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특별기고] 세상의 길 그리스도의 길. 두 가지 혁명 두 가지 다른 길
특별기고
세상의 길 그리스도의 길
두 가지 혁명 두 가지 다른 길
하나님의 길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의 길, 아담 이래로 인류는 이 두 가지 길을 걸어왔다. 오스만투르크 제국에 의해 1500년 역사의 로마가 무너지면서 역사는 큰 갈림길에 서게 된다. 천년이 넘게 이어 왔던 가톨릭 중심의 제정일치 사회가 붕괴되자 유럽은 극도의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동로마 콘스탄티노플의 붕괴는 사실 갑자기 찾아온 것이 아니다. 로마가 오스만 제국에 의해 무너지기 100년 전, 유럽에는 4가지 악재가 일어난다.
첫 번째 가장 먼저 교황청이 프랑스 아비뇽으로 이전해 오면서 "아비뇽 유수"(1309~1378)라 일컫는 교황들 간의 극심한 분열이 일어나며 가톨릭의 권위는 바닥으로 떨어지게 된다. 두 번째, 유럽 대륙을 휩쓴 대기근(1315~1317)으로 유럽 인구의 15%가 죽는다. 그리고 영국과 프랑스의 왕위 계승 문제로 “100년 전쟁”(1337~1453)이라 부르는 격렬한 패권 전쟁이 일어나는데, 설상가상으로 전쟁 중에 흑사병(1347~1351)이 발생하여 유럽 인구 60%가 죽음을 당하고 만다.
이런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신앙의 힘이 가장 절박한 때, 가톨릭은 오히려 바닥난 교회 재정을 채우기 위해 면죄부를 팔면서 가톨릭과 교권에 대한 신뢰는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100년 전쟁이 끝나던 해 1453년, 지칠 대로 지친 유럽은 오스만의 젊은 술탄 메흐메트 2세(21세)에 의해 동로마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면서 1500년 역사의 로마는 막을 내리게 된다.
로마의 멸망은 전 유럽을 극도의 두려움과 불안에 빠지게 했다. 그리고 이 두려움은 교회에 대한 큰 실망과 불신으로 표출되었는데, 절박한 때 시민들을 돕지 못하고 실망만 안겨준 교회와 하나님께 대한 불신은 점차 커져 갔고, 결국 하나님을 떠나 인간이 중심이 되는 인본주의 운동인 “르네상스”가 태동하게 된다.
한편, 동로마가 무너지면서 가톨릭교회가 비밀리에 보관해 왔던 원어 성경 사본들이 유출되기 시작했는데, 에라스무스가 라틴어 성경을 비교하는 과정에서 가톨릭이 “무오(無誤)하다”고 여겨왔던 라틴어 번역본 성경(불가타역)에 오류를 발견하고 오류를 수정한 성경이 인쇄되면서 일대의 큰 지각 변동이 일어나게 된다. 그 결과 1517년 “종교개혁”이 일어난다. 이 두 가지 다른 혁명,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은 극명한 다른 결과를 낳으며 근현대사회를 이끌게 된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르네상스로 시작된 인본주의 운동은 200여 년의 시간이 지나며, 하나님과 기독교를 반대하는 극단적 인본주의 철학들을 쏟아낸다. 그리고 인본주의 철학들은 왕을 중심으로 한 봉건 체제와 가톨릭 기반의 사회조직을 붕괴시키는 결과들을 낳았는데, 그 정점이 바로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이다.
프랑스 혁명은 부르봉 왕조의 독재를 전복시키고 국민의회 중심의 새로운 국가 체계와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었지만, 왕족들과 결탁해 부패의 온상이 되었던 가톨릭 성직자들에 대한 반감이 혁명의 뿌리에 있었고 프랑스 혁명은 "기독교 말살 운동"으로 발전하게 된다.
사회계약론으로 프랑스 혁명에 단초를 제공했던 사회주의자의 아버지 루소의 뒤를 이어, 그의 동료이자 경쟁자였던 볼테르는 시민들 앞에서 "악당을 타도하라" 외쳤는데, 그 악당은 사실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했다. 시민혁명을 주도했던 철학자들의 광적인 부르짖음, "우리에게 하나님은 더 이상 필요 없다!" 는 구호는 국민의회의 표어가 되었고, 하나님을 저주하며 "인간을 위해 모든 신적 권위로부터 해방"을 외치는 반기독교적 슬로건이 시민혁명의 본질이자 핵심이었다. (아브라함 카이퍼, 칼빈주의 강연)
볼테르는 "신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신을 발명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하며, "인간이성"을 신앙화하여 모든 인본주의적 학문과 철학을 정치에 반영하려 했고, 니체는 "우리가 신을 죽였고 그래서 신은 죽었다!"고 선언했다. 이렇게 반기독교적 철학과 사상들은 프랑스 혁명 이후 2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정치, 과학, 문화, 교육, 예술, 미디어 등 전 영역에 뿌리를 내렸고 그 결과, 인간은 역사의 주인으로서 계속 진화되어 신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며, 이제 AI까지 동원하여 영생의 꿈을 실현해 보려 하고 있다.
로마의 멸망으로 촉발된 르네상스가 프랑스 혁명을 불러왔다면, 에라스무스의 성경 번역과 함께 루터와 칼뱅이 불러온 종교개혁은 200년 후, 1776년 개신교도들에 의해 충격적인 혁명을 만들어 낸다. 이는 인류 역사상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던 성경적 혁명으로, 왕이 아닌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뿌리로 둔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다.
칼뱅은 성경을 중심으로 종교개혁의 선봉에 서며 유럽을 변화시킨 개신교회들을 낳게 되는데, 칼뱅에게 배운 존 녹스가 영국 스코틀랜드에 “장로교회”를 세웠고, 네덜란드의 개혁자들은 “화란 개혁교회”를, 프랑스의 위그노들은 전 유럽에 흩어져 다양한 개혁주의 공동체를 생산한다. 그리고 잉글랜드에서는 청교도들이 부패한 가톨릭을 강하게 거부하며, 오직 성경에 기초한 삶의 체계와 새로운 예배로 교회의 정체성을 세우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삶의 목적인 성경적 공동체를 만들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영적 도전은 새로운 교회를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왕에 의해 통치되는 ‘왕정 국가’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통치되는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며, 인류 최초 "신정 민주주의 국가"를 시험하는 모험에 도전하는데, 그 믿음의 산물이 바로 "미국"이다.
1776년, 미국 국부들이 만든 정치적 선언인 독립선언서를 보면, 하나님 중심의 성경적 세계관으로 국가의 체계를 만들겠다는 강한 의지가 보인다.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은 자명한 진리라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고,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없는 특별한 권리를 부여하셨는데, 그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 이 권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인류는 정부를 조직했으며, 이 정부의 정당한 권력은 피통치자(국민)의 동의로부터 유래한다. 어떠한 형태의 정부든 이러한 목적을 파괴하려 할 때, 정부를 개혁하거나 폐지하고, 그들의 안전과 행복을 가져오리라 예상되는 원칙에 기초를 두고, 새로운 정부를 조직하는 것은 국민의 권리이다."
이 선언문을 통해 그들의 가슴은 하나님 나라의 비전으로 가득 차 있었음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미국의 독립은 하나님을 한 국가의 중심, 역사의 중심으로 모셔드린 성경적 혁명이다.
아브라함 카이퍼가 쓴 "칼빈주의 강연"에 의하면 칼빈은 세상에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게 하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은 더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죄로 무지해진 세상을 깨우고, 세상의 통치자가 정치인들이 아닌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는, 각 나라에 심겨진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그 나라 정치에 영향을 주어야 한다.
하나님의 통치로 성경적 가치가 실현되는 개인과 사회, 국가를 꿈꾸기 때문이다.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위해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그의 정체성 때문에 세속 정치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이는 단순히 종교적 신념의 충돌이 아니다. 이는 어느 누구도 양보할 수 없는 목숨 건 신념의 투쟁이다. 이 투쟁은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 모든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다.
로마가 무너지고 현재까지 500년 동안, 르네상스로 촉발된 “반성경적 인본주의 세계관”과 “성경을 뿌리로 한 기독교 세계관”, 이 두 삶의 체계는 지금도 서로 목숨 걸고 싸우고 있다. 지금 이 나라 이 땅은 어떤가? 이 세계관 전쟁으로부터 자유한가?
구한말 조선이 무너지고 대한민국이 태동되던 때는 로마가 무너지던 때와 유사한 패턴이 있다. 기근과 전쟁, 부패한 정권과 탐관오리들의 수탈로 전 국토는 황폐해졌고 이런 상황을 바꾸어 보려는 5가지 세력들이 일어났다. 일본과 같이 개화해야 한다는 친일 개화파, 중국의 사대주의 만이 살길이라 했던 친중 위정척사파, 반식민지를 주장하는 친소 공산주의, 단재 신채호를 중심으로 한 민족주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고 있을 때, 선교사들이 들어 오면서 새로운 세력이 생겨나는데 친미 기독교파다(함재봉, 한국사람 만들기).
새로운 세력, ‘친미 기독교파’
지배계층과 지도자들에게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던 다른 세력들과는 달리 선교사들은 비참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백성들에게 주목했다. 그리고 이들을 위해 병원을 세우고 학교를 지어 서구를 계몽시킨 현대식 교육을 도입하여 조선이 버린 여자들과 천민들을 교육해 갔다.
이 선교사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는가?
1832년 조선을 방문했던 첫 선교사라 할 수 있는 귀츨라프(Karl F. A. Gutzlaff, 1803-1851)는 화란선교회(Netheland Missionary Society, 1797) 소속이었고, 대동강변에서 순교한 토마스(Robert Jermain Thomas, 1839-1866)는 영국 런던선교회(London Missionary Society, 1795) 소속이었다. 모두 칼뱅에게 영향을 받은 프로테스탄트 선교사들이다. 조선에 가장 많은 선교사를 보낸 나라는 미국인데, 1832년부터 1948년까지 내한한 1,800여 명의 선교사 가운데, 미국 국적 선교사는 약 70%에 달한다.
선교사들은 부패할 대로 부패한 전체주의 왕정 통치하에 신음하고 있던 조선 사람들에게 성경을 기초로 한 천부인권과 미국을 세운 신정 민주주의를 가르치고 실천하게 했다.
1887년 10월 7일 새문안교회에서 장로를 선출하기 위해 처음으로 “선거”를 했는데, 여자를 포함해서 모든 성도가 선거에 참여하여 투표로 지도자를 세우게 한 것은 역사적인 변혁이자 혁명이 아닐 수 없었다. 칼뱅의 가르침대로 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세우는 민주주의가 교회를 통해 시작된 것이다.
양평대군의 16대손으로 양반 중에 첫 번째 기독교인이 된 이승만은 선교사들에게 영어를 배우고 영어성경을 읽다가 예수님을 영접한다. 그리고 미국의 특사로 파견되며 기독교 세계관 위에 세워진 신정 통치 국가 미국처럼 조선 땅에도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기를 꿈꾸며 조지 위싱턴대학, 하버드 대학, 프린스턴 대학을 거치며 정치와 법을 배워 미국의 헌법을 기초로 한 대한민국의 헌법을 만들게 된다.
또한 그는 이미 친소 공산주의자 박헌영에 의해 장악된 정치 세력들을 몰아내고 그의 기도대로 “대한민국”을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우기 위해 제정 국회, 첫 번째 국회에서 성경에 손을 얹고 기도하며 새로운 나라를 시작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로 영광을 돌린다.
정치적 좌파와 우파는 프랑스 혁명에서 유래된다. 좌파는 급진적 개혁을 주장했고 우파는 온건한 개혁을 주장했을 뿐 같은 인본주의 세력들이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좌파와 우파는 “이념 vs 신앙” 차이로 갈라졌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유물론자들인 공산주의 세력들과 유일하신 하나님, 참 생명의 주인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 오늘날 이 땅의 혼란은 여전히 끝나지 않고 있다. 이 땅뿐 아니라 전 세계 역시 혼란의 소용돌이 가운데 있다. 그 이유는 두 가지 혁명, 두 가지 다른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쪽은 하나님을 떠나 인간이 중심이 된 세상의 길로, 다른 쪽은 하나님을 믿고 말씀 중심의 그리스도의 길로 가려 한다.
하나님의 길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의 길, 지금 나는 어느 편에 있고 어느 길로 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