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강단
[주일강단] 물이 바다 덮음 같이
물이 바다 덮음 같이
이사야 11:1~10
/이재훈 위임목사
메시아가 오심을 예언하는 역사적 상황은 한결같이 가장 절망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언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분명합니다. 단순한 희망이나 긍정적인 마음으로 사람들을 달래고 회복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인간의 상상력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극심한 절망 가운데 처해 있을 때 아름다운 소망을 이야기하기가 어렵습니다. 소망을 이야기해도 절망이 묻어납니다. 완전히 새로운 세상에 대한 예측은 사람에게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사야 시대는 다윗 왕권이 완전히 몰락한 때였습니다. 역사적으로 절망의 시대였습니다. 그 시대에 하나님이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을 주셨습니다. 인간의 가장 밑바닥, 절망의 상태에서 하나님은 메시아의 오심을 통한 구원의 희망을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시는 역사적 시점은 우리가 겪는 상황과 비교할 수 없이 큰 절망 속에 있었습니다. 진정한 성탄의 의미는 역사적 절망 상황에서 더 깊이 묵상할 수 있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오고 그의 뿌리에서 가지가 돋아나 열매를 맺을 것이다”(1절).
이새는 다윗의 아버지입니다. 그런데 왜 다윗의 줄기라고 하지 않고 이새의 줄기라고 했을까요? 다윗 왕조가 철저히 몰락했기 때문입니다. 이새는 베들레헴의 이름 없는 양치기 목자에 불과합니다. 메시아의 오심은 영웅 탄생의 모습이 아니라 이새처럼 비천한 사람의 출생으로 이루어집니다. ‘이새의 줄기’라고 번역된 이 단어는 그루터기를 의미합니다. 그루터기만 남은 모습이 멸망당한 다윗 왕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루터기 뿌리들은 땅속 깊이 박혀서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그루터기에서 싹이 나고, 뿌리에서 직접 가지가 돋아난다고 말씀합니다. 특이한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전능하신 능력으로 이루실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루터기만 남은 비천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싹이 나고, 가지가 돋아나 열매 맺는 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창조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머물 것이다. 곧 지혜와 통찰의 영, 모략과 용기의 영,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그에게 머물 것이다”(2절).
‘머물 것’이라는 단어가 두 번 반복됩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영’은 여호와 하나님에게서부터 오는 영, 곧 성령님을 말합니다. 여호와의 영, 성령님은 구약에서도 부분적으로 임하셨습니다. 모세와 사울, 다윗에게도 일시적으로 임하셨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그 누구에게도 그 안에 머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단순히 임하시는 것과 머문다는 것은 다릅니다. 일시적으로 능력의 통로가 되는 것과 성령이 충만하게 그의 안에 온전히 머무는 것은 다른 차원입니다.
“그리고 요한은 또 이렇게 증언 했습니다. ‘나는 성령이 하늘에서 비둘기같이 내려와 그분 위에 머무는 것을 봤습니다.’ 나도 이분이 그분인 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물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분이 ‘어떤 사람에게 성령이 내려와 머무는 것을 네가 보게 되면 그가 바로 성령으로 세례를 줄 분임을 알라’고 일러 주셨습니다”(요 1:32~33).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완전한 사람이 되신 분입니다. 성육신하실 때 하늘의 모든 신성과 능력을 내려놓으셨습니다. 그분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는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서 완전한 사람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의 능력을 의지함으로써 기적을 일으키는 완전한 사람이셨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서 성령님이 그리스도 안에 충만하게 임재하심으로써 그분을 믿게 하는 표적을 행하셨고, 능력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에게서 일어날 일들이 예수님이 오시기 7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구체적으로 예언되었습니다.
메시아에게 임하시는 여호와의 영
메시아에게 임하시는 여호와의 영을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 지혜와 통찰의 영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올바른 뜻을 분별하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올바로 분별하고, 사람의 상태가 어떤지를 통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 심령의 문제를 아셨고, 그에게 임하신 여호와의 영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때를 분별하셨습니다. 삭개오의 상태를 아셨고, 젊은 부자의 관원의 문제를 아셨고, 나다나엘의 과거를 아셨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사람의 상태에 대한 올바른 분별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여호와의 영이 예수님에게 충만하게 임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 머무셨기 때문입니다.
둘째, 모략과 용기의 영입니다. 지혜와 통찰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했다 할지라도 그것을 실행하려면 모략과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메시아로 오신 그분이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사람들로부터 받은 엄청난 공격과 고난을 이기고 승리하시기 위해서는 모략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담대하게 말씀하셨던 것은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충만하게 머무셨기 때문입니다. 그 영의 능력으로 모략과 용기가 있었던 것입니다.
셋째,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입니다. 여호와의 영으로 충만한 사람은 결코 교만하지 않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기 때문입니다. 지혜와 용기, 경외함이라는 세 가지 특징을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을 담대하게 행하시고, 그 결과로 여호와만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예수님에게 임한 것처럼 여호와의 영이 충만하게 머무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은사가 예수님에게 임한 것처럼 지혜와 통찰의 영, 모략과 용기의 영,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허락된 것입니다. 여호와의 영이 충만하게 임할 때 지혜와 통찰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을 희생하는 용기가 없다면 성령의 임재가운데 충만히 있지 않습니다. 지혜와 용기가 있지만, 여호와를 경외하는 겸손이 없다면 성령의 임재로부터 함께 충만하지 못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 두려워하는 마음, 겸손한 마음이 없다면 예수님 임재 가운데 있지 않은 사람이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여호와 영이 충만한 완전한 사람으로서 지혜와 통찰, 모략과 용기,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으로 충만하게 메시아의 모든 소명을 이루셨습니다.
완전한 공의와 정직, 신실함
“그는 여호와를 즐겨 경외하고 눈에 보이는 대로 판결하지 않고 귀에 들리는 대로 결정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는 약한 사람들을 공의로 판결하고 세상에서 학대받는 사람들을 위해 정직하게 결정을 내릴 것이다. 그는 그 입의 몽둥이로 세상을 치고 그 입술에 바람으로 죄를 범한 사람들을 죽일 것이다. 그는 정의로 그의 허리띠를 띄고 신실함으로 그의 몸 띠를 삼을 것이다”(3~5절).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보이지 않는 영역이 있기 때문입니다. 들리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들리지 않는 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행적을 보십시오. 여러 사람과의 만남을 보십시오. 그분은 결코 보이는 대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젊은 부자 관원은 매우 경건해 보이고 합당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돈의 우상에 사로잡힌 그 영혼의 모습을 보고 예수님이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고 했습니다. 겉으로 볼 때 삭개오는 사람들에게 비난받고 정죄 받고 몹쓸 인간처럼 보였지만, 예수님은 “내가 너의 집에 머물러야겠다”며 그를 친구삼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중요한 통치 원리는 공의와 정직, 신실함입니다. 메시아의 통치는 사람의 통치에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완전한 공의와 정직, 신실함으로 다스리는 세상을 약속하셨습니다. 온 세상이, 온 우주가 구속되어 변화되는 세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늑대가 어린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는데 어린아이가 그들을 이끌고 다닐 것이다. 암소와 곰이 함께 풀을 뜯고 그 새끼들이 함께 뒹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다. 젖먹이가 독사의 구멍 곁에서 장난하고 어린아이가 뱀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다”(6~8절).
메시아가 오심으로써 이루어질 완전한 피조세계의 회복, 우주적인 구속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기 보면 모든 적대관계가 사라집니다. 어떠한 공포, 파괴, 공격이 존재하지 않고, 완전한 평화, ‘샬롬’이 이루어지는 상태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했던 죄와 악이 존재하지 않는 하나님의 완전한 공의, 완전한 신실함으로 통치하는 세상이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파괴된 이 세상에 죄와 악으로 인하여 물어뜯고 죽이고 대립하는 모든 것이 사라지는 완전한 샬롬의 세상은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며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종말을 뛰어넘어 이루어질 나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땅 위의 씨 맺는 온갖 식물과 씨가 든 열매를 맺는 온갖 나무를 너희에게 주니 이것이 너희가 먹을 양식이 될 것이다. 그리고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 위에 기는 모든 것들, 곧 생명 있는 모든 것들에게는 내가 온갖 푸른 풀을 먹이로 준다’하시니 그대로 됐습니다”(창 1:29~30).
사람과 모든 짐승에게 하나님이 주신 원래 양식은 풀이었습니다. 노아 홍수 이후 타락한 인간에게 육식을 허용 하셨습니다. 그래서 물어뜯고 약한 것을 잡아먹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제 메시아가 오심으로써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세상이 함께 구속됨으로 인해서 타락 이전 에덴동산이 회복되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역사를 창조하시고 통치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완전한 예언입니다. 이 세상이 아무리 절망적일지라도 우리에게 새 하늘과 새 땅이 약속되었다는 것을 보여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어떤 세상의 지도자나 시스템으로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치거나 다치게 하지도 않을 것이다. 물이 바다를 덮고 있듯이 세상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으로 가득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날에 이새의 뿌리가 나타나 민족들의 깃발이 될 것이다. 나라들이 그에게 찾아오고 그가 있는 곳은 영화롭게 될 것이다”(9~10절).
9절은 궁극적으로 이루어질 약속, 예언입니다. 물이 바다를 덮고 있듯이 세상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으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이새의 뿌리’를 통해서 그 일이 이루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루터기에서 난 싹, 나무에서 나오는 줄기, 이새의 후손,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민족들의 깃발이 될 것입니다. 그분이 구원의 깃발이 됩니다. 그분이 세상으로 나가고, 나라들이 찾아오게 됩니다. 수많은 나라와 민족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오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선교입니다. 선교 역사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모든 민족의 깃발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깃발 아래 모든 사람이 모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산이 그 모든 일의 중심이 됩니다. 예수님이 “모세가 광야에서 놋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들을 내게로 이끌겠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모든 민족의 깃발이 되어서 모든 민족이 찾아오고, 모든 사람을 이끄는 위대한 자석 같이 하나님께로 이끄는 구원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이 바로 이 사건입니다. 완전한 새로운 세상, 이 세상의 모든 절망과 아픔, 고통과 눈물, 슬픔과 좌절을 완전히 씻고, 피조세계, 동물의 세계, 모든 세상까지 온전하게 구원해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시는 분이 오신 것입니다. 그분이 모든 민족의 깃발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깃발을 보고 달려가는 그리스도의 사람들입니다. 이 깃발을 모든 사람에게 보이고, 그분에게 나가야 합니다. 이 세상은 장차 망할 성입니다. 소망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소망이 있고, 그분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세상에만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세상으로 가야 합니다. 그것이 선교요, 전도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처한 상황에 절망하지 마십시오. 이 나라와 민족을 하나님이 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믿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이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