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 신문 - 코로나19 순직 선교사와 유가족을 위한 다큐 <미씽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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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순직 선교사와 유가족을 위한 다큐 <미씽유>

 2021-11-20      제13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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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GNTV가 다 하지 못한 이야기 
 
“선교사들의 울타리가 되어주십시오”
코로나19 순직 선교사와 유가족을 위한 다큐 <미씽유>
 
선교 현장에서 만났고, 선교를 위해 부부가 됐다. 코로나19가 이 부부를 잠시 갈라놓았지만, 아내는 남편을 천국에서 만날 날을 기다리며 또다시 선교지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공숙자 선교사와 故 수라지 방게라 목사의 가슴 시린 이야기다.
CGNTV가 또 한 번의 감동을 선물하고 있다. 정기후원의 달 특집 다큐멘터리 <미씽유>을 제작해서 방영했다. <미씽유>는 코로나19로 순직한 선교사와 유가족들의 이야기다. 공숙자 선교사와 故 수라지 방게라 목사의 이야기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공숙자 선교사는 “코로나19 순직 선교사와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해준 CGNTV에 무한한 감사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또 “일면식도 없는 선교사들과 함께 울어주고, 그들을 섬겨준 온누리교회 성도들에게도 감사 인사를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코로나19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선교사들에게 끝까지 관심 가져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 김영선 기자 k4458@onnuri.org   
 
총 확진자 3440만 명, 사망자 46만 4천 명.
코로나19가 인도에 남긴 상처다. 그 상처는 지금도 회복되지 않고 인도 사람들을 계속 괴롭히고 있다. 故 수라지 방게라 목사는 이 처참한 현장에서 성도와 이웃들을 돌보는 일에 자신의 목숨을 바쳤다. 
“자기가 코로나19에 걸릴 수도 있다는 생각과 염려보다 성도들과 이웃들의 안전과 건강이 우선이셨습니다. 아시다시피 인도는 환경이 좋지 않습니다. 저희 부부가 섬기는 빈민촌은 말할 것도 없고요. 저희 부부는 인도에 코로나19가 급속도로 확산하면서 봉쇄령이 내려졌을 때 지자체로부터 통행권을 받아서 빈민촌에 식량을 보급했습니다.”
목숨 걸고 전쟁터로 나가는 것과 똑같았다. 그런데 빈민촌에 식량과 구호품을 보급하던 故 수라지 방게라 목사와 청년들은 해맑기 그지없었다고 한다. 코로나19로 위기에 처한 이웃을 돌보는 일을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한다면서 기쁜 마음으로 자처했기 때문이다. 한국으로 잠시 들어오라는 선교본부의 만류에도 故 수라지 방게라 목사는 날마다 이웃들을 찾아갔다. 故 수라지 방게라 목사는 청년들과 함께 2천여 명분의 식량과 7천여 명분의 구호품 등을 전달했다. 말씀과 기도가 필요한 곳이라면 거기가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찾아갔다. 그날 만남이 마지막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 코로나19 확산과 델타변이 바이러스 확산까지 이겨냈던 故 수라지 방게라 목사는 한국행을 하루 앞둔 지난 6월 1일 코로나19 바이러스 양성 판정을 받았다. 4주 동안 사투 끝에 6월 30일 하나님 품에 안겼다. 
“일찍부터 선교본부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도인이 인도를 두고 떠날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이제는 인도 사람이 다되었습니다. 목회자 가족이 성도들을 두고 떠나면 그들을 누가 돌보겠습니까? 코로나19와 싸우면서 일 년 반을 인도에서 보냈는데 선교비를 받아 쓰는 카드에 문제가 생겨서 제가 한국에 갈 일이 생겼습니다. 잠시 쉬기도 할 겸 한국행을 준비하면서 코로나19 검사를 받았는데 양성이 나왔습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걸렸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치료를 받았습니다. 저는 힘겹게 회복했는데 우리 남편은 하나님 품에 안기셨습니다.”
 
선교하며 만났고, 부부 선교사가 됐다
 
“남편은 참 청렴한 청년이었습니다.”
청년 수라지 방게라 목사는 10전을 주면 버스비 8전을 쓰고 2전을 돌려주는 청렴한 동역자였다. 1994년 6월 공숙자 선교사가 동료 선교사의 단기 아웃리치를 돕다가 통역자로 온 청년 수라지 방게라를 만났다. 그게 첫 만남이었다. 
“한국에서 의료 선교를 오는데 동료 선교사님이 일이 생겨서 제가 선교팀을 맞이했습니다. 통역자 두 명만 붙여 달라고 했더니 사역자 한 명과 사역자의 친구가 왔는데 그 친구가 청년 수라지 방게라였습니다. 그때 어느 슬럼가에서 동네 아이들 50명을 모아 놓고 사역했는데 그 아이들이 이제는 가정을 이뤘고 교회도 나옵니다.”
그 이후 함께 사역했다. 그때만 해도 공숙자 선교사는 수라지 방게라에게 연애 감정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1997년 비자에 문제가 생긴 공숙자 선교사가 인도를 떠나야 할 처지가 됐는데 그때 둘 사이에 변화가 생겼다.
“제가 인도를 떠나야 하니까 수라지 방게라 형제를 후임자로 생각하고 사역 인수인계를 하고 있었습니다. 수라지 방게라 형제가 가정을 이루면 좋겠다는 생각에 중매까지 섰는데 저랑 결혼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저희 엄마가 철수를 도와주러 인도에 와계셨었는데 한 집사님이 저희 엄마에게 수라지 방게라 형제를 두고 기도해보라고 하셨데요. 엄마가 기도를 해보고는 괜찮겠다고 생각하셨는지 저에게도 기도를 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하나님의 뜻이라면 괜찮다는 응답을 받은 공숙자 선교사는 수라지 방게라 형제에게 기도해볼 것을 권면했다. 며칠 뒤 수라지 방게라 형제도 승낙했다. 그다음 일은 일사천리였다. 인도에서 약혼식을 하고 2주만에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감리교의 파송을 받고 다시 인도로 돌아와 사역했다. 공숙자 선교사 부부는 인도 빈민들을 섬기는 ‘마히마교회’와 크리스천 학교 ‘스타 크리스천 스쿨’을 세우고 섬겨왔다. 
 
계속 이어질 하나님의 비전
‘마히마교회’와 ‘스타 크리스천 스쿨’
 
기자가 공숙자 선교사를 만나러 갔을 때 인도 마히마교회 주일예배가 한창이었다. 공숙자 선교사의 스마트폰으로 전송되는 마히마교회 주일예배에서는 피터 형제가 설교하고 있었고, 양아들 조니가 통역을 하고 있었다. 불과 몇 개월 전에 담임목회자를 코로나19로 하나님 품으로 보낸 교회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열정적이고 뜨거운 예배였다. 공숙자 선교사와 딸 수지 자매는 마히마교회 예배가 그리워서 하루빨리 인도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차세대 예배에 적용할 주일학교 교제와 프로그램 연수가 끝날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제 눈에는 조니와 수지, 교회 성도들이 마냥 아이 같았었는데 이제 다 컸나봅니다. 자라는 환경이 사역지고, 선교지여서 그런지 저희 아이들과 성도들 모두 하나님의 사역자로 준비된 것 같습니다. 남편이 소천하고 제가 아무것도 못 하고 있었는데 우리 교회 성도님들이 3주 동안 번갈아 가며 음식을 해오셨습니다. 그 음식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됐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 참 큰데 우리 교회 성도님들과 함께라면 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故 수라지 방게라 목사와 공숙자 선교사는 인도 크리스천 학교 ‘스타 크리스천 스쿨’을 인도 전역에 세우는 비전이 있었다. 그 비전을 양아들 조니 형제와 딸 수지 자매, 마하마교회 성도들이 이어받았다.   
공숙자 선교사는 자신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라면서 더 위험하고 힘든 상황에 있는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감사해야지’라고 속으로 기도하면서 슬픔을 견디고 있습니다. 뜻밖의 위로를 참 많이 받고 있습니다. 온누리교회와 CGNTV는 저희 부부와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습니다. 그런데도 저를 비롯한 코로나19로 순직한 선교사들과 유가족들을 위해 기도해주시고, 후원해주셨습니다. 그 덕분에 정말 큰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서 선교사들이 정말 많이 힘듭니다. 저희보다 더 힘든 상황에 있는 선교사들이 정말 많습니다. 저희에게 큰 위로가 되어주신 것처럼 선교사들을 위한 기도를 멈추지 마십시오. 후원도 계속해 주십시오. 그 기도와 섬김이 선교사들이 살 수 있는 울타리입니다.”

시청방법: CGNTV 정기후원의 달 특집 다큐 <미씽유>는 CGNTV 유튜브 채널에서 다시볼 수 있습니다. 
후원문의 : 02-796-2243

 

 작성자   김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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