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 신문 - [기독교 세계관으로 살아가기 -C.S. 루이스의 <고통의 문제>에서 배우는 기독교 세계관] 귀먹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메가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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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세계관으로 살아가기 -C.S. 루이스의 <고통의 문제>에서 배우는 기독교 세계관] 귀먹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메가폰

 2024-05-11      제14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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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세계관으로 살아가기
-C.S. 루이스의 <고통의 문제>에서 배우는 기독교 세계관
 
귀먹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메가폰
 
세계관은 이야기(메타 내러티브) 형태로 이루어져 있고, 현대 사회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혼재하고 있다. 세상에 나가서 성경적 이야기를 삶의 축으로 삼고, 공적인 영역에서도 삶으로 증언해야 하는 온누리세계관학교 스태프들에게 명료한 성경적 세계관 확립은 너무나도 중요했다. 2018년 성경적 이야기를 드라마처럼 눈앞에서 펼쳐 보여주는 C.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에 대한 ‘작가와의 만남’과 ‘북클럽’에서 스태프들이 큰 용기를 얻었다. 2019년에는 C.S. 루이스의 <고통의 문제>에 대해서도 똑같은 방법으로 심도 있게 공부했다. 장경철 목사님을 모시고 북콘서트를 진행했다. 장경철 목사님은 “하나님의 모험이란 비존재였던 인간을 창조한 것이며, 그 인간을 하나님 사랑의 대상으로 선택한 것이고, 인간을 하나님이 갈망하는 존재로 불러냈다”면서 인간의 고통 이전에 하나님의 고통을 지적하셨다. 
하나님은 전능하시지만,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모순적인 것을 행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이미 자유의지를 주셨는데, 악하게 행동한다고 그것을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영혼들이 악해질 때 상대방을 해치려 할 것이며, 실제로 그런 일이 발생했기에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고통이 생겨난다. 하나님 입장에서는 스스로 악하게 되어 하나님과 동료 피조물과 자기 자신에게 고통을 가중하는 인간을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하나님이 인간들이 받는 고통을 막아주지 않으시고 ‘쓴맛이 나는 약’으로 활용하시기도 한다. 이 경우를 구약성경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사무엘하> 7장 14절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 C.S. 루이스는 이것을 잘못이나 죄의 가면을 쓴 악으로 표현했다(구약시대의 이스라엘은 우상을 섬기며 이기적으로 행동했다. 그러면서도 선택받은 자신들이 죄악 속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했다). 
고통이 그 가면을 벗긴다고 했다. 어떤 사람이든 아픔을 느낄 때 무엇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한다고 했다. 고통은 귀먹은 세상을 불러 깨우는 하나님의 메가폰이며, 우리 영혼 깊은 곳의 갈망인 진정한 자아의 회복, 즉 C.S. 루이스 고유의 개념인 ‘자유의지’로 ‘자아양도’를 하게 하는 고통의 심오한 효력이라고 설명했다. 대부분 스태프가 북콘서트에서 이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고, 북클럽을 통해 이해해 나갔다. 북클럽에서 나눌 때는 삶에서 얻은 간증을 기반으로 했기에 이해가 쉬웠다. 피드백을 통해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도출될 수 있었던 것은 공동체에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였다. 
‘자아양도’를 통해 새로운 자아를 얻는 과정을 C.S. 루이스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대부분 인간들은 수 세기에 걸쳐 하나님으로부터 왕권을 찬탈하여 확고 불변하게 그 뜻을 무시하게 되어버린 욕망의 체계 전체를 물려받았다. 그 결과 다른 인간들에게 높임을 받아 얻는 만족감과 자신의 신체 유기체와 유전 형질에서 나오는 욕구를 통해 양분을 얻는다. 그러나 이런 양분의 도움 없이 순전한 의지의 힘으로,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힘(창조 때 받은 자기 본래의 선한 힘)으로만 행동할 때 우리는 창조의 협력자 내지는 살아있는 도구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행동은 (원죄의) 마법을 푸는 힘을 지닌 역(逆)주문으로써 아담이 후손들에게 걸어 놓은 반창조적인 마법을 깨뜨릴 수 있다.”
이것을 타락한 자아가 원하는 일과 하나님이 원하는 일 가운데 선택하는 훈련이라고 볼 수 있다. C.S. 루이스는 자기가 원하고, 하나님도 원하시는 일(C.S. 루이스에게는 이 책을 쓰는 일)을 하는 것이 ‘자아양도’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자아양도는 심한 고통을 수반한다.
6개월 된 신생아를 기르는 딸아이가 나에게 물었다. 
“엄마는 자녀를 키우면서 자식을 낳은 것을 후회해 본 적이 없었나요? 신문에 보면 아기가 어릴 때는 엄마들이 만족하지만, 중학생이 되고 난 후에는 후회가 많다고 해요.”
하나님이 창조한 모습 그대로인 아기는 신비스러울 정도로 아름답다. 그러나 아기는 성장해야 한다. 아기가 자라면서 고집을 피울 때는 엄마를 거부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자아가 확장되기 위해서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부모를 떠나는 것이 합당하다. 아이는 여러 가지 실패 경험 속에서 생각이 성장하고, 스스로 판단이 가능해질 수 있는 자리까지 자라야 한다. 그 과정을 거쳐 선과 악을 분별해 낼 수 있을 때 아이는 엄마와 듀엣을 부를 것이다. 서로 다른 음을 내지만 같은 멜로디를 읊조리는 화음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성경의 이야기에 비춰 현대 사회가 부추기는 ‘자아’를 우기면 어떤 결과가 올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과정을 통과해서 결과를 깨닫고 오라고 하신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절절한 사랑과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인간 본연의 자리를 깨닫고, 그 이야기 속에 우리를 묶을 수 있을 때가 오기를 기다리신다.
/ 박은미 성도(서초A공동체, 온누리세계관학교)
 

 작성자   김다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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