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Search

기사 검색 - Search

17,788개 글

리스트보기
  • 칼럼

    [장로칼럼] 우리가 함께 듣고 읽는 이유 우리가 함께 듣고 읽는 이유 성경을 가까이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그리스도인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아는 것’과 ‘실제로 하는 것’ 사이에 생각보다 큰 간격이 있다는 데 있다. 성경을 펼쳤다가도 바쁜 일상에 밀려 중단하기 쉽고, 좋은 신앙 서적을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지만, 한 권을 끝까지 읽는 일도 만만치 않다. 나 역시 오랫동안 같은 고민을 해왔다. ‘어떻게 하면 말씀을 일상의 중심에 둘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성경을 읽는 일이 의무가 아니라 기쁨이 되고, 좋은 신앙의 유산을 꾸준히 배우며 살아갈 수 있을까?’ 그 고민 속에서 시작한 것이 ‘공동체 성경읽기’와 ‘신앙 고전 읽기’다. 우리는 조금 특별한 방법으로 말씀을 읽는다. 눈으로만 읽는 게 아니라 함께 듣는다. 오디오 바이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오디오북을 통해 믿음의 선배들이 남긴 신앙 고전을 듣는다. 그리고 각자의 마음에 남은 말씀과 깨달음을 서로 나눈다. 함께 듣다 보면 작은 변화가 일어난다. 혼자였다면 중간에 멈췄을 성경을 계속 듣게 되고, 어렵게만 느껴졌던 신앙 고전도 한 권씩 끝까지 만나게 된다. 그렇게 말씀과 신앙의 깊은 통찰이 어느새 우리의 생각 속에 스며들고, 삶을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롬 10:17). 나는 이 말씀을 묵상하며 ‘들음’의 의미를 새롭게 생각하게 됐다.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귀로 소리를 듣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반복해서 듣고 마음에 새기며, 서로 나누고, 마침내 그 말씀에 순종하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모임의 목표는 성경을 몇 번 읽었는지, 신앙 고전을 몇 권 완독했는지에 있지 않다. 말씀을 많이 아는 것을 넘어서 말씀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이 우리가 함께 듣고 읽는 이유다. 신앙 고전을 함께 읽는 이유도 같다. 시대는 달라도 하나님 앞에서 치열하게 씨름했던 믿음 선배들의 질문과 고백에는 우리의 신앙을 비춰주는 힘이 있다. 그들의 글을 통해 내가 당연하게 여겼던 믿음을 다시 돌아보고, 복음이 무엇인지 묻고, 예수 그리스도를 더 깊이 알아가게 된다. 성경이 신앙의 유일하고 확실한 토대라면, 좋은 신앙 고전은 그 말씀을 붙들고 먼저 걸어간 이들이 남겨 준 귀한 이정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모임을 계속하면서 새롭게 발견한 것이 하나 있다. 바로 ‘함께함의 힘’이다. 같은 성경을 듣고, 같은 책을 읽어도 마음에 들어오는 말씀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그냥 지나쳤던 한 구절이 다른 사람에게는 삶을 붙드는 말씀이 되기도 하고,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깨달음을 다른 사람의 나눔을 통해 만나기도 한다. 서로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말씀이 더욱 풍성해지고, 어느새 우리는 서로에게 믿음의 격려가 되고, 신앙의 길동무가 된다. 오늘 우리의 삶은 너무나 분주하다. 스마트폰을 통해 수많은 정보와 목소리가 끊임없이 우리 안으로 들어온다. 세상의 소리는 점점 커지는데, 정작 하나님의 음성을 조용히 듣는 시간은 줄어들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말씀 앞에 머무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하루하루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좋은 신앙의 가르침을 가까이하며, 함께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작은 습관이 우리의 생각을 바꾸고, 결국 삶의 방향을 바꾸게 될 것이라 믿는다. 혼자서는 멀게 느껴졌던 성경과 신앙 고전도 함께하면 어느새 우리 마음 가까이 와 있을 것이다. 말씀을 듣는 작은 습관이 쌓이면서 어느 날 우리가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말씀을 듣고 있는 나를 넘어서, 말씀으로 생각하고, 말씀으로 살아가는 나를 말이다. 이번 가을, 그 기쁨의 여정에 당신을 초대한다. 문의: 010-4549-2925(금요PRS 총무) / 강신익 장로(OCC공동체)

     2026-09-05  제1604호

  • 독자마당

    [아웃리치특집] 가족, 가장 귀한 선물 과천의왕공동체_화성M센터 온누리 다문화 평생교육원 가족, 가장 귀한 선물 과천의왕공동체가 지난 8월 16일(일)부터 17일(월)까지 1박 2일 동안 ‘가족, 가장 귀한 선물’을 주제로 화성M센터 다문화평생교육원(이하 다평원)으로 아웃리치를 다녀왔다. 이번 여정은 온 가족이 함께 참여하는 첫 번째 아웃리치였다. 긴장과 설렘이 동시에 교차했다. 특히 전날 보은 어린이캠프 아웃리치를 마치고, 바로 화성으로 향해야 했기에 육체적으로피곤하고 분주했다. 하지만 영적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 기대감이 가득했다. 이번 아웃리치를 향한 발걸음은 두 달 전부터 기도로 시작되었다. 리더십 줌(Zoom) 회의를 통해 전체 주제에 대한 설명과 의견 나눔이 있었고, 공동체 전체 줌(Zoom) 회의를 통해 비전을 나누고, 본격적인 팀원 모집과 세부 사항 기획을 했다. 현장 답사를 통해 현지 상황을 눈으로 확인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사전 중보기도회였다. 공동체가 모두 모여 다평원 가정들을 위해 간절히 중보기도 했던 시간이 아웃리치가 끝난 지금 돌이켜보니 전체 일정 성패를 좌우한 가장 중요하고 핵심이었음을 깨닫는다. 나는 이번 아웃리치에서 ‘선물준비팀’ 팀장으로 섬기는 은혜를 누렸다. 선물준비팀은 다평원 아이들과 공동체 자녀들을 위한 ‘웰컴 키트’(welcome kit), 가정에 드릴 환송 선물 ‘타올’, 각 객실에 비치할 ‘과일 바구니’를 담당했다. 다평원 가정 대부분 무슬림이었기에 물품과 간식을 선정하는 일이 무척 조심스러웠다. 팀원들과 수없이 검색하고 상의하며 그들의 문화에 어긋나지 않도록 정성을 다해 준비했다. 가장 감동이 있었던 것은 각 가정의 방에 환영과 축복의 메시지와 과일 바구니를 미리 가져다 놓는 시간이었다. 마치 영화 ‘미션 임파서블’의 한 장면처럼 첩보 작전을 방불케 하는 긴장감 속에서 세팅을 마쳤다. 땀 흘려 함께 애써준 팀원들과 권사님이 안 계셨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하나님이 나의 부족함을 아시고 돕는 귀한 손길들을 허락해 주셨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이번 아웃리치는 낯선 한국 땅에서 힘들게 일하는 이주 배경 가정에게 정성스럽게 준비한 한 끼를 대접하고, 즐거운 프로그램과 깨끗한 호텔에서 가족과 아름다운 밤을 보내게 해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8개 나라(러시아, 스리랑카, 우즈베키스탄, 중국,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필리핀)에서 온 28가정(118명)과 공동체 성도 96명, 총 214명이 시흥 웨이브엠 호텔에서 함께하는 천국잔치가 열렸다. 이 천국잔치는 장차 열방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누릴 천상의 모습 같았다. 낯설어하던 가족들이 마음을 활짝 열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무슬림 가정들이 소감을 발표하는 시간은 참으로 뭉클했다. 그분들은 “진심으로 감동했다”며 깊은 감사를 전했다. “앞으로 이런 기회가 또 있었으면 좋겠다”고 고백했다. 그 진솔한 나눔에 과천의왕공동체 식구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각 가정에 분명한 복음의 씨앗이 심어졌으리라 확신한다. 이번 아웃리치는 공동체가 하나 되어 함께 즐겁게 섬기며 평생 잊지 못할 벅찬 감동을 남겼다. 무슬림이자 이주 배경 가정을 이토록 사랑하시고 아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과천의왕공동체를 그 통로로 사용해 주셔서 감사할 뿐이다. 리더십을 비롯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땀 흘려 섬겨주신 모든 분께 깊은 감사를 전한다. 무엇보다 모든 일을 계획하시고 이끄시며 열매 맺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심을 보는 게 가장 큰 축복이었다.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린다. / 강정현 성도(과천의왕공동체)

     2026-09-05  제1604호

  • 독자마당

    [아웃리치특집] 하나님은 먼저 일하고 계셨다 갈렙청년부-대만 하나님은 먼저 일하고 계셨다 “이번 대만 아웃리치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실까?” 지난 8월 3일(월) 대만 타이베이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일주일 뒤에 내가 어떤 마음으로 이곳을 떠나게 될지 알지 못했다. 우리가 준비한 사역을 잘 감당하고,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서 복음을 전하고, 현지 교회를 잘 섬기는 것이 이번 아웃리치의 목표였다. 그러나 일주일 동안의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 마음에 남은 질문이 달라져 있었다. “우리가 대만에서 무엇을 했는가?”에서 “하나님은 대만에서 무엇을 하고 계셨는가?”로 바뀌었다. 이번 아웃리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하나님은 이미 대만에서 일하고 계셨고, 우리는 그 일하심에 초대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만 방문이 처음인 상황에서 현지의 문화와 교회의 상황을 충분히 알기 어려웠다. 우리가 준비한 사역을 어디에서, 누구와, 어떻게 나눠야 할지도 고민이었다. 그때 이미 오래전부터 중화권 복음화를 위해 헌신해 온 CGN 중문대와의 협력이 중요한 연결고리가 되었다. 그 덕분에 현지 교회와 사역 현장을 만날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그곳에서 필요한 일들을 함께 섬길 수 있었다. 우리는 CGN 중문대와 함께 현지 교회와 예배하고, 아이들을 만나고, 어르신들을 섬겼다. 교회 공간을 정리하고 페인트칠하는 일도 함께했다. 현지 선교사님들과 교제하면서 대만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역하는 이들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하나님이 이미 대만에 만들어 놓으신 관계와 사역의 자리로 우리를 연결해 주셨다. CGN 중문대가 제작한 어린이 콘텐츠 ‘바이블 가든’을 활용한 취약계층 어린이 캠프, 복음을 듣지 못한 지역 어르신들을 섬기는 사역, 교회 외벽에 복음의 메시지를 담은 벽화 그리기 사역 등을 하면서 ‘우리의 손길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이곳에 남게 해주세요’라고 기도드렸다. CGN 중문대를 방문해서 대만에서 미디어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섬기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역하는 현장을 볼 수 있었다. 중화권의 복음화를 위해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고, 보급하는 CGN 중문대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대만에 ‘처음으로 복음을 전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이미 이 땅에서 일하고 계셨고, 우리는 그 사역에 잠시 동참한 것이었다. 우리는 한국으로 가지만, 하나님은 이곳에 계신다. 우리가 만난 아이들의 삶에도, 함께 예배했던 교회에도, 만났던 선교사님들과 교회들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계속 일하실 것이다. 그래서 이번 아웃리치의 결과를 우리가 만난 사람의 숫자나 진행한 프로그램의 성과로 나타내는 것보다, 하나님이 이미 일하고 계셨던 자리에 우리가 함께할 수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더 큰 은혜임을 고백한다. 이번 아웃리치에서 만난 모든 분과 현지 사역과 연결해 준 CGN 중문대, 함께 예배하고 섬길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준 현지 교회에 감사드린다. 무엇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순간에도 대만에서 일하고 계셨던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이번 여정을 통해 하나님의 일하심을 더욱 신뢰하게 되었고, 그 현장을 직접 보며 하나님 의 마음을 조금이나 마 배울 수 있었다. CGN 중문대와 현지 교회를 통해 대만에서 계속해서 복음이 전해지고, 다음 세대가 세워지며, 하나님의 교회가 더욱 든든히 세워지기를 기도한다. / 최인헌 형제(갈렙청년부)

     2026-09-05  제1604호

  • 국내캠퍼스

    [News] 온 누리와 함께 감사와 기쁨을! 온 누리와 함께 감사와 기쁨을! 2026 사르밧 프로젝트 ‘추수감사절 감사의 쌀’ 나눔 10월 11일까지 순, 개인별 헌금 및 나눔대상자 접수 2026 사르밧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9월 5일 (토)부터 10월 11일(일)까지 순 또는 개인이 참 여할 수 있다. 사르밧 프로젝트는 추수감사절 의 감사와 기쁨을 온 누리와 함께 나누는 행사 다. 도움이 필요한 성도, 교회 밖 이웃, 외부 기 관에 ‘추수감사절 감사의 쌀’을 전달한다. 사르밧 프로젝트에 참여하려는 순과 개인은 10월 11일(일)까지 사르밧 프로젝트 헌금을 각 캠퍼스 지정 계좌에 봉헌하면 된다. 헌금액 은 쌀 20kg 한 포대 가격인 65,000원을 기준으 로 하되, 순의 형편에 맞게 조정할 수 있다. 순 단위로 참여할 때는 입금자명에 공동체, 다락 방, 순 이름을 일곱 자 이내로 기입하면 된다 (예: 한강마리아2순). 개인이 참여할 때는 이 름과 생년월일을 적으면 된다(예: 온누리 851006). 개인 헌금은 연말정산에도 반영된다. 송금 계좌는 서빙고 하나은행 573-910019-1 4805, 양재 하나은행 573-910021-35705다. 다른 캠퍼스는 각 캠퍼스 지정 계좌를 이용하 면 된다. 나눔대상자 추천도 받는다. 선정 순위는 온 누리교회 공동체 소속 성도 1순위, 외부 기관 2순위, 외부 개인 3순위다. 대상자 접수는 공 동체를 통해 이메일로만 가능하다. 10월 11일 (일)까지 이메일(서빙고: 26thanksgiving@n aver.com, 양재: hyomin2021@naver.com)로 보내면 된다. 이메일을 보낼 때는 공동체 담당 목사와 대표장로를 참조인으로 반드시 포함 해야 한다. 본문에는 ‘**공동체 ***목사님과 ***대표장로님께 승인받음’이라는 문구를 기재해야 한다. 추수감사절 감사의 쌀은 공동체가 추천한 대상자에게 현지 업체가 직접 발송한다. 서빙 고와 양재를 제외한 캠퍼스는 상황에 맞춰 대 상자에게 전달하면 된다. 서빙고에서 쌀 발송 을 원하는 캠퍼스는 담당자가 대상자 리스트 를 취합해 10월 11일(일)까지 서빙고로 접수 하고, 서빙고 계좌로 금액을 이체하면 된다. 문의: 02-3215-3434(서빙고), 각 캠퍼스 담당자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온누리사역축제 ‘하이브리드 교회’ 10월 12~14일 서빙고온누리교회 2026 온누리사역축제(OMC, Onnuri Minis try Conference)가 오는 10월 12일(월)부터 14일(수)까지 ‘하이브리드 교회’를 주제로 열 린다. 온누리교회 리더십 및 성도, 국내 체류 선교사, 협력 기관 리더십 등이 참석한다. 10월 12~14일 오전에는 이재훈 위임목사가 총 여섯 차례 주제 강의를 한다. ‘하이브리드 교회’의 의미와 구체적 방향을 제시할 예정 이다. 오후에는 선택 강의와 저녁 오픈 집회 가 열린다. 선택 강의는 온누리교회 14개 사역본부가 주관하고, 저녁 오픈 집회에서는 이 재훈 위임목사, 김우준 목사(지구촌교회), 김다위 목사(선한목자교회)가 말씀을 전한다. 2026 온누리사역축제는 리더십 수련회를 겸한다. 장로, 권사, 안수집사, 순장, 각 사역팀 리더십은 최소 하루 이상 참석해야 한다. 임 직 훈련생은 하루를 선택해 오전부터 오후까 지 모든 일정에 참석해야 한다. 행사 기간 온 누리교회의 모든 스쿨과 강의, 기도모임은 온 누리사역축제 참석으로 대체된다. 참가신청 방법 및 이수 학점 관련 내용은 추후 안내한 다. 문의: 02-3215-3234(3122, 3534) / 홍하영 기자 “선교지와 복음을 잇는 다리가 되어주세요” 9~10월 CGN 정기후원의 달 글로벌 선교 미디어 CGN이 9월과 10월 을 정기후원의 달로 정하고, ‘선교지와 복 음을 잇는 다리가 되어주세요’를 주제로 후원 행사를 한다. 온누리교회 모든 캠퍼스를 비롯해 춘천새순교회, 방주교회, 안 양제일교회 등 협력교회에서도 후원행사 가 이어진다. 9월 19일(토)과 20일(일)에는 국내 온누리교회 모든 캠퍼스에서 CGN 정기후원 약정 행사를 개최한다. CGN이 정기후원의 달을 맞아 특집 다 큐멘터리 ‘땅끝의 증인들’을 공개한다. 9월 19일(토) 자정 퐁당, 오전 10시 CGN 유 튜브, 9월 20일(일) 오전 10시 30분 CGN TV에서 방송한다. ‘드림온브릿지’ 캠페인 도 시작한다. 디지털 사각지대에서 헌신 하고 있는 선교사들에게 위성 인터넷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다. CGN 정기후원은 전화(02-796-2243) 또는 홈페이지(cgntv.net), 모바일로 참여할 수 있다. / 박지혜 기자 2026 이주민연합수련회 하비스트 ‘Reset’ 2026년 이주민연합수련회 하비스트(Harvest, 이하 2026 하비스트)가 9월 25일 (금)부터 27일(일)까지 파주 영산수련원에 서 ‘Reset(To Folow Christ)’ 을 주제로 열린다. 네팔, 몽골, 아랍 등 16개국에서 온 이주민과 차세대가 참석할 예정이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이주민들의 2026 하비스트 참가비 지원을 위한 후원금과 이주민 가정을 위한 추석선물세트, 시상 품 등 물품 기증을 받는다. 추석선물세트, 프로그램 시상품, 영양제, 간식, 학용품 등 을 9월 20일(일)까지 안산M센터로 보내 면 된다. 2026 하비스트에 함께할 자원봉 사자 150명도 모집한다. 참가신청은 9월 15일까지 QR코드로 하면 된다. 회비는 2박 3일 7만 원, 1박 2일 및 당일 참가 4만 원. 후원: 하나은행 573-810033-13205 온누리교회 문의: 031-491-9650 / 박지혜 기자 공동체성경읽기모임(PRS) 참가자 모집 가을학기 ‘공동체성경읽기모임(PRS)’ 참가자를 모집한다. 9월 11일부터 12월 11일까 지 매주 금요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12시 까지 서빙고온누리교회 사랑홀에서 진행된 다. 간단한 간식을 나누며 교제하고, 공동체성 경읽기와 신앙 서적 읽기(팀켈러 목사의 )를 한다. 문의: 010-4549-2925 / 박지혜 기자 대전온누리교회 창립 23주년 대전온누리교회 창립 23주년 감사예배를 9월 5일(토)과 6일(일) 대전온누리교회본당과 세종교육관 본당에서 드린다. 이재훈 위임목 사 축하 영상 상영, 유현목 목사(대전온누리 교회 담당) 설교 등의 순서가 이어진다. 예배에 참석하는 성도들에게 떡을 제공한다. 유현목 목사(대전온누리교회 담당)는 “대전 온누리교회가 창립 23주년을 맞이할 수 있도 록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린다 ”면서 “성도 모두가 삶의 자리에서 복음을 증거하고, 다음세대와 이웃, 열방을 향해 나아가며, ‘ACTS29’ 비전을 계속 써 내려가는 교회 가 되기를 바란다”고 소망했다. / 남현영 기자

     2026-09-05  제1604호

  • 사역

    [2026 온누리교회 여름 아웃리치 결산] “나를 따르라, 열방을 향해” “나를 따르라, 열방을 향해” 국내 201개 팀 4,959명, 해외 142개 팀, 2,502명 참가 국내 강원도, 해외 아시아 최다 … 교회 수리, 의료사역 등 2026 온누리교회 여름 아웃리치가 은혜 가운데 마무리됐다. 올해 여름 아웃리치에는 국내 201개 팀 4,959명, 해외 142개 팀, 2,502명이 참가했다. 세부적으로는 성인공동체 국내 36개 팀 1,695명, 해외 54개 팀 1,061명, 대학청년부 국내 138개 팀 2,698명, 해외 57개 팀 917명, 차세대 국내 27개 팀 566명, 해외 31개 팀 524명이었다<그림 1>. 국내 아웃리치는 강원도에서 가장 활발하게 이뤄졌다. 33개 팀이 강원도로 아웃리치를 다녀왔다. 이어 경기도 32개 팀, 경상남도 23개 팀, 충청남도, 전라북도 각각 22개 팀, 경상북도, 전라남도 21개 팀, 제주도 12개 팀, 충청북도 10개 팀, 서울 5개 팀 순이었다<그림 2>. 해외 아웃리치는 아시아에서 가장 많이 진행됐다. 126개 팀이 아시아로 아웃리치를 다녀왔다. 이어 아프리카 6개 팀, 유럽 5개 팀, 오세아니아 3개 팀, 북아메리카 2개 팀 순이었다<그림 3>. 아웃리치 주요 사역은 교회 수리, 이미용 봉사, 마사지 봉사, 교제, K푸드 대접, K컬처 소개, 의료 사역, 노방전도, 성경학교, 어린이 캠프, 환경미화 등이었다. /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온누리교회에 온 편지 “내년에도, 아니 매년 다시 만나서” 안녕하세요? 경상남도 거창 하성교회 박재홍 목사입니다. 이 글을 쓰면서 온누리교회 양재A공동체의 지난해 아웃리치를 떠올렸더니 ‘기쁨’과 ‘감사’라는 단어가 먼저 생각납니다. 지난해 양재A공동체가 거창의 두 교회에 아웃리치를 온다는 소식을 뒤늦게 듣고, 어렵게 부탁드려 우리 하성교회에도 방문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 이후 하성교회도 추가되어 온누리교회 아웃리치팀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나 기뻤습니다. 우리 교회의 연세 많은 성도들도 온누리교회 아웃리치팀을 얼마나 기뻐하고 반기셨는지 모릅니다. 기쁨으로 섬기고, 함께 드린 주일예배의 감격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이 기쁨과 감사, 그리고 감격이 올해도 이어졌습니다. 올해는 양재A공동체 성도님 70명이 찾아와 이미용 봉사, 발마사지 봉사, 교회 페인트칠, 마을 전도사역 등을 해주셨습니다. 어느 누가 자신과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을 위해 이름도, 빛도 없이 시간과 물질, 몸을 내어 헌신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 때문이다”라는 대답 외에는 다른 답을 찾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세월이 지나도 몸과 마음이 기억할 귀한 감사의 선물입니다. 온누리교회 아웃리치 이후 6명의 새가족이 교회에 나오고 있습니다. 온누리교회 성도님들이 다녀간 이후 하성교회에 기쁨이 넘치고, 새가족들이 매주 교회를 찾아오면서 웃음꽃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온누리교회와 양재A공동체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내년에도, 아니 매년 다시 만나 함께 예배하고, 섬길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 박재홍 목사(거창하성교회) “함께 기도하고, 섬기고, 사랑하고” 이번 온믿음공동체의 방문은 특별한 배움과 감동의 시간이었습니다. 유치부 학생부터 장년까지 3대가 함께한 팀과 아웃리치를 진행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각자 역할은 달랐지만, 아이들을 사랑하고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은 하나였습니다. 특히 매주 금요일 줌(Zoom)으로 모여 한국‧베트남 가족축제를 위해 기도했던 시간이 큰 감동으로 남아 있습니다. 무엇을 준비할지보다 하나님이 무엇을 하실지 기대하며 기도했고, 같은 기도제목을 놓고 마음을 나누면서 우리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가심을 경험했습니다. 이번 아웃리치에서는 기존 캠프와 달리 센터 아이들의 부모님과 새로운 한국‧베트남 가정까지 초청했습니다. 예상보다 많은 아이들과 부모님이 참석했는데, 특히 평소 한두 명에 그쳤던 아버지들이 열 명이나 함께해 더욱 감사했습니다. 부모님들이 교육 후에도 함께 식사하고 가족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이들을 넘어 부모님들의 마음까지 열리고,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고 있음을 경험했습니다. 가장 큰 감동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맡겨진 자리에서 묵묵히 섬기는 모습이었습니다. 더운 날씨와 비좁은 공간임에도 누구 하나 얼굴을 찌푸리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며 ‘이것이 사랑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말이 아닌 삶으로 보여주는 사랑이었습니다. 온믿음공동체와 함께 기도하고, 준비하고, 섬길 수 있어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함께 기도했던 시간과 가방 가득 아이들을 위한 물품을 준비해 오셨던 모습, 더운 날씨에도 기쁨으로 아이들을 섬기셨던 모습이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함께 기도해 주시고, 섬겨 주시고, 사랑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강기쁨 선교사(호치민 해피프렌즈센터)

     2026-09-05  제1604호

  • 주일강단

    [주일강단]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는 구름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는 구름 <빌립보서> 3:7~16 / 이재훈 위임목사 흐린 날에는 해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해가 없어졌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해를 창조하시고, 낮을 다스리도록 명하신 이후부터 여전히 존재했습니다. 단지 그 해가 구름에 가려졌을 뿐입니다. 신앙생활에도 흐린 날이 있습니다. 내가 기도해도 하나님이 응답하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내 삶에 무관심한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 부르짖습니다. <시편>에도 보면 “하나님, 어찌하여 그 얼굴을 가리십니까?”라고 탄식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스스로를 숨기시는 하나님”이라며 그 나라와 민족의 멸망 한복판에서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또 다른 측면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스스로 자신을 가리는 때도 있지만, 인간 스스로 만든 것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얼굴이 가려지는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잘못이 하나님의 얼굴을 가렸다 “보라. 여호와의 손이 너무 짧아서 구원하지 못하시는 것이 아니다. 귀가 너무 어두워서 듣지 못하시는 것이 아니다. 다만 너희의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을 뿐이다. 너희의 잘못이 하나님의 얼굴을 가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너희의 말을 듣지 않으실 뿐이다”(사 59:1~2). 이 말씀에서 얼굴을 가린 쪽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사람의 잘못이 하나님의 얼굴을 가렸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자녀의 신분이 끊어진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아버지와의 사귐이 흐려진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직하게 질문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것은 그분 스스로 숨어 계시기 때문인가? 아니면 내가 내 머리 위에 있도록 만들고 허용한 무엇이 하나님을 가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14세기 영국의 이름 없는 수도사가 쓴 <무지의 구름>(The Cloud of Unknowing)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은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갈 때 만나는 것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겸손히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려고 할 때 발견하는 것은 일종의 어둠에 속한 무지의 구름이다. 단순하게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는 한 그것이 무엇인지 식별하기 어렵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이 구름은 항상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있으면서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을 방해한다.”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는 구름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은 언제나 자녀를 향하고 있습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는 속죄를 완성하셨기에, 모든 죄와 허물과 수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얼굴은 그 자녀를 향하고 계십니다. 그런데도 마귀는 흐린 날 이렇게 속삭입니다. “하나님은 너를 미워하신다. 너에게 관심이 없으시다. 너에게서 돌아서셨다.” 거짓말입니다.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시고 숨을 거두신 십자가 사건으로 인해서 하나님은 회개하는 모든 죄인, 그분의 자녀에게서 돌아서지 않으셨습니다. 문제는 해에 있지 않습니다. 그 해가 우리를 비추지 못하도록 가리는 구름에 있습니다. 그 구름은 우리 스스로 놓아두고, 치우지 않은 것입니다. 좋은 것도 내 것이 되면 하나님을 가린다 사도 바울도 자신이 올려놓은 구름이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 구름을 제거하고 나서 <빌립보서> 3장의 고백을 합니다. 사도 바울과 같은 체험이 없으면 이 말씀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첫째, 좋은 것도 내 것이 되면 하나님을 가린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누구보다 잘 섬긴다고 확신했고, 그 확신으로 그리스도인을 잡으러 다메섹으로 갔습니다. 그러던 사람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나 내게 유익하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다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7절). 여기서 ‘유익’이라는 단어와 ‘해’라는 단어는 사업하는 사람의 회계 용어입니다. 이익과 손실이라는 칸에 적혀 있을 수 있습니다. 원문을 보면 ‘유익’은 여러 개를 뜻하는 복수형이고, ‘해’는 하나를 뜻하는 단수형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이력서를 이익과 유익한 편에서 적어 내려갑니다. 하나도 빼놓지 않습니다. 그것을 다 합한 순간 그 답은 바로 ‘해’, 손해였습니다. 8절에서는 그 손해가 배설물로 여겨집니다. ‘개에게 던져주는 찌꺼기’라는 풀이가 되는 말입니다. 길에다 내버리는 오물과 쓰레기를 가리킵니다. 이력서가 나빠서가 아닙니다. 그의 혈통도, 열심도, 흠 없는 의도는 모두 좋은 것이었습니다. 죄가 아니었고, 해롭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그걸 해로 여길까요? 더 좋은 것, 가장 좋은 것을 가리는 구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좋은 것이 내 것이 될 때, 좋은 것이 가장 좋은 것을 가려버릴 때 하나님과 나 사이에 구름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를 가리는 첫 번째 구름은 ‘내 것’이라고 주장하는 모든 좋은 것들, 유익한 것들입니다. 내게 유익한 것들이기에 그것이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는 구름이 된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는 사이에 구름이 되어 버립니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분이십니다. 어떤 경쟁자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그분과 경쟁하는 것은 무엇이든 하나님과 나 사이에 구름이 됩니다. 인간적인 야망도 그렇습니다. 돈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다고 하면서도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분이 주시는 것을 찾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기도도 거래가 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을 가리는 것이 내 죄가 아니라, 내 소원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도 내 사역이 되는 순간, 내 소유가 되는 순간 하나님을 가릴 수 있습니다. 사업도, 직분도 내 것이 되는 순간 구름이 되어 버립니다.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에 “내가 참으로 모든 것을 해로 여기는 것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입니다. 그분으로 인해 내가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심지어 배설물로 여기는 것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기 위한 것입니다.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의가 아니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얻는 의, 곧 믿음으로 인해 하나님께로서 난 의입니다”(8~9절). 유익하던 것을 다 해로운 것으로 여긴 이유는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밤하늘의 별은 해가 떠올랐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해로 인해서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밤하늘의 별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있던 이력이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그에게 존재합니다. 그러나 찬란한 햇빛 같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그에게 임했을 때, 그 모든 것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기고,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9절에서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의가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나를 의롭게 하신 그 의가 있어야만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발견되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C&MA 교단을 시작한 A. B. 심슨(Albert Benjamin Simpson) 목사님이 남긴 'Himself'라는 제목의 찬양 가사가 있습니다. 새찬송가에는 441장으로 '은혜 구한 내게 은혜의 주님' 이라고 번역이 됐는데, 한글 가사로 보면 원래 가사보다 조금 다른 의미로 되어 있습니다. 직역하면 이런 뜻입니다. “한때는 축복이었지만 이제는 주님이시라네. 한때는 감정이었지만 이제는 주님의 말씀이라네. 한때는 주님의 선물을 원했으나 이제는 그것을 주시는 주님을 원하고, 한때는 치유를 구했으나 이제는 주님 자신만을 구한다네.” 그래서 'Himself', 그분 자신을 구한다, 그분 자신에게 초점을 둔다는 가사의 내용입니다. 그 찬송가 가사의 마지막은 이렇습니다. “Everything is in Christ, Christ is everything.”(모든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이다) 하나님에 관해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을 가릴 수 있다 둘째, 하나님을 가리는 구름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에 관해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을 가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알고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아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르고자 합니다”(10~11절). 8절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고 한 바울이 10절에서는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 부활의 능력과 고난에 동참함을 알기 원한다고 했습니다. 이미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알기에 모든 것을 해로 여긴 그가 10절에서는 또다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내용으로 부활의 능력과 고난의 동참함을 알기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부활에 이르고자 하기를 원했다는 것입니다. 이미 아는 사람이 또 알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안다’는 것은 정보를 더 얻고 싶다는 말이 아닙니다. 더 친밀히 사귐 속에서 알고 싶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안다’라는 단어는 친밀한 부부 관계의 앎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서로 동침함에’라고 할 때 그 안다는 단어를 쓰는 것입니다. 시험지에 답을 쓰는 아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삶으로써 아는 것입니다. 사귐을 통해서 깊이 알아가는 앎을 갈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전능하신 분이라고 지식으로 아는 것과 병상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앎은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는 것을 지식으로 아는 것과 이해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하는 것은 다릅니다. 그런데 이 고백 속에서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다 압니다. 그렇지만 그는 알기를 원했습니다. 특히 부활의 능력과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알기를 원했습니다. 이 순서도 주목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먼저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지만, 사도 바울은 부활부터 시작합니다. 부활의 능력을 알고 고난에 참여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다시 부활로 갑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날 때는 부활의 능력부터 경험합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고난을 깨닫고 예수님을 알기보다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임재와 능력 속에서 그분을 만나고, 그러고 나서 십자가의 고난으로 나아가는 체험을 하는 것입니다. 체험적인 고백입니다. 이 두 가지는 분리된 체험이 아닙니다. 바울이 쓰는 표현들을 주목하십시오. “알고자 합니다, 얻고자 합니다, 이르고자 합니다, 잡으려고 달려갑니다” 모든 것이 진행형입니다. 아직 진행 중인 사람입니다. 더군다나 사도 바울은 언제 사형 선고가 내려질지 모르는 감옥에 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그는 알고자 했고, 얻고자 했고, 달려간다고 말합니다. 한 교회의 영성과 수준을 알려면 그 교회의 가장 오래된 분들을 보면 압니다. 살아있는 교회는 오래된 분들이 여전히 사도 바울처럼 이르고자 하고, 알고자 하고, 잡으려고 달려가는 모습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자 했던, 이르고자 했던, 그리고 여전히 새신자처럼 달려가는 믿음이 우리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만일 하나님에 관해 아는 것, 혹은 성경 지식이 하나님과의 깊은 사귐을 가로막는 구름이 된다면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내가 아는 성경 지식, 내가 아는 교회 경험이 하나님과 나를 가리는 구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사도 바울의 고백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느 세대보다 하나님에 관한 많은 지식과 정보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지식과 정보가 늘어난 만큼 하나님의 얼굴이 더 가까워졌는지를 질문해야 합니다. 우리가 다 왔다고 여기는 순간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이 가려진다 셋째, 우리가 다 왔다고 여기는 순간 푯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이 가려집니다. “나는 이미 얻었거나 이미 온전해진 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것을 붙잡으려고 좇아갑니다. 이는 나도 그리스도 예수께 붙잡혔기 때문입니다”(12절).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그것을 붙잡으려고 쫓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님께 붙잡힌 증거가 무엇입니까? 붙잡으려고 쫓아간다는 것입니다. 역설적인 표현입니다. 예수님께 붙잡히지 않은 사람은 그분을 붙잡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먼저 우리를 붙잡아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을 붙잡으려는 노력을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자신을 다 이루었다고 여기는 사람입니다. 빌립보교회 안에 그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십시오. 여러분이 혹시 다른 무슨 다른 것을 생각한다면 이것 또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나타내시리라는 것입니다”(15절). 자신을 완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온전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형제들이여, 나는 그것을 붙잡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한 가지만은 말할 수 있는데, 곧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붙잡으려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위에서 부르신 그 부르심의 상을 위해 푯대를 향해서 좇아갑니다”(13~14절). 자신의 성공만이 아니라 실패, 자신에게 속한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마치 결승점에서 더 빨리 가려고 몸을 앞으로 쭉 뻗듯이 달리는 주자처럼 예수님께 달려가는 모습입니다. 이 고백을 <무지의 구름>을 쓴 저자는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이 무지의 구름이 당신의 머리 위, 곧 당신과 하나님 사이에 있듯이, 당신의 밑, 곧 당신과 모든 피조물 사이에는 망각의 구름(cloud of forgetting)을 두어야 합니다. 그것들을 당신 아래에 두어 당신과 당신의 하나님 사이에 있지 않게 하십시오.” 발아래 두라는 것입니다. 위에 두지 말고 아래 두라는 것을 사도 바울은 ‘잊어버린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그렇게 둘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모든 어둠을 제거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낮 12시부터 3시까지 온 땅에 어둠이 임했습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신해 심판의 어둠을 통과하시는 그 3시간, 그 어둠을 지나가셨기 때문에 이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얼굴이 열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속한 모든 것, 하나님에 관하여 아는 지식을 포함해서 모든 것을 발아래 두고, 구름을 뚫고 하나님의 얼굴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을 뵐 수 있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내 것이라고 주장했던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다 왔다고 여겼던 자기만족을 내려놓고,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자기 교만과 야망과 두려움이 망각의 구름이 되게 해야 합니다. 그 모든 것을 하나님과 나 사이에 두지 말고, 발아래 둠으로써 오직 하나님만을 향하여 나아가고, 푯대를 향하여 나아가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그 얼굴을 여러분에게 비추시고, 그 얼굴을 여러분에게 향하여 드시기를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6-09-04  제1604호

  • 국내캠퍼스

    [News] “Reset(To Follow Christ)!” “Reset(To Follow Christ)!” 2026년 이주민연합수련회 하비스트(Harvest) 9월 25일부터 27일까지 파주 영산수련원 온누리M미션에서 2026년 이주민 연합수련회 하비스트(Harvest, 이 하 2026 하비스트)를 개최한다. ‘ Reset(To Folow Christ)’을 주제로 막 오르는 2026 하비스트는 9월 25 일(금)부터 27일(일)까지 파주 영산 수련원에서 진행된다. 하비스트는 온누리M미션에서 매 년 개최하는 이주민 추석연합수련 회다. 2026 하비스트에서는 네팔, 러 시아, 몽골, 미얀마, 방글라데시, 베 트남, 아랍, 아프가니스탄, 우즈베키 스탄, 인도, 인도네시아, 중국, 태국, 필리핀, 한국 등 16개국에서 온 이 주민과 차세대, 한국인 스태프와 봉 사자 90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이재훈 위임목사, 해롤드 김 목사 (OEM 담당), 이아르뚜르 목사(서빙 고 러시아예배 담당), 김태완 목사 (온누리M미션 본부장)가 강사로 나 선다. 김태완 목사는 “2026 하비스트가 열방의 이주민들이 함께 예배하며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드리는 영적 예배자로 거 듭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면서 “가정과 공동체, 민족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새롭게 변화되기를 함께 기도해 달라”고 당부했다. 2026 하비스트 봉사자도 모집한 다. 주차, 안내, 예배 자막, 무대FD, 중보기도, 식사 안내, 환경미화, 의 료 등 분야에서 이주민 형제자매들 을 섬기게 된다. 집회 기간 전체뿐 아니라 당일 봉사도 가능하다(숙소 요청 가능). 참가신청은 9월 15일까 지 QR코드로 하면 된다. 후원: 하나은행 573-810033-13205 온누리교회 문의: 031-491-9650 /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하반기 온라인커뮤니티 개강 9월 29일부터 매주 화 오후 8시 온라인 하반기 온누리 온라인커뮤니티(이하 온라인커뮤니티)가 개강한다. 9 월 29일부터 12월 1일까지 매주 화요일 오후 8시 온라인(Zoom)으로 진 행된다. 참가신청은 온누리교회 홈페이지(onnuri.org) 또는 하단 QR코 드로 하면 된다. 온라인커뮤니티는 20세 이상 온누리교회 성도 중에서 여러 사정으로 공동체 활동이 어려운 이들이 온라인에서 모이고 교제하 는 공동체다. 소그룹으로 묵상 내용과 삶을 나 누며 신앙 성숙을 돕는다. 이번 학기에는 여성민, 김철희 목사가 강의한다. 문의: 카카오채널 ‘온누리 온라인커뮤니티’ / 홍하영 기자 하반기 시니어아카데미 참가자 모집 2026 하반기 시니어아카데미(서 빙고, 양재, 부천)가 개강한다. 서빙 고온누리교회에서는 ‘청바지: 청춘 은 바로 지금’을 주제로 9월 2일부 터 11월 25일까지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 30분 두란노홀에서 진행된다. 찬양콘서트, 특별강의, 가을 소풍 등 이 이어진다. 양재온누리교회는 9월 9일부터 12 월 2일까지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 30분 드림홀에서 열린다. 예배와 간 증, 특별강의, 가을 소풍 등을 한다. 부천온누리교회는 10월 10일부터 11월 28일까지 매주 토요일 오전 11 시 비전홀에서 프로그램이 진행된 다. 예배, 레크리에이션, 야유회, 미 술활동 등을 한다. 시니어아카데미 참가를 원하는 성도들은 개강일 현장에서 등록하 면 된다. 만 65세 이상 성도가 대상 이다. 회비는 5만 원. 문의: 02-3215-3220(서빙고) 02-570-7349(양재) 010-5334-8413(부천)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가을학기 공동체성경읽기모임(PRS) 개강 9월 11일~12월 11일 매주 금 오전 9시 30분 가을학기 ‘공동체성경읽기모임(PRS)’이 개강한다. 9월 11일부터 12월 11일까지 매주 금요일 오전 9시 30 분부터 오후 12시까지 서빙고온누리교회 사랑홀에서 진행된다. 가을학기 공동체성경읽기모임에서는 4장 13절 말씀을 따라 공동체가 함께 모여 말씀과 신 앙 고전을 오디오북으로 듣고, 눈으로 읽고, 나누면서 신앙 성장과 성숙을 도모한다. 신앙 고전은 팀켈러 목 사의 를 읽는다. 간단한 간식을 나누며 교제하 고, 오전 10시부터 공동체성경읽기와 신앙 서적 읽기 를 한다. 문의: 010-4549-2925 / 박지혜 기자

     2026-08-29  제1603호

  • 독자마당

    [아웃리치특집] 바울로부터, 우리 순례단에게 송파A공동체 - 그리스·튀르키예 바울로부터, 우리 순례단에게 2년 전 CGN에서 방영된 ‘바울로부터’를 순예배 교재로 사용하면서 1학기 내내 그리스와 튀르키예를 지도로 그려가며 공부했다. 그리스와 튀르키예가 송파A공동체 해외 아웃리치 지역으로 결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그 현장을 직접 찾을 생각에 기대가 컸다. 이스탄불 국제공항에 도착하고, 순례단을 태운 버스가 첫날 국경을 통과해 그리스 빌립보로 향했다. 세차게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루디아에게 세례를 주던 바울의 모습을 그릴 수 있었다. 에그나티아 대로의 중간 지점인 빌립보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첫 선교 교두보를 세우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세찬 강물 소리를 들으며 찬양 ‘나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입니다’를 감격스럽게 올려드렸다. 메테오라와 고린도를 지나 아테네에 도착했다. 파르테논 신전보다 더 가보고 싶었던 언덕 ‘아리오바고’를 둘러본 다음, 저녁 배를 타고 히오스 섬을 경유해 튀르키예에 도착했다. 이곳에서는 예배드리는 것이 금지되어 있어서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했다. 라오디게아와 히에라폴리스를 지나 갈라디아 지역으로 향했다. 루스드라에서는 김반석 선교사님이 바울의 행적을 ‘황소, 돌, 깡촌’으로 정리해 주었다. “앉은뱅이를 고친 바울과 바나바를 제우스와 헤르메스로 여겨 황소를 바치려 했던 사람들이 오후에는 바울을 돌로 쳐 성 밖으로 내던졌습니다. 다음 날 바울은 그곳에서 깡촌 청년 디모데를 만나게 됩니다.” 순례단은 아무도 예배하지 않는 루스드라의 버려진 작은 동굴 교회를 찾았다. 바울이 당했던 고초를 생각하며 ‘하나님의 부르심’을 이중창으로 불렀다. 동굴 속에서 찬양은 천상을 향한 울림이었다. 바울의 고초가 생생한 땅에 서 있어서 그런지 마음이 울컥했다. 아나톨리아 반도의 갑바도기아를 포함한 갈라디아는 대표적인 응회암 지역이다. 그래서 정과 망치만 있으면 어느 바위든지 내부를 파서 공간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갑바도기아의 데린쿠유 지하도시는 지하 7층에 이르는 거대한 도시로, 그리스도교 박해를 피해 사람들이 지하에서 생활했던 곳이다. 순례단은 마음껏 예배할 수 있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음을 감사하며 이 지역을 위해 기도했다. 히오스 섬에서는 한국 사람 하나 살지 않는 곳에서 30년 이상 살아온 김경옥 집사님에게 축복기도를 드렸다. 잃어버렸던 예수님과의 첫사랑을 다시 찾고 싶다는 집사님의 고백을 들으며 이곳에 예배하는 공동체가 다시 살아나기를 기도했다. 튀르키예에서 동행한 현지인 가이드 딜락을 위해 보스포루스 해협이 보이는 선상에서 축복기도를 했다. 딜락은 최근 동생이 암에 걸려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무슬림임에도 기도를 받아들였다. 튀르키예 지역 가이드로 활동하며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고, 하나님을 증거하기를 기대했다. 마지막 날에는 김반석 선교사님이 만난 이란 난민 두 가족과 함께 식사했다. 이란에서 변호사로 일하던 알리레자는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느냐”는 말씀을 반복해서 듣는 기적적인 경험을 통해 예수님을 만났다. 현재는 튀르키예에서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 알리레자의 사촌 파렘과 딸은 난민으로 사는 어려움 때문에 이란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순례단은 두 가정을 위로하고 축복했다. 지금은 무슬림 땅이 된 열악한 선교지인 튀르키예, 아무도 예배하지 않는 그 땅에서 다시 많은 이들이 예배하기를 기도한다.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적어 보낸 편지에서 ‘이신칭의’를 강조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수많은 이방인의 땅에 복음이 전해질 수 있었을까? “내가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구원을 베풀리라”는 <이사야> 말씀이 바울로부터 시작되어 우리 순례단에게 이어지기를 다짐했다. / 김양숙 집사(송파A공동체)

     2026-08-29  제1603호

  • 독자마당

    [아웃리치특집] 기도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남양주온누리교회_남양주M센터 캄보디아공동체 기도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나는 아직 신앙의 걸음마를 떼고 있는 초신자이다. 지난 4월 박종호 선교사님의 간증 콘서트에서 큰 은혜를 받고, 언젠가 하나님을 위해 누군가를 섬기는 일에 꼭 동참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다. 그리고 남양주M센터 이주민 지체들을 위한 아웃리치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졌다. 처음 경험하는 섬김이었기에 설렘과 걱정이 함께 있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섬김으로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자’는 마음으로 준비했다. 그런데 준비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과 마음의 흔들림이 찾아왔다. 한마음으로 섬겨야 할 팀 안에서 여러 고민이 생겼고, 나 역시 ‘과연 이 아웃리치를 잘 감당할 수 있을까’ 염려가 있었다. 아웃리치를 이틀 앞둔 목요일 새벽기도 시간에 어떤 기도를 드려야 할지 모를 만큼 마음이 무거웠다. 그런데 문득 두 장면이 떠올랐다. 팀의 분열을 보며 웃고 있는 사탄의 모습과 그 모습을 보며 눈물 흘리시는 하나님이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거룩한 사역을 앞두고 흔들리는 나와 팀의 모습이 너무 죄송했다. 내 마음에서 기도가 흘러나왔다. “부족하지만 저의 작은 섬김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도구가 되게 하옵소서. 흔들리는 마음들을 붙잡아 주시고, 우리가 하나 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옵소서.” 기도를 마칠 무렵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이 찾아왔다. 그것이 은혜의 시작이었다. 문제 상황이 당장 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내 마음이 먼저 달라지는 것을 경험했다. 내가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기보다 하나님께 맡기고 나아가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웃리치 당일에도 모든 어려움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놀랍게도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모든 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웰컴 부스에서 지체들을 맞이할 때부터 밝게 웃으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았다. 레크리에이션과 식사 시간에는 삼겹살과 김치를 맛있게 먹으며 행복해하는 이주민 지체들을 보면서 큰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언어와 문화는 달랐지만, 함께 예배하고 찬양하며 하나님 안에서 하나 되었다. 이번 아웃리치는 캄보디아 지체들을 위한 시간이었지만, 네팔, 태국 등 다른 나라에서 온 이주민 지체들도 함께했다. 그 덕분에 더 풍성한 은혜를 나눌 수 있었다. 아웃리치 팀원들이 정성껏 준비한 프로그램과 선물은 이주민 지체들에게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과 복음을 전하는 귀한 통로였다. 그들의 환한 미소를 보면서 하나님이 그들의 외로움과 눈물을 친히 위로하고 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아웃리치에서 나는 분명히 깨달았다. 준비 과정에서 어려움과 갈등, 부족함이 있더라도 기도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결국 모든 것을 통해 선을 이루신다.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을 믿지 못하고 불안해했던 나의 작은 믿음이 부끄러웠다. 부족한 나에게도 역사하심을 보여 주시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린다. 나의 작은 섬김과 기도가 누군가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도구가 될 수 있어서 감사하다. 앞으로도 내 힘이 아닌 하나님만 의지하는 신실한 자녀로 살 것이다. 마지막으로 꼭 고백하고 싶은 것이 있다. 기도는 내 의지로 하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나를 기도로 인도하시기도 한다는 것을 이번 새벽기도를 통해 깊이 깨달았다. 이 모든 은혜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린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 김민섭 성도(남양주B공동체 다산소망다락방)

     2026-08-29  제1603호

  • 주일강단

    [주일강단]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야고보서> 1:19~25 / 이재훈 위임목사 마땅히 옳은 것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모습들이 있습니다. 몰라서 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알면서도 하지 않습니다. 사랑해야 하는 줄 알면서 하지 않습니다. 말을 조심해야 하는 줄 압니다. 그러나 화가 나면 말로 다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줍니다.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염려를 붙들고 살아갑니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 사이에는 큰 간격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간격을 오래 붙들고 살아서 당연하게 여기는데, 본래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생각하는 것과 행하는 것이 분리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선한 일을 생각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생각하신 바를 행하시는 분입니다. 그분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우리도 본래 그렇게 지어졌습니다. 죄가 우리에게 들어온 이후에 생각과 행함이 분리된 것입니다. 말씀, 영혼을 비추는 거울 “그러므로 누구든지 선을 행할 줄 알면서도 행하지 않으면 이것은 죄를 짓는 일입니다”(약 4:17).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죄에서 자유함을 받고, 구원받은 우리에게 있어야 할 모습은 생각과 행함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들에게도 여전히 앎과 행함 사이에 간격이 있습니다. 이 간격이 바로 우리에게 미친 죄의 영향력이자 흔적입니다. “여러분은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고 듣기만 해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22절). 단지 실수했거나 게으르다고 지적하지 않습니다. ‘속였다’라고 말씀합니다. 어떤 감정을 속인다는 게 아닙니다. ‘계산을 잘못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었다’는 상태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미 중요한 한 단계를 지났다는 뜻입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그 단계에서 행함이 없다면 스스로 계산을 잘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에 감동한 것을 순종한 것으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깨달은 것을 실천한 것으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감동이나 동의, 깨달음이나 결심, 그 어떤 것도 순종이 아닙니다. “만일 누가 말씀을 듣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자기의 생긴 얼굴을 거울에 비춰 보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는 거울을 보고 돌아서서는 자신의 모습이 어떠한지 금방 잊어버립니다”(23~24절). 말씀은 우리의 영혼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거울을 보며 얼굴이나 외모에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살핍니다. 당시에는 투명하고 정확하게 보이는 거울이 없었습니다. 청동을 문질러서 만든 거울이기 때문에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자신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렇게 자세히 살펴보면서 자신의 얼굴에 더러운 것이 묻어 있다는 것을 알고도 씻지 않고 잊어버린다면 ‘자신을 속이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모습이 바로 거울을 자세히 살피고도 돌이켜서는 잊어버리는 모습과 같다고 비유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의 네 가지 의미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말씀이 도대체 어떤 의미인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첫째, 이 말씀은 ‘진리의 말씀’입니다(약 1:18).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다고 합니다. 우리 스스로 낳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결심하고 노력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뜻을 따라 말씀을 통해 우리를 낳으셨습니다. 우리를 낳은 통로가 된 진리의 말씀입니다. 둘째, 이 말씀은 ‘우리 마음에 심겨진 말씀’입니다(21절). 어떤 분들은 사람이 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양심이나 이성이 아니냐고 오해합니다. 그러나 ‘받으라’는 동사를 보십시오. 밖에서 온 것, 곧 하나님이 심어주신 것입니다. 심는 일을 행하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복음의 말씀을 이미 마음에 심어주셨습니다. 셋째, 그 말씀은 ‘영혼을 능히 구원할 말씀’입니다. 우리 마음에 심긴 말씀이 영혼을 능히 구원합니다. 영혼은 우리의 존재와 생명 전체를 의미합니다. 구원의 값은 십자가에서 이미 다 치러졌습니다. 마음에 심긴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고, 그 말씀이 온전한 구원을 이룰 때까지 우리를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넷째, 이 말씀은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입니다(25절). 온전한 율법, 곧 자유의 율법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보다 구원이 먼저입니다. 계명보다 구원이 먼저 있었습니다. 율법이 밖에서 들리는 목소리로만 존재한다면 그것은 죽은 문자로 남아 우리를 정죄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율법이 이제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에 새겨주신 말씀이 되었을 때, 자유를 누리는 율법으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같은 율법이 우리를 정죄하는 법에서 자유케 하는 법이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율법 안에 거하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 자리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진리의 말씀, 곧 하나님의 율법 안에 머문다는 것을 ‘그 안에 거한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 자유는 우리가 본래 지음을 받은 모습 그대로 살아가는 능력을 말합니다. 그 말씀에 대한 태도 “여러분은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고 듣기만 해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22절). 이 말씀은 진리의 말씀이요, 우리를 낳은 말씀입니다. 그 말씀이 들려오면 우리는 이끌려 가게 됩니다. 이 말씀은 마음에 심겨진 말씀이고, 영혼을 구원할 말씀입니다. 자유케 하는 그 말씀 안에 우리는 이미 들어 있습니다. 없는 것을 내놓으라는 게 아닙니다. 우리 안에 심겨진 말씀이 표현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로막는 것이 바로 자신을 속이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마음에는 진리의 말씀이 새겨져 있고, 손에는 자유케 하는 율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행함이 없는 것은 씻을 물이 준비되어 있고 더러운 것도 있는데 씻지 않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말씀의 거울은 우리를 정죄하려고 비추는 것이 아니라 씻김의 자리로 데려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회개이며, 믿음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십자가 은혜와 사랑, 회복을 날마다 경험하는 것이 실천입니다. 없는 것을 강요하는 게 아닙니다. 알지 못하는 것을 지적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미 깨달은 것, 알고 있는 것을 드러내라는 것입니다. 그 말씀에 대한 태도를 우리의 관계 속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이것을 명심하십시오. 사람마다 듣기는 빨리 하고 말하기는 천천히 하며 노하기도 천천히 하십시오”(19절).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닫고, 자신의 말만 빨리하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태도도 동일할 가능성이 큽니다.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알고, 자신의 말을 삼가고, 분노를 삼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자신의 마음에 심긴 말씀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그들은 백성이 구경거리를 보러 나오는 것처럼 네게 나와서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 네 말을 듣지만 그들은 그것들을 실행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입으로는 사랑을 행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탐욕을 추구하고 있다. 너는 그들에게 아름다운 목소리로 사랑의 노래를 부르며 악기를 잘 연주하는 사람일 뿐이다. 그들은 네 말을 듣고도 실행하지 않는다.”(겔 33:31~32).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에 심긴 말씀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입니다. 내가 이 말씀을 어떻게 행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관점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분노에 사로잡힐 때보다 마음이 닫힐 때가 없습니다. 분노에 사로잡힐 때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오지 않습니다. 화내기를 더디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주권을 인정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 사람은 자신이 행하는 일에 복을 받을 것입니다”(25절). 직역하면 ‘그의 행함 안에서’라는 뜻입니다. 만일 복이 행함의 삯이라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일꾼일 뿐입니다. 복이 행함의 자리에 있는 것이라면, 그 과정이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행함 때문에 복을 받는 게 아니라, 그 행함 안에서 복을 받습니다. 순종하는 과정 자체에 복이 있습니다. 용서하는 과정에서 내 마음에 있던 미움의 쇠사슬이 풀려나기 시작합니다. 그 행동이 이미 기쁨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섬긴 뒤에만 복이 있는 게 아닙니다. 몸을 굽혀 내가 누군가를 섬기는 과정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닮아갑니다. 우리가 순종을 미룰 때, 실천을 미룰 때 늘 같은 말을 씁니다. 조금 더 기도한 뒤에, 마음의 준비가 되면, 형편이 좋아지면. 이 변명들이 그쳐지고, 바로 지금, 오늘 행하는 실천이 있기를 바랍니다. 무엇이 옳은지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는 이 간격은 우리 스스로 메울 수 없습니다. 이 간격을 메워주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입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의롭게 된 것과 우리의 죄인 된 상태를 연결해 주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며,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은 끊임없이 아는 것과 행하는 간격을 좁혀가시는 분입니다. 이미 듣고, 마음에 심긴 말씀을 끝까지 주장하고, 행함으로 연결하는 복이 넘쳐나기를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6-08-28  제1603호

  • 국내캠퍼스

    [News] 여호수아처럼, 약속의 땅으로! 여호수아처럼, 약속의 땅으로! 온누리교회 차세대사역본부 여름사역 종료 여름캠프 1만 명, 국내외 아웃리치 1,090명 참가 차세대사역본부가 2026년 여름사역을 종료 했다. 올해 온누리교회 차세대는 약속의 땅을 향한 여호수아의 믿음의 여정을 따라 걸었다. 차세대사역본부 여름사역은 7월과 8월 이어 졌다. 여름 캠프, 아웃리치, QT하고 수박먹자 등 그 내용도 풍성했다. 차세대 여름 캠프에는 국내 13개 온누리교회 캠퍼스 차세대 소속 학 생 1만여 명이, 아웃리치에는 국내 27개 팀 566명, 해외 32개 팀 524명이 참가했다. 예수님의꿈아이(영아부・유아부・유치부)와 꿈이자라는땅(유년부・초등부・소년부) 여름 캠프는 7월 4일(토)부터 8월 9일(일)까지 ‘여호수아, 약속의 땅으로’를 주제로 이어졌다. 온누리교회 각 캠퍼스 본당과 온누리청소년 센터, 이천 자연나라, 포천염광수련원, 피노키 오청소년수련원, 너구리 문화마을 등지에서 열렸다. 성경 퀴즈, 적용 놀이, 체험 활동 등을 했다. 파워웨이브 여름 캠프는 ‘돌파’를 주제로 7 월 17일(금)부터 8월 4일(화)까지 국립평창청 소년수련원, 서해안청소년수련원, 양평숲속작 은나라, 원주힐링파크 등지에서 열렸다. ‘두려 움을 돌파하라’, ‘불가능을 돌파하라’, ‘망설 임을 돌파하라’를 소주제로 찬양과 설교, 주제 강의, 기도회 등을 했다. 차세대 여름 아웃리치는 지난 8월 21일(금) 부터 22일(토)까지 진행된 양재 초등2부 아웃 리치가 대미를 장식했다. 올해 차세대 아웃리 치 국내팀은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담양, 경기 도 부천, 충청북도 보은, 강원특별자치도 홍천 등지에서 노방 전도, 성경학교, 어르신 섬김 등을 했다. 해외 아웃리치는 중국, 캄보디아, 베트남, 일본, 몽골 등지에서 어린이캠프, 노방 전도, 환경 미화 등을 했다. 한편 차세대 슬기로운 방학생활 ‘QT하고 수 박먹자’는 지난 7월 20일(월)부터 8월 15일 (토)까지 진행됐다. QT 교재 <예수님이랑 나랑>, <예수님이 좋아요>, <새벽나라> 와 CGN 퐁당 콘텐츠를 활용해서 개인 QT 및 가족 QT를 했다. 차세대사역본부는 23일(일) ‘QT하고 수박먹자’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수박 간식을 배부한다. 이한비 학생(도곡 파워웨이브 고등부)은 “수 련회의 은혜와 감동을 넘어 아웃리치에서는 또 어떤 새로운 은혜를 경험할지 기대하며 참 여했다”면서 “인도네시아에서 만난 아이들의 미래와 현지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님과 그 가정을 위해 잊지 않고 기도하겠다”고 다짐했 다.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여름 아웃리치 동영상 공모전 및 간증 모집 8월 31일까지 영상 60~90초, 간증 A4용지 1장 미디어사역본부에서 ‘여름 아웃리치 동영 상 공모전’을 개최한다. 8월 31일(월)까지 여 름 아웃리치 영상을 60~90초 분량으로 제작 해서 이메일(onnurismart@gmail.com) 또는 인스타그램 해시태그(#온누리아웃리치2026), 온누리교회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o nnuri.acts29) 태그, 다이렉트 메시지(DM)로 응모하면 된다. <온누리신문>에서는 여름 아웃리치 간증과 사진을 모집한다. A4용지 1장 분량의 간증과 함께 가로형 사역 사진, 작성자 최근 정면 사 진을 이메일(wisdom7@onnuri.org)로 제출하면 8~9월에 순차적으로 게재 한다. 2026년 온누리교회 여름 아웃리치가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다. ‘나를 따르라, 열방을 향 해’를 주제로 이어지는 올해 여름 아웃리치 에는 국내외 346팀 7,298명이 참가했다. 성인 공동체 국내 35팀 1,630명, 해외 55팀 1,126명, 대학청년부 국내 138팀 2,493명, 해외 59팀 959명, 차세대 국내 27팀 566명, 해외 32팀 524명이 열방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 하고 있다(8월 21일 기준). /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성찬용 포도즙 제조 서빙고, 8월 31일과 9월 1일 양재, 9월 1일…교회식당 운영안 해 성찬용 포도즙을 제조한다. 서빙고온누리교회 8월 31일(월)과 9월 1일(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양재온누리교회 9 월 1일(화)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교회 식당에서 제조한다. 이 기간 교회 식당은 운영하지 않는다. 봉사 신청은 하단 QR코드로 하면 된다. 임 직 대상 권사, 남녀 안수집사 후보들이 대상이다. 봉사 시 간 8시간을 인정해 준다. / 홍하영 기자 온누리공동체 하반기 개강예배 온누리공동체 하반기 개강예배를 드 린다. 8월 25일(화)부터 9월 12일(토)까 지 공동체별로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예배를 드린다. 2026년 하반기에도 예수님의 부르심 에 순종하며 제자의 길을 걷는 뜻깊은 행사를 한다. 9월 5일(토)~6일(일) ‘사르 밧 프로젝트’, 25일(금)~27일(일) ‘온누 리M미션 추석 연합수련회 하비스트’, 10월 12일(월)~14일(수) ‘OMC(온누리 사역축제)’, 21일(수)~22일(목) ‘러브소 나타 이와테’, 11월 21일(토)~22일(일) ‘ 엔젤트리(후원참여)’, 12월 19일(토)~20 일(일) ‘성탄주일예배’ 등이 이어진다. / 남현영 기자 hyun0@onnuri.org

     2026-08-22  제1602호

  • 주일강단

    [주일강단] 자유를 섬기는 교회 자유를 섬기는 교회 <누가복음> 4:16~30 / 이재훈 위임목사 ‘ 자유’ 라는 단어는 성경이 들어오고, 기독교적 가치관과 세계관이 들어오면서부터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자유’ 라는 단어는 복음의 전파와 역사를 같이 합니다. 자유는 얻기도 어렵지만, 지키기는 더 어렵습니다. 역사를 보면 자유는 총칼에 빼앗기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자유를 얻은 국민 스스로 자유를 내어준 일이 되풀이되었습니다. 1900년, 독일에서 태어난 유대인사회심리학자 에릭 프롬이 독일의 국민이 투표와 환호로 얻은 자유를 나치 독재자의 손에 넘겨주는 것을 목격한 후, 1941년 <자유로부터의 도피>라는 책을 씁니다. 근대 신분 제도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었지만, 자유를 얻은 국민이 해방감과 함께 고독과 불안을 느끼기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 불안은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 찾아옵니다. 묶여 있을 때는, 통제받을 때는 몰랐던 자유의 무게를 감당할 만한 내면의 힘이 없을 때 사람들은 자유를 짐으로 여기고, 벗으려고 다시 도피한다는 것입니다. 에릭 프롬이 관찰한 도피의 길은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 복종입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책임지는 짐을 강한 지도자에게 넘겨버리고, 그 힘에 기대어 안정을 찾는 것입니다. 둘째, 파괴입니다. 불안의 원인으로 지목된 대상을 미워하고, 부수고, 파괴하는 데서 자신의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입니다. 셋째, 동조입니다. 자기 생각을 버리고 다수가 생각하는 대로 따르며 군중 속에 숨는 것입니다. 1930년대 독일 국민은 이 세 가지 길을 걸었습니다. 독재자에게 열광하고, 어느 한 민족을 증오하며, 다수의 의견이라고 밀어붙이는 사회는 자유로부터 도피하는 사회입니다. 그러므로 자유는 빼앗기기 전에 먼저 버림받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유와 자유로부터의 도피 현상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출 3:14). 아무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존재하는 자유를 가진 분은 하나님뿐입니다. 그러므로 피조물인 인간의 자유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유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유를 버리고, 그 관계를 끊었습니다. 그것을 자유라고 착각했습니다. 스스로 자유를 선포한 첫날 인간은 숨었고, 두려워했고, 불안해했습니다. 뿌리 뽑힌 나무처럼, 자유의 무게를 스스로 지탱할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기댈 곳을 찾았습니다. 성경은 그것을 ‘ 우상’ 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친 인간이 우상에게 도피하는 것입니다. 에릭 프롬과 같은 시대에 같은 어둠을 바라보며 다른 자리에서 길을 찾은 사람이 있습니다. 스위스 신학자 에밀 브루너(Emil Brunner)입니다. 에릭 프롬이 자유를 내어주며 도망치는 인간의 마음을 지적했다면, 에밀 브루너는 자유를 삼키는 국가를 지적합니다. 국가를 구원자로 믿는 순간 우상이 되고, 국민은 그 우상의 종이 됩니다. 국가는 타락한 이 세상에서 불의를 억제하고,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보호할 책임을 하나님께 받은 기관입니다. 국가는 구원자가 아니라 청지기입니다. 국가가 지켜야 할 것은 정의입니다. 그 정의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근거해야 하고, 다수의 합의나 시대 유행이 아닙니다. 또 다른 방향에서 자유는 정의가 지켜야 할 으뜸가는 몫입니다. 자유는 국가가 베푸는 선물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이 이미 각 사람에게 주신 몫입니다. 각 사람을 국가의 부속품으로 만드는 질서는 아무리 정의의 이름을 붙여도 정의가 아닙니다. 국민은 자유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스스로 자유로부터 도피하고, 국가에게 자유를 내어주고, 국가는 자유의 책임을 공의로 지켜주지 못하고 도리어 가져가면서 자신을 구원자처럼 여길 때 전체주의가 피어납니다. 이것이 자유로부터의 도피 현상입니다. 자유로운 나라의 참 성벽은 군대나 헌법 전에, 국가 위에 계시는 하나님을 아는 국민입니다. 자유를 지키는 것은 정의이고, 정의를 완성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정의만으로는 국가가 움직일 수 없고, 자유를 누리지 못합니다. 결국, 사랑이 있어야 하는데 그 사랑은 사람에게서 오지 않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심으로 정의를 이루고, 참된 자유를 당시에는 로마의 지배와 무거운 세금에 눌려 백성들이 정치적 자유를 기다렸습니다. 그들에게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선포하셨으니 얼마나 가슴이 뛰었겠습니까?(18~19절) 사람들은 예수님이 로마를 몰아내는 자유를 가져다줄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낭독에는 그 회당의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할 두 가지가 숨어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이 <이사야> 58장 6절을 추가하셨습니다. 종살이에서 풀려난 백성들이 정작 자신들 곁에 눌려 있는 자를 풀어주지 않는다고 꾸짖으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이사야> 58장과 61장을 연결하시며 “해방 받은 백성이 이루지 못한 일을 이제 내가 이루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유를 얻고도 자유를 나누지 못한 실패의 역사를 이제 자유케 하시는 분이 이루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하나는 <이사야> 61장에 본래 있으나 예수님이 읽지 않으신 말씀입니다. 61장 2절에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며…”라고 되어 있는데, 예수님이 후반부를 읽지 않으시고,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의도가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보복의 날, 곧 심판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보복의 날은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에 속해 있기에 읽지 않으셨고, 예수님이 지금 여신 시대는 원수 갚는 날이 아니라 은혜의 해라는 선언입니다. “오늘 이 말씀이 너희가 듣는 자리에서 이루어졌다!”(21절). 정의와 사랑을 이룰 수 있고, 자유를 우리에게 진정 주시는 분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유를 얻는 방법을 가르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자유 그 자체가 되셨습니다. 한 인격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세상은 정의를 요구하지만, 그 정의를 이룰 힘이 없습니다. 자신을 희생할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은혜의 해를 선포하신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심으로 정의를 이루시고, 우리에게 참된 자유를 주셨습니다. 참된 자유를 지킬 수 있는 사람들 <누가복음> 24장 47절의 ‘ 죄 용서’ 는 자유와 같은 단어입니다. 자유는 죄 사함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인간들이 왜 자유로부터 도피합니까? 그 뿌리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이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려면죄 사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이 참된 자유와 연결됩니다. 복음이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자유는 하나님을 의지할 때 축복이 되고, 하나님을 떠날 때 저주가 됩니다.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던 사람들이 십자가를 통해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을 다시 예배하게 될 때 우상이 필요 없게 됩니다. 우상이 필요 없는 사람들만이 자유로부터 도피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신 것은 자유를 누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굳건히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갈 5:1). “형제들이여, 하나님은 여러분을 부르셔서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를 육체의 만족을 위한 기회로 삼지 말고 도리어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십시오”(갈 5:13).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는 말씀이 자유를 얻게 된 이들에게 주어진 책임입니다. “서로의 자유를 섬기라”는 말씀입니다. 자유케 하신 예수님을 섬기는 사람은 그분이 십자가로 값 주고 사신 이웃의 자유를 함께 섬기게 된다는 뜻입니다. 미워할 권리를 포기하고 용서하는 자유, 자기의 몫을 내어놓고 섬기는 자유입니다. 이 자유를 경험한 사람들이 한 사회의 자유를 지키는 마지막 파수꾼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 참된 자유를 지킬 수 있는 사람들은 바로 그리스도인들, 하나님의 자녀들, 십자가로 진정 자유케 된 이들, 죄 사함을 받은 이들,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만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자유를 섬기는 교회 하나님만을 예배하는 공동체가 존재하는 한 국가는 옳고 그름의 기준을 독점할 수 없습니다. 언제나 전체주의는 교회를 길들이려 했고, 예배하는 교회를 두려워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자유를 섬기는 교회란 자유의 근원이신 하나님만을 예배하고, 어떤 권력과 이념도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서지 못하게 합니다. 예배는 세상을 향한 선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만이 예배받으실 분이요, 국가, 이념, 권력, 다수의 여론, 돈도 우리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선언입니다. 자유를 섬기는 교회는 자유의 무게를 감당할 사람을 키웁니다. 복종의 길에 들어서지 않을 사람, 어떤 지도자도 우상으로 삼지 않을 사람을 키웁니다. 다수에 숨지 않고 진리를 따를 사람을 키웁니다. 자유를 섬기는 교회는 억눌린 이웃을 자유케 하는 일을 섬깁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많은 억눌린 이웃, 이주민들, 탈북민들, 독거인들, 가난한 자, 포로된 자, 눈먼 자, 고통받는 이들, 그들을 돌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유는 빼앗기기 전에 먼저 버림받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그리스도를 믿고, 깨어 예배하며, 자유를 섬기는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6-08-21  제1602호

게시판 처음으로 가는 버튼 게시판 처음으로 가는 버튼 1 2 3 4 5 6 7 8 9 10 게시판 처음으로 가는 버튼 게시판 처음으로 가는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