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강단
[주일강단] 사사기 강해(4) 뜻밖의 선택
사사기 강해(4)
뜻밖의 선택
<사사기> 3:12~17, 27~30
/ 이재훈 위임목사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인물은 “그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받을 만한 사람입니다. 바로 ‘에훗’이라는 사사입니다. 그는 ‘과연 이 사람이 구원자가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사사 에훗은 베냐민 지파였습니다. 베냐민 지파는 가나안 정복에서 기여도가 가장 떨어졌습니다. 또 에훗에 대한 설명을 보면 ‘오른손을 쓰지 못했다’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장애를 비하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시 사람들의 관점으로 볼 때 ‘리더로 합당할 수 없다’는 평가가 들어 있는 표현입니다. 누구나 그 사람이 구원자가 되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더군다나 그가 한 일을 보면 당혹스럽습니다. 그는 모압 왕 ‘에글론’에게 공물을 바치러 갔다가 거짓말로 속이고, 그를 찔러 죽이는 암살을 했습니다. 당황스러운 것은 하나님이 그를 구원자로 세웠다는 것입니다.
뜻밖의 나라를 택하셔서
이스라엘을 징계하셨다
하나님은 뜻밖의 나라를 택하셔서 이스라엘을 징계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또다시 악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그들이 악한 일을 저질렀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모압 왕 에글론을 강하게 해 이스라엘을 맞서게 하셨습니다”(12절).
‘또다시’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옷니엘’이 가져다준 40년의 평온이 끝나자, 이스라엘은 또다시 같은 길을 갔습니다. 죄는 새로운 것이 없습니다. 같은 것을 되풀이할 뿐입니다. 악한 자의 아이디어는 한계가 있습니다. 언제나 거짓이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죄의 줄거리는 이름과 사정만 바뀔 뿐 늘 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스라엘이 어떻게 타락했는지 자세히 기록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단이 사용하는 방법과 인간이 죄를 짓는 방법은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하심은 매번 뜻밖입니다. 매번 다릅니다. 이번에 하나님은 모압 왕 에글론을 강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택, 징계하시는 방법도 뜻밖입니다. 모압은 이스라엘이 두려워하던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손이기 때문에 먼 친척이기도 했고,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올라올 때 모압은 벌벌 떨던 나라였습니다.
대개 하나님이 <사사기>의 역사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징계하실 때 ‘원수의 손에 넘기셨다’, 또 ‘파셨다’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에글론에 대해서만 ‘강하게 하셨다’라고 말씀합니다. 그 나라를 하나님이 강하게 하셔서 약속의 땅으로 들여보내신 것입니다. 모압이 암몬과 아말렉을 끌어모아서 요단을 건너와 종려나무 성읍을 정복했습니다. 종려나무 성읍은 여리고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서 얻은 첫 승리의 땅이고, 여호수아가 저주했던 바로 그 땅을 모압이 차지한 것입니다. 첫 열매의 성읍을 하나님이 징계하시는 도구로 사용하는 민족이 정복하게 하신 것입니다. 모압에 의해서 이루어진 종살이가 18년입니다. ‘구산 리사다임’ 밑에서는 8년이었습니다. 돌이키지 않는 백성들에게는 징계가 점점 길어집니다. 그 18년 동안 어떤 세월을 보냈는지를 15절의 한 단어가 설명합니다. ‘조공’ 혹은 ‘공물’입니다. 히브리어로는 ‘민하’라고 하는데, <레위기>에서 곡물로 드리는 제사, 곧 소제를 드릴 때 쓰는 표현입니다. 하나님께 드려야 할 제물들이 모압 왕에게 바쳐진 것입니다. 백성들이 애써 수고하고 거둔 추수의 곡식들이 모압 왕 에글론에게 조공으로 바쳐졌습니다. 바알을 섬기던 백성들이 에글론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대신 붙든 우상은 우리를 먹여주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거짓으로 풍요를 약속합니다만, 나중에는 공물을 요구합니다. 성공을 섬기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바치게 됩니다. 사람의 인정을 섬기는 사람은 마음의 평안을 바치게 됩니다. 하나님께 드릴 우리의 시간과 마음과 재물과 삶을 우상에게 내어줄 때, 하나님이 허락하신 여리고를 내어주고, 소중한 것을 모두 내어주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또 구원자를 세워 주셨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을 때, 베냐민 지파 게라의 아들인 왼손잡이 에훗을 그들의 구원자로 일으켜 세워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압 왕 에글론에게 바칠 선물을 그를 통해 보냈습니다”(15절).
여호와께 부르짖었다고 하는데, 이번에도 회개의 의미는 아닙니다. 아파서 내는 신음일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또 구원자를 세워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끈질기게 죄로 되돌아가지만, 하나님은 끈질기게 구원자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뜻밖이었습니다. 베냐민 지파는 <사사기> 1장에서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지 못한 지파로 단 한 번 나올 뿐입니다. 내세울 것이 없는 지파입니다. 또 ‘베냐민’이라는 이름 자체가 ‘오른손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오른손의 아들들 가운데 나온 왼손잡이, 히브리어를 그대로 옮기면 ‘오른손이 묶인 사람’이라는 의미도 됩니다.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한데, 오른손이 불편했다고 해석하는 학자도 있고, 어려서부터 왼손을 단련했다고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공통적인 것은 당시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는 흠입니다. 결함입니다. 당시 사람들이 구원자로 기대하던 모습과는 다른 사람이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 근거는 에훗을 조공을 보내는 심부름꾼으로 세운 것입니다. 공물, 조공을 바치는 사람으로 왜 에훗을 선택했을까요? 모압이 경계하지 않을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대개 조공을 바치는 일은 굴욕적입니다. 굴욕적인 일을 할 때 그 나라의 군사령관을 보내겠습니까? 자존심 강하고, 애국심 강한 사람이 조공을 가지고 갈 수 있겠습니까? 그 일에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 사람이 알맞습니다. 상대방이 의심하지 않을 사람, 겉으로 볼 때 싸울 능력이 없어 보이는 사람, 시시해 보이는 사람, 무시해도 될 것 같은 사람이 조공을 들고 갑니다. 그래야 모압 왕도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이 의심하지 않을 한 사람이 에훗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들이 선택하지 않은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다윗도 그렇게 선택되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뜻밖의 선택을 통해 행하고자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봐야 합니다. 사람들의 선택에서 밀려나는 이가 하나님의 선택에서도 밀려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뜻밖의 선택을 통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지혜로운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택하셨고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셨습니다”(고전 1:27).
우리는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하면서 그 방법까지 정해 드리려고 합니다. 옷니엘 같은 사람을 계속 기대합니다. 내가 알아볼 수 있는 길을 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눈길을 주지 않은 사람, 우리가 부끄러워하던 약함, 또 닫힌 것 같았던 길에서 뜻밖의 선택으로 일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에훗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러나 그의 방법을
인정하시거나 칭찬하신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방법을 인정하시거나 칭찬하신 것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 16절에서 26절까지 에훗이 칼을 직접 만들어 오른쪽 허벅지 옷 속에 찹니다. 오른손잡이라면 주로 왼편에 칼을 찹니다. 왕의 경호대가 몸을 수색했다면 왼쪽을 집중적으로 살폈을 것이고, 오른쪽에 칼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는 오른편 다리에 칼을 숨겨서 들어갔습니다. 조공을 바치고 일행과 함께 돌아가다가 다시 길갈 근처에서 발길을 돌려 “왕에게 은밀히 아뢸 말이 있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되돌아갔습니다. 왕은 그를 믿고 신하들을 내보냈습니다. “은밀히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왕에게 아뢸 일이 있습니다”라는 말에 속아 신하들을 물러가게 한 것입니다.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대하고 의자에서 일어났는데, 에훗이 가져온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칼이었습니다. 그는 왼손으로 오른쪽 허벅지에서 칼을 뽑아 왕의 몸을 찔렀습니다. 그동안 조공을 받아서 살쪘던 왕의 몸이 공물이 되고, 제물이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특이한 점은 하나님의 이름이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옷니엘에게 임했던 여호와의 영이 에훗에게 임했다는 언급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신 방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짓과 부정을 칭찬하지 않습니다.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우리가 적을 물리치면 되는 것 아닌가?’라는 사고방식을 하나님은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교회 역사에서 에훗의 이름을 앞세워 칼을 든 사람들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 주석가들은 분명하게 선을 긋습니다. 에훗은 왕이 없던 시대에 주어진 부르심이었고, 그의 방법까지 하나님이 인정하신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똑같은 일을 함으로써 나도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더 넓게 보면 처음부터 없어도 되는 칼이었습니다. 만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 앞에 충성되었다면 에글론이 여리고를 정복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에훗이 암살하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사사기>에 나타나는 폭력과 잔인함은 하나님을 떠나 있는 상황에서 일어나는 반복되는 죄악입니다. 그 상황에서 일어나는 일을 삶의 모델이나 원리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굽어 있는 막대기로도 곧은 줄을 그을 수 있는 분입니다. 줄이 곧게 그어졌다고 해서 그 막대기가 반듯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어지러운 상황 가운데 나타나셔서 굽은 막대기로도 역사하심을 이루십니다. 그러나 굽어 있는 것 자체를 하나님이 인정하시지는 않습니다.
또 에글론 같은 이는 하루 만에 무너졌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만일 당시 사람들이 지도자를 고른다면 에글론 같은 사람을 고를 것입니다. 부유하고 강하고, 여러 나라를 자기 밑에 모을 줄 아는 사람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이 치시면 한순간에 무너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에글론이란 이름은 ‘송아지’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하나님께 드릴 제물을 받아먹고 살찐 송아지가 되어 스스로 제물처럼 쓰러진 것입니다.
<시편> 2편 4절에서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악에 무심하셔서 웃으신다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할 것같이 생각했던 이 세상의 악의 권세가 얼마나 헛되게 무너지는지를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는 뜻밖의 선택이었다
“그가 그곳에 도착해 에브라임 산지에서 나팔을 불자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를 앞장세우고 그와 함께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에훗이 말했습니다. ‘나를 따르라. 여호와께서 너희 원수인 모압 사람들을 너희 손에 주셨다.’ 그래서 그들은 그를 따라 내려가서 모압으로 가는 요단강 나루터를 차지하고 아무도 건너지 못하게 했습니다”(27~28절).
여기서 처음으로 여호와의 이름이 나옵니다. 그는 자기가 왕을 죽였다고 말하지 않고, “여호와께서 넘겨주셨다”라고 말합니다. 모압의 왕은 이미 쓰러져 있었습니다.
에훗은 이제 백성을 이끄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 백성들을 80년 동안 평온하게 이끄는 지도자가 되고, 하나님이 그 백성들을 긍휼히 여겨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사기> 4장에서 에훗이 죽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또다시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하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끊임없는 악행의 반복, 에글론이라는 악한 왕은 무너뜨렸지만, 그 백성들의 마음의 우상은 사사들이 제거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마음에 있는 우상, 끊임없이 악순환을 만들어내는 우상을 어떻게 끊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에훗에서 끝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진정한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야 끝이 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선택이었습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는 에훗보다 뜻밖의 선택으로 오신 분입니다. 베냐민 지파에서 무슨 구원자가 날 것인가 사람들이 의아했던 것처럼,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이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며 고향 사람들마저 그를 인정하지 않았고, 형제 야고보도 “미쳤다”라고 말했던 뜻밖의 선택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칼을 든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로마를 몰아내 로마 황제를 칼로 찔러 죽이고, 그 나라를 해방해 줄 구원자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구유에 누이신 아기를 보내셨고, 헤롯의 핍박으로 도망 다니고 피해 다니는 연약한 모습의 구원자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뜻밖의 선택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였습니다. 원수를 칼로 찔러 죽이는 에훗과 달리, 예수님은 칼을 든 베드로에게 “도로 꽂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에훗은 원수의 몸을 찔렀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몸에 그 칼을 맞으셨습니다. <사사기>의 구원자는 원수를 찔러서 백성을 건졌지만,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는 원수에 의해서 찔림을 받음으로 원수까지 구원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뜻밖의 선택이었습니다.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헬라인에게는 어리석은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의 지혜보다 더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더 강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기대했던 구원자와 정반대의 모습이었습니다. 큰 승리가 아니라 완전한 패배로 백성을 구원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에글론이 하루 만에 구경거리가 되었듯이, 죄와 죽음과 사단의 권세가 십자가에서 구경거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밖의 선택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구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주시면서 선택하신 사람들이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우리가 아직 원수 되었을 때,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파서 부르짖고 신음하지만 진정 돌이키지는 않았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힘들어서 부르짖는 것이지, 진정 회개하며 부르짖는 모습을 거의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예상하지 못한 은혜로, 뜻밖의 선택으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뜻밖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천국 문에 이르러 구원받은 사람의 이름으로 불려질 때, 천사들이 질문할 것입니다. 그때 우리의 대답은 한 가지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택함을 받은 사람들에게 복음의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질 것입니다. 원수를 싸워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나를 따르라”는 음성이 들릴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뜻밖의 선택을 하셨습니까?
“이는 어떤 육체라도 그분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고전 1:29).
사람들이 보기에 구원자가 될 만한 사람을 세웠다면 그 사람이 영광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뜻밖의 사람을 통해 구원이 오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뜻밖의 선택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뜻밖의 선택으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의 선택에는 후회가 없고, 모든 것을 행하시는 능력이 있습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