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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란노서원 창립 45주년] 활자부터 디지털까지, 오직 예수! [두란노서원 창립 45주년] 활자부터 디지털까지, 오직 예수! '문서선교' 새 지평 열고, 끊임없는 도전, 그리고 변화 올해는 두란노서원 창립 45주년이다. 지난 12월 22일(월) ‘두란노서원 창립 45주년 감사예배’를 두란노서원 본사에서 드렸다. 1980년 창립된 두란노서원은 45년 동안 ‘문서선교’라는 새 지평을 열고,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끊임없이 도전하고 변화했다. 처음에는 1985년 창간한 월간지 <빛과소금>을 중심으로 교회와 성도들에게 ‘활자로 만나는 영의 양식’을 전달했다. 2022년 두란노서원은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기독교 출판사 최초 크리스천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 ‘두플러스(Duplus)’를 선보이며 ‘디지털로 만나는 영의 양식’도 제공하기 시작했다. 활자부터 디지털까지 오직 예수만 전하는 두란노서원의 역사를 정리했다. / 박지혜 기자 '두란노서원’의 태동 건강 악화로 병상에 머물던 하용조 목사가 <사도행전>을 묵상하다가 바울이 에베소의 ‘두란노서원’에서 날마다 말씀을 가르치며 제자들을 세우는 장면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그러면서 최고 수준의 기독 서적과 잡지, 세미나를 통해서 세속문화를 변화시키겠다는 새로운 비전을 품었다. 그 결실이 바로 ‘두란노서원’이었다. 두란노서원의 역사를 논할 때 1985년 창간한 <빛과소금>을 빼놓을 수 없다. 당시 기독교 매체 중에서 유일하게 일반 성도를 대상으로 발간한 잡지였다. 두란노서원은 <빛과소금>외에도 매일 말씀 묵상을 돕는 큐티지 <생명의 삶>, 목회자를 위한 전문지 <목회와신학> 등 현재까지 총 7종의 정기간행물을 발행하고 있다. <일대일제자양육 성경공부>, <가스펠 프로젝트> 등 다양한 성경공부 교재와 제자양육 교재도 선보이며 교회 교육과 훈련을 돕고 있다. 2022년에는 기독교 출판사 최초 크리스천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 ‘두플러스(Duplus)’를 론칭했다. 세계 어디서나 두란노서원의 콘텐츠는 물론이고, 여러 기독 출판사의 다양한 콘텐츠를 접하도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두플러스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복음을 접하도록 돕는 ‘내 손안의 복음’, 검증되고 선별된 ‘복음 중심 콘텐츠’, 목회자의 사역과 설교 준비를 지원하는 ‘목회 비서’를 핵심 가치로 삼고 있다. 디지털 시대를 사는 성도들이 두란노서원의 두플러스를 활용하여 양질의 기독 콘텐츠에 접근하고, 시공간의 한계를 넘어 신앙 성장을 하도록 최일선에서 돕고 있다. 네 가지 비전, Dream for the [ ] 두란노서원의 네 가지 비전이 있다. 첫째, Dream for the ‘church’(교회의 성장과 성숙)다. 교회를 세우는 핵심 양육 콘텐츠를 제공해서 성도 개인과 공동체의 신앙 성숙을 돕는 게 사명이다. 둘째, Dream for the ‘Culture’(복음으로 세상을 변화)다. 기독교적 가치관을 담은 도서를 발행해서 복음적 관점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길을 제시하고, 신앙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세상 속에서 나타내도록 돕는다. 셋째, Dream for the ‘World’(땅끝까지 복음)다. 두란노서원은 미국, 남미, 대만, 일본 등 해외 지사를 운영하며 17개국과 QT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일대일제자양육 교재’, ‘QT’, ‘전도지 <최고의 행복> 등을 다국어로 번역해 현지에서 선교 도구로 활용하도록 돕고 있다. 넷째, Dream for the ‘Future’(다음 세대를 세우는 사역)다. 세대별 QT, 제자훈련, 성경공부 교재를 끊임없이 개발하고, 가정 예배와 신앙 전수를 돕는 콘텐츠 개발에도 앞장서고 있다. 중·고등학생을 위한 종교 교과서를 발행해 공교육 영역으로 사역의 지경을 확장하고 있다. 두란노서원의 발걸음 그리고 비전 두란노서원은 지난 45년 동안 연간 100여 종의 단행본과 목회 관련 잡지를 출간했다. 현재까지 단행본 총 4,500여 종을 세상에 내놓았다. 한국 교회의 영적 성장을 돕는 ‘교회와 협력하는 선교단체’로서의 사명도 굳건히 감당하고 있다. 두란노서원은 지난 시간 쌓아온 출판 사역의 성과에 머무르지 않고, ‘말씀 중심’이라는 본질적 정체성을 더 깊이 계승하며 하나님의 사명을 확장하고 있다. <일대일제자양육>, <생명의 삶> 등 검증된 양육 콘텐츠를 더욱 발전시키는 동시에, 디지털 플랫폼 ‘두플러스(Duplus)’를 통해 시대 변화에 부응하는 콘텐츠 혁신을 이어가고 있다. 이를 통해 시공간 제약을 뛰어넘어 성도들의 신앙 성장을 돕고, 종이 매체와 디지털 환경을 아우르는 새로운 복음의 통로를 마련하고자 한다. 두란노서원은 앞으로도 ‘오직 예수’라는 변치 않는 가치를 붙들고,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혁신적인 콘텐츠를 개발해 한국 교회 부흥과 세계 선교 완수를 돕는 가장 신뢰받는 동역자 역할을 해낼 것이다. 문의:support@duranno.com

     2025-12-27  제1570호

  • 주일강단

    [주일강단] 기뻐하여라, 은혜를 입은 자여  [주일강단] 기뻐하여라, 은혜를 입은 자여 <누가복음> 1:26~38 / 이재훈 위임목사 세상에서는 후손들이 조상의 삶과 그 업적을 기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조상들이 후손인 그분을 미리 전하고, 예언하고, 어떤 삶을 사실 것을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훌륭한 삶을 사셨기 때문에 메시아로 인정된 게 아닙니다. 메시아로 오시기로 예언되었고, 그 예언대로 메시아의 소명을 이루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성육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성육신하실 의무가 전혀 없었습니다. 오직 한 가지 이유는 하나님이 그렇게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자비로우신 하나님이 죄와 사망 가운데 있는 인간과 세상을 내버려두실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풍성하신 사랑과 자비하심 때문에 하나님이 성육신하시기로,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성육신하신 하나님 아들의 죽음을 통해서 모든 진노를 대신 담당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죽음을 삼키고, 죄를 이기고, 이 세상과 공중의 타락한 권세들을 무찌르는 능력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친히 오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담의 후손 가운데서는 그 누구도 합당한 자격을 갖춘 자가 없었고, 하늘의 천사들 가운데서도 합당한 능력을 갖춘 이가 없었습니다. 오직 성육신하신 하나님 아들의 헌신과 순종을 통해서 이 모든 일이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실 때 여자에게서 나게 하심을 말씀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 4절에서 “그러나 때가 차자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을 보내셔서 한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셨습니다”라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은 성경의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강조합니다. 그 첫 번째 예언이 <창세기> 3장 15절 “내가 너와 여자 사이에, 네 자손과 여자의 자손 사이에 증오심을 두리니 여자의 자손이 네 머리를 상하게 하고 너는 그의 발뒤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인간을 타락하도록 유혹한 뱀에게, 곧 사단에게 주신 심판과 저주의 말씀 가운데 장차 보내실 구원자를 여자에게서, 여자의 후손으로 오게 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구원자에 대한 약속의 말씀을 아담과 하와에게 주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에게 주시는 말씀에는 구원의 약속이 포함되지 않고, 뱀에 대한 저주의 말씀, 사단에 대한 심판의 말씀 속에 담아 주신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은 곧 사단에 대한 심판과 동시에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공의로운 심판을 통과하며 이루어집니다. 우리의 구원은 거저 주어지는 게 아닙니다. 죄에 대한 공의로운 하나님의 심판과 함께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성육신하신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사단에게 종이 되어 버린 모든 인간과 세상의 죄를 담당하신 그 십자가의 죽음, 그 공의로운 하나님의 심판을 통과하면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인의 후손을 통해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처녀에게 잉태케 하시는 두 가지 의미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다윗 왕실에 표적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처녀가 잉태해 아들을 낳고 그를 임마누엘이라고 부를 것입니다”(사 7:14). ‘친히’라는 단어의 의미는 무지하고, 거부할지라도 강권적으로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상태와 상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로 다윗 왕실에 표적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다윗 왕실의 후손 가운데 한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고, 그를 ‘임마누엘’이라 부를 거라는 것입니다. 처녀가 잉태하는 일을 기대할 리 없습니다. 전혀 기대하지도, 상상하지도 못했지만 이루어졌듯이, 모든 인간이 구원을 기대하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이 처녀에게서 태어나게 하신 아들을 통해서 임마누엘, 함께하는 역사가 일어날 것을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이 예언대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여자의 후손으로, 다윗의 왕실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여인의 후손, 처녀에게 아들을 잉태케 하신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인간 스스로 힘으로는 구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구원자는 인류 바깥에서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담의 후손 인류는 구원자를 스스로 낳을 수 없고, 교육이나 문명의 발전을 통해서도 구원자를 만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처녀가 잉태하는 것 같이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과 은혜, 역사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성령의 능력으로 죄가 없는 완전한 인성을 가능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무죄한 상태로 태어나신 것은 처녀의 아들로 태어나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성령의 능력과 보호하심으로 태어나셨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고,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께서 태어나셨습니다”(마 1:16). 이 족보의 의미는 <창세기> 3장 15절과 <이사야> 7장 14절에 예언된 대로 여인의 후손을 통해 메시아가 오실 것이고, 다윗의 후손을 통해 오되 처녀에게서 태어나는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가 예수님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타락 직후 주어진 말씀부터 시작해서 예수님 오시기 직전에 이르기까지 많은 예언과 역사적 사건을 통해 장차 오실 그분을 준비하셨습니다. 다윗의 후손인 처녀 마리아를 선택하셨습니다. 요셉만 다윗의 후손이 아니라 마리아도 다윗의 후손입니다. 하나님이 메시아 육신의 어머니를 택하실 때 마리아라는 믿음의 여인을 주목하셨습니다. 그것은 전례 없는 신비로운 일, 그리고 위험한 일을 요셉만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로부터의 오해를 감당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믿음으로 응답했고, 하나님은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성경은 동정녀 탄생을 논리적으로 증명하지 않습니다. 이 충격적이고, 당황스럽고, 감당하기 힘들 것 같은 소식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마리아의 반응을 통해 소개합니다. 어느 날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나 “기뻐하여라, 은혜를 입은 자여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신다”라고 인사합니다. 마리아는 천사의 인사에 당황하고 놀랍니다. 이러한 인사법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경건한 유대인들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선택, 특별한 소명을 받은 자에게 “은혜를 입은 자여”라는 표현을 쓰기 때문입니다. 만일 마리아가 경건한 삶을 살지 않았던 여인이었다면, 천사의 음성을 구별하지 못하고 놀라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무감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에 날마다 깨어 있는 사람만이 천사의 인사와 소식을 듣고 놀라워합니다. 마리아가 낳을 아들의 신분과 역할 “그러자 천사가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네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 보아라. 네가 잉태해 아들을 낳을 것이다. 그러면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는 위대한 이가 될 것이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주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 조상 다윗의 보좌를 주실 것이다. 그는 야곱의 집을 영원히 다스릴 것이며 그의 나라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30~33절). 천사가 마리아에게 전해준 이 소식은 구약의 모든 예언을 압축하고 또 압축한 것입니다. 이 짧은 말씀이 구약의 요약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마리아가 또다시 놀라워하며 질문합니다. “처녀인 제게 어떻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마리아의 말은 의심과 불신의 말이 아닙니다. “제가 어떻게 하나님 말씀이 이루어지는 일에 참여할 수 있겠습니까?”라는 질문입니다. 마리아와 비슷하지만 정반대 의도가 담긴 사례가 <누가복음> 1장에 나오는 제사장 사가랴의 질문입니다. 사가랴는 나이든 제사장입니다. 그런데 사가랴의 아내 엘리사벳이 자녀가 없어서 오랫동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셨는데 그때가 늦은 나이였습니다. 자녀를 낳을 수 없다고 여기는 때였습니다. 그때 사가랴가 “제가 어떻게 이 말을 확신하겠습니까? 나는 늙었고 내 아내도 나이 많았습니다. 징조를 보여주십시오”라고 응답했습니다. 사가랴의 ‘어떻게’는 ‘불신의 어떻게’입니다. 두 사람 모두 천사의 방문을 받았습니다. 두 사람 모두 출생에 대한 고지를 받았습니다. 두 사람 모두 ‘어떻게’라고 응답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차이를 보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똑같이 예배합니다. 똑같은 찬송을 부릅니다. 입술로는 똑같은 가사를 부르지만, 하나님은 그 마음과 영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를 보십니다. 하나님은 그 차이를 다 아시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이 질문은 믿음으로 수용하는 자세에서 가르침과 설명을 기대하는 질문입니다. “천사가 대답했습니다. ‘성령께서 네게 임하실 것이며 지극히 높으신 분의 능력이 너를 감싸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릴 것이다 성령이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능력이 너를 감싸 주심으로 네게서 태어날 아기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역사에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능력이 임하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므로 새 창조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천사는 마리아의 믿음을 견고하게 세워주기 위하여 사례를 듭니다. 보아라 네 친척 엘리사벳도 그렇게 많은 나이에 아이를 가졌다. 아이를 갖지 못하는 여자라 불렸는데 임신한 지 벌써 여섯 달째가 됐다.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전혀 없다”(35~37절). 성경에 아이를 낳지 못하는 가정에서 아이를 낳는 것으로 인해서 하나님이 역사하신 사례가 여러 가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아브라함과 사라입니다. 이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왜 이 가정들에 자녀를 낳지 못하다가 낳게 되는 역사가 일어났을까요? 하나님이 전능한 능력으로 역사하실 수 있다는 것을 역사 속에서 미리 보여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기뻐하여라 은혜를 입은 자여” “그러자 마리아가 대답했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의 여종입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러자 천사가 마리아에게서 떠나갔습니다(38절).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통로로 자신을 내어드린 것입니다. 순간적인 충동이 아닙니다. 평소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는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어떤 표적도 구하지 않았습니다. 천사가 전해준 그 음성만으로 만족했습니다. 어떤 표적 대신 가르침을 구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덮으심으로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는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마리아는 당시 알려진 제사장도 아니었습니다. 시골의 작은 처녀였을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을 통해서 놀라운 일을 이루십니다. 마리아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기뻐하여라 은혜를 입은 자여”라고 천사의 평가를 받았습니다. 당시는 어둡고 힘든 세상이었습니다. 로마의 압제가 있었습니다. 여성의 인권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힘겨운 착취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당시 권세자들과 지도자들은 부패했습니다. 어두운 세상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기뻐하여라, 은혜를 입은 자여”라고 말씀하신 것은 성육신으로 임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장례의 한복판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은혜를 입은 자들입니다. 성육신으로 오신 분을 믿는 모든 이들에게 기쁨과 은혜가 부어집니다. 여러분, ‘기쁨’과 ‘은혜’는 뜻이 통하는 단어입니다. 연결된 단어입니다. 은혜가 바로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서로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마리아처럼 은혜를 입은 자로, 기뻐하는 성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5-12-27  제1570호

  • 국내캠퍼스

    [News] 온누리의 크리스마스 온누리의 크리스마스 20~21일 성탄주일예배 24일 크리스마스 페스티벌, 25일 성탄감사찬양예배 온누리교회가 온 누리와 함께 풍성하고 따뜻한 성탄절을 보낸다. 12월 20~21일 성탄주일예배, 24일 크리스마스 페스티벌, 25일 성탄감사찬양예배를 드린다. 이웃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캠페인과 문화 행사도 내년 초까지 이어진다. ‘성탄주일예배’ 는 12월 20일(토)과 21일(일) 온누리교회 모든 캠퍼스에서 드린다. 이날 예배에서는 찬양사역팀이 ‘ 성탄 칸타타’를 한다. 12월 21일(일) 차세대 예배에서는 ‘성탄가정예배 가이드’ 가 담긴 갑티슈를 선물로 준다. 12월 24일(수)에는 ‘ 크리스마스 페스티벌’이 열린다. ‘ Love Came Down(사랑이 오셨네)’ 을 주제로 서빙고와 양재온누리교회에서진행된다. 서빙고는 오후 7시 30분 본당, 양재는 오후 7시 30분 사랑홀에서 열린다. 부천은오후 7시 30분 본당에서 ‘ 선물’ 을 주제로 크리스마스 패밀리 워십, 남양주는 오후 7시 30분 본당에서 ‘ 한 구유 이야기’ 를 주제로 성탄절 콘서트, 영종은 오후 7시 30분 백향목홀에서 ‘Joyful Christmas’ 를 주제로 성탄전야제를 한다. ‘성탄감사찬양예배’ 는 12월 25일(목) 1부 오전 9시, 2부 11시 30분, 3부 오후 1시 50분본당에서 드린다(서빙고와 양재 기준). 부천,수원, 대전은 1부 오전 9시, 2부 오전 11시 30분, 인천은 1부 오전 9시, 2부 오전 11시, 남양주, 강동, 양지, 영종, 제주는 오전 11시, 평택은 오전 10시 30분에 성탄감사예배를 드린다. 이웃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캠페인과 문화 행사도 풍성하다. 전도대상자를 순예배에 초대해서 교제의 기쁨을 나누고, 복음을 전하는 ‘ 열린순예배’ 를 드린다. 온누리교회 모든 공동체와 순에서 연말까지 기획하고 실행한다. 여러 사정으로 순예배에 참석하지 못했던 성도나 마음에 품고 기도하던 가족과 친구, 직장 동료 등을 초대해서 영화관, 음식점, 카페 등에서 자유롭게 순예배를 드리면 된다. 온누리교회 홈페이지(onnuri.org)에서 ‘열린순예배 <가이드북>’ 을 제공한다. 온누리 아트비전에서는 정기 회원전 ‘ 크리스마스 선물전’ 을 개최한다. 2026년 1월 4일(일)까지 온누리청소년센터 2층 온누리 아트갤러리에서 관람할 수 있다. 소품을 작품당 20만 원에 판매하고, 그 수익금 절반을 NGO 더멋진세상에 후원한다.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2025-26 송구영신 및 신년예배 1월 5~17일‘오직 예수 신년새벽기도회’ ‘2025-26 송구영신 및 신년예배’ 를 국내 온누리교회 모든 캠퍼스 본당에서 드린다. 송구영신예배는 12월 31일(수) 서빙고와 양재 오후 7시, 오후 9시, 오후 11시 부천 오후 8시, 오후 10시, 수원 오후 8시 30분, 오후 11시, 대전 오후 9시, 오후 11시, 인천 오후 7시, 오후 9시, 평택 9시, 남양주, 강동, 양지, 영종, 제주는 오후 11시에 드린다. 신년예배는 서빙고와 양재 1월 1일(목) 오전 9시, 오전 11시 30분, 부천, 대전 오전 10시, 남양주, 인천 오전 11시에 드린다. 수원, 평택, 강동, 양지, 영종, 제주는 신년예배를 드리지 않는다. 1월 5일(월)부터 17일(토)까지는 ‘ 2026 오직 예수 신년새벽기도회’ 가 이어진다. ‘ 나를 따르라’ 를 주제로 오전 5시 30분 국내 온누리교회 캠퍼스 본당에서 진행된다. 온누리교회 유튜브 채널과 CGN에서 실시간 중계한다. 이재훈 위임목사, R.T.Kendall 목사, 박종길 목사(서빙고온누리교회), 강부호 목사(양재온누리교회)가 말씀을 전한다. /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대청, ‘크리스마스 블레싱’ 시작 12월 28일까지 전국 30여 개 지역에서 대학청년부 ‘ 크리스마스 블레싱’ 이 시작됐다. 온누리교회 대학청년부 소속 청년들이 12월 20일(토)부터 28일(일)까지 전국 30여 곳으로 흩어진다. 크리스마스 블레싱은 전국의 지역 교회, 군부대, 그룹홈, M센터 등지를 찾아가 아기 예수 탄생 소식을 전하는 대학청년부의 대표적인 겨울 사역이다. 올해는 서울(서초, 강동, 은평 등), 경기(고양, 안산, 파주 등), 충청(단양, 음성, 옥천 등), 경남(진주, 산청, 하동 등), 전라(김제, 남원, 군산 등) 등 전국 30여 개 지역에서 이웃 초청 잔치, 어린이 성경학교, 마을 전도, 새벽송, 노방 찬양, 이주민 연합 예배, 군장병 초청 집회, 자립준비청년 멘토링 등을 한다. 지난 12월 6일(토)부터 13일(토)까지 이어진 ‘사랑愛나눔’ 은 막을 내렸다. 올해는 서울 시내 주민센터 및 복지관과 협력해서 사역했다. 온누리교회 소속 청년 1,100명이 홀몸 어르신과 다문화가정, 차상위계층 등 1,075가구에 물품을 선물했다. 이웃들에게 전달한 선물은 온누리교회를 드러내지 않고, 지역 교회와 기관 이름으로 전달했다. / 홍하영 기자 NGO 더멋진세상, 스리랑카 사이클론 피해 지역 긴급구호 NGO 더멋진세상이 사이클론 ‘ 디트와(Ditwah)’ 로 큰 피해를 본 스리랑카 주민들에게 식수와 식료품, 위생용품 등 긴급구호 물품을 전달하고 있다. 의약품 지원도 병행하고 있다. 스리랑카 사이클론 피해 복구를 돕는 모금운동도 전개한다. 동참하고자 하는 성도들은 NGO 더멋진세상 후원계좌(하나은행 573-910009-09905)로 후원금을 보내면 된다. 자세한 내용은 전화(02-2271-2246)로 문의하면 된다. 현재 스리랑카는 사이클론의 영향으로 저지대와 산간 지역 건물이 무너지고, 연쇄 산사태가 발생하는 등 피해가 엄청나다. 대규모 침수 피해까지 겹치면서 생활이 어려운 지경이다. / 홍하영 기자 평택온누리교회 창립 20주년 12월 21일 오전 11시 30분 본당 평택온누리교회 창립 20주년 기념 감사예배를 12월 21일(일) 오전 9시, 오전 11시 30분 본당에서 드린다. 신동식 목사(평택온누리교회 담당) 설교, 창립 20주년 기념 감사 케이크 커팅식, 성탄 칸타타 등의 순서가 이어진다. 평택온누리교회는 2005년 12월 25일 국내 일곱 번째 캠퍼스로 창립했다. 외국인 근로자와 다문화 가정을 섬기고, 젊은 부부와 차세대 양육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 박지혜 기자

     2025-12-20  제15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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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일강단] 성육신3. 만물의 으뜸, 교회의 머리  [주일강단] 성육신3. 만물의 으뜸, 교회의 머리 <골로새서> 1:15~20 /이재훈 위임목사 성탄의 본질은 성육신입니다. 성육신을 깊이 묵상하지 않고 성탄의 축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성육신을 ‘말씀이 육신이 되신 사건’으로 설명했습니다. 만물을 창조하신 말씀이신 그분만이 만물을 새롭게 창조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금지된 열매를 먹는 날엔 정녕 죽으리라”하신 그 말씀대로 이뤄져야만 했고, 그 말씀을 따라 사망과 멸망 가운데 처해 있는 인간과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말씀인 그분이 육신이 되어 죽음을 친히 담당하시는 길밖에 없었습니다. <빌립보서> 2장에서 성육신은 자신을 비우신 하나님의 겸손한 마음이 드러납니다. 우리가 놀라워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신 그분이 자신을 비우시고, 그 영광과 권리와 능력을 비우시며, 자신을 죽기까지 낮추신 겸손한 마음입니다. 죽기까지 낮아지심으로 지극히 높아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겸손한 마음을 묵상하는 것이 바로 성탄입니다. 하나님 아들 설명하는 두 단어 <골로새서> 1장에서 바울은 성육신을 우주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우리를 창조 이전의 상태로 데리고 갑니다. 이 땅에서 하늘로 데려갑니다. 성육신은 단순히 하나님이 아기로 태어나신 정도의 사건이 아닙니다. <골로새서> 1장 15절에서 20절에서 성탄을 우주적인 사건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성육신의 주체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두 단어로 설명합니다. 첫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여기서 ‘형상’은 ‘본질을 나타내는 실체’라는 뜻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그 어떤 형상도 하나님을 온전히 보여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우리에게 나타내 주신 형상만이 그분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 형상 일부분을 보여주신 것이 인간입니다.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습니다. 우리가 자유의지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 듣고 보고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고, 계획을 세우고, 약속하고 실행하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 형상의 지극히 일부분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완전히 보여줄 수 있는 분이기 때문에 “아무 형상도 만들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우리에게 온전히 보여주시는 분입니다. 둘째,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분’입니다. 단지 시간적 순서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모든 피조물 위에 초월해 계신 주권자’라는 뜻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이 낳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낳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창조주와 동일한 주인이십니다. 그래서 ‘만물이 그분 안에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그분을 위하여 창조되었다’고 표현합니다. 만물이 그분 안에서 만들어졌고, 그분을 통해 만들어졌고, 그분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골로새 교회 당시 유행했던 이단적인 가르침이 ‘영지주의’입니다. 넓게 보면 육은 악하고, 정신과 영은 선하다고 했던 플라톤 철학의 확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가르침에는 성육신을 공격하는 이단 사상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보통 인간은 아니지만 피조물 중 하나, 천사 같은 존재 아니면 하나님과 동등하지는 않은, 하나님보다 조금 열등한 존재라고 가르쳤습니다. 그 가르침이 당시 골로새 교회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올바로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창조의 근원이자 통로, 통치자 “하나님의 아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분이십니다. 이는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들, 곧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보좌들과 주권들과 권력들과 권세들이 하나님의 아들 안에서 창조됐기 때문입니다. 만물이 아들로 인해 창조됐고 아들을 위해 창조됐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은 그분 안에 함께 서 있습니다”(15~17절). 바울은 예수님을 창조의 근원이자 통로, 통치자로 소개합니다. 세상 모든 피조물이 창조된 이유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위해서입니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보좌, 주권, 권력, 권세들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다’라는 말씀을 강조하는 이유는 성육신의 목적을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성육신은 그분 안에서 세워진 권세들이 그분의 통치를 거부했을 때 그 통치권을 회복시키시기 위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성육신은 통치의 사건입니다. 성탄은 세상의 통치권을 다시 회복시키시기 위해 오신 하나님의 주권 선포의 날입니다. 창조주의 통치를 거부한 타락한 권세들을 무장해제 시키고, 다시 통치를 회복하고, 화목하게 하는 것입니다. 16절에서 비슷한 의미를 가진 단어들을 네 번이나 반복합니다. 보좌들, 주권들, 권력들, 권세들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17절 마지막에 ‘만물이 그분 안에 함께 서 있다’는 말씀에서 영어 ‘시스템(System)’이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어원이 같습니다. 하나님은 보이는 만물을 창조하실 뿐만 아니라 만물이 움직이는 시스템이 그 안에 있습니다. 그 안에 권세가 있습니다. 보좌, 주권, 권력, 권세는 하나님이 세상을 통치하시기 위해서 세우신 선한 질서와 권세를 의미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권세에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타락하고 반역했을 때 하나님을 반역하는 영적 권세에 휩쓸린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6장 12절에서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 대함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에베소서>의 정세와 권세는 타락하고 악해진 권세를 의미합니다. 이 둘을 연결시키면, <골로새서> 1장에 나오는 보좌, 주권, 권력, 권세들은 하나님이 세상을 통치하시기 위해 세우신 선한 질서와 권세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에베소서> 6장에서는 하나님을 반역하는 세상의 권세가 되어버립니다. 성육신하신 분이 세상에 오셨을 때, 세상 권세의 악한 모습이 밝히 드러났습니다. 가장 선하시고 온전히 의로우신 하나님의 아들이 오셨을 때 세상의 악한 권세는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성육신의 끝은 십자가입니다. 만물을 회복시키시는 길은 단지 ‘탄생’이 아니라 ‘죽음’을 통과해야만 했습니다. 그분의 죽음을 통해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성육신, 만물의 으뜸이신 분이 교회의 머리가 되신 사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거슬러 대적하는 조문들이 담긴 채무 증서를 제거하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 우리 가운데서 없애 버리셨습니다. 또한 십자가로 권력들과 권세들을 무장 해제시키시고 그들을 공개적인 구경거리가 되게 하셨습니다”(14~15절). 성육신하신 분의 목적은 십자가였습니다. 십자가를 통해, 그 죽음을 통해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권세, 원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통치의 통로가 되게 하신 주권, 권력, 권세들이 하나님을 반역하는 권세가 되었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모든 타락한 권세와 권력을 무장해제 시키셨습니다. 그 권세에 끌려 다니는 모든 채무 증서를 제거하셨습니다. 죄의 빚을 다 갚아주셨습니다. 십자가상에서 일곱 마디 남긴 말씀 가운데 한 말씀은 “다 이루었다”입니다. “다 갚았다”, “너의 빚은 끝났다”, “다 지불되었다”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죄인으로서 갚아야 될 모든 죄 값이 십자가에서 치러졌기 때문에 우리가 더는 타락한 권세의 종노릇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자유인이 되었다고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에 성육신의 목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두 개의 면류관을 쓰고 계십니다. 하나는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심으로 만물의 으뜸이 되신 것이고, 또 하나는 교회의 머리가 되신 것입니다. 만물의 으뜸이신 분이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성육신은 만물의 으뜸이신 분이 교회의 머리가 되신 사건입니다. 타락한 이 세상을 재창조하시기 위해서 성육신하심으로 죽음과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새로운 인류 곧, 교회의 머리가 되셨습니다. “또 하나님의 아들은 그분의 몸인 교회의 머리십니다. 그분은 근본이시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먼저 살아나신 분이십니다. 이는 그분이 친히 만물 가운데 으뜸이 되시려는 것입니다”(18절). 오늘 본문 15절에서 17절의 그분은 창조의 근원이십니다. 18절에서는 새 창조의 사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육신하심과 죽으심, 부활하심을 통해 그분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고, 교회의 머리가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육신은 옛 창조의 주인이신 분이 만물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새 창조를 이루시기 위해 교회의 머리가 되신 사건입니다. 모든 피조물보다 뛰어나시고 만물의 으뜸이신 분이 교회의 머리가 되셨습니다. 여기서 머리란 단순한 지도자를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생명을 공급하고, 방향을 제시하고, 모든 통치의 중심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탄을 통해 성육신의 신비를 믿는 것입니다. 만물의 으뜸이신 그리스도가 내 인생의 통치자가 되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나의 인생과 사역, 가정과 생각 위에 그리스도의 통치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길, 진리, 생명 19절에서 “아버지께서 모든 충만으로 아들 안에 거하게 하시기를 기뻐하셨다”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충만’이라는 단어가 당시 유행했습니다. ‘플레로마(Pleroma)’라는 단어인데, 당시 만연했던 영지주의에서는 여러 신, 천사 같은 존재가 모두 신성을 조금씩 가지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아니다. 하나님의 모든 신성한 능력과 영광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성육신하신 그분의 육체 안에 거한다”고 했습니다. 당시에는 하나님께로 가려면 천사를 통해야 된다고 해서 천사를 예배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헛되고, 오직 하나님께로 이르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 아들의 십자가의 피로 평화를 이뤄 만물, 곧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모든 것이 아들로 인해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셨기 때문입니다”(20절). 하나님은 모든 신성과 능력을 성육신하신 그분 안에 나타내기를 기뻐하셨고, 그분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땅에 있는 모든 만물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이것이 성육신의 중요한 목적입니다. 성육신의 목적은 만물이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그분과 화목하게 하시고 또한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않으시고 세상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과 화목하게 하셨으며 또한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맡겨 주신 것입니다”(고후 5:18~19). 예수님 십자가의 피는 인간의 죄를 넘고, 인간의 죄에 대한 구원을 뛰어넘으며, 우주 전체의 깨어짐과 분열을 치유하고 회복시키고 화목하게 하는 재물입니다. 성육신의 목적은 인간의 영혼 구원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만물이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분이 만물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분으로 오셨습니다. 그분의 몸 된 교회 역시 십자가의 피로 ‘화목하게 하는 소명’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성탄은 단지 교회의 절기가 아닙니다. 성탄은 만물이 하나님 아들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만물의 으뜸이 되신 사건입니다. 만물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사건입니다. 그분이 교회의 머리가 되심으로, 교회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과 성육신하신 목적이 계속이루어지도록 나타내고 계십니다. 교회는 그분의 몸으로서, 세상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일을 감당하게 하려고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성육신하셔서 온전한 통치자로 임하신 예수님은 만물의 으뜸이시고,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그분의 통치를 받아들임으로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감당하십시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5-12-20  제1569호

  • 사역

    [2026 선교헌금 작정을 앞두고] 그들은 왜 오래도록 선교헌금을 할까?  [2026 선교헌금 작정을 앞두고] 1. 그들은 왜 오래도록 선교헌금을 할까? 2. 그들은 왜 평생 선교를 했을까? 그들은 왜 오래도록 선교헌금을 할까? 황재숙 명예권사, 노국자 권사, 채현석 집사에게 묻다 “그냥.” 세 사람에게 ‘왜 오래도록 선교헌금을 하는지’를 물었더니 공통으로 돌아온 대답이었다. 아무 의미도, 뜻도 없다는 의미의 말이 결코 아니다. 선교는, 선교헌금은 숨을 쉬듯이, 밥을 먹듯이 아주 자연스럽지만, 하지 않으면 절대로 안 되는 그 특별함을 ‘그냥’이라는 말로 노래하고 있었다. 그들은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매년 선교헌금을 작정하고 있다. ‘온누리교회는 선교로 새해를 시작합니다’. ‘선교는 온누리교회의 심장입니다’라는 슬로건을 삶으로 살아내고 있는 이들을 만났다. 그 주인공은 황재숙 명예권사, 노국자 권사, 채현석 집사다. /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사실, 질문 자체가 식상해서 물을지말지를 고민했었다. 그렇다고 묻지 않을 수도 없는 질문이었다. "처음 선교에 관심을 두고, 선교헌금을 작정한 계기가 무엇입니까?" 세 사람 모두 각자 삶의 모양을 이야기하면서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런데 세 사람에게는 공통된 대답과 마음이 있었다. 그것은 선교와 선교사를 향한 지속적인 관심 그리고 사랑이었다. 그들 마음의 뿌리부터 분명 선교가 자리하고 있었다. 황재숙 명예권사는 ‘가는 선교사, 보내는 선교사’라는 표현에 깊이 감동하고, 선교헌금 작정을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다른 교회를 다니다가 온누리교회에 와서 교육받으면서 신앙이 체계적으로 정립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가는 선교사, 보내는 선교사’라는 말을 처음 들었는데, 마음에 쏙 와닿았습니다. ‘내가 선교 현장에 직접 가지 못하더라도 선교사님들의 선교에 동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선교헌금을 시작했고, 멈출 수 없었습니다.” 노국자 권사는 선교사들의 어려운 현실이 담긴 <선교사의 편지>를 읽고 기도와 후원을 결심했다. “20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온누리교회에서 파송한 어느 선교사님이 후원이 너무 절실해서 금식하며 사역하고 있다는 편지를 읽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보낼 때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축복했는데, 보내고 나서는 아무것도 해주지 않으면 어떡하나’라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매일 밤 9시에 동역자들과 함께 그 선교사님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고, 그 마음이 점점 커지면서 매년 선교헌금 작정으로 이어졌습니다.” 채현석 집사는 젊은 시절 동료 선교사를 돕던 경험이 선교헌금 작정의 출발점이었다고 말했다. “젊은 시절 몸담았던 선교단체에서 함께 활동하던 분들이 중국 선교사로 파송되면서 그분들을 위해 조금씩 헌금을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 온누리교회에 와서 매년 새해 첫 주와 둘째 주일에 선교헌금 작정 행사에서 틀어주는 선교사님들의 영상을 보고 큰 감동이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온누리교회에서는 본격적으로 선교에 동참할 수 있겠구나, 선교사님들과 마음을 함께 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선교헌금은 저에게 선교사님들과 함께 나누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반드시 응답하시는 하나님 그들에게는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선교헌금을 향한 마음을 오랜 세월 지키는 것이다. 사실 오래도록 한마음을 지키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 또 없다. 그런데도 그들은 변하지 않았고, 멈추지 않았다. 그 이유를 물었다. 채현석 집사는 “하나님은 성도의 마음을 결코 가볍게 보지 않으시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우리가 하나님께 믿음으로 드린 마음과 헌신을 무겁게 받아들이시고, 삶 가운데 반드시 보상하신다는 의미였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기에는 ‘이 상황에서 계속 선교헌금을 해도 괜찮을까?’ 걱정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계산하지 않고 믿음으로 봉헌했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서 직장이 달라지고, 경제적으로도 큰 어려움이 사라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은 믿음으로 드린 것에 반드시 응답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채 집사는 “보상이 반드시 물질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어떤 이에게는 건강으로, 어떤 이에게는 평강으로, 또 어떤 이에게는 삶의 안정으로 하나님이 응답하신다는 것이다. 모든 세대가 믿음으로 선교헌금 작정 행사에 동참해야 할 또 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황재숙 명예권사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그 고백을 듣는 내내 하나님이 주신 기쁨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다. “아들이 주는 생활비로 지내고 있었는데. 코로나19가 터졌습니다. 그 시기에 경제적인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그때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이 ‘이럴 때일수록 선교헌금은 절대로 줄이면 안 된다’였습니다. 성령님이 주시는 생각이라고 여겼습니다. 그 덕분에 더 큰 믿음으로 선교헌금을 작정했습니다.” 그날 이후 나타난 변화를 떠올리면서 황 명예권사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그날 이후 아들의 사업이 조금씩 안정되었고, 겪고 있던 경제적 어려움도 하나둘씩 해결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분의 때에, 그분의 방법으로 고치신다’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 모든 과정이 감사였습니다.” 중요한 건 믿음으로 한 걸음 더 내디뎌 보려는 마음 노국자 권사는 선교헌금 작정을 앞두고 성도들에게 “망설이지 말라”고 당부했다. 선교헌금에 대한 부담을 가질 필요가 전혀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예수님이 두 엽전을 가장 큰 헌금으로 받으셨던 것처럼, 가장 중요한 것은 금액이 아니라 마음이기 때문이다. “제가 주변 사람들에게 후원을 권할 때 ‘선교지에 계신 선교사님께 우리가 커피 한잔 대접한다고 생각하면 어떻겠느냐?’고 자주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직접 대접할 수는 없지만, 그 마음으로 마음을 조금씩 나눠서 동참하자는 뜻입니다” 채현석 집사는 노국자 권사의 제안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자고 했다. 그는 각자의 형편에 맞게 시작하되, 그 안에서 믿음을 조금씩 넓혀갈 것을 권면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 안에서 ‘조금 부담되지만 해볼 수 있겠다’는 지점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금액이 아니라 믿음으로 한 걸음 더 내디뎌 보려는 마음입니다.” 채현석 집사는 이 마음과 다짐을 훈련에 비유했다. “내가 1미터를 뛸 수 있는데, 늘 1미터만 뛰면 성장이 어렵습니다. 익숙한 수준에 머무르기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려는 시도가 성장을 이끕니다. 선교헌금 작정 역시 믿음의 성장을 위한 도전이 필요합니다” 은총, 관심, 하트 풍선 이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선교헌금을 단 하나의 단어로 정의해 달라고 부탁했다. 오랜 세월 선교헌금을 이어오며 깨달은 본질이 그 한 단어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황재숙 명예권사는 선교헌금을 ‘은총’이라는 단어로 정의했다. “시작할 수 있었던 것도, 오랜 시간 계속 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하나님이 하셨기 때문입니다. 부족함 없이 채워주시고 보장해 주신 것도 하나님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노국자 권사는 선교헌금을 ‘관심’이라는 단어로 정의했다. “내가 드린 선교헌금이 어느 나라로, 어떤 선교사에게 전달되는지를 알면 부담은 사라지고,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깁니다. 그 관심이 기도가 되고, 기도가 사랑이 되어서 선교헌금으로 이어집니다.” 채현석 집사는 선교헌금을 ‘하트 풍선’이라는 단어로 정의했다. “기도 모임에서는 기도를 선교지를 향해 쏘는 미사일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렇다면 선교헌금은 선교지에 계신 선교사님들께 따듯함과 위로, 힘을 전하는 하트 풍선 아닐까요?”

     2025-12-20  제1569호

  • 성인

    [<생명의 삶> QT 프리뷰(preview)] 바른 신앙에 대한 당부 &lt;생명의 삶&gt; QT 프리뷰(preview) 바른 신앙에 대한 당부 12월 22일 28일까지 &lt;여호수아&gt; 22:10~13:16 성탄절 QT 묵상포인트 1: 요단 동쪽과 서쪽 지파들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이 갈등은 하나님만 섬기려는 출애굽 2세대의 각오에서 비롯된 것이다. 형제 지파의 신앙을 위해 대표단이 제시한 해결책은 무엇인지, 정당한 해명이 갈등 해소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묵상하자.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가 요단 동편에 큰 제단을 쌓았다는 소식에 요단 서쪽 지파들이 모여 그들과 싸우려 한다. 진상 파악을 위해 파견된 대표단은 이전 세대가 행한 우상 숭배의 폐해를 언급하며 자기들 땅을 나눠 줄 테니 하나님의 제단 외 다른 제단을 쌓지 말라고 경고한다. 이에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는 제단을 세운 목적에 대해 해명한다. 그들은 요단 서쪽 지파들로부터 단절될 수도 있다는 염려 때문에 후손에게 증거로 남기기 위해 제단을 세웠다고 말한다. 오해가 풀린 대표단이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 보고하니 모두가 즐거워한다. 요단 동쪽 지파는 그 제단을 &lsquo;증거, 증인&rsquo;을 뜻하는 &lsquo;엣&rsquo;이라 부른다. 묵상포인트 2: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구원은 &lsquo;한 아기&rsquo;의 탄생으로 시작된다. 그 아기는 평강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다. 예수님의 오심은 이 땅에 구원과 심판을 동시에 가져왔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 아들, 구유에 누이신 아기 예수님을 마음에 그리며 성탄절 본문을 묵상하자. ▶예수님이 오시기 약 7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는 &lsquo;한 아기&rsquo;의 탄생을 예언했다. 그 아기는 고통과 흑암의 땅에 사는 백성에게 큰 빛과 위로를 주실 분이다. 구주 탄생 소식이 양을 지키던 이름 없는 목자들에게 선포된다. 천군 천사가 찬송하고 떠나간 후, 목자들은 베들레헴으로 달려가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님을 뵙는다.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던 시므온이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갈 때, 마침 아기 예수님을 안고 온 요셉과 마리아를 만난다. 시므온은 아기 예수님을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며, 예수님께 주어진 구속과 고난의 사명을 예언한다. 묵상포인트 3: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에게 복을 약속하셨다. 그러나 조건이 있다. 여호수아는 고별 설교를 통해 하나님을 가까이하며 사랑하라고 당부한다. 하나님의 복을 오래도록 누리는 삶이 되도록 우리가 가까이할 것은 무엇이며, 멀리할 것은 무엇인지 묵상하자. ▶나이 많은 여호수아는 자신의 때가 끝나 감을 알고, 온 이스라엘을 소집해 고별 설교를 한다. 그는 하나님이 수많은 전쟁에서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신 분임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힘써 율법을 지키고, 이방 신을 부르지 말며, 하나님만을 가까이하고 그분을 사랑하라고 당부한다. 만일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사람과 혼인하고 서로 왕래하면 그들이 이스라엘에게 올무, 덫, 옆구리의 채찍, 눈의 가시가 되어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망할 것이다. 적용을 위한 가이드 ▶하나님의 사람은 가까이할 것과 멀리할 것을 구별해야 한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이라면 손해를 보더라도 단호히 끊어 낼 수 있도록 은혜를 구하자. ▶선한 의도로 행한 일도 오해받을 수 있다. 서로 간에 불필요한 갈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지혜롭게 소통하고 해명하자. ▶나 개인의 유익보다 신앙 공동체의 하나 됨과 유익을 위해 힘쓰자.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일이라면 항상 우선순위에 두고 실행하자. ▶자녀 혹은 다음 세대가 믿음의 길을 바르게 걸어가도록 계속해서 권면하자. ▶나에게 구원과 영생을 선물해 주신 예수님을 기억하고, 가족과 함께 이번 성탄을 의미 있게 보내도록 계획해 보자. / &lt;생명의 삶&gt; 편집부

     2025-12-19  제1569호

  • 칼럼

    [신앙에세이] 매일 ‘만나’ 신앙에세이 매일 &lsquo;만나&rsquo; 사역하면서 내 안에는 늘 &lsquo;영적으로 어떻게 성장해 나가고 있는가?&rsquo;라는 한 가지 물음이 자리하고 있었다. 여러 사역 일정 속에서 바쁘다는 이유로 정작 내 영혼에 필요한 말씀을 깊이 누리지 못할 때가 많았다. 말씀을 읽어야겠다는 마음은 분명히 있었지만, &lsquo;바쁘니까 나중에 하자&rsquo;라는 핑계가 늘 따라다녔다. 올해 여름, 파워웨이브 친구들과 함께 캠프와 아웃리치를 다녀온 뒤에 학생들 안에 하나님을 향한 더 깊은 갈망이 샘솟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양 떼를 맡은 목자라면 내가 먼저 말씀 앞에 서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말씀 읽기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파워웨이브 친구들에게 선언했다. &ldquo;매일 만나서 말씀 읽자!&rdquo; 선언하고 나니 여러 두려움이 밀려왔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내 신앙에도 성장을 위한 돌파가 필요했고, 그 중심에는 반드시 말씀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말씀 통독 모임의 이름을 &lsquo;매일 만나&rsquo;라고 지었다. 이 이름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있다. 첫째,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40년을 지나 가나안 땅에 이를 수 있었던 이유처럼,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날마다 필요한 만큼 공급되는 만나의 은혜를 누리는 삶이다. 둘째, 말 그대로 매일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서로 만나서 말씀을 읽는 시간이다. 이 두 가지를 소망하며 &lsquo;매일 만나&rsquo;를 시작했다. 학생들이 학원에서 돌아오는 시간인 밤 10시 30분에 모여 라이브 방송을 켜고, 신약 성경부터 매일 3장씩 소리 내어 읽기로 했다. 성경 속 다양한 인물들을 떠올리며 각 캐릭터에 어울리는 목소리를 연기하다 보면 혼자 읽을 때보다 훨씬 재미있고, 인물들의 마음을 더 생생하게 느끼며 말씀을 읽게 된다. 학생들도 혼자서는 힘들었는데 함께 읽는 이 모임 덕분에 성경이 훨씬 흥미롭고 가깝게 느껴진다고 고백했다. 말씀을 다 읽고 난 다음에는 짧은 강해와 함께 묵상 나눔과 질문을 올리는 시간을 가진다. &lsquo;질문이 많이 나올까?&rsquo;라는 우려와 달리 아이들의 수많은 질문으로 좀처럼 대화가 끝나지 않는다. 놀랄 만큼 깊이 있는 묵상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질문들에 오히려 내가 당황하고 배울 때가 많다. 열정적으로 나누다 보면 어느덧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솔직히 말하면 &lsquo;매일 만나&rsquo;를 시작한 이후 늦게 자니까 몸은 피곤하다. 때로는 퇴근 후 깜빡 잠들었다가 늦게 시작하는 날도 있었다. 그런데도 매일 말씀을 읽고 함께 묵상하며 삶에 적용하기로 결단하니까 영이 살아나고, 마음은 더욱 기쁨으로 충만해진다. &ldquo;그분이 너희를 낮추시고 배고프게 하셔서 너희나 너희 조상들이 전혀 알지 못했던 만나로 먹이신 것은 너희를 겸손하게 하여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임을 가르쳐 주시려는 것이었다&rdquo;(신 8:3).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할 때 하나님은 딱 하루 치 만나만 내려주셨다. 욕심을 부려 이틀 치를 쌓아두면 상해서 먹을 수 없게 하셨다. 그래서 날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필요한 은혜를 공급받을 수밖에 없었다. 만나를 하루 치만 주신 이유는 분명하다. 바로 날마다 하나님이 우리를 먹이시고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신뢰하게끔 하기 위한 훈련이다. 우리는 매일 밥을 먹는다. 육체의 배고픔은 쉽게 놓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혼의 배고픔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어느 순간부터 조금 굶겨도 괜찮은 듯 여기고, 때로는 아예 배고픔을 잊고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ldquo;너희는 나의 말씀 없이는 살 수 없다&rdquo;고. &ldquo;밥을 먹듯이 말씀을 매일 먹어야 살아갈 수 있다&rdquo;고. 오늘 하루도 우리를 살리는 만나를 주실 하나님을 기대한다. / 이형목 목사(차세대파워웨이브)

     2025-12-13  제1568호

  • 주일강단

    [주일강단] 성육신2. 자신을 비우신 하나님의 겸손 [주일강단] 성육신2. 자신을 비우신 하나님의 겸손 &lt;빌립보서&gt; 2:5~11 /이재훈 위임목사 사도 바울이 여러 지역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은 &lsquo;예수님의 성육신하심&rsquo;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임하신 예수님을 증거했던 사도 요한 같이, 사도 바울은 또 다른 표현과 언어로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성육신의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의 여러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면서도 성육신을 기억하고,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고 강조합니다. 빌립보교회는 다툼과 분열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lt;빌립보서&gt; 2장에서는 어떻게 한 마음 한 뜻으로 하나 될 것인지를 교훈하는데, 성육신에 관한 진리의 말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툼과 분열로 얼룩진 상황의 해결책은 성육신하신 예수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분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여러 문제를 만나지만, 그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해결책은 언제나 마음에 초점이 있습니다. 타락한 우리의 옛 마음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고,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주신 새 마음을 품는 것이 인생의 많은 문제에 대한 해결책입니다. 사람은 법과 제도를 통해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보고, 사람들을 찾으며 해결하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새 마음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ldquo;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rdquo;는 것은 우리에게 없는 것, 우리 바깥에 있는 것, 우리가 생각하고 상상하지 못했던 것을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성육신하신 예수님 안에 있는 마음을 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lt;빌립보서&gt; 1장 27절에서도 &ldquo;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rdquo;고 말씀했는데,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생활도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것으로 가능합니다.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마음 성육신의 놀라운 신비와 축복은 &lsquo;어떻게 영이신 하나님이 인간의 육을 입을 수 있느냐&rsquo;가 아닙니다. 그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에 비하면 놀라운 게 아닙니다.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피조물의 몸을 입으셨다는 것은 창조의 신비와 능력에 비하면 놀라운 게 아닙니다. 우리가 놀라워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 자기를 비우시고 겸손하게 낮아지신 그 마음입니다.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마음, 하나님이 사람이 되심으로 자기를 비우신 그 겸손한 마음이 놀라운 것입니다. 본래 하나님이신 그분, 온전히 영광을 가지신 그분이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여기신 그 마음이 놀라운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군가 자신을 인정하지 않거나 무시하면 분노합니다. 인격이 모독 받을 때는 더욱 분노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여기는 일에 매우 서툽니다.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신 분이 자신을 비우시며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놀라워해야 합니다. &lsquo;육신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셨다&rsquo;는 것도 놀라운 사실이지만, 그 마음, 하나님의 겸손을 더 놀라워해야 합니다. &ldquo;그는 본래 하나님의 본체시다&rdquo;라고 말씀했습니다. 왜 바울은 간단하게 &lsquo;하나님&rsquo;이라고 표현하지 않았을까요? &ldquo;그는 본래 하나님이십니다&rdquo;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닌데, 왜 &lsquo;하나님의 본체시다&rsquo;라는 문장을 덧붙였을까요? 바울이나 빌립보 성도들도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은 분명히 믿고 있었을 것입니다. 단순히 &lsquo;하나님&rsquo;이라고 표현했다면, 그 다음에 나오는 &lsquo;자신을 비우셨다&rsquo;는 표현으로 연결되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강조할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이신 그분이 포기하신 것을 강조할 것인지 선택해야만 했을 것입니다. 그분이 하나님이심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편지를 쓰는 사람이나 편지를 받는 빌립보 성도들도 의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바울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lsquo;그분이 자신을 비우신 겸손&rsquo;입니다. 그래서 &lsquo;하나님&rsquo;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lsquo;하나님의 본체&rsquo;라고 설명함으로써 자신을 비우신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아담의 길과 그리스도의 길 그렇다면 무엇을 비우셨다는 것입니까? 하나님 되심은 비울 수가 없습니다. 본성은 버리거나 비울 수 있는 성격이 아닙니다. 그래서 무엇을 비웠는가를 설명하기 위해서 &lsquo;하나님과 동등 됨을 기득권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rsquo;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하나님과 동등 됨을 기득권으로 여기지 아니하셨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님과 동등 됨을 탈취하려고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lt;창세기&gt; 3장에서 인간 타락의 본질은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했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 권리를 탈취하고자 했던 사건이 바로 인간의 타락입니다. 바울은 태초에 인간의 타락과 예수님의 모습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길과 그리스도의 길을 대조하는 것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처럼 높아지려고,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려다가 타락 해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등하신 그분은 아담처럼 취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를 비우심으로 낮아지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을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으로 높이시고, 주님으로 고백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동등 됨을 탈취하려다가 추락한 인간의 모습과 하나님과 동등 된 그분이 아담이 탈취하려고 했던 것을 스스로 내려놓으시고 자신을 비우심으로 하나님이 세우시는 두 갈래 인생길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스스로 끊임없이 높아지려고 했다가 끊임없이 추락하는 인생과 끊임없이 자신을 낮추심으로 하나님이 세우시는 인생입니다.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 그 본성은 비워지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으로서 누릴 수 있는 기득권이라고 표현해도 좋고, 권리라고 표현해도 좋은데, 그것을 전혀 주장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단이 광야에서 예수님을 유혹한 본질은 &ldquo;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권리를 왜 주장하지 않느냐?&rdquo;는 것입니다. 신적인 권리와 기적을 통해서 자신을 보호하고 영광을 나타내면 될 텐데, &ldquo;왜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하냐?&rdquo;며 유혹한 것입니다. &ldquo;십자가 없이 하나님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네가 왜 고난을 받느냐, 불필요한 것 아니냐&rdquo;는 게 사단의 유혹 본질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의 모든 권리, 받으셔야 되는 영광을 내려놓으셨습니다. 본성이 사라진 게 아니라 하나님의 본체로서의 영광을 내려놓으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영광을 온전히 가지신 분은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여기셨는데, 하나님 아니면 가치를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은 스스로 하나님 없이 위대한 존재가 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다툼과 분열, 많은 죄악의 모습이 나타난 것입니다. 자신을 비우시고 취하신 세 가지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등 된 분으로 자신을 비우시고 취하신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종의 형체를 가졌습니다. &lsquo;종의 형체&rsquo;라는 단어를 육체적인 모습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종으로 여기셨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관점과 태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권리만 가지고 의무가 없으신 하나님이 권리는 없고 의무가 있는 종으로 자신을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체이신 분이 자신을 종의 형체로 간주하시고 여기셨습니다. 둘째, 사람의 모양이 되셨습니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39;되셨다&#39;입니다. 단순 과거입니다. 단회적 사건이 취소되지 않고 영원히 지속되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이것을 믿기 어려워서 잠시 육체가 되셨다가 다시 돌아가셨다는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성육신은 잠시 사람이 되셨다가 되돌아가신 게 아닙니다. 성육신하신 존재로 계속 존재하시는 것입니다. 그 몸으로 십자가에 죽으셨고, 그 몸으로 부활하셨고, 승천하셨고, 다시 오실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몸으로 죽게 되고 부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모양이 되셨다는 것은 인간의 본성으로 변질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여전히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완전한 사람이 되신 것이 성육신입니다. 셋째,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취하셨습니다. 죽음이라는 단어는 원래 하나님에게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완전한 사람이 되셨기에 하나님의 본성을 가지신 분이 완전한 사람으로서 죽으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성은 자신을 비우시고, 고통과 십자가의 죽음을 감당하시고 인내하시는 데 사용하셨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예수님이 자신을 비우셨을 때, 철저하게 자발적으로 낮아지는 겸손한 마음이었다는 점입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라 의식적,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헌신이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겸손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lsquo;humility&rsquo;와 모욕 혹은 굴욕을 의미하는 &lsquo;humiliation&rsquo;이 같은 단어는 라틴어 &lsquo;humilitas&rsquo;에서 나왔습니다. 왜 같은 단어에서 전혀 다른 의미가 되었을까요? 이것을 구분하는 기준이 자발성에 있습니다. 힘든 일을, 고난을 자발적으로 선택해서 한 것은 겸손이지만, 원하지 않는데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면 그 고난의 깊이만큼 굴욕을 느끼게 됩니다. 똑같은 일임에도 하나는 겸손이 될 수 있고, 하나는 굴욕이 될 수 있습니다. &lsquo;humilitas&rsquo;라는 라틴어는 &lsquo;humus&rsquo;라는 흙, 먼지라는 단어에서 나왔습니다. 인간이 흙으로 지어졌다는 것입니다.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기억할 때 겸손이 이루어집니다. 이것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으면 굴욕을 느끼게 됩니다. 아담이라는 단어도 &lsquo;아다마&rsquo;라는 히브리어, 흙이라는 뜻입니다. 인간의 생명을 지탱하는 모든 미네랄 성분이 흙에서 나온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인간의 생존을 위해서 만들어 주신 것을 취해야만 우리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후회하지 않는, 지속적인 헌신 &ldquo;누가 내게서 생명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내놓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내놓을 권세도 있고 또다시 얻을 권세도 있다. 이 계명은 내가 내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것이다&rdquo;(요 10:18). 그분의 자발적인 헌신은 &lsquo;후회하지 않는 헌신&rsquo;입니다. 돌이킬 마음이 없는 지속적인 헌신입니다. 예수님이 자발적으로 자신을 비우게 한 힘은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에서 왔습니다. 성육신하신 예수님은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경외심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ldquo;나는 아무것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나는 아버지께 들은 대로만 심판하기 때문에 내 심판은 공정하다. 이는 내가 내 뜻대로가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기쁘게 하려 하기 때문이다&rdquo;(요 5:30). &ldquo;아무것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rdquo;라는 것은 의지와 능력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모든 의지와 능력이 아버지하나님의 뜻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군중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군중을 기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자신을 맞추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에 초점을 맞추고, 그분을 경외할 따름이었습니다. 어떤 일이든지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게 동기라면, 반드시 그만두게 될 것입니다. 또 아무 런 열매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을 기쁘시게 하려는 예수님의 겸손과 낮아짐이 있을 때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자신을 비우신 겸손으로 낮아지셨을 때 하나님은 그분을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시고, 모든 무릎을 그분 앞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술로 그분을 주님으로 인정하고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세주(Savior)가 되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주님(Lord)이 되시는 것입니다. 성육신하심으로 자기를 비우신 겸손으로 죽기까지 우리를 대신해 죽으셨으니, 그분이 곧 우리의 주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기 위해 성육신하신 예수님을 하나님이 지극히 높여 주님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분을 주님으로 온전히 고백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온전히 고백하고 살아간다면 우리에게 주어지는 축복은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마음이 품어지는 것입니다. &ldquo;예수님이 나의 주님이십니다&rdquo;라고 온전히, 철저히, 꾸준히 삶 속에서 인정할 때 그리스도의 성육신하신 겸손의 마음이 우리 안에 임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성육신이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보여주는 하나님의 원리입니다. 이 축복을 누리십시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5-12-13  제1568호

  • 성인

    [<생명의 삶> QT 프리뷰(preview)] 사명 완수에 따르는 안식 [&lt;생명의 삶&gt; QT 프리뷰(preview)] 사명 완수에 따르는 안식 12월 15일~21일까지 &lt;여호수아&gt; 19:1~22:9 묵상포인트 1: 제비뽑기로 땅 분배를 마치니, 마침내 가나안 땅이 이스라엘의 소유가 된다. 땅 분배가 마무리되자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도피성을 정하라고 명하신다. 도피성을 여러 곳에 두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묵상하자. ▶시므온 지파는 분깃이 많은 유다 지파 기업 중에서 그 가족대로 제비를 뽑아 기업(유산)을 받는다. 스불론, 잇사갈, 아셀, 납달리, 단 지파가 차례로 기업을 받는다. 단 지파는 자신들의 경계를 확장해 헤르몬산 부근의 레셈을 점령하고 단이라 이름을 붙인다. 마지막으로 정복 전쟁과 땅 분배를 주도했던 여호수아에게 딤낫세라를 기업으로 준다. 하나님은 실수로 살인한 자를 보호하기 위해 도피성을 정하라고 명하신다. 이 성읍으로 도피한 자는 재판을 받기까지, 또는 당시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거기서 살아야 한다. 대제사장이 죽은 뒤에야 그는 자기 성읍으로 돌아갈 수 있다. 이는 대제사장의 죽음이 살인자의 속죄와 연결됨을 의미한다. 묵상포인트 2: 레위 지파는 땅 분배에서 제외되었다. 하나님이 그들의 기업이 되시기 때문이다. 여호수아는 레위 사람에게 성읍과 목초지를 분배한다. 레위 사람을 위해 이스라엘 자손이 어떤 희생을 감수하는지, 하나님이 레위 사람을 흩으신 이유는 무엇인지 묵상하자. ▶레위 족장들이 여호수아와 지도자들에게 나아와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자신들이 거주할 성읍과 목초지를 달라고 요청한다. 이스라엘 자손은 레위 사람을 위해 기꺼이 자기 기업에서 성읍과 목초지를 내준다. 레위 사람이 거주할 성읍 역시 제비뽑기로 정해진다. 아론 자손이 속한 고핫 자손에서부터 시작해 게르손 자손, 므라리 자손에게 성읍과 목초지를 분배한다. 레위 사람을 위한 분배까지 마무리하니 이스라엘은 바라던 안식을 누리게 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편이 되어 싸워 주시니 이스라엘과 맞서는 이가 없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하신 선한 말씀이 하나도 남김없이 다 이루어진 것이다. 묵상포인트 3: 가나안 땅의 정복과 분배가 완료되자 여호수아는 요단 동쪽에서 기업을 분배받은 지파들을 돌려보낸다.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를 향한 여호수아의 칭찬은 어떠했는지, 그들에게 하는 당부의 말은 무엇인지 묵상하자. ▶요단 동쪽에서 이미 기업을 분배받은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는 앞장서서 가나안 땅 정복 전쟁에 참여해 모세와의 약속을 지켰다. 여호수아는 그들을 요단 동쪽 소유지로 돌려보내며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고,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라고 당부한다. 그리고 탈취한 전리품을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그들의 형제들과 나누라고 한다. 적용을 위한 가이드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 분배가 완결된 후에야 자기 몫의 땅을 받았다. 공동체를 위해 책임감 있게 사명을 완수하는 사람이 되자. 또한 우리나라의 지도자들이 자기 유익이 아닌 국민의 유익을 위하는 자들이 되길 기도하자. ▶실수로 지은 죄와 고의로 지은 죄를 구별하고, 내게 주어진 자리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하자. ▶하나님은 그분을 위해 봉사하는 레위 사람들에게 합당한 필요를 채우신다. 전임 사역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잊지 말자. ▶하나님이 내게 주신 선물들 중 지체들과 나눌 것들을 생각하고 실천하자. ▶올 한 해 성취된 하나님의 선한 약속은 무엇인가? 나는 신실하지 못할 때가 많았지만, 한결같은 신실함으로 은혜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하자. / &lt;생명의 삶&gt; 편집부

     2025-12-12  제15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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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 낮은 곳, 더 낮은 곳으로! 낮은 곳, 더 낮은 곳으로! 대학청년부 겨울사역&lsquo;사랑愛나눔&rsquo;,&lsquo;크리스마스 블레싱&rsquo; 홀몸 어르신, 다문화가정, 차상위계층, 지역 교회, 군부대 등 섬김 올겨울에도 온누리교회 대학청년부 소속 청년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들고 낮은 곳, 더 낮은 곳으로 간다. 2025 대학청년부 겨울사역이 막 올랐다. 지난 12월 6일(토)부터 &lsquo; 사랑愛나눔&rsquo; 이 시작됐고, 12월 20일(토)부터 &lsquo; 크리스마스 블레싱&rsquo; 이 이어진다. &lsquo;사랑愛나눔&rsquo; 은 서울 시내 주민센터, 복지관, 지역 교회 등과 함께 홀몸 어르신, 다문화 가정, 차상위계층 등에 식료품과 생필품을 전달하는 사역이다. 온누리교회 이름 대신 지역 교회와 기관 이름으로 이웃들에게 선물을 전달한다. 올해 &lsquo; 사랑愛나눔&rsquo; 에는 온누리교회 대학청년부 소속 청년 1,100명이 참가할 예정이다. 이웃 1,075가구를 방문할 계획이다. &lsquo;크리스마스 블레싱&rsquo; 은 지역 교회와 군부대, 그룹홈, M센터 등지를 방문해서 아기 예수 탄생의 기쁨을 이웃들과 함께 나누는 사역이다. 올해 크리스마스 블레싱은 서울시 서초구, 강동구, 은평구, 경기도 고양시, 안산시, 파주시, 충청북도 단양군, 음성군, 옥천군, 경상남도 진주시, 산청군, 하동군 등 30여 개 지역에서 한다. 이웃 초청 잔치, 어린이 성경학교, 마을 전도, 이주민 연합 크리스마스 예배, 군장병 초청집회, 자립준비청년 멘토링, 새벽송, 성탄 전야제 행사, 노방찬양 등을 한다. 지난해 &lsquo; 사랑愛나눔&rsquo; 에는 온누리교회 대학청년부 소속 청년 955명이 참가했다. 서울 시내 주민센터, 복지관, 지역 교회 등과 연합해서 이웃 1,185가구에 쌀과 김치, 생필품을 전달했다. &lsquo; 크리스마스 블레싱&rsquo; 에는 온누리교회 대학청년부 소속 청년 2,324명이 전국 23개 지역 교회, 군부대, M센터 등지를 찾아가 이웃 초청 잔치, 어린이 성경학교, 마을 전도 등을 했다.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quot;이웃과 함께&ldquo;메리 크리스마스&rdquo; &#39;온누리의 크리스마스 2025&rsquo;, &lsquo;열린순예배&rsquo; 온누리교회가 이웃과 함께 메리 크리스마스를 보낸다. &lsquo; 온누리의 크리스마스 2025&rsquo; 와 &lsquo;열린순예배&rsquo; 가 이어진다. &lsquo;온누리의 크리스마스 2025&rsquo; 는 예수님 탄생을 축하하며 성도들이 만든 그림과 사진으로 이웃들에게 마음을 전하는 크리스마스 축제다. 이벤트에 참여한 60명을 선발해서 그 성도들의 이름으로 자립준비 청년들에게 크리스마스 쿠키와 카드를 전달한다. 축제에 참여하기 원하는 성도들은 크리스마스 카드(그림, 캘리그래피, 사진, 디지털 아트 등)를 직접 만들어서 제출하면 된다. 인스타그램 DM이나 해시태그(#온누리의크리스마스2025), 이메일(onnurismart@gmail.com), 우편(서울 용산구 이촌로 347-11 온누리교회 본관 지하 1층, 소셜 네트워크 팀 이경희 사역자) 중에서 한 가지 방법을 선택하면 된다. 온누리교회 모든 공동체와 순에서 연말까지 &lsquo;열린순예배&rsquo; 를 기획하고 실행한다. 여러 사정으로 순예배에 참석하지 못했던 성도나 마음에 품고 기도하던 가족과 친구, 직장 동료 등을 초대해 영화관, 음식점, 카페 등에서 자유롭게 순예배를 드리면 된다. 2025 성탄 예배는 12월 24일(수)과 25일(목) 드린다. 수요목양예배 &lsquo; 크리스마스 페스티벌&rsquo; 은 12월 24일(수) 오후 7시 30분 서빙고온누리교회 본당에서 열린다. 성탄찬양예배는 12월 25일(목) 온누리교회 각 캠퍼스에서 드린다. 서빙고 기준 1부 오전 9시, 2부 11시 30분, 3부 오후 1시 50분에 본당에서 드린다. / 홍하영 기자 CGN 다큐 영화 &lsquo;무명(無名)&rsquo;수상 제17회 한국기독언론대상 해외선교부문 최우수상 CGN이 제작한 다큐 영화 &lsquo; 무명(無名)&rsquo; 이 한국기독언론인연합회(CJCK)가 주최한 &lsquo;2025 한국기독언론대상 해외선교부문 최우수상&rsquo; 을 수상했다. 12월 4일(목) 새문안교회 언더우드홀에서 시상식이 있었다. 현재 영화 &lsquo; 무명(無名)&rsquo; 은 영화 1:1 결연 캠페인 &lsquo; 무명(無名)의 복음 릴레이&rsquo; 와 &lsquo; 찾아가는 상영회&rsquo; 로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lsquo; 무명(無名)의 복음 릴레이&rsquo; 는 후원금 1만 원당 1명의 선교사가 영화 &lsquo; 무명(無名)&rsquo; 을 볼 수 있도록 CGN이 초대하는 캠페인이다. &lsquo; 찾아가는 상영회&rsquo; 는 미자립교회 목회자와 성도, 재소자, 해외 선교사와 한인 디아스포라를 위해 지역 교회나 교도소, 지역 영화관 등지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캠페인이다. 문의: 02-3275-9363 / 홍하영 기자 온누리교회 장로 64명 장립 2025 장로장립예배 명예장로 3명, 시무장로 61명 온누리교회 신임 장로 64명이 세워졌다. 12월 6일(토) 오후 4시 서빙고온누리교회 본당에서 &lsquo; 2025 장로장립예배&rsquo;를 드렸다. 명예장로 3명, 시무장로 61 명이 장립됐다. 2025 장로장립예배는 당회서기 이인용 장로 대표기도, 장로합창단 특별찬양, 한기채 목사(중앙성결교회) 설교, 최이정 장로 장립자 간증, 합심기도, 서약, 세족식, 이재훈 위임목사 안수기도 및 선포, 이재규 장로 권면, 크룩스 특순, 선물 증정, 장로의 기도와 답가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신임 장로들은 &lsquo; 2025 장로사관학교&rsquo;를 수료하고, 노회에서 치른 장로고시를 통과했다. / 홍하영 기자 NGO 더멋진세상, 스리랑카 사이클론 피해 지역 긴급구호 NGO 더멋진세상이 스리랑카 사이클론 &lsquo; 디트와(Ditwah)&rsquo; 피해 지역에서 긴급구호를 한다. 스리랑카는 현재 저지대와 산간지역을 중심으로 대규모 침수, 건물 붕괴, 연쇄적 산사태가 발생해서 일상이 마비된 상황이다. NGO 더멋진세상은 스리랑카 수재민들에게 식수, 식품, 위생용품 등 긴급구호 물품을 지원하고, 치료와 전염병 예방을 위한 의약품을 지원하고 있다. 스리랑카 사이클론 디트와 피해 지역 긴급구호에 동참하고자 하는 성도들은 NGO 더멋진세상 후원계좌(하나은행 573-910009-09905)로 후원금을 보내면 된다. 문의: 02-2271-2246 / 홍하영 기자

     2025-12-06  제1567호

  • 주일강단

    [주일강단] 성육신1. 말씀이 육신이 되어  성육신1. 말씀이 육신이 되어 &lt;요한복음&gt; 1:14~18 /이재훈 위임목사 복음의 가장 중요한 진리 두 가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입니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 먼저 믿고 깨달아야 될 진리가 바로 &lsquo;성육신의 진리&rsquo;입니다. 성육신하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기에 우리에게 구원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성육신하신 몸이 죽으셨고, 부활하셨기에 그분의 생명이 우리에게 주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역사의 특별한 의미와 우리의 구원과 생명의 진리가 되는 것은 그분이 성육신하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lsquo;성육신&rsquo;이라는 단어 자체는 나오지 않습니다. 영어로 &lsquo;Incarnation&rsquo;이라는 단어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는데, &lsquo;육체가 되다&rsquo;라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 14절에서 &ldquo;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rdquo;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lsquo;말씀&rsquo;은 &lt;요한복음&gt; 1장 1절에 나옵니다. &lt;요한복음&gt; 1장 1절에서 &ldquo;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모든 것이 그 말씀을 통해 지음을 받았고 그 말씀 없이 된 것은 하나도 없다&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이 태초에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육신이 되셨습니다. &lt;요한복음&gt;에서 &lsquo;말씀&rsquo;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헬라어 &lsquo;로고스(Logos)&rsquo;입니다. 당시 헬레니즘을 이룬 스토아철학의 중심 체계에 있었던 단어입니다. 스토아철학을 따랐던 사람들은 우주를 움직이는 절대적인 이성, 보편적인 이성, 질서와 체계를 만드는 이성적 존재가 있다고 믿었고, 그 이성을 로고스라고 불렀습니다. 한편, 유대인들이 이루었던 헤브라이즘(Hebraism), 히브리에서는 만물을 다스리는 지혜를 &lsquo;호크마&rsquo;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지혜, 호크마를 사용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lt;요한복음&gt;에서 &lsquo;호크마&rsquo;라는 단어 대신 &lsquo;로고스&rsquo;를 사용한 이유는 누구를 대상으로 쓰인 책이냐에 의해 설명됩니다. 헬라 문화에 익숙한 유대인을 전도하기 위해, 그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기 위해 쓰인 책이기 때문에 히브리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로고스라는 헬라 단어를 사용한 것입니다.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몸을 취하신 &lsquo;성육신&rsquo; &lt;요한복음&gt; 1장에서 만물을 창조하신 그 말씀, 로고스이신 분이 왜 육신이 되셨는지를 설명합니다. 중요한 것은 &lsquo;왜 이 말씀이 육신이 되셨는가?&rsquo;입니다. 태초에 만물을 창조하신 분과 동일한 말씀이 타락한 만물을 새롭게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태초에 만물을 창조하신 그 말씀이신 분이 만물을 구원하신 일을 행하십니다. 인간이 처한 비참한 상황 때문입니다. 만물이 처한 곤경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 인간에게 이성을 넣어 주셨습니다. 그분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고, 말씀이신 그분을 반영하는 존재, 그분과 대화하고 교제할 수 있는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써 사망의 법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금하신 열매를 먹고, 불순종하는 날에는 &ldquo;정녕 죽을 것이다&rdquo; &lsquo;말씀&rsquo;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으로 인해서 인간에게 죽음이 찾아온 것이고, 인간은 사망의 법아래 속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말씀을 결코 취소하실 수 없는 분입니다. 그 말씀을 취소하시지 않는 한 인간은 멸망, 영원한 사망 가운데 처하게 됩니다. 진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말씀을 취소하신다는 것은 자신을 배신하는 일이며, 선하심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불순종해서 영원한 멸망에 처하게 된 그 상태를 두고 보실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속성을 함께 공유한 존재가 영원한 멸망에 처하도록 내버려 두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한계를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해법은 무엇일까요? 말씀의 은혜를 잃어버린 이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사망의 법에 속한 인간들이 스스로 회개하고, 그 법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오직 하나님, 말씀 그 자체이신 분, 태초에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그분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오직 그분만이 말씀이시기에 만물을 재창조하실 수 있습니다.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기에 말씀으로 재창조하실 수 있습니다. 썩을 것을 썩지 아니할 것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이 인간을 대신해 고난 받고 구원받으려고 세상에 들어오신 것입니다. 그 말씀이 세상에 들어오셨고, 우리와 동일한 몸을 입으셨습니다.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우리와 똑같은 몸을 취하셨습니다. 그것이 성육신입니다. 모든 이에게 부활의 생명을&hellip; 사람들은 믿기 어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에도 &lsquo;가현설(Docetism)&rsquo;이라는 주장이 많은 사람에게 퍼졌습니다. &lsquo;가짜로 나타났다&rsquo;는 뜻입니다. 성육신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서 &lsquo;잠시 인간의 몸을 입고 나타나셨을 뿐이다. 다시 하나님으로 되돌아가신 것&rsquo;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인간의 몸을 입으셨다는 것을 사람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워했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시며 만물의 창조자이신 분이 동정녀 안에 자신의 몸을 예비하도록 하셨고, 그 몸을 통해 그 안에 거하셨습니다. &lsquo;육신&rsquo;이라는 단어를 쓴 것도 독특합니다. &lsquo;사람&rsquo;이라는 단어를 쓸 수도 있었을 텐데, &lsquo;육신&rsquo;이라는 한자를 사용했습니다. 육신을 뜻하는 헬라어 &lsquo;사크스(Sarx)&rsquo;는 &lsquo;육체 덩어리&rsquo;라는 뜻입니다. 당시는 &lsquo;몸은 악하고 영은 선하다&rsquo;는 이원론적인 사상이 팽배했습니다. 그들이 악하다고 여기는 육체 덩어리가 되셨습니다. &lsquo;거하셨다&rsquo;는 단어는 &lsquo;장막을 친다&rsquo;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막을 치고 이주하며 거주했던 모습을 연상하게 합니다. 하나님이 백성들 가운데 장막을 치고, 우리와 똑같은 몸을 입고, 우리가 볼 수 있고 또 들을 수 있는 육신의 장막으로 오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말씀이신 분이 육신이 되신 것은 육신 가운데 있는 사람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죄 가운데 있는 비참한 인간들, 육체 덩어리와 같은 이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몸으로, 우리와 똑같은 아기로, 연약한 아기로, 애처롭게 우는 아기로, 사람들의 돌봄을 받아야 하는 연약한 아기로 오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고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랑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lsquo;무엇인가를 주는 사랑&rsquo;과 &lsquo;그와 같이 되는 사랑&rsquo;입니다. 내가 가진 것을 없는 사람에게 일부 주는 것도 귀한 사랑입니다. 그런데 내가 그 사람과 동일한 상태가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사랑이 아닙니다. 성육신의 놀라움은 낮아짐입니다. 그리고 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말씀이신 분이 육신이 되신 이유는 죽음으로 만물을 구속하기 위함입니다. 말씀이신 분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사망의 선고가 내려진 그 권세를 깨뜨려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을 사망의 형벌 아래 있는 상태에서 건져내기 위해서는 죽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하나님은 아셨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통하지 않고는 사망의 법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죽음이 집행되어야만 하고, 죽음이 집행되면서도 그들을 살릴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ldquo;정녕 죽으리라&rdquo; 하신 그 말씀도 이루어지면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인간과 피조물이 사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습니까? 말씀이신 그분이 육신이 되셔서, 모든 죽음을 대신 담당하시고, 그분의 죽음 안에서 모든 이들을 다시 살리는 재창조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말씀이신 그분은 죽으실 수 없습니다. 영원히 죽지 아니하시는 존재이신 그분이 죽으실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죽음이 가능한 몸을 취하신 것입니다. 죽음이 가능한 몸이 되심으로 그분이 만인을 대신하는 죽음의 대가를 치르시고, 그분의 죽음을 믿는 모든 이들에게 부활의 생명을 나누어 주심으로 재창조의 역사를 이루신 것입니다. &ldquo;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시고, 참 인간이시다&rdquo; 만일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그분은 우리를 구원할 자격이 없습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예수님을 &lsquo;하나님 비슷한 분&rsquo;으로 생각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어떻게 인간과 동시에 하나님이실 수 있냐는 의문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직접 본 시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틀림없이 예수님은 인간이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특별한 분인 것은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일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비슷한 본질을 가진 분이라고 믿고 싶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몇 백 년 동안이나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습니다. 반대로 성육신하신 분이, 예수님이 참 인간으로 오시지 않았다면 역시 메시아가 될 수 없습니다. 구원이 필요한 인간의 고통을 모르고, 인간의 문제를 경험하지 않고, 아무런 접촉점이 없다면 우리를 대신하는, 대표하는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를 대신하는 분일뿐만 아니라 대표하는 분이어야 합니다. 완전한 인간이어야 합니다. 이 문제가 주후 451년까지 갔습니다. 칼케돈이라는 곳에서 500명 이상의 감독이 함께 모여 결론을 내렸습니다. &ldquo;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시고 참 인간이시다.&rdquo; &lsquo;참&rsquo;이란 말은 100%, 완전한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말씀이신 그분, 만물을 창조하신 그분이시며, 그분은 육신이 되셔서 완전한 100% 인간이십니다. 그 회의에서 현재 이집트 지방인 알렉산드리아 쪽에 있는 교회들은 예수님의 신성을 더 중시했고, 지금의 튀르키예 지역에 있던 안디옥 교회들은 예수님의 인성을 더 중시해서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역사하셔서 역사적인 고백과 선언이 나온 것입니다. 그때 &ldquo;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며 참 인간이시다&rdquo;라는 고백이 역사 속에 이루어졌습니다. 성육신하신 그분의 존재와 역사, 말씀을 통해서 사람들이 변화가 일어나고, 교회 안에서 그것을 깨닫고 고백하고 의논하고 기도하면서 그분이 누구신가를 나타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입니다. 말씀이신 분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계셨기에 그분의 영광을 보게 되었습니다. 인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상상했고, 논쟁했고, 보려고 노력했지만 결론을 내릴 수 없었습니다. 인간 스스로 하나님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성육신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본체와 영광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만물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셨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 하나님의 영광이 내 안에 나타난 것입니다. 여러분, 왕이 존재한다는 말을 듣기만 해서는 실감이 안 납니다. 그런데 왕이 내가 사는 집에 와서 앞에 있을 뿐만 아니라 함께 산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성육신하신 그분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이, 독생자의 영광이 나에게 임한 것입니다. 그분이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나를 대신해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나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말씀이신 분이 육신이 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ldquo;그러나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대한 그분의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rdquo;(롬 5:8). 십자가 죽음이 하나님 사랑의 모습입니다. 성육신하신 분의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죄가 한 번도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취소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십자가의 죽음은 하나님 말씀이 취소되지 않았다는 걸 보여줍니다. &ldquo;정녕 죽으리라&rdquo; 하신 그 말씀대로 죽음이 집행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죽음의 집행을 말씀이신 그분이 우리의 몸이 돼서, 우리를 대신해 담당하심으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육체 덩어리와 같은 우리에게 부활의 생명을 나누어 주셨기에 재창조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우리의 위기와 곤경, 모든 상태를 벗어날 수 있게 역사하신 사건이 바로 성육신하신 그분의 오심이고, 그분의 죽음과 부활입니다. 성 어거스틴은 그래서 성육신 사건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ldquo;성육신 교리는 우리를 진리로부터 벗어나지 않도록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주기 위해 놓인 길과 같다. 하나님으로서 그분은 우리의 여정의 목적지가 되시며 또한 그분은 사람으로서 우리가 걷는 길이 되신다.&rdquo; 두 단어가 중요합니다. 목적지가 되시는 것, 우리의 길이 되시는 것. 그분은 하나님이시기에 우리의 목적지가 되시며, 그분은 인간이시기에 우리의 길이 되십니다. 성육신하신 예수님이 삶의 목적지가 되고, 길이 될 때 하나님 말씀의 재창조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성육신하신 그분의 오심을 기다리기를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5-12-06  제1568호

  • 성인

    [<생명의 삶> QT 프리뷰(preview)] 불평을 버리고 스스로 개척하라 &lt;생명의 삶&gt; QT 프리뷰(preview) 불평을 버리고 스스로 개척하라 12월 8일~14일까지 &lt;여호수아&gt; 15:13~18:28 묵상포인트 1: 갈렙의 충성된 신앙과 도전적인 삶은 후대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그의 사위 옷니엘은 용감하게 도전하는 사람이었고, 그의 딸 악사도 적극적으로 복을 구하는 여인이었다. 갈렙과 옷니엘과 악사의 삶에서 공통되는 면을 묵상하자. ▶하나님께 충성한 갈렙은 헤브론을 기업(유산)으로 받는다. 갈렙은 헤브론에서 아낙의 세 아들을 쫓아내고 드빌(기럇세벨)까지 확보하며 자신의 기업을 확장해 간다. 갈렙은 기럇세벨을 정복하는 자에게 자기 딸 악사를 아내로 주겠다고 제안했고, 옷니엘이 그곳을 점령하고 악사와 결혼한다. 악사가 아버지에게 복을 구하며 샘물을 달라고 요구하자, 갈렙은 윗샘과 아랫샘을 그에게 준다. 유다 지파는 아홉 지파 중에서 먼저 기업을 받고, 또 많은 성읍을 분배받는다. 그러나 유다 자손이 여부스 족속을 적극적으로 쫓아내지 못했기에 여부스 족속이 유다 자손과 함께 예루살렘에서 함께 거주한다. 묵상포인트 2: 가나안 땅의 분배는 &lsquo;제비뽑기&rsquo;로 이루어졌다. 당시에 제비뽑기는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통로였다. 그러므로 이에 불만을 표출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행위였다. 요셉 지파의 불평과 여호수아의 지혜로운 답변을 묵상하자. ▶므낫세와 에브라임 두 지파를 형성하는 요셉 지파는 북쪽 지파들을 대표한다. 에브라임은 요셉의 차남임에도 장남인 므낫세보다 땅 분배에서 먼저 언급된다. 이들 요셉 지파가 분배받은 곳은 풍요로운 땅이다. 그러나 요셉 지파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않고 종으로 삼는다. 하나님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자신들의 실리를 선택한 것이다. 슬로브핫의 딸들도 약속대로 기업을 분배받는다. 요셉 자손은 자신들이 분배받은 지역에 만족하지 못하고 불평한다. 여호수아는 그들이 큰 민족이요 그들에게 큰 권능이 있음을 상기시키며, 가나안 사람의 철 병거를 두려워하지 말고 삼림이라도 스스로 개척하라고 확신을 심어 준다. 묵상포인트 3: 가나안 땅 분배는 여호수아에게 남겨진 마지막 사명이다. 여호수아는 과업 완수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기업을 분배받지 못한 일곱 지파를 위해 여호수아가 어떻게 과업을 완수해 가는지 묵상하자. ▶이스라엘이 실로에 회막을 세운 것은 그곳이 종교 중심지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가나안 땅은 이미 정복되었으나 기업을 분배받지 못한 이들이 일곱 지파나 된다. 여호수아는 일곱 지파에게 세 명씩 대표자를 선정해 그 땅을 그려 오면 제비 뽑아 분배하겠다고 한다. 일곱 지파의 대표들이 일곱 부분으로 나누어 그려 오니, 여호수아가 제비 뽑아 분배한다.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베냐민 지파가 먼저 제비를 뽑는데, 그 결과 유다 지파 위쪽에 자리 잡는다. 적용을 위한 가이드 ▶갈렙은 자신의 기업 헤브론에 거주하던 아낙의 아들들을 몰아냈다. 내가 아직까지 주저하면서 도전하지 못하는 일에 담대함과 믿음을 주시길 간구하자. ▶악사처럼,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자신의 필요를 구하고 응답의 기쁨을 누리자. ▶에브라임 지파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않고 종으로 삼아 자신들의 실리를 취했다. 내가 말씀보다 실리를 앞세우는 것이 있다면 회개하고, 온전한 순종을 결단하자. ▶공동체 안에 불만을 표출하는 지체, 두려워하는 지체가 있다면 믿음과 확신을 주면서 지혜롭게 권면하자. ▶하나님이 내게 줄로 재어 주신 기업에 자족하며 감사하자. 올해 내가 하나님께 받은 복과 은혜를 기록하고 감사와 찬양을 드리자. / &lt;생명의 삶&gt; 편집부

     2025-12-05  제15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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