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 신문 - 새해에는 공동체 성경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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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는 공동체 성경읽기! 

 2020-01-12      제12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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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
온 맘 다해 하나님만 사랑하는 방법
1. 공동체 성경읽기

모세부터 사도 바울, 예수님이 해온 성경읽기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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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교회가 ‘온 맘 다해 하나님만 사랑하라’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2020년 새해를 힘차게 출발했다. 본지에서는 ‘온 맘 다해 하나님만 사랑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성도들에게 제안하고자 한다. 그 첫 번째 방법은 공동체 성경읽기다.
/ 정현주 기자 joo@onnuri.org
 
 
성경읽기는 마음처럼 쉽지 않다. 오죽하면 새해 대표적인 작심삼일 포부가 성경일독일까. 그만큼 어렵고 힘들다는 말이다. 혼자서 한다면 말이다. 성경을 1년 내내 꾸준히 읽을 수 있는 아주 탁월한 방법이 있다. 공동체 식구들과 함께 성경을 읽는 것이다. 공동체 식구들과 함께 성경을 읽으면서 싹트는 사랑은 덤이다. 오늘(12일) 오후 9시부터 시작되는 ‘공동체 성경읽기’ 예배에 참석하는 것도 좋다. 공동체 성경읽기 예배를 1년 동안 드리는 것만으로도 신약성경(누가복음 제외)을 완독할 수 있다. 
성경읽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성경은 말씀의 중요성과 말씀 읽기를 강조하는 구절로 구성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6~17).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4).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말씀이라”(벧전 1:17).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2).  
갓난아기들은 어미의 젖이 없으면 살 수 없다. 크리스천들도 마찬가지다. 젖이 없으면 살 수 없는 갓난아기들처럼 크리스천은 하나님 말씀의 젖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 반드시 성경을 가까이하고, 읽어야 하는 이유다. 
 
왜 공동체 성경읽기인가? 
 
그렇다면 왜 공동체 성경읽기일까? 공동체 성경읽기는 무엇이고, 왜 해야 하는 것일까? 공동체 성경읽기는 혼자 말씀을 읽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모여 말씀을 듣고, 읽는 또 하나의 예배다. 공동체 성경읽기의 역사가 매우 깊다. 구약의 모세부터 사도 바울, 예수님이 해온 성경읽기 방법이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는 공동체 성경읽기를 통해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이상 노예가 아니었지만, 오랫동안 애굽 생활에 젖어있던 폐해가 컸다. 노예근성에 젖어있는 백성들에게 모세는 자신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이 누구이며, 장차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줘야만 했다.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명과 명령을 공동체 성경읽기를 통해 백성들에게 전달했다(신 5~6장). 
“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아 오늘 내가 너희의 귀에 말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그것을 배우며 지켜 행하라”(신 5:1). 
모세에 이어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 역시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 놓고 모세가 했던 것처럼 함께 말씀을 읽고 들었다(수 9:30~35). 그러나 안타깝게도 여호수아가 죽은 이후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듣기 위해 모였다는 기록이 없다. 함께 모여 성경을 읽고 듣는 일상이 없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보여주신 기적과 사명, 부르심을 모두 잊어버리고 말았다. 급기야 왕국이 분열되고 말았다. 
그러다 남유다 16대 왕인 요시야 때 공동체 성경읽기가 부활했다(왕하 22~23장). 요시야 왕이 성전보수를 하려 했는데 그곳에서 오래된 율법서가 발견됐다. 요시야는 율법서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여선지자 훌다에게 사람을 보냈고, 훌다는 이스라엘에 큰 재앙이 내릴 것을 예언했다. 재앙의 예언을 들은 요시야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유다와 예루살렘의 아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을 성전으로 불러내 말씀을 읽는 것이었다. 요시야는 율법서에 쓰인 대로 모든 백성들에게 언약을 세워 지키게 했다. 성경은 요시야를 온 마음과 온 정신과 온 힘으로 여호와를 향한 왕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왕하 23:5).
사도 바울 또한 공동체 성경읽기를 강조했다.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공동체 성경읽기를 하면서 성경을 읽고, 설교하고, 가르치라고 권면했다. 
“내가 갈 때까지 그대는 성경 낭독과 설교와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여라”(딤전 4:13). 
여기서 ‘성경 낭독’이라는 표현을 영어 성경에서는 ‘Public reading of Scripture’라고 표기하고 있다. 공동체 성경읽기를 의미한다. 그냥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성경읽기를 강조하는 것이다. 
우리의 모델이 되시는 예수님도 공동체 성경읽기를 하셨다. 예수님은 공동체 성경읽기를 하면서 두루마리 말씀을 펼쳐 읽은 것뿐만 아니라 자신이 이 땅에 온 이유를 그 시간에 선포하셨다. 
“안식일이 되자 예수께서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가셔서 성경을 읽으려고 일어나셨습니다. 예언자 이사야의 두루마리를 건네받으시고 두루마리를 펼쳐 이렇게 기록된 곳을 찾아 읽으셨습니다. ‘주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이는 하나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도록 하기 위함이다’”(눅 4:16~19). 
 
성 어거스틴의 회심, 그 결정적 계기
 
위대한 신학자이자 목사, 사상가이자 성자, 교회가 낳은 인물 가운데 가장 위대한 지성인으로 손꼽히는 성 어거스틴은 한때 마니교에 심취했을 정도로 방탕한 생활을 했었다. 그 방탕한 생활에 종지부를 찍게 된 계기는 다름 아닌 어린아이의 ‘성경을 읽으라’는 목소리 덕분이었다. 
“난데없이 어린아이의 노래 소리를 들었습니다. ‘집어 읽으라 집어 읽으라’는 후렴이 연거푸 들려왔습니다.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린아이들이 이런 노래를 부르며 노는 게임이 있었던가 하고. 그러나 전에 그런 것을 들어본 기억이 없었습니다. 나는 눈물을 그치고 일어났습니다… 나는 그 책을 움켜쥐고 폈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내 눈이 처음으로 닿는 곳을 읽었습니다.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3~14).내가 그 구절을 읽는 순간, 확신의 빛이 밀물처럼 내 마음 속으로 밀려들어오고, 모든 의심의 어둠이 사라진 것 같았습니다.”
회심한 성 어거스틴은 참회록(고백론), 신국론(神國論), 삼위일체론 등을 저술했다. 후대 크리스천들의 위대한 스승이 되었다. 허랑방탕한 탕자에서 위대한 기독교 지성인으로 변모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다름 아닌 성경읽기의 힘이었다. 우리가 성경읽기를 해야만 하는 또 다른 이유다. 
물론 성경을 읽는 일이 쉽지는 않다. 성경 읽는 것이 어려운 이유가 많지만 대부분 바쁘거나 강제성이 없어서, 좋아하는 말씀만 골라서 읽어서, 혹은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 나오면 건너뛰거나 성경책을 아예 덮어 버리기 때문이다. 결국 성경을 혼자 읽기 때문에 잘 안 되는 것이다. 공동체 식구들과 함께 읽으면 분명 다르다. 밥도 혼자 먹으면 맛이 없고 외롭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먹으면 맛도 좋고,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 성경읽기도 마찬가지다. 새해에는 공동체 성경읽기를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자(신 6:6). 그것이 온 맘 다해 하나님만 사랑하는 첫 번째 방법이다. 

 

 작성자   정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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