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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캠퍼스

    [News]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차세대 파워웨이브 연합 수련회‘PASSION 2026’ 1차 1월 30일~2월 1일, 2차 2월 1~3일 대전 배재대학교 차세대 파워웨이브 연합수련회 ‘PASSION 2026’(이하 패션집회)이 막 오른다. 올해 패션집회는 대전 배재대학교(배재로 155-40)에서 1차와 2차로 나뉘어 진행된다. ‘PASSION 2026’ 주제는 ‘Unshakable(흔들리지 않는)’ 이다. <히브리서> 12장 28절을 주제 성구로 삼았다. 학업과 진로, 관계 등 수많은 변화와 불안 속에서 사는 청소년들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고, 견고한 믿음의 세대로 세워지는 데 초점을 맞춘다. 1차 패션집회는 1월 30일(금)부터 2월 1일(일)까지 진행된다. 서빙고온누리교회 파워웨이브 2~4부, 양재 중등부, 강동, 부천, 수원, 영종 파워웨이브, 하랑센터, 몽골 현지 학생들이 참가한다. 2차 패션집회는 2월 1일(일)부터 2월 3일(화)까지 한다.서빙고 파워웨이브 1부, 양재 고등부, 남양주, 대전, 세종, 도곡, 양지, 인천, 평택, 서산, 안산M센터, 평택M센터 파워웨이브 학생이 참가한다. 이번 패션집회에서는 개회예배, 저녁집회, 파워페스티벌, 주제 강의,선택 강의, 폐회예배 등의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저녁집회에서는 김선재 목사(차세대사역본부장), 송바울전도사(한터사역), 박위 형제(유튜브 위라클 채널 운영)가 강의한다.선택강의도 다양하다. 강동민 센터장(온누리청소년센터) ‘ 하나님이만드신 진짜 나를 찾다’ , 강하선 디 자이너 ‘ 디자인, 하나님을 닮은 창조의 언어’ , 고대곤 교수 ‘ 하나님 왜그러셨어요?’ , 오경숙 본부장(창조과학회) ‘ 하나님의 설계’ , 래퍼 지푸 ‘ 8비트 랩으로 고백하는 Unshakable Faith’ 등을 주제로 강의한다. 김선재 목사(차세대사역본부장)는 “세상은 끊임없이 요동치지만, 우리가 속한 하나님 나라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면서 “이번 수련회를 통해 청소년들이 불안한 현실 속 에서도 영원히 변치 않는 복음의 반석 위에 굳게 서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세상을 살아가기를 바란다”고 권면했다. 문의: 02-3215-3521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나를 따르라! 1월 26~28일‘2026 온누리 목회사관학교’ 2026 온누리 목회사관학교가 1월 26일(월)부터 28일(수)까지 오크밸리 그랜드볼룸(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오크밸리1길 66)에서 열린다. ‘나를 따르라’ 를 주제로 진행되는 이번 목회사관학교에는 온누리교회 목회자(전임, 파트), 해외 비전교회, 협력 교회, 온누리교회 출신 담임 목회자, 선교사 등 목회자 358명이 참석한다. 2026 목회사관학교에서는 공동체성경읽기, 주제 강의, 소그룹 나눔, 특강, 기도회, 패널토의 등이 이어진다. 주제강의는 이재훈 위임목사 ‘공동체성경읽기’ , 신국원 교수 ‘ 기독교 세계관과 선교적 비전’ , 신무환 장로 ‘ 평신도의 세상살이로 나타내는 복음적 세계관’ 을 주제로 한다. 특강은 박종길 목사 ‘ 교역자의 경건생활’ , 강부호 목사 ‘ 교역자 의 기도생활’ 을 주제로 한다. 목회사관학교는 2003년부터 시작된 온누리교회 목회자를 위한 수련회다. 국내 온누리교회 목회자들과 해외비전교회, 협력 교회 등 국내외 온누리교회 목회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비전과 목회 철학, 사역 방향 등을 공유한다. / 홍하영 기자 2026 상반기 Acts29 비전 콘퍼런스 1월 23일 오전 10시 서빙고온누리교회 두란노홀 해외 비전교회 목회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 2026 상반기 Acts29 비전 콘퍼런스’ 를 1월 23일(금) 오전 10시 서빙고온누리교회 두란노홀에서 개최한다. 2026 Acts29 비전 콘퍼런스에서는 전체모임, 권역별 모임 등을 한다. 이번 콘퍼런스에는 30개 해외 비전교회 목회자와 협력위원, 스태프 등 50여 명이 참석해 온누리교회 의 영성과 목회 비전을 공유한다. 해외 목회 현장의 어려움과 경험 등을 함께 나누며 위로받고, 영적 재충전과 친목을 도모할 예정이다. / 홍하영 기자 서산온누리교회 캠퍼스 전환 및 이전감사예배 서산온누리교회가 온누리교회 13번째 캠퍼스로 전환된다. 이를 축하하고 감사하는 예배를 1월 21일(수) 오후 7시 30분 서산온누리교회 본당(충남 서산시 안견로 213)에서 드린다. 서산온누리교회는 지난 2004년 ‘ 사도행전적 교회’ 의 비전을 품고 기도처로 설립됐다. 복음 전파와 제자 양육에 힘쓰며 지역 사회를 섬기는 교회로 자리매김해 왔다. 2025년부터 최영민 목사가 담당목사로 섬기고 있다. / 박지혜 기자 2026 오직예수 신년새벽기도회 종료 2026 오직예수 신년새벽기도회가 은혜 가운데 종료됐다. 지난 1월 5일(월)부터 17일(토)까지 국내 온누리교회 모든 캠퍼스에서 ‘ 나를 따르라’ 를 주제로 진행됐다. 이재훈 위임목사와 캠퍼스 담당 목사들이 소주제별로 말씀을 선포했다. 윤서영 학생(꿈이자라는땅)은 “오직예수 신년새벽기도회에 참석해 보고 싶어서 이모와 함께 교회에 왔다”면서 “새 학기를 앞두고 새로운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고, 교회 생활도 더욱 성실히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고 말했다. 김선리 집사(서빙고온누리교회)는 “이번 오직예수 신년새벽기도회를 통해 하나님 안에서 나를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면서 “예수님의 제자로 살기 위해 기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계속 기도하겠다”고 고백했다. / 박지혜 기자

     2026-01-17  제1573호

  • 주일강단

    [주일강단] 베드로: 우선순위의 재편  [주일강단] 베드로: 우선순위의 재편 <누가복음> 5:1~11 /이재훈 위임목사 공생애를 시작하신 예수님이 가장 먼저 행하신 일은 제자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기적의 목적이 분명했습니다.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바로 알고, 올바로 믿게 하려고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열두 명의 제자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의도를 가지고 열두 명의 제자를 세우신 게 분명합니다. 예수님이 열두 제자를 부르신 것은 장차 행하실 사역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시는 일종의 예언적인 행동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예루살렘이 아닌 갈릴리에서 택하셨다는 것도 중요한 관점입니다. 당시 유대 사회를 움직이는 중심지는 예루살렘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주변에서 제자들을 찾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평범한 사람들을 통해 비범한 목적을 이루는 것을 기뻐하셨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모습이 아니라 장차 변화될 모습을 바라보시며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부르신 열두 제자들의 구성을 보면 놀라울 정도로 다양했습니다. 기질과 관심사도 달랐고, 사회적 직업도 달랐습니다. 핵심 네 사람은 어부였고, 같은 동네 벳새다 출신이었습니다. 어부와 전혀 상관없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마태는 세리였습니다. 시몬은 당시 세리 같은 사람들을 비판할 뿐만 아니라 폭력을 써서라도 로마 제국과 싸워야 하며, 처단해야 한다고 여겼던 ‘열심당원’이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위험하다고 여겨지는 사람, 경멸받는 사람이었던 시몬과 마태가 예수님의 열두 제자였다는 게 매우 충격적입니다. 예수님이 그들의 출신 배경을 몰라서가 아닙니다. 사회적으로 극단적인 반대 입장에 섰던 두 사람이 예수님의 열두 제자였다는 것은 모든 것을 녹여내는 복음을 능력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열두 제자들과 예수님의 관계 3단계 열두 제자들과 예수님의 관계가 3단계로 전개됩니다. 첫 번째 단계는 예수님을 따르긴 했지만 간헐적으로, 사정이 허락될 때 따르는 무리입니다.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든지, 예수님이 특별한 가르침을 주셨을 때만 따르던 군중으로서의 제자들입니다. 그들도 예수님을 분명 따랐습니다. 그러나 사정이 허락될 때, 간헐적으로만 따랐습니다. 두 번째 단계는 자신의 직업까지 포기하고 예수님과 생활하면서 따릅니다. 모든 제자들이 이 단계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 안드레는 예수님과 생활까지 함께 하는 제자들이었습니다. 세 번째 단계는 사도로 보내심을 받아서 또 다른 사람들을 예수님의 제자로 변화시킵니다. 예수님은 이 단계에 이르도록 제자들을 훈련하는데 최우선 순위를 두셨습니다. 열두 제자 명단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이름이 베드로입니다. 그는 예수님과 가장 오랜 시간 친밀한 관계를 맺었을 뿐만 아니라 항상 지도력의 위치에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벳새다 출신, 원래 이름은 시몬입니다. 시몬에게 예수님이 ‘베드로’라는 이름을 붙여 주셨습니다. 안드레와 함께 베드로가 예수님께 나왔을 때 이름을 베드로로 바꿔 주셨습니다.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게바는 바위, 반석이라는 뜻의 헬라어 ‘페트라’의 아람어식 발음입니다. 게바나 베드로, 페트라는 같은 이름입니다. 베드로는 매우 성급했고, 좌충우돌하고, 때로는 신뢰하기 어려운 약속을 남발하고, 자신을 과대평가하며, 호언장담하는 안정적이지 않은 성품이었습니다. 반석처럼 견고하고 묵직하게, 차분하게 정돈되기 보다는 항상 말이 앞서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름과 걸맞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장차 베드로가 매우 안정적인 사람으로 변화될 것을 미리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지금 베드로는 앞서 말씀드린 1단계의 제자로 살았습니다. 2단계,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는 매우 현실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세계관이 찢어지는 순간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많은 무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게네사렛 호숫가에 모였습니다. 게네사렛은 갈릴리 호수입니다. 어떤 때는 바다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3절을 보면, 예수님이 시몬의 배에 오르셔서 가르치셨습니다. 의도적으로 시몬의 배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에게 주신 이름대로 베드로와 같은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첫 번째 단계를 시작하신 것입니다. 시몬의 배에서 말씀을 가르치신 예수님이 그물을 씻고 있는 시몬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베드로를 상당히 당황하게 했습니다. 네 가지 이유로 따르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첫째, 그물을 씻고 있다는 것은 일과를 마쳤다는 것입니다. 둘째, 이미 밤새도록 그물을 내려 보았지만,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셋째, 반드시 그런 건 아니지만 밤에는 얕은 쪽, 아침에는 깊은 쪽으로 고기가 몰리는 법입니다. 더 어려운 시간대, 더 어려운 곳에서 고기를 잡으라는 말씀입니다. 넷째, “그물을 내리라”는 말씀의 원어를 보면 복수로 쓰여 있습니다. 가진 그물을 다 내리라는 뜻입니다. 이 상황을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베드로는 당연히 ‘아니요’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평범하지 않은 결단을 내립니다. 말씀대로 그물을 내리기로 결정합니다. 이것이 베드로가 가진 장점이자, 그가 수제자로 쓰임 받은 이유입니다. 그는 안정적이지 못하지만, 때로 과감한 결단을 하고, 평범하지 않은 결정을 내리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그의 잠재력을 보셨을 것입니다. “시몬이 대답했습니다. ‘선생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려 보겠습니다’”(5절). 자신의 경험과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행동을 해보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자신의 경험과 상식, 피곤을 내려놓고, 경험하지 못한 세계 속에 자신을 내던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믿음이란 비상식적인 게 아니라 초상식적입니다. 자신의 경험과 상식에 묶여 사는 것을 뛰어넘어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 알지 못한 세계, 보지 못한 세계로 발걸음을 내딛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이 순종은 온전한 순종이 분명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권세, 말씀의 권세, 능력 행하시는 권세 앞에서 감히 거역하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주변에 모여 있던 무리 앞에서 예수님을 존중하는 마음도 고려되었을 것입니다. 그때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물고기가 잡혔습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베드로의 자존심이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현실주의적인 세계관에 사로잡혀 있던 베드로의 세계관이 그물처럼 찢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자신의 경험을 넘어서는 실제가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 삶에도 이러한 기적이 일어나야 합니다. 나의 경험에 갇혀진 세계관이 깨어지고, 천지를 창조하시고 만물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영적인 세계를 인정하는 변화가 제자의 삶에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르게 된 결정적인 사건 “시몬 베드로가 이 광경을 보고 예수의 무릎 앞에 엎드려 말했습니다. ‘주여, 제게서 떠나십시오. 저는 죄인입니다’”(8절). 뜻밖의 고백입니다. 말씀대로 순종해서 많은 물고기를 잡았으면 기뻐하고 감사하고 놀라워하는 게 자연스러운 반응일 텐데, 갑자기 자신의 죄인 됨을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이 고백이 오늘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르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이 기적을 통해 두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첫째, 예수님이 단지 훌륭하신 선생님이 아니라 천지를 창조하시고 만물을 다스리시는 주님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둘째, 자신이 죄인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는 어부로서의 자존심을 가지고 그물을 내렸습니다. 예수님을 온전히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불신과 의심, 불만 등이 혼재되어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경외심, 자신의 양심의 소리를 듣는 자각능력이 베드로에게 있었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부적합한 사람인지를 깨닫는 겸손이 베드로의 또 다른 장점입니다. 우리에게도 겸손이 있어야 합니다. 놀라운 기적 앞에서 자신의 죄인 됨을 깊이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작고, 연약하고, 더러운 자인지를 깨닫는 겸손이 필요합니다. “세베대의 아들들이며 시몬의 동료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시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10절).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마 1:17).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들의 배를 뭍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둔 채 예수를 따라갔습니다”(누 5:11). 첫 번째 단계의 제자에서 두 번째 단계의 제자로 넘어간 것입니다. 예수님의 “나를 따르라”는 말씀에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르는 단순한 순종이 그들에게 있었습니다. 갈릴리 어부들은 예루살렘의 바리새인들보다 부족한 점이 많았습니다. 학식도 부족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 큰 미덕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부르심 앞에서 따지지 않고 즉시로 모든 것을 버려두고 따른 것입니다. 이들의 행동을 충동적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들의 고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죄인 됨의 고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주님이시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고, 자신의 죄인 됨을 깊이 깨닫는 분명한 인격적인 체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됐습니다. 고기를 잡는 어부에서 사람을 낚는 어부로 전환이 이루어집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두 차례 “나를 따르라”는 부르심을 받습니다. 첫 번째가 이 사건이고, 두 번째는 예수님 부활하신 이후 베드로가 다시 어부로 돌아가려고 했을 때 “내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 질문하시고 그를 다시 부르신 사건입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원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요 21:22). 베드로의 생애 전체가 “나를 따르라”는 두 번의 부르심 앞에 놓여 있습니다. <누가복음> 5장의 부르심과 <요한복음> 21장의 부르심 사이에 베드로의 신앙 고백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부족하고 연약하고 많이 흔들리고 좌충우돌하던 베드로를 허용하셨습니다. 사단에게 넘어가 배신하고 좌충우돌했던 그를 이름에 합당하게 변화시키셨습니다. 끝까지 자신을 따르는 제자로 변화시키셨습니다. 그 목적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3단계의 제자가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예수님 제자의 궁극적인 목적은 또 다른 사람을 제자 삼는 사람 낚는 어부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단계의 제자인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시몬을 베드로로 부르시고, 흔들리고 실패하고 배신하고 도망치는 그를 또다시 부르셨습니다. 결국 베드로의 이름처럼, 믿음의 초석이 되게 하시고, 그의 신앙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게 하셨습니다. 초대교회의 반석 같은 지도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한번 부르신 제자는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저와 여러분을 부르셨다면 결코 내버려 두지 아니하십니다. 그 부르심 앞에 얼마나 빨리 순종하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 살기를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6-01-17  제1573호

  • 국내캠퍼스

    [News] "선교는 온누리교회의 심장입니다!" “선교는 온누리교회의 심장입니다!” 1월 10일과 11일 2차‘2026 선교헌금 작정’ 선교헌금작정서, QR코드, 온라인, 전화 참여 2차 ‘ 2026 선교헌금 작정’ 을 1월 10일(토)과 11일(일) 국내 온누리교회 모든 캠퍼스 예배에서 한다. 이날 온누리교회 모든 예배에서 나눠주는 ‘ 선교헌금작정서’ 를 작성해서 제출하거나 영상예배 QR코드, 온누리교회 유튜브 채널 더보기란, 온누리교회 홈페이지(onnuri.org), 전화로 참여할 수 있다. 선교헌금 작정을 희망하는 성도들은 ‘ 자동 이체(CMS)’ 나 ‘ 봉투’ 중에서 한 가지 방법을 선택하면 된다. 개인정보, 금액 등을 정확하게 작성해야 한다. 개인정보 수집 및 제공 동의도 반드시 해야 한다. 선교헌금 증액 및 해지는 전화(02-3215-3616)로 문의하면 된다. 자동 이체 방식으로 선교헌금을 봉헌하는 성도들은 자동으로 연장된다. 자동이체 날짜는 매월 25일이다. 봉투로 선교헌금을 봉헌하는 성도들은 ‘ 선교헌금작정서’ 를 다시 작성해서 제출해야 한다. 이찬양 선교사(잠비아)는 “고통스러운 고난을 견디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힘은 ‘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는 하나님의 약속과 온누리교회 성도님들의 사랑 덕분”이라며 “늘 기도와 선교헌금으로 변함없는 사랑을 채워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했다<관련 기사 4면>. 한편 2026 선교사 간증집 <눈물이 기쁨 되어>를 출간했다. 전 세계에서 사역하는 온누리교회 파송 선교사 19유닛의 간증이 담겨있다. 1월 11일(일) 예배 이후 성도들에게 배포한다. 온누리교회 홈페이지에서 PDF 파일로도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문의: 02-3215-3616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2026 오직 예수 신년새벽기도회 17일까지 오전 5시 30분 각 캠퍼스 본당 2026 오직 예수 신년새벽기도회가 ‘ 나를 따르라’ 를 주제로 1월 17일(토)까지 오전 5시 30분 국내 온누리교회 모든 캠퍼스 본당에서 이어진다. 온누리교회 유튜브 채널과 CGN에서 실시간 중계한다. 2026 오직 예수 신년새벽기도회 2주 차에는 1월 12일(월) 정재욱 목사 ‘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마 7:7~11), 13일(화) 신동식 목사 ‘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눅 10:36), 14일(수) 양재경 목사 ‘ 너희도 가려느냐?’ (요 6:66~69), 15일(목) 노규석 목사 ‘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 16:13~20), 16일(금) 변대섭 목사 ‘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 7:1~5), 17일(토) 이재훈 위임목사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요 21:15)를 주제로 메시지를 전한다. 토요일에는 모든 세대가 함께 참여하는 연합예배를 드린다. 이정민 성도(서빙고온누리교회)는 “그동안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세상과 나 자신을 믿고따랐던 것을 회개하며 작은예수 새벽기도회에 참석하고 있다”면서 “새해에는 예수님을 따르고 닮아가는 제자로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공동체성경읽기’시작 유튜브 채널, 2부 새벽기도회, 공동체성경읽기 모임 ‘공동체성경읽기’ 가 시작됐다. 공동체성경읽기는 세 가지 방법으로 참여할 수 있다. 첫째, 매일 자정 유튜브 ‘ 365 성경읽기’ 채널(www.youtube.com/@every365bible)에 업로드되는 ‘ 절기별 영상’(하루 15~17분 분량)을 시청하면 된다. 2월부터는 온누리교회 공동체성경읽기 앱을 통해 시청할 수 있다. 공동체가 함께 참여할 때는 공동체별 SNS 단체대화방을 개설하고, 공동체 총무나 순장, 정해진 사역자가 매일 자정에 업로드되는 영상 링크를 공유하면 된다. 성경 읽기 진도표는 온누리교회 홈페이지 하단(교인지원센터→자료실)에서 다운받을 수 있다. 책갈피형 성경 읽기 진도표도 제공한다. 책갈피형 성경 읽기 진도표는 1월 한 달 동안 온누리교회 안내데스크 및 헌금함에 비치한다. 둘째, ‘ 서빙고온누리교회 2부 새벽기도회’에 참석한다.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6시 30분 선교관 비전홀에서 진행된다. 셋째, ‘ 공동체성경읽기 모임’ 에 참여한다. 구체적인 일정과 장소 등은 추후 공지한다. 문의: 02-3215-3239 / 박지혜 기자 차세대 패션집회 ‘Unshakable’ 1차 1월 30일~2월 1일, 2차 2월 1~3일 2026 차세대 파워웨이브 연합수련회 패션(PASSION, 이하 패션집회)이 막 오른다. 1차 1월 30일(금)부터 2월 1일(일), 2차 2월 1일(일)부터 3일(화)까지 배재대학교(대전광역시 서구 배재로 155-40)에서 ‘ Unshakable(흔들리지 않는)’ 을 주제로열린다. 2026 패션집회에서는 개회예배, 저녁집회, 파워페스티벌, 주제 강의, 폐회예배 등의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참가를 원하는 차세대들은 부서별로 제공된 참가 신청 링크에 접속해서 신청서를 작성하면된다. 김선재 목사(차세대본부장)는 “패션집회 ‘Unshakable’ 에 참가하는 모든 청소년이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바란다”고당부했다. / 홍하영 기자

     2026-01-10  제1572호

  • 주일강단

    [주일강단] 가서 제자 삼으라  가서 제자 삼으라 <마태복음> 28:16~20 /이재훈 위임목사 예수님이 제자를 부르실 때마다 주신 말씀은 매우 간단하고 직선적이었습니다. “나를 따르라.” 3년 동안 제자들과 함께 생활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후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도 매우 간단하고 직선적이었습니다. “가서 제자 삼으라.”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두 가지 부르심을 받은 이들입니다. “나를 따르라”는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은 결국 “가서 제자 삼으라”는 명령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따르라”고 부르신 목적이 ‘가서 제자 삼는 제자’로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마지막에 예수님의 이 명령이 기록된 것은 <마태복음서>가 기록된 목적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은 구원으로의 부르심이며, 하나님 나라의 부르심이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선교로의 부르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복되게 하신 것은 모든 민족의 복의 통로가 되게 하는 계획이었던 것처럼, 에수님이 “나를 따르라”고 제자를 부르신 까닭은 모든 민족의 제자를 삼는 사역자로 부르는 것입니다. 갈릴리로 가야하는 두 가지 이유 예수님이 “가서 제자 삼으라”는 명령을 주신 곳이 갈릴리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 열한 제자와 함께 갈릴리의 한 산에 오르셨을 때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자들이 만난 곳은 예루살렘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여러 번 만난 제자들은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어리둥절하고 당황하며 두려웠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이 “갈릴리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고 전하라. 그곳에서 그들이 나를 만날 것이다’”(마 28:10). 그래서 열한 제자들이 갈릴리로 가서 예수님이 일러주신 산에 이르렀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 예루살렘에 주로 계셨고, 제자들도 예루살렘에 머물고 있었을 때입니다. 그렇다면 예루살렘에서 제자들을 만나시고 승천하시는 게 더 간단하지 않았을까요?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는 적어도 120km 이상 떨어진 거리였기 때문입니다.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가서 다시 만나자고 말씀하실 필요가 있었을까요? 예루살렘에 모여 있는 제자들을 만나고, 그곳에서 승천하실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갈릴리로 가라. 거기서 우리가 만나자”라고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를 명백하게 말씀하지는 않으셨지만, 전후 문맥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이유입니다. 첫째, 부르심을 받은 자리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갈릴리는 그들이 제자로 부름을 받은 지역입니다. 제자의 삶을 돌아보는 자리로 돌아가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갈릴리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심으로 그들이 부름을 받았던 곳에서 어떻게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는지, 그 부르심에 어떻게 응답했는지 그 첫 순간을 기억하고, 그곳에서 주신 말씀들을 기억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앞으로 어디로 향해야 할지를 알기 원한다면 어디에서부터 시작됐는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기 원한다면 우리가 누구의 부르심을 받았는지를 되새겨야 합니다. 둘째, 갈릴리가 가진 선교적 의미 때문입니다. 당시 갈릴리는 유대의 변두리였습니다. 이방과의 접촉이 많고, 이방 민족의 침입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구약 말씀에 갈릴리를 어둠과 그늘이 가득한 곳으로 묘사하는 것입니다. 갈릴리를 표현할 때 언제나 ‘이방인의 갈릴리’라는 표현을 함께 썼습니다. 그만큼 변두리였고, 이방의 침략도 많았고, 이방인들이 섞여 사는 지역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철저한 유대 민족 중심의 도시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예루살렘이 아닌 이방인의 도시라고 불리는 갈릴리에서 승천하시면서 이 명령을 주신 이유는 선교적 의미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제자들의 소명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 지역에만 머물며 그들끼리 어떤 종교적 체계를 이루고, 그들만의 공동체를 이루며, 그들만의 예수님을 기억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이방으로 퍼져 나가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 장소를 통해서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열한 제자들이 갈릴리로 가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 경배 드렸습니다. 이제 제자들이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분명히 알게 되었기에 그분께 경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들은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 생활했습니다. 때로 예수님이 기적을 일으키시기도 하고, 그들에게 귀한 가르침을 주시셨지만, ‘제자들이 예수님을 경배하였다’는 표현은 여기서 처음 나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깨달을 때만 진정한 경배가 나오는 것입니다. 참된 예배가 드려지지 않는 까닭은 우리가 예배드리는 분이 어떤 분인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참된 예배공동체에서 진정한 선교가 일어납니다. 예배공동체와 선교공동체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성령 안에서 우리는 참된 예배자요, 참된 선교공동체가 됩니다. 예배와 선교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선교의 목적은 예배가 없는 곳에 예배가 일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예배자들이 일어나게 하는 것이 선교의 목적입니다. “제자 삼으라”는 명령, 선교의 가장 중요한 핵심 “그리고 그들은 예수를 뵙고 경배드렸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의심했습니다”(17절). 부활하신 예수님을 눈으로 보고도, 그 명령을 받고도, 승천하시는 모습을 보고 있음에도 의심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어떤 경우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대한 의심이 여전히 있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한 의문이 여전히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가 온전한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명령을 주셨습니다. 베드로의 모습과 제자들이 도망하는 모습을 보면 ‘어떻게 이런 사람들을, 예수님이 잘못 보신 게 아닌가?’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한 사람은 배신했고 자살했고 열한 명만 남았습니다. 더군다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앞에 두고도 의심하고 있는 이들을 예수님은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이 명령을 주셨습니다. 이 말씀이 주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마음속에 여전히 의심이 있고,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대한 의구심이 있기에 ‘나는 이 명령에 해당되지 않는다’라고 변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열한 명 중에도 여전히 의심하고 있는 이들을 예수님이 부르시고, 그들을 통해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면 우리의 모든 의심은 확신이 되고, 불안은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왜 이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까? 이 명령을 주신 분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셨기 때문입니다. “그때 예수께서 다가오셔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내게 주어졌다’”(18절).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구원을 이루심으로써 이 명령을 주실 수 있는 권세를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그 권세를 가지신 분이 우리를 이끌어 가고 계시고, 그분이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이 명령을 <마태복음>에서 가장 포괄적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체계적으로 정리해주고 있습니다. 그 명령은 “제자 삼으라”는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라”(19~20절). 한글 성경에서는 예수님의 이 명령에 네 개의 동사가 나옵니다. ‘가라’, ‘제자 삼으라’, ‘세례를 주라’, ‘가르쳐 지키게 하라’. 그런데 원문으로 보면 명령형 동사는 딱 한 가지입니다. “제자 삼으라”입니다. 그것만 동사이고, 나머지는 분사형입니다. 분사형은 문법적으로 동사를 보완하기 위하여 보조하는 형태입니다. 무엇을 위해서 갑니까? 제자 삼기 위해서입니다. 왜 세례를 줍니까? 제자 삼는 것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세례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것,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그분의 십자가에서 함께 죽고 부활을 경험하는 새 생명의 체험이 세례입니다.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명령은 교사가 학생을, 부모가 자녀를 세심하게 가르쳐 주듯 예수님의 모든 말씀을 온전히 가르침으로 인해서 제자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다른 문화권에도 가는 것이고, 세례를 주고, 가르쳐 지키게 함으로써 궁극적인 목적은 “제자 삼으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이루는 것입니다. 참된 선교는 제자 삼는 것입니다. 2024년 열렸던 4차 로잔대회 서울선언 72항에서 하나님 백성의 선교가 제자 삼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을 다시 강조했습니다. 제자 삼으라는 명령이 곧 선교의 가장 중요한 핵심입니다. 우리가 이 부르심을 받을 때 놀라워해야 하는 세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첫째, 장차 예수님을 믿는 모든 이들에게 이 명령을 동일하게 주셨습니다. 열한 명은 모든 제자를 대표하는 이들이기에 모든 성도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둘째, 그 대상이 모든 민족입니다. 셋째, 이 명령을 받은 제자의 숫자가 열한 명이었습니다. 당시 팔레스타인에 거주하고 있던 소수의 열한 명에게 모든 민족을 대상으로 하는 명령을 주셨습니다. 이 명령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다음날부터 잠을 못 이루었을 것입니다. 불가능한 일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과연 열한 명의 제자가 모든 민족을 제자 삼는 것이 가능할까요? 예수님은 하실 수 있는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하실 수 있는 일을, 또 하셔야 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열한 명이 어떻게 모든 민족을 제자 삼습니까? 열한 명으로부터 출발해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되고, 그 열한 명을 통해 예수 믿고 제자 된 이들은 그 시대에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만나는 한 사람을 통해서 놀랍게도 온 세상에 복음이 전해지고, 예수님의 제자가 온 세상으로 퍼져 나갑니다. 문제는 이 명령을 얼마나 무겁고,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가입니다. 만일 교회가 이 명령을 가볍게 여기면 생명력을 잃어버립니다. 이 땅에 존재하는 많은 교회가 다툼과 분열로 얼룩지고, 능력을 잃어버리고, 예배의 감동이 없고, 기도의 역사가 없는 것은 단 한 가지 이유로 귀결됩니다. 이 명령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입니다. 이 명령을 ‘선택’으로 여긴 것입니다. 예수님은 열한 명의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그 열한 명으로 시작된 명령의 순종이 성령의 역사를 통해 또 다른 사람을 제자 삼았습니다. 그들이 또 다른 사람을 제자로 삼은 것입니다. 그 시대에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제자 삼으라”는 것은 궁극적으로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에 포함됩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전할 뿐만 아니라 사랑이 없어서 메말라 가는 영혼들을 총체적으로 섬겨야 합니다. 배고픈 자들의 빵이 되어 주기도 하고, 난민들의 울타리가 되어 주기도 하고, 생명의 위협에 처한 이들을 보호하고, 법적인 노예로 있는 이들을 자유케 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다”(20절b). 미래의 약속이 아니라 현재의 사실입니다. 언젠가 이루어질 약속이 아니라 이 명령에 순종하는 자와 함께하신다는 약속입니다. 우리가 왜 예수님의 함께하심을 체험하지 못할까요? 예수님의 이 명령과 상관없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명령에 순종하는 자들에게 예수님이 함께하신다는 약속이 주어졌습니다. 여러 나라와 민족에 파송된 선교사들을 돕고 지원하는 것도 내가 할 수 있는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온누리교회 모든 성도가 이 명령을 무겁게 받아들이며 순종하기를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6-01-10  제1572호

  • 국내캠퍼스

    [News] "온누리의 새해는 선교와 함께 시작합니다!" “온누리의 새해는 선교와 함께 시작합니다!” 1월 3~4일, 10~11일‘2026 선교헌금 작정’ 선교헌금작정서, 온누리교회 홈페이지, 전화 참여 온누리의 새해는 선교와 함께 시작된다. ‘2026 선교헌금 작정’ 을 1월 3~4일과 10~11일 국내 온누리교회 모든 캠퍼스 예배에서 한다. 이날 예배에서 나눠주는 ‘ 선교헌금작정서’ 를 작성해서 제출하거나 영상예배 QR코드, 온누리교회 유튜브 채널 더보기란, 온누리교회 홈페이지(onnuri.org), 전화로도 참여할 수 있다. 선교헌금 작정에 참여를 희망하는 성도들은 ‘자동이체(CMS)’ 나 ‘ 봉투’ 중에서 한 가지 방법을 선택하면 된다. 개인정보, 금액 등을 정확하게 작성해야 한다. 개인정보 수집 및 제공 동의도 반드시 해야 한다. 선교헌금 증액 및 해지는 전화(02-3215-3616)로 문의하면 된다. 자동이체 방식으로 선교헌금을 봉헌하는 성도들은 자동으로 연장된다. 자동이체 날짜는 매월 25일이다. 봉투로 선교헌금을 봉헌하는 성도들은 ‘ 선교헌금작정서’ 를 다시 작성해서 제출해야 한다. 지난해 온누리교회는 선교헌금 119억 원(11,934,019,785원)을 선교사 후원(62%), 선교사역비(15.5%), 시설운영비(9.6%), 기관 지원(8.9%), 행정운영비(4.1%) 등에 사용했다. ‘2026 선교헌금’ 은 선교사 후원(60%), 선교사역비(16%), 기관 지원(9%), 시설운영비(9%), 행정운영비(5%) 등에 사용할 예정이다. 이재훈 위임목사는 목회서신에서 “선교는교회의 심장”이라면서 “새해에도 안주하지 않고 하나님이 맡기신 선교 명령에 순종하며 끊임없이 나아가자”고 권면했다<관련기사4면>. 한편 2026 선교사 간증집 <눈물이 기쁨 되어>가 출간됐다. 전 세계에서 사역하는 선교사 19유닛의 간증이 담겨있다. 1월 4일과 11일 일요주일 예배 이후 성도들에게 배포한다. 온누리교회 홈페이지에서 PDF 파일로도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문의: 02-3215-3616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오직 예수 신년새벽기도회‘나를 따르라’ 1월 5~17일 매주 월~토 오전 5시 30분 각 캠퍼스 본당 2026 오직 예수 신년새벽기도회가 시작된다. 1월 5일(월)부터 17일(토)까지 매일 오전 5시 30분 국내 온누리교회 모든 캠퍼스 본당에서 열린다. 온누리교회 유튜브 채널과 CGN에서는 실시간 중계를 한다. 토요일에는 전세대가 함께 예배드린다. 오직 예수 신년새벽기도회 첫째 주에는 1월 5일(월) 이재훈 위임목사 ‘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눅 2:49), 6일(화) 도육환 목사 ‘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눅 7:24), 7일(수) 유현목 목사 ‘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막 10:35~40), 8일(목) 김승수 목사 ‘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마 16:21~28), 9일(금) 김승훈 목사 ‘ 너희의 믿음이 어디 있느냐?’(눅 8:22~25), 10일(토) 노희태 목사 ‘ 너희 중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목숨을 조금이라도 더 연장할 수 있겠느냐?’(마 6: 25~34)를 주제로 메시지를 전한다. /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새해에도‘공동체성경읽기’ 유튜브 채널, 2부 새벽기도회, 공동체성경읽기 모임 새해에도 ‘ 공동체성경읽기’ 를 한다. 공동체 성경읽기에 참여를 희망하는 성도와 공동체는 세 가지 방법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첫째, 매일 자정 유튜브 ‘ 365 성경읽기’ 채널에 업로드되는 ‘ 절기별 영상’ 을 시청하면 된다(2월부터는 공동체성경읽기 앱을 통해 제공). 하루 15~17분 분량이다. 공동체가 함께 참여할 때는 SNS 단체대화방을 개설하고, 공동체 총무나 순장, 정해진 사역자가 매일 자정에 업로드되는 영상의 링크를 공유하면 된다. 성경읽기 진도표는 온누리교회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다. 책 갈피형 성경읽기 진도표는 1월 한 달간 온누리교회 안내데스크 및 헌금함 위에 비치 될 예정이다. 둘째, ‘서빙고온누리교회 2부 새벽기도회’에 참석하는것이다.월요일부터금요일까지 오전 6시 30분 선교관 3층 비전홀에서 진행된다. 셋째, ‘ 공동체성경읽기 모임’ 에 참석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일정과 장소 등은 추후 공지한다. 문의: 02-3215-3239 / 박지혜 기자 청년부 리더십 콘퍼런스, 대학부 연합 콘퍼런스 1월 말부터 2월 말까지는‘겨울 아웃리치’ 대학청년부 ‘ 청년부 리더십 콘퍼런스’ , ‘ 대학부 연합 콘퍼런스’ , ‘ 겨울 아웃리치’ 가 이어진다. 2026 청년부 리더십 콘퍼런스는 1월 9일(금)부터 11일(일)까지 영산수련원(경기도 파주시조리읍 등원로 391번길 42)에서 ‘ 나를 따르라’ 를 주제로 진행된다. 대학부 연합 콘퍼런스는 1월 9일(금)부터 11일(일)까지 소망수양관(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 건업길 122-83)에서 ‘ 나를 따르라’ 를 주제로 이어진다. 대학청년부 겨울 아웃리치는 1월 말부터 2월 말까지 약 한 달 동안 이어진다. 일본, 대만, 베트남 등지에서 노방전도, 부흥집회, 현지 청년 집회, K-문화 사역 등을 할 예정이다.

     2026-01-03  제1571호

  • 주일강단

    [주일강단] 평범함 속의 비범함  [주일강단] 평범함 속의 비범함 <고린도전서> 10:31 /이재훈 위임목사 한 해를 돌아보면 특별한 사건이나 충격적인 사건만 기억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온 한 해의 99% 이상은 매우 평범한 일상입니다. 또 다른 한 해도 그럴 것입니다. 우리는 대개 하나님의 영광이 어떤 특별한 체험이나 사건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 인생은 너무 평범해서 하나님의 영광과 상관없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뜨립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행하든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십시오”(고전 10:31). 먹고 마시는 것은 생존을 위한 본능입니다. 우리의 가장 기초적인 일상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과 연결된다고 말씀합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는 말씀은 거룩함에는 예외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거룩함의 영역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교회와 세상, 주일과 평일을 나누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과 관련된 순간은 어느 한 순간도 제외될 수 없습니다. 생활할 때뿐만 아니라, 잠잘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거룩함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아브라함 카이퍼가 우리의 생각의 지평을 훨씬 넓혀줍니다. 화란 자유대학교를 설립할 때 개교 연설이 명문장으로 남아있습니다. “우리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서 만유의 주재이신 그리스도께서 ‘내 것이라!’라고 외치지 않는 영역은 단 한 인치도 없다.” 과학과 예술, 정치와 비즈니스, 교육과 가정, 개인의 삶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가 “나의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는 영역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살림을 하는 것, 학생이 공부를 하는 것, 직장에서 일을 하는 것, 친구를 만나는 사소한 만남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께 속하지 않는 영역은 단 한 가지도 없다는 것을 생각할 때, 모든 삶의 영역이 거룩함의 영역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상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동기와 목적이 중요합니다” 어떻게 평범한 일상이 영광이 될 수 있습니까? 첫째, 동기와 목적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동기와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에 초점이 맞춰질 때 가능합니다. 17세기 시인이자 목사였던 조지 허버트는 많은 신앙시를 남겼습니다. 그분의 시가 많은 찬송가 가사가 되었습니다. 그분의 한 찬송시에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왕이여, 범사에 주를 보게 하시고 나 무슨 일을 하든지 주를 위하여 하게 하소서. 유리를 보는 자의 눈, 유리에 머물 수도 있으나 원한다면 그 너머로 천국을 볼 수 있습니다. 범사에 주와 더불어 하면 천한 일이란 없습니다. ‘주를 위해’ 그 한 마디에 모두 밝고 깨끗해집니다.” ‘범사에 주와 더불어 하면 천한 일은 없다’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비범한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남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 어떤 영역, 어떤 일이건 그 동기와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에 속한 것임을 의식할 때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거룩한 예배의 제단이 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가장 빠지기 쉬운 유혹이 ‘영적 허영심’입니다. 영적 허영심이란 큰일을 할 때는 하나님이 필요하다고 느끼지만, 아주 사소하고 작은 일처럼 보이는 일은 내 힘으로도 충분하다고 믿는 오만입니다. 모든 삶의 가장 사소해 보이는 행동조차도 하나님의 영광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단순히 내 배를 채우기 위해,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먹는 것은 평범한 행위지만 그 음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 음식이 만들어질 때까지 수고한 이들을 기억하며 그들에게도 감사하고, 그 음식을 통해 누군가와 화해하고 화목하며, 누군가의 배고픔을 해결해 주는 것으로 나아간다면 비범한 사역이 되는 것입니다. 동기와 목적이 똑같은 식사지만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그분의 죽음을 먹고 마시는 것으로 기억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받아 먹으라, 이것을 받아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떡과 잔을 먹고 마시는 것을 통해서 예수님을 기억하도록 하셨습니다. 늘 우리는 먹고 마십니다. 우리의 먹고 마심이라는 행위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기억하고, 그분과 우리의 연합을 기억하게 하는 것으로 승화시킨 것입니다. 그러므로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해 먹는 것, 생존을 위한 본능에 머물지 않고 그 힘으로 섬기고 나누고 베풀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겠다는 동기와 목적을 품을 때 비범한 행위가 되는 겁니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것은 노동이 될 뿐입니다. 그러나 정직한 사업과 거래를 통해 세상 속에 그리스도의 공의를 나타내고자 일한다면 그것은 선교입니다. 사역이 되는 것입니다. 정직하고 의롭게도 돈을 잘 벌 수 있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라면 선교 행위입니다. 지극히 일상적인 비즈니스 활동이지만 세속적인 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목수가 나무로 작품을 만들고, 주부가 영양가 있는 음식으로 자녀를 잘 양육하는 모든 일상적인 동기와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볼 때, 그분은 그 모든 행위를 예배로 받으십니다. <하나님의 임재 연습>을 쓴 로렌스 형제는 학자 수도사가 아닙니다. 그가 하는 수도사의 일은 요리사였습니다. 그 전에는 구두를 수선하는 일을 했습니다. 수도원에서 지극히 작은 일, 요리하는 일, 설거지하는 일, 누군가의 신발을 고쳐주는 일을 행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깊이 묵상하며 쓴 책이 수백 년 동안 영적 고전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가능합니다. 많은 사람이 주목하는 비범한 일을 이루어야만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게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그 동기와 목적이 그것을 가늠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순간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지를 질문하며 살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덕을 세우는 일” 둘째, 다른 사람을 위해 덕을 세우는 일이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에서 먹고 마시는 일을 언급하는 중요한 배경이 있습니다. 당시 고린도는 거대한 상업 도시였고, 그만큼 우상숭배가 만연했던 시대였습니다. 당시 고린도 시장에서 유통되는 육류 대부분은 신전에 바쳐졌던 제물이었습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심각한 논쟁이 일어납니다.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먹어도 되는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당시 교회에는 지식이 있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신학적으로 올바른 정답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상은 실재하지 않는 허상일 뿐이고, 그러므로 그 제물을 먹는다고 해서 영적으로 내가 오염되는 것 아니다. 그 우상의 어떤 세력이 내 안에 들어오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먹을 수 있다.” 이것이 사실 정답입니다. 올바른 지식입니다. 사도 바울도 그 지식을 따랐습니다. 그들의 논리는 완벽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의 지식이 아니라 태도였습니다. 그들은 지식에 근거해 자신의 신앙의 자유를 누리면서 시장에서 고기를 자유롭게 사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본 믿음이 약한 자들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믿음과 양심이 약한 이들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우상의 제물을 먹을 수 있느냐?’며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힘들어하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실족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이 문제가 신약성경 곳곳에 나옵니다. 모든 교회가 이 문제에 봉착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먹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 어떤 이들은 먹을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바울은 나에게는 평범하고 당연한 자유가 누군가에게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을 절제하고,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형제에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들이 틀렸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지식이 틀렸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단, 지식에 사랑이 없을 때는 공동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합니다. 그래서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나 사랑은 덕을 세운다”라고 말합니다. 진정한 예수님의 사람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 자유를 자랑하는 게 아니라, 자유롭게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덕을 세우기 위해 무엇을 하지 않을지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자유로운 일상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유익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곧 덕을 세우는 일이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유대 사람에게든지 그리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의 교회에든지 걸려 넘어지게 하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나도 모든 일에 모두를 기쁘게 하며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합니다. 이는 그들이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32~33절).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만 집중하는 게 아니라 수평적으로 관계에서도 나타납니다. 내 곁에 있는 성도들이 나의 행동으로 인해 실족하지 않고 구원받을 뿐만 아니라 세워지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입니다. ‘덕을 세운다’는 헬라어 ‘오이코도메’는 ‘집을 짓는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행동은 하나님의 거대한 집, 공동체라는 하나님의 집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들, 우리의 행동 하나, 말 한 마디, 직장에서의 사소한 행동 모든 것이 보이지 않는 영적 건물을 짓는 벽돌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허용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모든 것이 허용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든 자기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십시오”(고전 10:23~24). 이중적인 생활을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덕을 세우는 행동’이라는 기준을 가르쳐 준 것입니다. 이렇게 반문할 수 있습니다. “왜 나의 자유가 다른 사람의 양심에 의해 판단을 받아야 하고 제한을 받아야 됩니까? 내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식사하면 되는데, 왜 나의 감사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지적을 받아야 됩니까?” 그 대답이 31절 말씀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십시오” “그러나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행하든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십시오”(31절). 먹고 마시는 건 자유입니다.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도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그것으로 인해 시험 드는 이가 있다면 하지 않는 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나의 유익을 위해서는 먹을 수 있지만, 누군가 시험 드는 일이 있다면 먹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초점을 맞추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비범함이란 지식으로 남보다 높은 위치에 서는 것이 아닙니다. 남을 세워주기 위해 기꺼이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내가 오늘 누군가에게 건네는 따뜻한 위로, 공동체의 화평을 위해 침묵하는 인내가 모여서 하나님의 집, 공동체가 세워져 가는 것이고,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드려지는 삶입니다. 세기의 전도자 빌리 그레이엄은 “그리스도인은 움직이는 성경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성경을 읽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의 일상을 읽습니다. 공중에 나는 새 한 마리도 하나님 허락 없이는 떨어지지 않듯이, 우리 삶의 단 1분 1초도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밖에 있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상은 모두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그분의 영광을 드러낼 순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기회가 있다는 하나님 섭리의 관점을 가져야합니다. 나의 자유와 권리 이전에 하나님의 영광, 이웃에게 덕을 끼치고 상대방을 배려하고, 공동체를 배려하는 덕을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모든 일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결단하십시오. 우리의 평범한 일상에서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비범한 영광을 나타내십시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6-01-03  제1571호

  • 사역

    [두란노서원 창립 45주년] 활자부터 디지털까지, 오직 예수! [두란노서원 창립 45주년] 활자부터 디지털까지, 오직 예수! '문서선교' 새 지평 열고, 끊임없는 도전, 그리고 변화 올해는 두란노서원 창립 45주년이다. 지난 12월 22일(월) ‘두란노서원 창립 45주년 감사예배’를 두란노서원 본사에서 드렸다. 1980년 창립된 두란노서원은 45년 동안 ‘문서선교’라는 새 지평을 열고,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끊임없이 도전하고 변화했다. 처음에는 1985년 창간한 월간지 <빛과소금>을 중심으로 교회와 성도들에게 ‘활자로 만나는 영의 양식’을 전달했다. 2022년 두란노서원은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기독교 출판사 최초 크리스천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 ‘두플러스(Duplus)’를 선보이며 ‘디지털로 만나는 영의 양식’도 제공하기 시작했다. 활자부터 디지털까지 오직 예수만 전하는 두란노서원의 역사를 정리했다. / 박지혜 기자 '두란노서원’의 태동 건강 악화로 병상에 머물던 하용조 목사가 <사도행전>을 묵상하다가 바울이 에베소의 ‘두란노서원’에서 날마다 말씀을 가르치며 제자들을 세우는 장면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그러면서 최고 수준의 기독 서적과 잡지, 세미나를 통해서 세속문화를 변화시키겠다는 새로운 비전을 품었다. 그 결실이 바로 ‘두란노서원’이었다. 두란노서원의 역사를 논할 때 1985년 창간한 <빛과소금>을 빼놓을 수 없다. 당시 기독교 매체 중에서 유일하게 일반 성도를 대상으로 발간한 잡지였다. 두란노서원은 <빛과소금>외에도 매일 말씀 묵상을 돕는 큐티지 <생명의 삶>, 목회자를 위한 전문지 <목회와신학> 등 현재까지 총 7종의 정기간행물을 발행하고 있다. <일대일제자양육 성경공부>, <가스펠 프로젝트> 등 다양한 성경공부 교재와 제자양육 교재도 선보이며 교회 교육과 훈련을 돕고 있다. 2022년에는 기독교 출판사 최초 크리스천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 ‘두플러스(Duplus)’를 론칭했다. 세계 어디서나 두란노서원의 콘텐츠는 물론이고, 여러 기독 출판사의 다양한 콘텐츠를 접하도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두플러스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복음을 접하도록 돕는 ‘내 손안의 복음’, 검증되고 선별된 ‘복음 중심 콘텐츠’, 목회자의 사역과 설교 준비를 지원하는 ‘목회 비서’를 핵심 가치로 삼고 있다. 디지털 시대를 사는 성도들이 두란노서원의 두플러스를 활용하여 양질의 기독 콘텐츠에 접근하고, 시공간의 한계를 넘어 신앙 성장을 하도록 최일선에서 돕고 있다. 네 가지 비전, Dream for the [ ] 두란노서원의 네 가지 비전이 있다. 첫째, Dream for the ‘church’(교회의 성장과 성숙)다. 교회를 세우는 핵심 양육 콘텐츠를 제공해서 성도 개인과 공동체의 신앙 성숙을 돕는 게 사명이다. 둘째, Dream for the ‘Culture’(복음으로 세상을 변화)다. 기독교적 가치관을 담은 도서를 발행해서 복음적 관점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길을 제시하고, 신앙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세상 속에서 나타내도록 돕는다. 셋째, Dream for the ‘World’(땅끝까지 복음)다. 두란노서원은 미국, 남미, 대만, 일본 등 해외 지사를 운영하며 17개국과 QT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일대일제자양육 교재’, ‘QT’, ‘전도지 <최고의 행복> 등을 다국어로 번역해 현지에서 선교 도구로 활용하도록 돕고 있다. 넷째, Dream for the ‘Future’(다음 세대를 세우는 사역)다. 세대별 QT, 제자훈련, 성경공부 교재를 끊임없이 개발하고, 가정 예배와 신앙 전수를 돕는 콘텐츠 개발에도 앞장서고 있다. 중·고등학생을 위한 종교 교과서를 발행해 공교육 영역으로 사역의 지경을 확장하고 있다. 두란노서원의 발걸음 그리고 비전 두란노서원은 지난 45년 동안 연간 100여 종의 단행본과 목회 관련 잡지를 출간했다. 현재까지 단행본 총 4,500여 종을 세상에 내놓았다. 한국 교회의 영적 성장을 돕는 ‘교회와 협력하는 선교단체’로서의 사명도 굳건히 감당하고 있다. 두란노서원은 지난 시간 쌓아온 출판 사역의 성과에 머무르지 않고, ‘말씀 중심’이라는 본질적 정체성을 더 깊이 계승하며 하나님의 사명을 확장하고 있다. <일대일제자양육>, <생명의 삶> 등 검증된 양육 콘텐츠를 더욱 발전시키는 동시에, 디지털 플랫폼 ‘두플러스(Duplus)’를 통해 시대 변화에 부응하는 콘텐츠 혁신을 이어가고 있다. 이를 통해 시공간 제약을 뛰어넘어 성도들의 신앙 성장을 돕고, 종이 매체와 디지털 환경을 아우르는 새로운 복음의 통로를 마련하고자 한다. 두란노서원은 앞으로도 ‘오직 예수’라는 변치 않는 가치를 붙들고,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혁신적인 콘텐츠를 개발해 한국 교회 부흥과 세계 선교 완수를 돕는 가장 신뢰받는 동역자 역할을 해낼 것이다. 문의:support@duranno.com

     2025-12-27  제1570호

  • 주일강단

    [주일강단] 기뻐하여라, 은혜를 입은 자여  [주일강단] 기뻐하여라, 은혜를 입은 자여 <누가복음> 1:26~38 / 이재훈 위임목사 세상에서는 후손들이 조상의 삶과 그 업적을 기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조상들이 후손인 그분을 미리 전하고, 예언하고, 어떤 삶을 사실 것을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훌륭한 삶을 사셨기 때문에 메시아로 인정된 게 아닙니다. 메시아로 오시기로 예언되었고, 그 예언대로 메시아의 소명을 이루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성육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성육신하실 의무가 전혀 없었습니다. 오직 한 가지 이유는 하나님이 그렇게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자비로우신 하나님이 죄와 사망 가운데 있는 인간과 세상을 내버려두실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풍성하신 사랑과 자비하심 때문에 하나님이 성육신하시기로,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성육신하신 하나님 아들의 죽음을 통해서 모든 진노를 대신 담당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죽음을 삼키고, 죄를 이기고, 이 세상과 공중의 타락한 권세들을 무찌르는 능력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친히 오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담의 후손 가운데서는 그 누구도 합당한 자격을 갖춘 자가 없었고, 하늘의 천사들 가운데서도 합당한 능력을 갖춘 이가 없었습니다. 오직 성육신하신 하나님 아들의 헌신과 순종을 통해서 이 모든 일이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실 때 여자에게서 나게 하심을 말씀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 4절에서 “그러나 때가 차자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을 보내셔서 한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셨습니다”라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은 성경의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강조합니다. 그 첫 번째 예언이 <창세기> 3장 15절 “내가 너와 여자 사이에, 네 자손과 여자의 자손 사이에 증오심을 두리니 여자의 자손이 네 머리를 상하게 하고 너는 그의 발뒤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인간을 타락하도록 유혹한 뱀에게, 곧 사단에게 주신 심판과 저주의 말씀 가운데 장차 보내실 구원자를 여자에게서, 여자의 후손으로 오게 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구원자에 대한 약속의 말씀을 아담과 하와에게 주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에게 주시는 말씀에는 구원의 약속이 포함되지 않고, 뱀에 대한 저주의 말씀, 사단에 대한 심판의 말씀 속에 담아 주신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은 곧 사단에 대한 심판과 동시에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공의로운 심판을 통과하며 이루어집니다. 우리의 구원은 거저 주어지는 게 아닙니다. 죄에 대한 공의로운 하나님의 심판과 함께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성육신하신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사단에게 종이 되어 버린 모든 인간과 세상의 죄를 담당하신 그 십자가의 죽음, 그 공의로운 하나님의 심판을 통과하면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인의 후손을 통해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처녀에게 잉태케 하시는 두 가지 의미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다윗 왕실에 표적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처녀가 잉태해 아들을 낳고 그를 임마누엘이라고 부를 것입니다”(사 7:14). ‘친히’라는 단어의 의미는 무지하고, 거부할지라도 강권적으로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상태와 상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로 다윗 왕실에 표적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다윗 왕실의 후손 가운데 한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고, 그를 ‘임마누엘’이라 부를 거라는 것입니다. 처녀가 잉태하는 일을 기대할 리 없습니다. 전혀 기대하지도, 상상하지도 못했지만 이루어졌듯이, 모든 인간이 구원을 기대하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이 처녀에게서 태어나게 하신 아들을 통해서 임마누엘, 함께하는 역사가 일어날 것을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이 예언대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여자의 후손으로, 다윗의 왕실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여인의 후손, 처녀에게 아들을 잉태케 하신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인간 스스로 힘으로는 구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구원자는 인류 바깥에서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담의 후손 인류는 구원자를 스스로 낳을 수 없고, 교육이나 문명의 발전을 통해서도 구원자를 만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처녀가 잉태하는 것 같이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과 은혜, 역사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성령의 능력으로 죄가 없는 완전한 인성을 가능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무죄한 상태로 태어나신 것은 처녀의 아들로 태어나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성령의 능력과 보호하심으로 태어나셨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고,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께서 태어나셨습니다”(마 1:16). 이 족보의 의미는 <창세기> 3장 15절과 <이사야> 7장 14절에 예언된 대로 여인의 후손을 통해 메시아가 오실 것이고, 다윗의 후손을 통해 오되 처녀에게서 태어나는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가 예수님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타락 직후 주어진 말씀부터 시작해서 예수님 오시기 직전에 이르기까지 많은 예언과 역사적 사건을 통해 장차 오실 그분을 준비하셨습니다. 다윗의 후손인 처녀 마리아를 선택하셨습니다. 요셉만 다윗의 후손이 아니라 마리아도 다윗의 후손입니다. 하나님이 메시아 육신의 어머니를 택하실 때 마리아라는 믿음의 여인을 주목하셨습니다. 그것은 전례 없는 신비로운 일, 그리고 위험한 일을 요셉만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로부터의 오해를 감당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믿음으로 응답했고, 하나님은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성경은 동정녀 탄생을 논리적으로 증명하지 않습니다. 이 충격적이고, 당황스럽고, 감당하기 힘들 것 같은 소식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마리아의 반응을 통해 소개합니다. 어느 날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나 “기뻐하여라, 은혜를 입은 자여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신다”라고 인사합니다. 마리아는 천사의 인사에 당황하고 놀랍니다. 이러한 인사법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경건한 유대인들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선택, 특별한 소명을 받은 자에게 “은혜를 입은 자여”라는 표현을 쓰기 때문입니다. 만일 마리아가 경건한 삶을 살지 않았던 여인이었다면, 천사의 음성을 구별하지 못하고 놀라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무감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에 날마다 깨어 있는 사람만이 천사의 인사와 소식을 듣고 놀라워합니다. 마리아가 낳을 아들의 신분과 역할 “그러자 천사가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네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 보아라. 네가 잉태해 아들을 낳을 것이다. 그러면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는 위대한 이가 될 것이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주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 조상 다윗의 보좌를 주실 것이다. 그는 야곱의 집을 영원히 다스릴 것이며 그의 나라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30~33절). 천사가 마리아에게 전해준 이 소식은 구약의 모든 예언을 압축하고 또 압축한 것입니다. 이 짧은 말씀이 구약의 요약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마리아가 또다시 놀라워하며 질문합니다. “처녀인 제게 어떻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마리아의 말은 의심과 불신의 말이 아닙니다. “제가 어떻게 하나님 말씀이 이루어지는 일에 참여할 수 있겠습니까?”라는 질문입니다. 마리아와 비슷하지만 정반대 의도가 담긴 사례가 <누가복음> 1장에 나오는 제사장 사가랴의 질문입니다. 사가랴는 나이든 제사장입니다. 그런데 사가랴의 아내 엘리사벳이 자녀가 없어서 오랫동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셨는데 그때가 늦은 나이였습니다. 자녀를 낳을 수 없다고 여기는 때였습니다. 그때 사가랴가 “제가 어떻게 이 말을 확신하겠습니까? 나는 늙었고 내 아내도 나이 많았습니다. 징조를 보여주십시오”라고 응답했습니다. 사가랴의 ‘어떻게’는 ‘불신의 어떻게’입니다. 두 사람 모두 천사의 방문을 받았습니다. 두 사람 모두 출생에 대한 고지를 받았습니다. 두 사람 모두 ‘어떻게’라고 응답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차이를 보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똑같이 예배합니다. 똑같은 찬송을 부릅니다. 입술로는 똑같은 가사를 부르지만, 하나님은 그 마음과 영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를 보십니다. 하나님은 그 차이를 다 아시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이 질문은 믿음으로 수용하는 자세에서 가르침과 설명을 기대하는 질문입니다. “천사가 대답했습니다. ‘성령께서 네게 임하실 것이며 지극히 높으신 분의 능력이 너를 감싸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릴 것이다 성령이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능력이 너를 감싸 주심으로 네게서 태어날 아기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역사에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능력이 임하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므로 새 창조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천사는 마리아의 믿음을 견고하게 세워주기 위하여 사례를 듭니다. 보아라 네 친척 엘리사벳도 그렇게 많은 나이에 아이를 가졌다. 아이를 갖지 못하는 여자라 불렸는데 임신한 지 벌써 여섯 달째가 됐다.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전혀 없다”(35~37절). 성경에 아이를 낳지 못하는 가정에서 아이를 낳는 것으로 인해서 하나님이 역사하신 사례가 여러 가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아브라함과 사라입니다. 이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왜 이 가정들에 자녀를 낳지 못하다가 낳게 되는 역사가 일어났을까요? 하나님이 전능한 능력으로 역사하실 수 있다는 것을 역사 속에서 미리 보여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기뻐하여라 은혜를 입은 자여” “그러자 마리아가 대답했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의 여종입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러자 천사가 마리아에게서 떠나갔습니다(38절).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통로로 자신을 내어드린 것입니다. 순간적인 충동이 아닙니다. 평소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는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어떤 표적도 구하지 않았습니다. 천사가 전해준 그 음성만으로 만족했습니다. 어떤 표적 대신 가르침을 구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덮으심으로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는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마리아는 당시 알려진 제사장도 아니었습니다. 시골의 작은 처녀였을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을 통해서 놀라운 일을 이루십니다. 마리아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기뻐하여라 은혜를 입은 자여”라고 천사의 평가를 받았습니다. 당시는 어둡고 힘든 세상이었습니다. 로마의 압제가 있었습니다. 여성의 인권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힘겨운 착취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당시 권세자들과 지도자들은 부패했습니다. 어두운 세상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기뻐하여라, 은혜를 입은 자여”라고 말씀하신 것은 성육신으로 임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장례의 한복판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은혜를 입은 자들입니다. 성육신으로 오신 분을 믿는 모든 이들에게 기쁨과 은혜가 부어집니다. 여러분, ‘기쁨’과 ‘은혜’는 뜻이 통하는 단어입니다. 연결된 단어입니다. 은혜가 바로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서로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마리아처럼 은혜를 입은 자로, 기뻐하는 성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5-12-27  제1570호

  • 국내캠퍼스

    [News] 온누리의 크리스마스 온누리의 크리스마스 20~21일 성탄주일예배 24일 크리스마스 페스티벌, 25일 성탄감사찬양예배 온누리교회가 온 누리와 함께 풍성하고 따뜻한 성탄절을 보낸다. 12월 20~21일 성탄주일예배, 24일 크리스마스 페스티벌, 25일 성탄감사찬양예배를 드린다. 이웃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캠페인과 문화 행사도 내년 초까지 이어진다. ‘성탄주일예배’ 는 12월 20일(토)과 21일(일) 온누리교회 모든 캠퍼스에서 드린다. 이날 예배에서는 찬양사역팀이 ‘ 성탄 칸타타’를 한다. 12월 21일(일) 차세대 예배에서는 ‘성탄가정예배 가이드’ 가 담긴 갑티슈를 선물로 준다. 12월 24일(수)에는 ‘ 크리스마스 페스티벌’이 열린다. ‘ Love Came Down(사랑이 오셨네)’ 을 주제로 서빙고와 양재온누리교회에서진행된다. 서빙고는 오후 7시 30분 본당, 양재는 오후 7시 30분 사랑홀에서 열린다. 부천은오후 7시 30분 본당에서 ‘ 선물’ 을 주제로 크리스마스 패밀리 워십, 남양주는 오후 7시 30분 본당에서 ‘ 한 구유 이야기’ 를 주제로 성탄절 콘서트, 영종은 오후 7시 30분 백향목홀에서 ‘Joyful Christmas’ 를 주제로 성탄전야제를 한다. ‘성탄감사찬양예배’ 는 12월 25일(목) 1부 오전 9시, 2부 11시 30분, 3부 오후 1시 50분본당에서 드린다(서빙고와 양재 기준). 부천,수원, 대전은 1부 오전 9시, 2부 오전 11시 30분, 인천은 1부 오전 9시, 2부 오전 11시, 남양주, 강동, 양지, 영종, 제주는 오전 11시, 평택은 오전 10시 30분에 성탄감사예배를 드린다. 이웃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캠페인과 문화 행사도 풍성하다. 전도대상자를 순예배에 초대해서 교제의 기쁨을 나누고, 복음을 전하는 ‘ 열린순예배’ 를 드린다. 온누리교회 모든 공동체와 순에서 연말까지 기획하고 실행한다. 여러 사정으로 순예배에 참석하지 못했던 성도나 마음에 품고 기도하던 가족과 친구, 직장 동료 등을 초대해서 영화관, 음식점, 카페 등에서 자유롭게 순예배를 드리면 된다. 온누리교회 홈페이지(onnuri.org)에서 ‘열린순예배 <가이드북>’ 을 제공한다. 온누리 아트비전에서는 정기 회원전 ‘ 크리스마스 선물전’ 을 개최한다. 2026년 1월 4일(일)까지 온누리청소년센터 2층 온누리 아트갤러리에서 관람할 수 있다. 소품을 작품당 20만 원에 판매하고, 그 수익금 절반을 NGO 더멋진세상에 후원한다.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2025-26 송구영신 및 신년예배 1월 5~17일‘오직 예수 신년새벽기도회’ ‘2025-26 송구영신 및 신년예배’ 를 국내 온누리교회 모든 캠퍼스 본당에서 드린다. 송구영신예배는 12월 31일(수) 서빙고와 양재 오후 7시, 오후 9시, 오후 11시 부천 오후 8시, 오후 10시, 수원 오후 8시 30분, 오후 11시, 대전 오후 9시, 오후 11시, 인천 오후 7시, 오후 9시, 평택 9시, 남양주, 강동, 양지, 영종, 제주는 오후 11시에 드린다. 신년예배는 서빙고와 양재 1월 1일(목) 오전 9시, 오전 11시 30분, 부천, 대전 오전 10시, 남양주, 인천 오전 11시에 드린다. 수원, 평택, 강동, 양지, 영종, 제주는 신년예배를 드리지 않는다. 1월 5일(월)부터 17일(토)까지는 ‘ 2026 오직 예수 신년새벽기도회’ 가 이어진다. ‘ 나를 따르라’ 를 주제로 오전 5시 30분 국내 온누리교회 캠퍼스 본당에서 진행된다. 온누리교회 유튜브 채널과 CGN에서 실시간 중계한다. 이재훈 위임목사, R.T.Kendall 목사, 박종길 목사(서빙고온누리교회), 강부호 목사(양재온누리교회)가 말씀을 전한다. /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대청, ‘크리스마스 블레싱’ 시작 12월 28일까지 전국 30여 개 지역에서 대학청년부 ‘ 크리스마스 블레싱’ 이 시작됐다. 온누리교회 대학청년부 소속 청년들이 12월 20일(토)부터 28일(일)까지 전국 30여 곳으로 흩어진다. 크리스마스 블레싱은 전국의 지역 교회, 군부대, 그룹홈, M센터 등지를 찾아가 아기 예수 탄생 소식을 전하는 대학청년부의 대표적인 겨울 사역이다. 올해는 서울(서초, 강동, 은평 등), 경기(고양, 안산, 파주 등), 충청(단양, 음성, 옥천 등), 경남(진주, 산청, 하동 등), 전라(김제, 남원, 군산 등) 등 전국 30여 개 지역에서 이웃 초청 잔치, 어린이 성경학교, 마을 전도, 새벽송, 노방 찬양, 이주민 연합 예배, 군장병 초청 집회, 자립준비청년 멘토링 등을 한다. 지난 12월 6일(토)부터 13일(토)까지 이어진 ‘사랑愛나눔’ 은 막을 내렸다. 올해는 서울 시내 주민센터 및 복지관과 협력해서 사역했다. 온누리교회 소속 청년 1,100명이 홀몸 어르신과 다문화가정, 차상위계층 등 1,075가구에 물품을 선물했다. 이웃들에게 전달한 선물은 온누리교회를 드러내지 않고, 지역 교회와 기관 이름으로 전달했다. / 홍하영 기자 NGO 더멋진세상, 스리랑카 사이클론 피해 지역 긴급구호 NGO 더멋진세상이 사이클론 ‘ 디트와(Ditwah)’ 로 큰 피해를 본 스리랑카 주민들에게 식수와 식료품, 위생용품 등 긴급구호 물품을 전달하고 있다. 의약품 지원도 병행하고 있다. 스리랑카 사이클론 피해 복구를 돕는 모금운동도 전개한다. 동참하고자 하는 성도들은 NGO 더멋진세상 후원계좌(하나은행 573-910009-09905)로 후원금을 보내면 된다. 자세한 내용은 전화(02-2271-2246)로 문의하면 된다. 현재 스리랑카는 사이클론의 영향으로 저지대와 산간 지역 건물이 무너지고, 연쇄 산사태가 발생하는 등 피해가 엄청나다. 대규모 침수 피해까지 겹치면서 생활이 어려운 지경이다. / 홍하영 기자 평택온누리교회 창립 20주년 12월 21일 오전 11시 30분 본당 평택온누리교회 창립 20주년 기념 감사예배를 12월 21일(일) 오전 9시, 오전 11시 30분 본당에서 드린다. 신동식 목사(평택온누리교회 담당) 설교, 창립 20주년 기념 감사 케이크 커팅식, 성탄 칸타타 등의 순서가 이어진다. 평택온누리교회는 2005년 12월 25일 국내 일곱 번째 캠퍼스로 창립했다. 외국인 근로자와 다문화 가정을 섬기고, 젊은 부부와 차세대 양육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 박지혜 기자

     2025-12-20  제1569호

  • 주일강단

    [주일강단] 성육신3. 만물의 으뜸, 교회의 머리  [주일강단] 성육신3. 만물의 으뜸, 교회의 머리 <골로새서> 1:15~20 /이재훈 위임목사 성탄의 본질은 성육신입니다. 성육신을 깊이 묵상하지 않고 성탄의 축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성육신을 ‘말씀이 육신이 되신 사건’으로 설명했습니다. 만물을 창조하신 말씀이신 그분만이 만물을 새롭게 창조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금지된 열매를 먹는 날엔 정녕 죽으리라”하신 그 말씀대로 이뤄져야만 했고, 그 말씀을 따라 사망과 멸망 가운데 처해 있는 인간과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말씀인 그분이 육신이 되어 죽음을 친히 담당하시는 길밖에 없었습니다. <빌립보서> 2장에서 성육신은 자신을 비우신 하나님의 겸손한 마음이 드러납니다. 우리가 놀라워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신 그분이 자신을 비우시고, 그 영광과 권리와 능력을 비우시며, 자신을 죽기까지 낮추신 겸손한 마음입니다. 죽기까지 낮아지심으로 지극히 높아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겸손한 마음을 묵상하는 것이 바로 성탄입니다. 하나님 아들 설명하는 두 단어 <골로새서> 1장에서 바울은 성육신을 우주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우리를 창조 이전의 상태로 데리고 갑니다. 이 땅에서 하늘로 데려갑니다. 성육신은 단순히 하나님이 아기로 태어나신 정도의 사건이 아닙니다. <골로새서> 1장 15절에서 20절에서 성탄을 우주적인 사건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성육신의 주체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두 단어로 설명합니다. 첫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여기서 ‘형상’은 ‘본질을 나타내는 실체’라는 뜻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그 어떤 형상도 하나님을 온전히 보여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우리에게 나타내 주신 형상만이 그분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 형상 일부분을 보여주신 것이 인간입니다.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습니다. 우리가 자유의지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 듣고 보고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고, 계획을 세우고, 약속하고 실행하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 형상의 지극히 일부분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완전히 보여줄 수 있는 분이기 때문에 “아무 형상도 만들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우리에게 온전히 보여주시는 분입니다. 둘째,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분’입니다. 단지 시간적 순서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모든 피조물 위에 초월해 계신 주권자’라는 뜻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이 낳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낳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창조주와 동일한 주인이십니다. 그래서 ‘만물이 그분 안에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그분을 위하여 창조되었다’고 표현합니다. 만물이 그분 안에서 만들어졌고, 그분을 통해 만들어졌고, 그분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골로새 교회 당시 유행했던 이단적인 가르침이 ‘영지주의’입니다. 넓게 보면 육은 악하고, 정신과 영은 선하다고 했던 플라톤 철학의 확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가르침에는 성육신을 공격하는 이단 사상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보통 인간은 아니지만 피조물 중 하나, 천사 같은 존재 아니면 하나님과 동등하지는 않은, 하나님보다 조금 열등한 존재라고 가르쳤습니다. 그 가르침이 당시 골로새 교회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올바로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창조의 근원이자 통로, 통치자 “하나님의 아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분이십니다. 이는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들, 곧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보좌들과 주권들과 권력들과 권세들이 하나님의 아들 안에서 창조됐기 때문입니다. 만물이 아들로 인해 창조됐고 아들을 위해 창조됐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은 그분 안에 함께 서 있습니다”(15~17절). 바울은 예수님을 창조의 근원이자 통로, 통치자로 소개합니다. 세상 모든 피조물이 창조된 이유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위해서입니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보좌, 주권, 권력, 권세들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다’라는 말씀을 강조하는 이유는 성육신의 목적을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성육신은 그분 안에서 세워진 권세들이 그분의 통치를 거부했을 때 그 통치권을 회복시키시기 위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성육신은 통치의 사건입니다. 성탄은 세상의 통치권을 다시 회복시키시기 위해 오신 하나님의 주권 선포의 날입니다. 창조주의 통치를 거부한 타락한 권세들을 무장해제 시키고, 다시 통치를 회복하고, 화목하게 하는 것입니다. 16절에서 비슷한 의미를 가진 단어들을 네 번이나 반복합니다. 보좌들, 주권들, 권력들, 권세들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17절 마지막에 ‘만물이 그분 안에 함께 서 있다’는 말씀에서 영어 ‘시스템(System)’이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어원이 같습니다. 하나님은 보이는 만물을 창조하실 뿐만 아니라 만물이 움직이는 시스템이 그 안에 있습니다. 그 안에 권세가 있습니다. 보좌, 주권, 권력, 권세는 하나님이 세상을 통치하시기 위해서 세우신 선한 질서와 권세를 의미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권세에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타락하고 반역했을 때 하나님을 반역하는 영적 권세에 휩쓸린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6장 12절에서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 대함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에베소서>의 정세와 권세는 타락하고 악해진 권세를 의미합니다. 이 둘을 연결시키면, <골로새서> 1장에 나오는 보좌, 주권, 권력, 권세들은 하나님이 세상을 통치하시기 위해 세우신 선한 질서와 권세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에베소서> 6장에서는 하나님을 반역하는 세상의 권세가 되어버립니다. 성육신하신 분이 세상에 오셨을 때, 세상 권세의 악한 모습이 밝히 드러났습니다. 가장 선하시고 온전히 의로우신 하나님의 아들이 오셨을 때 세상의 악한 권세는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성육신의 끝은 십자가입니다. 만물을 회복시키시는 길은 단지 ‘탄생’이 아니라 ‘죽음’을 통과해야만 했습니다. 그분의 죽음을 통해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성육신, 만물의 으뜸이신 분이 교회의 머리가 되신 사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거슬러 대적하는 조문들이 담긴 채무 증서를 제거하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 우리 가운데서 없애 버리셨습니다. 또한 십자가로 권력들과 권세들을 무장 해제시키시고 그들을 공개적인 구경거리가 되게 하셨습니다”(14~15절). 성육신하신 분의 목적은 십자가였습니다. 십자가를 통해, 그 죽음을 통해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권세, 원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통치의 통로가 되게 하신 주권, 권력, 권세들이 하나님을 반역하는 권세가 되었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모든 타락한 권세와 권력을 무장해제 시키셨습니다. 그 권세에 끌려 다니는 모든 채무 증서를 제거하셨습니다. 죄의 빚을 다 갚아주셨습니다. 십자가상에서 일곱 마디 남긴 말씀 가운데 한 말씀은 “다 이루었다”입니다. “다 갚았다”, “너의 빚은 끝났다”, “다 지불되었다”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죄인으로서 갚아야 될 모든 죄 값이 십자가에서 치러졌기 때문에 우리가 더는 타락한 권세의 종노릇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자유인이 되었다고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에 성육신의 목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두 개의 면류관을 쓰고 계십니다. 하나는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심으로 만물의 으뜸이 되신 것이고, 또 하나는 교회의 머리가 되신 것입니다. 만물의 으뜸이신 분이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성육신은 만물의 으뜸이신 분이 교회의 머리가 되신 사건입니다. 타락한 이 세상을 재창조하시기 위해서 성육신하심으로 죽음과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새로운 인류 곧, 교회의 머리가 되셨습니다. “또 하나님의 아들은 그분의 몸인 교회의 머리십니다. 그분은 근본이시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먼저 살아나신 분이십니다. 이는 그분이 친히 만물 가운데 으뜸이 되시려는 것입니다”(18절). 오늘 본문 15절에서 17절의 그분은 창조의 근원이십니다. 18절에서는 새 창조의 사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육신하심과 죽으심, 부활하심을 통해 그분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고, 교회의 머리가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육신은 옛 창조의 주인이신 분이 만물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새 창조를 이루시기 위해 교회의 머리가 되신 사건입니다. 모든 피조물보다 뛰어나시고 만물의 으뜸이신 분이 교회의 머리가 되셨습니다. 여기서 머리란 단순한 지도자를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생명을 공급하고, 방향을 제시하고, 모든 통치의 중심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탄을 통해 성육신의 신비를 믿는 것입니다. 만물의 으뜸이신 그리스도가 내 인생의 통치자가 되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나의 인생과 사역, 가정과 생각 위에 그리스도의 통치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길, 진리, 생명 19절에서 “아버지께서 모든 충만으로 아들 안에 거하게 하시기를 기뻐하셨다”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충만’이라는 단어가 당시 유행했습니다. ‘플레로마(Pleroma)’라는 단어인데, 당시 만연했던 영지주의에서는 여러 신, 천사 같은 존재가 모두 신성을 조금씩 가지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아니다. 하나님의 모든 신성한 능력과 영광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성육신하신 그분의 육체 안에 거한다”고 했습니다. 당시에는 하나님께로 가려면 천사를 통해야 된다고 해서 천사를 예배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헛되고, 오직 하나님께로 이르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 아들의 십자가의 피로 평화를 이뤄 만물, 곧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모든 것이 아들로 인해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셨기 때문입니다”(20절). 하나님은 모든 신성과 능력을 성육신하신 그분 안에 나타내기를 기뻐하셨고, 그분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땅에 있는 모든 만물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이것이 성육신의 중요한 목적입니다. 성육신의 목적은 만물이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그분과 화목하게 하시고 또한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않으시고 세상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과 화목하게 하셨으며 또한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맡겨 주신 것입니다”(고후 5:18~19). 예수님 십자가의 피는 인간의 죄를 넘고, 인간의 죄에 대한 구원을 뛰어넘으며, 우주 전체의 깨어짐과 분열을 치유하고 회복시키고 화목하게 하는 재물입니다. 성육신의 목적은 인간의 영혼 구원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만물이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분이 만물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분으로 오셨습니다. 그분의 몸 된 교회 역시 십자가의 피로 ‘화목하게 하는 소명’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성탄은 단지 교회의 절기가 아닙니다. 성탄은 만물이 하나님 아들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만물의 으뜸이 되신 사건입니다. 만물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사건입니다. 그분이 교회의 머리가 되심으로, 교회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과 성육신하신 목적이 계속이루어지도록 나타내고 계십니다. 교회는 그분의 몸으로서, 세상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일을 감당하게 하려고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성육신하셔서 온전한 통치자로 임하신 예수님은 만물의 으뜸이시고,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그분의 통치를 받아들임으로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감당하십시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2025-12-20  제15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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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 선교헌금 작정을 앞두고] 그들은 왜 오래도록 선교헌금을 할까?  [2026 선교헌금 작정을 앞두고] 1. 그들은 왜 오래도록 선교헌금을 할까? 2. 그들은 왜 평생 선교를 했을까? 그들은 왜 오래도록 선교헌금을 할까? 황재숙 명예권사, 노국자 권사, 채현석 집사에게 묻다 “그냥.” 세 사람에게 ‘왜 오래도록 선교헌금을 하는지’를 물었더니 공통으로 돌아온 대답이었다. 아무 의미도, 뜻도 없다는 의미의 말이 결코 아니다. 선교는, 선교헌금은 숨을 쉬듯이, 밥을 먹듯이 아주 자연스럽지만, 하지 않으면 절대로 안 되는 그 특별함을 ‘그냥’이라는 말로 노래하고 있었다. 그들은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매년 선교헌금을 작정하고 있다. ‘온누리교회는 선교로 새해를 시작합니다’. ‘선교는 온누리교회의 심장입니다’라는 슬로건을 삶으로 살아내고 있는 이들을 만났다. 그 주인공은 황재숙 명예권사, 노국자 권사, 채현석 집사다. /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사실, 질문 자체가 식상해서 물을지말지를 고민했었다. 그렇다고 묻지 않을 수도 없는 질문이었다. "처음 선교에 관심을 두고, 선교헌금을 작정한 계기가 무엇입니까?" 세 사람 모두 각자 삶의 모양을 이야기하면서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런데 세 사람에게는 공통된 대답과 마음이 있었다. 그것은 선교와 선교사를 향한 지속적인 관심 그리고 사랑이었다. 그들 마음의 뿌리부터 분명 선교가 자리하고 있었다. 황재숙 명예권사는 ‘가는 선교사, 보내는 선교사’라는 표현에 깊이 감동하고, 선교헌금 작정을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다른 교회를 다니다가 온누리교회에 와서 교육받으면서 신앙이 체계적으로 정립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가는 선교사, 보내는 선교사’라는 말을 처음 들었는데, 마음에 쏙 와닿았습니다. ‘내가 선교 현장에 직접 가지 못하더라도 선교사님들의 선교에 동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선교헌금을 시작했고, 멈출 수 없었습니다.” 노국자 권사는 선교사들의 어려운 현실이 담긴 <선교사의 편지>를 읽고 기도와 후원을 결심했다. “20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온누리교회에서 파송한 어느 선교사님이 후원이 너무 절실해서 금식하며 사역하고 있다는 편지를 읽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보낼 때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축복했는데, 보내고 나서는 아무것도 해주지 않으면 어떡하나’라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매일 밤 9시에 동역자들과 함께 그 선교사님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고, 그 마음이 점점 커지면서 매년 선교헌금 작정으로 이어졌습니다.” 채현석 집사는 젊은 시절 동료 선교사를 돕던 경험이 선교헌금 작정의 출발점이었다고 말했다. “젊은 시절 몸담았던 선교단체에서 함께 활동하던 분들이 중국 선교사로 파송되면서 그분들을 위해 조금씩 헌금을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 온누리교회에 와서 매년 새해 첫 주와 둘째 주일에 선교헌금 작정 행사에서 틀어주는 선교사님들의 영상을 보고 큰 감동이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온누리교회에서는 본격적으로 선교에 동참할 수 있겠구나, 선교사님들과 마음을 함께 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선교헌금은 저에게 선교사님들과 함께 나누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반드시 응답하시는 하나님 그들에게는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선교헌금을 향한 마음을 오랜 세월 지키는 것이다. 사실 오래도록 한마음을 지키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 또 없다. 그런데도 그들은 변하지 않았고, 멈추지 않았다. 그 이유를 물었다. 채현석 집사는 “하나님은 성도의 마음을 결코 가볍게 보지 않으시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우리가 하나님께 믿음으로 드린 마음과 헌신을 무겁게 받아들이시고, 삶 가운데 반드시 보상하신다는 의미였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기에는 ‘이 상황에서 계속 선교헌금을 해도 괜찮을까?’ 걱정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계산하지 않고 믿음으로 봉헌했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서 직장이 달라지고, 경제적으로도 큰 어려움이 사라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은 믿음으로 드린 것에 반드시 응답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채 집사는 “보상이 반드시 물질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어떤 이에게는 건강으로, 어떤 이에게는 평강으로, 또 어떤 이에게는 삶의 안정으로 하나님이 응답하신다는 것이다. 모든 세대가 믿음으로 선교헌금 작정 행사에 동참해야 할 또 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황재숙 명예권사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그 고백을 듣는 내내 하나님이 주신 기쁨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다. “아들이 주는 생활비로 지내고 있었는데. 코로나19가 터졌습니다. 그 시기에 경제적인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그때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이 ‘이럴 때일수록 선교헌금은 절대로 줄이면 안 된다’였습니다. 성령님이 주시는 생각이라고 여겼습니다. 그 덕분에 더 큰 믿음으로 선교헌금을 작정했습니다.” 그날 이후 나타난 변화를 떠올리면서 황 명예권사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그날 이후 아들의 사업이 조금씩 안정되었고, 겪고 있던 경제적 어려움도 하나둘씩 해결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분의 때에, 그분의 방법으로 고치신다’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 모든 과정이 감사였습니다.” 중요한 건 믿음으로 한 걸음 더 내디뎌 보려는 마음 노국자 권사는 선교헌금 작정을 앞두고 성도들에게 “망설이지 말라”고 당부했다. 선교헌금에 대한 부담을 가질 필요가 전혀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예수님이 두 엽전을 가장 큰 헌금으로 받으셨던 것처럼, 가장 중요한 것은 금액이 아니라 마음이기 때문이다. “제가 주변 사람들에게 후원을 권할 때 ‘선교지에 계신 선교사님께 우리가 커피 한잔 대접한다고 생각하면 어떻겠느냐?’고 자주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직접 대접할 수는 없지만, 그 마음으로 마음을 조금씩 나눠서 동참하자는 뜻입니다” 채현석 집사는 노국자 권사의 제안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자고 했다. 그는 각자의 형편에 맞게 시작하되, 그 안에서 믿음을 조금씩 넓혀갈 것을 권면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 안에서 ‘조금 부담되지만 해볼 수 있겠다’는 지점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금액이 아니라 믿음으로 한 걸음 더 내디뎌 보려는 마음입니다.” 채현석 집사는 이 마음과 다짐을 훈련에 비유했다. “내가 1미터를 뛸 수 있는데, 늘 1미터만 뛰면 성장이 어렵습니다. 익숙한 수준에 머무르기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려는 시도가 성장을 이끕니다. 선교헌금 작정 역시 믿음의 성장을 위한 도전이 필요합니다” 은총, 관심, 하트 풍선 이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선교헌금을 단 하나의 단어로 정의해 달라고 부탁했다. 오랜 세월 선교헌금을 이어오며 깨달은 본질이 그 한 단어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황재숙 명예권사는 선교헌금을 ‘은총’이라는 단어로 정의했다. “시작할 수 있었던 것도, 오랜 시간 계속 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하나님이 하셨기 때문입니다. 부족함 없이 채워주시고 보장해 주신 것도 하나님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노국자 권사는 선교헌금을 ‘관심’이라는 단어로 정의했다. “내가 드린 선교헌금이 어느 나라로, 어떤 선교사에게 전달되는지를 알면 부담은 사라지고,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깁니다. 그 관심이 기도가 되고, 기도가 사랑이 되어서 선교헌금으로 이어집니다.” 채현석 집사는 선교헌금을 ‘하트 풍선’이라는 단어로 정의했다. “기도 모임에서는 기도를 선교지를 향해 쏘는 미사일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렇다면 선교헌금은 선교지에 계신 선교사님들께 따듯함과 위로, 힘을 전하는 하트 풍선 아닐까요?”

     2025-12-20  제1569호

  • 성인

    [<생명의 삶> QT 프리뷰(preview)] 바른 신앙에 대한 당부 &lt;생명의 삶&gt; QT 프리뷰(preview) 바른 신앙에 대한 당부 12월 22일 28일까지 &lt;여호수아&gt; 22:10~13:16 성탄절 QT 묵상포인트 1: 요단 동쪽과 서쪽 지파들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이 갈등은 하나님만 섬기려는 출애굽 2세대의 각오에서 비롯된 것이다. 형제 지파의 신앙을 위해 대표단이 제시한 해결책은 무엇인지, 정당한 해명이 갈등 해소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묵상하자.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가 요단 동편에 큰 제단을 쌓았다는 소식에 요단 서쪽 지파들이 모여 그들과 싸우려 한다. 진상 파악을 위해 파견된 대표단은 이전 세대가 행한 우상 숭배의 폐해를 언급하며 자기들 땅을 나눠 줄 테니 하나님의 제단 외 다른 제단을 쌓지 말라고 경고한다. 이에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는 제단을 세운 목적에 대해 해명한다. 그들은 요단 서쪽 지파들로부터 단절될 수도 있다는 염려 때문에 후손에게 증거로 남기기 위해 제단을 세웠다고 말한다. 오해가 풀린 대표단이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 보고하니 모두가 즐거워한다. 요단 동쪽 지파는 그 제단을 &lsquo;증거, 증인&rsquo;을 뜻하는 &lsquo;엣&rsquo;이라 부른다. 묵상포인트 2: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구원은 &lsquo;한 아기&rsquo;의 탄생으로 시작된다. 그 아기는 평강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다. 예수님의 오심은 이 땅에 구원과 심판을 동시에 가져왔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 아들, 구유에 누이신 아기 예수님을 마음에 그리며 성탄절 본문을 묵상하자. ▶예수님이 오시기 약 7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는 &lsquo;한 아기&rsquo;의 탄생을 예언했다. 그 아기는 고통과 흑암의 땅에 사는 백성에게 큰 빛과 위로를 주실 분이다. 구주 탄생 소식이 양을 지키던 이름 없는 목자들에게 선포된다. 천군 천사가 찬송하고 떠나간 후, 목자들은 베들레헴으로 달려가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님을 뵙는다.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던 시므온이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갈 때, 마침 아기 예수님을 안고 온 요셉과 마리아를 만난다. 시므온은 아기 예수님을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며, 예수님께 주어진 구속과 고난의 사명을 예언한다. 묵상포인트 3: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에게 복을 약속하셨다. 그러나 조건이 있다. 여호수아는 고별 설교를 통해 하나님을 가까이하며 사랑하라고 당부한다. 하나님의 복을 오래도록 누리는 삶이 되도록 우리가 가까이할 것은 무엇이며, 멀리할 것은 무엇인지 묵상하자. ▶나이 많은 여호수아는 자신의 때가 끝나 감을 알고, 온 이스라엘을 소집해 고별 설교를 한다. 그는 하나님이 수많은 전쟁에서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신 분임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힘써 율법을 지키고, 이방 신을 부르지 말며, 하나님만을 가까이하고 그분을 사랑하라고 당부한다. 만일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사람과 혼인하고 서로 왕래하면 그들이 이스라엘에게 올무, 덫, 옆구리의 채찍, 눈의 가시가 되어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망할 것이다. 적용을 위한 가이드 ▶하나님의 사람은 가까이할 것과 멀리할 것을 구별해야 한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이라면 손해를 보더라도 단호히 끊어 낼 수 있도록 은혜를 구하자. ▶선한 의도로 행한 일도 오해받을 수 있다. 서로 간에 불필요한 갈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지혜롭게 소통하고 해명하자. ▶나 개인의 유익보다 신앙 공동체의 하나 됨과 유익을 위해 힘쓰자.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일이라면 항상 우선순위에 두고 실행하자. ▶자녀 혹은 다음 세대가 믿음의 길을 바르게 걸어가도록 계속해서 권면하자. ▶나에게 구원과 영생을 선물해 주신 예수님을 기억하고, 가족과 함께 이번 성탄을 의미 있게 보내도록 계획해 보자. / &lt;생명의 삶&gt; 편집부

     2025-12-19  제15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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