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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일강단

    [주일강단] 물이 바다 덮음 같이 물이 바다 덮음 같이 이사야 11:1~10 /이재훈 위임목사 메시아가 오심을 예언하는 역사적 상황은 한결같이 가장 절망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언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분명합니다. 단순한 희망이나 긍정적인 마음으로 사람들을 달래고 회복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인간의 상상력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극심한 절망 가운데 처해 있을 때 아름다운 소망을 이야기하기가 어렵습니다. 소망을 이야기해도 절망이 묻어납니다. 완전히 새로운 세상에 대한 예측은 사람에게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사야 시대는 다윗 왕권이 완전히 몰락한 때였습니다. 역사적으로 절망의 시대였습니다. 그 시대에 하나님이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을 주셨습니다. 인간의 가장 밑바닥, 절망의 상태에서 하나님은 메시아의 오심을 통한 구원의 희망을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시는 역사적 시점은 우리가 겪는 상황과 비교할 수 없이 큰 절망 속에 있었습니다. 진정한 성탄의 의미는 역사적 절망 상황에서 더 깊이 묵상할 수 있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오고 그의 뿌리에서 가지가 돋아나 열매를 맺을 것이다”(1절). 이새는 다윗의 아버지입니다. 그런데 왜 다윗의 줄기라고 하지 않고 이새의 줄기라고 했을까요? 다윗 왕조가 철저히 몰락했기 때문입니다. 이새는 베들레헴의 이름 없는 양치기 목자에 불과합니다. 메시아의 오심은 영웅 탄생의 모습이 아니라 이새처럼 비천한 사람의 출생으로 이루어집니다. ‘이새의 줄기’라고 번역된 이 단어는 그루터기를 의미합니다. 그루터기만 남은 모습이 멸망당한 다윗 왕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루터기 뿌리들은 땅속 깊이 박혀서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그루터기에서 싹이 나고, 뿌리에서 직접 가지가 돋아난다고 말씀합니다. 특이한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전능하신 능력으로 이루실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루터기만 남은 비천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싹이 나고, 가지가 돋아나 열매 맺는 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창조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머물 것이다. 곧 지혜와 통찰의 영, 모략과 용기의 영,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그에게 머물 것이다”(2절). ‘머물 것’이라는 단어가 두 번 반복됩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영’은 여호와 하나님에게서부터 오는 영, 곧 성령님을 말합니다. 여호와의 영, 성령님은 구약에서도 부분적으로 임하셨습니다. 모세와 사울, 다윗에게도 일시적으로 임하셨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그 누구에게도 그 안에 머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단순히 임하시는 것과 머문다는 것은 다릅니다. 일시적으로 능력의 통로가 되는 것과 성령이 충만하게 그의 안에 온전히 머무는 것은 다른 차원입니다. “그리고 요한은 또 이렇게 증언 했습니다. ‘나는 성령이 하늘에서 비둘기같이 내려와 그분 위에 머무는 것을 봤습니다.’ 나도 이분이 그분인 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물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분이 ‘어떤 사람에게 성령이 내려와 머무는 것을 네가 보게 되면 그가 바로 성령으로 세례를 줄 분임을 알라’고 일러 주셨습니다”(요 1:32~33).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완전한 사람이 되신 분입니다. 성육신하실 때 하늘의 모든 신성과 능력을 내려놓으셨습니다. 그분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는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서 완전한 사람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의 능력을 의지함으로써 기적을 일으키는 완전한 사람이셨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서 성령님이 그리스도 안에 충만하게 임재하심으로써 그분을 믿게 하는 표적을 행하셨고, 능력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에게서 일어날 일들이 예수님이 오시기 7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구체적으로 예언되었습니다. 메시아에게 임하시는 여호와의 영 메시아에게 임하시는 여호와의 영을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 지혜와 통찰의 영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올바른 뜻을 분별하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올바로 분별하고, 사람의 상태가 어떤지를 통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 심령의 문제를 아셨고, 그에게 임하신 여호와의 영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때를 분별하셨습니다. 삭개오의 상태를 아셨고, 젊은 부자의 관원의 문제를 아셨고, 나다나엘의 과거를 아셨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사람의 상태에 대한 올바른 분별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여호와의 영이 예수님에게 충만하게 임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 머무셨기 때문입니다. 둘째, 모략과 용기의 영입니다. 지혜와 통찰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했다 할지라도 그것을 실행하려면 모략과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메시아로 오신 그분이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사람들로부터 받은 엄청난 공격과 고난을 이기고 승리하시기 위해서는 모략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담대하게 말씀하셨던 것은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충만하게 머무셨기 때문입니다. 그 영의 능력으로 모략과 용기가 있었던 것입니다. 셋째,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입니다. 여호와의 영으로 충만한 사람은 결코 교만하지 않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기 때문입니다. 지혜와 용기, 경외함이라는 세 가지 특징을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을 담대하게 행하시고, 그 결과로 여호와만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예수님에게 임한 것처럼 여호와의 영이 충만하게 머무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은사가 예수님에게 임한 것처럼 지혜와 통찰의 영, 모략과 용기의 영,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허락된 것입니다. 여호와의 영이 충만하게 임할 때 지혜와 통찰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을 희생하는 용기가 없다면 성령의 임재가운데 충만히 있지 않습니다. 지혜와 용기가 있지만, 여호와를 경외하는 겸손이 없다면 성령의 임재로부터 함께 충만하지 못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 두려워하는 마음, 겸손한 마음이 없다면 예수님 임재 가운데 있지 않은 사람이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여호와 영이 충만한 완전한 사람으로서 지혜와 통찰, 모략과 용기,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으로 충만하게 메시아의 모든 소명을 이루셨습니다. 완전한 공의와 정직, 신실함 “그는 여호와를 즐겨 경외하고 눈에 보이는 대로 판결하지 않고 귀에 들리는 대로 결정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는 약한 사람들을 공의로 판결하고 세상에서 학대받는 사람들을 위해 정직하게 결정을 내릴 것이다. 그는 그 입의 몽둥이로 세상을 치고 그 입술에 바람으로 죄를 범한 사람들을 죽일 것이다. 그는 정의로 그의 허리띠를 띄고 신실함으로 그의 몸 띠를 삼을 것이다”(3~5절).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보이지 않는 영역이 있기 때문입니다. 들리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들리지 않는 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행적을 보십시오. 여러 사람과의 만남을 보십시오. 그분은 결코 보이는 대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젊은 부자 관원은 매우 경건해 보이고 합당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돈의 우상에 사로잡힌 그 영혼의 모습을 보고 예수님이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고 했습니다. 겉으로 볼 때 삭개오는 사람들에게 비난받고 정죄 받고 몹쓸 인간처럼 보였지만, 예수님은 “내가 너의 집에 머물러야겠다”며 그를 친구삼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중요한 통치 원리는 공의와 정직, 신실함입니다. 메시아의 통치는 사람의 통치에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완전한 공의와 정직, 신실함으로 다스리는 세상을 약속하셨습니다. 온 세상이, 온 우주가 구속되어 변화되는 세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늑대가 어린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는데 어린아이가 그들을 이끌고 다닐 것이다. 암소와 곰이 함께 풀을 뜯고 그 새끼들이 함께 뒹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다. 젖먹이가 독사의 구멍 곁에서 장난하고 어린아이가 뱀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다”(6~8절). 메시아가 오심으로써 이루어질 완전한 피조세계의 회복, 우주적인 구속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기 보면 모든 적대관계가 사라집니다. 어떠한 공포, 파괴, 공격이 존재하지 않고, 완전한 평화, ‘샬롬’이 이루어지는 상태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했던 죄와 악이 존재하지 않는 하나님의 완전한 공의, 완전한 신실함으로 통치하는 세상이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파괴된 이 세상에 죄와 악으로 인하여 물어뜯고 죽이고 대립하는 모든 것이 사라지는 완전한 샬롬의 세상은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며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종말을 뛰어넘어 이루어질 나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땅 위의 씨 맺는 온갖 식물과 씨가 든 열매를 맺는 온갖 나무를 너희에게 주니 이것이 너희가 먹을 양식이 될 것이다. 그리고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 위에 기는 모든 것들, 곧 생명 있는 모든 것들에게는 내가 온갖 푸른 풀을 먹이로 준다’하시니 그대로 됐습니다”(창 1:29~30). 사람과 모든 짐승에게 하나님이 주신 원래 양식은 풀이었습니다. 노아 홍수 이후 타락한 인간에게 육식을 허용 하셨습니다. 그래서 물어뜯고 약한 것을 잡아먹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제 메시아가 오심으로써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세상이 함께 구속됨으로 인해서 타락 이전 에덴동산이 회복되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역사를 창조하시고 통치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완전한 예언입니다. 이 세상이 아무리 절망적일지라도 우리에게 새 하늘과 새 땅이 약속되었다는 것을 보여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어떤 세상의 지도자나 시스템으로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치거나 다치게 하지도 않을 것이다. 물이 바다를 덮고 있듯이 세상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으로 가득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날에 이새의 뿌리가 나타나 민족들의 깃발이 될 것이다. 나라들이 그에게 찾아오고 그가 있는 곳은 영화롭게 될 것이다”(9~10절). 9절은 궁극적으로 이루어질 약속, 예언입니다. 물이 바다를 덮고 있듯이 세상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으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이새의 뿌리’를 통해서 그 일이 이루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루터기에서 난 싹, 나무에서 나오는 줄기, 이새의 후손,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민족들의 깃발이 될 것입니다. 그분이 구원의 깃발이 됩니다. 그분이 세상으로 나가고, 나라들이 찾아오게 됩니다. 수많은 나라와 민족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오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선교입니다. 선교 역사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모든 민족의 깃발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깃발 아래 모든 사람이 모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산이 그 모든 일의 중심이 됩니다. 예수님이 “모세가 광야에서 놋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들을 내게로 이끌겠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모든 민족의 깃발이 되어서 모든 민족이 찾아오고, 모든 사람을 이끄는 위대한 자석 같이 하나님께로 이끄는 구원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이 바로 이 사건입니다. 완전한 새로운 세상, 이 세상의 모든 절망과 아픔, 고통과 눈물, 슬픔과 좌절을 완전히 씻고, 피조세계, 동물의 세계, 모든 세상까지 온전하게 구원해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시는 분이 오신 것입니다. 그분이 모든 민족의 깃발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깃발을 보고 달려가는 그리스도의 사람들입니다. 이 깃발을 모든 사람에게 보이고, 그분에게 나가야 합니다. 이 세상은 장차 망할 성입니다. 소망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소망이 있고, 그분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세상에만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세상으로 가야 합니다. 그것이 선교요, 전도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처한 상황에 절망하지 마십시오. 이 나라와 민족을 하나님이 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믿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이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4-12-21  제1521호

  • 칼럼

    [신앙에세이] 꺼지지 않은 청년 세대 열정의 불 신앙에세이 꺼지지 않은 청년 세대 열정의 불 2023년 12월 17일 SNS청년부에 부임했다. 새로운 학년, 새로운 학기를 맞이할 때 떨림과 설렘이 있듯이 새로운 공동체를 마주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신 역할은 무엇일까? 어떤 청년들을 만나게 될까?” 기대하며 새로운 공동체에서 사역을 시작했다. 부임 당시 뮤지컬 ‘쉐어하우스’의 무대장치로 ‘문’이 무대에 설치되어 있었다. 그 문을 열면서 인사했는데 그때 정말 많은 청년이 함께 예배드리고 있었다. 청년 복음화율이 3%라고 하는데 아직 꺼지지 않은 이 불을 계속 키워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청년들의 열정은 예배에서 드러난다. 청년들의 예배에는 에너지가 있다. 여름에 에어컨을 최대로 가동하고 있어도, 더 켜 달라는 요청이 있을 정도로 열정이 가득하다. 찬양 인도로 섬길 때면 회중의 소리가 너무 커서 이곳에 모인 모든 청년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찾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늘 이곳에 하나님의 일하심과 기적이 일어나기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뜨겁게 예배하고 있다. 겨울과 여름에는 국내외 아웃리치를 떠난다. 각자 소중한 휴가를 사용해서 세계 곳곳으로, 복음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간다. 믿지 않는 사람들처럼 휴양지나 관광지로 여행을 떠날 수도 있지만,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번 휴가 때 어디 다녀왔어?”라는 주변 사람들의 질문에 당당히 “선교 다녀왔어”라고 이야기하는 청년들의 모습을 보면서 큰 도전을 받는다. 2024년 온누리교회 표어처럼 ‘그리스도의 담대한 증인’으로 살아 내는 것이다. 나는 올해 여름 몽골과 스리랑카 아웃리치를 다녀왔다. 두 곳 모두 더운 나라였고, 사역 기간 내내 에어컨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아웃리치팀원 누구도 불평이 없었다. 오히려 서로를 돌아보면서 상태를 확인하고, 맡은 사역에 최선을 다했다. 스리랑카 아웃리치에서는 그 더운 날씨에도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 기계 앞에서 솜사탕을 만들었다. 솜사탕 인기가 많아서 대기 줄이 줄지 않았다. 길어지는 작업에 “이제는 그만해도 된다”고 했더니 돌아온 대답이 “아직 솜사탕을 못 받은 아이들이 있어서 그 친구들 모두 받을 때까지는 계속하겠다”였다. 몽골에서는 챙겨 간 지사제가 부족해서 현지에서 구매할 정도로 컨디션이 좋지 않은 청년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내가 더 할 테니 쉬어”라면서 서로를 배려했다. 아웃리치에 참여했던 이들은 한국에 돌아와서도 나라와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중보자가 되었다. 한해를 돌아보면서 느낀 것은 즐거이 헌신하는 청년들이 예배와 교회를 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청년들은 순장, 다락방장, 사역팀장, MC 등 공동체의 여러 섬김의 자리에서 기쁨으로 즐거이 헌신하며 섬기고 있다. 각자 역할에 맞게 매주 목요일, 토요일, 일요일 오전에 모여서 예배를 준비한다. 세상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그렇게 시간과 마음을 쓰는 것은 낭비”라고 말할 수 있지만, 오히려 그것을 기쁨으로 여긴다. 이곳에는 희망이 있다. 아직 불은 꺼지지 않았고, 타오르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청년들을 위한 성도들의 기도와 관심, 사랑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다가오는 새해에도 온누리교회 청년들을 통해서 일하실 하나님을 기대한다. / 박성원 전도사(SNS공동체)

     2024-12-21  제1521호

  • 칼럼

    [크리스천을 위한 부부상담] 맞춰가는 ‘남편과 아내의 역할’ 크리스천을 위한 부부상담 맞춰가는 ‘남편과 아내의 역할’ 부부에게는 서로 맞춰가야 할 많은 영역이 있다. 서로 잘 적응하고 맞춰가는 부부는 만족한 결혼 생활을 영위할 수 있지만, 계속 부딪히는 부부는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다. 결혼 생활은 자신뿐만 아니라 배우자와 끊임없이 맞춰가야 하는 길고 긴 과정이다. 이 과정이 어떤 때는 몹시 즐겁다. 나와 다른 또 다른 나를 수용하며, 함께하는 것에서 오는 즐거움의 극치를 경험한다. 하지만 그 떨리고 행복한 경험이 계속 이어지지는 않는다. 어느 시점이 지나면 상대에게 맞추는 게 힘겹게 느껴질 수 있다. 힘겨룸이 쌓이고 쌓이면 상대에 대한 짜증과 분노가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부부는 서로 맞춰가려는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된다. 어쩌면 평생의 과제가 될 수도 있다. 부부가 서로 맞춰가야 할 중요한 것 하나가 ‘남편과 아내의 역할’이다. 남편과 아내의 역할에 대한 수용과 적응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때 만족스러운 결혼 생활을 한다. 남편과 아내가 역할에 대한 선입견과 기대가 다를 수 있다. 전통적인 분위기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전통적인 남편과 아내 역할을 인식하고 결혼한다. 반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자유로운 역할 인식을 한다. 부모에 대한 역할 인식에도 차이를 만들 수 있다. 결혼하고 부모가 되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부모 역할 인식에 따라 행동하고 배우자에게 그에 합당하다고 생각되는 역할을 요구하게 된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부부는 서로를 더 이해하고 수용하는 과정을 겪는다. 이 과정에서 서로의 역할을 적극적이고 유연성 있게 수용하지 못하면 깊은 갈등을 겪는다. 결혼 생활이 삐걱거리게 된다. 남편과 아내의 역할에 관해 유연성을 가지고 있는 부부가 결혼 생활 만족을 더 자주 경험하는 게 당연하다. 경직된 역할 인식을 하는 부부일수록 결혼 생활 만족감이 급격히 하락할 것이다. 전통적이라면 고정된 틀이 강하다는 의미다. 남편은 당연히 가정에서 절대적 권위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아내는 가사와 육아를 책임져야 한다는 식으로 역할 인식이 고정되어 있다면 그 부부 관계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남편이 전통적인 역할 인식을 하고, 아내는 자유로운 역할 인식을 한다면 부부 관계의 갈등과 긴장이 증폭될 것이다. 부부가 결혼 만족을 경험하며 살기 위해서는 남편과 아내에 대한 역할 인식이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고정된 틀에 자신과 배우자를 가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자신이 감당해야 할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필요한 경우 배우자의 역할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결혼은 부부가 함께 만들어 가는 특별한 장(場)이기 때문이다. 부부는 서로가 가진 역할 인식에 관해 깊은 나눔을 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남편과 아내의 역할, 엄마와 아빠의 역할은 자신의 과거와 깊은 연관이 있다. 자신의 성장 과정에서 보고 배우고 느꼈던 대로 역할에 대한 인식이 고정될 수 있다. 어린 시절 보고 느꼈던 아빠의 역할이 매우 경직되고 강압적이었다면 자신도 모르게 ‘남편은 강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해!’ 혹은 ‘아빠라면 당연히 이렇게 해야 해!’라는 인식이 마음에 남게 될 가능성이 있다. 강한 아빠 역할이 지배했던 가정일 경우 엄마 역할은 회피나 억압의 모습으로 행동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엄마를 보고 자란 사람이라면 자신도 모르게 ‘엄마의 역할은 이러해야 해!’라는 인식이 강하게 남을 수 있다. 강한 아빠의 모습과 회피하고, 순응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자란 사람이 결혼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과거 부모의 모습대로 아내와 남편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그래서 어린 시절 보고 경험했던 가정에서 엄마와 아빠의 모습, 즉 성역할의 직간접적인 학습이 중요하다. 가사와 육아는 온전히 엄마의 역할이라고 보고 자란 사람은 결혼 후 자녀 양육에 있어서 전적으로 아내에게 책임 전가할 가능성이 크다. 가정경제는 당연히 남편이 책임져야 한다는 역할 기대가 있는 아내라면 가정의 재정적인 문제에 대해 남편을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계속 서로에게 책임을 묻고, 고정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요한다면 부부 사이는 금이 갈 수밖에 없다. “당신이 하는 집안일을 어떻게 도와줄까?”라는 식으로 묻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집안일은 함께하는 과업이기 때문이다. 집에서 내가 더 업무를 분담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서로 묻고 나누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가정경제에 어려움이 있다면 서로 짐을 지겠다는 마음을 갖고 대화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서로의 역할에 불만이 있다면 더 깊은 나눔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자신이 기대하는 남편의 역할, 아내의 역할을 이야기해야 한다. 자신의 내면을 탐색해봐야 한다. 남편은 자신의 내면에 각인된 남편과 아빠의 역할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 한다. 자신이 경험했던 아버지의 모습이 이상적인 역할이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새로운 아빠와 남편 역할을 자신의 결혼 생활에서 만들어야 한다. 아내도 역할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가 있다. 자신이 경험했던 어린 시절 엄마의 모습을 통해서 고정됐던 역할을 뛰어넘어 자신의 결혼 생활에서 어떻게 새로 그려야 할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부부는 자신의 역할과 배우자의 역할을 더 깊이 이해하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 황규복 박사, 김숙경 소장 부부(두란노 결혼예비학교 부부 강사, <사랑해서 결혼한 당신에게> 저자)

     2024-12-21  제15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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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사님, 질문있습니다!] 일터에서의 영적 원칙 목사님, 질문있습니다! 일터에서의 영적 원칙 다른 조건은 너무 좋은데 주일 성수를 지키기가 어려운 직장입니다. 이직하는 것만이 답일까요? 팀 켈러 목사님의 <일과 영성>이라는 책에 ‘직업’이라는 단어의 어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직업’을 말하는 영어 보통명사 ‘vocation(보케이션)’의 어원은 라틴어 ‘부르다’, ‘목소리’라는 의미를 지닌 단어 ‘vocare(보카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 일은 먹고 살기 위한 노동, 경제적인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해서 일한다고 생각하면, 일은 직업 이상의 의미와 고백으로 다가올 수 있다. 소위 말하는 ‘좋은 조건’과 ‘주일 성수’라는 가치와 방향이 충돌하는 상황이 어떤 측면에서 비롯됐는지 면밀하고 정직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상황에 대한 정확한 영적 인식은 우리가 바른 방향을 생각하게 하는 중요한 조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두 가지 경우를 설명하고자 한다. 첫째, 주일 성수를 지키기 어려운 직장임을 알고도 다른 좋은 조건이 내 눈에 크게 보여서 그 직장을 선택한 경우다. 이 경우는 이미 답을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도 모르는 사이 영적인 우선순위 싸움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보다 다른 가치를 선택한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좋은 조건’이 하나님 보다 귀하게 보일 때가 있다. 그래서 마음의 갈등과 유혹이 찾아올 수 있다. 하지만 그 좋은 조건을 허락하신 분이 하나님이시지 않은가! 우리의 모든 상황과 조건을 주관하시고 허락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둘째, 원래 주일 성수를 지킬 수 있는 직장이었는데 상황이 바뀌어서 지키기 어려운 상황인 경우이다. 이 경우 우리는 기도하면서 이 상황과 마주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구해야 한다. 하나님은 내가 주일 성수를 지키기 어려운 상황과 마주하며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신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부르신 것이라면 그곳에서 예배하고 주일을 지키는 방법을 찾고 구해야 한다. 하나님이 그 뜻을 알려주실 것이다.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면, 온누리교회에 ‘토요주일예배’가 있다. 청년의 경우라면 토요일에 예배하는 공동체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기도하며 구체적인 방법을 찾는다면 주어진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길을 발견할 수 있다. 마음이 있는 곳에 길이 보이기 마련이다. 청년 사역을 하면서 직장 생활에서 여러 영적인 고투를 경험하는 지체들을 많이 만난다. 진로, 관계, 직장 내 거룩한 삶 등 실제적인 고민 속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 내려는 처절한 몸부림을 보고 들을 때마다 박수를 보내고 싶을 때가 있다. 물론 저마다 처한 직장의 상황이 다양하고, 직장 내 얽힌 관계의 양상이 달라서 방법적인 측면에서 대답을 제시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영적인 원칙은 분명하다. 우리가 일터에서 땀 흘리고, 수고하는 경제적인 활동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일터란 나를 부르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자리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가는 사명의 자리이다. 어떤 이에게는 먹고 사는데 필요한 곳일 수 있겠지만,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로 고백할 수 있는 곳이다. <로마서> 11장 29절에서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다고 하셨다. 내가 일터에 부름을 받은 것이 확실하다면, 하나님이 부르신 자리에 서 있는 우리를 인도해 주실 것이다. 사도 바울은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시기에 그분이 이루실 거라고 고백했다(살전 5:24). 지금도 하나님 뜻대로 우리 삶을 이루어 가고 계시며, 앞으로도 이루실 것이다. / 정한효 목사(W 청년부)

     2024-12-21  제1521호

  • 성인

    [맛있는 말씀 해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분의 충만입니다”(엡 1:23). 맛있는 말씀 해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분의 충만입니다”(엡 1:23). 바울은 참으로 많은 교회를 개척했고, 수많은 영혼에게 복음을 전했다. 바울에게 교회와 성도는 사역의 원동력임과 동시에 기도의 제목 그 자체였다. 그래서인지 이 시대 영성가 필립 얀시는 교회를 두고 “나의 고민, 나의 사랑”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바울에게 교회는 언제나 삶의 중심이고, 고민의 대상이며, 사랑의 원천이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교회와 성도들을 향해 어떤 기도를 드렸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바울은 본문에서 크게 세 가지 기도를 드린다. 첫째, 여러분으로 인해 감사하기를 그치지 않았는 기도이다. 이 기도는 감사의 기도이다. 바울이 에베소교회를 향하여 감사한 이유는 에베소교회의 믿음과 성도들을 향한 사랑 때문이었다. 교회는 세상의 공동체와 다른 곳이다. 세상은 즐거움과 쾌락, 이익을 좇지만, 교회의 본질은 믿음이다. 서로서로 믿음의 성장을 위해 도와주고, 기도해주는 공동체가 교회공동체이다. 에베소교회는 바로 그런 교회였다. 처음에는 연약하고 믿음이 부족한 공동체였지만, 바울이 눈물과 기도로 3년 동안 목회하며 변화했다. 그들의 믿음이 든든해지고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통해 눈물과 기도의 열매를 확인했다. 그래서 바울의 입술에서 자연스럽게 감사기도가 흘러나온 것이다. 둘째, 하나님을 알게 하시기를 기도하였다. 바울은 17절에서 이렇게 기도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이것은 성령과 성령의 은사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을 허락하시고 주시는 분이 누구이신가? 영광의 아버지, 바로 하나님이시다. 우리 삶의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온다. ‘하나님을 알게 한다’는 표현은 하나님을 정밀하고 정확하게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믿음의 단계는 세상 종교들의 가르침과 같이 예수를 믿어서 복을 받는 차원을 넘어선다. 삶의 모든 것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만으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게 하나님이 교회와 성도에게 원하시는 믿음의 단계이다. 바울의 두 번째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정확하게 알고, 그 하나님만 높이며 사는 예배자의 삶을 살도록 돕는다. 셋째, 하나님의 유업과 영광의 풍성함, 하나님의 권능을 알게 하기를 기도한다. 두 번째 기도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게 하는 기도였다면, 세 번째 기도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들의 위대함을 알게 하는 기도이다. 교회와 성도는 하나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교회와 성도들을 부르신 것은 ‘구원에 대한 소망’을 품게 하심이다. 구원에 대한 소망은 고난과 역경 가운데 있을지라도 예수님이 재림하실 그 날, 하나님이 우리를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실 것에 대한 소망이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분의 충만 그 자체이다. 그리고 교회의 성도는 하나님이 베푸는 부활의 충만한 능력과 은혜를 경험하고 전하는 자들이다. 우리가 그분의 충만으로 나아갈 때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머리가 되시고, 우리를 온전한 교회로, 온전한 성도로 새롭게 하신다. / 김재승 목사(수원온누리교회)

     2024-12-21  제1521호

  • 성인

    [<생명의 삶> QT 프리뷰(preview)]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한 소망 &lt;생명의 삶&gt; QT 프리뷰(preview)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한 소망 12월 23일~12월 29일 성탄절 QT: &lt;요한계시록&gt; 20:11~21:27 묵상포인트 1: 하나님 아들이 연약한 아기로 구유에 누이셨다. 그 아기는 만왕의 왕이시오, 온 세상을 구원할 구원자시다. 성탄절을 맞아 예수님의 낮아짐, 비움, 겸손, 온유, 희생 등을 되짚어 보고 그분의 낮아짐이 내게 어떤 복을 선물했는지 묵상하자.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해 하나님의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전한다. 하나님 말씀에는 불가능이 없다는 천사의 말에 마리아는 겸손히 순종한다.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찾아가자 성령으로 충만해진 엘리사벳이 마리아와 태중의 아이를 축복한다. 마리아는 비천한 자신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로마 황제 아구스도(아우구스투스)의 호적 명령에 따라 베들레헴으로 간 요셉과 마리아가 아들을 낳아 강보에 싸서 구유에 누인다. 밤에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이 다윗의 동네에 구주가 나셨다는 천사의 소식을 듣는다. 묵상포인트 2: 성경은 최후 심판에 관해 여러 차례 언급한다. 모든 사람은 예외 없이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서 선악 간에 심판을 받을 것이다. 주님이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심을 기억하고, 나의 행위를 점검하며 묵상하자. ▶요한은 최후의 심판인 흰 보좌 심판을 본다. 큰 자나 작은 자나 모든 죽은 자가 주님의 보좌 앞에 서 있고, 그 앞에는 &lsquo;각 사람의 행위를 기록한 책&rsquo;과 &lsquo;생명책&rsquo;이 펼쳐져 있다. 최후의 심판으로 사망과 음부, 그리고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은 불 못에 던져진다. 이는 둘째 사망이다. 묵상포인트 3: 성도의 최종 소망은 영원한 본향이다. 요한을 통해 하나님은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을 보여 주시며 고난을 겪는 이 땅에서 소망을 갖고 살게 하신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누릴 자와 그러지 못할 자가 어떻게 구분되는지 묵상하자. ▶새 하늘과 새 땅이 펼쳐지는 그 날 만물이 새롭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친히 함께하시기에 더는 사망과 애통이 없을 것이다. 이기는 자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상속받지만, 믿지 않는 악한 자들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게 된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어린양의 신부이자 아내다. 진기한 보석들로 표현할 만큼 아름답고 영광스럽다. 하나님과 어린양의 영광으로 인해 그 성에는 해나 달이 필요 없다. 속된 것, 가증하거나 거짓된 자는 그 성에 들어가지 못한다.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그 성에 들어가 영원한 안전을 누릴 것이다. 적용을 위한 가이드 ▶천사가 전한 말에 온전히 순종한 마리아처럼, 불가능이 없는 하나님 말씀에 의심 없이 순종으로 응답하자. ▶ 예수님의 낮아짐과 비움이 내게 어떤 복을 선물했는지 돌아보고, 예수님의 본을 따르기로 다짐하자.▶하나님은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분이다. 나의 언행 심사가 하나님 앞에 기록되고 있음을 기억하고, 매사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겸손히 행하자. ▶날마다 고통과 슬픔이 끊이지 않을지라도 천국에 대한 소망을 크게 가지고 기쁘게 살아가자.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만이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일평생 견고히 하자. 생명책에 기록되는 영원한 복을 사람들에게 전하며 살아가자. / &lt;생명의 삶&gt; 편집부

     2024-12-21  제1521호

  • 국내캠퍼스

    [news] 온누리의 메리 크리스마스 온누리의 메리 크리스마스 12월 18일 &lsquo;성탄전도예배&rsquo;, 22일까지 &lsquo;성탄절 온라인 전시회&rsquo; 21~22일 &lsquo;성탄주일예배&rsquo;, 20~25일 &lsquo;크리스마스 블레싱&rsquo;, 25일 &lsquo;성탄 감사 찬양 예배&rsquo; 온누리가 구세주 탄생을 기뻐하고 축하하는 축제를 펼친다. 12월 18일(수) 여성사역에서 성탄전도예배 &lsquo;Christmas for you&rsquo; 개최하고, 20일까지 미디어사역본부가 주관하는 성탄절 온라인 전시회 &lsquo;온누리의 크리스마스&rsquo; 작품을 모집한다. 성탄주일예배는 12월 21일(토)과 22일(일)에 드린다. 20일(금)부터 25일(수)까지는 대학청년부 크리스마스 블레싱, 25일(수)에는 &lsquo;크리스마스 감사 찬양 예배&rsquo;가 이어진다. 여성사역 성탄전도예배 &lsquo;Christmas for you&rsquo;는 12월 18일(수) 오전 10시 30분 서빙고온누리교회 본당에서 드린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 이웃을 교회로 초대해서 함께 예수 탄생 기쁨을 나누고, 구세주로 오신 예수를 소개하는 축제다. 박종길 목사(서빙고온누리교회)가 말씀을 전하고, 이광재 목사, 더블레싱챔버(The blessing chamber), 우먼투우먼(Woman2Woman)이 특순한다. 사랑챔버와 손인경 지휘자의 특별 인터뷰 순서도 있다. 미디어사역본부에서는 성탄절 온라인 전시회 &lsquo;온누리의 크리스마스&rsquo;를 개최한다. 12월 22일(일)까지 전시회에 소개할 온누리교회 성도들의 작품을 모집한다. &lsquo;크리스마스 카드&rsquo;(사진, 일러스트, 캘리그라피 등)를 제작해서 인스타그램 해시태그(#온누리의크리스마스2024)나 온누리교회 카카오채널 채팅방에 제출하면 된다. 우편(서울 용산구 이촌로 347-11 온누리교회, IT지원실 사서함)이나 서빙고 1층 로비에 설치된 빨간 우체통에 넣어도 된다. 작품을 제출할 때는 소속 캠퍼스, 공동체, 이름, 전화번호를 반드시 기재해야 한다. 제출한 크리스마스 카드는 온누리교회 공식 SNS(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 게시한다. 온누리교회 성탄주일예배는 12월 21일(토)과 22일(일) 드린다. 온누리교회 모든 캠퍼스 주일예배에서 아기 예수 탄생을 찬양하고, 기뻐한다. 22일(일) 차세대 예배에서는 &lsquo;성탄가정예배&rsquo;를 드릴 수 있도록 예배가이드가 포함된 갑티슈를 나눠준다. 대학청년부 &lsquo;크리스마스 블레싱&rsquo;은 12월 25일(수)까지 이어진다. 대학청년부 11개 공동체 1,300여 명의 청년이 이웃들과 성탄의 기쁨을 나누고, 복음을 전한다. 화개제일교회, 해금강교회, 한숲농아인교회, 황산교회, 당포교회, 낭도규포교회, 하서제일교회 등 23개 지역 교회에서 이웃 초청잔치, 교회꾸미기, 어린이 성경학교, 크리스마스 예배 등을 할 예정이다. 성탄절 당일에는 &lsquo;크리스마스 감사 찬양 예배&rsquo;가 이어진다. 서빙고온누리교회 본당에서 오전 9시, 오전 11시 30분, 오후 1시 50분에 드린다. 다른 캠퍼스는 캠퍼스별 일정에 맞춰 진행된다.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ldquo;네 이웃을 사랑하라!&rdquo; 2025 차세대 파워웨이브 연합수련회 1월 10일부터 26일까지 한동대학교 효암채플 2025 차세대 파워웨이브 연합수련회 패션(PASSION)이 &lsquo;Love your neighbor&rsquo;(네 이웃을 사랑하라)를 주제로 막 오른다. 1차 2025년 1월 10일(금)부터 12일(일)까지, 2차 17일(금)부터 19일(일)까지, 3차 24일(금)부터 26일(토)까지 한동대학교 효암채플에서 진행된다. 1차에는 서빙고 3부 서빙고 4부, 양재 고등부, 인천, 2차에는 강동, 남양주, 대전, 부천, 세종, 수원, 양지, 영종, 평택, 3차에는 서빙고 1부, 서빙고 2부, 양재 중등부, 도곡이 참여한다. 2025 차세대 파워웨이브 연합수련회 패션(PASSION) 참가를 원하는 학생들은 각 부서에서 나눠주는 신청 링크에 접속해서 신청서를 작성하면 된다. 회비는 8만 원. 문의: 02-3215-3523 / 홍하영 기자 부천온누리교회 창립 22주년 감사예배 12월 14일과 15일 주일예배에서 부천온누리교회가 12월 15일(일) 창립 22주년을 맞이한다. 이를 축하하고 기념하는 감사예배를 12월 14일(토), 15일(일) 주일 예배(본당)에서 드린다. 기념 떡 나눔도 한다. 부천온누리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고, 성도들을 양육해 성장시키며, 지역의 차세대와 장애인, 탈북민과 이주민을 섬기는 교회로 자리 잡아 왔다. 정재욱 목사(부천온누리교회 담당)는 &ldquo;부천온누리교회 창립 22주년까지 돌봐주시고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rdquo;면서 &ldquo;계속해서 주신 비전과 사명을 기억하며 모든 성도가 더 낮은 곳을 섬기는 작은 예수가 되기를 바란다&rdquo;고 당부했다. /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CGN &lsquo;오! 마이 박스&rsquo; 선교부문 우수상 2024 제16회 한국기독언론대상에서 수상 CGN 콘텐츠 &lsquo;오! 마이 박스&rsquo;가 &lsquo;2024 제16회 한국기독언론대상, 선교부문 우수상&rsquo;을 받았다. &lsquo;오! 마이 박스&rsquo;는 선교지에서 고군분투하는 선교사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지인들의 응원을 전하는 휴먼스토리다. 지난 3월 CGN 콘텐츠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대상 수상작으로 제작한 프로그램이다. &lsquo;오! 마이 박스&rsquo; 주인공 김재란 선교사(일본 시미즈, 온누리교회 경배와찬양 파송)는 일본 북해도 시미즈 지역에서 &lsquo;샤론교회&rsquo;를 개척해 14년째 복음을 전하고 있다. 개그우먼 김혜선이 시미즈를 방문해서 선교사와 선교지 일상을 따뜻하게 전달하며 시청자들의 호평을 얻었다. CGN 조은희 PD는 &ldquo;&lsquo;오! 마이 박스&rsquo;가 웃음 뒤에 숨겨진 선교사의 눈물과 고충을 시청자들과 나누며 선교사를 격려하는 귀한 도구 되기를 바란다&rdquo;고 소망했다. &lsquo;오! 마이 박스&rsquo;는 기독 OTT &lsquo;퐁당&rsquo;과 CGN 유튜브 채널에서 다시 볼 수 있다. / 홍하영 기자 온누리 사랑챔버 오케스트라 25주년 기념 콘서트 12월 25일 오후 7시 30분 서빙고 본당 온누리 사랑챔버오케스트라(이하 사랑챔버) 창단 25주년 기념 콘서트가 오는 12월 25일(수) 7시 30분 서빙고온누리교회 본당에서 열린다. 사랑챔버와 함께 아기 예수 탄생을 기뻐하고, 마음껏 찬양하고 싶은 성도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모든 연령이 무료입장한다. 문의: 02-3215-3263

     2024-12-14  제1520호

  • 주일강단

    [주일강단] 만군의 여호와 그가 오신다 만군의 여호와 그가 오신다 말 3:1~6 /이기훈 목사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속적인 불신앙과 불순종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70년 동안 바벨론 포로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70년 동안 하나님과 예배, 말씀과 신앙공동체를 사모하는 마음이 충만해졌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70년 뒤에 다시 귀국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정착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처음에는 하나님과 성전, 예배와 말씀을 중심으로 생활했습니다. 고난을 통해서 얻은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말라기 선지자를 보내셔서 심판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lt;말라기&gt;는 1차적으로 그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신 말씀이지만, 2차적으로는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lt;말라기&gt; 4장 이후 이스라엘에는 400년 동안 아무런 예언이 없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이 기간을 &lsquo;암흑기&rsquo;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lt;마태복음&gt;이 등장합니다. &lt;말라기&gt; 4장과 &lt;마태복음&gt; 1장 사이에는 400년 공백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이유, 죄와 악을 심판하기 위해서 &ldquo;&lsquo;보라. 내가 내 심부름꾼을 보내 내 앞에 길을 닦게 하겠다. 그러고 나면 너희가 바라는 주께서 갑자기 그 성전에 올 것이다. 너희가 좋아하는 계약의 심부름꾼 말이다. 그가 올 것이다.&rsquo;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rdquo;(1절).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심판을 말씀하시면서 두 명의 인물이 언급됩니다. 먼저 &ldquo;내가 내 심부름꾼을 보내 내 앞에 길을 닦게 하겠다&rdquo;고 하셨습니다. 400년 뒤에 심부름꾼을 보내겠다고 하셨습니다. &ldquo;너 아기야, 너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예언자로 불릴 것이요, 주보다 앞서 가서 주의 길을 예비할 것이며 주의 백성에게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어 구원의 지식을 전할 것이다&rdquo;(눅 1:76~77). &lsquo;주보다 앞서 가서 주의 길을 예비할 것&rsquo;은 &lt;말라기&gt;에서 하나님이 예언하신 인물이 세례 요한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세례 요한에 대해 설명하셨습니다. &ldquo;이 사람에 대해 성경에 이렇게 기록됐다. &lsquo;보라. 내가 네 앞에 내 사자를 보낸다. 그가 네 길을 네 앞서 준비할 것이다&rsquo;&rdquo;(마 11:10). 예수님도 &lt;말라기&gt; 3장 1절 말씀을 인용해서 세례 요한이 어떤 인물이며, 어떤 일을 할 것인지를 소개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그가 받은 사명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원자요, 우리가 기다리는 메시아요, 이 땅을 통치하시는 왕입니다. 이 사실을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기 사명이 무엇인지 알았고, 그 사명을 충성되게 감당하다 순교 당한 인물입니다. 여러분, 이 땅에 우연히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안에서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통해서 무엇인가 이루기를 원하시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 번째 등장하는 인물이 소개됩니다.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는 목적을 &lt;말라기&gt;에서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ldquo;&lsquo;그러므로 내가 심판하기 위해 너희에게 가까이 나아가겠다. 마법사들, 간음하는 사람들, 거짓 증언하는 사람들, 그리고 일꾼의 품삯을 착취하고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고 이방 사람의 권리를 박탈하면서도 나를 경외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즉시 증인이 되겠다.&rsquo;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rdquo;(5절). 예수님이 오신 첫 번째 목적은 &lsquo;죄와 악을 심판하기 위해서&rsquo;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 뿐 아니라 이 시대의 죄와 악을 심판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lsquo;만군의 여호와&rsquo;라는 말은 &lsquo;이 세상에서 아무도 하나님을 당할 자가 없다&rsquo;, &lsquo;하나님과 싸워 이길 자가 없다&rsquo;는 의미입니다. 심판을 말씀하시면서 만군의 여호와를 소개하는 이유는 사탄과의 영적 전쟁이 진행될 텐데 만군의 여호와가 반드시 승리하실 거라는 의미입니다. &ldquo;그러나 그가 오는 그날을 누가 견뎌 낼 수 있겠는가? 그가 나타날 때 누가 서겠느냐? 그는 금을 제련하는 사람의 불같고 세탁하는 사람의 비누 같을 것이다&rdquo;(2절). 성경에서 불은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또 세탁에 비유하셨습니다. 빨래가 깨끗이 씻어지듯 우리의 죄가 깨끗이 씻어지는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심판을 통해서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이 땅을 심판하러 오신 것은 분명합니다. 여기에 복음의 핵심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이 심판을 하러 이 땅에 오셨는데, 그분이 심판을 대신 받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든 안 되든, 중요한 복음의 메시지입니다. 심판을 하면서 지불해야만 하는 죄 값을 그분이 대신 지불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게 됩니다. 내가 죄를 져서 사망이라는 판결을 받았는데, 예수님이 대신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ldquo;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rdquo;(요 3:16). &ldquo;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사람은 영생이 있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rdquo;(요 5:24). 예수님이 심판자로 오셔서 사망을 선고하시고, 당신이 사망을 대신 받아주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 자들은 심판을 받지 않고 영생을 얻고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집니다. 여러분, 왜 심판하러 오신 그분이 우리를 대신해서 심판을 받으셨을까요? 하나님은 인간이 지은 죄를 해결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행위로는 심판을 피할 길이 없다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고, 죄의 심판을 대신 받아 주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성탄절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 위해 오신 날입니다. 우리의 죄와 악에 대한 심판을 대신 받아 주시기 위해서 오신 날입니다. 그래서 성탄절이 기쁨의 축제이고, 감사의 축제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이유, 의로운 제물이 되기 위해서 &ldquo;그가 은을 제련해 순은을 만드는 사람처럼 앉아서 레위 자손들을 깨끗하게 할 것이다. 그가 금과 은처럼 그들을 제련하면 그들이 여호와께 의로 예물을 드리게 될 것이다. 그러면 유다와 예루살렘의 제물들이 예전처럼, 곧 옛날처럼 여호와께서 기뻐하실 만한 것이 될 것이다&rdquo;(3~4절).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두 번째 목적은 의로운 제물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당시 성도들이 예배드리는 형식이 있습니다. 그런데 드리는 제물에 문제가 많았습니다. &lsquo;불의한 제물&rsquo;을 드렸다는 것입니다. 항상 최선의 것을 드리는 것이 예배자의 기본인데, 당시 백성들은 최하의 예물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제물이 되셨는데, 그분은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완벽한 의로운 제물이 되셨습니다. 불의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제물과 의로우신 예수님의 제물을 대비해서 설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몸이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합당한 제물이 되셨기 때문에 그분의 죽음이 우리를 대속하는 제물이 될 수 있고, 그분의 죽음으로 우리의 죗값을 치를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그분이 몸으로 드린 제물이 의롭고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제물이 됐기 때문에 그분의 피로 우리 모두가 죄사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ldquo;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써 의롭다는 인정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에서 확실히 구원받을 것입니다&rdquo;(롬 5:9).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린 제물은 불의했기 때문에 그것을 통해서는 의롭다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의로운 제물로 드려지셨기 때문에 그분이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 인하여 우리가 의롭다고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ldquo;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분의 피로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습니다&rdquo;(엡 1:7). 그분이 의로운 제물로 드려졌기 때문에 우리가 구속, 대속이 될 수 있었고, 죄사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성탄절은 예수님이 의로운 제물이 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날입니다. 예수님이 의로운 제물이 되신 이유 &lsquo;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rsquo; 그런데 예수님은 왜 우리를 대신해서 의로운 제물이 되셨을까요?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긍휼히 여기셨기 때문에 우리를 대신해 죽으시려고 이 땅에 오셨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셨고,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의로운 제물이 되기를 기꺼이 감당하셨습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의도를 알아야만 기쁨이 있고, 감사가 충만한 대림절을 보낼 수 있습니다. &lt;말라기&gt;를 통해 400년 이후 있을 하나님의 계획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구약시대에서부터 실행되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천 년 전부터 계획하시고, 그 일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 받은 예배자로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얻은 구원의 가치가 높고, 구원은 역사적 근거가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이 제시하신 구원 방법은 십자가를 통한 대속과 믿음입니다. 예수님이 심판 하시면서 내가 받을 심판을 당신이 대신 받아 주셨습니다. 이 사실을 입으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믿을 때 우리에게 구원이 이루어졌습니다. &lsquo;대속&rsquo;이란 &lsquo;대신 죽어줌&rsquo;을 의미합니다. 셋째, 하나님은 한 번 택한 백성을 결단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ldquo;나 여호와는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는 멸망하지 않는다&rdquo;(6절). 하나님은 심판만 하지 않고 대신 심판을 받아 주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하나님과 자녀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사랑입니다. 그 어떤 단어로도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ldquo;결코 너희를 버리지 않는다. 멸망하지 않는다. 너희들에 대한 나의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rdquo;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고백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것이 성탄절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우리가 성탄 찬양을 부를 때 가사 속에 구원의 은혜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lt;말라기&gt; 말씀을 이해하고, 마음에 신앙 고백을 가지고 있어야 성탄절에 부르는 모든 찬양이 은혜가 되고, 감사의 고백이 되고, 기쁨의 노래가 될 수 있습니다. 성탄을 맞이하면서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사랑, 그리고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되새기를 바랍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4-12-14  제1520호

  • 칼럼

    [크리스천을 위한 부부상담] 부부 싸움 줄이는 기술, ‘내면의 아이’와 ‘부모의 마음’  크리스천을 위한 부부상담 부부 싸움 줄이는 기술, &lsquo;내면의 아이&rsquo;와 &lsquo;부모의 마음&rsquo; 부부 싸움을 눈에 띄게 줄여서 이혼율을 낮추는 방법이 있다고 호기롭게 소개한 남편이 있다. 이 남편은 아내와 가능하면 부딪히는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런데도 어쩔 수 없이 부부 싸움을 하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곤 했다. 대부분 자기 잘못이라며 억지로 상황을 수용하고 참고 배우자의 말을 따랐다. &ldquo;그래! 내가 참는 것이 최선이지!&rdquo;, &ldquo;괜히 격하게 말해서 분란을 만들 필요는 없지!&rdquo;라며 자기 마음과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억울할 때가 많았다. 틀림없이 이번에는 자기 잘못이 아니라 아내의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억울한 감정이 들 때면 그도 인간인지라 참지 못하고 분을 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목소리를 높이면 높일수록 관계가 틀어지고, 억울함도 해소되지 않았다. 부부 싸움의 강도만 높아졌다. 남편은 어떻게 하면 부부 갈등을 지혜롭게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때 기가 막힌 생각 두 가지가 떠올랐다. 첫째, 아내의 &lsquo;내면의 아이&rsquo;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현재 자신과 치열하게 싸우는 아내의 나이를 버리고, 내면의 아이를 보려고 했다. 그랬더니 마음이 누그러지는 경험을 했다. 자신의 억울한 마음을 이해해 주지 못하는 아내를 보면서 느꼈던 답답함과 분노도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ldquo;그래! 나와 싸우는 아내는 성인이 아니라 내면의 무엇인가 불편함이 있는 아이고,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는 거야. 마치 우리 아이들처럼&rdquo;. 남편이 이 마음을 자연스럽게 얻은 것은 자녀 양육이 큰 도움이 됐다. 부모는 어린 자녀를 양육하면서 정말 다양한 경험을 한다. 모든 것을 내어줄 정도로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보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아이가 자라고, 자신의 주장이 강해지면서 부모와 아이가 충돌하게 된다. 어쩌면 그때 아이가 가장 자주 하는 말이 &ldquo;싫어&rdquo;, &ldquo;안 해&rdquo;일 것이다. 더 자라면 &ldquo;강요하지 마세요!, 날 내버려 둬요!&rdquo;라며 자기주장을 하기도 한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더 성숙한 부모가 되어 간다. 자녀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깊이와 폭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다양한 양육 경험은 배우자에게도 적용된다. 배우자를 성인의 관점으로 보면 도무지 이해되지 않지만, &lsquo;어린아이와 같이&rsquo;라는 관점으로 보면 이해가 되기도 한다. 무엇인가 해결되지 않은 욕구가 나와 다투게 만든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가 가질만한 기대의 좌절이 지금 자신과 다투는 배우자의 숨어있는 마음의 동기가 될 수 있다고 느낄 수 있다. 내면의 아이를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되면 긍휼한 마음을 더 가질 수 있다. 남편이 배우자를 대하는 관점을 다르게 하면 아내를 더욱 긍휼하게 여기는 마음을 얻게 됐다. 충돌하고 싸우고 자신의 억울함이 배우자에게 수용되도록 부르짖었던 태도를 내려놓을 수 있게 됐다. 자녀를 바라보듯 아내의 마음을 바라보면 무엇인가 불편한 내면의 아이를 만나게 된다. 물론 아내도 남편의 내면 아이를 볼 수 있다면 부부 관계가 더욱 유연해질 수 있다. 사람의 마음에는 다하지 못한 숙제가 있다. 어린 시절 정말 좋은 부모의 양육을 받았더라도 갈망을 느끼며 자랄 수 있다. 어쩌면 깊은 마음의 갈망이 동기가 되어서 인생의 반쪽을 찾게 한다고 볼 수 있다. 어린 시절 채우지 못했던 그 무엇인가를 채울 기회를 결혼 안에서 얻을 거라고 희망한다. 따듯함에 갈망을 느꼈던 사람은 배우자를 통해서 그것을 채우고자 할 것이다. 마치지 못했던 숙제를 다시 완수할 기회를 얻은 것처럼 말이다. 배우자 내면의 아이를 보면서 과제를 하나둘 해결할 수 있다. 단순히 갈등으로만 끝나지 않게 된다. 부부 갈등으로 서로 얻을 수 있는 유익 중 하나가 상대의 마음과 자신의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결핍된 부분을 볼 수 있다. 어쩌면 늘 부부 싸움 원인으로 작용하는 이유가 오래된 마음속 결핍의 핵심일 수 있다. 둘째, 부모의 마음을 가져보는 것이다. 부모가 아이를 대할 때 자신과 동등한 인격적 성숙을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는 성장해야 하고, 더 기다려 줘야 하는 존재라고 느낀다. 미성숙한 모습이고, 다듬어지지 않는 방식으로 표현하더라도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려는 마음을 늘 갖게 된다. 부부가 함께 살면서 이 마음이 아이들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부부에게도 필요할 때가 있다. 따뜻한 부모 자아로 배우자를 바라봐야 화해를 경험할 수 있다. 부모의 마음으로 자신도 바라보고, 배우자도 바라볼 때 부부 싸움에서 온전한 회복을 경험할 수 있다. 부부 싸움 과정에서 배우자 내면의 아이를 보려는 태도와 부모의 마음으로 배우자를 바라보려는 자세를 가지고 성숙한 부부 관계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 황규복 박사, 김숙경 소장 부부(두란노 결혼예비학교 부부 강사, &lt;사랑해서 결혼한 당신에게&gt;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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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청

    [멘토가 멘티에게]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영적 군사’ 멘토가 멘티에게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lsquo;영적 군사&rsquo; &ldquo;예배가 삶이 되고, 삶이 예배가 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하지만 늘 현실의 벽에 부딪혀 회개하고 낙담합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소망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rdquo; 우리는 모두 주일마다 고개를 떨구는 절망의 시간을 경험한다. &ldquo;왜 나는 그때 그렇게밖에 하지 못했을까?&rdquo; 다이어트에 성공하려면 열량 높은 음식을 피하고 운동을 하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지엽(枝葉)적인 것보다 우선인 것은 기본적인 생활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것(식사량, 운동 시간, 스트레스, 수면시간 등)을 건강한 패턴으로 바꾸면 나도 모르는 사이 균형 잡힌 몸이 만들어진다. 신앙생활도 다이어트와 똑같다. 삶이 예배가 되려면,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우리의 신앙 패턴을 바꾸는 변혁 과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두 가지 변혁 과정을 제안한다. 첫째, 예배 집중을 위해 기록을 하는 것이다. 왜 그런지 예배 시간만 되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 생각나고, 졸음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매번 결단 해보지만 결국 작심삼일이 되고 만다. 필자는 여러 시행착오 끝에 10년 전부터 설교 말씀을 노트에 기록하고 있다. 보고, 듣고, 적는 것이 말씀에 집중할 수 있게 하고, 설교 내용 이해를 도와준다. 더 중요한 것은 주중에 이 노트를 읽으면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게 된다. 둘째, QT를 생활화하는 것이다. 필자는 10년 넘게 &lt;생명의 삶&gt;을 숙제하듯 해 오다가 최근 3년 전부터 &ldquo;아하, QT가 이렇게 중요하고 유익하구나&rdquo;를 깨달았다. QT가 성경 공부와 함께 하나님이 매일 나에게 주시는 짧은 말씀 속에서 그분의 뜻을 알아가고, 나를 향한 계획을 깨닫는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ldquo;보시기에 좋았다&rdquo;고 하셨다(창 1:4). 그러나 아담의 타락 이후 마귀에게 공중 권세가 넘겨지므로(눅 4:6) 끊임없이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에 흠집을 내려고 한다. 그래서 &lt;에베소서&gt;에서는 마귀에게 &lsquo;틈(Foothold)&rsquo;을 주지 말라는 경고와 그 방법을 주고 있다(엡 4:27). 여기서 &lsquo;틈(Foothold)&rsquo;이란 산에 오르고 내려갈 때 반드시 밟고 가야 하는 곳이다. 그곳 말고는 밟아서도 안 되고, 밟을 수도 없는 자리를 말한다. 우리가 깨어 있지 않고 하나님 말씀으로 무장되어 있지 않으면 바로 그 틈(우리가 반드시 밟아야 할 그 자리)을 마귀에게 넘겨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기독교적 가치관이 마치 뜨거운 물 속 개구리처럼 아주 서서히 아무도 모르게, 아주 자연스럽게 세상적 가치관(요일 2:16)으로 바뀌게 된다. 우리는 이 세상의 거친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매일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묵상하고, 선포하며, 적용하는 QT를 생활화해야 한다. &lt;마태복음&gt; 25장에서는 등불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를 비유해서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신 &lsquo;예수님의 신부&rsquo;라고 말한다. 결혼식에서 신랑과 신부는 &ldquo;OO만을 사랑하겠습니다&rdquo;라는 혼인 서약을 주고받는다. 그런데 예수님의 신부인 우리가 &ldquo;OO도 사랑하고, 예수님도 사랑하겠습니다&rdquo;라고 혼인 서약을 하면 결혼식장이 갑자기 썰렁해지지 않을까? 우리의 분주함과 나태로 &ldquo;하나님도 좋고, 세상이 주는 기쁨은 더 좋습니다&rdquo;라고 한다면 아무리 삶이 예배가 되기를 원해도 원함 그 자체로 끝나 버릴 것이다. 주일예배 2시간은 일주일 동안 우리 삶의 연장이며, 일주일 동안의 우리 삶은 주일예배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며, 매일 QT하면서 우리를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영적 군사로 만드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의 예배일 것이다. / 이호진 멘토(부천드림플러스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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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의 삶> QT 프리뷰(preview)] 하나님의 명령, “바벨론에서 떠나라” &lt;생명의 삶&gt; QT 프리뷰(preview) 하나님의 명령, &ldquo;바벨론에서 떠나라&rdquo; 12월 16일~12월 22일 &lt;요한계시록&gt; 17:1~20:10 묵상포인트 1: 세상 제국이 제아무리 화려하고 강해도 성도는 그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우상 숭배와 죄악의 도시 바벨론(큰 음녀)은 결국 멸망하기 때문이다. 음녀와 음녀가 탄 짐승의 비밀, 그리고 어린양의 승리에 대해 묵상하자. ▶요한은 광야에서 붉은빛 짐승을 탄 음녀를 보았는데, 그 여자는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요, 큰 바벨론이다. 음녀는 음행으로 가득 찬 금잔을 손에 가졌고, 성도들과 예수님의 증인들 피에 취해 있다.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은 장차 무저갱에서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짐승에게 미혹될 것이다. 그러나 짐승이 자기 뜻대로 행하는 것은 하나님 말씀이 응하기까지만 허용된 것이다. 짐승과 땅의 임금들이 연합해 어린양과 그의 군대를 대적하겠지만, 만주의 주요 만왕의 왕이신 어린양이 승리하실 것이다. 묵상포인트 2: 일시적인 쾌락에 빠지면 영원한 기쁨을 잃어버리고 만다.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면 하나님과는 원수가 된다. 하나님이 바벨론을 심판하시는 이유를 살피고, &ldquo;바벨론에서 떠나라&rdquo;고 강하게 명령하시는 하나님 마음을 묵상하자.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도들을 죽이며 세상을 현혹한 바벨론에게는 비참한 심판이 예정되어 있다. 바벨론은 바다에 던져진 맷돌처럼 한 시간에 망하고,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바벨론이 멸망 당하는 이유는 음행, 교만, 사치, 우상 숭배 때문이다. 요한은 하늘로부터 나는 음성을 듣는다. &ldquo;내 백성아, 거기서(그 여자에게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rdquo; 하나님은 죄악과 불의를 기억하시고 바벨론을 철저히 심판하신다. 묵상포인트 3: 마지막 때 어린양은 거룩한 심판주로 오신다. 어린양은 악의 모체인 사탄(용, 옛 뱀, 마귀)과 그를 따르는 무리를 완전히 멸하시는 만왕의 왕, 만주의 주시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들어갈 소망으로 사탄의 멸망과 어린양의 승리를 묵상하자. ▶바벨론이 멸망 당한 이후 천상에는 영광송이 울려 퍼진다. 심판과 대비를 이루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온전한 연합과 기쁨을 묘사한다. 옳은 행실로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성도는 복이 있다. 어린양은 &lsquo;충신과 진실&rsquo;이라 불리며, 백마를 탄 전사로 오실 것이다. 천군 천사를 이끄시는 어린양은 그 입에서 나오는 예리한 검으로 만국을 치실 것이다. 어린양을 대적하며 용을 따르던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은 잡혀서 불 못에 던져질 것이다. 또한 악의 모체인 사탄이 무저갱에 던져져 천 년 동안 결박당할 것이다. 천년 뒤 사탄과 그의 무리가 전쟁하려 하나, 하늘의 불이 그들을 사르고 사탄은 영원한 불 못에 던져질 것이다. 이로써 성도를 현혹하던 사탄의 심판이 종결된다. 적용을 위한 가이드 ▶바벨론이 멸망 당하는 이유는 음행, 교만, 사치, 우상 숭배 때문이다. 이 땅에서 부와 명예와 영광을 추구하기보다 영원한 천국에 상급을 쌓으며 살아가자. ▶바벨론의 죄악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ldquo;바벨론에서 나오라&rdquo;고 명령하신다. 내가 아직도 머물러 있는 죄의 자리가 어디인지 살피고, 그 유혹을 끊기로 결단하자. ▶심판 날에 바벨론의 부귀영화는 한 시간에 사라지고 말 것이다. 일시적인 쾌락이 아닌 영원한 즐거움을 주시는 하나님과 그분 말씀만 붙들고 살아가자. ▶성도는 영광스러운 신부로 준비되어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할 것이다. 부족한 나를 온전한 아내로 만드시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찬양하자. ▶성도를 현혹하는 사탄은 패망할 존재다. 어린양의 승리를 기억하고 세상 속에서 담대히 행하자. / &lt;생명의 삶&gt; 편집부

     2024-12-14  제15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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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맛있는 말씀 해설] “엘리사가 뒤로 돌이켜 그들을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곧 수풀에서 암곰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의 사십이 명을 찢었더라”(왕하 2:24). 맛있는 말씀 해설 &ldquo;엘리사가 뒤로 돌이켜 그들을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곧 수풀에서 암곰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의 사십이 명을 찢었더라&rdquo;(왕하 2:24). &lt;열왕기하&gt; 2장 24절은 엘리사가 자신을 조롱한 아이들을 저주해 암곰들이 나와 42명을 찢어 죽이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다. 표면적으로 보면 이 본문은 하나님의 선지자가 자신을 &lsquo;대머리&rsquo;라고 놀린 사소한 조롱에 과도하게 반응해 아이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처럼 보인다. 또한 선지자 엘리사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대표해야 함에도 왜 저주를 내리고, 그 결과로 아이들이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는지 의문을 남긴다. 이 본문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이스라엘의 사회적, 종교적 배경을 고려해야 한다. 먼저, 엘리사가 향하던 당시 벧엘은 여로보암이 금송아지 우상을 세운 타락한 도시이다(왕상 12:28~29). 벧엘의 사람들은 여호와 신앙을 거부하고, 우상을 따르는 경향이 강했다. 따라서 엘리사를 조롱한 것은 단순히 선지자를 놀린 게 아니라 그 배후에 하나님과 그 대리자에 대해 우상 숭배에 물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멸이 내재해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lsquo;아이들&rsquo;이란 표현은 결혼 전까지 젊은 사람을 지칭하는 광범위한 연령대에 해당한다. &lsquo;아이들&rsquo;의 의미가 나이가 젊다는 뜻을 담고 있지만, 이 단어의 어원에는 &lsquo;미혹되다, 더럽히다&rsquo;라는 의미도 있다. &lsquo;아이들&rsquo;이 우상 숭배에 미혹돼 신앙적, 도덕적으로 심각하게 타락한 상태에 있던 자들임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ldquo;대머리여, 올라가라&rdquo;(왕하 2:23)는 말은 단순한 외모 비하가 아니었다. 당시 사회에서 대머리는 문둥병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다고 여겨져 매우 수치스럽고 불명예스러운 것이었다. &ldquo;올라가라&rdquo;는 표현은 엘리야가 승천한 사건을 언급하고, 그의 선지자로서의 권위를 부정하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이는 엘리사가 엘리야의 후계자로서 선지자로 임명된 사실을 조롱하고, 그가 엘리야처럼 사라지라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당시 엘리사는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사역을 시작한 시점이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엘리사를 조롱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는 행위로 간주할 수 있다. 즉, 이 사건은 엘리사 개인에 대한 조롱이 아니라 하나님을 모독하고, 그 사역을 대적하려는 의도가 담긴 조직적인 행위로 해석할 수 있다. 엘리사의 저주로 인한 암곰의 출현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다. 이는 하나님의 신성한 심판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엘리사는 자신의 감정에 따라 행동한 것이 아니다. 24절에 기록된 대로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을 저주했다. 이 표현으로 &lsquo;아이들&rsquo;이 단지 엘리사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까지 모독하는 저주스러운 행위를 했음을 암시한다. 또한 암곰에 의해 찢겨 죽은 자가 42명이라는 것은 많은 아이가 조직적으로 가담했으며, 그들이 적극적으로 여호와 신앙을 배격하고 박해하는 자들이었음을 입증해 준다. 따라서 엘리사의 저주는 그들이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고 대적한 것에 대한 신적 응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암곰들은 하나님의 심판 도구로 사용된 것이며, &lsquo;아이들&rsquo;의 죽음은 단순한 형벌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가 실행된 사건이다. 본문의 사건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대리자와 그 권위를 존중해야 한다는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엘리사가 단순히 자존심이 상해서 아이들을 저주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모독한 행위에 대해 하나님의 이름으로 심판을 선포한 것이다. 이 본문은 하나님의 공의가 때로는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아울러 하나님은 자신을 대적하는 자들에게 심판을 내리시는 분이며, 그의 대리자인 선지자를 존중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존중하는 것과 같다는 중요한 교훈을 준다. / 오은규 목사(성동광진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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