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들에게 그들은 희망 그 자체!
우크라이나 김태한, 윤수정 선교사 부부
“엄마가 배고프면 안 되잖아요.”
러시아군이 점령했던 우크라이나 부차의 한 마을. 두 소년이 구호품으로 받은 통조림을 엄마의 무덤가에 내놓으며 말했다. 두 소년의 엄마는 폭격을 피해 지하실에 숨어 몇 날 며칠을 지내며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양보하다가 굶주림 속에 세상을 떠났다. 국경에서 이 소식을 접한 어느 선교사 부부가 두 소년을 찾아갔다. 함께 식사하며 어린이 성경을 전달했고, 2년 동안 그 가정을 지원하고 있다. 그 참혹한 절망의 땅, 눈물의 땅에서 한 줄기 빛을 발하며 희망의 꽃을 피우는 하나님의 사람들이다. NGO 더멋진세상 협력 선교사 김태한, 윤수정 선교사 부부가 그들이다.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사실 처음부터 우크라이나를 마음에 품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오랜 시간 그곳에 머무르면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의 선교 역사를 알고 싶어서 던진 ‘왜 우크라이나인가요?’라는 질문에 돌아온 답이었다. 김태한, 윤수정 선교사 부부가 처음부터 우크라이나를 생각한 건 아니었다. 청년 시절, 영락교회에서 봉사하던 두 사람은 선교 비전을 품고 부부가 되었다. 하나님과 선교, 목회를 더 배우기 위해 영국으로 떠나 신학을 공부했다. 한국에 돌아와 일산 세광교회 부목사로 사역하며 목회에서 얻는 보람과 기쁨에 선교의 소명을 잊을 뻔했다. 그러다 우크라이나 신학교에서 강사로 초청받았다.
“일주일 동안 강의를 마치고 돌아올 준비를 하는데, 학장님이 함께 사역하지 않겠냐고 제안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듣고 순종했습니다.”
그렇게 낯선 땅, 우크라이나에서 사역이 시작됐다. 40대 황금의 시간 10년을 드리고자 시작한 사역이 벌써 20년이 되었다. 김태한, 윤수정 선교사 부부는 우크라이나에서 사역하면서 늘 ‘왜 우크라이나일까?’라는 질문을 품었다. 20여 년이 지나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터지고 그 참혹한 광경을 바라보며 비로소 그 이유를 깨달았다.
“난민들이 국경을 넘으며 절규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얼마나 아팠는지 모릅니다. 그들의 아픔이 제 눈물이 되었을 때 그제야 ‘하나님이 바로 이때를 위해 우리를 이곳에 보내셨구나’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이사야> 40장 1절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는 말씀을 질문의 답으로 주셨습니다.”
“한 사람의 변화면 충분합니다!”
김태한, 윤수정 선교사 부부는 자신들을 ‘우크라이나 사람’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곳의 언어와 문화, 정서가 한국보다 익숙해졌다. 그곳에서 세월이 20년이다. 오랜 시간 그곳에서 교회 개척, 지도자 훈련, 한글학교, 묵상집과 신앙 서적 보급(약 19만 권), 심장병 환아 수술 지원 등의 사역을 했다. 사람을 세우는 일에 전력을 다했다. 그들 곁에 문영기 장로와 황명덕 권사 부부(이촌공동체)가 이끄는 ‘선의재단’이 있었다. 문 장로와 황 권사의 아낌없는 기도와 후원이 사역에 큰 도움이 됐다.
김태한, 윤수정 선교사 부부는 ‘비영리법인 선의 우크라이나’를 설립하고, 문서사역을 했다. 묵상집과 신앙 서적 19만 권을 우크라이나 곳곳에 보급했다. 수천 권의 책을 직접 분류하고 발송하는 고된 육체노동의 연속이었지만, 단비 같은 소식이 전해질 때면 힘이 났다.
“고된 작업으로 몹시 지쳐있었는데, 교도소에서 편지 한 통이 왔습니다. 큰 범죄를 저질러서 12년 형을 받고 복역 중이던 23세 청년 레오니드가 묵상집을 읽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제 제 마음에는 예수님이 주신 소망과 사랑이 있습니다’라는 그 청년의 고백을 읽는 순간 피곤함이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그 이후에도 사역이 힘든 날이면 ‘주님, 레오니드 한 사람의 변화면 충분합니다’라고 고백하며 힘을 얻습니다.”
심장병 환아 수술비 지원을 받은 한 엄마의 편지도 김태한, 윤수정 선교사 부부의 마음에 깊이 남았다. 그 엄마는 “어린 제 아들에게 새 생명을 주시니 고맙습니다. 저희 가정에 머물던 재앙이 사라졌습니다. 갚을 수 없는 사랑의 빚을 졌습니다”라고 고백했다. 절망 속에 좌절하던 가족이 행복의 노래를 부르게 된 것이다. 이 편지와 소식은 김태한, 윤수정 선교사 부부에게 사역을 이어갈 힘이자 기쁨이 됐다.
난민이면서,
난민을 돕는 사역자
기쁨과 감사, 보람이 가득했던 20년이 잿빛으로 변했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이 발발하자 정부에서 교민 철수 명령을 내렸다. 김태한, 윤수정 선교사 부부도 인근 국가인 루마니아로 피신했지만, 마음은 항상 국경 너머 우크라이나에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국경으로 수많은 난민이 몰려들었다. 김태한, 윤수정 선교사 부부는 난민들을 돕기 위해 국경 근처 도시로 향했다.
“엄마들이 한 손으로는 아이 손을, 다른 한 손으로는 가방을 들고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으며 국경을 넘어왔습니다. 가족과 생활 터전을 모두 잃었으니 그 아픔을 어찌 말로 다하겠습니까?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무척 많았는데, 도움의 줄 손길은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자기도 난민이면서 동시에 난민을 돕는 사역자가 된 김태한, 윤수정 선교사 부부는 난민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밤낮없이 뛰어다녔다. 가족과 마을, 집을 잃은 사람들을 돕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그들을 위로했다. 그 무렵, NGO 더멋진세상과 동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김태한, 윤수정 선교사 부부는 NGO 더멋진세상과 2019년부터 ‘더 멋진 마을 개발 프로젝트’를 함께 준비하고 있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지연되던 프로젝트가 다시 시작될 무렵 전쟁이 터진 것이다.
NGO 더멋진세상과 온누리교회가 난민들을 위해 지체없이 도움의 손길을 보냈다. 전쟁 소식을 듣자마자 중보기도는 물론이고, 후원금과 긴급구호 물품을 빠르게 보냈다. 긴급 구호는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우크라이나로 구호 물품을 보낼 통로가 필요했다. 그때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셨다. 전쟁 피해가 심각했던 부차에 사는 성도 미꼴라이, 나타샤 부부에게 연락이 왔다. 연락이 끊겨 생사조차 알 수 없어 기도만 하고 있었는데, “목사님 저희 살아 있어요!”라는 문자메시지가 왔다. 그 문자를 받고 김태한, 윤수정 선교사 부부는 기쁨의 통곡을 했다.
김태한, 윤수정 선교사 부부는 죽음의 골짜기에서 생존한 미꼴라이, 나타샤 부부에게 회복할 시간을 가지라고 권면했지만, 그들은 주변에 더 불쌍한 사람들을 돕겠다며 부차에 머물렀다. 우크라이나 입국이 금지되었던 기간에 그 부부를 통해 부차와 체르노빌 인근 지역 등 피해가 심했던 지역에 구호품을 전달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당신을 버리지 않습니다”
전쟁이 모든 것을 파괴한 것 같았지만, 하나님은 일하고 계셨다. 지금, 우크라이나에 거센 부흥의 불길이 불고 있다. 전쟁 전후를 비교한 통계를 보면, 우크라이나 교회 예배 참석률이 17%에서 42%로, 기도 생활은 19%에서 48%로, 자원봉사 참여율은 5%에서 26%로 급증했다. 하나님에 대한 관심도는 10%에서 85%까지 치솟았다.
“지금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영적으로 목말라 있습니다. 평일에도 교회에 모여 기도하고, 성경을 공부합니다. 고통 속에서 비로소 하나님을 찾게 된 것입니다. 난민들에게 가장 큰 위로는 먹을 것이나 잠자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버리지 않으신다’라는 말씀 한 구절입니다. 그들은 그 말씀을 품고 용기 얻고 희망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김태한, 윤수정 선교사 부부는 지금 체르노빌 원전을 포함하는 이반키우 지역의 전쟁고아 77명을 위한 사역에 힘쓰고 있다. 전쟁 중 부모가 살해당하는 것을 지켜본 극심한 트라우마를 가진 아이들이다.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위탁가정의 주거지 마련, 아이들이 꿈을 키우며 공부할 수 있는 컴퓨터실,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작은 극장, 맘껏 뛰놀 수 있는 풋살 경기장 같은 시설이 필요하다. 이 외에도 페도립브카 마을의 오염된 식수 해결, 시도로비치 마을의 선교회관 복구, 모자원 및 조손가정을 위한 센터건립 등 해야 할 사역이 많다.
김태한, 윤수정 선교사 부부는 우크라이나를 위한 지원이 단순한 구제가 아니라 ‘다음 세대 선교 주자를 세우는 거룩한 나눔’이라고 강조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사랑에 빚진 자들입니다. 이제 그 빚을 갚을 때입니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우리와 참 많이 닮았습니다. 성품이 선하고, 받은 은혜를 잊지 않으며, 고난을 통해 더욱 단단해집니다. 지금 우리가 그들의 손을 잡아준다면, 믿음으로 일어서서 자신들을 침공한 러시아, 쇠퇴한 유럽의 교회, 더 나아가 이슬람권을 향해 복음을 전하는 선교의 주역이 될 것입니다.”
연일 포탄이 날아드는 우크라이나에서 지금도 많은 한국 선교사가 현장을 떠나지 않고 복음을 전하고 있다. 두려움 없이 그 자리를 지키며, 울고 있는 사람들 곁에 머무르고 있다. 김태한, 윤수정 선교사 부부도 7월 말 다시 우크라이나로 간다. 그곳에서 예배를 회복하고, 사람을 세우는 일을 계속할 것이다. 고난의 터널을 지나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 그들은 희망 그 자체다. 이제 우리가 그들과 함께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물어야 할 때다.
후원계좌: 국민은행 166101-04-021656 김태한(UKR 복음주의신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