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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 "이웃들에게 사랑과 온기를!" "이웃들에게 사랑과 온기를!" 엔젤트리, 11월 14일까지 온라인 및 목회행정실 사연 접수 11월 21일부터 각 캠퍼스 로비에 사연 게시 및 후원자 연결 이웃들에게 사랑과 온기를 전하는 ‘2026 엔 젤트리’ 사연을 11월 14일(토)까지 접수한다. 접수된 사연은 11월 21일(토)부터 사연이 소 진될 때까지 온누리교회 각 캠퍼스 로비에 게 시되고, 후원자와 연결한다. 2026 엔젤트리 사연은 온누리교회 홈페이지 (onnuri.org), 엔젤트리 홈페이지(angeltree.kr ), QR코드에서 접수하면 된다. 각 캠퍼스 목회 행정실에서 ‘엔젤트리 사연신청서’를 수기 로 작성해도 된다. 올해 접수된 엔젤트리 사연에도 지나칠 수 없는 이웃들의 사연이 담겨 있다. 타국에서 일 하며 가족을 부양하는 외국인 근로자, 어르신 들을 위해 점심 식사를 준비하는 이웃, 장애인 어머니를 돌보며 교사의 꿈을 키우는 학생, 부 모와 떨어져 조부모와 지내는 어린이에게 선 물을 보내달라는 사연 등이 도착하고 있다. ‘엔젤트리 사연 신청서’에는 선물을 전하고 싶은 대상의 특이사항, 성격, 좋아하는 것, 대 상자의 상황과 필요한 물건(예: 캔 참치 한 상 자, 쌀 10kg, 내복 100 사이즈 등)을 구체적으 로 적어야 한다. 신청자 이름, 소속 공동체, 연 락처, 대상자의 연락처, 도로명 주소도 잊지 말 고 기록해야 한다. 선물은 5만 원 내외로 고른다. 케이크, 고기, 생선 등 변질 우려가 있는 품목과 도서상품권, 외식상품권 등 상품권은 신청할 수 없다. 명품 이나 특정 브랜드도 요청할 수 없다. 특히 의 류와 신발은 정확한 사이즈를 알려줘야 한다. 엔젤트리는 소외된 이웃들에게 작은 선물을 전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운동이다. 미 국 교회들이 재소자 자녀에게 성탄 선물을 보 낸 데서 유래했다. 온누리교회는 2015년부터 엔젤트리 행사를 이어오고 있다. 지금까지 성 도 29,615명이 참여했고, 이웃에 게 4만 개 이상의 선물을 전달했 다. 문의: 02-3215-3434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Christmas for you‘엄마 사랑해’ 12월 9일 오전 10시 30분 서빙고 본당 여성 맞춤전도집회 Christmas for you ‘엄 마 사랑해’가 오는 12월 9일(수) 오전 10시 30 분 서빙고온누리교회 본당에서 열린다. 딸이 엄마에게 감사와 사랑을 표현하고, 복음을 선 물하는 세상에 둘도 없는 축복의 장(場)이다. 이재훈 위임목사가 메시지를 전하고, 개그 우먼 조혜련, 가수 이지훈이 게스트로 출연한 다. Christmas for you‘엄마 사랑해’에 어머 니를 초청하고 싶은 성도들은 온누리교회 홈 페이지 또는 하단 QR코드로 신청서를 작성 하면 된다. 신청서에는 신청자의 이름, 전화번 호, 생년월일, 소속 캠퍼스 및 공 동체, 전도 대상자의 이름, 생년 월일, 신청자와의 관계 등을 기록하면 된다. 선착순 마감한다. 참가비는 3만 원. 문의: 02-3215-3667 / 홍하영 기자 11월 15일 화재 대피 훈련 실시 서빙고 2부 예배 직후, 모든 성도 대상 온누리교회 안전관리위원회에서 안전 한 예배 환경 조성을 위한 ‘화재 대피 훈 련’을 실시한다. 11월 15일(일) 서빙고온 누리교회 2부 예배 직후 모든 성도를 대 상으로 한다. 이번 화재 대피 훈련은 용 산소방서와 연계해서 진행한다. 화재 대피 훈련은 3층 본당 방화셔터를 작동하고 연막탄을 사용해 화재 상황을 재현한 뒤 대피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본당과 비전홀, 시온홀과 자모실, 두란노 홀과 콘서트홀, 사랑홀 등 예배 장소별로 실시한다. 대피 훈련을 마친 다음, 소방 서와 함께 화재 진압 시연을 한다. 대피 훈련 이후에는 동빙고근린공원 실습장에서 참여형 안전 교육이 이어진 다. 실습 항목은 소화전을 이용한 화재 진압, 심폐소생술(CPR), 자동심장충격 기(AED) 사용법, 소화전 및 비상발신기 사용법 등이다. 실습 참가자에게는 소정 의 상품을 준다. / 홍하영 기자 수험생을 위한 ‘수능기도회’ 차세대사역본부에서 수험생을 위한 ‘수능 기도회’를 개최한다. 수능기도회는2026 대학 수학능력시험 수험생 자녀를 둔 부모와 교사, 수험생을 위해 기도하기 원하는 성도라면 누 구나 참석할 수 있다. ‘수능매일기도회’는 11월 9일(월)부터 18일 (수)까지 매일 오전 9시 30분 서빙고온누리교 회 선교관 2층 꿈아이홀과 양재온누리교회 선교동 1층 꿈터에서 열린다(토, 일 제외). ‘수능당일기도회’는 11월 19일(목) 오전 8 시 40분부터 오후 4시 40분까지 서빙고온누 리교회 본당에서 이어진다. 수능당일기도회 는 수험생과 동일한 일정으로 진행된다. 1교 시 이재훈 위임목사, 2교시 박종길 목사, 3교 시 강부호 목사, 4교시 노치형 목사가 설교한 다. 문의: 02-3215-3523 / 홍하영 기자 남양주 창립 22주년 감사예배 11월 7~8일 모든 주일예배 남양주온누리교회 창립 22주년 감사 예배를 11월 7일(토)과 8일(일) 본당에서 드린다. 일요주일 1~3부 예배에서는 변 대섭 목사(남양주온누리교회 담당)가 ‘ 예수님을왕으로 모신 교회’(삿 9:7~20) 를 주제로 말씀을 전하고, 성도들에게 소정의 기념 선물을 준다. 변대섭 목사는 “지난 22년 동안 남양 주온누리교회에 축복을 부어주신 하나 님께 감사하다”면서 “지금 여기 사도행 전을 써가는 교회의 본질을 바로 세우 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소망했다. 한편, 남양주온누리교회에서 11월 25 일(수)부터 27일(금)까지 창립 22주년 특 별 부흥집회를 연다. ‘예수의 길’(롬 12 :2)을 주제로 변대섭 목사가 메시지를 전한다. / 남현영 기자 11월 비전헌금 ‘코스타(KOSTA)’ 후원 11월 7일(토)과 8일(일) 봉헌하는 비전헌금은 ‘코스타(KOSTA)’를 후원하는 데 사용한다. ‘코스타(KOSTA)’는 복음의 열정으로 뭉쳐 진 연합사역으로, 교단과 교파, 단체의 벽을 넘어 함께하는 연합운동이다. 전 세계 한인 청 년들과 청소년들을 섬기고, 그리스도인으로 서 훈련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고 있다. / 남현영 기자

     2026-11-07  제16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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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앙에세이] 이주민과 하나님 나라 신앙에세이 이주민과 하나님 나라 저는 젊은 시절까지 말씀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기보다 덮어놓고 믿고, “아멘”으로 화답하는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26년 동안 선교사로 살면서 성경을 보는 관점이 달라졌습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이주와 이주민의 이야기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바벨탑 사건으로 사람들이 온 땅에 흩어진 뒤, 하나님은 아브람을 불러 “네 고향, 네 친척, 네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고 하셨고, 아브람은 순종해 이주민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으로 성경을 배워 온 제가 우즈베키스탄에서 현지 언어와 문화를 익히고, 사람들과 친구가 되며, 그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 보니 이스라엘만 보이던 자리에 가나안, 이집트, 모압, 바벨론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만이 아니라 다른 민족과 그 관계에서도 뜻을 이루고 계셨습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해 복을 받을 것이다”(창 12:3)라는 말씀처럼, 하나님 나라는 처음부터 모든 민족을 향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지만, 낯선 땅에서 기근과 두려움, 불안과 의심, 실수를 겪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그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연약함 속에서 언약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완벽한 사람들의 나라가 아니라, 은혜를 의지하며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의 나라입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팔려 이집트로 간 강제 이주의 피해자였고, 노예와 죄수로 살았지만, 하나님은 그를 총리로 세워 이집트와 주변 민족과 자기 가족까지 살리셨습니다(창 45:5). 이주민의 현재 조건이 그 사람의 미래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도움받는 외국인 노동자도 훗날 자기 민족을 섬기는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모세는 이집트 왕궁에서 자랐으나 미디안 광야에서 나그네가 되어 아들 이름을 ‘게르솜’이라 지었습니다(출 2:22). 하나님은 그곳으로 찾아와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잊힌 사람을 잊지 않으십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찾아가시는 사람을 함께 발견하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룻은 모압 여인으로 “어머니의 백성이 제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제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룻 1:16)라고 고백하며 낯선 베들레헴에서 삶을 시작했습니다. 보아스는 그를 배려하고 보호했고, 룻은 다윗의 조상이 되어 예수님의 족보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주민은 도움받는 손님이 아니라 함께 예배하고 식사하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는 이웃입니다. 예수님도 헤롯을 피해 어린 시절 이집트로 피신하셨습니다(마 2:13~15). 낯선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처지를 친히 겪으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이주민을 대하는 태도는 친절의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을 어떻게 따르는가의 문제입니다. 한국 사회에는 외국인 노동자, 유학생, 결혼이민자, 난민이 함께 살아갑니다. 이들은 언어의 장벽, 불안정한 고용, 임금 체불, 체류 불안, 차별을 겪습니다. 저는 교회가 감당해야 할 사명을 이렇게 생각합니다. 첫째, 이주민을 도움받는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이웃으로 보아야 합니다. 둘째, 이주민이 실제로 겪는 어려움에 응답해야 합니다. 셋째, 이주민이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참여하도록 길을 열어야 합니다. 넷째, 서로에게 배우는 관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다섯째, 지역사회와 함께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한 사람에게서 시작되었지만, 그 복은 모든 민족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이주민은 단순히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부르시는 이웃입니다. 한국 교회가 이주민과 함께 배우고, 성장하며, 하나님 나라를 증언할 때 모든 민족이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함께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 최명현 선교사(화성M센터)

     2026-11-07  제1611호

  • 칼럼

    [크리스천 학부모님과 선생님들께] 모서리 덮어주기 크리스천 학부모님과 선생님들께 모서리 덮어주기 결혼하고 시간이 지나 이불을 새로 바꾸려고 구경 다닐 때였습니다. 가게마다 이불이 똑같이 접혀 있었고, 직원은 여러 개를 펼쳐서 보여주셨습니다. 새 이불은 다 예뻐서 적당히 골라 잘 샀는데, 제게는 이불을 펼치기 전 모습과 펼친 후 모습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왜 이불을 저렇게 정리해 두는 걸까?’ 커다란 이불을 펼치면 보통 사각형입니다. 네 귀퉁이가 모두 뾰족한 직각 모양이죠. 이불 가게에서는 종이접기에서 ‘대문접기’라고 부르는 모양으로 양쪽을 가운데로 향해 접어 겹친 뒤, 길어진 양쪽도 다시 대문접기로 접습니다. 이렇게 접으면 뾰족한 모양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이불 겉면과 충전재가 모두 보드랍고 보송보송해서 마치 둥둥 떠다니는 구름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집에 돌아와 모든 이불을 그렇게 개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꺼내고 넣기도 좋고, 뾰족한 모서리가 보이지 않는 것도 좋았습니다. 저에게도 모서리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미움, 교만, 이기심…. 그러다가 “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미 7:19)는 말씀을 읽으며 펑펑 울었던 적도 있습니다. 아주 큰 죄도 용서해 주시고, 다시 묻지 않으시는 하나님. 그 일을 기억조차 하지 않으시는 듯한 하나님의 침묵은 저를 더 회개하고 겸손하게 만들곤 합니다. 하나님은 저의 수많은 모서리를 잘 다듬어 주시고, 때로는 숨겨 주십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그 사랑과 은혜 아래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녀나 학교 아이들을 가르칠 때는 제가 받은 하나님의 ‘덮어주시는 사랑’을 잊곤 합니다. 먹기 싫은 음식을 입안에 감추고는 먹은 척하는 아이, 학습지가 하기 싫어서 한두 장씩 찢어 침대 매트리스 아래에 숨기는 아이, 문제집 뒤에 있는 정답을 보고 베끼고는 다 풀었다는 아이, 청소를 안 하고는 했다고 말하는 아이, 시험지에 받아 와야 하는 부모님 사인을 자기가 대신 해 온 아이, 교회에 간다고 해 놓고 가지 않은 아이…. 선생님이나 부모님이라면 아이들의 이런 일을 모두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거짓말을 할 때 티가 나는 게 아이겠죠? 아이들의 모든 잘못을 덮어주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가르칠 건 가르치고, 덮어 줄 건 덮어줘야 합니다. 하지만 가르칠 때도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가끔은 저도 아이에게 지나치게 차갑게 가르치고, 지난 잘못을 들춰 혼내곤 합니다. 돌이켜 보면, 저의 죄와 허물을 들추지 않고 덮어주시고 감춰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저를 일으키고 살아나게 했습니다. 자책과 우울로 헤매던 저를 거기서 끌어내고, 다시 새롭게 시작할 용기를 주었습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던 제 상황과 속마음을 다 알고도 이해하고 용서하고 품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포근한 이불 같습니다. 저를 감싸주고 보호해 주는 이불, 그리고 그 위를 부드럽게 토닥이는 손길입니다. 요즘 큐티하며 <에스겔> 말씀을 읽고 있습니다. 성경 본문을 보니 이스라엘과 레위인은 하나님의 사랑과 명령을 망각하고, 혐오스러운 일을 했고 죄를 지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죄에 빠지게 하는 걸림돌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레위인의 모든 허물을 아시면서도 “그러나 내가 성전의 직무와 모든 시중과 그 안에서 해야 할 모든 일을 그들에게 맡길 것이다”(겔 44:14)라고 하시며 다시 그들에게 일을 맡기십니다. 죄를 미워하시면서도 죄인들을 정결하게 하시고, 기다려 주시며, 허물을 덮고 다시 곁에 두시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은 정말 측량할 수가 없을 정도로 큽니다. 저들에게도, 저에게도 깊은 신뢰나 충성됨이 없고, 죄와 회개가 오래도록 반복되는데도 하나님은 오직 사랑으로 덮고 품어 주십니다. 사랑은 보통 자신이 받은 만큼 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받은 큰 사랑은 당연하게 여기고, 키우거나 가르치는 아이들에게는 그 사랑을 흘려보내지 못하는 저의 모습을 봅니다. 노력만으로는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아이들을 더 많이 사랑하고, 아이들의 부족함을 덮어주며,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 최민혜 교사(부천온누리교회, 석천초등학교, <야누시 코르차크 아이들을 편한 길이 아닌 아름다운 길로 이끌기를> 저자)

     2026-11-07  제1611호

  • 칼럼

    [이슈(Issue) 바로보기!] 성경적인 조직과 조직문화 4 [이슈(Issue) 바로보기!] 성경적인 조직과 조직문화 4 (Biblical Structure and Its Culture) 업무수행, 치유와 회복, 분별력, 그리고 축복권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을 수행할 때 가장 필요한 핵심은 자기중심성을 버리는 것이다. 자신의 나라와 자기의 의가 아닌,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의 죄악 된 본성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성령의 마음으로 회복되는 것이다. 사역을 위해서는 단순한 구원을 넘어서 영적인 치유와 회복이 필요하다. 세상 종의 멍에를 벗고, 구원받은 자유인과 청지기로서의 삶이 필요하다. 음녀의 세상 속에서 그들에게 이용당하지 않고 자신을 지키며, 또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순결한 신부이어야 가능하다. 사람은 상대방의 이익을 위해 이용당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순수성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위대한 능력의 원천이 된다. 최근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진성 리더십’은 사회가 복잡해지고, 지식이 대중화되면서 순수성의 중요성이 늘어나고 있다는 반증이다. 치유와 회복에 의한 비둘기 같은 순결함과 함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뱀 같은 지혜로움이다. 넘치는 정보의 바다에서 선택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뱀 같은 지혜, 즉 분별력이 필요하다. 지혜로운 판단력은 조직에 성과와 생명력을 가져다준다. 솔로몬은 수수께끼 같은 세상의 수많은 재판 앞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일천번제를 드린 후 소원으로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다. 예수님은 첫 번째 아담의 실패를 회복하기 위한 공생애 3년을 위해 30년 동안 지혜를 준비하셨다. 공생애 시작 전 다가온 마귀의 유혹을 예수님은 <신명기>에 기록된 말씀으로 물리치셨다. 순결함으로 마음을 모으고, 지혜로 판단(분별)한 다음 실행이 이루어진다. 실행에는 하나님이 믿는 자에게 주신 축복권을 사용할 수 있다(창 12:2~3). 시장에서의 거래는 항상 상대에게 이익이 되어야 진행된다. 이때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천하 만민을 축복하실 수 있다(창 22:18). 인류 역사에서 쌓은 모든 지식(big data)을 모아(AI 기술) 플랫폼을 만들고,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연결된 열방에게 다가갈 수 있는 시대가 펼쳐졌다. 이 시대가 성경에서 약속한 천하 만민이 복을 받는 시대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업무 수행에 있어서 우리는 세상 사람들보다 더욱 열심을 내어야 한다. 오늘 흘리는 땀으로 내일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만큼의 성과를 내기 위해서 우리의 열심은 과도하게 강조되어도 모자람이 없다. 또한 지도자는 사람들의 열심을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열심으로 인해 지식이 쌓이면 쌓일수록 지식과 현실의 간격이 커지기 때문에 개인과 조직은 늘 양심과의 치열한 싸움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인간적인 열심을 뛰어넘는, 하나님이 맡은 자에게 주시는 치유와 회복, 영적 분별력, 그리고 축복권 같은 영적인 원리를 통해서 도전과 어려움을 극복하는 용기와 하나님의 기이한 인도하심을 체험하게 된다. 조직의 발전: 평가와 배려 조직에서 업무를 수행한 뒤에는 업무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이루어진다. 사랑의 하나님이시면서 또한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100%의 평가와 배려가 필요하다. 배려가 없는 냉정한 평가는 메마른 조직문화를 만들어 내고, 냉정한 평가 없는 배려는 무능한 조직문화를 만든다. 우리는 먼저 업무에 관해 냉정한 평가를 해야 한다. 평가 결과를 전달할 때는 배려가 요구된다. 일을 잘하지 못한 직원에게 평가 결과를 냉정하게 전달하면 우리는 할 일을 했다는 마음과 함께 일부 불편한 느낌이 든다. 이때 하나님은 사랑으로 전달했느냐고 우리에게 질문하신다. 이런 측면에서 모든 리더에게는 자신과 함께하는 직원들에게 목회자적인 마음과 접근이 필요하다. 예수님은 자신을 세 번 부인한 베드로에게 세번의 사랑을 회복시켜 주시고, 목회를 맡기셨다. 우리의 모든 일은 예수님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 수 있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목표의 성취가 아니라 목표를 성취하는 사람이 중요한 것이고, 조직을 통해서도 구원이 궁극적인 목적이 되어야 한다. 세 번을 부인한 베드로의 연약함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하듯, 우리의 연약함 속에서 하나님의 위대함이 드러나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 박성진 총장(OCC공동체, 한동대학교 총장)

     2026-11-07  제1611호

  • 주일강단

    [주일강단] 사사기 강해(7) 성공이 더 위험합니다 사사기 강해(7) 성공이 더 위험합니다 <사사기> 7:1~8 / 이재훈 위임목사 <사사기> 6장은 두려워 숨어 있는 자를 찾아 세워 주시는 하나님에 관한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다음 장면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기드온이 아버지의 집에 있는 바알 제단을 부수고 난 뒤 일어난 일입니다. 미디안과 동쪽 지역의 지파들, 아말렉 사람들이 요단을 건너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쳤다고 합니다. 성경은 그들의 수가 메뚜기처럼 많았다고 말씀합니다. <사사기> 6장 34절을 보면, “그때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직역하면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을 옷 입히셨다”입니다. 숨어 있던 사람이 하나님의 영을 옷처럼 덧입고 담대하게 나팔을 불었습니다. 그러자 므낫세와 아셀과 스불론과 납달리에서 3만 2천 명의 백성들이 모여들었습니다. 7년 동안 동굴에 숨어 살던 백성들이 담대하게 나선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드온 한 사람을 부르신 것 같지만, 그를 통해 백성들을 부르신 것입니다. 3만 2천명이 함께 나섰을 때 백성들도 뿌듯했을 것입니다. 이 정도 숫자면 미디안과 아말렉과의 전투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백성들이 너무 많다” 기드온이 또 하나님의 표적을 구합니다. 첫 번째는 “이 양털만 물에 젖게 되고 그 주변의 땅은 다 마르게 해 주십시오”, 두 번째는 “주변만 다 물에 젖고 양털만 마르게 해 주십시오”라며 하나님의 표적을 구합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이 구하는 표적대로 응답해 주시며 그에게 확신을 주셨습니다. 기드온의 마음속에 의심과 두려움, 불안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구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기도온의 믿음을 강건하게 해 주시기 위해 표적을 여러 번 보여 주셨습니다. 그로 인해서 백성들이 기드온을 중심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롯 샘이라는 곳에 진을 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백성이 너무 많다”라는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여러분, 우리는 무엇이든 많아야 마음이 놓입니다. 사람이 많이 모이면 안심이 되고, 적게 모이면 불안합니다. 통장의 숫자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백성들이 너무 많다”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승리 이후가 더 위험하다 첫째, 하나님은 패배보다 승리 이후를 더 위험하게 보셨기 때문입니다. 지금 기드온과 그 백성들이 상대해야 할 숫자는 13만 5천 명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3만 2천 명입니다.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너무 많다고 말씀합니다(2절). 기드온이 귀를 의심했을지도 모릅니다. “적이 너무 많다”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우리 편이 너무 많다”라는 말은 처음 들어 보았기 때문입니다. 3만 2천 명으로 상대하기에도 벅찬 13만 5천 명이 대적인데, 하나님은 왜 왜 많다고 하셨을까요? 사람들은 미디안의 숫자를 세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 백성들의 마음을 세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위험하게 보신 것은 패배가 아닙니다. 승리였습니다. 승리한 다음 날 이스라엘이 하게 될 말이었습니다. “내 손이 나를 구원했다.” 하나님은 이 말을 경계하신 것이고, 이 말이 나오지 않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기드온과 그 백성들에게 미디안을 넘겨주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공은 보장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성공 이후에 그들의 위험이었습니다. 그들이 성공 이후에 빠지게 될 위험을 미리 없애기 위해 자만심과 교만을 미리 제거하는 것이었습니다. “내 손이 나를 구원했다”라는 말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백성이 너무 많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미디안에게 넘겨진 이유는 비와 수확을 약속하는 바알을 섬기며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런 백성이 이제 3만 2천 명으로 이기고 나면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우리 힘으로 이겼다”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미디안에게서 건짐을 받아도 우상을 믿고, 자신을 의지하는 마음에서는 건짐을 받지 못합니다. 그 마음에 여전히 우상숭배가 자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미디안의 손에서 건지실 뿐만 아니라, 동시에 자신을 믿는 우상도 건지기를 원하셨습니다. <신명기> 8장에서 모세는 “내 마음에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라고 말하지 않도록 하라”면서 가나안에 들어갈 백성들에게 여러 차례 경고합니다. 모세는 광야의 굶주림보다 가나안의 배부름을 더 경계하도록 했습니다. 배부름이 가져오는 영적 위험을 하나님이 여러 번 경고하셨는데, 그 경고를 기드온을 중심으로 한 전쟁터에서 또 주고 계십니다. 존 웨슬리(John Wesley)가 18세기 영국 국교회에서 시작한 메소디스트(Methodist) 운동이 오늘날의 감리교 운동으로 이어졌습니다. 메소디스트 운동을 일으키고, 부흥이 영국 전역에 퍼졌을 때 그는 매우 비관적인 말을 했습니다. 참된 신앙의 부흥이 오래 지속하기 어려운 이유를 <메소디즘에 대한 생각(Thoughts Upon Methodism)>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나는 메소디스트라 불리는 사람들이 유럽에서든 미국에서든 언젠가 사라질까 두렵지 않다. 내가 두려운 것은 그들이 경건의 모양만 있고 능력은 없는 죽은 분파로만 남게 되는 것이다. 그들이 처음 출발할 때 지녔던 교리와 정신과 규율을 함께 굳게 붙들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그렇게 될 것이다.” 또 다른 문장입니다. “나는 두렵다. 재물이 늘어난 곳마다(예외는 지극히 드물다) 신앙의 본질, 곧 그리스도 안에 있던 그 마음이 같은 비율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참된 신앙의 부흥이 어떻게 오래 지속할 수 있는지 사물의 이치상 알지 못하겠다. 신앙은 반드시 부지런함과 검소함을 낳고, 이 둘은 재물을 낳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재물이 늘어나면 교만과 분노와 온갖 모양의 세상 사랑도 함께 늘어난다. 그렇다면 메소디즘, 곧 마음의 신앙이 지금은 푸른 월계수처럼 무성하다 해도 어떻게 이 상태로 지속될 수 있겠는가? 메소디스트들은 어디서나 부지런하고 검소해지고 그 결과 재산이 늘어난다. 그만큼 교만과 분노,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늘어난다. 신앙의 모양은 남아 있어도 그 영은 빠르게 사라져 가고 있다.” 존 웨슬리는 메소디스트가 사라질까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두려워한 것은 성공한 메소디스트였습니다. <사사기> 7장 2절에서 하나님이 보고 계신 것과 같은 것을 존 웨슬리도 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 수를 줄인 이유 둘째, 그래서 하나님이 조치하신 일은 바로 사람 수를 줄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무것도, 아무도 자랑할 수 없는 수가 될 때까지 줄이셨습니다. “그러니 지금 너는 백성들의 귀에 선포하여라. ‘누구든 두려워 떠는 사람은 돌아서서 길르앗 산으로부터 떠나라.’ 그러자 백성 가운데서 2만 2,000명이 돌아갔고 1만 명만 남게 됐습니다”(3절). “두려운 사람은 다 떠나라”고 했더니 2만 2천 명이 돌아가고, 1만 명만 남게 되었습니다. 합당한 조치입니다. 여기서 끝났다면 우리가 이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4절에서 “아직도 사람이 너무 많다”고 말씀하시며 물가로 백성들을 데리고 가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물을 마시게 하는데, 혀로 핥아먹는 자와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시는 자로 구분합니다. 그때 손으로 물을 먹은 자가 300명이고, 나머지 9,700명이 무릎을 꿇고 물을 먹었습니다. 하나님은 “손으로 물을 떠서 먹은 300명만 남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결과입니다. 하나님은 300명을 택하셨습니다. 더 적은 수를 택하신 것입니다. 어떤 행동에 의미를 두고 사람을 구분한 것이 아니라, 더 적은 쪽을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택하셨습니다. 어떤 행위를 가지고 정예부대를 뽑은 게 아니라, 스스로 자랑할 수 없는 수치까지 내려가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300 대 13만 5천 명이 된 것입니다. 종종 이 말씀을 근거로 ‘기드온의 300 용사를 본받자’, ‘깨어 있는 소수가 되자’는 메시지로 이용하는데, 본문이 강조하는 바는 아닙니다. 300명이라는 소수를 칭찬하는 게 아닙니다. 기드온의 300 용사를 프로그램화해서 “우리는 300명으로 이런 일을 해냈다”라고 말하면 잘못 적용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3만 2천 명에서 300명으로 의도적으로 줄이셨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내 힘으로 구원했다”라는 말이 나오지 않게 하려고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숫자를 줄이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물을 핥아먹은 사람 300명으로 내가 너희를 구원하고 미디안 사람들을 네 손에 넘겨주겠다. 다른 모든 백성들은 각각 자기가 사는 곳으로 돌려보내라’”(7절). 하나님이 끝까지 경계하시고자 한 것은 “내 손이 나를 구원했다”라는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충분히 약할 때까지 기다리시고, 충분히 약해졌을 때 승리를 주십니다. 믿음을 보충해 주시고, 친히 싸우셨다! 셋째, 하나님은 그들의 연약한 믿음을 보충해 주시고 친히 싸우셨습니다. 300명이 손에 든 것은 칼과 창이 아니었습니다. 돌아간 사람들이 두고 간 양식과 나팔, 항아리였습니다. “그리하여 기드온은 300명만 남기고 다른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각각 자기의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들은 돌아간 백성들의 식량과 나팔을 손에 들었습니다. 미디안 군대는 기드온이 있는 평원 아래쪽에 있었습니다”(8절). 그들은 돌아간 백성들의 식량과 나팔을 손에 들었습니다. 미디안 군대는 기드온이 있는 평원 아래쪽에 있었습니다. 평원 아래쪽에는 13만 5천 명이 있고, 300명이 그 위에 있는데, 칼과 창이 아닌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었습니다. 어느 쪽이든 무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일어나 내려가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넘겨주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의 마음에 있는 두려움을 보셨습니다(10절). 하나님은 기드온의 두려움을 아셨습니다. 3만 2천 명이 있었더라면 덜 두려웠을 텐데, 그것을 300명으로 하나님이 줄이셨으니 기드온이 두렵지 않았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확신이 부족해서 하나님의 표적을 구하던 기드온인데, 사람을 300명으로 줄었으니 두려웠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이 표적을 구하기도 전에 그에게 표적을 주십니다. “적진 가까이 내려가 들어 보아라. 그들이 하는 말을 들어라.” 한 병사가 말합니다.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영으로 굴러와 그 장막을 무너뜨렸다.” 다른 병사가 해석합니다. “그 꿈은 다름 아닌 이스라엘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이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미디안을 그의 손에 주셨다.” 적들의 입을 통해서 하나님이 확신을 주셨습니다. 그날 밤 전투가 벌어집니다. 300명은 한 손에 나팔을, 한 손에 횃불을 감춘 빈 항아리, 양손에 무기가 아닌 것들을 들고 섰습니다. 그리고 일제히 나팔을 불고 횃불을 들고 외칩니다. 항아리를 깨뜨리며 이렇게 외칩니다.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다!” 그들이 외치면서 속으로 웃었을지도 모릅니다. 칼이 없는데도 항아리를 깨뜨리며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다!”라고 외쳤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결코 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바로 그때, 미디안 군대가 자신의 칼로 서로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칼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기드온의 칼을 외쳤지만, 미디안은 서로 칼을 사용함으로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아무것도 한 일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3만 2천 명을 1만 명으로 줄이시고, 다시 300명으로 줄이심으로써 원하시는 것은 단 한 가지였습니다. 그들이 “내 힘으로 이를 이루었다”라고 말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내 손이 나를 구원했다”라고 말하지 않게 하려고 <사사기> 8장에서 백성들이 또다시 사람을 바라보며 세웁니다. 그리고 “당신의 손이 우리를 구원했다”라고 기드온을 높입니다. 기드온이 올바른 대답을 합니다. 백성들은 기도온에게 “당신이 구원해 주셨으니 우리를 다스려 주십시오”라고 말하지만, 기드온은 “아니다. 하나님이 하신 것이므로 오직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릴 것이다”라고 정답을 말합니다(삿 8:22~23). 그런데 기드온에게서 안타까운 모습이 나타납니다. 백성들에게서 약탈한 귀고리를 자신에게 달라고 말합니다. “기드온이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너희 각자가 약탈한 귀고리를 내게 주라.’ 이는 미디안이 이스마엘 사람들이므로 그들이 금귀고리를 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삿 8:24). 이스마엘 사람들이기 때문에 미디안이 금귀고리를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기드온이 금으로 에봇을 만들어 자신의 성읍인 오브라에 두었고,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우상으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기드온은 그 금으로 에봇을 만들어 그것을 자기의 성읍인 오브라에 두었습니다. 그곳에서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우상으로 섬기게 됐습니다. 결국 그것이 오히려 기드온과 그의 집안에 덫이 됐습니다”(삿 8:27). 여기서부터 기드온의 성공 이후의 문제가 나타납니다. 기드온은 귀고리 금으로 에봇을 만들고, 그것이 어떤 이유이었든 우상이 되었습니다. 잘못한 것입니다. 그것이 기드온과 그의 집에 올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성공을 위험하게 보신 것은 지나친 염려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성공 이후에 백성들이 나아가는 방향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숫자를 줄여서 이기게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백성들의 우상숭배는 제거되지 않았습니다. 3만 2천 명을 300명으로 줄여서 이기게 하심으로 오직 하나님만 높이기를 원하셨는데, 백성들은 또 기드온을 높였고, 기드온은 일면 잘 관리했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우상숭배를 만들어 내는 인간의 연약함을 보였습니다. 하나님이 오직 은혜로 구원하셨는데, 여전히 스스로 구원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인간들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미디안에 대항하는 백성을 300으로 줄이셨지만, 우리를 구원하실 때는 ‘제로(Zero)’로 만드셨습니다. 복음에는 “내 손이 나를 구원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자리가 조금도 없습니다. 우리의 노력, 열심, 착함, 신앙 경력이 구원에 보탠 것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누구도 자랑치 못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을 줄이실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떠나시려는 것이 아니라, 구원이 누구에게서 오는지를 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반대로 많은 것을 가지고, 일이 잘되고, 성공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그 성공을 위험하게 보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성공 이후에 “내 손이 이루었다”라고 말하는 것을 하나님이 주목하고 계십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손을 자랑하는 교회를 통해 일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통해 일하시는 법칙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자신을 자랑하고, 의지하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노하십니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과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만을 기대하십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기를 바랍니다. <시편> 115편 기자가 고백한 대로, “여호와여 우리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우리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오직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십시오”라는 고백만 있기를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6-11-06  제1611호

  • 국내캠퍼스

    [News] “최고의 선물은 ‘복음’입니다” “최고의 선물은 ‘복음’입니다” 11월 2일 의사맞춤전도집회 ‘러브터치’, 12월 9일 크리스마스 포 유 ‘엄마 사랑해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은 복음이다. 최고의 선물인 ‘ 복음’을 전할 기회가 찾아온다. 11 월 2일(월) 의사맞춤전도집회 ‘러브 터치’, 12월 9일(수) 여성 맞춤전도 집회 크리스마스 포 유 ‘엄마 사랑 해’(이하 크리스마스 포 유 엄마 사 랑해)가 막 오른다. 의사맞춤전도집회 ‘러브터치’는 의사들에게 예수님의 사랑과 위로 를 전하는 축복의 장(場)이다. 11월 2일(월) 오후 6시 50분 서빙고온누 리교회 본당에서 열린다. NGO 메디 엑세스와 전도사역본부가 공동 주 최한다. 방송인 김원희가 사회를 보 고, 가수 범키, 가스펠 보컬팀 크룩 스, 샌드애니메이션 작가 박진아가 공연한다. 메시지는 이재훈 위임목 사가 전한다. 의사맞춤전도집회 ‘러브터치’ 참 가를 희망하는 성도들은 11월 2일 (월) 서빙고온누리교회 로비에 마련 되는 접수데스크에서 현장 접수하 면 된다. 사전 접수는 마감했다. 참 가비는 1인당 5만 원(저녁 만찬 포 함). 크리스마스 포 유 ‘엄마 사랑해’ 는 어머니에게 감사와 사랑을 표현 하고, 복음을 선물하는 위로의 장 (場)이다. 12월 9일(수) 오전 10시 30 분 서빙고온누리교회 본당에서 진 행된다. 이재훈 위임목사가 메시지 를 전하고, 개그우먼 조혜련과가수 이지훈이 게스트로 출연한다. 크리스마스 포 유 ‘엄마 사랑해’ 참가신청은 온누리교회 홈페이지와 포스터 속 QR코드로 하면 된다. 각 캠퍼스에 설치되는 안내데스크에서 도 신청할 수 있다. 선착순 마감한 다. 참가비는 3만 원(점심 포함). 문의: 02-570-7110(의사맞춤전도 집회), 02-3215-3667(크리스마스 포 유)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AI 시대, 제자로 사는 방법 온누리 미래&가족 축제, 리더십과 청년 참석 2026 온누리 미래&가족 축제(OF FC)가 10월 27일(화)부터 31일(토) 까지 서빙고와 양재온누리교회, 온 라인에서 열렸다. ‘AI 시대의 제자 도’(마 16:24)를 주제로 닷새 동안 특강과 본행사가 이어졌다. 온누리 미래&가족 축제(OFFC)는 10월 27일(화) 오후 7시 30분 서빙고 온누리교회 본당에서 열린 특별 강 의가 문을 열었다. 이인용 장로가 ‘ 세상 가운데 제자로의 삶’을 주제로 강의했다. 28일(수)부터 30일(금)까지 매일 오후 7시 30분 온누리교회 유튜브 채널에서는 온라인 특강이 이어졌 다. 28일(수) 박태성 장로와 김영욱 장로 ‘제자도의 이해와 실천’, 29일(목) 김홍주 목사 ‘로잔운동에서의 제자도’, 30일(금) 김경훈 집사 ‘AI 에 대한 성경적 관점 및 활용 가이 드’를 주제로 강의했다. 31일(토)에는 양재온누리교회 기 쁨홀에서 ‘AI 시대, 교회의 책무와 제자도의 실천’을 주제로 본행사가 2026 온누리 미래&가족 축제(OFFC). 열렸다. 주제 강의, 설문 조사 결과 발표, 패널토의, 대학청년부 공모전 우수작 발표 및 시상 등을 했다. 주 제 강의는 이재훈 위임목사가 ‘AI 시대의 제자도’를 주제로 했다. 박 태성 장로는 ‘AI 시대의 제자도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패널 토의에서는 이인용 장로가 사 회를 보고, 이재훈 위임목사, 이서진 목사(여호수아청년부), 유혁 집사 (고려대학교 교수), 하선희 집사(한 국 콜슨 펠로우즈 대표), 이중호 형 제(SNS청년부 대표 MC)가 패널로 참가했다. 본행사에는 공동체 대표 장로 등 리더십과 양재 순장학교 수 강생 및 스태프, 대학청년부 청년들 이 참석했다. / 홍하영 기자 2026 엔젤트리 사연 접수 11월 14일까지 온라인 및 목회행정실 신청 ‘ 2026 엔젤트리’ 사연 접수가 한창이다. 11월 14일(토)까지 국내 모든 캠퍼스에서 실시한다. 온누리교회 홈페이지나 QR코드로 하면 된다. 각 캠퍼스 목회행정실에서 ‘사연신청서’를 수기로 작성할 수도 있다. 엔젤트리 사연신청서에는 선물을 받을 대상(가족, 친구, 이웃 등)을 꼼 꼼하게 적어야 한다. 후원자가 선물을 구입하기 편하도록 대상자의 상황 과 필요한 선물(예, 캔 참치 한 상자, 쌀 10kg, 내복 100 사이즈 등)을 구체 적으로 쓰는 게 좋다. 신청자 이름과 소속 공동체와 연락처도 반드시 적 어야 한다. 선물 배송을 위해 대상자의 연락처와 도로명 주소도 필요하다. 선물은 5만 원 내외로 골라야 한다. 케이크, 꽃, 고기, 생선 등 변질 우려가 있는 품목과 상품권은 신청할 수 없다. 명품 이나 특정 브랜드는 표기할 수 없다. 의류와 신발은 정확한 사이즈를 기재해야 한다. 문의: 02-3215-3434 / 홍하영 기자 11월 1~15일 ‘열린순예배’ 돌봄순원, 전도대상자 순예배에 초대 온누리교회 모든 공동체와 순이 11월 1일(일)부터 15일(일)까지 ‘열 린순예배’를 드린다. 2024년부터 시 작한 열린순예배는 돌봄순원과 전 도대상자를 순예배로 초대해 함께 교제하며 복음을 전하는 예배다. 열린순예배 시간과 장소는 공동체 와 순의 사정에 맞춰 정하면 된다. 열린순예배를 준비하는 순에게는 < 가이드북>을 제공한다. 각 캠퍼스 공동체 담당 간사에게 받으면 된다. 열린순예배를 드린 다음에는 진행 경과와 사진 등을 담은 ‘결과보고서 ’ 를 꼭 제출해야 한다. 문의: 02-3215-3239(공동체본부) 02-3215-3214(전도본부) / 홍하영 기자

     2026-10-31  제1610호

  • 칼럼

    [신앙에세이] 빈손으로 걸어도 하나님은 채우신다 신앙에세이 빈손으로 걸어도 하나님은 채우신다 해병대 복무 시절, 미국 횡단 계획을 세웠다. 길 위에서 노숙하고 히치하이킹을 하며 서부 LA부터 동부 뉴욕까지 4,813km를 50일 동안 단돈 30만 원으로 횡단하는 도전이었다. 모두가 뜯어말렸지만, 이 여정을 통해 증명하고 싶은 가치가 있었다. 바로 “빈손으로 걸어도 하나님은 채우신다”는 것이다. 전역하고 복학해서 철저하게 준비했다. 70L 배낭을 메고 끝없는 광야를 걸어가야 하기에 11kg을 감량했다. 하루 한 끼만 먹으며 굶주림에 익숙해지는 연습도 했다. 그리고 비로소 나는 길 위에 섰다. 여정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잘 곳이 없어서 마트와 공항을 찾아 헤맸다. 밤에는 노숙인에게 쫓기기도 했다. 사흘을 1달러로 버티기도 했고, 끝없는 사막에서 남은 돈의 절반으로 기차표를 사며 낙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도움으로 조금씩 동쪽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더 줄 수 없음에 아쉬워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하나님의 세상을 믿기로 했다. 나는 66번 국도를 따라 걸었다. 때로는 횡단 열차에 몸을 싣고, 큰 트레일러를 얻어 타며 끝없는 중부 사막을 달렸다. 그랜드캐니언 앞에 섰을 땐, 창조주의 위대함에 겸허해졌다. 우리는 서로의 것을 재며 살아왔지만, 거대한 자연 앞에서는 한낱 피조물에 불과했다. 특히 댈러스에서의 일이 기억에 남았다. 한 빵집에서 만난 분이 지금까지의 여정을 들으시고는 진열대의 모든 빵을 사 주시며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다시 빈손으로 출발하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말씀을 따랐고, 다시 빈손으로 출발한 나의 여정은 또다시 놀랍게 채워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뉴욕에 다다랐을 때, 내 주머니에는 770달러(약 102만 원)가 있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사람들의 사랑과 도움의 손길이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고, 기적이었다. 나는 가지고 있는 돈으로 타코를 사서 맨해튼의 노숙인들과 나누었다. 이 여정은 그저 미국을 횡단한 모험이 아니라, 빈손으로 걸어도 하나님이 채우신다는 것을 증명한 여정이었다. 나는 다시 삶의 자리로 돌아왔다. 50일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내게는 한 편의 대서사시였다. 417km를 홀로 걸었고, 2,359km를 히치하이킹했으며, 2,037km는 대륙 횡단열차에 몸을 실었다. 50일 간의 횡단 끝에 나는 하나님이 낯선 사람들의 친절과 만남을 통해 빈손을 채우셨음을 발견했다. 그 길 위에서 수많은 청춘을 만났다. 청춘의 가치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데 있음을 배웠다. 도전하는 용기는 언제나 박수받아 마땅하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지만, 그것이 배의 존재 목적은 아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순례자다. 인생이라는 길을 걷다 보면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만난다. ‘나는 지금 여행자로 걷고 있는가, 아니면 순례자로 걷고 있는가?’ 여행자와 순례자는 둘 다 길을 걷지만, 목적과 시선이 다르다. 여행자는 새로운 장소와 경험을 찾아 길을 떠난다. 그러나 순례자는 길을 걸으며 삶의 의미와 하나님을 찾아간다. 여행자는 길 위에서 세상을 만나지만, 순례자는 길 위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발견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함께하신다. 하나님이 함께하실 때 우리는 폭풍의 바다 위를 걸으며, 거친 산 위에 우뚝 설 수 있다. 빈손으로 걸어도 채우셨던 4,813km의 여정처럼 말이다. / 장건우 전도사(여호수아공동체)

     2026-10-31  제1610호

  • 칼럼

    [멘토가 멘티에게] 이직의 큰 함정, 경력 단절 멘토가 멘티에게 ‘슬기로운 이직 생활’ 이직의 큰 함정, 경력 단절 “한때 잘나가던 직장인이었는데, 충전을 위해 자발적으로 사직하고 아웃리치와 여행, 휴식의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직장을 구하려니 쉽지 않습니다. 어떡해야 할까요?” 이직 과정의 큰 함정 하나가 ‘경력 단절’이다. 필자는 믿음이 없던 시절 20여 차례 이직 과정에서 여러번 실직과 경력 단절을 경험했다. 그때 가장 힘들었던 것은 실직 자체보다 실직으로 인한 불안과 두려움, 수치심이었다. 그래서 멘티들의 이직 상담에 응할 때 “불가피하면 이직은 하되, 실직은 피하라”고 조언하곤 한다. 일시적 실직이 뜻하지 않게 장기화해 경력 단절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경력 단절 같은 광야의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다고 말한다. 대표적인 인물이 이삭과 모세다. 이삭은 여러 번 우물을 빼앗겼지만 다투지 않고 다시 우물을 팠고, 르호봇에 이르러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다”고 고백했다(창 26;22). 모세는 애굽 왕궁에서 40년을 지낸 뒤 살인자가 되어 미디안 광야로 도피해 또 다른 40년을 보냈다. 세상적으로는 실패와 단절의 시간이었지만, 하나님이 그 시간을 통해 모세를 낮추시고 다듬으셔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셨다. 이처럼 경력 단절의 시기는 단순한 멈춤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연단하시고 준비시키시는 시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경력 단절은 고통과 낙심으로만 느껴진다. 실직은 인생 전체의 실패가 아니라 한 장(章)의 마감이자 새로운 장을 기다리는 과정일 수 있다. 1년 이상 직업이 없는 상태를 경력 단절로 본다면, 필자는 네 가지를 권면하고 싶다. 첫째, 성실하게 구직해야 한다. 실직의 상처로 구직 활동이 위축되기 쉽지만, 하나님은 게으름보다 성실함 가운데 역사하신다. 믿음은 기다리는 것만이 아니라 움직이는 성실함 속에서도 자라난다. 둘째,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다시 발견해야 한다. 경제적 압박이 덜하다면 적성과 은사를 충분히 점검하는 것이 좋다. 달란트를 뒤늦게 발견하는 일은 새로운 부르심으로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된다. 전직은 낮아짐을 요구하지만, 실패가 아니며,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다시 높이신다. 셋째, 영혼과 육체를 재정비해야 한다. 몸이 약하면 건강을 회복하고, 체력이 부족하면 훈련하고, 믿음이 약해졌다면 영적 기초를 다시 세워야 한다. 광야는 사람을 무너뜨리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곳이다. 하나님은 광야에도 길을, 사막에도 강을 내시는 분이시다. 넷째, 창업도 고려할 수 있다. 경험한 분야를 살려 도전하는 청년들을 볼 때 큰 기쁨을 느낀다. 창업이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하나님이 주신 비전과 책임감으로 도전하는 용기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고 싶다. 성경 속 다윗은 단절을 거쳐 왕으로 세워졌다. 하나님은 다윗의 역할이 아니라 순종을 보셨다. 청지기 정신으로 일하고 섬기려는 마음이 있다면, 하나님은 단절의 과정을 통해서도 사람을 성장시키신다. 따라서 단절을 대비할 지혜와 극복할 믿음의 저력을 미리 길러야 한다. 먼저 대비하는 방법의 하나는 일터 어디서든 사랑받고 신뢰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실력만으로 오래 살아남는 시대가 아니다. 신뢰와 성실, 관계의 자산은 위기에 큰 힘이 된다. 극복하는 힘은 결국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붙드시고 인도하신다는 믿음에서 나온다. 필자는 45세에서 49세 사이 M&A와 벤처 투자 전문가로 일하다 타국으로 이주해 생계를 위해 비자발적으로 자영업을 해야 했다. 그 시기가 가장 힘들었다. 그러나 그 낮은 자리의 경험이 지금 경영과 사업의 기초 체력이자 영성의 뿌리가 되었다. 하나님은 때로 낮아짐을 통해 사람을 깊게 만드신다. 그러므로 경력 단절의 시기에는 수동성과 안일함, 도피를 끊어야 한다. 신앙을 현실도피의 수단으로 삼는 태도도 경계해야 한다. 믿음은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해 현실 속으로 다시 걸어 들어가는 힘이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에게 ‘시도와 돌파’를 요구하신다. 아브라함의 떠남도, 이스라엘의 광야 행진도 순종의 도전이었다. 하나님은 순종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을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시고, 가장 좋은 것으로 채우시는 선하신 아버지이시다. /박기일 장로(길공동체 멘토, OCC공동체)

     2026-10-31  제1610호

  • 칼럼

    [미술의 원래 모습 찾기] 우유 따르는 여인(1) 미술의 원래 모습 찾기 우유 따르는 여인(1) 미술은 원래 하나님의 말씀을 성도들에게 전하고 가르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근현대에 들어서면서 인본주의 세계관을 좇아 예술의 자율성을 강조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신앙적 주제를 배제한 현대주의 미술로 흘러갔다. 현대미술이 아름다움에 대한 새로운 감수성을 열고 창조의 영역을 넓힌 면도 있지만, 이 과정에서 추함과 악함도 중요한 예술의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미술의 많은 부분은 더욱 극악한 상황에 이르렀다. 이러한 현실을 반성하며 미술이 복음 사역의 중요한 수단이자 참된 예술임을 성도들과 나누고자 연재를 시작한다. 이 글이 모든 인간 영역을 아우르며 전도하고 선교하는 총체적인 믿음의 활동이 되기를 기도한다. 그래서 전문화된 미술·예술·문화선교가 서로 연대해 믿음의 군대를 이루고, 복음이 온 누리에 퍼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첫 번째 작품으로 ‘우유 따르는 여인’을 살펴본다. 이 작품을 선정한 이유는 미술이 사실주의, 추상주의, 표현주의, 환상주의 등 다양한 표현 방식으로 나뉘는데, 이 작품은 사실적인 묘사와 함께 사실주의가 거부하려는 ‘서술적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서술적인 내용을 깊은 신앙적 의미로 읽을 수 있다. 이 작품은 17세기 네덜란드 황금기를 대표하는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가 1658~1661년경에 그렸다. 우유를 따르는 하녀의 평범한 일상을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킨 걸작이다. 페르메이르는 당시 부엌을 놀라울 만큼 사실적으로 그렸다. 창밖에서 들어오는 빛이 여인과 빵, 우유를 비추며 화면에 생동감을 더했다. 페르메이르는 넓은 흰 벽의 작은 못 자국과 깨진 유리까지 세밀하게 묘사했다. 여인의 노란 상의와 푸른 앞치마는 강렬한 보색 대비를 이루는데, 특히 푸른색은 당시 매우 귀한 안료인 ‘울트라마린’으로 표현했다. 이 작품의 매력은 사실적인 묘사에만 있지 않다. 가까이에서 보면 형태를 모두 그려 넣기보다 점과 비교적 자유로운 붓질로 생략과 암시를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빛의 순간을 포착하려는 인상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절제되면서도 생동감 있는 붓질에서 고흐의 붓 터치를 연상하게 한다. 이처럼 페르메이르는 치밀한 사실성과 뛰어난 회화적 표현을 하나의 화면에 조화롭게 담아낸 화가였다. 다시 푸른색을 살펴본다. 여인의 앞치마에 사용된 푸른색은 천연 청금석으로 만든 울트라마린이다. 당시 울트라마린은 워낙 비싸서 금을 칠했다고 봐도 될 정도였다. 페르메이르는 그 비싼 안료를 평범한 하녀의 앞치마에 아낌없이 썼다. 색이 품은 뜻은 푸른색에서 그치지 않는다. 황금빛 상의는 왕의 존귀함과 영광을, 붉은 치마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떠올리게 한다. 다시 말해, 평범한 하녀의 모습에 왕 되신 그리스도와 하늘의 영광을 암시하는 상징이 담겨 있다. 우유 역시 단순한 풍속화의 소재만은 아니다. 성경에서 우유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떠올리게 한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생명과 풍요를 상징한다. 그 곁에 놓인 빵은 생명의 양식을 더욱 자연스럽게 연상시킨다. 이처럼 벽의 못 자국,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 깨진 유리, 그리고 빵과 우유는 모두 평범한 일상을 넘어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묵상하게 하는 상징으로 읽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실주의는 전통적인 은유와 상징을 배제하고, 다양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려 한다. 그러나 페르메이르는 사실적인 묘사 속에서도 깊은 상징성과 신앙적 의미를 함께 담아냈다. 페르메이르는 눈에 보이는 현실을 그렸지만, 그 현실을 통해 보이지 않는 진리를 드러내려 한 화가였다(계속). / 강태성 대표(AD gallery 대표, 일대일통합사역팀 총무, 성북공동체)

     2026-10-31  제1610호

  • 성인

    [맛있는 말씀 해설(시 121:1~2)] [맛있는 말씀 해설(시 121:1~2)] 하나님은 나의 영원한 도움 “내가 산을 향해 눈을 든다. 내 도움이 어디서 오겠는가? 내 도움은 하늘과 땅을 만드신 여호와께로부터 온다”(시 121:1~2). <시편> 121편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다. 먼 길을 걸어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올라가던 순례자가 그 긴 여정에서 하나님을 향해 고백한 노래다. 놀랍게도 이 수천 년 전 순례자의 고백이 오늘 우리에게 그대로 말을 건다. “힘들 때, 여러분은 어디를 먼저 봅니까?” 우리가 본능적으로 눈을 돌리는 곳이 있다. 더 강한 것, 더 확실해 보이는 것, 더 실력 있어 보이는 것. 그 방향으로 눈이 움직인다. 이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그런데 <시편> 121편의 순례자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눈을 든다. 시인은 ‘눈을 든다’고 한다(1절). 왜 눈을 들어야 했을까? 그의 눈은 그 전에 어디를 향해 있었을까? 땅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발밑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당장의 상황, 두려움, 어려움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순례자의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다. 예루살렘은 해발 800미터에 자리 잡고 있다. 갈릴리에서 출발하면 수백 킬로미터의 여정이다. 산적이 도사리고 있고, 뜨거운 햇볕이 내리쬔다. 발은 부르터 있고, 물과 식량은 부족하다. 혼자가 아니라 가족과 함께, 어린아이와 노인을 데리고 걸어가는 길이다. 바로 그 순간, 시인은 눈을 ‘든다’. 발밑에서 산을 향해, 아래에서 위로, 현실에서 하나님을 향해서 든다. 히브리인들에게 ‘산’은 단순한 지형지물이 아니었다. 산은 하나님이 계신 곳,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거룩한 시온산을 의미했다. 그러므로 ‘산을 향해 눈을 든다’는 것은 단순히 고개를 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드는 것이다. 2절의 ‘하늘과 땅을 만드신 여호와’는 단순한 신앙 표현이 아니다. 당시는 바벨론이 온 세상을 지배하던 시대였다. 바벨론의 신들이 세상을 접수한 것 같은 상황이었다. 바로 그 상황에서 순례자는 이렇게 선포한다. “아니다!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이 바로 나의 하나님이시다!” 이것은 단순한 종교적 진술이 아니다. 온 세상의 질서를 선언하는 것이다. 냉장고가 고장 나면 누구에게 전화하는가? 세탁기가 멈추면 누구를 찾는가? 가장 확실한 해결책은 그 제품을 만든 회사의 서비스센터를 찾는 것이다. 만든 사람이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부품이 어디 있는지, 어떻게 고치는지, 어디가 취약한지는 설계자가 가장 잘 안다. 우리 인생도 그렇다. 우리를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다. 이 세상을 설계하신 분도 하나님이다. 그렇다면 삶에 문제가 생겼을 때 가장 확실한 도움을 받을 곳은 어디인가? 만드신 분, 바로 하나님이다. “내 도움은 하늘과 땅을 만드신 여호와께로부터 온다!”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선언이다.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살아있는 말씀이다. 세상은 명확하다. 힘 있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중심에 놓인 자와 주변에 놓인 자, 부자와 가난한 자로 돌아간다. 더 많은 스펙, 더 넓은 인맥, 더 높은 자리, 더 큰 통장 잔고를 향해 달려가는 ‘세상의 순례’가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 세상을 향해 “하나님은 나의 영원한 도움”이라고 담대히 선포해야 한다. 순례의 길은 여전히 힘들다. 발이 붓고, 햇볕이 뜨거우며, 어둠이 두렵다. 그리고 낙심이 온다. 그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렇게 약속하신다. “그 길 위에서 내가 너를 지키겠다. 네 영혼을 지키겠다. 네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겠다.” 하나님은 오늘도 동일하게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 전병천 목사(강동온누리교회)

     2026-10-30  제1610호

  • 주일강단

    [주일강단] 사사기 강해(6) 숨은 자를 찾아 세우시는 하나님 사사기 강해(6) 숨은 자를 찾아 세우시는 하나님 <사사기> 6:11~16 / 이재훈 위임목사 <사사기>에는 같은 악순환이 되풀이됩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원수, 대적의 손에 넘기십니다. 백성은 부르짖고, 하나님이 구원자를 세우십니다. 그렇게 세워진 구원자가 ‘옷니엘’이었고, ‘에훗’이었습니다. ‘드보라’와 ‘바락’도 그랬습니다. 드보라의 노래가 끝난 이후 그 땅은 40년 동안 평온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악으로 돌아갑니다. “그 후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저질렀습니다”(사 6:1). 하나님이 세우신 대적, 원수는 ‘미디안’이었습니다. 미디안은 성을 점령하고 다스리는 대신에 해마다 추수 때가 되면 메뚜기처럼 약탈자로 몰려와 곡식을 가로채고, 먹어 치우고, 양과 소와 나귀까지 끌고 가는 약탈자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씨를 뿌리고 수고했지만, 열매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7년 동안이나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산속에 피난처와 동굴과 요새를 만들어 숨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약속의 땅에서 숨어 지내는 백성들이 된 것입니다. 숨을 만큼 숨고 나서야 그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 <사사기> 6장에는 숨은 백성들을 대표하는 한 사람이 나옵니다. ‘기드온’입니다. 기드온만 숨은 게 아닙니다. 당시 백성들이 모두 숨어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 택함을 받은 사람이 기드온입니다. 사람은 숨고, 하나님은 찾으시고 오늘 본문에서 “포도즙 짜는 큰 통에서 밀을 타작하고 있었다”고 합니다(11절). 포도즙 짜는 통이라고 번역을 했지만, 실제로는 바위를 파낸 구덩이 같은 곳입니다. 밀을 털기에 적합하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미디안 사람들의 눈을 피해 숨기 위해서 만들어진 곳입니다. 기드온에게도 그곳은 밀을 추수하는 곳 이전에 숨는 곳이었습니다. 미디안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타작을 하는 사람 기드온이 <사사기> 6장의 주인공입니다. 성경에서 사람이 숨는 이야기는 에덴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아담이 죄를 짓고 나무 사이에 숨었을 때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셔서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사람은 숨고, 하나님은 찾으십니다. 그러나 성경 역사의 결론은 하나님 앞에서는 숨을 곳이 어디에도 없다는 것입니다. <사사기> 6장에서도 숨어 있는 이들을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그들 곁에 내려오시고, 그들과 함께하시고, 그들을 다시 일으켜 세워 주십니다. 숨은 사람, 기드온의 입에서 나오는 질문이 <사사기> 6장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입니다. “‘내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면 왜 우리에게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까?’”(13절). 우리에게도 익숙한 질문입니다. 기도해도 달라지지 않는 육체의 병, 닫혀 있는 재정의 문, 일터의 위기, 돌아오지 않는 자녀를 기다리는 시간에 우리는 ‘왜’, 혹은 ‘어찌하여’라고 질문합니다. 구원자보다 말씀을 먼저 보내셨다 “여호와의 천사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말했습니다. ‘그대, 용맹스러운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하신다’”(12절). 하나님은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는 말씀으로 응답하셨습니다. <사사기> 6장은 하나님이 어떻게 숨은 자를 찾아 세워 주시는지를 차례대로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곧바로 구원자를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말씀을 주셨습니다. <사사기>에 반복되는 사이클은 백성들이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곧 구원자를 세우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사이클이 깨졌습니다. 부르짖음 다음에 온 것은 구원자 사사가 아니라 이름 없는 선지자, 예언자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행하지 않는 것, 그들의 문제를 지적하시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다. 너희가 거주하고 있는 땅의 사람들인 아모리 족의 신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런데 너희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10절). 구원자를 보내시겠다는 약속도 없고, 벌하겠다는 경고도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하지 않은 일을 지적하십니다. 하나님이 먼저 고치시려고 한 것은 미디안으로부터 구원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것을 지적하셨습니다. 기드온의 “어찌하여”라는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그들이 듣지 않은 것에 대한 지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버린 백성에게는 말씀을 보내지 않으십니다. 동굴과 요새에 숨어 살고 있는 백성에게 말씀이 주어졌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백성들을 버리지 않으셨다는 증거입니다. 숨어 있는 이들을 찾아오신다 “여호와의 천사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의 땅인 오브라에 와서 떡갈나무 밑에 앉았습니다. 그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포도즙 짜는 큰 통 속에서 밀을 타작하고 있었습니다”(11절). 우리말성경에는 떡갈나무라고 되어 있는데, 개역개정에서는 상수리나무라고 되어 있습니다. 숨어 있는 구덩이 바로 곁, 그 나무 곁에 앉으신 것입니다. 그 숨은 구덩이에 밀을 타작하는 기드온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끌어내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곁에 앉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어찌하여”라는 질문에 답하지 아니하시고, “너와 함께하리라”는 대답을 주셨습니다. 숨은 사람의 곁에 앉으신 하나님, 기다리시는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가드온에게 처음 건네신 말씀이 “그대 용맹스러운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하신다”입니다. 어울리지 않는 말씀입니다. 숨어서 밀을 타작하는 그가 어디를 봐서 용맹스럽습니까? 그가 용맹스럽다고 평가받은 것은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장차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 그가 어떤 모습으로 변화될지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날이 서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기운을 내고 가서 미디안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라. 내가 너를 보내는 것 아니냐?’”(14절). 기드온에게 하나님은 “네가 가서 그 일을 끝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에게는 좁은 구덩이에 숨어서 밀 타작하는 힘이 전부였습니다. “기드온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내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보십시오. 내 집안은 므낫세 가운데 가장 작고 나는 내 아버지의 집에서 가장 어린 사람입니다’”(15절). 이번에는 “무엇으로 내가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질문합니다. 처음에 “어찌하여, 왜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라고 질문했을 때 하나님이 대답을 안 해 주시고, “큰 용사여, 용맹스러운 용사여,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번에는 기드온이 “내가 무엇으로 구원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보십시오. 내 집안은 므낫세 지파 가운데 가장 작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도 가장 어린 사람입니다”라고 질문합니다. 기드온 스스로가 느낀 자기 모습이었습니다. 두려움이 많았고, 소심했고, 위축되어 있었습니다. 숨어 지내던 기드온은 누가 봐도 용사라고 말할 수 없는 겁쟁이처럼 보였습니다. 그런 그를 하나님이 세우십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자신을 연약하게 여기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찌해서 이런 일이 있습니까?’라고 질문하고, ‘내가 무엇으로 일할 수 있습니까?’라고 뒤로 물러서서 숨어 있는 이들을 찾아오십니다. “안심하여라! 두려워하지 마라”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니 너는 미디안 사람들을 한 사람을 치듯이 무찌를 것이다’”(16절). 또다시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다”라는 대답만 주십니다. 기드온은 두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첫 번째는 “어찌하여, 왜 이런 일이 있습니까?”, 두 번째는 “무엇으로 내가 일을 할 수 있습니까?”입니다. 하나님은 이 질문에 답변하지 아니하시고, “네가 누구와 함께하고 있는지를 기억하라.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기드온처럼 연약하고, 소심하고, 숨어 있는 사람을 찾아서 세우실까요? 기드온과 같은 이들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강한 믿음으로 나서는 이보다, 연약하고 소심한 마음으로 뒤로 물러서 있는 이들이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포도즙 짜는 틀, 곧 구덩이가 있습니다. 자신의 믿음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지내기로 한 일터일 수도 있습니다. 한번 실패한 뒤로 아무것도 맡지 않기로 한 사역일 수도 있습니다. 상처받고 돌아온 가정일 수도 있습니다. 좁고 바람이 들지 않는 곳에서 몇 줌의 밀을 타작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기는 숨어 있는 신앙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는 우리의 믿음이 결코 자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숨은 곳을 아십니다. 그리고 찾아오십니다. 곁에 앉아 계시며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런데도 기드온은 여전히 나오지 않았습니다. 표징을 구합니다. 하나님은 계속 그를 위해 일을 하십니다. 그가 스스로 하나님 앞에 나오도록 역사하십니다. 기드온은 표징을 구하고 집에 가서 예물을 준비합니다. 새끼 염소 한 마리를 삶고, 가루 한 에바로 무교병을 구웠습니다. 7년 동안 약탈당한 집에서 처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을 준비합니다. 그때 천사가 그 위에 불을 붙여 주심으로 하나님의 응답하심을 보여 줍니다. 그러자 기드온이 두려워합니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천사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기쁨의 소리가 아니라, 두려움의 외침입니다. 하나님을 대면해 본 자는 곧 죽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죽음이 아니라 평안을 주셨습니다. 미디안을 두려워해서 숨었던 사람이 하나님 앞에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심하여라!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죽지 않을 것이다’”(사 6:23). 하나님 앞에 드러난 사람은 죽는 줄 알았는데, 그가 들은 음성은 “두려워하지 마라, 안심하라”입니다. 그래서 기드온은 그 자리를 평강이라는 이름, ‘여호와 샬롬’이라고 불렀습니다. 기드온을 미디안과 싸우는 구원자로 세우기 전에 하나님은 그를 찾아오시고, 그와 함께하신다는 약속과 평안을 주셨습니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날 밤 하나님은 그에게 “집안에 있는 제단을 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미디안을 치기 전에 기드온의 집에 있는 바알을 먼저 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여호와를 위한 제단을 쌓고, 7년 된 수소를 잡아 그 아세라 나무로 번제를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드온에게 이 행위를 요구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스라엘의 진짜 문제는 미디안이 아니었습니다. 미디안을 불러들인 ‘바알’과 ‘아세라’였습니다. 바알과 아세라는 비를 내리고 풍성한 수확을 약속하던 우상이었습니다. 우상을 섬긴 결과가 그들의 수확을 미디안에게 모두 빼앗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문제의 근원인 바알 신상을 허무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의 집에 숨어 있는 것도 찾아내십니다. 기드온은 그 밤에 종 열 명을 데리고 명령대로 행했습니다. “함께하겠다”고 약속하시는 하나님 아침이 되자 성읍이 들끓었습니다. 사람들이 “바알 제단을 헌 자를 죽여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우상을 허문 사람을 죽여야 한다고 외칠 만큼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의 우상 숭배에 물들어 있었습니다. 그때 가장 분노해야 할 사람은 기드온의 아버지 요아스였습니다. 그런데 요아스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이 지금 바알을 위해 변호하는 것이오? 만약 바알이 신이라면 그 제단이 허물어졌으니 자기가 자신을 변호해야 할 것이오.” 기드온의 아버지가 갑자기 우상 숭배를 버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 회심한 것입니까? 아닐 것입니다. 아버지의 아들 사랑입니다. 아들이 우상을 허물었다는 것을 알고, 아들을 보호하고 싶은 마음에 논리적으로 이 상황을 극복하는 아버지의 지혜가 나왔습니다. 그날 기드온이 ‘여룹바알’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습니다. “바알이 스스로 다투게 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드온의 아버지를 통해 그를 보호하셨습니다. 그 아버지도 바알이 자신의 가정을 지켜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미디안과 싸우는 급박한 상황에서 하나님은 먼저 백성에게 평안을 주시고, 함께하시겠다고 말씀하시고, 기드온을 숨은 자리에서 찾아내셔서 제단을 헐게 하셨습니다. 기드온은 “어찌하여 이런 일이 있습니까?”라고 계속 하나님께 반문했습니다. 하나님은 “함께하겠다”는 말씀을 계속 주셨습니다. 기드온의 “어찌하여”라는 반복되는 질문이 이루어진 사건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이 기드온의 질문을 그대로 외치십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나님의 아들이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우리의 우상 숭배로 인해 쌓여 있는 모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그분이 짊어지셨습니다. 바위에서 나온 불이 기드온의 제물을 불살랐듯이, 하나님 심판의 불이 예수 그리스도 위에 떨어진 것입니다. 그분이 받으신 고통, 그분이 받으신 버림 때문에 우리에게 “내가 결코 너희를 떠나지 않겠고 또 결코 버리지 않겠다”라는 약속이 주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신 이유를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잃어버려진 자, 숨어 있는 자를 찾아오시는 분입니다. 숨은 구덩이에 있는 자를 찾아오셔서 말씀을 주시고, 그 곁에서 약속을 주시고, 용맹스러운 용사로 불러 주십니다. 나무 위에 올라가 있던 삭개오를 찾아오셨고, 밤에 은밀히 온 니고데모를 찾아오셨고, 우물가의 여인을 찾아오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구덩이에 숨어 있던 기드온처럼, 문을 걸어 잠그고 두려워하던 제자들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기드온에게 포도즙 짜는 구덩이가 있었다면, 제자들에게는 문을 걸어 잠근 다락방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거기에서 기드온에게 하신 말씀을 그대로 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기드온에게 주신 말씀의 순서가 교회에서 그대로 이어집니다. 숨어 있는 이들을 찾으셔서 그에게 평강을 주시고, 사명을 주십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하나님에 의해 발견된 자가 되었습니다. 기드온을 찾아 부르신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고,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도 찾아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숨어 있는 자, 바람이 들지 않는 구덩이에서 밀을 털던 사람들을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너와 함께하신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찾아오십니다. 말씀은 두려운 소식이 아니라, 복된 소식입니다. 숨을 곳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이 찾지 못할 곳도 없으며, 하나님이 버린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보내십니다. 제자들에게 평강을 주시고, 그들을 보내신 것처럼, 말씀을 붙잡고 숨어 있는 곳에서 일어나는 이들에게, 집안의 우상부터 무너뜨리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구원의 역사를 베푸십니다. 이 시대의 기드온처럼 이 시대의 미디안을 무너뜨리는 자로 하나님이 사용하실 것입니다. 이 시대에 우리가 대적해야 할 미디안들이 있습니다. 우리를 숨게 만드는 미디안들이 있습니다. 그 미디안을 향하여 나아가기 전에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나님, 우리에게 약속을 주시는 하나님, 우리를 일으켜 세우시는 하나님, “어찌하여”라고만 질문하는 우리에게 “내가 너와 함께한다”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6-10-30  제1610호

  • 국내캠퍼스

    [News] “다음세대 응원단을 모집합니다!” “다음세대 응원단을 모집합니다!” 2027 온누리교회 차세대 교사, 사랑부 교사 모집 온누리교회 홈페이지 또는 QR코드로 신청 ‘다음세대 응원단’을 모집한다. 2027 온누 리교회 차세대 교사와 사랑부 교사를 10월 25 일(일)까지 모집한다. 차세대 교사 195명, 사랑 부 교사 40명이 더 필요하다. 2027년 온누리교회 차세대 교사와 사랑부 교사 지원 자격은 다음세대를 향한 사랑과 사 명을 품은 온누리교회 등록 성도, 세례교인, 공동체 순예배에 참석 중인 성도다. 차세대 교사와 사랑부 교사로 헌신하려는 성도들은 먼저 소속 공동체 담당목사의 추천 을 요청한 다음, 온누리교회 홈페이지나 사진 속 QR코드에서 ‘온라인 교사지원서’를 내려 받아 작성하고 제출하면 된다. 더 자세한 사항 은 각 캠퍼스 로비에 설치되는 ‘교사 모집 안 내데스크’에 문의하면 된다. 2027년 신입 차세대 교사들을 대상으로 실 시하는 ‘교사사명교육’은 목요반과 토요반으 로 나눠 진행한다. 목요반은 11월 26일부터 12 월 17일까지 매주 목요일 오후 7시 30분 온라 인(Zoom), 토요반은 11월 28일부터 12월 19일 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7시 30분 온라인(Zoom) 으로 운영한다. 교사사명교육은 본부교육 4주, 부서교육 4주 총 8주 동안 이어진다. 교사사명교 육을 수료하면 OBC 2학점을 부여한다. 사랑부 교사교육은 장애인사역본부에서 별도로 한다. 김희선 교사(서빙고 유아3부)는 “다음세대 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소망을 보여주시기 위해 우리를 차세대 교사로 부르셨다”면서 “ 세대와 세대를 잇는 복된 자리에 많은 성도들 이 함께하기를 바란다”고 소망했다. 문의: 서빙고 02-3215-3521 서빙고 사랑부 02-3215-3263 양재 및 도곡 02-570-7436 양재 사랑부 02-570-7438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AI 시대, 참된 제자의 모습 10월 27~31일 ‘온누리 미래&가족 축제 2026 온누리 미래&가족 축제(OFFC)가 10월 27일(화)부터 31일(토)까지 막 오른다. ‘AI 시대의 제자도’(마 16:24)를 주제로 서빙고와 양재온누리교회,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2026 온누리 미래&가족 축제 포문은 특별 강의가 연다. 10월 27일(화) 오후 7시 30분 서빙 고온누리교회 본당에서 이인용 장로가 ‘세상 가운데 제자로의 삶’을 주제로 강의한다. 10월 28일(수)부터 30일(금)까지 매일 오후 7시 30분 온누리교회 유튜브 채널에서는 온라 인 특강이 이어진다. 28일(수) 박태성 장로와 김영욱 장로 ‘제자도의 이해와 실천’, 29일 (목) 김홍주 목사 ‘로잔운동에서의 제자도’, 30일(금) 김경훈 집사 ‘AI에 대한 성경적 관점 및 활용 가이드’를 주제로 강의한다. 본행사는 10월 31일(토) 양재온누리교회 기쁨홀에서 ‘AI 시대, 교회의 책무와 제자도의 실천’을 주제로 열린다. 이재훈 위임목사 주제 강의, ‘AI 시대의 제자도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발표, 패널토의, 대학청년부 공모전 우수작 발표 및 시상 등을 한다. 참가 자 자녀를 위한 케어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양재 온유홀과 꿈아이홀에서 김지 연 집사가 ‘미디어 리터러시(매스미디어에 담긴 잘못된 가치관을 성경적 관점 으로 읽어내기와 바로잡기)’를 주제로 강의한다. 문의: 02-3215-3234 / 홍하영 기자 2026 엔젤트리 사연 접수 11월 14일까지 홈페이지, 목회행정실, QR코드 11월 14일(토)까지 2026 엔젤트리 사연을 접 수한다. 온누리교회 홈페이지나 하단 QR코드 를 활용해 온라인으로 하거나 각 캠퍼스 목회 행정실에서 ‘사연신청서’를 수기로 작성하면 된다. 사연신청서에는 선물하고 싶은 대상(가족, 친구, 이웃 등)을 적는다. 대상자의 특이사항, 성격, 좋아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적는 게 좋 다. 신청서를 작성한 신청자 이름, 신청 기관 명, 연락처도 반드시 기록해야 한다. 대상자의 연락처와 도로명 주소도 필요하다. 엔젤트리 선물은 5만 원 내외로 준비해야 한 다. 케이크, 꽃, 고기, 생선 등 변질 우려가 있는 생물과 도서상품권, 외식상품권 등 상품권은 신청할 수 없다. 명품이나 특정 브랜드를 표기해도 안 된다. 의류 나 신발은 정확한 사이즈를 적어 야 한다. 문의: 02-3215-3434 / 홍하영 기자 11월 1~15일 ‘열린순예배’ 온누리 모든 공동체, 모든 순 온누리교회 모든 공동체와 순이 ‘열린순예 배’를 드린다. 11월 1일(일)부터 15일(일)까지 각 공동체 및 순의 사정에 맞춰 시간과 장소 등을 정해 진행하면 된다. 2024년부터 시작한 열린순예배에서는 돌봄 순원(여러 사정으로 순예배에 참석하지 못했 던 성도)과 전도대상자를 초대해 교제하며 복 음을 전한다. 공동체사역본부와 전도사역본 부가 공동 주관한다. 열린순예배를 드리기 원하는 순은 을 참고하면 된다(하단 QR코드 참고). 예 배 준비에 필요한 책자는 각 캠퍼스 공동체 담당 간사에게 받으면 된다. 열 린순예배를 드리고 나서 ‘결과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문의: 02-3215-3239(공동체사역본부) 02-3215-3214(전도사역본부) / 홍하영 기자 의사맞춤전도집회 ‘러브터치’ 11월 2일 오후 6시 50분 서빙고 본당 NGO 메디엑세스와 전도사역본부가 의사맞 춤전도집회 ‘러브터치’를 개최한다. 11월 2일 (월) 오후 6시 50분 서빙고온누리교회 본당에 서 열린다. 참가신청은 온누리교회 홈페이지(onnuri. org)나 구글폼(하단 QR코드)으로 하면 된다. 선착순 400명을 모집한다. 참가비는 1인당 5 만 원(저녁 만찬 포함). 신청서에는 초청대상 자를 최대 5명까지 적을 수 있다. 5명 넘게 초 청하려면 신청서를 추가로 작성해야 한다. 의사맞춤전도집회 ‘러브터치’에서는 방송 인 김원희가 사회를 보고, 가수 범키, 가스펠 보컬팀 크룩스, 샌드애니메이션 작가 박진아가 게스트로 출연한 다. 메시지는 이재훈 위임목사가 전한다. 문의: 02-570-7110 / 홍하영 기자

     2026-10-24  제16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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