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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신앙에세이] 매일 ‘만나’ 신앙에세이 매일 ‘만나’ 사역하면서 내 안에는 늘 ‘영적으로 어떻게 성장해 나가고 있는가?’라는 한 가지 물음이 자리하고 있었다. 여러 사역 일정 속에서 바쁘다는 이유로 정작 내 영혼에 필요한 말씀을 깊이 누리지 못할 때가 많았다. 말씀을 읽어야겠다는 마음은 분명히 있었지만, ‘바쁘니까 나중에 하자’라는 핑계가 늘 따라다녔다. 올해 여름, 파워웨이브 친구들과 함께 캠프와 아웃리치를 다녀온 뒤에 학생들 안에 하나님을 향한 더 깊은 갈망이 샘솟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양 떼를 맡은 목자라면 내가 먼저 말씀 앞에 서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말씀 읽기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파워웨이브 친구들에게 선언했다. “매일 만나서 말씀 읽자!” 선언하고 나니 여러 두려움이 밀려왔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내 신앙에도 성장을 위한 돌파가 필요했고, 그 중심에는 반드시 말씀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말씀 통독 모임의 이름을 ‘매일 만나’라고 지었다. 이 이름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있다. 첫째,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40년을 지나 가나안 땅에 이를 수 있었던 이유처럼,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날마다 필요한 만큼 공급되는 만나의 은혜를 누리는 삶이다. 둘째, 말 그대로 매일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서로 만나서 말씀을 읽는 시간이다. 이 두 가지를 소망하며 ‘매일 만나’를 시작했다. 학생들이 학원에서 돌아오는 시간인 밤 10시 30분에 모여 라이브 방송을 켜고, 신약 성경부터 매일 3장씩 소리 내어 읽기로 했다. 성경 속 다양한 인물들을 떠올리며 각 캐릭터에 어울리는 목소리를 연기하다 보면 혼자 읽을 때보다 훨씬 재미있고, 인물들의 마음을 더 생생하게 느끼며 말씀을 읽게 된다. 학생들도 혼자서는 힘들었는데 함께 읽는 이 모임 덕분에 성경이 훨씬 흥미롭고 가깝게 느껴진다고 고백했다. 말씀을 다 읽고 난 다음에는 짧은 강해와 함께 묵상 나눔과 질문을 올리는 시간을 가진다. ‘질문이 많이 나올까?’라는 우려와 달리 아이들의 수많은 질문으로 좀처럼 대화가 끝나지 않는다. 놀랄 만큼 깊이 있는 묵상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질문들에 오히려 내가 당황하고 배울 때가 많다. 열정적으로 나누다 보면 어느덧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솔직히 말하면 ‘매일 만나’를 시작한 이후 늦게 자니까 몸은 피곤하다. 때로는 퇴근 후 깜빡 잠들었다가 늦게 시작하는 날도 있었다. 그런데도 매일 말씀을 읽고 함께 묵상하며 삶에 적용하기로 결단하니까 영이 살아나고, 마음은 더욱 기쁨으로 충만해진다. “그분이 너희를 낮추시고 배고프게 하셔서 너희나 너희 조상들이 전혀 알지 못했던 만나로 먹이신 것은 너희를 겸손하게 하여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임을 가르쳐 주시려는 것이었다”(신 8:3).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할 때 하나님은 딱 하루 치 만나만 내려주셨다. 욕심을 부려 이틀 치를 쌓아두면 상해서 먹을 수 없게 하셨다. 그래서 날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필요한 은혜를 공급받을 수밖에 없었다. 만나를 하루 치만 주신 이유는 분명하다. 바로 날마다 하나님이 우리를 먹이시고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신뢰하게끔 하기 위한 훈련이다. 우리는 매일 밥을 먹는다. 육체의 배고픔은 쉽게 놓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혼의 배고픔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어느 순간부터 조금 굶겨도 괜찮은 듯 여기고, 때로는 아예 배고픔을 잊고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너희는 나의 말씀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밥을 먹듯이 말씀을 매일 먹어야 살아갈 수 있다”고. 오늘 하루도 우리를 살리는 만나를 주실 하나님을 기대한다. / 이형목 목사(차세대파워웨이브)

     2025-12-13  제1568호

  • 주일강단

    [주일강단] 성육신2. 자신을 비우신 하나님의 겸손 [주일강단] 성육신2. 자신을 비우신 하나님의 겸손 <빌립보서> 2:5~11 /이재훈 위임목사 사도 바울이 여러 지역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은 ‘예수님의 성육신하심’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임하신 예수님을 증거했던 사도 요한 같이, 사도 바울은 또 다른 표현과 언어로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성육신의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의 여러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면서도 성육신을 기억하고,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고 강조합니다. 빌립보교회는 다툼과 분열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2장에서는 어떻게 한 마음 한 뜻으로 하나 될 것인지를 교훈하는데, 성육신에 관한 진리의 말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툼과 분열로 얼룩진 상황의 해결책은 성육신하신 예수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분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여러 문제를 만나지만, 그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해결책은 언제나 마음에 초점이 있습니다. 타락한 우리의 옛 마음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고,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주신 새 마음을 품는 것이 인생의 많은 문제에 대한 해결책입니다. 사람은 법과 제도를 통해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보고, 사람들을 찾으며 해결하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새 마음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는 것은 우리에게 없는 것, 우리 바깥에 있는 것, 우리가 생각하고 상상하지 못했던 것을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성육신하신 예수님 안에 있는 마음을 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1장 27절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말씀했는데,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생활도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것으로 가능합니다.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마음 성육신의 놀라운 신비와 축복은 ‘어떻게 영이신 하나님이 인간의 육을 입을 수 있느냐’가 아닙니다. 그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에 비하면 놀라운 게 아닙니다.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피조물의 몸을 입으셨다는 것은 창조의 신비와 능력에 비하면 놀라운 게 아닙니다. 우리가 놀라워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 자기를 비우시고 겸손하게 낮아지신 그 마음입니다.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마음, 하나님이 사람이 되심으로 자기를 비우신 그 겸손한 마음이 놀라운 것입니다. 본래 하나님이신 그분, 온전히 영광을 가지신 그분이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여기신 그 마음이 놀라운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군가 자신을 인정하지 않거나 무시하면 분노합니다. 인격이 모독 받을 때는 더욱 분노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여기는 일에 매우 서툽니다.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신 분이 자신을 비우시며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놀라워해야 합니다. ‘육신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셨다’는 것도 놀라운 사실이지만, 그 마음, 하나님의 겸손을 더 놀라워해야 합니다. “그는 본래 하나님의 본체시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왜 바울은 간단하게 ‘하나님’이라고 표현하지 않았을까요? “그는 본래 하나님이십니다”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닌데, 왜 ‘하나님의 본체시다’라는 문장을 덧붙였을까요? 바울이나 빌립보 성도들도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은 분명히 믿고 있었을 것입니다. 단순히 ‘하나님’이라고 표현했다면, 그 다음에 나오는 ‘자신을 비우셨다’는 표현으로 연결되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강조할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이신 그분이 포기하신 것을 강조할 것인지 선택해야만 했을 것입니다. 그분이 하나님이심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편지를 쓰는 사람이나 편지를 받는 빌립보 성도들도 의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바울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그분이 자신을 비우신 겸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하나님의 본체’라고 설명함으로써 자신을 비우신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아담의 길과 그리스도의 길 그렇다면 무엇을 비우셨다는 것입니까? 하나님 되심은 비울 수가 없습니다. 본성은 버리거나 비울 수 있는 성격이 아닙니다. 그래서 무엇을 비웠는가를 설명하기 위해서 ‘하나님과 동등 됨을 기득권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하나님과 동등 됨을 기득권으로 여기지 아니하셨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님과 동등 됨을 탈취하려고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창세기> 3장에서 인간 타락의 본질은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했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 권리를 탈취하고자 했던 사건이 바로 인간의 타락입니다. 바울은 태초에 인간의 타락과 예수님의 모습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길과 그리스도의 길을 대조하는 것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처럼 높아지려고,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려다가 타락 해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등하신 그분은 아담처럼 취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를 비우심으로 낮아지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을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으로 높이시고, 주님으로 고백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동등 됨을 탈취하려다가 추락한 인간의 모습과 하나님과 동등 된 그분이 아담이 탈취하려고 했던 것을 스스로 내려놓으시고 자신을 비우심으로 하나님이 세우시는 두 갈래 인생길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스스로 끊임없이 높아지려고 했다가 끊임없이 추락하는 인생과 끊임없이 자신을 낮추심으로 하나님이 세우시는 인생입니다.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 그 본성은 비워지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으로서 누릴 수 있는 기득권이라고 표현해도 좋고, 권리라고 표현해도 좋은데, 그것을 전혀 주장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단이 광야에서 예수님을 유혹한 본질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권리를 왜 주장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신적인 권리와 기적을 통해서 자신을 보호하고 영광을 나타내면 될 텐데, “왜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하냐?”며 유혹한 것입니다. “십자가 없이 하나님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네가 왜 고난을 받느냐, 불필요한 것 아니냐”는 게 사단의 유혹 본질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의 모든 권리, 받으셔야 되는 영광을 내려놓으셨습니다. 본성이 사라진 게 아니라 하나님의 본체로서의 영광을 내려놓으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영광을 온전히 가지신 분은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여기셨는데, 하나님 아니면 가치를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은 스스로 하나님 없이 위대한 존재가 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다툼과 분열, 많은 죄악의 모습이 나타난 것입니다. 자신을 비우시고 취하신 세 가지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등 된 분으로 자신을 비우시고 취하신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종의 형체를 가졌습니다. ‘종의 형체’라는 단어를 육체적인 모습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종으로 여기셨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관점과 태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권리만 가지고 의무가 없으신 하나님이 권리는 없고 의무가 있는 종으로 자신을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체이신 분이 자신을 종의 형체로 간주하시고 여기셨습니다. 둘째, 사람의 모양이 되셨습니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되셨다'입니다. 단순 과거입니다. 단회적 사건이 취소되지 않고 영원히 지속되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이것을 믿기 어려워서 잠시 육체가 되셨다가 다시 돌아가셨다는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성육신은 잠시 사람이 되셨다가 되돌아가신 게 아닙니다. 성육신하신 존재로 계속 존재하시는 것입니다. 그 몸으로 십자가에 죽으셨고, 그 몸으로 부활하셨고, 승천하셨고, 다시 오실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몸으로 죽게 되고 부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모양이 되셨다는 것은 인간의 본성으로 변질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여전히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완전한 사람이 되신 것이 성육신입니다. 셋째,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취하셨습니다. 죽음이라는 단어는 원래 하나님에게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완전한 사람이 되셨기에 하나님의 본성을 가지신 분이 완전한 사람으로서 죽으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성은 자신을 비우시고, 고통과 십자가의 죽음을 감당하시고 인내하시는 데 사용하셨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예수님이 자신을 비우셨을 때, 철저하게 자발적으로 낮아지는 겸손한 마음이었다는 점입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라 의식적,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헌신이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겸손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humility’와 모욕 혹은 굴욕을 의미하는 ‘humiliation’이 같은 단어는 라틴어 ‘humilitas’에서 나왔습니다. 왜 같은 단어에서 전혀 다른 의미가 되었을까요? 이것을 구분하는 기준이 자발성에 있습니다. 힘든 일을, 고난을 자발적으로 선택해서 한 것은 겸손이지만, 원하지 않는데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면 그 고난의 깊이만큼 굴욕을 느끼게 됩니다. 똑같은 일임에도 하나는 겸손이 될 수 있고, 하나는 굴욕이 될 수 있습니다. ‘humilitas’라는 라틴어는 ‘humus’라는 흙, 먼지라는 단어에서 나왔습니다. 인간이 흙으로 지어졌다는 것입니다.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기억할 때 겸손이 이루어집니다. 이것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으면 굴욕을 느끼게 됩니다. 아담이라는 단어도 ‘아다마’라는 히브리어, 흙이라는 뜻입니다. 인간의 생명을 지탱하는 모든 미네랄 성분이 흙에서 나온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인간의 생존을 위해서 만들어 주신 것을 취해야만 우리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후회하지 않는, 지속적인 헌신 “누가 내게서 생명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내놓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내놓을 권세도 있고 또다시 얻을 권세도 있다. 이 계명은 내가 내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것이다”(요 10:18). 그분의 자발적인 헌신은 ‘후회하지 않는 헌신’입니다. 돌이킬 마음이 없는 지속적인 헌신입니다. 예수님이 자발적으로 자신을 비우게 한 힘은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에서 왔습니다. 성육신하신 예수님은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경외심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나는 아버지께 들은 대로만 심판하기 때문에 내 심판은 공정하다. 이는 내가 내 뜻대로가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기쁘게 하려 하기 때문이다”(요 5:30). “아무것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라는 것은 의지와 능력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모든 의지와 능력이 아버지하나님의 뜻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군중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군중을 기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자신을 맞추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에 초점을 맞추고, 그분을 경외할 따름이었습니다. 어떤 일이든지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게 동기라면, 반드시 그만두게 될 것입니다. 또 아무 런 열매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을 기쁘시게 하려는 예수님의 겸손과 낮아짐이 있을 때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자신을 비우신 겸손으로 낮아지셨을 때 하나님은 그분을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시고, 모든 무릎을 그분 앞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술로 그분을 주님으로 인정하고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세주(Savior)가 되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주님(Lord)이 되시는 것입니다. 성육신하심으로 자기를 비우신 겸손으로 죽기까지 우리를 대신해 죽으셨으니, 그분이 곧 우리의 주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기 위해 성육신하신 예수님을 하나님이 지극히 높여 주님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분을 주님으로 온전히 고백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온전히 고백하고 살아간다면 우리에게 주어지는 축복은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마음이 품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십니다”라고 온전히, 철저히, 꾸준히 삶 속에서 인정할 때 그리스도의 성육신하신 겸손의 마음이 우리 안에 임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성육신이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보여주는 하나님의 원리입니다. 이 축복을 누리십시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5-12-13  제1568호

  • 성인

    [<생명의 삶> QT 프리뷰(preview)] 사명 완수에 따르는 안식 [&lt;생명의 삶&gt; QT 프리뷰(preview)] 사명 완수에 따르는 안식 12월 15일~21일까지 &lt;여호수아&gt; 19:1~22:9 묵상포인트 1: 제비뽑기로 땅 분배를 마치니, 마침내 가나안 땅이 이스라엘의 소유가 된다. 땅 분배가 마무리되자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도피성을 정하라고 명하신다. 도피성을 여러 곳에 두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묵상하자. ▶시므온 지파는 분깃이 많은 유다 지파 기업 중에서 그 가족대로 제비를 뽑아 기업(유산)을 받는다. 스불론, 잇사갈, 아셀, 납달리, 단 지파가 차례로 기업을 받는다. 단 지파는 자신들의 경계를 확장해 헤르몬산 부근의 레셈을 점령하고 단이라 이름을 붙인다. 마지막으로 정복 전쟁과 땅 분배를 주도했던 여호수아에게 딤낫세라를 기업으로 준다. 하나님은 실수로 살인한 자를 보호하기 위해 도피성을 정하라고 명하신다. 이 성읍으로 도피한 자는 재판을 받기까지, 또는 당시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거기서 살아야 한다. 대제사장이 죽은 뒤에야 그는 자기 성읍으로 돌아갈 수 있다. 이는 대제사장의 죽음이 살인자의 속죄와 연결됨을 의미한다. 묵상포인트 2: 레위 지파는 땅 분배에서 제외되었다. 하나님이 그들의 기업이 되시기 때문이다. 여호수아는 레위 사람에게 성읍과 목초지를 분배한다. 레위 사람을 위해 이스라엘 자손이 어떤 희생을 감수하는지, 하나님이 레위 사람을 흩으신 이유는 무엇인지 묵상하자. ▶레위 족장들이 여호수아와 지도자들에게 나아와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자신들이 거주할 성읍과 목초지를 달라고 요청한다. 이스라엘 자손은 레위 사람을 위해 기꺼이 자기 기업에서 성읍과 목초지를 내준다. 레위 사람이 거주할 성읍 역시 제비뽑기로 정해진다. 아론 자손이 속한 고핫 자손에서부터 시작해 게르손 자손, 므라리 자손에게 성읍과 목초지를 분배한다. 레위 사람을 위한 분배까지 마무리하니 이스라엘은 바라던 안식을 누리게 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편이 되어 싸워 주시니 이스라엘과 맞서는 이가 없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하신 선한 말씀이 하나도 남김없이 다 이루어진 것이다. 묵상포인트 3: 가나안 땅의 정복과 분배가 완료되자 여호수아는 요단 동쪽에서 기업을 분배받은 지파들을 돌려보낸다.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를 향한 여호수아의 칭찬은 어떠했는지, 그들에게 하는 당부의 말은 무엇인지 묵상하자. ▶요단 동쪽에서 이미 기업을 분배받은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는 앞장서서 가나안 땅 정복 전쟁에 참여해 모세와의 약속을 지켰다. 여호수아는 그들을 요단 동쪽 소유지로 돌려보내며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고,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라고 당부한다. 그리고 탈취한 전리품을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그들의 형제들과 나누라고 한다. 적용을 위한 가이드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 분배가 완결된 후에야 자기 몫의 땅을 받았다. 공동체를 위해 책임감 있게 사명을 완수하는 사람이 되자. 또한 우리나라의 지도자들이 자기 유익이 아닌 국민의 유익을 위하는 자들이 되길 기도하자. ▶실수로 지은 죄와 고의로 지은 죄를 구별하고, 내게 주어진 자리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하자. ▶하나님은 그분을 위해 봉사하는 레위 사람들에게 합당한 필요를 채우신다. 전임 사역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잊지 말자. ▶하나님이 내게 주신 선물들 중 지체들과 나눌 것들을 생각하고 실천하자. ▶올 한 해 성취된 하나님의 선한 약속은 무엇인가? 나는 신실하지 못할 때가 많았지만, 한결같은 신실함으로 은혜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하자. / &lt;생명의 삶&gt; 편집부

     2025-12-12  제15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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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 낮은 곳, 더 낮은 곳으로! 낮은 곳, 더 낮은 곳으로! 대학청년부 겨울사역&lsquo;사랑愛나눔&rsquo;,&lsquo;크리스마스 블레싱&rsquo; 홀몸 어르신, 다문화가정, 차상위계층, 지역 교회, 군부대 등 섬김 올겨울에도 온누리교회 대학청년부 소속 청년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들고 낮은 곳, 더 낮은 곳으로 간다. 2025 대학청년부 겨울사역이 막 올랐다. 지난 12월 6일(토)부터 &lsquo; 사랑愛나눔&rsquo; 이 시작됐고, 12월 20일(토)부터 &lsquo; 크리스마스 블레싱&rsquo; 이 이어진다. &lsquo;사랑愛나눔&rsquo; 은 서울 시내 주민센터, 복지관, 지역 교회 등과 함께 홀몸 어르신, 다문화 가정, 차상위계층 등에 식료품과 생필품을 전달하는 사역이다. 온누리교회 이름 대신 지역 교회와 기관 이름으로 이웃들에게 선물을 전달한다. 올해 &lsquo; 사랑愛나눔&rsquo; 에는 온누리교회 대학청년부 소속 청년 1,100명이 참가할 예정이다. 이웃 1,075가구를 방문할 계획이다. &lsquo;크리스마스 블레싱&rsquo; 은 지역 교회와 군부대, 그룹홈, M센터 등지를 방문해서 아기 예수 탄생의 기쁨을 이웃들과 함께 나누는 사역이다. 올해 크리스마스 블레싱은 서울시 서초구, 강동구, 은평구, 경기도 고양시, 안산시, 파주시, 충청북도 단양군, 음성군, 옥천군, 경상남도 진주시, 산청군, 하동군 등 30여 개 지역에서 한다. 이웃 초청 잔치, 어린이 성경학교, 마을 전도, 이주민 연합 크리스마스 예배, 군장병 초청집회, 자립준비청년 멘토링, 새벽송, 성탄 전야제 행사, 노방찬양 등을 한다. 지난해 &lsquo; 사랑愛나눔&rsquo; 에는 온누리교회 대학청년부 소속 청년 955명이 참가했다. 서울 시내 주민센터, 복지관, 지역 교회 등과 연합해서 이웃 1,185가구에 쌀과 김치, 생필품을 전달했다. &lsquo; 크리스마스 블레싱&rsquo; 에는 온누리교회 대학청년부 소속 청년 2,324명이 전국 23개 지역 교회, 군부대, M센터 등지를 찾아가 이웃 초청 잔치, 어린이 성경학교, 마을 전도 등을 했다.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quot;이웃과 함께&ldquo;메리 크리스마스&rdquo; &#39;온누리의 크리스마스 2025&rsquo;, &lsquo;열린순예배&rsquo; 온누리교회가 이웃과 함께 메리 크리스마스를 보낸다. &lsquo; 온누리의 크리스마스 2025&rsquo; 와 &lsquo;열린순예배&rsquo; 가 이어진다. &lsquo;온누리의 크리스마스 2025&rsquo; 는 예수님 탄생을 축하하며 성도들이 만든 그림과 사진으로 이웃들에게 마음을 전하는 크리스마스 축제다. 이벤트에 참여한 60명을 선발해서 그 성도들의 이름으로 자립준비 청년들에게 크리스마스 쿠키와 카드를 전달한다. 축제에 참여하기 원하는 성도들은 크리스마스 카드(그림, 캘리그래피, 사진, 디지털 아트 등)를 직접 만들어서 제출하면 된다. 인스타그램 DM이나 해시태그(#온누리의크리스마스2025), 이메일(onnurismart@gmail.com), 우편(서울 용산구 이촌로 347-11 온누리교회 본관 지하 1층, 소셜 네트워크 팀 이경희 사역자) 중에서 한 가지 방법을 선택하면 된다. 온누리교회 모든 공동체와 순에서 연말까지 &lsquo;열린순예배&rsquo; 를 기획하고 실행한다. 여러 사정으로 순예배에 참석하지 못했던 성도나 마음에 품고 기도하던 가족과 친구, 직장 동료 등을 초대해 영화관, 음식점, 카페 등에서 자유롭게 순예배를 드리면 된다. 2025 성탄 예배는 12월 24일(수)과 25일(목) 드린다. 수요목양예배 &lsquo; 크리스마스 페스티벌&rsquo; 은 12월 24일(수) 오후 7시 30분 서빙고온누리교회 본당에서 열린다. 성탄찬양예배는 12월 25일(목) 온누리교회 각 캠퍼스에서 드린다. 서빙고 기준 1부 오전 9시, 2부 11시 30분, 3부 오후 1시 50분에 본당에서 드린다. / 홍하영 기자 CGN 다큐 영화 &lsquo;무명(無名)&rsquo;수상 제17회 한국기독언론대상 해외선교부문 최우수상 CGN이 제작한 다큐 영화 &lsquo; 무명(無名)&rsquo; 이 한국기독언론인연합회(CJCK)가 주최한 &lsquo;2025 한국기독언론대상 해외선교부문 최우수상&rsquo; 을 수상했다. 12월 4일(목) 새문안교회 언더우드홀에서 시상식이 있었다. 현재 영화 &lsquo; 무명(無名)&rsquo; 은 영화 1:1 결연 캠페인 &lsquo; 무명(無名)의 복음 릴레이&rsquo; 와 &lsquo; 찾아가는 상영회&rsquo; 로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lsquo; 무명(無名)의 복음 릴레이&rsquo; 는 후원금 1만 원당 1명의 선교사가 영화 &lsquo; 무명(無名)&rsquo; 을 볼 수 있도록 CGN이 초대하는 캠페인이다. &lsquo; 찾아가는 상영회&rsquo; 는 미자립교회 목회자와 성도, 재소자, 해외 선교사와 한인 디아스포라를 위해 지역 교회나 교도소, 지역 영화관 등지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캠페인이다. 문의: 02-3275-9363 / 홍하영 기자 온누리교회 장로 64명 장립 2025 장로장립예배 명예장로 3명, 시무장로 61명 온누리교회 신임 장로 64명이 세워졌다. 12월 6일(토) 오후 4시 서빙고온누리교회 본당에서 &lsquo; 2025 장로장립예배&rsquo;를 드렸다. 명예장로 3명, 시무장로 61 명이 장립됐다. 2025 장로장립예배는 당회서기 이인용 장로 대표기도, 장로합창단 특별찬양, 한기채 목사(중앙성결교회) 설교, 최이정 장로 장립자 간증, 합심기도, 서약, 세족식, 이재훈 위임목사 안수기도 및 선포, 이재규 장로 권면, 크룩스 특순, 선물 증정, 장로의 기도와 답가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신임 장로들은 &lsquo; 2025 장로사관학교&rsquo;를 수료하고, 노회에서 치른 장로고시를 통과했다. / 홍하영 기자 NGO 더멋진세상, 스리랑카 사이클론 피해 지역 긴급구호 NGO 더멋진세상이 스리랑카 사이클론 &lsquo; 디트와(Ditwah)&rsquo; 피해 지역에서 긴급구호를 한다. 스리랑카는 현재 저지대와 산간지역을 중심으로 대규모 침수, 건물 붕괴, 연쇄적 산사태가 발생해서 일상이 마비된 상황이다. NGO 더멋진세상은 스리랑카 수재민들에게 식수, 식품, 위생용품 등 긴급구호 물품을 지원하고, 치료와 전염병 예방을 위한 의약품을 지원하고 있다. 스리랑카 사이클론 디트와 피해 지역 긴급구호에 동참하고자 하는 성도들은 NGO 더멋진세상 후원계좌(하나은행 573-910009-09905)로 후원금을 보내면 된다. 문의: 02-2271-2246 / 홍하영 기자

     2025-12-06  제1567호

  • 주일강단

    [주일강단] 성육신1. 말씀이 육신이 되어  성육신1. 말씀이 육신이 되어 &lt;요한복음&gt; 1:14~18 /이재훈 위임목사 복음의 가장 중요한 진리 두 가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입니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 먼저 믿고 깨달아야 될 진리가 바로 &lsquo;성육신의 진리&rsquo;입니다. 성육신하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기에 우리에게 구원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성육신하신 몸이 죽으셨고, 부활하셨기에 그분의 생명이 우리에게 주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역사의 특별한 의미와 우리의 구원과 생명의 진리가 되는 것은 그분이 성육신하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lsquo;성육신&rsquo;이라는 단어 자체는 나오지 않습니다. 영어로 &lsquo;Incarnation&rsquo;이라는 단어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는데, &lsquo;육체가 되다&rsquo;라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 14절에서 &ldquo;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rdquo;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lsquo;말씀&rsquo;은 &lt;요한복음&gt; 1장 1절에 나옵니다. &lt;요한복음&gt; 1장 1절에서 &ldquo;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모든 것이 그 말씀을 통해 지음을 받았고 그 말씀 없이 된 것은 하나도 없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이 태초에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육신이 되셨습니다. &lt;요한복음&gt;에서 &lsquo;말씀&rsquo;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헬라어 &lsquo;로고스(Logos)&rsquo;입니다. 당시 헬레니즘을 이룬 스토아철학의 중심 체계에 있었던 단어입니다. 스토아철학을 따랐던 사람들은 우주를 움직이는 절대적인 이성, 보편적인 이성, 질서와 체계를 만드는 이성적 존재가 있다고 믿었고, 그 이성을 로고스라고 불렀습니다. 한편, 유대인들이 이루었던 헤브라이즘(Hebraism), 히브리에서는 만물을 다스리는 지혜를 &lsquo;호크마&rsquo;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지혜, 호크마를 사용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lt;요한복음&gt;에서 &lsquo;호크마&rsquo;라는 단어 대신 &lsquo;로고스&rsquo;를 사용한 이유는 누구를 대상으로 쓰인 책이냐에 의해 설명됩니다. 헬라 문화에 익숙한 유대인을 전도하기 위해, 그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기 위해 쓰인 책이기 때문에 히브리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로고스라는 헬라 단어를 사용한 것입니다.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몸을 취하신 &lsquo;성육신&rsquo; &lt;요한복음&gt; 1장에서 만물을 창조하신 그 말씀, 로고스이신 분이 왜 육신이 되셨는지를 설명합니다. 중요한 것은 &lsquo;왜 이 말씀이 육신이 되셨는가?&rsquo;입니다. 태초에 만물을 창조하신 분과 동일한 말씀이 타락한 만물을 새롭게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태초에 만물을 창조하신 그 말씀이신 분이 만물을 구원하신 일을 행하십니다. 인간이 처한 비참한 상황 때문입니다. 만물이 처한 곤경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 인간에게 이성을 넣어 주셨습니다. 그분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고, 말씀이신 그분을 반영하는 존재, 그분과 대화하고 교제할 수 있는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써 사망의 법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금하신 열매를 먹고, 불순종하는 날에는 &ldquo;정녕 죽을 것이다&rdquo; &lsquo;말씀&rsquo;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으로 인해서 인간에게 죽음이 찾아온 것이고, 인간은 사망의 법아래 속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말씀을 결코 취소하실 수 없는 분입니다. 그 말씀을 취소하시지 않는 한 인간은 멸망, 영원한 사망 가운데 처하게 됩니다. 진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말씀을 취소하신다는 것은 자신을 배신하는 일이며, 선하심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불순종해서 영원한 멸망에 처하게 된 그 상태를 두고 보실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속성을 함께 공유한 존재가 영원한 멸망에 처하도록 내버려 두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한계를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해법은 무엇일까요? 말씀의 은혜를 잃어버린 이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사망의 법에 속한 인간들이 스스로 회개하고, 그 법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오직 하나님, 말씀 그 자체이신 분, 태초에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그분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오직 그분만이 말씀이시기에 만물을 재창조하실 수 있습니다.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기에 말씀으로 재창조하실 수 있습니다. 썩을 것을 썩지 아니할 것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이 인간을 대신해 고난 받고 구원받으려고 세상에 들어오신 것입니다. 그 말씀이 세상에 들어오셨고, 우리와 동일한 몸을 입으셨습니다.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우리와 똑같은 몸을 취하셨습니다. 그것이 성육신입니다. 모든 이에게 부활의 생명을&hellip; 사람들은 믿기 어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에도 &lsquo;가현설(Docetism)&rsquo;이라는 주장이 많은 사람에게 퍼졌습니다. &lsquo;가짜로 나타났다&rsquo;는 뜻입니다. 성육신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서 &lsquo;잠시 인간의 몸을 입고 나타나셨을 뿐이다. 다시 하나님으로 되돌아가신 것&rsquo;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인간의 몸을 입으셨다는 것을 사람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워했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시며 만물의 창조자이신 분이 동정녀 안에 자신의 몸을 예비하도록 하셨고, 그 몸을 통해 그 안에 거하셨습니다. &lsquo;육신&rsquo;이라는 단어를 쓴 것도 독특합니다. &lsquo;사람&rsquo;이라는 단어를 쓸 수도 있었을 텐데, &lsquo;육신&rsquo;이라는 한자를 사용했습니다. 육신을 뜻하는 헬라어 &lsquo;사크스(Sarx)&rsquo;는 &lsquo;육체 덩어리&rsquo;라는 뜻입니다. 당시는 &lsquo;몸은 악하고 영은 선하다&rsquo;는 이원론적인 사상이 팽배했습니다. 그들이 악하다고 여기는 육체 덩어리가 되셨습니다. &lsquo;거하셨다&rsquo;는 단어는 &lsquo;장막을 친다&rsquo;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막을 치고 이주하며 거주했던 모습을 연상하게 합니다. 하나님이 백성들 가운데 장막을 치고, 우리와 똑같은 몸을 입고, 우리가 볼 수 있고 또 들을 수 있는 육신의 장막으로 오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말씀이신 분이 육신이 되신 것은 육신 가운데 있는 사람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죄 가운데 있는 비참한 인간들, 육체 덩어리와 같은 이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몸으로, 우리와 똑같은 아기로, 연약한 아기로, 애처롭게 우는 아기로, 사람들의 돌봄을 받아야 하는 연약한 아기로 오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고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랑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lsquo;무엇인가를 주는 사랑&rsquo;과 &lsquo;그와 같이 되는 사랑&rsquo;입니다. 내가 가진 것을 없는 사람에게 일부 주는 것도 귀한 사랑입니다. 그런데 내가 그 사람과 동일한 상태가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사랑이 아닙니다. 성육신의 놀라움은 낮아짐입니다. 그리고 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말씀이신 분이 육신이 되신 이유는 죽음으로 만물을 구속하기 위함입니다. 말씀이신 분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사망의 선고가 내려진 그 권세를 깨뜨려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을 사망의 형벌 아래 있는 상태에서 건져내기 위해서는 죽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하나님은 아셨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통하지 않고는 사망의 법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죽음이 집행되어야만 하고, 죽음이 집행되면서도 그들을 살릴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ldquo;정녕 죽으리라&rdquo; 하신 그 말씀도 이루어지면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인간과 피조물이 사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습니까? 말씀이신 그분이 육신이 되셔서, 모든 죽음을 대신 담당하시고, 그분의 죽음 안에서 모든 이들을 다시 살리는 재창조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말씀이신 그분은 죽으실 수 없습니다. 영원히 죽지 아니하시는 존재이신 그분이 죽으실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죽음이 가능한 몸을 취하신 것입니다. 죽음이 가능한 몸이 되심으로 그분이 만인을 대신하는 죽음의 대가를 치르시고, 그분의 죽음을 믿는 모든 이들에게 부활의 생명을 나누어 주심으로 재창조의 역사를 이루신 것입니다. &ldquo;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시고, 참 인간이시다&rdquo; 만일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그분은 우리를 구원할 자격이 없습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예수님을 &lsquo;하나님 비슷한 분&rsquo;으로 생각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어떻게 인간과 동시에 하나님이실 수 있냐는 의문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직접 본 시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틀림없이 예수님은 인간이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특별한 분인 것은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일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비슷한 본질을 가진 분이라고 믿고 싶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몇 백 년 동안이나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습니다. 반대로 성육신하신 분이, 예수님이 참 인간으로 오시지 않았다면 역시 메시아가 될 수 없습니다. 구원이 필요한 인간의 고통을 모르고, 인간의 문제를 경험하지 않고, 아무런 접촉점이 없다면 우리를 대신하는, 대표하는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를 대신하는 분일뿐만 아니라 대표하는 분이어야 합니다. 완전한 인간이어야 합니다. 이 문제가 주후 451년까지 갔습니다. 칼케돈이라는 곳에서 500명 이상의 감독이 함께 모여 결론을 내렸습니다. &ldquo;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시고 참 인간이시다.&rdquo; &lsquo;참&rsquo;이란 말은 100%, 완전한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말씀이신 그분, 만물을 창조하신 그분이시며, 그분은 육신이 되셔서 완전한 100% 인간이십니다. 그 회의에서 현재 이집트 지방인 알렉산드리아 쪽에 있는 교회들은 예수님의 신성을 더 중시했고, 지금의 튀르키예 지역에 있던 안디옥 교회들은 예수님의 인성을 더 중시해서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역사하셔서 역사적인 고백과 선언이 나온 것입니다. 그때 &ldquo;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며 참 인간이시다&rdquo;라는 고백이 역사 속에 이루어졌습니다. 성육신하신 그분의 존재와 역사, 말씀을 통해서 사람들이 변화가 일어나고, 교회 안에서 그것을 깨닫고 고백하고 의논하고 기도하면서 그분이 누구신가를 나타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입니다. 말씀이신 분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계셨기에 그분의 영광을 보게 되었습니다. 인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상상했고, 논쟁했고, 보려고 노력했지만 결론을 내릴 수 없었습니다. 인간 스스로 하나님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성육신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본체와 영광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만물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셨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 하나님의 영광이 내 안에 나타난 것입니다. 여러분, 왕이 존재한다는 말을 듣기만 해서는 실감이 안 납니다. 그런데 왕이 내가 사는 집에 와서 앞에 있을 뿐만 아니라 함께 산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성육신하신 그분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이, 독생자의 영광이 나에게 임한 것입니다. 그분이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나를 대신해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나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말씀이신 분이 육신이 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ldquo;그러나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대한 그분의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rdquo;(롬 5:8). 십자가 죽음이 하나님 사랑의 모습입니다. 성육신하신 분의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죄가 한 번도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취소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십자가의 죽음은 하나님 말씀이 취소되지 않았다는 걸 보여줍니다. &ldquo;정녕 죽으리라&rdquo; 하신 그 말씀대로 죽음이 집행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죽음의 집행을 말씀이신 그분이 우리의 몸이 돼서, 우리를 대신해 담당하심으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육체 덩어리와 같은 우리에게 부활의 생명을 나누어 주셨기에 재창조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우리의 위기와 곤경, 모든 상태를 벗어날 수 있게 역사하신 사건이 바로 성육신하신 그분의 오심이고, 그분의 죽음과 부활입니다. 성 어거스틴은 그래서 성육신 사건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ldquo;성육신 교리는 우리를 진리로부터 벗어나지 않도록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주기 위해 놓인 길과 같다. 하나님으로서 그분은 우리의 여정의 목적지가 되시며 또한 그분은 사람으로서 우리가 걷는 길이 되신다.&rdquo; 두 단어가 중요합니다. 목적지가 되시는 것, 우리의 길이 되시는 것. 그분은 하나님이시기에 우리의 목적지가 되시며, 그분은 인간이시기에 우리의 길이 되십니다. 성육신하신 예수님이 삶의 목적지가 되고, 길이 될 때 하나님 말씀의 재창조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성육신하신 그분의 오심을 기다리기를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5-12-06  제15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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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의 삶> QT 프리뷰(preview)] 불평을 버리고 스스로 개척하라 &lt;생명의 삶&gt; QT 프리뷰(preview) 불평을 버리고 스스로 개척하라 12월 8일~14일까지 &lt;여호수아&gt; 15:13~18:28 묵상포인트 1: 갈렙의 충성된 신앙과 도전적인 삶은 후대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그의 사위 옷니엘은 용감하게 도전하는 사람이었고, 그의 딸 악사도 적극적으로 복을 구하는 여인이었다. 갈렙과 옷니엘과 악사의 삶에서 공통되는 면을 묵상하자. ▶하나님께 충성한 갈렙은 헤브론을 기업(유산)으로 받는다. 갈렙은 헤브론에서 아낙의 세 아들을 쫓아내고 드빌(기럇세벨)까지 확보하며 자신의 기업을 확장해 간다. 갈렙은 기럇세벨을 정복하는 자에게 자기 딸 악사를 아내로 주겠다고 제안했고, 옷니엘이 그곳을 점령하고 악사와 결혼한다. 악사가 아버지에게 복을 구하며 샘물을 달라고 요구하자, 갈렙은 윗샘과 아랫샘을 그에게 준다. 유다 지파는 아홉 지파 중에서 먼저 기업을 받고, 또 많은 성읍을 분배받는다. 그러나 유다 자손이 여부스 족속을 적극적으로 쫓아내지 못했기에 여부스 족속이 유다 자손과 함께 예루살렘에서 함께 거주한다. 묵상포인트 2: 가나안 땅의 분배는 &lsquo;제비뽑기&rsquo;로 이루어졌다. 당시에 제비뽑기는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통로였다. 그러므로 이에 불만을 표출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행위였다. 요셉 지파의 불평과 여호수아의 지혜로운 답변을 묵상하자. ▶므낫세와 에브라임 두 지파를 형성하는 요셉 지파는 북쪽 지파들을 대표한다. 에브라임은 요셉의 차남임에도 장남인 므낫세보다 땅 분배에서 먼저 언급된다. 이들 요셉 지파가 분배받은 곳은 풍요로운 땅이다. 그러나 요셉 지파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않고 종으로 삼는다. 하나님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자신들의 실리를 선택한 것이다. 슬로브핫의 딸들도 약속대로 기업을 분배받는다. 요셉 자손은 자신들이 분배받은 지역에 만족하지 못하고 불평한다. 여호수아는 그들이 큰 민족이요 그들에게 큰 권능이 있음을 상기시키며, 가나안 사람의 철 병거를 두려워하지 말고 삼림이라도 스스로 개척하라고 확신을 심어 준다. 묵상포인트 3: 가나안 땅 분배는 여호수아에게 남겨진 마지막 사명이다. 여호수아는 과업 완수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기업을 분배받지 못한 일곱 지파를 위해 여호수아가 어떻게 과업을 완수해 가는지 묵상하자. ▶이스라엘이 실로에 회막을 세운 것은 그곳이 종교 중심지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가나안 땅은 이미 정복되었으나 기업을 분배받지 못한 이들이 일곱 지파나 된다. 여호수아는 일곱 지파에게 세 명씩 대표자를 선정해 그 땅을 그려 오면 제비 뽑아 분배하겠다고 한다. 일곱 지파의 대표들이 일곱 부분으로 나누어 그려 오니, 여호수아가 제비 뽑아 분배한다.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베냐민 지파가 먼저 제비를 뽑는데, 그 결과 유다 지파 위쪽에 자리 잡는다. 적용을 위한 가이드 ▶갈렙은 자신의 기업 헤브론에 거주하던 아낙의 아들들을 몰아냈다. 내가 아직까지 주저하면서 도전하지 못하는 일에 담대함과 믿음을 주시길 간구하자. ▶악사처럼,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자신의 필요를 구하고 응답의 기쁨을 누리자. ▶에브라임 지파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않고 종으로 삼아 자신들의 실리를 취했다. 내가 말씀보다 실리를 앞세우는 것이 있다면 회개하고, 온전한 순종을 결단하자. ▶공동체 안에 불만을 표출하는 지체, 두려워하는 지체가 있다면 믿음과 확신을 주면서 지혜롭게 권면하자. ▶하나님이 내게 줄로 재어 주신 기업에 자족하며 감사하자. 올해 내가 하나님께 받은 복과 은혜를 기록하고 감사와 찬양을 드리자. / &lt;생명의 삶&gt; 편집부

     2025-12-05  제1567호

  • 주일강단

    [주일강단] 결단의 오늘  결단의 오늘 &lt;여호수아&gt; 24:14~28 /이재훈 위임목사 &lt;여호수아&gt; 24장 마지막 말씀입니다. 23장에서 여호수아는 자신이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되었을 때 지도자들을 모아서 유언을 했습니다. 오늘 본문 24장에서는 또다시 지도자들을 &lsquo;세겜&rsquo;에 모아서 고별 설교를 합니다. 자신이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해서 유언을 했는데, 하나님이 생명을 연장시켜 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있는 힘을 다해 다시 한 번 백성들을 세겜에 모아 설교하는 것입니다. 23장에서 여호수아는 &ldquo;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신 하나님을 온 마음과 영혼을 다해 굳게 붙잡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겨야 한다&rdquo;는 당부를 했습니다. 신앙의 중간 지대는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고 당부했었는데, 오늘 또다시 동일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세겜이라는 지역이 의미가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세겜은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에 정착했을 때 처음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렸던 장소입니다. 야곱이 방황하는 가운데 회개하고, 자신의 우상을 모두 파묻고, 하나님 앞에 결단했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세겜은 하나님 앞에 예배의 장소요, 회개의 장소요, 결단의 장소입니다. 지금 여호수아가 건강상의 이유로 움직이기 쉬운 지역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세겜에서 여호수아가 백성들에게 전한 메시지는 23장과 동일합니다. 오직 하나님만 섬기고, 그분을 예배하고, 사랑할 것을 선택하고 결단하라는 것입니다. &ldquo;오직 하나님만 섬겨라!&rdquo; &ldquo;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여호와를 경외하고 성실하고 진실하게 그분을 섬기라. 너희 조상들이 강 건너 저편과 이집트에서 경배하던 신들을 던져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라. 그러나 만약 너희 마음에 여호와를 섬기는 일이 내키지 않으면 그때는 너희 스스로 누구를 섬길 것인지, 너희 조상들이 강 건너에서 섬겼던 신들이든, 지금 너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아모리 사람의 신들이든 오늘 선택하라.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길 것이다&rdquo;(14~15절). 14절에서 &lsquo;그러므로&rsquo;는 1절에서 13절 말씀을 요약하는 것입니다. 내용을 보면, 이스라엘 역사를 다시 한 번 회고하게 합니다. 아브라함부터 시작해서 가나안, 여호수아 시대에 이르기까지 역사를 회고하면서 그들이 끊임없이 우상을 섬겨 왔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조상들이 갈대아 우르에 있을 때는 그곳의 신들을 섬겼고, 이집트에 있을 때는 태양신을 섬겼습니다. 애굽에 임했던 열 가지 재앙은 그 신들이 헛된 것임을 보여주는 심판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에서는 바알과 아세라, 풍요의 신, 또 신생아를 제물로 바치는 몰렉 같은 끔찍한 신들을 끊임없이 섬겼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과거 역사에서 지적합니다. 어느 시대, 어떤 지역에 살든 그 시대의 우상에 사람들이 휩쓸리는 것입니다. 이 시대도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면 우상에 휩쓸리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ldquo;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아무것도 섬기지 않는다. 신을 믿지 않는다&rdquo;라고 말하는데, 틀린 말입니다. 무신론이란 아무것도 믿지 않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믿는 것입니다. 무신론도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부정하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는 것보다 더 어려운 믿음입니다. 더 어려운 믿음을 굳게 붙잡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신을 믿고, 세상의 경험을 믿고, 존재하지 않는 우상을 믿고 살아갑니다. 여호수아가 도전하는 것은 우상들을 섬기든지 아니면 온전히 하나님을 섬기는 결단을 하라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하는 것입니다. &ldquo;너희들의 선택은 오직 한 가지밖에 없다. 하나님만 섬기는 것&rdquo;이라고 역설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유의지와 선택으로 하나님을 섬겨야만 진짜 신앙이 되고, 하나님과 깊은 관계 속에서 축복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강요로, 어쩔 수 없어서, 시켜서 하는 신앙은 자라지 못합니다.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는 부모가 대신 선택을 해줘야 합니다. 그러나 자녀가 자랄수록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됩니다.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해야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처럼, 신앙도 자신의 선택으로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야 자신의 신앙이 되고,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게 됩니다.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것은 나의 어떤 선택도 없이 죄를 짓지 않게 되었다는 게 아닙니다. 구원받기 이전에는 우리가 죄를 짓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았다는 것은 이제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선택의 능력이 주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ldquo;선택하라&rdquo;고 결단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먼저 자신에게 적용합니다. &ldquo;나와 내 집은 오직 여호와를 섬길 것이다.&rdquo; 한국어 성경과 영어 성경에서는 미래 시제만 사용했지만, 히브리어 시제는 훨씬 더 풍부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lsquo;끊임없는 선택&rsquo;이라는 것입니다. &ldquo;나와 내 집은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을 선택해 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rdquo; &lt;여호수아&gt; 전체, 여호수아의 인생을 봐도 그는 출애굽 이후 광야에서 아론을 중심으로 금송아지를 섬길 때도 우상을 거부했습니다. 12명의 정탐꾼의 일원이 되어 가나안을 정탐했을 때도 믿음의 선택을 했습니다. 모세의 후계자로 부름을 받아 가나안 정복 전쟁으로 이끌 때에도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순종하는 자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신을 벗는 선택을 했습니다. 가나안의 정복 역사 속에서 그는 언제나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백성들에게도 믿음의 선택을 하라고 결단을 촉구합니다. 믿음은 결국 선택으로 나타난다! 여러분, 우리의 믿음은 결국 선택으로 나타납니다. 무엇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운명은 우연으로 결정되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운명은 선택으로 결정됩니다. 많은 사람이 마치 지하철 노선표처럼, 건물의 설계도처럼, 드라마 시나리오처럼 모든 게 정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예정을 운명론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결정해 놓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기계처럼 끌려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예정은 전제가 아니라 결과로 봐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자들이 돌이켜 볼 때 &ldquo;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예정하셨구나, 선택하셨구나&rdquo;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lt;기독교 강요&gt;의 저자 칼빈도 예정의 교리를 구원론 다음에 썼습니다. 구원받은 자들의 고백이요, 결과적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구원받기로 예정되고, 누군가는 구원 못 받기로 예정되어 있으니 전도할 필요도 없고, 선교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전제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운명은 하나님이 다 정해 놓으셨기 때문에 내가 무엇을 선택하든지 하나님의 예정대로 된다는 것은 신앙을 잘못 해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넣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가 끊임없이 하나님을 선택할 때 운명을 새롭게 열어주십니다. 우리의 내일이 오늘의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고 예배하는지가 내일의 운명을 바꾸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새로운 미래를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지난 세월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회개하고 돌이키는 선택을 오늘 결단하면, 내일은 하나님이 새로운 미래를 열어주십니다. 우리에게 호흡이 있는 한 하나님과 새롭게 출발할 기회는 언제든지 존재합니다. 오늘의 결단이 중요한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그것을 체험했기 때문에 마지막 사력을 다해서 다시 한 번 백성들에게 권면하고 도전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결단하면 내일의 미래는 하나님이 바꿔주십니다. 이러한 믿음이 필요하고, 이 나라와 민족을 향해서도 이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스스로 선택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누군가 선택을 대신해 주기를 바랍니다. 고대 근동의 수메르, 앗시리아, 바벨론 사람들의 문자에 남아있는 기록 90%가 예언에 대한 내용이라고 합니다. 앗시리아 사람들은 죽은 동물의 간을 보고 신의 뜻을 분별했다고 합니다. 페르시아 사람들은 별의 움직임을 보고 행운이나 불행을 맞추고, 때로는 별자리에 맞춰서 국가 간의 조약을 맺고, 전쟁하고, 상인들은 비즈니스 계약을 체결했다고 합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들입니까?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선택의 능력을 포기하고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그분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들이 하나님을 섬기면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를 가르쳐 주심에도 불구하고, 섬기지 않으니 눈과 귀가 보이지 않고 막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ldquo;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길 것이다&rdquo;라고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을 섬겨 왔던 자신의 인생에서 하나님이 뜻을 보여주시고, 자신의 선택과 함께 하셨다는 것을 간증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도전에 백성들이 순종으로 응답합니다. 백성들이 &ldquo;우리가 여호와를 섬기겠습니다. 우리가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우리가 여호와를 섬기겠습니다&rdquo;라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거룩하시며, 질투하시는 하나님 &ldquo;여호수아가 백성들에게 말했습니다. &lsquo;너희는 여호와를 섬길 수 없다. 그분은 거룩한 하나님이시며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 너희의 허물이나 죄를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만약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의 신들을 섬기면 그분이 너희에게 잘해 주셨다 할지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고 너희를 죽이실 것이다&rsquo;&rdquo;(19~20절). 백성들이 &ldquo;우리가 여호와를 섬기겠습니다. 여호와를 버리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rdquo;라고 말했다면, &ldquo;그래, 잘했다. 바로 그거다&rdquo;라고 칭찬할 것 같은데, 여호수아는 &ldquo;아니다. 너희들은 여호와를 섬길 수 없다&rdquo;라고 좌절시키는 것 같은 말씀을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좌절시키려는 게 아니라 더 견고한 결단을 내리도록 하는 것입니다. &ldquo;너희들은 여호와를 섬길 수 없다&rdquo;라는 말씀은 너희들의 각오와 결단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더 견고한 결단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잘 박힌 단단한 못처럼, 단단한 결단을 하도록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말뜻은 이것입니다. &ldquo;너희들이 여호와를 섬긴다고 지금 고백했느냐? 내가 보기엔 그 정도 고백과 결단으로는 안 된다. 하나님을 정확하게 너희들이 알아야 한다. 우리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 거룩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너희들이 만일 그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너희를 치실 것이다. 제대로 알고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해라. 너희들이 거룩하신 하나님, 질투하신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지금 섬기겠다고 하는 것이냐?&rdquo; 더 강하게 촉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직 하나님만 섬겨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거룩하시며, 질투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십계명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ldquo;나 여호와 외에 다른 신을 네게 있게 하지 말라. 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다.&rdquo; 질투라는 단어를 우리는 부정적으로 여기지 않습니까? 그런데 인간의 질투와 하나님의 질투는 다릅니다. 인간의 질투는 자기 것이 아닌 것을 탐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질투는 그분의 소유에 대한 질투입니다. 마땅히 하나님의 것을 그분의 것으로 인정하지 않을 때 질투하시는 것입니다.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 우리들을 구원하신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켜서 백성 삼으신 하나님이시기에 그분의 질투는 정당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다른 것에 빼앗기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우리의 시간과 물질, 관심과 삶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 드려지는 것을 원치 않으시고 질투하십니다. 그 질투로 인해 하나님이 때로 우리에게 진노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배우자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을 때 &ldquo;나는 괜찮아. 나는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해도 용서하고 괜찮아. 나는 관용이 있는 사랑이야&rdquo;라고 말한다면 진짜 사랑입니까? 사랑하기에 서로 독점해야 합니다. 부부가 서로 상대방만 원할 때 그것을 편협하다, 잘못됐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진짜 행복입니다. 하나님이 전적인 섬김과 사랑을 요구하시는 게 우리를 불행하게 하려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만 사랑하고 섬기는 게 최고의 행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닌 다른 우상을 섬길 때 그 자체가 불행이고, 더 나아가 징벌이 됩니다. 우상을 계속 섬기면 그 자체가 징벌로 들어가는 겁니다. 불행한 삶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자의 결말은 참으로 불행합니다. 우상과 미신을 섬기는 자들을 하나님이 내버려 둔 적이 없습니다.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 섬겨야 행복하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당신만을 섬기라고 촉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은 자신이 경배하는 신을 닮습니다. 무엇을 예배하는가, 무엇을 섬기는가가 그 사람을 결정짓고 변화시킵니다. 만일 섬기는 대상이 보잘것없는 우상이라면, 그 사람은 세상을 그렇게 볼 것입니다. 자신도 그렇게 볼 것이고, 주변 사람들도 그렇게 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길 때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고귀한 존재인지를 알게 되고, 주변 사람들도 그렇게 볼 것입니다. 세상도 그렇게 볼 것입니다. 질투하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 질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힘을 받는 것을 참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열정이 솟아오릅니다. 질투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그분에 대한 열정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을 보면서 안타까워합니다. 그 영혼들을 긍휼히 여기게 됩니다. 그래서 백성들 앞에서 여호수아가 결단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ldquo;하나님만 섬기기로 결단하십시오&rdquo; &ldquo;그러자 백성들이 여호수아에게 말했습니다. &lsquo;아닙니다! 우리는 여호와를 섬기겠습니다.&rsquo; 그러자 여호수아가 백성들에게 말했습니다. &lsquo;너희가 스스로 여호와를 선택하고 그분을 섬기기로 했으므로 스스로 증인이 된 것이다.&rsquo;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lsquo;그렇습니다. 우리가 증인입니다.&rsquo; 여호수아가 말했습니다. &lsquo;그렇다면 너희 가운데 있는 이방 신들을 없애 버리고 너희 마음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리라.&rsquo; 그러자 백성들이 여호수아에게 말했습니다. &lsquo;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그 음성에 순종하겠습니다&rsquo;&rdquo;(21~24절). 높은 산을 산책 삼아 오를 수 없습니다. 에베레스트 산을 산책 가는 차림으로 올라갈 수 없습니다.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고 높은 산으로 향해야 합니다. 높으신 하나님을 섬기고자 할 때 대충대충 마음으로 섬길 수 없습니다. 세상이, 사탄이 내버려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가 다짐하고 또 다짐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lsquo;세상의 헛된 우상들을 버리고, 하나님만 섬기고 순종하겠습니다&rsquo;라는 결단이 우리에게 매일매일 흘러넘쳐야 합니다. 흐르지 않으면 우리는 우상에 휩쓸립니다. 오늘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오늘 하나님 앞에 결단하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유혹은 오늘이 아닌 내일 하겠다고 미루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하나님만 섬기기로 결단하십시오. 기도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lt;여호수아&gt; 말씀을 통해 &lsquo;믿음의 결단&rsquo;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하나님만 섬기기로 결단하는 모든 주의 백성들을 축복하시고, 그 결단을 주장하시고, 열납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5-11-29  제15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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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의 삶> QT 프리뷰(preview)] 순종과 승리, 그리고 마지막 사명 &lt;생명의 삶&gt; QT 프리뷰(preview) 순종과 승리, 그리고 마지막 사명 12월 1일~7일까지 &lt;여호수아&gt; 11:1~15:12 묵상포인트 1: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전쟁이 완결된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와 명령에 대한 온전한 순종이 가져온 결과다. 해변의 모래같이 많은 가나안 북부 지역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여호수아가 어떻게 승리했는지 묵상하자. ▶하솔 왕 야빈의 주도로 북부 지역 왕들이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이스라엘과 싸우려 한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며 승리를 약속하신다. 여호수아는 강력한 하솔의 군대를 진멸한다. 가나안을 정복하고 그곳 사람을 진멸하는 것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명하신 일이었고, 여호수아는 그 명령을 수행한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과 화친한 기브온 족속을 제외하고 요단 서쪽에서 31명의 왕을 진멸한다. 그중에는 과거에 이스라엘 정탐꾼들에게 두려움을 안겨 주었던 아낙 자손도 있다. 이로써 그 땅에 전쟁이 그친다. 묵상포인트 2: 모세가 시작한 사역을 여호수아가 완결한다. 모세가 요단 동쪽 땅을 분배했듯이, 여호수아는 요단 서쪽 땅을 분배할 것이다. 여호수아에게 주어진 마지막 사명은 무엇인지, 그 일이 모세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묵상하자. ▶여호수아가 늙으니, 하나님이 그에게 마지막 사명을 맡기신다. 요단 서쪽에 아직 정복할 땅이 많이 남아 있기에 여호수아는 아홉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게 그 땅을 기업(유산)으로 나누어 주어야 했다. 요단 동쪽은 모세 때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이미 분배했다. 모세 때 요단 동쪽 땅을 정복하고 차지했지만, 그술과 마아갓 족속을 쫓아내지는 못했다. 르우벤 지파는 시혼 왕이 다스리던 지역을, 갓 지파는 길르앗과 암몬 지역 절반을, 므낫세 반 지파는 길르앗의 남은 땅과 바산 지역을 분배받았다. 하나님 명령대로 모세도 여호수아도 레위 지파에게는 기업을 주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이 그들의 기업이시기 때문이다. 묵상포인트 3: 갈렙은 유다 지파의 어른이다. 유다 지파의 땅을 분배하기 전에 먼저 갈렙이 하나님의 약속대로 땅을 분배받는다. 85세에 이르기까지 갈렙의 신앙과 삶은 어떠했는지, 그의 모습이 유다 지파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지 묵상하자. ▶엘르아살과 여호수아와 족장들은 제비를 뽑아 아홉 지파와 반 지파에게 가나안 땅을 분배한다. 유다 지파의 땅 분배를 시작하려는 시점에, 갈렙이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시키며 여호수아에게 자신의 기업을 요구한다. 45년 전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와 보고할 때 하나님께 충성했던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헤브론을 차지한다. 유다 지파가 그 가족대로 제비를 뽑은 땅은 가나안 남부 지역으로, 이는 모세를 통해 약속하신 이스라엘의 남쪽 경계와도 일치한다. 실질적인 장자의 복과 왕권의 복을 받은 유다는 가나안의 비옥한 땅을 분배받는다. 적용을 위한 가이드 ▶감당하기 버거운 대상 혹은 일을 두고 위축되지 말자. &ldquo;두려워하지 말라&rdquo;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기억하고 용기를 내자. ▶이스라엘에게 두려운 존재였던 아낙 자손을 여호수아는 담대히 물리쳤다. 가족 혹은 공동체에 두려움을 주는 어둠의 세력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단호히 물리치자. ▶갈렙은 &lsquo;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면&rsquo;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일평생 도전했고, 약속된 기업을 받았다. 하나님의 인정과 상급을 받을 수 있도록 믿음의 말과 믿음의 행동을 하며 끝까지 충성하자. ▶하나님은 늙은 여호수아에게 마지막 사명을 완수하라고 말씀하신다. 올 한 해 나의 역할을 끝까지 잘 감당해 유종의 미를 거두자. / &lt;생명의 삶&gt; 편집부

     2025-11-28  제1566호

  • 칼럼

    [신앙에세이] 새벽기도회 참관기 신앙에세이 새벽기도회 참관기 아직 동이 트기 전 어둠이 가득한 이른 시간임에도 양재온누리교회 사랑홀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어떤 이는 기대와 사랑의 마음으로, 어떤 이는 밤새 씨름한 인생의 문제를 짊어지고, 어떤 이는 습관적으로 오기도 한다. 그 이유가 어떠하든 모두가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반기시는 영혼들이다. 단상에서 설교하는 목사님은 항상 &ldquo;새벽에 기도하시는 영혼들을 축복합니다&rdquo;라고 인사하신다. 단순한 인사말이지만, 그 안에는 성도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이 담겨 있다. 양재온누리교회 새벽기도회 설교는 짧고 간결하다. 무엇보다 설교 이후 세 번의 기도시간이 압권이다. &ldquo;주여!&rdquo;라고 부르짖는 간절한 함성에 마귀가 떠나가고, 믿음이 샘솟는다. 개신교를 대표하는 기도는 어찌 됐건 &lsquo;통성기도&rsquo;라 할 수 있다. 침묵기도, 묵상기도, 향심기도 등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성도들이 한데 모여 크게 기도하는 것만큼 간절함이 느껴지고, 마음이 시원해지는 것도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새벽마다 그렇게 통성기도를 하는가 보다. 선교 현장에 나가보면 외국 선교사들이 통성기도를 &lsquo;코리안 기도&rsquo;라고 부른다. 영미권 교회는 주로 하나님과 대화하듯 문장으로 기도하는데, 한국 교회는 큰소리로 &lsquo;합심기도&rsquo;를 선호하다 보니 &lsquo;코리안 기도&rsquo;라고 하는 것 같다. 한 외국 선교사가 나에게 &ldquo;하나님이 귀가 안 들리시나요? 왜 그렇게 큰 소리로 기도하나요?&rdquo;라고 물은 적이 있다. 나는 &ldquo;하나님이 귀가 안 들리시는 게 아니라 간절함의 강도를 그렇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예수님이 간청기도를 강조하시고, 찾고 부르짖으라고 하셨잖아요. 우리는 그렇게 기도해야 영혼의 막힌 것들이 풀립니다&rdquo;라고 대답했다. 실제로 양재온누리교회 사랑홀에는 &lsquo;통곡의 벽&rsquo;이 있다. 단상이 다른 곳보다 높아서 아래에서 벽을 보고 기도하는 성도님들이 계시는데, 마치 유대인들이 서서 기도하는 통곡의 벽처럼 보인다. 이곳에는 여러 유형의 성도님들이 계신다. 무릎을 꿇고 두 손 높이 들고 기도하는 분, 서서 벽을 잡고 기도하는 분, 큰소리로 &lsquo;방언기도&rsquo; 하는 분 등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도의 제단을 쌓으신다. 한 번은 그 모습에 감동해서 매일 방언으로 서서 기도하시는 분을 인터뷰했다. &ldquo;집사님, 어떻게 그렇게 매일 한 시간씩 방언으로 기도하실 수 있나요?&rdquo;라고 여쭤보니 &ldquo;처녀 적부터 이렇게 기도했더니 이제는 방언으로 기도하지 않으면 답답해서 살 수가 없어요&rdquo;라고 말씀하셨다. 그 집사님 남편이 &ldquo;여보, 그만 기도하고 가자&rdquo;라고 하셔야 마무리를 하신다. 막지 않으면 온종일 기도하실 분 같았다. 내 눈에 그 집사님은 &lsquo;양재동 여선지자&rsquo;로 보였다. 시대가 악하고 미래가 어두운 현실에서 기도하는 성도님들의 모습을 보면 희망이 생긴다. 6~70년대 보릿고개 시절 &ldquo;조국이여 안심하라&rdquo;고 외치며 기도에 전념했던 가나안 농군학교 김용기 장로님의 표어가 떠오른다. 오늘따라 강단에서 말씀을 선포하는 목사님의 간결한 설교가 마음에 와닿고, 성도님들의 기도 소리가 논밭의 개구리 소리처럼 정겹고 아름답게 들린다. 그 순간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위로를 경험했다. 눈물이 흐르고, 마치 천국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예배당에 있는 모든 분이 천사처럼 보였고, 강대상 파이프 오르간이 마치 삼위일체 하나님이 서 계신 것처럼 느껴졌다. 이 아름다운 장소에서 거룩한 성도님들과 함께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으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한참을 울고 나서 예배당을 나왔더니 양재동의 전경이 펼쳐지고, 새들이 지저귀는 가운데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lsquo;야곱이 벧엘에서 본 새 아침의 태양이 바로 저것이구나&rsquo;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린다. / 허원희 목사(과천의왕 공동체)

     2025-11-22  제1565호

  • 인물

    [만나고 싶었습니다] 최베드로 선교사의 사랑으로! [만나고 싶었습니다] 최베드로 선교사의 사랑으로! 폴란드에서 &lsquo;우크라이나 난민&rsquo;들과 함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발발한 지 어느덧 4년이 다 되어간다. 전쟁의 피해는 고스란히 민간인에게 집중되고 있다. 오직 살기 위해서 수많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폴란드로 향했다. 난민이 된 그들은 말로할 수 없는 외로움과 슬픔, 소중한 이들을 잃는 엄청난 아픔을 겪었다. 바로 그들,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위로하고 섬기는 하나님의 사람이 있다. 최베드로 선교사다. 그는 폴란드에서 오직 예수의 사랑으로 우크라이나 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아픔을 품고, 복음의 능력을 증거하고 있다. / 박지혜 기자 wisd0m7@onnuri.org &ldquo;저는 제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만큼 우크라이나 난민을 섬기는 사역에 불러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릴 뿐입니다.&rdquo; &lsquo; 나는 가장 행복한 사람&rsquo; 이라고 고백하는 최베드로 선교사의 말에서는 예수님과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향한 진심 어린 사랑이 자연스레 전해졌다. 그의 행복한 선교의 뿌리가 궁금했다. 처음부터 선교사의 꿈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ldquo;저는 1992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이 러시아에서 개척교회를 운영하고 계셨는데, 500명이 넘는 큰 교회로 성장했습니다. 사역의 큰 열매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제가 아홉 살 때 이혼하셨습니다. 그때 제 마음에 분명히 자리 잡은 결심은 &lsquo; 나는 절대로 목사가 되지 말아야지&rsquo; 였습니다.&quot; 어렸을 때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지휘자를 꿈꿨다. 그 꿈을 이루려고 차이콥스키 음악원에서 공부했다. 어머니의 사역을 돕거나, 교회 찬양팀에서 봉사할 때면 주변에서 &ldquo;신학교 갈 생각은 없냐&rdquo;는 질문을 듣곤 했지만, 그때마다 &lsquo;나보고 사역자가 되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rsquo;라고 여겼다. &ldquo;어느 날이었습니다. 한 선교사님이 제게 &lsquo;베드로야, 하나님이 너를 통해 이루시는 구원의 기쁨을 아니?&rsquo;라고 물으셨습니다. &lsquo;전도를 말씀하시는 건가?&rsquo;라는 생각에 잠겨있던 제게 그 선교사님이 &lsquo;정말 알고 있다면 곧바로 그렇다고 대답했을 것&rsquo;이라며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 기도해 보라고 권면하셨습니다.&rdquo; 그 선교사님과 대화 이후 최베드로 선교사의 기도제목은 단 하나였다. &ldquo;하나님, 제가 사역자로 살기 원하신다면 분명한 답을 주십시오.&rdquo; 하나님은 뜻밖에도 친할머니를 통해 그 기도에 응답하셨다. &ldquo;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친할머니셨습니다. 아버지 집안은 불교였기에 저는 어릴 때부터 친할머니의 구원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내일 허리 수술을 받는데, 혹시 잘못되면 제 종교 방식으로 장례를 치러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무사히 수술을 마치면 바로 교회에 가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일본에서 자라서 한국어가 서툴고, 제 전화번호도 몰랐던 분이셨는데, 정말 어렵게 전화를 하셨습니다.&rdquo; 할머니는 88세에 세례를 받고, 93세에 평안히 하나님 품에 안겼다. 최베드로 선교사는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깨달았다. 다음 기도는 어머니가 자신의 결정을 받아 주기를 구하는 것이었다. &ldquo;어머니 생신날 함께 식사하면서 신학대학원에 진학하겠다는 말씀을 어떻게 드릴지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먼저 신학대학원 진학을 제안하셨습니다. 알고 봤더니 저를 위해 기도하던 중에 제가 지휘자 가운을 벗고 목사 가운으로 갈아입더니 단상에서 설교하는 환상을 두 번이나 보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저는 2014년 한국에 들어와 군 복무를 마치고 신학대학원에 입학했습니다. 언젠가 러시아로 돌아가 선교할 꿈을 품고 기도하며 준비했는데, 하나님은 저를 우크라이나 피난민을 섬기는 일에 사용하셨습니다.&rdquo; 6개월에서 9개월 연장 그리고 완전한 정착 &ldquo;누가 저에게 왜 이곳에 정착했냐고 묻는다면, 어떠한 계획이나 전략이 아니라 이곳에 계신 성도님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rdquo; 최베드로 선교사는 2021년 목사 안수를 받고, 경기도 안산에 있는 온누리M미션에서 이주민 사역을 시작했다. 러시아 MK(선교사의 자녀)로 자란 그는 자연스럽게 러시아어 예배공동체와 미디어팀을 섬겼다. 그러다 OSOM(장기선교사 훈련) 32기로 Acts29비전빌리지에 들어갔다. 그런데선교 훈련이 시작된 지 며칠 되지 않은 2022년 2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발발했다. 그 전쟁으로 인해 폴란드로 백만 명이 넘는 우크라이나 피난민이 유입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당시 온누리M센터 센터장 노규석 목사가 급하게 폴란드로 향했다. 같은 해 4월, 현지에서 노 목사가 최 베드로 선교사에게 &lsquo;우크라이나 피난민 사역&rsquo;을 제안했다. &ldquo;상황이 급박해서 파송식이나 파송장도 없이 OSOM 32기 수료하고 19일 만에 아내와 함께 위탁 캐리어 두 개와 기내용 캐리어 두 개만 챙겨서 폴란드로 향했습니다. 화요일에 도착했고, 그 주 토요일부터 난민수용소 사역을 시작했습니다.&rdquo; 난민수용소에서 머물던 이들과 함께 2022년 7월 17일, 첫 예배를 드렸다. 당시에는 이름도 없던 작은 예배공동체였는데, 그 공동체가 최베드로 선교사 가정이 폴란드에 정착하게 된 이유가 되었다. &ldquo;처음에는 6개월 단기선교를 계획했는데, 그 기간이 지나도록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온누리M미션의 권유로 9개월을 추가했는데도 상황은 그대로였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우리 가정 스스로 이 땅에 남기를 원했습니다. 본부에서도 우리 가정을 TIM(두란노국제선교회) 소속으로 전환하고, 폴란드에 정착해서 사역을 이어가도록 도와주셨습니다.&rdquo;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향한 사랑이 최베드로 선교사가 이곳에서 사역을 이어가는 원동력이다. 최베드로 선교사가 폴란드에 정착한 지도 어느덧 3년 5개월이 지났다. 그사이 온누리교회 아웃리치팀이 13번 방문했고, 고아원 아이들 10명, 유아 2명, 성인 11명이 세례를 받았다. 일대일제자양육 수료자도 12명이나 된다. 일대일제자양육 교재를 우크라이나어로 번역해서 출판을 앞두고 있다. 바르샤바 보쥐미르교회, 우쯔 보쥐미르 고아원 교회도 세웠다. 복음 말고는 능력이 없음을&hellip; 최베드로 선교사는 전쟁으로 인해 아픔과 슬픔이 가득한 이들의 손을 잡고, 함께 춤추며 하나님을 예배한다. 이 상황에도 교회가 부흥하는 것을 보며 그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임을 확신한다. &ldquo;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만날 때면 말로 할 수 없는 아픔을 느낍니다. 그분들이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요청하고, &lsquo;선하신 주&rsquo;를 찬양하는 모습을 보면, 복음 말고는 그들을 위로하고, 치유하고, 회복할 능력이 없음을 새삼 깨닫습니다.&rdquo;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ldquo;동역해주시는 온누리교회 성도님들 덕분에 여러 어려움을 해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보쥐미르교회가 감당하는 사역이 많아서 함께 일할 직원이 절실합니다. 사역에 열정이 있는 귀한 청년들은 많지만, 폴란드인들보다 훨씬 적은 임금으로 생활하기에 사역자를 세우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교회 간사님을 채용할 수 있는 물질적 지원이 꼭 필요합니다. 더불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하루빨리 끝나고,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임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고아원 아이들이 하나님의 양자 됨의 기쁨을 누리고, 모든 중독에서 자유를 얻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가정에 18개월 된 딸이 있습니다. 사역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다 보면 다양한 바이러스에 노출될 위험이 있습니다. 딸 소예의 면역력과 저희 부부가 지치지 않고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채워주심 안에서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rdquo; 후원계좌: 하나은행 573-8100079-9305

     2025-11-22  제1565호

  • 주일강단

    [주일강단] 여호수아의 유언  여호수아의 유언 여호수아 23:1~11 /박종길 목사 오늘 본문은 가나안 정복을 마치고, 아홉 지파 반의 땅 분배가 끝나고, 또 두 지파 반이 요단강 동편으로 귀환한 이후 대략 10년에서 20년이 지난 시점에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지도자들을 불러서 유언을 남기는 내용입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인도하심,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실하게 그분의 약속을 지키라는 권면입니다. 여호수아의 유언 네 가지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ldquo;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라&rdquo;고 권면합니다. &ldquo;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주위를 둘러싼 모든 적들로부터 이스라엘에게 안식을 주신 후 오랜 세월이 흘러 여호수아는 늙고 나이가 들었습니다. 그는 온 이스라엘, 곧 장로들과 지도자들과 재판관들과 관리들을 불러 놓고 말했습니다. &lsquo;이제 나는 늙고 나이가 들었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해 이 모든 민족들에게 하신 일들을 다 보았다. 너희를 위해 싸우신 분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시다. 보라. 요단강에서 서쪽 대해에 이르는 남아 있는 나라들, 곧 내가 정복한 나라들의 모든 땅을 내가 너희 지파들을 위해 제비 뽑아 유산으로 나눠 주었다&rsquo;&rdquo;(1~4절). 여러분, 모든 것은 지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삶의 경주를 마치는 시간이 다가옵니다. 여호수아가 하나님 품에 안기기 전에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불러서 이 세상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기억해야 됨을 이야기합니다. 우리 삶에도 마지막이 있음을 기억하고, 그렇기에 더욱 주어진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여기고 신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돌아갈 본향을 기억하고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지혜입니다. 여호수아는 23장과 24장에 걸쳐서 유언을 남깁니다. 23장은 &lsquo;실로&rsquo;라는 곳에서 지도자들에게 구두로 남긴 유언이고, 24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lsquo;세겜&rsquo;에 모아서 유언을 남기고 하나님과의 계약을 재확인합니다. 여호수아는 먼저 지도자들에게 &ldquo;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라&rdquo;고 권면합니다. 23장과 24장에는 &lsquo;너희 하나님 여호와&rsquo;라는 표현이 많이 나옵니다. 23장에만 13번 언급됩니다. 여호수아는 자신이 가나안 정복을 이루었다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그분이 우리를 인도하시고 싸우시고 모든 적을 물리치셨다고 이야기합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의 영광을 자기에게 돌리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신실함과 사랑 그리고 은혜를 기억하라고 이야기합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질병을 갖게 되고,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면 하나님이 우리를 떠난 것 같고, &lsquo;하나님이 우리를 기억하지 않는가?, 우리에게 등을 돌리셨는가?&rsquo;하는 어려운 마음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과거에도 인도해 주셨던 하나님이 지금도 은혜를 베푸시고, 미래에도 우리를 인도해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여호수아는 &ldquo;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푼 은혜를 기억하라&rdquo;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셨던 지난 시간의 은혜를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셨던 사랑, 절망 중에 소망을 주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ldquo;하나님을 굳게 붙들라&rdquo; 둘째, &ldquo;하나님을 굳게 붙들라&rdquo;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굳게 붙잡으십시오. &ldquo;그러므로 너희는 용기백배해 좌우로 치우침 없이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지키고 실행하라. 너희 가운데 남아 있는 이 민족들과 뒤섞이지 말고 그 신들의 이름을 입 밖에 내지도 말라. 그들의 이름으로 맹세하지도 말라. 또 그들을 섬기거나 그들에게 절하지도 말라. 오직 너희가 오늘까지 행한 대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굳게 붙들어야 한다&rdquo;(6~8절).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미래에도 우리와 함께해 주시는데, 그 인도하심을 기억하면서 그분의 말씀을 굳게 붙들라고 권면합니다. 그러면서 &ldquo;세 가지를 지키면 너희 한 명이 천 명을 내쫓아 낼 것&rdquo;이라고 말씀합니다. 첫째,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지키고 실행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삶의 중심에 두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축복을 누리는 비결입니다. 둘째, &lsquo;죄를 짓지 말라&rsquo;입니다. 우상을 섬기지 말고, 가나안 족속과 뒤섞이지 말고, 그들의 신 이름을 부르지 말라고 합니다.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의지하거나 기웃거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우리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죄는 우리를 무너뜨릴 뿐입니다. 셋째, &lsquo;하나님을 굳게 붙들라&rsquo;입니다. 죄를 짓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께 집중하라고 말씀합니다. &lsquo;굳게 붙들라&rsquo;는 표현을 개정개역 성경에서는 &lsquo;하나님과 친근히 지내라&rsquo;고 번역 했었습니다. 하나님을 친근히 대하라는 것입니다. &lsquo;친근&rsquo;이라는 단어는 바짝 달라붙어 있는 것, 떨어지지 않는다는 뜻이 있습니다. &lt;출애굽기&gt; 33장 11절을 보면 &ldquo;여호와께서는 모세와 얼굴을 맞대고 말씀하셨습니다&rdquo;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직접 뵐 수는 없지만, 하나님을 붙잡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딱 붙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친근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친근히 대하고, 딱 붙어 있고,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하고, 죄를 짓지 않을 때, 그분을 닮아갈 수 있고, 뜻을 알 수 있고,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사람을 의지하다 보면 상처를 받게 되고, 올무에 걸릴 때도 많지만, 하나님을 붙잡으면 축복이 있습니다. &ldquo;하나님을 깊이 사랑하라&rdquo; 셋째, &ldquo;하나님을 깊이 사랑하라&rdquo;입니다. &ldquo;너희 하나가 1,000명을 내쫓게 될 것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약속하신 대로 너희를 위해 싸우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을 기울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rdquo;(10~11절). 여호수아가 분명하고 단호하게 권면합니다.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고 아직 쫓아내지 않은 가나안 족속들과 결혼하고 왕래하면 징계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더는 그들을 쫓아내지도 않을 것이고, 그들은 너희에게 덫이 되어 함정에 빠지게 되고, 가시와 채찍이 될 뿐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그 땅에서 망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세 가지 교훈을 반복합니다. 첫째, &ldquo;죄악을 단호하게 자르라&rdquo;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 전쟁 가운데 쫓아내야 할 사람들을 쫓아내지 않고 남겨두기 때문에 그들이 너희의 올무가 될 거라고 말합니다. 그들로 너희가 고생을 하게 될 것이고, 타락을 하게 될 것이고, 하나님의 은혜를 잊게 된다는 것입니다. 죄는 단호하고 분명하게 결별을 해야만 합니다. 죄는 우리를 멸망으로 이끌고, 죄는 병들게 하고, 아프게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ldquo;죄는 가시와 채찍이 되어 너희의 축복을 빼앗아 가게 될 것이다&rdquo;라고 말합니다. 남아 있는 가나안 사람들이 당장에는 경제적인 이득을 줄 것 같지만, 결국 올무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문화와 우상은 이스라엘의 함정이 되어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뺏어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도 달콤하게 다가오는 죄와 쾌락은 올무와 함정이 되고, 결국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축복을 빼앗아 가게 됩니다. 셋째, &lsquo;중간 지대&rsquo;는 없습니다. 여호수아는 분명하게 지도자들에게 &ldquo;하나님을 섬기든지, 세상을 섬기든지 선택해야 된다&rdquo;고 말합니다. 우리의 신앙에 회색 지대가 없어야 합니다. 결단하고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죄악을 단호하게 잘라내고, 하나님을 깊이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면 &ldquo;너희 한 명이 천 명을 내쫓을 것&rdquo;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싸우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깊이 붙잡고, 선택하면, 그분이 우리를 대신해서 싸우시고, 지켜 주시고, 도와주십니다. &ldquo;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히 말합니다. &lsquo;주는 나를 돕는 분이시니 나는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나를 어찌하겠는가?&rsquo;&rdquo;(히 13:6). 여러분, 세상이 우리를 공격해 올 때, 죄악이 유혹해 올 때,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고 그분을 선택해서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어도, 무너질 것 같은 상황에서도 &ldquo;그분이 나를 도와주시니 누가 나를 어찌하겠는가? 나는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나를 어찌하겠는가? 하나님이 내 편이시니&rdquo;라는 고백을 한 번 이상은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하나님 깊이 사랑하십시오. 하나님이 승리를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싸우시고 도와주십니다. 취하신 분도 하나님, 주신 분도 하나님, 지켜 주신 분도 하나님입니다. 우리를 위해 대신 싸우시고, 우리를 축복해 주시는 분도 하나님입니다. 힘든 시간을 보낼 때, 더더욱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십시오. &ldquo;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라&rdquo; 넷째, &ldquo;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라&rdquo;입니다. &ldquo;보라. 오늘 이제 나는 온 땅이 가는 길로 가려고 한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 대해 말씀하신 모든 선한 약속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다 이뤄졌음을 너희는 너희 온 마음과 온 영혼으로 알 것이다. 모든 것이 이뤄져 실패한 것이 하나도 없다&rdquo;(14절). 여러분 마지막이 중요합니다. 끝이 좋아야 합니다. 여호수아처럼, &lsquo;모든 것이 이루어져 실패한 것이 하나도 없다&rsquo;는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 선한 일도 하나님이 이루시고, 악한 일에 대한 심판도 하나님이 하신다는 경고를 하면서 유언을 마칩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실함을 지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세 가지 동사로 권면합니다. 그것은 &lsquo;하나님의 명령을 어기지 마라&rsquo;, &lsquo;가서 우상들을 섬기지 마라&rsquo;, &lsquo;절하지 말라&rsquo;입니다. 우리가 지켜야 될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은 무엇입니까? 내가 순종해야 되고, 기억해야 되고, 지켜야 되는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또 여호수아는 &lsquo;가지 말라&rsquo;고 말합니다. &lsquo;섬기지 말라&rsquo;고 이야기합니다. 내가 가지 말아야 될 곳이 어딥니까? 다른 사람들이 알면 내가 부끄러워하는 곳, 그래서 몰래 가는 곳, 내 양심이 늘 부끄러움을 느끼는 곳, 내 마음을 빼앗고 시간과 재정, 영혼을 빼앗는 유혹의 곳은 어딥니까? 내가 가지 말아야 되고, 섬기지 말아야 될 것이 무엇입니까? &lsquo;절하지 말라&rsquo;고도 이야기합니다. 절한다는 것은 인정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 외에는 절할 곳이 없습니다. 하나님 외에 우리가 인정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 삶의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을 인정할 때 그분이 우리를 인도해 주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절하지 말아야 될 것에 절하는 어리석음을 끊어 버리십시오. &ldquo;네 마음을 다해 여호와를 믿고 네 지식을 의지하지 마라. 네가 하는 모든 일에서 그분을 인정하여라. 그러면 그분이 네 갈 길을 알려 줄 것이다&rdquo;(잠 3:5~6). 패배보다 승리가 많은 삶, 슬픔보다 기쁨이 많은 삶, 절망보다 소망이 많은 삶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삶입니다.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길 때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삶, 축복의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lsquo;유언&rsquo;은 가장 중요한 내용을 마지막에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우리에게 가장 알려주고 싶은 것을 말씀합니다. &ldquo;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라&rdquo;, &ldquo;하나님을 굳게 붙들어라&rdquo;, &ldquo;하나님을 깊이 사랑하라&rdquo;, &ldquo;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라&rdquo;입니다. 여러분, 여호수아가 우리에게 주는 이 귀한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리기를 축원합니다. 여호수아처럼, 우리도 언젠가 주의 품에 안길 날이 있습니다. 그때까지 여호수아의 권면의 말씀을 붙잡고 승리하기를 소망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5-11-22  제15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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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의 삶> QT 프리뷰(preview)] 순종으로 이어 가는 정복 전쟁 &lt;생명의 삶&gt; QT 프리뷰(preview) 순종으로 이어 가는 정복 전쟁 11월 24일에서 30일까지 &lt;여호수아&gt; 8:10~10:43 묵상포인트 1: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따를 때 실패를 만회할 수 있다. 두 번째 아이성 전투에서 이스라엘이 어떻게 승리했는지, 승리 후에 여호수아가 에발산에서 행한 일은 무엇이며 그 의미는 무엇인지 묵상하자. ▶여호수아와 온 이스라엘이 거짓으로 패한 척하며 도망하자, 아이성 모든 사람이 성문을 열어 놓은 채 이스라엘을 추격한다. 하나님의 지시로 여호수아가 단창을 들어 아이성을 가리키자 매복하고 기다리던 복병이 급히 일어나 성을 불사른다. 아이성 사람들은 패배하고 그들의 왕은 여호수아 앞에 끌려온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말씀대로 아이성 사람들을 진멸하고, 그 성읍의 가축과 노략물을 탈취한다. 여호수아는 에발산에 다듬지 않은 새 돌로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린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율법을 그 돌에 기록하고 회중 앞에서 모든 말씀을 낭독한다. 묵상포인트 2: 하나님 뜻을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끊임없이 묻고 그분과 교제해야 한다. 기브온 사람들은 생존하기 위해 속임수를 써서 이스라엘에게 화친을 제안했다. 그 과정에서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범한 실수는 무엇이며, 그로부터 배우는 교훈은 무엇인지 묵상하자. ▶헷, 아모리, 가나안, 브리스, 히위, 여부스 사람의 모든 왕이 여리고성과 아이성에 관한 일을 듣고 이스라엘과 싸우려 한다. 그러나 기브온 주민들은 낡은 옷과 곰팡이 난 떡으로 먼 나라 사람인 척 꾸미고 화친을 제안한다. 여호수아와 지도자들은 하나님께 묻지 않고 그들과 조약을 맺는다. 이스라엘은 조약을 맺은 지 사흘이 지나서야 그들이 가까운 가나안 족속임을 알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 이름으로 맹세했기에 그들을 진멸하지 못한다. 생존을 보장받은 기브온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종이 되어 하나님 제단을 위해 나무를 패며 물 긷는 자들이 된다. 묵상포인트 3: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을 통해 죄악에 물든 가나안 족속을 심판하신다. 기브온을 치려던 아모리 다섯 왕들이 여호수아를 통해 어떻게 멸망되는지, 또한 가나안의 남부 지역들이 어떻게 멸망되는지 묵상하자. ▶아모리 족속의 다섯 왕이 이스라엘과 화친한 기브온을 공격한다. 기브온 사람들이 여호수아에게 도움을 청하자 여호수아는 화친 조약에 근거해 그들을 위해 싸우러 간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니 아모리 다섯 족속이 이스라엘 앞에서 패해 도망한다. 하나님이 큰 우박 덩이를 내리시니 도망하던 이가 많이 죽는다. 태양과 달이 멈추길 여호수아가 기도하자 대적이 진멸되기까지 태양과 달이 멈춰 선다. 대적의 후군까지 물리친 여호수아는 막게다 굴에 숨어 있던 아모리 다섯 왕을 죽인다. 기브온을 위한 전투에서 승리한 후, 여호수아는 중앙 산지에서 벗어나 남부 지역까지 점령한다. 그는 하나님 명령대로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진멸한다. 적용을 위한 가이드 ▶이스라엘은 첫 번째 아이성 정복에 실패했지만, 말씀에 순종한 결과 두 번째 시도에는 성공했다. 하나님의 지시를 따르는 사람은 과거의 실패와 좌절을 넘어설 수 있음을 기억하자. ▶헌신과 순종의 테스트를 통과한 백성에게 하나님은 전리품을 허락하셨다. 순종의 길 끝에 하나님의 복이 예비되어 있음을 기억하자.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하나님께 묻지 않고 기브온과 조약을 체결했다. 큰 일뿐 아니라 지극히 작은 일도 하나님께 묻고 그분의 뜻을 구하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시며, 가나안 족속의 죄악을 심판하셨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자. 또한 죄악에는 공의의 심판이 따름을 기억하자. / &lt;생명의 삶&gt; 편집부

     2025-11-21  제15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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