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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캠퍼스

    [News] “선교지와 복음을 잇는 다리가 되어주세요!” “선교지와 복음을 잇는 다리가 되어주세요!” 9월 19~20일 CGN 정기후원 행사, 특집 다큐 ‘땅끝의 증인들’ 공개 위성 인터넷 지원 프로젝트 ‘드림온브릿지’ 캠페인 시작 CGN과 함께 미디어 선교사로 헌신하는 정기후원 행사가 열린다. ‘선교지와 복음을 잇 는 다리가 되어주세요’를 주제로 9월 19일 (토)과 20일(일) 국내 온누리교회 모든 캠퍼스 에서 진행된다. 9월 20일(일) 일요주일예배에 서는 CGN 정기후원 참여를 독려하는 다양한 이벤트를 준비했다. 춘천새순교회, 방주교회, 안양제일교회 등 협력 교회에서도 10월 중에 CGN 정기후원 행사가 이어질 예정이다. CGN 정기후원 행사에 참여를 희망하는 성 도들은 전화(02-796-2243) 또는 CGN 웹사이 트(cgnkorea.net), 모바일로 신청하면 된다. 기존 후원자는 증액도 가능하다. 가족과 전도 대상자 이름으로도 후원 신청을 할 수 있다. 정기후원의 달을 맞아 CGN이 특집 다큐멘 터리 ‘땅끝의 증인들: 출동! 섬마을 변반장’을 공개한다. 9월 19일(토) 0시 기독 OTT 퐁당을 시작으로, 같은 날 오전 10시 CGN 유튜브, 9월 20일(일) 오전 10시 30분 CGN TV에서 방송한 다. CGN 정기후원 행사를 기점으로 ‘드림온 브릿지(DreamOn Bridge)’ 캠페인도 본격 시 작한다. ‘드림온브릿지’는 인터넷 환경이 열 악한 선교지의 선교사들에게 저궤도 위성 인 터넷(스타링크)을 연결해 주는 사역이다. 선교 현장에 안정적인 온라인 환경을 조성해 선교 사들이 필요한 자료와 말씀을 인터넷에서 찾 고, 사역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세상과 소통 할 수 있는 장(場)을 열어주는 역할을 한다. 올해 개국 21주년을 맞은 CGN은 광고 없이 오직 후원으로 운영되는 유일한 기독 미디어 다. 후원자들의 참여로 복음 콘텐츠를 제작하 고, 선교 현장을 지원하는 사역을 이어가고 있 다. /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온누리사역축제 ‘하이브리드 교회’ 10월 13~15일 서빙고온누리교회 본당 및 부속실 2026 온누리사역축제가 ‘하이브리드 교회’ 를 주제로 열린다. 10월 13일(화)부터 15일(목)까지 서빙고온누리교회 본당과 부속실에서 진행된다. 주제 강의, 선택 강의, 저녁 오픈 집 회 등이 이어진다. 저녁 오픈 집회 시간 선교 관 2층 꿈아이홀에서 탁아방을 운영한다(만 36개월~초등 3학년). 참가를 원하는 성도들은 소속 공동체를 통해 신청하면 된다. 공동체에 소속되지 않은 성도들은 ‘ONCARE’ 앱을 설치하면 개별 신청할 수 있다. 온누리교회 리더십 및 임직 훈련생은 최소 하루 이상 반드시 참석해야 한 다. 전체 일정 참가자에게는 이재훈 위임목사 신간 을 선물로 증정한다. 이 기간 교회에 올 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야 한다. 교회 주차장과 온누리청소년센터 임시주차장은 3인 이상 탑승한 차량만 주차할 수 있다. 한강시민공원 2, 3주차장을 이용하면 주차비를 지원한다. 이촌역, 서빙고역, 한강시 민공원 주차장에서 서빙고온누리교회를 오가는 셔틀도 운행한다. 문의: 02-3215-3234(행사 문의) 02-3215-3220(주차, 셔틀 문의)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이재훈 위임목사 목회서신 새로운 사십 년의 첫해를 함께 열며 무더위가 물러가고 열매를 거두는 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가정과 일터와 교회에서 각자 맡겨진 자리를 묵묵히 지키시는 제직 여러분께 주님의 평강이 함께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지난해 우리는 창립 40주년을 맞아 ‘온누리사역축제’를 열었습니다. <지금 여기, 사도행전>을 펴내어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어떻게 이끌어 오셨는지를 기록하였고, 열네 개 사역본부가 저마다 사역매뉴얼을 정리하여 사십 년의 사역을 한자리에 모았습니다. 우리 교회 역사에서 중요한 한 지점을 지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41주년을 맞이합니다. 저는 올해를 마흔한 번째 해라고 부르기보다 ‘새로운 사십 년의 첫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사 43:18~19). 우리가 지금까지 해온 것에 안주하면 교회는 어느새 과거의 교회가 되어버립니다. 온누리교회의 다음 사십 년은 지금 제직 여러분이 어떤 교회론과 목회철학을 가지고 다음 세대를 준비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이 매우 중요한 때입니다. 돌아보면 과거 여러 차례의 온누리사역축제는 하용조 목사님을 통해 주신 교회론과 목회철학을 함께 듣고 나누며 미래의 온누리교회를 꿈꾸던 자리였습니다. 최근 <촉매적 리더십>을 준비하면서 하 목사님의 리더십을 정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사역축제 때마다 전해 주셨던 말씀들을 다시 읽으며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그 말씀들이 온누리교회 리더십들의 마음을 빚어 왔고, 그래서 우리가 하나 되어 소명을 감당해 올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온누리사역축제는 외부 교회의 리더십들에게 우리 교회를 소개하는 자리이기 이전에, 온누리교회 제직들이 하나 되어 교회론을 다시 세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온누리사역축제가 바로 그런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번 온누리사역축제에서 저는 ‘하이브리드 교회’라는 주제로 강의하려고 합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은혜와 진리는 서로 반대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둘 중 하나를 고르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서 이 둘은 하나였습니다. 복음에는 이렇게 교회가 어느 한쪽도 포기할 수 없는 양면이 있습니다. 말씀과 성령, 은혜와 진리, 사랑과 정의, 거룩과 화평, 교제와 선교가 그것입니다. 이 다섯 쌍 가운데 하나라도 빠지면 우리는 십자가의 복음을 온전히 볼 수 없습니다. 교회의 목회 실천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관계와 제도, 친밀함과 개방성, 돌봄과 훈련, 모달리티와 소달리티, 복음전도와 사회참여를 함께 붙들어야 합니다. 교회 안의 많은 갈등은 자기에게 익숙하고 강한 쪽만 더 강하게 붙들고 다른 쪽을 놓아버리는 데서 시작됩니다. 이것이냐 저것이냐(Either/Or)를 물으며 갈등하는 교회가 아니라, 둘 다(Both/And)를 붙들며 복음의 능력을 나타내는 교회, 이것이 교회가 교회답게 변화되는 길입니다. 이번 주제 강의를 통해 우리 교회의 소명을 이 자리에서 함께 다시 세우고자 합니다. 오후에는 각 사역팀이 하이브리드 교회로 세워지기 위해 자기 사역을 어떻게 더 전문성 있는 사역으로 발전시킬 것인지 발표하고 함께 논의합니다. 저녁 집회에는 복음 안에서 우리와 동역하고 있는 두 분의 담임목사님, 지구촌교회 김우준 목사님과 선한목자교회 김다위 목사님이 말씀을 전해 주십니다. 일터를 소홀히 할 수 없기에 부득이 참석하지 못하는 분들이 계실 줄 압니다. 그 형편을 충분히 이해하며, 그분들을 위해서도 기도하겠습니다. 다만 일정을 조정할 수 있거나 그 기간에 참석이 가능한 분들은 한 분도 빠짐없이 자리를 함께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이 자리는 몇몇 사람이 대신 채울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앉아 계셔야 온누리교회의 다음 사십 년이 그려집니다. 새로운 사십 년의 첫해를 여는 이 자리에서 여러분을 뵙기를 기대합니다. 지난 사십 년을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행하실 새 일을 함께 바라보며, 제직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 위에 주님의 은혜가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2026년 9월 온누리교회 위임목사 이재훈 드림

     2026-09-19  제1606호

  • 독자마당

    [아웃리치특집] “부흥의 바람 불게하소서!”  2000선교본부 선교사멤버케어팀-몽골 “부흥의 바람 불게하소서!” 몽골 힐링캠프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순종’이라는 단어에서 시작됐다. 선교사멤버케어팀 일곱 명과 나의 영적 아버지 같은 김창옥 전도사님 부부와 함께 몽골 울란바토르 징기스칸 공항에 첫발을 내디뎠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산에 방주를 지으라고 하셨고, 노아는 순종했다. 요나는 결국 순종해 니느웨로 갔으며,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에 순종하셨다. 올해 2000선교본부 선교사멤버케어팀의 몽골 힐링캠프 계획이 갑작스럽게 발표됐을 때, 제주도와 몽골 중에서 한 곳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예산만 마련돼 있었다. 영어 ‘AND’(그리고)가 아닌 ‘OR’(또는)이었다. 그러나 “건너와 우리를 도와주십시오”라는 한 몽골 선교사님의 요청에 우리팀은 AND(그리고)를 선택했다. 나 역시 재정을 놓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재정의 100%를 채워주시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순종에 초점을 맞추고자 재정의 채워짐보다 ‘영혼’에 관심을 가졌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지인이 “왜 계획도 잡히지 않았고 재정도 채워지지 않은 몽골에 가느냐”고 물었다. 나와 동행하시는 성령님이 “잃어버린 한 영혼에게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 간다”고 대답하셨다. 몽골에 첫발을 내디딘 첫날, 한 목사님의 자녀가 눈에 들어왔다. 너무 놀랍게도 분명히 가지고 오지 않았던 몽골어 전도지 한 장이 성령의 바람이 가져다준 것처럼 힐링캠프 현장에 놓여 있었다. 남은 시간은 반나절이었다. 나는 19세 때까지 누구에게도 예수님에 대해 소개받지 못한 채 다른 종교를 믿으며 살았다. 그렇기에 오늘 한 영혼에게 예수님이 너와 나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말씀을 전하고자 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막연하고 부족해 보였지만, 하나님이 하나씩 길을 열어가시는 것을 보며 이번 걸음이 단순한 힐링캠프가 아니라 한 영혼에게 예수님을 전하고, 몽골의 영혼과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몽골 사역자 두 가정과 가진 나눔의 시간에 질문했다. “어떻게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셨나요?” 이 질문에 한 사역자님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그 고백이 내 마음을 깊이 터치했다. “저는 젊은 시절 한국에서 근로자로 살 때 온누리M센터에 가서 외로움을 달랬습니다. 그때 저는 무종교인이었습니다. 추석 때 하비스트 모임에 가서 한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데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라는 부르심이 있었습니다. 그 앞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때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했습니다.” 많은 몽골 영혼이 온누리M센터의 추석 하비스트 모임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믿고 있다는 것을 한 사역자의 입술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몽골 힐링캠프를 위한 ‘순종’이 잃어버린 ‘한 영혼’에게 나를 인도했고, ‘예수’를 최고의 선물로 전하며, 그 영혼을 위한 ‘중보자’로 변화시킬 성령님을 기대하게 했다. 몽골 교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부흥’이다. 인천온누리교회에서 예배드리며 부르고 있는 ‘부흥을 주소서!’라는 찬양이 이 땅의 교회들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임을 알게 하신 성령님께 감사드린다. ‘부흥’의 바람이 아웃리치 첫날 세미나 때 사방에서 불어오던 몽골의 바람처럼, 이 땅의 교회들 가운데 불어오기를 소망한다. “다시 한번 부흥을 주소서. 주의 나라가 이 땅에 다시 세워지는 그 영광을 보게 하소서!” / 박영환 선교사(2000선교본부 선교사멤버케어팀)

     2026-09-19  제1606호

  • 주일강단

    [주일강단] 사사기 강해(2) 영적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사사기 강해(2) 영적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사사기> 2:10~3:2 / 이재훈 위임목사 “에브라임아, 내가 너를 위해 무엇을 해줄까? 유다야, 내가 너를 위해 무엇을 해줄까? 너희 인애는 아침 구름과 같고 금방 사라지는 새벽이슬과 같다”(호 6:4). 하나님의 탄식입니다. 그런데 그 앞 구절에 익숙하게 들었던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가 가서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그가 찢으셨지만 우리를 고쳐 주실 것이다. 그가 때리셨지만 우리를 싸매 주실 것이다”(호 6:1). 돌아가겠다고 하는 백성들의 고백을 들으신 난 바로 뒤에 하나님이 탄식을 하셨습니다. 백성들의 고백이 거짓이어서가 아닙니다. 이 고백을 여러 번 들으셨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제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탄식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아침에 있다가 없어지는 이슬 같은 돌이킴이 있습니다. 무릎을 꿇고 결단을 합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그 자리에 있습니다. 같은 죄를 놓고 같은 기도를 반복해서 드립니다. “하나님,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이 여러 번 반복됩니다. 이 반복이 무서운 이유가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하나님이 <사사기>에 나타난 영적인 악순환을 알려주시는 것은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반복이기 때문입니다. 하향하는 나선형 ‘영적 악순환’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합니다. 하나님이 진노하십니다. 그 백성은 진노 가운데 고통스럽습니다. 고통 가운데 신음합니다. 하나님이 그 신음을 들으시고 사사를 보내 주십니다. 사사가 있는 동안 잠시 구원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평안해지면 다시 우상숭배로 돌아갑니다. 이 모습을 계속 반복합니다. 이 반복이 무서운 이유가 있습니다.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것 같지만, 실상은 내려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회전목마처럼 같은 자리를 돌아오는 게 아니라, 이전 사이클보다 한 단계 아래로 내려가는 하강 곡선입니다. 하향하는 나선형(Downward Spiral), 즉 영적 악순환입니다. <사사기> 2장 말씀이 바로 이 반복을 보여줍니다. 이 사이클에 없는 것이 있습니다. 회개입니다.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그 우상숭배에 대해 하나님이 진노하셨고, 하나님이 진노하심으로 대적에게 붙이셔서 괴롭게 하셨고, 그들이 신음했고, 하나님이 사사를 통해 구원해 주셨지만, 그들은 고통 가운데 신음했을 뿐 회개하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회개가 없는 것입니다. 회개라는 단어가 없어서 계속 아래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한 바퀴 돌 때마다 한층 더 내려갑니다. 고통은 더 심해지고, 사사들도 수준이 점점 낮아집니다. 옷니엘부터 시작하는 사사가 삼손에서 끝나는데, 그는 최악의 사사였습니다. 그 시대의 지도자 수준도 점점 내려가는 것입니다. 영적 악순환이 계속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 타락하고, 더욱 고통스러워지고, 지도자도 더욱 패역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혹시 이 시대의 역사가, 우리의 삶이 이런 영적 악순환을 경험하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같은 죄로 계속 넘어지고, 고통을 겪고,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이 건져 주시지만, 평안해지면 다시 죄로 돌아가는데 그 죄는 전보다 더 깊어져 있습니다. ‘다음 세대’가 ‘다른 세대’가 될 때 “그 세대가 모두 조상 곁으로 돌아갔고 그들을 뒤이어 여호와를 모르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신 일도 전혀 모르는 다른 세대가 자라났습니다”(10절). ‘다른 세대’라고 했습니다. ‘다음 세대’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 ‘다른 세대’라고 말합니다. <사사기> 말씀에는 3세대가 나옵니다. 여호수아 시대에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입니다. 그 다음 세대까지도 그 일을 본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세대는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알지 못했습니다. 듣기는 했을 것입니다. 이야기로는 들었을 것입니다. 출애굽의 역사, 요단강이 갈라진 역사, 가나안 정복의 역사를 듣기는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눈으로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알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신명기> 6장에서 하나님이 부모들에게 명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가르치라”고 한 것은 다른 세대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음 세대가 다른 세대가 될 때, 영적 악순환이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리에 우상이 들어온 것입니다. 당시 가나안에 있던 바알과 아스다롯 신입니다. 풍요와 다산의 신, 비와 폭풍을 다스리며 그 시대 풍요와 다산을 가져다준다고 약속하는 신들이었습니다. 왜 하필 이 신들이었을까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광야에서 자란 세대는 농사를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이웃들로부터 배웠습니다. 그들로부터 “비를 내려주는 신을 잘 섬기면 곡식이 잘 된다”고 들었을 것입니다. 농사를 지은 경험이 없더라도, 노력하면 배울 수 있고, 하나님이 가르쳐 주실 것인데, 그들의 우상을 섬기는 방식을 그대로 따라간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그런 모습이 간간이 보입니다. 첨단 장비를 만드는 공장을 차려놓고, 그 기술을 개발한 CEO가 돼지머리를 앞에 놓고 “이 공장이 잘되게 해주십시오.”라고 빕니다. 누군가로부터 본 것을 배운 것입니다. 누군가로부터 “이렇게 해야 이 기업이 잘될 것입니다.”라고 제안을 받은 것입니다. 사사 시대에 일어난 일입니다. 이 시대에도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전면적으로 하나님을 버리겠다는 결심을 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 농사만은 확실히 잘하고 싶다”라는 불안과 염려에서부터 우상이 파고들어 오는 것입니다. 원칙보다 실속을 차리는 순간, 우리는 한 계단을 내려가는 것입니다. 어느 구약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옛 우상들은, 옛 신들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있다. 다만 옷을 갈아입었을 뿐이다.” (이안 프로반) 하나님의 마음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사사들에게 순종하지 않고 다른 신들에게 자기 자신을 팔고 숭배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조상이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며 걸어왔던 길에서 금세 돌아섰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조상들처럼 행하지 않았습니다”(17절). ‘자기 자신을 파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팔고 숭배했습니다. 우상을 섬긴다는 것, 결국 자기 자신을 우상에게 바치는 일입니다. 그 결과 속히 하나님을 떠나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이 사이클을 끊을 수 있을까요? 본문에서는 다섯 가지 단계로 하나님이 악순환에서 벗어나도록 역사하시는 것을 보여줍니다. 첫째,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백성의 신음소리를 듣고 먼저 마음을 돌이키셨습니다(18절). 사사 시대 악순환이 끊어지는 은혜가 나타납니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회개하고 부르짖어서가 아닙니다. 백성들은 그저 고통 속에 신음했을 뿐인데, 하나님이 신음하는 백성들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신 것입니다. 백성 쪽에서는 돌이킴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먼저 돌이켜 주셨습니다. 언제나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내가 먼저 돌이켜서 회복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돌이켜 주시는 것입니다. 사실 악순환에 빠진 이들에게는 기도조차 잘 나오지 않습니다. 그저 신음할 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신음을 기도로 들으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기 전에 먼저 마음을 돌이켜서 찾아와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의 행한 죄의 결과까지 면제해 주시지는 않습니다. 사랑하기에 진노하시고, 대적에게 넘긴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기에 진노하시고, 대적에게 넘기십니다. 14절에 나오는 ‘팔아넘기셔서’라는 단어를 주목하십시오. 앞서 ‘팔다’라는 단어가 등장했습니다. 2장 17절에서 “다른 신들에게 자기 자신을 팔고 숭배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백성들이 우상에게 자신을 팔았기에, 하나님이 원수들의 손에 팔아넘기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린양의 피로 구속하신 백성들을 완전히 넘기시는 것이 아닙니다. 진노의 뜻을 깨닫는 것이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두 번째 실마리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미워하셔서, 진멸시키려고 진노하시고 원수들에게 넘겨주신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진노하셨고, 대적에게 잠시 넘기신 것입니다. 진노의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2장 6절에서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신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고통 가운데 있을 때는 언제나 대적의 손만 봅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 그들의 손만 봅니다. 그러나 <사사기> 말씀은 “그 뒤에 있는 하나님의 손을 바라보라”고 말씀합니다. 그 손은 우리를 아프게 하려고, 버리려고 치시는 게 아닙니다. 돌이키게 하시려고, 거룩하게 하려고, 더 귀하게 사용하려고 잠시 진노를 허락하셔서 대적들의 손에 붙이시는 것입니다. 남겨둔 민족들로 하여금 백성을 시험하고 훈련하게 한다 셋째, 하나님의 손은 남겨둔 민족들로 하여금 백성을 시험하고 훈련하게 하십니다. “…‘이 백성이 내가 그들의 조상과 맺었던 약속을 어기고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여호수아가 죽으면서 남겨 놓은 민족들 가운데 어느 하나도 내가 더 이상 이스라엘로부터 몰아내지 않을 것이다’”(20~21절). 하나님이 왜 남겨둔 민족들로 하여금 그 백성을 괴롭히도록 하십니까? 시험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들은 모든 가나안 전쟁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을 시험하기 위해 여호와께서 남겨 두신 민족들입니다. 이전에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쟁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삿 3:1~2). <사사기> 2장 10절 말씀이 다시 나옵니다. 악순환이 어디서 시작이 됐습니까?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세대가 다른 세대가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여호와를 안다는 게 무엇입니까? 그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하나님이 군대를 어떻게 무너뜨리고, 여리고를 어떻게 무너뜨리고, 아이성을 어떻게 무너뜨리셨는지를 통해서 그들이 그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백성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시험이 필요했습니다. 자기가 직접 치르는 전쟁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하려고 전쟁터로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조상들이 엄청난 전쟁을 치르며 바라보았던 하나님의 역사를, 이 세대가 자신들의 전쟁에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관하여 몰라서가 아니라, 그들 스스로 하나님을 알도록 하려고 시험을 통과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원래 이 전쟁은 치르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순종했더라면 여호수아 시대에 끝났을 일입니다. 남겨진 가나안은 어떤 모습이든 죄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의 결과를 우리를 시험하는 교실로 만드신 것입니다. 우리를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세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시험을 통해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세우시고, 더 강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남겨진 가나안이 있다면, ‘왜 이 문제가 아직 그대로인가?’라고 여겨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남겨두신 것을 통해서 우리를 시험하시고, 훈련하시고, 악순환이 끊어지는 역사를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거저 오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는 자로 훈련하면서 우리에게 옵니다. 악순환 끊는 구원은 하나님이 보내신 사사에게서 온다 넷째, 악순환을 끊는 구원은 백성들에게서 나오지 않고 하나님이 보내신 사사에게서 옵니다. “그때 여호와께서 사사들을 세우셨습니다. 사사들은 그들을 침략자들의 손에서 구해 냈습니다”(16절). 사사는 백성들이 투표해서 뽑은 지도자가 아닙니다. 여호와가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사와 함께하셨습니다. 사사들이 강해서 건짐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사사기> 전체에서 이스라엘은 한 번도 자신들의 힘으로 일어서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구원은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을 통해서만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17절 말씀을 보면, 그들이 사사들에게 조차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악순환은 끊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내신 사사에게는 순종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악순환이 끊어지지 않은 이유입니다. 그래서 그 구원에 기한이 있었습니다. 사사가 사는 날 동안, 하나님이 보내신 사사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나마 하나님이 함께하신 은혜 속에 있었습니다. 백성들이 요청하지도 않고 불순종했지만, 하나님이 그 사사들을 통해서 어느 정도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사사가 사라지면 또다시 둑이 터져서 우상숭배 하는 악순환에 빠지는 것입니다. 만일 사사가 죽지 않고 지속이 된다면, 사사가 외부의 대적만이 아니라 백성들의 마음까지 구원할 수 있다면, 구원의 역사가 지속되지 않겠습니까? <사사기>에 반복되는 순환을 통해서 우리에게 죽지 않는 사사, 영원히 있는 사사, 외부의 대적만이 아니라 백성들의 마음까지 변화시켜 주시는 사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영적 악순환은 영원히 죽지 아니하시는 사사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끊어집니다.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사들이라고 말하지만, <사사기>에서 ‘사사’라는 칭호로 불린 이는 없습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부를 뿐입니다. 한 분만 사사라고 불립니다. “…심판자인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자손과 암몬 족속 가운데 누구를 심판하시는지 지켜봅시다”(삿 11:27). 이 심판자가 영어로 ‘Judge’, 사사입니다. <이사야> 33장 22절에서도 “여호와는 우리의 재판장이시요, 여호와는 우리 왕이시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진정한 사사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셨습니다.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설교를 할 때 사사 시대부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사사들을 주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사울, 다윗으로 이어집니다. “인간에게서 나오는 어떠한 사사도, 지도자도 소망이 없고, 오직 하나님이 보내신 진정한 사사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 안에만 구원이 있다. 사사가 사는 날 동안에만 구원이 이루어진다. 우리의 사사는 영원히 사시는 분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대적만을 무너뜨리는 사사가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분입니다. 성령이 오심으로 인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부활의 사건을 우리 마음에 새겨 주심으로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시는 분입니다. 여러분, 진정한 사사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사사가 사는 날 동안’이라는 말씀이 오늘 우리의 삶입니다. 우리는 혼자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가 보내신 진정한 사사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하십니다. 사사 시대는 오늘 우리의 모습입니다.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다른 세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계단의 마지막 바닥에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거기서부터 우리를 다시 건져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영원히 살아계신 우리의 진정한 사사입니다. 영적 악순환은 우리의 힘, 기술, 방법, 지도자가 끊지 못합니다. 회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 통치하심의 역사만이 악순환을 끊습니다. 영적 악순환을 끊어내는 나라와 민족이 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6-09-18  제16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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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 온누리사역축제 ‘하이브리드 교회’ 온누리사역축제 ‘하이브리드 교회’ 10월 13~15일 서빙고온누리교회 본당 및 부속실 주제 강의, 선택 강의, 오픈 집회 … 리더십 필수 참석 2026 온누리사역축제(OMC, Onn uri Ministry Conference)가 오는 10월 13일(화)부터 15일(목)까지 ‘ 하이브리드 교회’를 주제로 막 오 른다. 서빙고온누리교회 본당과 부 속실(두란노홀, 비전홀, 사랑홀 등) 에서 주제 강의, 선택 강의, 오픈 집 회 등이 이어진다. 2026 온누리사역축제 ‘하이브리 드 교회’에서는 이재훈 위임목사가 총 여섯 차례 주제 강의를 한다. ‘하이브리드 교회’의 의미와 구체적 방향을 제시할 예정이다. 온누리교 회 14개 사역본부(공동체본부, 예 배본부, 양육본부, 가정사역본부, 사 회선교본부, 여성사역본부, 장애인 사역본부, 전도사역본부, 회복사역 본부, 선교사역본부, 국제사역본부, 차세대사역본부, 대학청년사역본 부, 미디어사역본부)별 선택 강의도 이어진다. 저녁 오픈 집회는 13일 김우준 목 사(지구촌교회), 14일 김다위 목사 (선한목자교회), 15일 이재훈 위임 목사가 말씀을 전한다. 2026 온누리사역축제는 온누리교 회 리더십 및 성도, 국내 체류 선교 사, 협력 기관 리더십, 타 교회 성도 등이 대상이다. 온누리교회 장로, 권사, 안수집사, 순장, 각 사역팀 리 더십은 최소 하루 이상 반드시 참 석해야 한다. 임직 훈련생은 하루를 선택해 오전부터 오후까지 모든 일 정에 참석해야 한다. 행사 기간 온 누리교회의 모든 스쿨과 강의, 기도 모임은 온누리사역축제 참석으로 대체된다. 온누리교회 성도는 소속 공동체 를 통해 신청하면 된다. 공동체에 소속되지 않은 성도들은 ‘ONCAR E’앱(QR코드참고)을 설치해 개별 신청하면 된다. 본당에서 진행되는 주제 강의와 선택 강의를 포함해 강의 7개를 청 강하면 2학점을 부여한다. 학점 관 련 자세한 사항은 행사 당일 로비 에 설치되는 ‘학점관리데스크’에 서 확인할 수 있다. 문의: 02-3215-3234(3122, 3534)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2026 사르밧 프로젝트 시작 10월 11일까지 순, 개인 헌금 및 나눔대상자 접수 ‘2026 사르밧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10월 11일(일)까지 순과 개인별 헌금 및 나눔대상자 접수를 받는다. 사르밧 프로젝트는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추수감사절 감사의 쌀’과 ‘성경책’을 전달하는 사역이다. 참여를 원하는 순 또는 개인은 10월 11일까지 각 캠퍼스 지정 계좌로 헌금하면 된다. 헌금액은 쌀 20kg 한 포대 가격인 65,000원을 기준으로 하되, 순 형편에 맞게 조정할 수 있다. 순 단위로 참여할 때는 입금자명 에 공동체, 다락방, 순 이름을 일곱 자 이내(예: 한강마리아2순)로 적고, 개인은 이름과 생년월일(예: 온누리851006)을 적으면 된다. 개인 헌금은 연말정산에 반영된다. 송금 계좌는 서빙고 하나은행 573-910019 14805, 양재 하나은행 573-910021-35705다. 다른 캠퍼스는 각 캠퍼스 지정 계좌를 이용하면 된다. 나눔대상자 추천도 받는다. 선정 순위는 온누리교회 공동체 소속 성 도, 외부 기관, 외부 개인 순이다. 신청서는 공동체를 통해 10월 11일까 지 이메일(서빙고: 26thanksgiving@naver.com, 양재: hyomin2021@n aver.com)로 보내면 된다. 이메일에는 공동체 담당목사와 대표장로를 참조인으로 포함하고, 본문에는 ‘승인 확인 문구’를 꼭 기록해야 한다. 문의: 02-3215-3434(서빙고), 각 캠퍼스 담당자 선교지와 복음을 잇는 다리가 되어주세요 9~10월 CGN 정기후원의 달 … 19~20일 정기후원 약정행사 9월과 10월은 CGN 정기후원의 달 이다. ‘선교지와 복음을 잇는 다리가 되어주세요’를 주제로 국내 온누리 교회 모든 캠퍼스와 춘천새순교회, 방주교회, 안양제일교회 등 협력교 회에서 정기후원 행사가 열린다. 9월 19일(토)과 20일(일)에는 국내 온누리교회 모든 캠퍼스에서 CGN 정기후원 약정 행사를 개최한다. 9 월 20일(일) 일요주일예배에서는 다 양한 이벤트를 한다. 협력교회에서 는 10월 중에 CGN 정기후원 행사 를 열 예정이다. 한편, CGN이 정기후원의 달을 맞 아 특집 다큐멘터리 ‘땅끝의 증인들 ’을 공개한다. 9월 19일(토) 자정 기 독OTT 퐁당, 같은 날 오전 10시 CGN 유튜브, 9월 20일(일) 오전 10 시 30분 CGN TV에서 방송한다. 디지털 사각지대에서 사역하는 선 교사들을 지원하는 ‘드림온브릿지’ 캠페인도 시작한다. CGN 정기후원은 전화(02-796 2243) 또는 홈페이지(cgntv.net), 모 바일로 참여하면 된다. 기존 후원자 는 증액이 가능하고, 가족, 전도대상 자 이름으로 후원할 수도 있다. 이주민연합수련회 하비스트 ‘Reset’ 2026 이주민연합수련회 ‘하비스트(Harvest, 이하 2026 하비스트)’가 9월 25일(금)부터 27일(일)까지 파 주 영산수련원에서 ‘Reset(To Follo w Christ)’을 주제로 막 오른다. 16 개국에서 온 이주민과 차세대가 한 자리에 모일 예정이다. 2026 하비스트에 함께할 자원봉사 자 150명도 모집한다. 참가신청은 9 월 15일까지 QR코드로 하면 된다. 회비는 2박 3일 7만 원, 1박 2일 및 당일 참 가 4만 원(티셔츠 무료, 숙소 요청 가능). 이주 민 선교에 관심 있는 성도라면 누구나 신청 할 수 있다. 문의: 031-491-9650 후원: 하나은행 573 810033-13205 온누리교회 ‘2026 전도엑스포’ 9월 13일 서빙고, 양재 '2026 전도엑스포’가 9월 13일 (일) 서빙고온누리교회 이천만광장 과 양재온누리교회 사랑홀 앞 원형 광장에서 열린다. 전도엑스포에서 는 전도사역의 의미와 유익, 필요성 을 안내하고, 전도사역본부 사역팀 을 소개한다. 여성민 목사(전도사역 본부장)는 “많은 성도님이 전도엑 스포에 참여해서 전도에 더 큰 관심 과 사명을 갖길 바란다”고 전했다. 문의: 010-5219-8707

     2026-09-12  제16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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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웃리치특집] ‘잘하는 선교’가 아니라 ‘순종하는 자세’ 양재JDS 21기-라오스 ‘잘하는 선교’가 아니라 ‘순종하는 자세’ 나는 원래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을 넘어 기독교를 매우 싫어했었다. 그랬던 나를 하나님이 아웃리치 간증까지 하게 하셨다. 죄인 된 나를 기다려주시고 품어주신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드린다. 내 믿음의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고, 이전에 다니던 교회에서도 아웃리치 기회가 거의 없었기에 이번 라오스 단기선교가 내 인생 첫 번째 아웃리치였다. 출발을 앞두고 기대와 걱정이 함께 밀려왔다. 솔직히 가장 큰 걱정은 많은 사람에게 들었던 이야기 때문이었다. 아웃리치 가면 예상치 못한 갈등이 생기고, 팀원들끼리 크게 다투는 경우가 많으며, 심지어 돌아온 뒤에도 서로 얼굴을 보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하나님께 “우리 팀만큼은 서로 사랑하고 싸우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 그때 목사님의 말씀이 내 마음을 붙잡아 주었다. “아웃리치 가서 잘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선교를 잘하는 사람을 보내실 거라면 여러분보다 훨씬 잘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잘하라고 보내시는 것이 아니라 순종을 배우라고 보내십니다. 잘하려고 애쓰지 말고, 지적하지 말고, 무조건 순종하십시오.” 이 말씀을 듣고 내가 붙잡아야 할 것은 ‘분쟁 없이 잘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준비 기간 내내 이 말씀을 붙들고 기도했다. 라오스에서 현지 선교사님을 뵙고 만감이 교차했다. 외국인의 선교 활동이 자유롭지 않은 공산주의 국가에서 욕심내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모습이 존경 그 자체였다. 하나님을 믿기 오래전, 파키스탄으로 선교를 떠나는 처형 부부를 보며 ‘자신의 개인적인 신념 때문에 가족을 희생시키는 무모하고 무책임한 사람’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던 내 모습이 생각났다. 그때는 하나님도, 선교도 잘 몰랐고 그저 세상적인 기준으로만 판단했었다. 이번에 라오스에서 선교사님의 삶을 가까이에서 보면서 그때 내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내가 하나님을 얼마나 슬프게 했을지 깨달았다. 하나님께 참으로 죄송한 마음이 들어 눈물이 났다. 이번 아웃리치에서 가장 행복했던 기억은 형제님들과 아침과 저녁에 함께했던 나눔이었다. 사실 출발하기 전에는 사역이나 SUM(워십), 전도 같은 일정이 가장 기억에 남을 거로 생각했는데, 막상 돌아와 보니 내 마음에 가장 깊이 남은 기억은 숙소에서 함께 말씀을 나누고 간절히 기도했던 장면이었다. 형제님들과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정을 보냈지만,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주신 은혜가 모두 달랐다. 어떤 형제는 “찬양 가운데 큰 은혜를 받았다”고 했고, 또 다른 형제는 “아이들의 눈빛을 보며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고, 천국을 경험한 것 같았다”고 고백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신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어떤 날은 나눌 것이 너무 많고, 은혜가 넘쳐서 새벽 3시가 넘도록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직장도, 살아온 환경도 모두 달랐지만, 하나님 한 분 때문에 함께 웃고 울며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함께 말씀을 나누고 기도하며 서로의 믿음을 세워주는 동역자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깨달았다. 이번 라오스 단기선교에서 하나님이 내게 가장 크게 보여주신 것은 화려한 사역이나 눈에 띄는 기적이 아니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순종하며 함께 걸어갈 때 그 공동체 안에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는 사실이었다. 이번 아웃리치는 내게 ‘잘하는 선교’가 아니라 ‘순종하는 자세’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줬다. 하나님이 지금도 선교지와 우리 공동체 안에서 살아 역사하시며 일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된 귀한 시간이었다. / 송훈 성도(양재B공동체)

     2026-09-12  제16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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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웃리치특집] 지도 위에 밝혀진 희망의 불빛 S-브릿지(bridge)공동체-은혜교회 지도 위에 밝혀진 희망의 불빛 S-브릿지(bridge)공동체 국내 아웃리치 공고가 떴을 때 나는 기도와 말씀 묵상이 잘되지 않았었다. 은혜교회 아웃리치가 ‘미스바 통일 선교회’를 섬기는 사역이라는 것을 알고, 저조했던 나의 신앙도 회복하고, 수련회 스태프로 사역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대되어 신청했다. 우리 조에는 탈북민 성도님 여섯 분이 계셨고, 나와 팀 리더님이 함께 투입되었다. 처음에는 탈북민 성도님들을 잘 대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혹여 조별 활동을 하면서 내가 어르신들을 대할 때 실수하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은혜교회 아웃리치는 출퇴근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날 사역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블레싱 담당 팀장님께 받은 말씀카드의 <마태복음> 11장 29절을 읽고 또 읽었다. 그중에 눈에 들어온 단어는 예수님의 마음을 나타내는 ‘겸손함’이었다. 이 단어를 계속 마음에 새기며 예수님처럼 늘 겸손한 마음을 품고 사역에 임하려고 노력했다. 내가 가진 세상적인 생각과 자아를 내려놓고, 3일 동안 예수님의 마음을 기억하며 탈북민 성도님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자고 다짐했다. 특히 내가 맡은 조의 성도님 여섯 분을 책임진다는 마음으로 그분들을 볼 때마다 더 많이 웃고 세심하게 챙겨드리기 위해 힘썼다. 탈북민 성도님들은 중간중간 간증을 나누고, 찬양을 부르며 춤을 추고, 직접 작성한 시를 낭독하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성도님들의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내 마음에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분들은 산전수전을 겪고, 목숨을 걸고 남한 땅으로 왔다. 이곳에 와서도 외로움과 싸워야 했다. 그들에게 성경 말씀과 기도, 교회 공동체가 안식처 되어주었다. 은혜교회 김에스더 목사님의 설교와 간증을 들으며 두 가지를 확실히 배웠다. 하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더욱 커졌고, 또 다른 하나는 간절한 기도가 쌓이면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일도 하나님의 손으로 기적같이 가능해진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새기게 되었다. 김에스더 목사님이 탈북민 사역에 임하시는 모습을 생각하면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씀이 떠오른다. 기도가 잘되지 않고 막혀 있던 나에게 김에스더 목사님의 설교는 기도의 중요성과 힘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었다. 일상으로 돌아간 뒤 내가 하나님께 어떤 마음으로 기도해야 할지, 실제 신앙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을 많이 배울 수 있어서 감사했다. 둘째 날에는 세족식을 하고, 모두 함께 커다란 대한민국 지도에 촛불을 하나씩 꽂아놓고 나라를 위해 통성으로 기도했다. 세족식에서 한 어르신의 발을 씻겨드리며 봤던 그분의 평안한 표정이 계속 생각났다. 지도 위에 하나둘 밝혀지는 촛불을 바라보는데 눈물이 났다. 지금도 북한에서 목숨 걸고 신앙생활을 하며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지도 위에 밝혀진 촛불이 어느새 희망의 불빛으로 보였다. 우리가 함께 하나님 안에 거한다면 언젠가는 북한에 있는 사람들도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고, 남북통일도 이루어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 함께 조별 활동을 했던 탈북민 성도님들의 얼굴과 환한 미소가 지금도 생생하다. 수련회 현장에 있던 우리는 각자 살아온 배경과 환경은 달랐지만, 하나님을 향한 한마음으로 연합해서 예배했다.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함께 기도하며, 서로를 축복하는 시간을 가졌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세워진 도시는 숨겨질 수 없다”(마 5:14)는 수련회 주제 말씀을 곱씹으며 ‘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했다. 앞으로도 늘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품고 삶과 교회 사역에 임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지도 위에 밝혀진 희망의 불빛들을 기억하며 김에스더 목사님의 설교와 탈북민 성도님들의 간증을 되새기다 보니, 앞으로 내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할지, 북한을 위해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에 대한 생각이 더욱 구체화되었다. 은혜교회 김에스더 목사님과 성도님들, 팀원들과 소중한 인연을 맺게 하시고 귀한 시간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 정희윤 성도(S-bridge공동체)

     2026-09-12  제16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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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웃리치특집] 은혜 위에 은혜를 더하는 남양주온누리교회 B공동체 - 남양주M센터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은혜 위에 은혜를 더하는 온누리교회에서의 첫 번째 아웃리치였다. 조금은 낯설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모든 것이 처음인데 도움이 되어야 할 텐데’라는 염려도 있었다. 또 한편으로는 처음 경험하는 사역에 대한 설렘도 있었다. 다행히 일대일제자양육을 해주셨던 김유옥 권사님 부부가 함께하셔서 더욱 반가웠다. 사람이 모든 일을 계획할지라도 그 길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에 모든 것을 맡기기로 했다. 내가 잘하려는 마음과 사역에 대한 인정, 그리고 욕심을 내려놓고 이주민들과 함께하는 모든 상황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모두의 마음에 함께하기를 소망했다. 모든 사역에 집중하며 하나님과 대화하듯 묻고, 사람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마음으로 사역에 임했다. 사전에 세 차례 기도모임을 갖고, 1박 2일 동안 진행될 남양주M센터 아웃리치를 위해 작은 부분까지 세심하게 준비했다. 기도로 시작해 기도로 마치는 모습을 보면서 ‘이래서 온누리교회가 기도로 선교하는 교회로 불리는구나’ 생각했다. ‘Welcome 찬양’으로 이주민 성도님들을 맞이하며 예배를 시작했다. 내 마음에도 감사와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한데, 이 모습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기뻐하실지 생각했더니 마음이 울컥했다. 서로 다른 문화와 삶을 살아온 이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모른다. 언어도 통하지 않고 정서도 달랐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들처럼 친숙하게 느껴졌다. 어느새 우리는 5개 국어로 예배드리며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 예배를 드리고 나서는 부서별로 흩어져 각자의 사역을 시작했다. 온 힘을 다해 사역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보다 나의 의가 앞섰던 지난날의 사역이 떠올라 회개기도를 드렸다. 푸르른 잔디에서 축구하는 이주민 성도님들, 주방에서 맛있게 음식을 준비하시는 권사님과 집사님들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준비한 대로 되지 않는 순간에도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고, 서로를 격려하며 즐겁게 음식을 준비하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나는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어놓은 것 같은 마음이 들어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했다. 하이라이트는 캠프파이어였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마음으로, 하나님의 언어로 모든 것이 통했다. 갓난아기부터 어른까지 모두가 하나가 되었다. 그렇게 밤을 보내고 아침에 큐티와 나눔을 했다. 마지막 예배를 드리는 순간에도 큰 감동이 밀려왔다. ‘언제 또 이렇게 5개 국어로 예배드리는 시간을 맞이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서로의 눈빛에서 하나님의 얼굴이 보이는 듯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마지막 일정을 마무리했다. 바닷가에서 점심과 간식까지 챙겨드리고 버스에 올랐다. 오고 가는 시간이 꽤 길었지만, 임춘웅 집사님의 문화탐방을 통해 우리나라의 역사를 많이 배울 수 있어서 감사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서로의 간증을 나누며 은혜 위에 은혜를 더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눔을 이어가다 보니 어느새 온누리교회에 도착했다. 이번 아웃리치를 다녀오고 나서 딸과 함께 남양주M센터 인도 예배에 참석했다. 또 한 번 큰 감격으로 예배드리면서 이번 아웃리치가 한 번의 경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일상이 되기를 기도했다. 다음 아웃리치에는 가족과 함께 참여해야겠다고 결단했다. 사실 나는 25년 동안 알코올중독자로 살아왔다. 하나님 은혜로 지금 이 자리에 있음을 감사드린다. 인생의 반 이상을 세상적으로 방탕하게 살아가며 많은 죄를 지었기에 이제 남은 인생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고 싶다. <신명기> 6장 5절 말씀과 <고린도전서> 10장 31절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모든 사역에 함께하신 하나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여호와 닛시, 이미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능력이 있음을 믿습니다. 스스로 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 김규양 집사(남양주B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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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마당

    [아웃리치특집] 부모의 마음으로, 한 영혼을 향한 사랑으로 서대문공동체 - 제주도 부모의 마음으로, 한 영혼을 향한 사랑으로 ‘Unshakable!(흔들리는 시대에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예수님을 따르라!)’를 주제로 중국 권역의 청소년들이 예수님을 깊이 만나고자 제주도에 모였다. 서대문공동체의 주된 사역은 집회 기간 청소년들의 신앙 훈련을 위한 중보기도와 함께 매 끼니 간식을 공급하며 청소년들의 영양을 돌보는 일이었다. 우리의 미션은 한 마디로 ‘부모의 마음으로, 한 영혼을 향한 사랑으로’였다. 나흘 동안 사역을 마친 뒤에는 공동체 프로그램으로 제주 성지순례와 자연 탐방도 계획했다. 사역팀이 정해진 순간부터 공동체에서는 매일 하루 4번 리더십을 중심으로 기도를 시작하고, 그 내용을 공동체에 공유했다. ​제주사역팀의 실질적인 조직은 ‘중보기도팀’과 ‘간식팀’으로 구성됐다. 여러 차례 회의를 통해 상시로 제공할 간식과 메인 간식을 결정했다. 모두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면서도 주장하기보다는 다른 팀원들의 생각을 들어주고 보완해 주는 모습 가운데 은혜가 있었다. 내 직업이 오랜 기간 음식을 다루는 ‘쉐프’라는 것을 공동체에서 귀한 은사로 여겨주었고, 보이지 않는 많은 부분에서 나의 의견을 반영하고, 인정해 준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출발한 김포공항에서 제주공항까지 비행은 새롭게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듯한 설렘이었다.​ 어떤 이야기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할지 무척 기대되었다. 숙소에 도착했더니 우리와 함께 등록하기 위해 로비로 들어오는 청소년들이 보였다. 그들의 활기찬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이 약속한 은총이 더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들의 젊은 열정이 하나님 은혜의 징표로서 그 잔이 넘칠 것만 같았다. 다음 날, 우리는 ‘은혜의 손맛’이 담긴 소세지빵을 만들었다. 구운 빵과 음료가 도착하자 모두가 군병처럼 일렬로 서서 소세지를 튀기고 피클과 소스를 넣어 포장했다. ‘Unshakable’ 스티커를 하나하나 붙이며 학생들이 새 힘 얻기를 기도했다. 셋째 날에는 300개의 샌드위치를 정성껏 준비했다. “정말 맛있을 거야”라고 서로 격려하며 준비한 간식을 청소년들에게 전달했다. “맛있고 특별하다”는 인사를 들을 때마다 우리의 어깨에도 힘이 더해졌다. 저녁 집회에서는 김현 목사님 부부의 열창이 큰 박수와 환호를 끌어냈다. 목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모습을 보는 학생들의 도전도 엿볼 수 있었다. 사역을 마무리하며 제주 선교 역사를 돌아보았다. 이도종 목사님의 순교와 이기풍 목사님의 헌신을 통해 선교와 십자가의 피가 하나임을 깨달았다. 누군가의 헌신이 있었기에 제주도에도 하나님의 말씀이 흘러갔음을 깊이 되새겼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완고한 믿음이 두려워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방황했었다. 그러나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하나님을 찾았고, 그때마다 하나님은 내게 응답해 주셨다.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면서 믿음의 조상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게 되었다. 부모님이 모두 떠나신 뒤에는 믿음의 가정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달았다. 20년 광야 같은 삶 속에서도 나를 기다리시고 사랑하신 하나님이 마침내 믿음의 가정과 작은 집, 사랑하는 손녀딸을 허락하셨다. 가장으로 살다 보니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만 했을 뿐, 섬기고 나누는 삶을 살지는 못했다. 이제라도 순종하는 마음으로 서대문공동체 제주 아웃리치를 신청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참여했던 것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선물이었던 것 같다. 중국 선교사 자녀들과 현지 청소년들을 섬기는 동안 하나님이 나를 붙드시고 은혜를 부어주셨다. 내 안의 교만과 겸손하지 못한 모습도 돌아보며 부끄러움을 느꼈다. 제주 아웃리치 셋째 날 밤, 예배에 함께 참석해서 청소년들의 불길 같은 찬양과 통성기도를 보았다. 뜨거운 은혜로 충만한 그들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이 흘렀다. 그 충만한 은혜가 나를 압도했다. 청소년들이 하나님께 선택받고,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이라는 자존감을 품었으면 좋겠다. 말씀 앞에 당당하고 겸손한 크리스천으로 성장하기를 기도한다. 한 청소년의 “진실하게 믿는 것이 어려우니 믿음의 길에 혼란이 없게 해달라”는 기도를 들으며, 기성세대가 믿음을 강조하면서 성공 지상주의를 강요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나의 작은 믿음도 부끄러웠다. 사도 바울처럼은 못하더라도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나누며, 하나님의 길에 동참하고 싶다. 귀한 사역의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온 마음과 시간을 다해 기꺼이 섬기고, 남은 삶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다짐했다. / 이인숙 성도(서대문공동체 누가4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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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일강단

    [주일강단] 사사기 강해(1) 절반의 순종이 남긴 것 사사기 강해(1) 절반의 순종이 남긴 것 <사사기> 2:1~9 / 이재훈 위임목사 나무로 된 물건을 다루다가 손에 작은 가시가 박혀본 경험이 한 번쯤 있으실 것입니다. 눈에 잘 보이지 않아서 제거하기도 어렵습니다. 그 가시는 시간이 흘러갈수록 문제를 일으킵니다. 염증을 일으키고, 그 부위가 부어오르게 합니다. 계속 신경 쓰이게 합니다. 이러한 일들이 역사 속에서도 일어났습니다. 바로 <사사기>의 역사입니다. “너희가 남겨둔 것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되리라”고 하시는 말씀이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일어났습니다. 뽑지 않고, 뽑지 못하고 남겨둔 것이 우리 삶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말씀을 통해서 비춰봐야 합니다. <사사기>는 3천 년 전 기록이지만, 오늘의 거울이 되는 말씀입니다. <사사기> 21장 25절에서 “당시 이스라엘에는 왕이 없어서 모두가 자기 마음대로 행동했다”고 말씀합니다. 절대적 기준을 부정하고 모두가 각자의 의견을 절대화하는 시대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그야말로 사사 시대입니다. 그래서 이 오래된 책이 소중하고,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이 시대와 우리 자신을 바라봐야 합니다. <사사기>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12명의 사사들을 만날 것입니다. 그 사사들이 역사의 주인공이어서가 아닙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흠이 많았습니다. 겁이 많았던 ‘기드온’, 경솔했던 ‘입다’, 정욕에 흔들린 ‘삼손’까지 흠이 많았던 이들입니다. 그 흠 많은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의 순간을 기록하셨고, 그들을 통해서는 진정한 구원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거듭 배신을 당하면서도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분입니다. 사사 시대에도 여전히 하나님은 그 언약을 지키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사사기>의 진정한 주인공은 하나님입니다. ‘능력’이 아니라 ‘의지’의 문제 <사사기> 1장은 서론 역할을 합니다. 1장 내용을 간략하게 말씀드리면, 백성들이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유다 지파가 갈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다 지파가 먼저 올라가 이겼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기록을 보면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습니다. 각 지파에 대하여 나오는 기록들에 반복되는 표현이 있는데, “쫓아내지 못하였다”입니다. “여호와께서 유다 지파와 함께하셨습니다. 그들은 산간 지대를 점령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평지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쫓아내지는 못했습니다. 그들이 철로 만든 전차를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삿 1:19). ‘철로 만든 전차’를 ‘철병거’라고 합니다. 1장 27절과 28절에 므낫세 지파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이스라엘이 강해지자 가나안 사람들에게 강제로 일을 시켰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완전히 쫓아내지는 않았습니다. 쫓아내지 못했던 것도 있고, 쫓아내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에브라임 지파, 스불론 지파, 아셀 지파, 납달리 지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파의 이름은 바뀌었지만, “쫓아내지 못했다”는 문장이 반복됩니다. 히브리어 표현으로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못한 게 아니라 안 한 것입니다.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믿음 없는 것을 지적합니다. 처음에는 가나안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거리를 두고 살도록 허용되는 정도였습니다. 쫓아내지 않고 허용하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다음 단계에 보면 가나안 사람들이 이스라엘 한가운데 들어와 삽니다. 그다음에는 거꾸로 이스라엘이 가나안 사람 가운데 산다고 말씀합니다. “그리하여 아셀 사람들도 그 땅에 살던 가나안 사람들 가운데 살게 되었습니다. 이는 그들을 쫓아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삿 1:32). 아셀 사람들이 가나안 사람들 가운데 살게 되었습니다. 가나안 사람이 이스라엘 가운데 사는 게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 가운데 살게 되었습니다. 단 지파는 아모리 족속에게 밀려서 산지로 쫓겨가게 됩니다. ‘밀렸다’라는 의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압제당할 때 쓰던 단어입니다. 하나님이 쫓아내라고 보낸 백성들이 그들과 함께 살다가 결국 쫓겨 나가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철병거 때문에 그랬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닙니다. 그들의 힘이 강해지고, 가나안 사람들을 부리는 일꾼으로 쓰기 위해서 타협을 한 것입니다. 무리한 전쟁보다 실리 있는 공존이 낫다는 생각이 그들을 지배했던 것입니다. 미세한 균열, 절반의 순종, 결국 전체의 불순종으로 <사사기> 2장 말씀에서 여호와의 천사가 길갈에서 보김으로 올라와 말합니다. 1장 내내 반복되는 단어가 ‘올라간다’였습니다. 유다가 올라가고, 그다음에 요셉 가문이 올라가고, 마지막에 여호와의 사자가 올라옵니다. 하나님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사사기> 1장은 전체 흐름을 압축해서 보여줍니다. 쫓아낼 수 있는 백성들을 여러 이유로 쫓아내지 않았습니다. 쫓아내지 않다가 그들과 섞이게 되고, 언약을 맺고, 결국 단 지파가 그들에게 쫓겨 나가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여호와의 천사가 길갈에서 보김으로 올라가 말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이집트에서 데려와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약속했던 땅으로 인도했다. 내가 말했다. ‘나는 너희와 맺은 내 언약을 결코 어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언약을 맺지 말고 그들의 제단을 부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내 말에 순종하지 않았다. 너희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1~2절). 돌이켜 기억해 보십시오. 여리고성이 어떻게 무너졌습니까? 철병거보다 견고한 성벽이 있었지만, 믿음으로 순종했을 때 무너지지 않았습니까? <사사기> 몇 장을 앞서가면 드보라와 바락이 철병거 900대를 앞세운 시스라의 군대를 무너뜨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철병거 종류가 다른 것이 아니라 믿음이 다른 것입니다. 마땅히 순종할 수 있는데, 순종하지 아니하는 모습입니다.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하고 싶지 않아서 하지 않는 모습을 우리는 ‘절반의 순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늘 핑계 대고 변명하는 모습, 그래서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는 모습이 이 백성들 가운데 나타납니다. 이미 <사사기> 1장 첫 장면에서도 이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유다가 올라가서 이겼지만, 형제 시므온을 불러서 함께 올라갑니다. 하나님의 약속에는 마음이 놓이지 않은 것입니다. 최대한 인원을 많이 확보하려는 인간적인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 섬세한 머뭇거림, 작은 불신앙이 결국 철병거 앞에서 후퇴하고 타협하는 일들을 만든 것입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일어난 일과 비슷합니다. 정탐꾼은 자신들의 능력을 적의 능력과 비교해서 “우리가 할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믿음의 자리에 인간적인 계산이 들어오면 처음에는 불순종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미세한 균열이 나타나고, 그것이 절반의 순종이 되고, 결국 전체의 불순종으로 퍼져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도 저마다 철병거처럼 보이는 일들이 있습니다. 공동체에도 있습니다. 세상의 계산법으로 교회 사역을 내다보면 할 수 없는 게 전부입니다. 철병거 앞에서 변명하는 모습이 많이 생깁니다. 이스라엘의 모습이요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스라엘의 가나안화 그때 길갈에서 여호와의 사자가 올라옵니다. 출발지가 주목을 끕니다. 길갈하면 <여호수아>에서 떠올라야 하는 사건이 있습니다. 길갈의 열두 돌, 요단을 건너 가나안에 첫발을 내디뎠던 곳, 광야에서 미루었던 할례를 행함으로 첫 번째 유월절을 지켰던 곳, 하나님이 바로 그곳에서 말씀하시고, 새롭게 해 주셨던 출발지입니다. 은혜의 자리요, 영적 전쟁의 출발지입니다. 그 길갈에서부터 왔다는 것은 장소가 메시지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그냥 나타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사자가 온 곳이 길갈입니다. ‘하나님이 왜 길갈에서 너희들을 새롭게 하셨는지를 기억해야 한다’는 역사적 기억을 되돌려 준 것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와서 말한 것은 추궁이 먼저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분이고, 너희들이 순종하기만 하면 그 언약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라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한 책망의 내용은 실패가 아니라 타협이 문제라고 지적하는 것입니다. <사사기> 1장 19절에서 백성은 쫓아내지 못했다고 변명합니다. 그러나 2장 2절에서 하나님은 “너희가 순종하지 아니한 것이다. 능력이 문제가 아니라 믿음이 문제이고, 실패가 문제가 아니라 타협이 문제”라고 책망하십니다. 그들은 왜 타협했을까요? <사사기> 1장 28절을 보면 그들이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강성해졌을 때, 가나안 족속을 노동력으로 이용하기 위해서 쫓아내지 않았습니다.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힘이 있을 때, 그 힘으로 순종한 것이 아니라, 그 힘으로 그들을 부리려고 했습니다. 그 힘으로 타협한 것입니다. “진멸하라”고 하신 명령을 “그 백성을 활용하라”라고 왜곡해 버린 것입니다. <사사기> 1장 첫머리에 보면, 유다가 가나안 땅 아도니 베섹을 사로잡고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을 자릅니다. 포로를 욕보이는 가나안 전쟁의 풍습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첫 전투에서부터 심판하러 온 그 대상을 향해서 가나안 민족의 방식으로 행하는 모습이 <사사기> 전체에서 이어집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모습이 아닌 이방인들의 흉내를 낸 것입니다. 그래서 <사사기> 전체의 주제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이스라엘의 가나안화’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나안 백성처럼 닮아가는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언약 앞에 신실하게 되면 누구를 닮아갑니까? 하나님을 닮아갑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갑니다. 그런데 그 그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면 그 백성들을 닮아갑니다. 절반의 순종이 가져온 큰 위험 “그러므로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너희 앞에서 그들을 쫓아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요, 그들의 신은 너희에게 덫이 될 것이다”(3절). 남겨둔 민족은 가시가 되고, 남겨둔 신들은 덫이 됩니다. 가시는 바깥에서 찔러오는 고통이요, 덫은 미끼를 놓아서 잡아먹는 도구입니다. 그들 스스로 다룰 수 있다고 생각했던 그 민족이 그들을 찌르는 가시가 되고, 그들의 신이 이스라엘을 사로잡는 우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절반의 순종이 얼마나 큰 위험을 가져오는지를 설명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완전히 버린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완전히 따르지도 않았습니다. 예배를 드리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예배도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가나안과 타협하며 실리를 추구하고, 우상도 따랐습니다. <사사기> 역사가 보여주는 것은 절반의 순종은 결국 전체의 불순종으로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가나안에 있는 풍요의 신 바알, 아스다롯, 풍요와 다산의 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기게 되었고, 가나안 사람들이 그들에게 가져다준다고 했던 노동력, 일하지 않고 편리하게 살려고 했던 편리주의, 이 모든 것들이 가시와 덫이 되어서 그들을 사로잡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절반의 순종은 무엇인가? <사사기> 강해를 시작하면서 우리를 돌아봐야 합니다. 팀 켈러(Tim Keller) 목사님은 이 장면을 ‘절반의 제자도’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로서 절반만 따르는 삶은 결국 전부를 따르지 않게 됩니다. 회개가 아니라, 후회의 눈물 “여호와의 천사가 온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이 말을 하자 백성들이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그들은 그곳의 이름을 보김이라고 하고 그곳에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습니다”(4~5절). 온 회중이 통곡했습니다. 그 자리에 ‘우는 자들’이라는 이름까지 붙였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부흥의 한 장면처럼 보입니다. 눈물이 있고, 돌이키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의 변화는 없었다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저질렀으며 바알 신들을 섬겼습니다”(11절). 눈물은 흘렸지만, 그 눈물은 금세 마르기 마련입니다. 회개라고 하기에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보김’이라는 장소를 언급한 것도 메시지를 주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와서 보김이라는 곳에 왔습니다. 보김은 벧엘이라는 지역 바로 옆입니다. 하나님의 집, 야곱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던 바로 그곳에서 백성들이 울며 모였습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후회의 눈물이 아닙니다. 진정한 돌이킴의 회개입니다. 잠깐 감동하고 눈물 흘리는 것이 회개가 아닙니다. 그들은 죄가 아프고 끔찍해서 눈물을 흘린 것이 아닙니다. 죄의 결과가 두려워 흘린 눈물입니다. 회개가 아닙니다. 후회의 눈물일 뿐입니다. <사사기>는 눈물의 책입니다. 2장은 보김에서의 눈물로 시작해서 벧엘에서의 눈물로 끝납니다. 첫 울음이 진정한 돌이킴의 회개가 되지 못했기에 마지막까지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사사기>의 순환이 바로 그것입니다. 죄악을 범하고, 고통당하고, 고통 속에 부르짖고, 하나님이 사사로 구원해 주시고, 그러나 또다시 죄를 범합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결코, 버리지 않으신다” 그러나 여호와의 사자의 말에 희망이 있습니다. “…나는 너희와 맺은 내 언약을 결코 어기지 않을 것이다”(1절b) <사사기>는 어둡고, 눈물의 역사였지만 우리에게 복음의 소망을 주는 이유는 이 말씀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사사기>가 혼란한 반역의 역사임에도, 하나님은 그 언약을 끝까지 붙잡고 계십니다. 사사들은 그 언약을 이룰 수 없습니다. 이 언약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이루셨습니다. 백성들은 절반의 순종으로 가시와 덫에 찔리고 빠졌습니다. 우리가 뽑지 않은 가시, 스스로 자초한 죄악이 만든 가시들을 예수님이 가시면류관을 쓰심으로 머리에 쓰셨습니다. 보김에서 백성들은 눈물 흘렸지만,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겟세마네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눈물은 우리의 죄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구약에서 ‘여호와의 천사’ 혹은 ‘여호와의 사자’라고 하는 것은 아주 특별한 예외가 아닌 이상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일시적인 나타나심으로 해석합니다. 길갈에서 보김으로 와서 그들에게 언약을 확실히 지킬 거라고 선언하신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불순종의 가시와 덫을 짊어지시고 골고다 언덕에 이르셔서 가시면류관을 쓰시고 십자가에서 죽음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신 분입니다. 오늘 사사 시대, 우리의 구원은 어디에 있습니까? 가시면류관을 쓰신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보김에서 흘렸던 이들의 눈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시대 절반의 순종이 다음 세대 전반적인 배교가 되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의 타협이 자녀들에게 가시와 덫이 됩니다. 이 시대의 위기는 조상들이 한 절반의 순종이었고, 우리 절반의 순종이 다음 세대에 불신앙으로 번져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도 길갈에서부터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심판하러 오시는 걸음이 아니라, 언약을 결코 어기지 아니하시는 분으로, 우리를 대신해 죽으신 분으로, 우리의 가시를 온전히 제거해 주시는 분으로 오셨습니다. 새 언약에 믿음으로 참여하십시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언약의 저주를 담당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그 언약의 축복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6-09-11  제1605호

  • 칼럼

    [장로칼럼] 우리가 함께 듣고 읽는 이유 우리가 함께 듣고 읽는 이유 성경을 가까이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그리스도인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아는 것’과 ‘실제로 하는 것’ 사이에 생각보다 큰 간격이 있다는 데 있다. 성경을 펼쳤다가도 바쁜 일상에 밀려 중단하기 쉽고, 좋은 신앙 서적을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지만, 한 권을 끝까지 읽는 일도 만만치 않다. 나 역시 오랫동안 같은 고민을 해왔다. ‘어떻게 하면 말씀을 일상의 중심에 둘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성경을 읽는 일이 의무가 아니라 기쁨이 되고, 좋은 신앙의 유산을 꾸준히 배우며 살아갈 수 있을까?’ 그 고민 속에서 시작한 것이 ‘공동체 성경읽기’와 ‘신앙 고전 읽기’다. 우리는 조금 특별한 방법으로 말씀을 읽는다. 눈으로만 읽는 게 아니라 함께 듣는다. 오디오 바이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오디오북을 통해 믿음의 선배들이 남긴 신앙 고전을 듣는다. 그리고 각자의 마음에 남은 말씀과 깨달음을 서로 나눈다. 함께 듣다 보면 작은 변화가 일어난다. 혼자였다면 중간에 멈췄을 성경을 계속 듣게 되고, 어렵게만 느껴졌던 신앙 고전도 한 권씩 끝까지 만나게 된다. 그렇게 말씀과 신앙의 깊은 통찰이 어느새 우리의 생각 속에 스며들고, 삶을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롬 10:17). 나는 이 말씀을 묵상하며 ‘들음’의 의미를 새롭게 생각하게 됐다.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귀로 소리를 듣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반복해서 듣고 마음에 새기며, 서로 나누고, 마침내 그 말씀에 순종하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모임의 목표는 성경을 몇 번 읽었는지, 신앙 고전을 몇 권 완독했는지에 있지 않다. 말씀을 많이 아는 것을 넘어서 말씀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이 우리가 함께 듣고 읽는 이유다. 신앙 고전을 함께 읽는 이유도 같다. 시대는 달라도 하나님 앞에서 치열하게 씨름했던 믿음 선배들의 질문과 고백에는 우리의 신앙을 비춰주는 힘이 있다. 그들의 글을 통해 내가 당연하게 여겼던 믿음을 다시 돌아보고, 복음이 무엇인지 묻고, 예수 그리스도를 더 깊이 알아가게 된다. 성경이 신앙의 유일하고 확실한 토대라면, 좋은 신앙 고전은 그 말씀을 붙들고 먼저 걸어간 이들이 남겨 준 귀한 이정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모임을 계속하면서 새롭게 발견한 것이 하나 있다. 바로 ‘함께함의 힘’이다. 같은 성경을 듣고, 같은 책을 읽어도 마음에 들어오는 말씀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그냥 지나쳤던 한 구절이 다른 사람에게는 삶을 붙드는 말씀이 되기도 하고,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깨달음을 다른 사람의 나눔을 통해 만나기도 한다. 서로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말씀이 더욱 풍성해지고, 어느새 우리는 서로에게 믿음의 격려가 되고, 신앙의 길동무가 된다. 오늘 우리의 삶은 너무나 분주하다. 스마트폰을 통해 수많은 정보와 목소리가 끊임없이 우리 안으로 들어온다. 세상의 소리는 점점 커지는데, 정작 하나님의 음성을 조용히 듣는 시간은 줄어들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말씀 앞에 머무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하루하루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좋은 신앙의 가르침을 가까이하며, 함께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작은 습관이 우리의 생각을 바꾸고, 결국 삶의 방향을 바꾸게 될 것이라 믿는다. 혼자서는 멀게 느껴졌던 성경과 신앙 고전도 함께하면 어느새 우리 마음 가까이 와 있을 것이다. 말씀을 듣는 작은 습관이 쌓이면서 어느 날 우리가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말씀을 듣고 있는 나를 넘어서, 말씀으로 생각하고, 말씀으로 살아가는 나를 말이다. 이번 가을, 그 기쁨의 여정에 당신을 초대한다. 문의: 010-4549-2925(금요PRS 총무) / 강신익 장로(OCC공동체)

     2026-09-05  제1604호

  • 독자마당

    [아웃리치특집] 가족, 가장 귀한 선물 과천의왕공동체_화성M센터 온누리 다문화 평생교육원 가족, 가장 귀한 선물 과천의왕공동체가 지난 8월 16일(일)부터 17일(월)까지 1박 2일 동안 ‘가족, 가장 귀한 선물’을 주제로 화성M센터 다문화평생교육원(이하 다평원)으로 아웃리치를 다녀왔다. 이번 여정은 온 가족이 함께 참여하는 첫 번째 아웃리치였다. 긴장과 설렘이 동시에 교차했다. 특히 전날 보은 어린이캠프 아웃리치를 마치고, 바로 화성으로 향해야 했기에 육체적으로피곤하고 분주했다. 하지만 영적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 기대감이 가득했다. 이번 아웃리치를 향한 발걸음은 두 달 전부터 기도로 시작되었다. 리더십 줌(Zoom) 회의를 통해 전체 주제에 대한 설명과 의견 나눔이 있었고, 공동체 전체 줌(Zoom) 회의를 통해 비전을 나누고, 본격적인 팀원 모집과 세부 사항 기획을 했다. 현장 답사를 통해 현지 상황을 눈으로 확인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사전 중보기도회였다. 공동체가 모두 모여 다평원 가정들을 위해 간절히 중보기도 했던 시간이 아웃리치가 끝난 지금 돌이켜보니 전체 일정 성패를 좌우한 가장 중요하고 핵심이었음을 깨닫는다. 나는 이번 아웃리치에서 ‘선물준비팀’ 팀장으로 섬기는 은혜를 누렸다. 선물준비팀은 다평원 아이들과 공동체 자녀들을 위한 ‘웰컴 키트’(welcome kit), 가정에 드릴 환송 선물 ‘타올’, 각 객실에 비치할 ‘과일 바구니’를 담당했다. 다평원 가정 대부분 무슬림이었기에 물품과 간식을 선정하는 일이 무척 조심스러웠다. 팀원들과 수없이 검색하고 상의하며 그들의 문화에 어긋나지 않도록 정성을 다해 준비했다. 가장 감동이 있었던 것은 각 가정의 방에 환영과 축복의 메시지와 과일 바구니를 미리 가져다 놓는 시간이었다. 마치 영화 ‘미션 임파서블’의 한 장면처럼 첩보 작전을 방불케 하는 긴장감 속에서 세팅을 마쳤다. 땀 흘려 함께 애써준 팀원들과 권사님이 안 계셨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하나님이 나의 부족함을 아시고 돕는 귀한 손길들을 허락해 주셨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이번 아웃리치는 낯선 한국 땅에서 힘들게 일하는 이주 배경 가정에게 정성스럽게 준비한 한 끼를 대접하고, 즐거운 프로그램과 깨끗한 호텔에서 가족과 아름다운 밤을 보내게 해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8개 나라(러시아, 스리랑카, 우즈베키스탄, 중국,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필리핀)에서 온 28가정(118명)과 공동체 성도 96명, 총 214명이 시흥 웨이브엠 호텔에서 함께하는 천국잔치가 열렸다. 이 천국잔치는 장차 열방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누릴 천상의 모습 같았다. 낯설어하던 가족들이 마음을 활짝 열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무슬림 가정들이 소감을 발표하는 시간은 참으로 뭉클했다. 그분들은 “진심으로 감동했다”며 깊은 감사를 전했다. “앞으로 이런 기회가 또 있었으면 좋겠다”고 고백했다. 그 진솔한 나눔에 과천의왕공동체 식구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각 가정에 분명한 복음의 씨앗이 심어졌으리라 확신한다. 이번 아웃리치는 공동체가 하나 되어 함께 즐겁게 섬기며 평생 잊지 못할 벅찬 감동을 남겼다. 무슬림이자 이주 배경 가정을 이토록 사랑하시고 아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과천의왕공동체를 그 통로로 사용해 주셔서 감사할 뿐이다. 리더십을 비롯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땀 흘려 섬겨주신 모든 분께 깊은 감사를 전한다. 무엇보다 모든 일을 계획하시고 이끄시며 열매 맺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심을 보는 게 가장 큰 축복이었다.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린다. / 강정현 성도(과천의왕공동체)

     2026-09-05  제1604호

  • 독자마당

    [아웃리치특집] 하나님은 먼저 일하고 계셨다 갈렙청년부-대만 하나님은 먼저 일하고 계셨다 “이번 대만 아웃리치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실까?” 지난 8월 3일(월) 대만 타이베이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일주일 뒤에 내가 어떤 마음으로 이곳을 떠나게 될지 알지 못했다. 우리가 준비한 사역을 잘 감당하고,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서 복음을 전하고, 현지 교회를 잘 섬기는 것이 이번 아웃리치의 목표였다. 그러나 일주일 동안의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 마음에 남은 질문이 달라져 있었다. “우리가 대만에서 무엇을 했는가?”에서 “하나님은 대만에서 무엇을 하고 계셨는가?”로 바뀌었다. 이번 아웃리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하나님은 이미 대만에서 일하고 계셨고, 우리는 그 일하심에 초대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만 방문이 처음인 상황에서 현지의 문화와 교회의 상황을 충분히 알기 어려웠다. 우리가 준비한 사역을 어디에서, 누구와, 어떻게 나눠야 할지도 고민이었다. 그때 이미 오래전부터 중화권 복음화를 위해 헌신해 온 CGN 중문대와의 협력이 중요한 연결고리가 되었다. 그 덕분에 현지 교회와 사역 현장을 만날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그곳에서 필요한 일들을 함께 섬길 수 있었다. 우리는 CGN 중문대와 함께 현지 교회와 예배하고, 아이들을 만나고, 어르신들을 섬겼다. 교회 공간을 정리하고 페인트칠하는 일도 함께했다. 현지 선교사님들과 교제하면서 대만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역하는 이들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하나님이 이미 대만에 만들어 놓으신 관계와 사역의 자리로 우리를 연결해 주셨다. CGN 중문대가 제작한 어린이 콘텐츠 ‘바이블 가든’을 활용한 취약계층 어린이 캠프, 복음을 듣지 못한 지역 어르신들을 섬기는 사역, 교회 외벽에 복음의 메시지를 담은 벽화 그리기 사역 등을 하면서 ‘우리의 손길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이곳에 남게 해주세요’라고 기도드렸다. CGN 중문대를 방문해서 대만에서 미디어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섬기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역하는 현장을 볼 수 있었다. 중화권의 복음화를 위해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고, 보급하는 CGN 중문대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대만에 ‘처음으로 복음을 전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이미 이 땅에서 일하고 계셨고, 우리는 그 사역에 잠시 동참한 것이었다. 우리는 한국으로 가지만, 하나님은 이곳에 계신다. 우리가 만난 아이들의 삶에도, 함께 예배했던 교회에도, 만났던 선교사님들과 교회들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계속 일하실 것이다. 그래서 이번 아웃리치의 결과를 우리가 만난 사람의 숫자나 진행한 프로그램의 성과로 나타내는 것보다, 하나님이 이미 일하고 계셨던 자리에 우리가 함께할 수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더 큰 은혜임을 고백한다. 이번 아웃리치에서 만난 모든 분과 현지 사역과 연결해 준 CGN 중문대, 함께 예배하고 섬길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준 현지 교회에 감사드린다. 무엇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순간에도 대만에서 일하고 계셨던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이번 여정을 통해 하나님의 일하심을 더욱 신뢰하게 되었고, 그 현장을 직접 보며 하나님 의 마음을 조금이나 마 배울 수 있었다. CGN 중문대와 현지 교회를 통해 대만에서 계속해서 복음이 전해지고, 다음 세대가 세워지며, 하나님의 교회가 더욱 든든히 세워지기를 기도한다. / 최인헌 형제(갈렙청년부)

     2026-09-05  제16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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