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 신문 - 목회자 자녀(PK)들의 솔직한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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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자녀(PK)들의 솔직한 고백

 2019-08-18      제12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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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자녀(PK)들의 솔직한 고백


“너희들은 달라야 한다” … 지나친 기대와 관심, 시선 집중


PK들아 “남들이 원하는 ‘나’ 말고, 하나님이 만드신 ‘나’를 찾자!”
 

완벽한 천사, 성경 척척박사, 비범한 신학자…
목회자 자녀(PK, pastor Kids)들을 향한 보편적인 시선이 반영된 표현들이다. 과장된 표현이라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목회자 자녀들은 항상 친절하고, 예의바른 모습을 갖추고 있기를 기대한다. 목회자 자녀들은 남들과 다른 신앙적 성숙이 필요하고, 성경에 관해 모르는 것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지나친 관심과 기대가 목회자 자녀들을 참 많이 아프게 한다. 어떻게 하면 목회자 자녀들이 사람들의 지나친 관심에서 벗어나 진짜 ‘나’로 살아갈 수 있을까? 존파이퍼 목사의 아들 바너버스 파이퍼는 “목회자 자녀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라”고 조언했다.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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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자유다!”
아버지가 사역하시는 교회를 떠나 온누리교회에서 처음 예배를 드리던 날 가장 처음 들었던 생각이다. 본당 위치를 몰라 교회 로비에서 쭈뼛거리던 그 어색함이 얼마나 기분 좋았는지 모른다. 예배당을 가득 채운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나를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굉장히 큰 안도감을 느끼게 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바로 나의 이야기다.
나는 목회자의 자녀다. PK(pastor Kids)라고도 불린다. 목회자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참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나를 보면 한 번이라도 더 웃어주시고 손 잡아주시는 권사님들의 사랑이 늘 그 근처를 기웃거리게 만들었다. 모두들 어려워하는 장로님들과도 스스럼없이 지냈다. 장로님들과 웃으면서 장난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존재였다. 만날 때마다 엉덩이를 두들기며 반갑게 인사해주시던 집사님의 애정표현도 너무 좋았다. 하지만 목회자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지나친 관심을 받을 때도 많았다. 그 부담스러운 시선들이 교회라는 공간을 숨이 턱 막히는 곳으로 만들기도 했다. 내가 진학하는 학교에 대한 이런저런 말들이 오갔다. 학교에서도 안 하는 교복치마 길이 단속을 집사님에게 당하기도 했다. 남자친구가 생기면 얼마 지나지 않아 온 교회에 소문이 퍼졌다. 내가 음식점에서 무엇을 먹었는지, 어디서 무엇을 하고 놀았는지까지 소문이 돌았다. 목회자 자녀들에게는 이런 일들이 꽤 흔하게 일어난다. 
최근 연애를 시작한 J자매(24)는 원치 않게 사생활이 공개됐다. 목회자 자녀인 J자매는 남자친구와 같은 동네에 살지만 성도들의 눈을 피해 집에서 떨어진 곳에서 데이트를 했다. 그런데 우연히 중등부 교사로 섬기고 있는 집사님과 마주치고 말았다. 그리고 그 다음 주일날 J자매의 연애사가 낱낱이 공개됐다. 
“교사회의를 마치고 교사들끼리 모여서 차를 마시는데 그 집사님이 남자친구 이야기를 꺼내시더라고요. 저랑 남자친구를 본 이야기부터 남자친구 이름, 학교까지 세세하게 알고 계시더라고요. 그 집사님 아들이 남자친구의 친구였거든요. 본인 아들 친구가 목사님 딸이랑 사귄다는 게 신기하다고 하시더라고요. 너무 당황스러웠어요.”

 

유리어항 속에 갇혀 있는 것 같다

 

목회자 자녀들의 삶은 그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던 타인에게 노출되어 있다. 그들의 일상을 지켜보는 시선들이 항상 존재한다. 어떤 목회자 자녀는 이를 두고 “유리어항 속에 갇혀 있는 것 같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실제 수많은 목회자 자녀들이 타인의 지나친 시선과 관심 때문에 몹시 힘들어 한다. 전국 목회자 자녀세미나에서 목회자 자녀 5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그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타인의 시선(43.3%)이었다.
목회자 자녀들은 남에게 비춰질 자신의 모습이 어떤지 늘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말과 행동은 기본이고, SNS에 게시글을 올릴 때도 목회자 자녀로서 합당한지 스스로 검열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모습이 자칫 부모의 목회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생활하기도 한다. H형제(22)는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의 목회에 지장을 줄까봐 억울한 상황을 참아야 했다. H형제와 집사 자녀가 다퉜는데 교회에 “목사님 아들이 욱하는 성질이 있다더라”는 엉뚱한 소문이 났다. 교회 행사를 준비하면서 서로 의견이 달라 몇 마디 주고받은 게 전부였는데 얌전할 것 같던 목사 아들이 화를 낸 것 자체가 이슈가 됐다.
“그때 상황에 대해 함께 있던 친구들이 설명을 했는데도 교회에는 제가 화를 냈다는 소문만 퍼졌어요. 정말 억울했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어요. 제가 거기서 더 화를 내거나 문제를 일으켰다가는 아빠가 많이 곤란해지실 것 같았거든요.”
목회자 자녀들은 교회 안에서 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목회자 자녀로 살아야 한다. S자매(31)는 교회에서도, 학교에서도, 심지어 직장에서까지 목회자 자녀라는 타이틀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학창시절 욕이라도 한마디 하면 친구들이 “너 목사님(S자매 어머니)한테 이른다!”며 장난을 쳤다. 대학 친구들과 술집에 갔다가 가게 앞을 지나가던 장로님과 마주친 적도 있다. 술은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지만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꾸중을 들었다. 직장에도 목회자 자녀라는 것이 알려진 이후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더 많아졌다. 속이 비치는 얇은 셔츠를 입고 회사에 갔더니 직장동료가 “목사님 딸이 그런 거 입어도 돼?”라고 물었다. 식사자리에서 기도를 하지 않고 밥을 먹다가 “목사님 딸이 기도도 안 하고 먹네?”라고 핀잔을 들었다. S자매는 “사람들은 별 의미 없이 던지는 장난과 관심이겠지만 그것 때문에 나는 정말 많이 답답하다”고 털어놓았다. “할 수만 있다면 목회자 자녀라는 꼬리표를 떼어내고 싶다”고 했다.
목회자 자녀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목회자 자녀로서의 삶을 강요받는다. 신앙적인 면에서는 더욱 그렇다. 목회자 자녀이기 때문에 성경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어야 하고, 신앙적으로도 성숙할 것이라는 편견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편견과 오해들이 목회자 자녀들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곪게 만들기도 한다. 또 다른 목회자 자녀 P자매(26)는 20대 초반 영적인 혼란을 겪었다. 매주 교회에 나가고 봉사하고 있었지만 자신의 모든 행동이 습관적이라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대한 의심도 생겼다. 지금껏 해온 신앙생활이 모두 거짓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문제는 이러한 고민을 털어 놓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 두려웠기 때문이다.
“제가 그런 고민을 한다는 사실을 누군가에게 말할 수가 없더라고요. 목사님 딸이 하나님을 의심한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남들이 손가락질 할 것 같았어요. 부모님께 털어놓는 것도 당연히 어려웠죠. 부모님은 제가 아무 문제없이 잘하고 있다 생각하시니까요. 이래저래 너무 혼란스러웠어요.”
목회자 자녀들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리더의 자리에 쉽게 부름을 받는다. 물론 감사한 일이지만 이 또한 부담되는 것이 사실이다.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는 목회자 자녀 L형제(16)는 중등부 정기총회에서 가슴을 쓸어내리는 일을 겪었다. 중등부 회장 후보로 자신의 이름이 올랐기 때문이다.
“목사님 아들이니까 잘 할 수 있어”라는 집사님의 응원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L형제는 다행히(?) 중등부 회장에 당선되지는 않았지만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목회자 자녀’라는 틀에 가두지 말라

 

목회자 자녀도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 저마다 모습이 있다. 활발한 성격도 있고, 수줍음 많은 성격도 있다. 어떤 목회자 자녀는 성경을 잘 알고, 어떤 목회자 자녀는 성경에 대해 잘 모를 수도 있다. 부모를 따라 목회자를 꿈꾸는 경우도 있고, 각자 재능에 맞춰 또 다른 꿈을 꾸중을는 이도 있다. 그들을 ‘목회자 자녀’라는 틀에 가둬서는 안 된다.
유명한 저술가이자 설교자 존 파이퍼 목사의 아들 바너버스 파이퍼도 목회자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어릴 적 친구들과 함께 교회주차장에서 오디오 볼륨을 최대로 높이고 록밴드의 음악을 듣다가 한 집사님에게 붙들려 크게 혼이 났다. 록밴드 음악을 함께 들은 친구들은 혼날 일이 없었다. 목회자 자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바너버스 파이퍼는 그날 일을 “친구들은 그 또래 사내아이였지만 나는 한심한 목회자 자녀가 되고 말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저서 <목회자의 자녀로 산다는 것>에서 자신과 주변 목회자 자녀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목회자 자녀들을 향한 지나치고 그릇된 기대와 추측, 목회자 자녀들의 정체성, 목회자 자녀들의 삶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시선 등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목회자 자녀들도 남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목회자 자녀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라”고 조언했다. 목회자 자녀들에게는 “남들이 원하는 ‘나’가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나’를 발견하기를 도전하라”고 권면했다. 목회자 자녀들이 겪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만드신 진짜 ‘나’의 모습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아빠에게

 

아빠!
내가 사랑하는 아빠. 보고 싶은 아빠.
아빠가 천국으로 가고 나서 2주 만에 아빠를 불러보네. 하나님 품으로 가니 좋아? 이젠 행복해? 이제는 안 아프지? 편지를 쓰려고 하니까 아빠와 관련된 기억들이 스쳐 지나가더라고.
내가 초등학교 때였던 걸로 기억해. 아빠가 어떤 건물 지하에 교회를 개척했는데 교회가 어려웠는지 언니와 나에게 하루 세끼를 못 먹을 수도 있다고 말했던 적이 있었어. 그 말을 들은 이후 난 밥 먹을 기회가 생길 때마다 밥을 꾸역꾸역 입으로 넣어야 했어. 배가 불러서 더 들어갈 곳이 없었는데도 말이야. 또 교회가 지하에 있었던 탓에 장마철이면 늘 침수가 되곤 했어. 아빠와 엄마, 나, 언니, 이렇게 네 식구가 지내던 단칸방은 물이 들어와 잘 수가 없었지. 할 수 없이 예배당 긴 의자 두 개를 마주보게 붙여놓고 잤었지. 그런데 붙여놓은 의자가 평평하지 않아 밤새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잠을 설쳤던 기억이 생생해. 지금 생각하면 좀 웃기지만, 어렸던 나는 크면 거지가 될까봐 걱정도 됐었어.
물론 힘든 기억만 있었던 건 아니야. 예배 오시는 분들을 항상 국수를 끓여 대접하던 엄마의 모습, 예배가 끝나면 대걸레로 아빠와 함께 예배당 청소하던 기억 등 행복한 장면도 아련하게 떠올라.
아빠가 서울 큰 교회 청빙을 거절하고 20여 년 전 시골에서 다시 교회개척을 한다고 했을 때 나는 반대하는 마음이 컸어. 좀 편하게 목회할 때도 된 것 같았는데 왜 사서 고생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됐어. 아빠는 인생의 마지막을 그 지역에서 헌신하겠다고 하나님께 약속했기 때문이라며 뒤도 안 돌아보고 다시 뛰어들었지. 하지만 잘 변하고 이기적인 일부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서 아빠는 많은 상처를 받은 것 같았어. 사람들 때문에 힘들어하는 아빠를 보며 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기대도 하지 않는 성격으로 변했던 것 같아. 또 하나님을 믿는 것은 고통이고 힘든 삶이라는 것을 어린 나이에 느꼈어. 그런데 이상한 건, 그런 중에도 항상 엄마, 아빠는 평안해 보였다는 거야.
지난 10개월 간 나는 하나님께 묻고 따지는 시간이 많았어. 몸에 탈이 날 정도로 헌신했던 사역지에서 여러 이유로 재작년 갑자기 은퇴하게 된 아빠를 보며 안쓰러운 마음이 많이 들었어. 게다가 지난해 말에는 췌장암 말기 판정까지 받은 아빠를 보며 과연 하나님은 무슨 생각이신지 원망스러웠어. 그런데 폭풍우 같던 그 시간들이 지나니 하나님이 내 모든 생각을 바꿔버리신 것 같아. 투병하는 시간 내내 미리 예비하시고 준비해 주시던 하나님, 치료비가 없어 제대로 치료를 못 할 때면 주위의 돕는 손길로 채워 주신 하나님, 10개월의 투병시간을 주셔서 서로 감사하며 사랑할 시간을 주신 하나님, 진통제도 진정시킬 수 없는 고통 속에서도 “아버지,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 고맙습니다“라고 되뇌는 아빠를 보며 눈물이 났어. 과연 하나님이 어떻게 만드셨기에 극심한 고통을 참느라 입에서 피가 날 정도의 상황이었는데 ”하나님 아버지, 고맙습니다“라는 이야기를 할까… 그분이 얼마나 거룩하신 분이기에…
아빠! 아빠가 보여준 믿음 따라 나도 그 길을 가면서 믿음을 지키며 살게. 아빠가 하나님 품으로 돌아간 게 얼마 안 돼서 그런지 눈물은 많이 나지만 이상하리만큼 마음과 내 영혼은 평안해. 아빠, 내가 엄마 잘 지키고 있을게. 그 곳에서 잘 있어. 나중에 천국에서 봐!
/ 황은아 성도(강남D공동체)

 

사랑하는 두 아들에게

 

너희들이 태어나고 자라면서 엄마와 아빠에게 주었던 기쁨은 이루말로 할 수가 없다. ‘우리를 향한 창조주의 마음이 이러시겠구나!’ 싶은 마음을 비롯해서 ‘차라리 내가 대신 아팠으면’하는 예수님의 안타까운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고, ‘아들의 고통을 헤아려 주세요’하는 성령님의 마음을 볼 수 있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이니! 그뿐이겠니? 너희들의 허우적대는 두 팔과 다리를 보고 있으면 좀처럼 풀리지 않는 인생의 시름과 무게가 어쩜 그렇게 순식간에 날아가 버리던지 꼭 마법과 같더구나! 너희들의 거짓 없는 몸짓과 표정, 포동하고 보드라운 살결에 중독되어 세상 시름이 아무것도 아닐 때가 있었다. 아빠는 그때가 몹시 그립구나!
아들들아 잦은 이사와 다른 환경에 얼마나 어려움이 많았니? 아빠는 그것이 가장 미안하다. 서울, 인천, 대전, 부천, 서산! 그뿐이겠니? 같은 도시 안에서도 반복된 이사와 이동, “이사 가기 싫은데… 친구는 또 어떻게 사귀지?”라며 반 친구들과 울며 헤어졌다고 망량한 눈을 내밀 때, “아빠! 왜 내가 여기 살아야 돼?”라고 차라리 큰 소리로 짜증이라도 내면 좋으련만 조용한 너희들은 체념하듯 아파하더라! 그게 참 미안했다.
‘목사와 아빠’라는 두 얼굴 사이에서 얼마나 힘들었니? 더군다나 이렇게 작은 교회에 있는 너희들의 중압감과 시선을 나는 안다. 부족한 아빠의 시선이 너희들에게 결핍이 되었고 때론 과잉이 되었구나! 아빠도 세상과 교회 앞에서는 목사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하염없이 약한 자녀란다. 아빠는 신통방통한 사람이 아니다. 정답을 알고 있다고 다 정답처럼 살지 못한다. 아빠도 몰래 눈물 흘리고, 갈등하고, 미래를 걱정하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고민하면서 살얼음판을 걷듯이 인생을 걷는다. 하나님만이 유일한 삶의 소망되심을 알려주고 싶다.
아빠는 가식적인 문장으로 여러 말을 쏟아 놓아 너희 심경을 복잡하게 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 오늘 너희들에게 두서가지만 당부하련다. ‘겸손해라!’ 그리고 ‘사람을 살피는 존재가 되라!’ 그리고 ‘유머 있는 사람이 되라!’ 딱 세 가지다.
아빠는 한 가지 꿈이 있다. 사람들이 아빠를 ‘하나님과 사람 앞에 겸손한 사람’으로 기억하기를 바란다. 너희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를 소망한다. 거기에 겸손이 있다. 겸손은 특권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특권을 가지지 못해서 허우적대고 기고만장한다. 그러기에 교만은 결핍이다. 아들아! 너희의 겸손을 악용하는 자들을 불쌍히는 여기되 깊은 사귐을 가지지는 말아라. 너무 깊은 책임감에 건강을 해치지도 말아라. 너희의 겸손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자들을 찾거든 너희는 더욱더 겸손해라! 품위와 진정성은 다르다. 교만한 자 앞에서 품위를 잃지 마라. 그리고 거룩하고 겸손한 자 앞에서 진정성을 잃지 마라! 네가 거룩하고 겸손한 자 앞에서 진정성을 잃어버린다면 너는 품위도 겸손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그것이 곧 가식이다.
교만은 거꾸로 흐르는 물과 같더구나! 그래서 썩고 냄새가 나는 것이 교만이다. 교만한 삶은 마치 하수구에 흐르는 물을 퍼다 올려 살아가는 것과 같다. 그러니 끝까지 하나님과 사람 앞에 겸손해라! 너의 인사권은 하늘에 있으므로 사람을 무서워하지 말고 비굴해 하지 마라! 겸손은 비굴함과는 차원이 다른 영역이다.
아빠를 보아라! 내 세울 것 하나 없는 사람이 이렇게 훌륭한 교회, 이렇게 훌륭한 성도들과 목회자와 더불어 사역하고 있음을. 이것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기쁨이다. “오직 하나님이 나의 삶의 인도자이십니다”라는 뼛속 깊은 고백의 결과란다. 그러니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을 경외해라!
사랑하는 아들아! 사람들을 살피는 사람이 되라! 아빠는 너희들이 이어폰으로 귀를 막는 것보다 풀의 소리, 사람의 소리, 같이 뛰면서 심장의 소리를 교환하며 사는 것을 원한다. ‘나’라는 말보다 좋은 말은 ‘우리’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고’ 이것이 하나님의 다짐이다. 요셉도 술 맡은 관원장의 얼굴을 살피고 즉, 사람을 살피고 나서야 비로소 총리의 길이 열렸다. 이 하나님의 우리를 중요시 여기는 뜻을 어찌 거역하겠니? 유대인 출신 철학자 레비나스는 이렇게 말했다. ‘타인의 얼굴은 하나님의 계시’라고. 그러니 기억하거라. ‘나’에게 집중하지 말고 ‘우리’에게 집중할 때 너의 길이 열릴 것이다.
또 아들아! 유머를 잃지 마라! 아빠가 집안에서도 계속해서 유머를 발굴하지 않더니? 웃는 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웃을 일이 없어서 웃지 못한다는 말은 패배자의 말이다. 웃을 일이 없어서 못 웃는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웃을 생각이 없어서 못 웃는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은 웃어라! 웃음은 창조정신에서 나온 것임을 잊지 마라!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엄청나게 웃으셨단다. 사람들이 가볍게 본다고? 아마 부러운 것일 거다! 그러니 웃어라! 그리고 유머 있는 사람이 되어라!
사랑하는 아들아! 이글을 쓰기 전까지는 잘 몰랐다. 차라리 너희들의 당돌함과 엉뚱함과 순수함이 냉수 먹고 이 쑤시는 기존세대들의 가식보다 훨씬 가치 있는 것임을. 그러니 그 기조를 계속 유지해라! 그것이 창조의 습관이다. 결국 ‘더 배워야겠구나!’라는 생각으로 마무리를 짓는구나! 내가 너희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그리고 하나님이 얼마나 너희들을 사랑하고 있는지, 그리고 아빠로서 얼마나 더 겸손하게 무릎 꿇어야 하는지를 가르쳐줘서 고맙다. 사랑하는 아들들! 그래도 사랑할 것이다. 그러기에 사랑할 것이다. 그럴 것이기에 사랑할 것이다. 이것이 아빠의 다짐이다.
/ 임용성 목사(서산 온누리교회)

 작성자   홍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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