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말씀해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마 6:34)
급변하는 사회에서 현대인들은 알 수 없는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고 살아간다. 그 불안과 두려움 이면에는 염려와 근심이 자리하고 있다.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막연한 염려 때문에 몸과 마음, 영혼의 건강을 해치는 경우를 자주 목격하게 된다. 그로 인해 우리가 정말 염려해야 하는 것마저 놓치는 게 안타까울 때가 있다.
왜곡된 염려가 인간의 마음에 얼마나 치명적 결과를 가져오는지 잘 아셨던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강조하셨다. 그런데 정말 세상을 살면서 염려하지 않고 살아가는 게 가능할까? 염려하지 말라는 것은 우리가 하루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의미일까? 본문의 맥락을 살펴볼 때 위 구절은 <마태복음> 5~7장의 산상수훈 말씀이다. 천국 백성의 윤리를 다루면서 하신 말씀이다. 예수를 믿고 따르는 제자들은 이방인들의 삶과 무엇이 다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음식과 의복 문제를 염려하는 듯하다(25~30절). 현대인들에게는 의식주 문제에 해당할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하는 염려 대부분 여기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뜻이다. 예수님이 반복해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사람들의 염려와 걱정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염려가 사람의 마음과 영혼을 분열하고 병들게 하기에 부정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이다. 염려는 주변 다른 사람까지도 걱정하게 만드는 주범이기도 하다. 이로 인해 예수님이 “하나님을 믿는 제자들은 염려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시는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다. 염려하지 말라고 해서 일상생활에서 노력, 공부, 미래의 계획을 하지 말라는 뜻이 전혀 아니다. 염려하려면 주 안에서 하라는 의미다. 예수님의 관점에서 제자들이 염려하지 않고 살아가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25절, 31절, 34절의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를 주의해서 읽어보면 그 진의를 알 수 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 그러므로(25절) 목숨과 몸이 더 중요함을 너희는 알라.”
“공중의 새, 들의 백합화 들풀보다 너희가 더욱 귀하지 아니하냐. 그러므로(31절)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하지 말라.”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34절)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산상수훈 가르침을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염려에서 해방되는 구체적인 방법을 말씀해 주고 있다. 하나님의 사람이 세상에서 염려하지 않고 사는 비결은 간단하다. ‘오직 하나님만 신뢰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기로 결정했다면,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두고 살라는 것이다. 여기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란 ‘하나님의 구원’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뜻에 우선순위를 두고 산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동떨어지거나 현실적이지 못한 것이 결코 아니다. 주기도문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기도한 다음 현실적인 문제(물질, 죄, 시험)를 구하셨기 때문이다. 다만 이 세상을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가라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와 의를 중심으로 살아가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모두 책임져준다는 뜻이다. 그 이유를 ‘그러므로’라고 말하고 있다.
인간은 내일의 시간을 알 수 없는 유한한 존재이다. 내일의 염려는 오직 시간의 창조자요, 시간의 주인이신 하나님만 알 수 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면 내일의 주인인 하나님이 우리를 가장 완전한 길로 인도하신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염려하지 않고 세상에서 승리하며 살아가는 비결이다. 그리스도인이 믿음으로 살면 세상의 문제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게 된다.
/ 김상수 목사(대전온누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