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 신문 - 예수님은 피 한 방울까지 다 나눠주셨다!

국내캠퍼스

예수님은 피 한 방울까지 다 나눠주셨다!

 2019-12-22      제12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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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_습관이 신앙을 키우고 삶을 바꾼다
4. 나눔

나눔은 기적을 낳는다 … 그 열매는 넘치는 축복
크리스천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자 삶의 방식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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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속담에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했고, “습관의 씨앗이 성품을 얻게 하고, 성품은 우리의 운명을 결정짓는다”는 서양 격언이 있다. 습관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습관이 있다. 좋은 습관도 있고, 나쁜 습관도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좋은 습관이 운명을 만든다는 점이다. 
크리스천의 신앙생활에도 좋은 습관이 꼭 필요하고 중요하다. 좋은 습관을 가진 크리스천을 통해 세상이 교회와 그리스도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크리스천이 가져야 할 좋은 습관 그 마지막은 ‘나눔’이다. 
/ 정현주 기자 joo@onnuri.org
 
 
지난 10일, 인천의 한 마트에서 도난사건이 발생했다. 30대 아버지와 12살 아들이 마트에서 물건을 훔치다 적발된 것. 이들이 훔친 것은 우유 2팩과 사과 6개 등 1만원 남짓 식료품이었다. 사연인즉 아버지가 몸이 아파 6개월 동안 일을 못해 생활고에 시달렸고, 배고픔에 그만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다. 눈물 흘리며 잘못을 비는 부자(父子)의 딱한 사정을 들은 마트 주인이 출동한 경찰에게 선처를 호소했고, 경찰도 훈방조치 했다. 밥을 못 먹었다는 부자의 말에 경찰이 그들 부자를 식당으로 데려가 따뜻한 국밥을 대접했고, 마트에서 이 상황을 말없이 지켜본 한 시민은 현금 20만원이 든 봉투를 건네고는 사라졌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 사연이 보도된 직후 전국에서 이들 부자를 돕고 싶다는 온정이 쇄도했다. 직접 담근 김치를 가져온 할머니부터 쌀, 사과, 라면 등 식료품, 성금, 일자리 주선까지 각계각층의 나눔이 이어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6일 수석보좌관회의 모두 발언에서 “흔쾌히 용서해준 마트 주인, 부자에게 국밥을 사주며 눈물 흘린 경찰관, 이어진 시민들의 온정은 우리 사회가 희망이 있는 따뜻한 사회라는 것을 보여줬다. 모두에게 감사드린다”고 인사했다. 이처럼 나눔은 희망과 따뜻한 사회를 만든다.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습관처럼 나눔을 베풀어야 한다. 왜냐하면 나눔이 곧 예수님의 습관이자 삶 자체였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 나누러 오셨고, 우리에게도 나눔을 명령하셨다. 예수를 따르는 크리스천이라면 응당 나눔이 습관이 되어야 한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성경은 없는 자들에게 나눔을 행하라고 아주 강력하게 명령하고 있다. 
“너는 반드시 그에게 구제할 것이요 구제할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라 이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범사와 네 손으로 하는 바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너는 반드시 네 경내 네 형제의 곤난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신 15:10~11). 
“빈약한 자를 권고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저를 건지시리로다”(시 41:1). “저가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에게 주었으니 그 의가 영원히 있고 그 뿔이 영화로이 들리리로다”(시 112:9).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하려니와 못 본 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많으니라”(잠 28:27). “사람을 학대하지도 아니하며 전당을 잡지도 아니하며 억탈하지도 아니하고 주린 자에게 식물을 주며 벗은 자에게 옷을 입히며”(겔 18:16).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행 20:35).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약 1:27). 
이와 같이 성경에는 나눔의 은혜와 축복, 기적들이 수없이 기록되어 있다. 나눔은 기적을 낳는다는 메시지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오병이어 기적이다. 
벳새다 빈들에 5천 명이 넘는 군중이 모여들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가 (군중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이르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경비가 많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때 안드레의 눈에 한 아이가 들어왔다. 도시락으로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싸 온 아이였다. 그 아이는 자신의 보잘 것 없는 도시락을 예수님께 기꺼이 바쳤고, 예수님은 그것으로 기적을 행하셨다. 5천 명이 넘는 수많은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고도 12바구니가 남는 기적이었다. 한 소년의 나눔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주시는 축복(눅 6:38)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나눔으로 구원의 축복을 받은 이들도 등장한다. 세리장이자 부자인 삭개오가 그 주인공이다.  삭개오의 이름 뜻은 ‘순전하다, 정의롭다’라는 뜻이지만, 그는 이름대로 살지 못했다. 그는 유대인들의 고혈을 빨아 배를 불리던 사람이었다. 그런 삭개오가 예수님이 여리고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갔다. 그런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 예수님을 볼 수 없게 되자 다급한 마음에 돌무화과나무 위로 올라갔다. 예수님은 삭개오의 간절하고 갈급한 마음을 간파하셨다. 
“내가 오늘 네 집에서 묵어야겠다”(눅 19:5).  
예수를 기쁨으로 영접한 삭개오가 놀라운 고백을 한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눅 19:8). 
철저히 회개하고, 나눔으로 믿음을 실천하는 삭개오를 향해 예수님께서 놀라운 말씀을 하셨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눅 19:9). 
자신의 재산을 나누겠다고 고백한 삭개오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영광을 얻었다. 나눔이 구원으로 이어진 것이다. 
자색 옷감 장수 루디아의 나눔은 온 유럽에 복음이 흘러가도록 포문을 열었다. 루디아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옷감 장사를 하던 평범한 이방여인이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장사를 더 잘하기 위해서 고향을 떠나 마게도냐 빌립보에 왔다. 마침 빌립보에 오게 된 사도 바울을 만났고, 그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다. 거듭난 루디아는 곧바로 나눔을 행했다. 자신의 지갑과 집을 열어 바울과 실라를 섬겼고(행 16:15), 자신의 집을 교회로 삼았다(행 16:40). 바로 그곳이 유럽의 첫 번째 교회인 빌립보교회다. 빌립보교회는 루디아의 나눔을 바탕으로 세워진 교회답게 나눔에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다. 그런 빌립보교회를 사도 바울이 특히 사랑했다(빌 1:8, 4:1).  
예수님의 삶은 나눔의 삶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수님의 나눔이 가장 잘 드러난 사건이 바로 십자가 죽음이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지만, 죄 많은 인간들에게 불의한 재판을 받으셨고 결국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셨다. 자신의 몸을 내어주심으로써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받으신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나누어주셨다. 그 결과 우리를 포함한 온 인류가 구원의 축복을 얻게 되었다. 
배우 김혜자 권사는 안락한 삶에 안주하지 않고 월드비전 친선대사로 10여 년 동안 소말리아, 인도, 르완다, 방글라데시 등의 빈민촌에서 나눔과 봉사를 실천했다. 그녀가 자신의 수필집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슬픔의 유일한 치료제는 나눔이며, 이 사랑의 나눔이야말로 그 어떤 전쟁과 죽음보다 더 강하다는 걸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나눠 주셨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피 한 방울까지 다 나눠 주셨다. 예수를 따르는 우리도 나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이웃에게 나눌 때 하나님께서 복을 넘치도록 주실 것이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 6:38). 
 
 
<전문가 기고>
 
사랑 나눔이 사람을 살린다!
나눔은 소망 주고, 생명 살리는 ‘기적의 힘’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나눔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그 사랑의 속성이 곧 나눔이기 때문이다. 나눔 신앙의 하이라이트는 성찬식에서 발견할 수 있다(마 26:26~28).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찢기시고 흘리신 예수님의 살과 피를 기념하는 성찬식은 나눔을 통한 연합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당신의 생명을 나눠 주심으로써 우리가 생명을 얻을 수 있게 해주셨고, 그 결과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막힌 담이 무너져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거하는 연합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그 나눔은 주님의 살과 피를 함께 먹는 모든 성도들을 하나가 되게 했다. 그러므로 신앙인들은 자신이 처한 삶의 자리와 일터 등 모든 영역에서 나눔을 실천하며 생명을 살릴 뿐만 아니라 하나 됨을 이루어야 한다.   
하나님은 출애굽 중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를 통해서 나눔 신앙을 갖도록 가르쳐주셨다. 추수할 때는 밭의 가장자리까지 거두지 말고, 이삭도 줍지 말며, 포도원의 포도 또한 전부 따지 말고, 떨어진 포도송이는 거두지 말라고 하셨다(레 19:9~10). 가난한 사람들이나 외국 사람들을 위한 양식으로 남겨두라고 당부하신 것이다. 이러한 말씀은 나눔을 중요하게 여기고 계신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준다. 이 말씀에 순종했던 보아스는 룻이 자기 밭에서 이삭을 줍도록 배려했다가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고(룻 2:16), 놀랍게도 그녀의 이름이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이처럼 나눔은 조건 없이 사랑을 실천하는 믿음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나눔 신앙은 오병이어 사건(마 14:14~21)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자신이 먹으려던 오병이어를 담은 점심도시락을 공동체를 위하여 내어놓았을 때, 그것이 나누어져 5천명이 먹고도 12광주리가 남는 기적이 일어났다. 나눔 정신이 가득한 이 사건은 오래 전 주일학교 어린이들이 많이 불렀던 ‘사랑은 참으로 버리는 것’이라는 찬양을 기억나게 해준다. 그 찬양에 이런 가사가 있다. 
“이상하다 동전 한 닢 움켜잡으면 없어지고 쓰고 빌려주면 풍성해져 땅 위에 가득 하네.” 
나눔은 이기적인 욕심을 버릴 때 가능하다. 나눔은 많은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고, 생명을 살려주는 기적의 힘을 가지고 있다. 
또 하나의 나눔 신앙 증거는 예루살렘 교회(행 2:44~45)에서 발견할 수 있다. 성령의 권고하심을 받은 성도들은 자신의 재산을 팔아 교회에 헌납했고, 그것은 교회 내 궁핍한 사람들에게 필요를 따라 나누어졌다. 나눔은 공동체를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나눔의 힘이다. 함께 웃고 함께 우는 것이 나눔 정신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느 곳에서나 나눔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가는 임무를 다해야 한다. 
성도들의 가정을 심방할 때 가끔 냉장고 문에 외국 아이들의 사진이 붙어 있는 것을 본다. 그 중 어떤 아이는 한 달 생활비를 후원받는가 하면, 어떤 아이는 학비를 지원받기도 한다. 어린이들에게 후원되는 금액은 대부분 매월 2만원 안팎의 소액이다. 그러나 후원을 받는 아이들은 그 돈으로 생존하기도 하고, 공부를 할 정도로 큰 액수이다. 나눔이 생명을 살릴 뿐 아니라 미래의 소망을 심어준다.   
 
‘사회적 기업’과 ‘재능기부’
 
언제부턴가 익숙해진 용어 두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사회적 기업’이다. 사회적 기업이란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을 말한다.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건강하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사주(社主)를 위한 수익창출이 기업의 목적이었다. 그러다가 직원들과 함께 잘 살기위한 기업으로 변하더니 지금은 창출된 수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기업으로 성장해가고 있다. 요즘 웬만한 규모의 회사에서는 사회봉사본부나 부서를 운영하면서 돈이나 물건으로 사회 구석구석을 섬기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사회발전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크리스천 기업들 중에도 수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회사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온누리교회 성도들 중에 조용히 사회봉사에 앞장서고 있는 분들이 많은 것은 감사한 일이다. 투자회사를 경영하는 어느 성도는 금년 연말에 1억 원어치 생리대를 헌납했다. 처음에는 그 많은 분량을 어떻게 소화해야 할지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일주일 만에 수백 명의 여성들에게 반년 치 생리대를 제공하게 되었다. 대상자들은 전부 취약계층 여성들이었다. 많은 여성들에게 기쁨의 선물을 나눠준 성도의 목적은 단 한 가지다. 자신이 수고하여 얻은 수익의 일부를 나누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 뜻에 기쁨으로 순종한 것이다. 베트남 쌀국수집을 운영하는 한 성도는 사업을 성경적으로 하기 위해 먼저 욕심을 내려놓았다. 분점을 늘려가면서 점주들에게 지분을 나눠주어 독립적으로 운영하게 하였다. 점주들에게 자신의 계획을 알렸을 때 그들은 믿지 못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자신들이 했던 경험과 정반대되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나눔 결과 경영실적도 좋고, 건강한 먹거리를 창출해서 고객들의 건강에도 기여했다. 성경적인 나눔 정신이 기업 경영에 반영되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기업을 경영하고 있는 또 다른 성도는 회사를 경영하면서 얻은 수익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이해하고, 수익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였다. 그는 추천자만 확실하면 어떤 조건도 없이 미래의 리더를 양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장학금을 기부하고 있다. 그는 돈의 위험성에 대해 나름대로의 경각심을 가지고 있었다. 돈은 의미 있게 사용하지 않으면 반드시 죄 짓는 길로 인도한다는 깨달음이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는 말씀(딤전 6:9~10)을 실감한다고 고백했다. 그래서 죄 짓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눔을 실천한다는 것이다. 나눔 후에도 잘못하면 죄를 범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눔 후에는 어떤 확인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것 또한 성경적 나눔을 실천하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용어는 ‘재능기부’다. 재능기부란 개인의 재주와 능력을 아무 대가없이 자선사업이나 공공 목적을 위해 내놓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배움의 때를 놓친 사람들을 위한 야학(夜學)이 많았다. 대학생이나 일반인들이 자신의 전공을 따라 무료로 강의했다. 이것이 재능기부의 원조였다. 지금은 다양한 방면에서 재능기부가 이뤄지고 있다. 의료인들은 농어촌이나 도시 빈민을 상대로 의료봉사를 하고, 미용사들은 농어촌이나 양로원 혹은 요양원 등을 찾아다니면서 봉사를 하고 있다. 미술인들은 마을단장사업에 참여해서 벽화그리기에 재능을 기부하고 있고, 음악인들은 취약계층이나 장애인에게 악기를 가르쳐주면서 재능을 기부하고 있다. 시간을 기부하는 사람들도 있다. 영국이나 호주에 있을 때 가장 부러웠던 것 중 하나가 각종 자선단체가 운영하는 재활용 매장이 많다는 점이었다. 그 매장은 시간을 기부한 자원봉사자들에 의해서 운영되었다. 우리 교회에도 이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사역지가 많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서빙고 온누리교회 지하1층에 ‘나눔장터’가 있다는 것을 아는 성도가 많지 않은 것 같다. 나눔장터는 시간을 기부한 성도(자원봉사자)들에 의해서 운영되고 있다. 그들은 기부 받은 옷가지들을 정리한 다음 팔아서 얻은 수익금을 매년 다양하게 나누고 있다. 농어촌선교팀은 농촌 교회의 위탁을 받아 매주 주일 농산물을 판매하고, 그 수입금을 송금해주고 있는데 이 또한 시간을 기부한 성도들에 의해서 운영되고 있다. 
온누리교회는 한국 교회에서 처음으로 교회 안에 ‘사회선교본부’를 두고 교회 안과 밖에서 많은 사랑의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매년 성탄 시즌에 진행되는 ‘엔젤트리’는 나눔 정신이 드러나는 좋은 행사이다. 천여 명 참석했던 행사가 5년째 되는 올해에는 약 4,500명의 성도들이 참여하였다. 대학청년부가 매년 연말에 진행하는 ‘사랑愛나눔’ 행사도 나눔의 또 다른 모습이다. 이 행사에 일반 성도들은 비전헌금으로 참여하고, 대학청년들은 몸으로 참여해서 성경적인 나눔 정신을 살리고 있다. 매월 둘째 주일마다 실행하고 있는 비전헌금도 나눔 정신을 담고 있는 좋은 예이다. 
나눔에 있어서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돈만 주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취약계층 사람들은 돈도 필요하지만, 돈보다 더 필요한 것이 바로 사랑이다. 돈 없음보다 더 큰 고통은 외로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랑이 빠진 나눔은 사람을 살릴 수 없다. 그것은 성경적 나눔이 될 수가 없다. 예수님이 당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나누어주신 것은 사랑 때문이었다. 그 사랑이 우리를 살렸다. 돈은 사람을 살리지 못한다. 사랑만이 사람을 살릴 수 있다. 
우리 성도들 중에는 서울역과 남대문 쪽방촌, 동빙고 독거노인 등과 같이 외로운 환경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 섬기는 분들이 많다. 이들은 시간을 기부하는 훌륭한 천사들이다. 그들이 정기적으로 찾아가 만나는 이들은 몸이 불편해서 방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누군가 찾아와 대화를 한다는 것과 누군가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로를 얻는다고 한다. 이것이야말로 사랑이 담긴 나눔이다. 최근 상영되고 있는 영화 ‘Last Christmas’의 주인공 대사가 도전을 준다. 
“하루를 잘 사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은 더욱 감사한 일이다.”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온 사랑의 나눔이 우리를 통해서 누군가에게 또 다시 흘러가는 한 겨울은 더 이상 춥기만 한 계절이 아닐 것이다. 
/ 이기훈 목사(사회선교본부장) 
 
 

 작성자   정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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