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강단
[주일강단] 사사기 강해(2) 영적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사사기 강해(2)
영적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사사기> 2:10~3:2
/ 이재훈 위임목사
“에브라임아, 내가 너를 위해 무엇을 해줄까? 유다야, 내가 너를 위해 무엇을 해줄까? 너희 인애는 아침 구름과 같고 금방 사라지는 새벽이슬과 같다”(호 6:4).
하나님의 탄식입니다. 그런데 그 앞 구절에 익숙하게 들었던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가 가서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그가 찢으셨지만 우리를 고쳐 주실 것이다. 그가 때리셨지만 우리를 싸매 주실 것이다”(호 6:1).
돌아가겠다고 하는 백성들의 고백을 들으신 난 바로 뒤에 하나님이 탄식을 하셨습니다. 백성들의 고백이 거짓이어서가 아닙니다. 이 고백을 여러 번 들으셨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제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탄식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아침에 있다가 없어지는 이슬 같은 돌이킴이 있습니다. 무릎을 꿇고 결단을 합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그 자리에 있습니다. 같은 죄를 놓고 같은 기도를 반복해서 드립니다.
“하나님,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이 여러 번 반복됩니다. 이 반복이 무서운 이유가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하나님이 <사사기>에 나타난 영적인 악순환을 알려주시는 것은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반복이기 때문입니다.
하향하는 나선형 ‘영적 악순환’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합니다. 하나님이 진노하십니다. 그 백성은 진노 가운데 고통스럽습니다. 고통 가운데 신음합니다. 하나님이 그 신음을 들으시고 사사를 보내 주십니다. 사사가 있는 동안 잠시 구원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평안해지면 다시 우상숭배로 돌아갑니다. 이 모습을 계속 반복합니다. 이 반복이 무서운 이유가 있습니다.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것 같지만, 실상은 내려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회전목마처럼 같은 자리를 돌아오는 게 아니라, 이전 사이클보다 한 단계 아래로 내려가는 하강 곡선입니다. 하향하는 나선형(Downward Spiral), 즉 영적 악순환입니다.
<사사기> 2장 말씀이 바로 이 반복을 보여줍니다. 이 사이클에 없는 것이 있습니다. 회개입니다.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그 우상숭배에 대해 하나님이 진노하셨고, 하나님이 진노하심으로 대적에게 붙이셔서 괴롭게 하셨고, 그들이 신음했고, 하나님이 사사를 통해 구원해 주셨지만, 그들은 고통 가운데 신음했을 뿐 회개하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회개가 없는 것입니다. 회개라는 단어가 없어서 계속 아래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한 바퀴 돌 때마다 한층 더 내려갑니다. 고통은 더 심해지고, 사사들도 수준이 점점 낮아집니다. 옷니엘부터 시작하는 사사가 삼손에서 끝나는데, 그는 최악의 사사였습니다. 그 시대의 지도자 수준도 점점 내려가는 것입니다. 영적 악순환이 계속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 타락하고, 더욱 고통스러워지고, 지도자도 더욱 패역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혹시 이 시대의 역사가, 우리의 삶이 이런 영적 악순환을 경험하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같은 죄로 계속 넘어지고, 고통을 겪고,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이 건져 주시지만, 평안해지면 다시 죄로 돌아가는데 그 죄는 전보다 더 깊어져 있습니다.
‘다음 세대’가 ‘다른 세대’가 될 때
“그 세대가 모두 조상 곁으로 돌아갔고 그들을 뒤이어 여호와를 모르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신 일도 전혀 모르는 다른 세대가 자라났습니다”(10절).
‘다른 세대’라고 했습니다. ‘다음 세대’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 ‘다른 세대’라고 말합니다. <사사기> 말씀에는 3세대가 나옵니다. 여호수아 시대에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입니다. 그 다음 세대까지도 그 일을 본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세대는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알지 못했습니다. 듣기는 했을 것입니다. 이야기로는 들었을 것입니다. 출애굽의 역사, 요단강이 갈라진 역사, 가나안 정복의 역사를 듣기는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눈으로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알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신명기> 6장에서 하나님이 부모들에게 명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가르치라”고 한 것은 다른 세대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음 세대가 다른 세대가 될 때, 영적 악순환이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리에 우상이 들어온 것입니다. 당시 가나안에 있던 바알과 아스다롯 신입니다. 풍요와 다산의 신, 비와 폭풍을 다스리며 그 시대 풍요와 다산을 가져다준다고 약속하는 신들이었습니다.
왜 하필 이 신들이었을까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광야에서 자란 세대는 농사를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이웃들로부터 배웠습니다. 그들로부터 “비를 내려주는 신을 잘 섬기면 곡식이 잘 된다”고 들었을 것입니다. 농사를 지은 경험이 없더라도, 노력하면 배울 수 있고, 하나님이 가르쳐 주실 것인데, 그들의 우상을 섬기는 방식을 그대로 따라간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그런 모습이 간간이 보입니다. 첨단 장비를 만드는 공장을 차려놓고, 그 기술을 개발한 CEO가 돼지머리를 앞에 놓고 “이 공장이 잘되게 해주십시오.”라고 빕니다. 누군가로부터 본 것을 배운 것입니다. 누군가로부터 “이렇게 해야 이 기업이 잘될 것입니다.”라고 제안을 받은 것입니다. 사사 시대에 일어난 일입니다. 이 시대에도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전면적으로 하나님을 버리겠다는 결심을 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 농사만은 확실히 잘하고 싶다”라는 불안과 염려에서부터 우상이 파고들어 오는 것입니다. 원칙보다 실속을 차리는 순간, 우리는 한 계단을 내려가는 것입니다. 어느 구약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옛 우상들은, 옛 신들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있다. 다만 옷을 갈아입었을 뿐이다.” (이안 프로반)
하나님의 마음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사사들에게 순종하지 않고 다른 신들에게 자기 자신을 팔고 숭배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조상이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며 걸어왔던 길에서 금세 돌아섰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조상들처럼 행하지 않았습니다”(17절).
‘자기 자신을 파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팔고 숭배했습니다. 우상을 섬긴다는 것, 결국 자기 자신을 우상에게 바치는 일입니다. 그 결과 속히 하나님을 떠나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이 사이클을 끊을 수 있을까요? 본문에서는 다섯 가지 단계로 하나님이 악순환에서 벗어나도록 역사하시는 것을 보여줍니다.
첫째,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백성의 신음소리를 듣고 먼저 마음을 돌이키셨습니다(18절).
사사 시대 악순환이 끊어지는 은혜가 나타납니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회개하고 부르짖어서가 아닙니다. 백성들은 그저 고통 속에 신음했을 뿐인데, 하나님이 신음하는 백성들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신 것입니다. 백성 쪽에서는 돌이킴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먼저 돌이켜 주셨습니다.
언제나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내가 먼저 돌이켜서 회복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돌이켜 주시는 것입니다. 사실 악순환에 빠진 이들에게는 기도조차 잘 나오지 않습니다. 그저 신음할 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신음을 기도로 들으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기 전에 먼저 마음을 돌이켜서 찾아와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의 행한 죄의 결과까지 면제해 주시지는 않습니다.
사랑하기에 진노하시고, 대적에게 넘긴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기에 진노하시고, 대적에게 넘기십니다.
14절에 나오는 ‘팔아넘기셔서’라는 단어를 주목하십시오. 앞서 ‘팔다’라는 단어가 등장했습니다. 2장 17절에서 “다른 신들에게 자기 자신을 팔고 숭배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백성들이 우상에게 자신을 팔았기에, 하나님이 원수들의 손에 팔아넘기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린양의 피로 구속하신 백성들을 완전히 넘기시는 것이 아닙니다. 진노의 뜻을 깨닫는 것이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두 번째 실마리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미워하셔서, 진멸시키려고 진노하시고 원수들에게 넘겨주신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진노하셨고, 대적에게 잠시 넘기신 것입니다. 진노의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2장 6절에서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신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고통 가운데 있을 때는 언제나 대적의 손만 봅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 그들의 손만 봅니다. 그러나 <사사기> 말씀은 “그 뒤에 있는 하나님의 손을 바라보라”고 말씀합니다. 그 손은 우리를 아프게 하려고, 버리려고 치시는 게 아닙니다. 돌이키게 하시려고, 거룩하게 하려고, 더 귀하게 사용하려고 잠시 진노를 허락하셔서 대적들의 손에 붙이시는 것입니다.
남겨둔 민족들로 하여금
백성을 시험하고 훈련하게 한다
셋째, 하나님의 손은 남겨둔 민족들로 하여금 백성을 시험하고 훈련하게 하십니다.
“…‘이 백성이 내가 그들의 조상과 맺었던 약속을 어기고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여호수아가 죽으면서 남겨 놓은 민족들 가운데 어느 하나도 내가 더 이상 이스라엘로부터 몰아내지 않을 것이다’”(20~21절).
하나님이 왜 남겨둔 민족들로 하여금 그 백성을 괴롭히도록 하십니까? 시험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들은 모든 가나안 전쟁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을 시험하기 위해 여호와께서 남겨 두신 민족들입니다. 이전에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쟁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삿 3:1~2).
<사사기> 2장 10절 말씀이 다시 나옵니다. 악순환이 어디서 시작이 됐습니까?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세대가 다른 세대가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여호와를 안다는 게 무엇입니까? 그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하나님이 군대를 어떻게 무너뜨리고, 여리고를 어떻게 무너뜨리고, 아이성을 어떻게 무너뜨리셨는지를 통해서 그들이 그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백성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시험이 필요했습니다. 자기가 직접 치르는 전쟁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하려고 전쟁터로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조상들이 엄청난 전쟁을 치르며 바라보았던 하나님의 역사를, 이 세대가 자신들의 전쟁에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관하여 몰라서가 아니라, 그들 스스로 하나님을 알도록 하려고 시험을 통과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원래 이 전쟁은 치르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순종했더라면 여호수아 시대에 끝났을 일입니다. 남겨진 가나안은 어떤 모습이든 죄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의 결과를 우리를 시험하는 교실로 만드신 것입니다. 우리를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세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시험을 통해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세우시고, 더 강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남겨진 가나안이 있다면, ‘왜 이 문제가 아직 그대로인가?’라고 여겨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남겨두신 것을 통해서 우리를 시험하시고, 훈련하시고, 악순환이 끊어지는 역사를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거저 오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는 자로 훈련하면서 우리에게 옵니다.
악순환 끊는 구원은
하나님이 보내신 사사에게서 온다
넷째, 악순환을 끊는 구원은 백성들에게서 나오지 않고 하나님이 보내신 사사에게서 옵니다.
“그때 여호와께서 사사들을 세우셨습니다. 사사들은 그들을 침략자들의 손에서 구해 냈습니다”(16절).
사사는 백성들이 투표해서 뽑은 지도자가 아닙니다. 여호와가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사와 함께하셨습니다. 사사들이 강해서 건짐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사사기> 전체에서 이스라엘은 한 번도 자신들의 힘으로 일어서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구원은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을 통해서만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17절 말씀을 보면, 그들이 사사들에게 조차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악순환은 끊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내신 사사에게는 순종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악순환이 끊어지지 않은 이유입니다. 그래서 그 구원에 기한이 있었습니다. 사사가 사는 날 동안, 하나님이 보내신 사사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나마 하나님이 함께하신 은혜 속에 있었습니다. 백성들이 요청하지도 않고 불순종했지만, 하나님이 그 사사들을 통해서 어느 정도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사사가 사라지면 또다시 둑이 터져서 우상숭배 하는 악순환에 빠지는 것입니다. 만일 사사가 죽지 않고 지속이 된다면, 사사가 외부의 대적만이 아니라 백성들의 마음까지 구원할 수 있다면, 구원의 역사가 지속되지 않겠습니까? <사사기>에 반복되는 순환을 통해서 우리에게 죽지 않는 사사, 영원히 있는 사사, 외부의 대적만이 아니라 백성들의 마음까지 변화시켜 주시는 사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영적 악순환은 영원히 죽지 아니하시는 사사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끊어집니다.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사들이라고 말하지만, <사사기>에서 ‘사사’라는 칭호로 불린 이는 없습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부를 뿐입니다. 한 분만 사사라고 불립니다.
“…심판자인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자손과 암몬 족속 가운데 누구를 심판하시는지 지켜봅시다”(삿 11:27).
이 심판자가 영어로 ‘Judge’, 사사입니다. <이사야> 33장 22절에서도 “여호와는 우리의 재판장이시요, 여호와는 우리 왕이시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진정한 사사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셨습니다.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설교를 할 때 사사 시대부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사사들을 주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사울, 다윗으로 이어집니다. “인간에게서 나오는 어떠한 사사도, 지도자도 소망이 없고, 오직 하나님이 보내신 진정한 사사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 안에만 구원이 있다. 사사가 사는 날 동안에만 구원이 이루어진다. 우리의 사사는 영원히 사시는 분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대적만을 무너뜨리는 사사가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분입니다. 성령이 오심으로 인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부활의 사건을 우리 마음에 새겨 주심으로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시는 분입니다.
여러분, 진정한 사사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사사가 사는 날 동안’이라는 말씀이 오늘 우리의 삶입니다. 우리는 혼자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가 보내신 진정한 사사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하십니다.
사사 시대는 오늘 우리의 모습입니다.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다른 세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계단의 마지막 바닥에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거기서부터 우리를 다시 건져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영원히 살아계신 우리의 진정한 사사입니다. 영적 악순환은 우리의 힘, 기술, 방법, 지도자가 끊지 못합니다. 회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 통치하심의 역사만이 악순환을 끊습니다. 영적 악순환을 끊어내는 나라와 민족이 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