상의 옷을 입고, 제국의 권력을 입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상의 옷을 입고, 제도와 문화의 옷을 입고 그리스도인들을 무너뜨리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순교자들을 이기지 못합니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사람들이 이기는 자가 됩니다.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린 양이 승리하셨기 때문에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거듭 패배를 경험한 용이 바닷가에 서서 공격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하 세계에서 도움을 끌어옵니다. 바다와 땅에서 각각 짐승을 불러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성도들을 공격하게 합니다. 13장에서 용을 도와주려고 바다와 땅에서 나온 짐승은 모조품과 같습니다. 바다의 짐승은 표범과 곰과 사자의 부위들을 합쳐서 만들어진 모습이고, 땅의 짐승은 참되신 어린 양을 본떠 만든 가짜 어린 양입니다. 여러분, 용과 두 짐승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모방해서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 삼위일체 하나님의 행하신 일들을 본떠서 가짜를 만듭니다. 이단과 사이비들이 가짜를 만듭니다. 사단은 모조품입니다. 그 용이 10개의 뿔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흉내 내는 것입니다. 바다의 짐승도 그리스도를 모방하기 위해 일곱 머리와 10개의 뿔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능력과 권세를 어린 양에게 부여하신 것처럼, 용도 그 짐승에게 능력과 권세를 부여한다고 나옵니다. 또 어린 양이 죽임당하시고 부활하신 것처럼, 짐승도 치명상을 입어서 죽게 된 것 같지만 치료되어 온 땅이 감탄하며 그 짐승을 따르게 한다는 합니다. 4절에 나오는 ‘누가 이 짐승과 같겠는가? 누가 그를 대적해 싸울 수 있겠는가?’라는 말은 하나님께 드려야 할 질문을 모방한 것입니다. 어린 양이 모든 족속과 방언에서 나온 이들을 따르는 자들을 해방시키시는 것처럼, 그 짐승도 성도들을 대적해 모든 족속과 백성과 어느 나라를 다스릴 권세를 받았다고 합니다. 두 번째 땅에서 나온 짐승은 어린 양처럼 두 뿔을 가졌습니다. 두 번째 땅에서 나온 짐승이 첫 번째 바다에서 나온 짐승을 대신해 권세를 행사하고, 첫 번째 짐승을 경배하게 한다고 합니다. 마치 성령님이 오셔서 예수님을 경배하게 하는 것처럼 모방하는 것입니다. 땅에서 난 짐승도 큰 기적과 표적을 보여서 사람들을 현혹해 우상을 만들게 합니다. 성령님이 큰 기적과 표적을 일으키시는 것을 모방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인치시는 사역을 하는 것처럼, 모든 사람의 이마에 짐승의 숫자 ‘666’ 표를 받게 합니다. 666이라는 수는 7이라는 완전수에서 하나씩 뺀 겁니다. 불완전하고, 사단의 숫자라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시대에 666은 하나님을 대적하던 네로 황제를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에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사단의 종노릇하는 모든 세력의 숫자를 의미합니다.
“그때 나는 바다에서 짐승이 올라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짐승은 열 뿔과 일곱 머리를 가졌는데 그의 열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의 머리에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이 있었습니다”(1절).
“짐승은 오만하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할 입을 받았고 42개월 동안 활동할 권세를 받았습니다”(5절).
“짐승이 입을 열어 하나님을 모독했는데 하나님의 이름과 그분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이들을 모독했습니다”(6절).
용과 두 짐승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대적하고 모독하기 위해서 모방한 것입니다. 가짜를 만든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예배해야 될 사람들을 현혹해서 자신들을 따르게 하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에 참여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이 세상 권세를 이용하기도 합니다. 만일 짐승이 하는 일을 반대하고 거부할 경우에는 짐승과 심한 싸움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로마 황제를 신으로 숭배하게 하는 일을 거부했던 초대교회 성도들이 받았던 고난이었습니다. 지금도 공산주의와 이슬람 사회에서는 그 짐승의 세력과 같은 이들의 통치자를 숭배하는 일을 거부하면 곧 죽음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짐승을 경배하든지 순교를 하든지 선택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사로잡힐 사람은 사로잡힐 것이요, 누구든지 칼로 죽임을 당할 사람은 칼로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여기에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있습니다”(10절).
모든 그리스도인이 죽음에 처하게 된다는 문자적인 예언은 아닙니다. 그러나 모든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죽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칼로 죽임당하는 상황에서 인내하며 믿음을 지키는 이들이 곧 이기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인내와 믿음은 엄청난 에너지와 힘이 있어야 합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희생을 받아들이는 순교는 하늘의 힘이 필요합니다. 짐승들이 사용하는 지상의 무력과 힘을 가지고 대처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하늘에서 쫓겨난 용과 두 짐승의 세력이 있습니다. 그 세력이 어린 양을 따른 이들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 세력에 저항해야 합니다. 세상의 힘과 폭력이 아닌 순교로써 저항하라는 것입니다. 순교는 수동적인 저항이 아닙니다. 능동적이고 적극적 저항입니다. 압도적인 힘을 가진 로마 제국의 권력 앞에서 소수의 힘없는 성도들이 어린 양의 피로 순교함으로 이기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저항함으로 이기는 자가 되었습니다. 죽음에 이르도록 충성되게 하나님을 섬김으로 이기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저항하라. 순교로써”라고 말씀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이 시대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짐승의 세력을 이기기를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5-05-03
제153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