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 신문 - 항구에서 만나는 조선의 선교역사 - 목포항에 스며든 복음 그리고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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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에서 만나는 조선의 선교역사 - 목포항에 스며든 복음 그리고 사랑

 2020-02-09      제12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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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에서 만나는 조선의 선교역사


2. 목포항

 

목포항에 스며든 복음 그리고 사랑
유진 벨 선교사, 윤치호 전도사, 윤학자 여사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다. 그 지리적 특성이 복음이 전파되는 데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의 이름난 항구에는 저마다 선교역사가 서려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항구를 다녀보는 것만으로도 근사한 선교여행이 가능하다. 푸른 눈의 선교사들이 복음 들고 바다 건너 조선에 오기까지 험난한 여정과 그 속에 숨어 있는 눈물겨운 사연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앙의 선배들이 몸소 보여준 민족사랑과 나라사랑도 만나볼 수 있다. 그 두 번째 여행지는 전라북도 목포항이다.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항구에는 예나 지금이나 얽힌 사랑이야기가 가득하다. 항구는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기도 하고, 못 잊어 하염없이 기다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를 만나기 위해 넘실거리는 파도를 헤치고 들어오는 곳이기도 하다. 전라남도 서부지역 관문이자 호남의 관문이라고 불리는 목포항 역시 사랑이야기가 가득하다. 목포항을 배경으로 한 가슴 절절한 사랑노래들이 많다. 그 수많은 사랑이야기 중에서 가장 으뜸은 한국인을 자신의 목숨처럼 사랑했던 푸른 눈의 선교사들이 보여준 사랑 아닐까?

 

호남선교의 아버지 ‘유진 벨’

 

목포항도 다른 항구들과 마찬가지로 조선선교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 목포는 지리적 특성상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육지와 섬들을 오고가기에 유리해서 선교활동에 큰 도움이 됐다. 1897년 목포항이 개항한 이후 호남지역 선교활동이 더욱 활발하게 일어났다. 호남선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유진 벨(Eugene Bell, 한국명 배유지) 선교사도 그 시절 목포에서 선교활동을 펼쳤다.
목포항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100년이 훌쩍 넘은 교회가 하나 있다. 차곡차곡 돌을 쌓아 올린 석조건물 틈 사이마다 지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전라남도 광주지역 최초 교회 ‘목포양동교회’는 유진 벨 선교사의 선교활동 무대였다. 유진 벨 선교사는 1896년 2월 목포에 들어와 윌리엄 레이놀즈 선교사(William David Reynolds)와 함께 선교지를 매입하고 선교기지를 구축했다. 항구와 가까운 양동 언덕에 천막을 치고 복음을 전했는데 그곳이 목포양동교회의 초석이었다. 유진 벨 선교사는 그 이듬해부터 거리에서 성경책을 팔면서 복음을 전하던 매서인 변창연 조사와 함께 장날 구석구석을 누비며 복음을 전했다. ‘서양귀신’이라는 구박을 받고, 놀림도 당하고, 돌을 맞아도 꿋꿋하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시장을 찾아가 예수님의 사랑을 전했다. 목포양동교회는 13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건축을 세 번이나 할 만큼 크게 부흥했다. 낙후된 지역과 교회들을 돌보는 역할을 감당하면서 호남 최초의 자립교회라는 수식어를 얻게 된다.
유진 벨 선교사의 조선을 향한 사랑과 선교열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유진 벨 선교사는 목포양동교회 성도들과 함께 타 지역과 외딴 섬으로 전도여행을 하면서 성경과 소책자를 보급했다. 유진 벨 선교사가 전도여행을 하면서 개척한 교회가 호남지역에만 50여 개가 넘는다. 유진 벨 선교사가 목포를 떠나 전도여행을 하던 1901년 4월 어느 날, 심장병을 앓고 있던 아내 로티 위더스푼 선교사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급히 목포로 발걸음을 옮기려 했지만 로티 위더스푼 선교사는 끝내 사랑하는 남편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다섯 살짜리 아들과 두 살짜리 딸을 품에 안고 숨을 거뒀다. 로티 위더스푼 선교사는 낯설고 외로운 낯선 이국땅에서 마지막까지 선교의 자리를 지켰다. 그녀가 생전에 쓴 편지에 유진 벨 선교사 못지않은 조선에 대한 사랑이 묻어 있다.

“나는 남편이 선교사역을 잘할 수 있도록 가사의 걱정을 덜어주려고 힘쓰고 있다. 남편을 위하여 가정을 돌보고, 아이들을 기르고, 함께 사는 사람을 돌보는 것이 앞으로 몇 년 동안 나의 선교사역이 될 것이다. 나는 이 모든 어려운 일을 해낼 것 같지 않으나 해야만 한다. 나는 언제나 향수에 젖지만 한국은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고 믿는다.”

 

거지대장과 한국고아의 어머니

 

목포양동교회에서 나와 유달산 자락을 따라 걷다보면 산으로 둘러싸인 것처럼 보이는 건물이 하나 보인다. 바다와 산을 끼고 자연을 벗 삼아 자리 잡고 있는 이곳은 전라남도의 첫 번째 고아원 ‘공생원’이다.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곳’이라는 의미다.
공생원은 목포양동교회 윤치호 전도사가 세운 고아구제시설이다. 1928년 일제강점기 당시 윤치호 전도사는 목포의 한 냇가 다리 밑에서 부모를 잃고 배고픔과 추위에 떨고 있는 고아 일곱 명을 발견한다. 그 아이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윤치호 전도사는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함께 생활했다. 공생원이 그렇게 시작됐다. 윤치호 전도사는 고아들을 먹이기 위해 식당의 잔반을 수거해 오고, 거리를 돌아다니며 구걸도 했다. 윤치호 전도사의 별명은 ‘거지대장’이었다.
윤치호 전도사가 돌보는 고아들이 많아질 무렵 공생원에 한 일본인이 찾아왔다. 그녀는 ‘한국 고아의 어머니’라 불리는 다우치 치즈코(田千鶴子, 한국 이름 윤학자)다. 일제강점기 당시 많은 일본인들이 총과 칼을 들고 목포항을 밟았다. 윤학자 여사는 1919년 조선총독부 목포부청 하급관리였던 아버지를 따라 목포에 왔다. 여덟 살 무렵 조선에 들어와 일본인들의 만행을 수없이 목격했던 그녀는 밤낮으로 죄책감에 시달렸다. 어떻게 해서든 일본의 만행을 속죄하고 싶었다.
윤학자 여사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곧바로 목포정명여학교에서 음악교사로 근무했다. 부모를 잃고, 주린 배를 움켜쥐며 좀처럼 웃지 않는 아이들에게 음악으로 웃음을 되찾아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마음을 어여쁘게 여긴 고등학교 은사가 공생원 봉사를 제안했다. 윤학자 여사는 공생원에서 고아들을 돌보고 음악과 일본어를 가르쳤다. 윤학자 여사는 윤치호 전도사를 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다. 윤치호 전도사의 성실함과 고아들을 향한 따뜻한 사랑, 높은 이상에 반해 부부의 연을 맺게 된다. 윤학자 여사는 남편 윤치호 전도사를 도와 정성으로 고아들을 돌봤다. 빈 수레를 끌고 다니면서 음식을 구걸해서 고아들을 먹였다. 슬하 4남매를  공생원 아이들과 함께 키웠다. 어느 누구 하나 소외받지 않도록 온 정성을 쏟았다. 윤학자 여사는 고아들이 아프기라도 하면 등에 업고 병원으로 달려가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전염병과 배고픔에 고아들이 죽기라도 하면 손수 수의를 지어 입히고 하룻밤 꼬박 옆에 있어주었다. 그렇게라도 엄마의 품을 느끼게 해주고픈 윤학자 여사의 사랑이었다.
공생원 아이들을 향한 윤학자 여사의 사랑은 끝이 없었다. 1945년 광복 이후 일본인이었던 윤학자 여사에게 쏟아진 따가운 시선과 공격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공생원을 지켰다. 한국전쟁 중에 남편 윤치호 전도사가 행방불명 됐을 때도 그녀는 끝까지 공생원 아이들과 함께 했다. 윤학자 여사는 30여 년 동안 3천여 명의 고아들을 품고 돌봤다. 윤학자 여사는 일본인이었지만 한복을 입고, 한국말을 쓰려고 노력했다.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손가락질 받는 등 눈물 나는 고초를 겪으면서도 한국에 있는 3천여 명의 자식들을 위해 일생을 바쳤다. 남편이 떠나고 홀로 공생원을 지키던 그녀의 마지막 길은 외롭지 않았다. 그녀가 천국으로 떠나는 길을 3천여 명의 아이들과 3만여 명의 목포 시민들이 눈물로 배웅했다. 목포 최초의 시민장이었다. 공생원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윤학자 여사와 윤치호 전도사의 자손들이 3대 째 섬기고 있다. 윤학자 여사와 윤치호 전도사의 국경과 가난을 뛰어넘는 사랑이야기가 공생원 윤치호?윤학자기념관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찾아가는 길

 

목포양동교회
목포역 3번 버스 승차 - 목포중앙식료시장 정류장 하차 - 도보 4분
목포항 60번 버스 승차 - 대성농협 정류장 하차 - 도보 10분

 

공생원
목포역 1번 버스 승차 - 공생원 정류장 하차목포항 1번 버스 승차 - 공생원 정류장 하차

 작성자   홍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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