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하용조 목사 그분은…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
2011년 8월 1일 월요일 이른 새벽, 당시 세브란스 병원장 박용원 장로로부터 하용조 목사님께서 응급실로 내원하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평소 응급실을 찾으시던 상황과 달리 뇌혈관의 심각한 출혈로 인해 응급 뇌수술이 필요한 위중한 상황이었다. 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허승곤 교수의 집도와 가톨릭의대 신경외과 허필우 장로의 참관하에 뇌출혈 수술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수술 몇 시간 후, 뇌의 재출혈과 함께 뇌부종이 심해졌다. 2차 뇌수술은 허 교수의 집도하에 신경외과 뇌수술 전문의인 서울대병원장 정희원 장로도 참관하였다. 정희원 장로와 허필우 장로의 뇌수술 참관은 이형기 사모님의 요청으로 이루어졌다. 수술 중 심한 뇌출혈로 지혈이 어려웠고, 뇌부종 또한 심각한 상태였다. 이를 목격한 정희원 장로는 집도의인 허승곤 교수와 허필우 장로와 함께 소생 가능성이 없음을 보고하였다. 이형기 사모님께서 무의미한 소생술을 허락하지 않으심에 따라 하용조 목사님께서는 8월 2일(화) 65세의 일기로 소천하셨다.
하용조 목사님께서는 2000년부터 세브란스 병원에서 간암 치료를 받기 시작하셨다. 이미 30여 년간 B형 및 C형간염 보균자 상태에서 간암으로 진행되었으며, 1999년에는 미국 Scripps 병원에서 간암 절제술을 받으신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후 간암이 재발하여 서울삼성병원에서 고주파열 치료술을 받으셨으나, 안타깝게도 다시 간암이 재발하였다. 당시 하 목사님께서는 여러 질환을 각각 다른 병원에서 치료받고 계셨다. 강진경 당시 세브란스 병원장님은 여러 질환을 앓는 환자일수록 담당 의사들이 같은 병원 소속으로 구성되어 협진해야 한다며 하 목사님 주치의 팀을 구성하고 총괄을 맡으셨다. 강진경 병원장님은 연세의료원장으로 취임하셔서 더 많은 일을 수행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하 목사님 치료에 각별한 정성을 쏟아주셨으나 2004년 소천하셨다. 이어 필자가 총괄을 이어받았다.
세브란스병원 주치의 팀으로 간암 색전술 치료 담당 영상의학과 이종태 교수와 소화기내과 한광협 교수가 참여했다. 4차에 걸친 색전술 시술과 2008년 아산의료원장 이승규 장로의 간 절제 수술 이후에는 재발이 없었다. 발병한 지 25년 된 당뇨병과 합병증 치료를 위한 주치의 팀에는 내분비내과 이현철 교수, 신장 투석을 담당한 신장내과 한대석 교수, 스텐트 시술 등 협심증 치료를 맡은 심장내과 안신기 교수, 그리고 당뇨성 망막 치료를 담당한 안과 권오웅 교수가 참여하였다. 치료 과정 중 다른 질환이 발생하면 그때마다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피부과 등 세브란스병원 여러 진료과 교수가 협진하였다. 아마도 산부인과와 소아과를 제외한 거의 모든 과에서 협진했기에 이때 하 목사님께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당뇨병은 온몸의 혈관을 망가뜨리는데 그중 신장혈관이 가장 먼저 망가진다. 망가진 신장혈관 대신 인공투석기가 노폐물을 걸러내는 치료를 ‘혈액투석’이라고 한다. 25년간 당뇨를 앓아오신 하 목사님께서는 2006년부터 혈액투석을 받기 시작하셨다. 혈액투석은 소천하시기 전까지 5년간 지속되었다. 일주일에 3회, 한 번에 4시간이 소요되는 투석 중에 필자는 목사님을 자주 찾아뵈었다. 하 목사님께서는 투석 중에 가끔 햄버거를 드시기도 하였고, 드물게 투석 후에는 짜장면을 즐겨 드시기도 하셨다. 의사로서 말려야 했지만, 목사님의 행복한 표정 앞에 차마 ‘드시지 마시라’는 말씀을 드릴 수 없었다.
하용조 목사님께서 ‘Love Sonata(이하 러브소나타)’를 시작하셨다. 하 목사님께서는 러브소나타를 위한 온누리 새벽기도회를 인도하시면서 “나보다 더 아픈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가 새벽기도회에 참여하자”고 말씀하셨다. 걷는 사람 중에 목사님보다 더 아픈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 목사님께서 하신 이 말씀을 러브소나타 실무를 담당하시는 일본 목사님들께 말씀드리니 그분들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하 목사님께서는 러브소나타에 너무 집중하시다가 투석 날짜를 지나쳐 심장마비 직전까지 이르러 위험했던 적도 있었다. 이로 인해 일본 두란노서원 대표이며 하 목사님 일본 체류 중 진료를 총괄하신 산부인과 이운구 장로님의 가슴을 조이게 하신 적도 있다. 미국에 체류하며 투석하실 때는 얼바인온누리교회 김수광 장로님과 김인호 권사님이 주로 섬김을 맡아주셨다.
하용조 목사님께서 소천하시기 몇 개월 전, 심장 주치의인 연세의료원장 정남식 집사(현 명예장로 후보)가 목사님 부부와 교회 리더들에게 ‘하 목사님의 혈관 상태가 뇌출혈이나 협심증으로 인한 심장마비 위험성이 높으니 설교를 비롯한 모든 활동을 중단할 것’을 권유했다. 사모님의 강력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하 목사님께서는 “나는 설교하다 죽고 싶다”며 설교를 계속하시겠다고 선언하셨다. 그리고 몇 달 후인 2011년 7월 31일(일) ‘변화산에서 생긴 일’(막 9:2~13) 설교를 마지막으로 8월 1일(월) 새벽 뇌출혈로 쓰러지신 것이다.
<고린도후서> 12장에서 사도바울이 육체의 가시를 빼 달라고 하나님께 세 번이나 기도드릴 때 하나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왜냐하면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해 지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신다. 하 목사님의 몸에 가시들을 알고 있던 필자는 목사님의 <고린도후서> 12장 설교를 들으며 목사님의 처절한 동병상련의 심정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 마임의 유영섭, 홍혜실 회장 부부는 “하 목사님께서 ‘하루라도 아프지 않은 날이 있었으면 좋겠어’라는 고백을 하셨다”며 눈물을 흘리셨다.
“보고 싶고 그리운 목사님! 이 세상에서 그리도 아프셨지만, 천국에서는 하나님의 품에서 하루도 아픈 날이 없는 쉼의 날을 누리고 계심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이철 장로(OCC 공동체, 하나로의료재단 명예 원장, 전 연세의료원장)
천국에 계신 하용조 목사님께
“목사님은 죽어서 더 많이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2011년 여름, 운동하고 씻으려던 그 더웠던 날 목사님의 소천 소식을 들었습니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씻지도 못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와 3일 동안 밥도 먹지 못하고 울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혼자 집에서 삼일장을 치르고 교회에 나온 주일 아침,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신 것보다 더 슬프다”는 어느 성도의 말이 위로가 되었습니다. 43세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나이를 내 나이가 넘어설 때 힘겹고 감사했듯이, 이제 하용조 목사님 돌아가신 나이를 쫓아가면서 ‘나’를 점검합니다.
가을날 바싹 마른 낙엽을 손으로 쥐면 손바닥 속에서 잘게 부서지듯 그렇게 부서질 것만 같은 메마른 영혼이었을 때 하용조 목사님의 설교 테이프를 듣고 내 영혼이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거리가 너무 멀어 망설이던 온누리교회를 선택할 때도 ‘여자는 약해도 어머니는 강하다’라는 말을 실감하며 우리 아이들의 신앙을 위해 먼 거리를 올 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하용조 목사님의 꿈에 동참하며 저도 ‘온누리’가 되었습니다. 선교에 목숨을 건 하용조 목사님을 따라 동경을 가고, 선교사를 후원하고, 새벽 제단을 쌓고 있는 곳을 선교지로 알고 살며 행복했습니다. 때로 상처 되는 말이 들릴 때는 “Pass”, “No Thank You”라는 목사님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넘어갈 수 있었고, 암에 걸렸을 때도 ‘하 목사님은 암 수술을 7번 이상했는데 한 번쯤이야’라고 가볍게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권사라는 직분을 받고 “참된 리더는 지배력이 아니고 영향력”이라 일러주신 대로 내 권한을 넘어서지 않고 적절하고 질서있게(고전 14:40) 권사로서의 자리를 지키려고 애쓰며 사역하고 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마 5:44)는 행하기 어려운 말씀을 읽을 때 하용조 목사님은 이 구절을 “나를 어렵게 하는 사람을 품으면 마음이 넓어져요”라고 풀어주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사님은 항상 말씀을 어렵지 않고 가슴에 깊이 새겨지도록 풀어주셨는데, 성경과 함께 먹었던 그 보석 같은 설교 말씀들이 순간순간 생각납니다. “인격 고치세요”, “(주의 일하다가 죽을 상황이면) 그냥 죽으세요”, “사람을 묵상하면 똥이 나와요(요 8:44)”, “사람은 의지할 대상이 아니라 사랑할 대상이에요”, “성경은 입양 이야기예요”, “농담하지 마세요”, “방언을 사모하세요”, “믿음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거예요”,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해요” 등 목사님은 사랑으로 진리를 말씀(엡 4:15)하셨습니다. 혼자서도 성경을 읽는 힘을 길러주려고 쉬운 단어를 선택하셨던 목사님을 신앙의 스승으로 본받습니다. 목사님은 늘 교회를 가족보다 사랑하신 분이었습니다. 그 마음이 너무나 잘 느껴져 이형기 사모님께 늘 미안했던 마음도 이제야 전달합니다. 사모님께서 여전히 강건하시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목사님을 보낸 지 14년, 내가 온누리교회에 온 지 20년인데 날마다 더 선명하게 목사님의 메시지가 들리는 걸 보면 목사님은 죽어서 더 많이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내가 그랬듯 지금도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온누리교회를 찾아오시는 새가족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해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작은 예수가 되어 살아 있는 순교자처럼 사셨던 목사님이기에 하나님이 그 많은 사역을 허락하셨나 봅니다(요 14:12). 사랑으로 진리를 말씀하시는 목사님을 가까이서 모신 2대 이재훈 위임목사님도 하용조 목사님을 점점 닮아가십니다. 영적인 아버지로 만나 신앙의 선배로 기억되는 목사님의 가르침을 따르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온전해지는 날, 그리운 목사님과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을 반갑게 뵙겠습니다.
/ 정정은 권사(양천공동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