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_세상을 바꾸는 크리스천의 힘
읽기는 문해력을, 문해력은 삶의 만족도를 키운다!
해답은 신앙생활 … 성경 읽고, 묵상하고, 나누고, 적용하고
크리스천이라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가 없다. 그런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일이 그리 쉽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주 특별한 일부 사람들만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는 심각한 오해이자 착각이다.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숙명적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을까? 그리 특별하거나 대단한 일을 해야 하는 게 아니다. 일상에서의 작은 실천 하나가 크리스천을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게 할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된다. 우리가 생활 속에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세상을 바꾸는 작은 실천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두 번째는 책 읽기다.
/ 정현주 기자 joo@onnuri.org
“개권유익(開卷有益)”(송나라 태종).
책을 펼치면 유익이 있다는 뜻이다. 책 읽기의 중요함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예부터 우리가 알만한 인물들은 모두 책 읽기를 좋아하는 책벌레였다. 그 대표적인 이가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이다. 세종대왕이 얼마나 책 읽기를 좋아했던지 충녕대군 시절 독서에 심취해 건강이 나빠졌을 정도였다. 아버지 태종이 신하들에게 “충녕대군 방에서 책을 모조리 치우라”는 명을 내렸는데, 병풍 뒤에 미처 치우지 못한 책 한 권을 발견하고는 무척 기뻐하며 그 책을 수도 없이 읽었다고 한다. 독서의 중요성과 유익을 너무나 잘 알았던 세종은 집현전 학자들에게 ‘사가독서’라는 책 읽는 휴가를 주기도 했다. 먹고 사는 걱정 없이 책만 읽으라는 의미로 월급도 지급했다고 한다.
<유리알 유희>, <데미안>의 저자 헤르멘 헤세 또한 엄청난 독서가였다. 할아버지로부터 그 영향을 받았는데, 그의 할아버지는 많은 책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헤르멘 헤세는 빼곡하게 꽂혀있는 할아버지의 서재 방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서 책 읽기를 즐겼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그도 엄청난 양의 책을 소유했는데, “인간이 자연에게서 거저 얻지 않고 스스로의 정신으로 만들어낸 수많은 세계 중 가장 위대한 것이 책의 세계”라고 말했을 정도다.
조선 후기 시인 김득신도 대단한 독서광이었다. 그는 자신이 사는 집 이름을 ‘억만재’라고 지었다. ‘책을 억 만 번 읽은 집’이라는 뜻이다. 그만큼 책을 좋아했다. 김득신은 열 살에야 겨우 글을 배웠을 정도로 머리가 나쁘고 재주가 모자란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당시 한문사대가인 이식(李植)으로부터 “그대의 시문이 당금의 제일”이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뛰어난 시인이 될 수 있었던 데는 독서의 영향이 컸다. 그는 한 권의 책을 읽고 또 읽었는데 <백이전(伯夷傳)>은 무려 1억1만3천 번이나 읽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던 윈스턴 처칠은 “나의 가장 큰 즐거움은 책읽기였다”고 술회했고, 나폴레옹은 전쟁터 말 위에서 책을 읽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대단한 독서광이었다. 이밖에도 빌 게이츠, 워렌 버핏, 故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등 세계적인 거부(巨富)들의 공통적인 습관 중 하나도 책 읽기다.
책, 얼마나 읽고 있습니까?
읽기와 문해력의 상관관계
책은 중요하다. 그래서 꼭 읽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국민들의 독서실태는 그다지 좋지 않다. 이는 국민독서실태조사(문화체육관광부가 국민 5천 명을 대상으로 국민들의 독서 환경 및 실태를 파악하고자 격년으로 시행하는 조사)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종이책 독서율(1년 동안 일반 도서를 1권 이상 읽은 사람의 비율)이 52.1%, 독서량은 6.1권으로 나타났다. 성인의 절반 정도가 1년에 책 한 권도 안 읽는다는 의미다. 더 심각한 것은 독서율의 하락이다. 해마다 독서율이 떨어지고 있는데, 2009년 71.7%에서 10년 사이 20%포인트나 감소했다. 조사를 처음 시작한 1994년 86.8%에 비해서는 무려 34.7%포인트나 급락했다. 해가 갈수록 우리나라 사람들이 책을 안 읽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흥미로운 사실도 발견할 수 있다. 책을 읽는 사람은 더 읽고, 안 읽는 사람은 더 안 읽는 독서 양극화 현상이 심해졌다. 성인 평일 독서시간이 31.8분으로 2017년 조사 대비 8.4분 증가했는데, 성인 독서율과 독서량이 대폭 감소했음에도 독서시간이 증가한 것은 독서자(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의 독서시간이 36.7분에서 89.4분으로 무려 2.4배나 증가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독서율 하락이 단순히 책을 안 읽는 정도로 끝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독서율이 높은 사람일수록 문해력이 높다는 게 다수의 교육학자와 언어학자들의 주장이다.
문해(文解; literacy)란 글을 읽고 이해하는 것으로, 유네스코에서는 “다양한 내용에 대한 글과 출판물을 사용하여 정의, 이해, 해석, 창작, 의사소통, 계산 등을 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문자를 읽을 수 있어도 문해력이 떨어진다면 문맹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문해율을 ‘실질적 문맹율’이라 부르기도 한다. 문해력이 책 읽기와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
세계적인 언어학자 크라센은 “현대 사회는 더 복잡한 리터러시 능력(문해력)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만큼 충분히 잘 읽고 잘 쓸 수 있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나는 이러한 위기를 해결하는 방안이 ‘독서’에 달려있다고 본다”며 책 읽기를 강조했다.
문해력은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필수불가결의 요소다. 생각해 보라. 문해율이 떨어지면 각종 디지털 기기 조작과정과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자연스레 유용한 지식과 최신 정보습득에 둔감해질 수밖에 없다. 이는 ‘농촌 노인의 문해력 제고 방안’(2019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 연구에 따르면 농촌 노인 3분 1 정도가 문해력 저하로 인해 관공서, 은행, 우체국 등의 서류 작성과 이해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처방전 이해나 공공서비스 적시 이용 등에도 어려움이 있어 삶의 질이 저하된다고 한다. 문해가 가능한 노인이 비문해 노인보다 농업 관련 서비스를 이용할 확률이 2.8배, 자신의 건강상태를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비율이 4.4배, 삶의 질에 만족할 확률이 5배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읽기가 안 되면 문해율이 떨어지고, 문해율이 떨어지면 삶의 만족도가 떨어지고 결국은 도태된다.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책을 읽고 문해력을 키워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신앙훈련 자체가 문해력 높이는 지름길
답은 너무나 쉽다. 크리스천이라면 더욱 간단하다. 우리가 교회와 일상에서 하는 모든 신앙훈련(성경 읽기, QT, 필사) 자체가 문해력을 높이는 지름길이다.
책 중의 책 성경을 읽으면 된다. 성경은 40여 명의 저자가 약 1,600년 동안 기록한 인류 최고의 책이다. 영국 과학자 패러데이가 “우리의 길을 인도해주는 이 복된 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찌하여 사람들은 길을 잃는가?”라고 했을 정도다.
QT도 좋은 방법이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묵상한 내용을 삶에 적용하고, 변화된 나의 삶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QT의 모든 과정이 문해력을 높이는 과정이다.
자녀를 공부 잘하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서라도 읽기, 특히 성경 읽기는 필수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잠 1:7)이기 때문이다. 톨스토이는 “성경 없이는 자녀교육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베스트셀러 <공부머리 독서법>의 저자 최승필(독서교육 전문가)은 “읽기 능력이 높을수록 공부를 잘하고, 독서는 읽기 능력을 끌어 올린다”고 주장했다.
부모가 성경을 읽고 자녀에게 가르치는 게 문해력을 키우고, 신앙전수도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가르치려면 알아야 하고, 알기 위해서는 공부해야 하고, 공부하기 위해서는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온누리교회가 6월부터 시작한 ‘가스펠 프로젝트’가 정말 좋은 기회다. 가스펠 프로젝트는 온누리교회 모든 성인 예배와 차세대 예배에서 동일한 주제로 설교를 듣고,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가 함께 소그룹 나눔을 실시하는 프로젝트다. 가정에서의 신앙양육을 돕는 최적의 방법이다. 함께 읽고, 나누고, 적용하는 가스펠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해야할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일본 교육 전문가 후지하라 가즈히로가 자신의 저서 <책을 읽는 사람만이 손에 넣는 것>에서 “앞으로는 신분이나 권력, 돈에 의한 ‘계급사회’가 아니라 독서습관이 있는 사람과 독서습관이 없는 사람으로 양분되는 ‘계층사회’가 도래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명심해야 한다. 읽는 것이 곧 힘이다.
<전문가 기고>
책에는 생명력이 있다!
인생과 미래에 대한 답은 ‘성경’에 있다
코로나19 이후 일상의 많은 영역이 비대면 라이프스타일로 바뀌면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정보, 쇼핑, 학습, 취미생활, 커뮤니티까지 삶의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손 안의 PC ‘모바일(스마트폰)’에 애어른 할 것 없이 더욱 몰두하고 있다. ‘모바일 활용능력이 생존능력’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것은 주일예배조차 모바일로 예배 시간을 예약하고, QR코드로 좌석을 확인해야 참석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비대면 사회에서 강화해야 할 습관 중 하나가 ‘책 읽기’라고 생각한다. 책에는 생명력이 있다. 책은 선한 영향력과 나쁜 영향력을 주기 때문에 많은 책을 읽기보다는 좋은 책을 읽어야 한다.
“양서는 처음 읽을 때는 새 친구를 얻은 것 같고, 전에 정독한 책을 다시 읽을 때는 옛 친구를 만나는 것 같다”(골드 스미스).
한 권의 양서(良書)는 삶의 지표를 송두리째 바꿀 수 있을 만큼 영향을 주는 스승이나 친구와도 같다. 그래서 데카르트는 모든 양서를 읽는 것은 지난 몇 세기 동안 걸친 가장 훌륭한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과연 어떤 책을 고를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읽을 것인가?
그렇다면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이 질문에 나는 ‘어떤 책을 고를 것인가’에 대해 먼저 살펴보고 싶다.
예를 들어 과학기술 분야는 최신의 연구서를, 문학에서는 최고(最古)의 책을 읽으라고 했다. 고전(古典)은 말 그대로 오래된 책이지만 늘 새롭다. 해 아래 새 것이 없다(전 1:9)는 말씀같이 문명의 진화와 삶의 혁명 속에서도 타고난 인간의 본성은 크게 변화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책을 고를 때에는 관심 분야, 취미와 관련된 책을 먼저 선택하는 게 좋다. 그것이 순수문학이든, 실용서든, 인문학 서적이든 자신이 하는 일이나 취미에 관련된 분야의 책은 흡인력과 응용력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물론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신앙서적의 경우에도 구원론, 교회론, 삼위일체론 같이 신앙의 기본을 다지는 신학적 내용의 전문서적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결혼 적령기 청년들은 성경적 결혼관이나 직업관을 주제로 한 에세이적 신앙서적이 도움이 된다. 성경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다양한 예를 들어 설명해줌으로써 감정이나 욕심으로 인해 범하기 쉬운 시행착오들을 막아준다.
어떤 주제에 대해 깊이 파고들고자 한다면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도록 관련성 있는 책들을 여러 권 읽는 게 좋다. 신문도 보수와 진보의 사설을 모두 읽으면 균형 잡힌 분석력을 갖출 수 있다.
역사적, 사회문화적 배경이 되는 책을 병행해서 읽으면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도스토예프스키나 톨스토이의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러시아 근대사를 함께 읽을 때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이밖에 같은 주제로 된 책을 동시에 읽어야 할 때는 두꺼운 책은 집이나 사무실에 두고 얇은 책은 출퇴근길이나 등하교 길에 읽는 게 부담이 적다. 하지만 흔들리는 버스 안이나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 안에서 이리저리 부대끼며 책을 읽으면 시력이 저하된다. 이럴 때는 출퇴근 시간을 앞당겨 앉아서 가며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하자. 자가용 운전자라면 오디오북을 활용하면 좋다. 모바일 오디오북 앱이나 유튜브를 통해 귀로 듣는 방법도 나쁘지 않다.
낮 시간대에 도서관이나 집에서 책 읽을 시간을 내지 못한다면 잠자기 전, 소파나 침대 위에서 쿠션을 받치고 30분이라도 읽는 습관을 들여 보자.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독서의 기회가 오지 않을 것이다. 크리스천이라면 아침 큐티나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 성경 읽기가 좋다. TV와 인터넷을 끄지 않는 한 쉽지 않은 일이다. 귀로 듣는 오디오 성경도 좋지만, 아날로그식으로 성경책을 읽고, 깨달음과 적용을 적고, 필사하는 것은 뇌와 영성의 파동에 깊이 새겨질 것이다.
많고 다양한 책을 읽기 위해 정독보다는 속독을 권장하는 속독법 책들이 앞 다퉈 나와 있는데, 저자가 오랜 경험과 탐구, 묵상 끝에 옮긴 글을 속독으로 해치우기보다는 곱씹으며 정독하는 편이 낫다고 본다. 목차대로 읽는 게 지루해서 앞부분 몇 쪽 읽다가 포기하는 것보다는 목차를 보고 끌리는 내용부터 먼저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책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읽은 내용에 대해 누구한테 이야기하거나 간략히 글로 정리해보는 것이다. 베이컨은 “독서는 완성된 사람을 만들고, 담론은 재치 있는 사람을 만들며, 필기는 정확한 사람을 만든다”고 했다.
나는 책을 읽으면 인상적인 문구와 깨달음을 간략하게 메모해둔다. 예전에는 인터넷의 존재가 없었기 때문에 줄거리까지 요약해 책에 끼워놓곤 했는데, 나중에 열어보면 그때 읽었던 내용들이 생각나고 기록 당시의 미숙하고 기특한 가치관에 웃음 짓게 된다.
여고 시절, 문예반 지도선생님이 “책을 험하게 다루라”고 조언하셨다. 교과서보다 몇 배는 어려운 현대문학을 가지고 소설과 희곡, 시와 시조를 공부하며 습작했더랬다. 연필로 밑줄을 긋기도 하고, 때로는 형광펜으로 표시도 하고, 책의 위아래 깃을 접어놓기도 했다. 다음에 읽을 때에는 접어놓았던 부분만 읽어도 전체 내용이 생각나고 도움이 된다.
“아침저녁 읽으시던 어머니의 성경책 손때 남은 구절마다 모습 본 듯합니다”(새찬송가 579).
닳고 낡은 책, 손때가 묻은 책에서는 삶의 연륜이 묻어난다.
성경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초등학생 때 어머니가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 50권을 사주셨다. 그 전집을 여러 차례 읽었는데 그때 품은 세계관과 소양이 살아가는데 자산이 되고 있다. 꿈 많은 소녀시절,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며 경제적 추락을 거듭하는 가운데서도 비참한 현실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았던 것은 독서의 자양분 덕이었다.
대학교 때 처음 주님을 믿고 시작한 큐티는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주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는 훈련이었고, 지금까지 약속의 말씀으로써 영향을 끼치고 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임을 수없이 체험한 것도 청년 시절부터 암기해 온 말씀의 힘이었다. 근래에는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사회 변화에 대한 책을 읽고 있었다면, 최근에는 코로나19 이후 포스트 코로나에 대한 내용의 책을 읽고 공부하며 미래를 대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증오가 바탕이 된 패역의 가치관으로 6백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히틀러도 독서광이었다고 한다. 인간의 죄성은 인간이 쓴 책으로 바뀌지 않는다. 약간의 도움을 줄 뿐이다. 사람이 쓴 책은 불완전하고 한계가 있다. 인생과 미래에 대한 답은 성경에 있다. 세상 만물의 시작과 끝, 죄의 문제와 해결, 인격과 삶의 변화는 성경을 통해 알 수 있고 변화될 수 있다.
스페인 속담에 ‘책과 친구는 수가 적고 좋아야 한다’고 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읽어야 할 책이 성경이라고 생각한다. 안중근 의사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고 했지만, 우리는 하루라도 말씀을 읽지 않으면 죄의 본성이 심령과 입술에 엉겅퀴를 낸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인 성경은 좌우에 날 선 검과 같이 오늘도 우리의 심령과 골수를 쪼개며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깨닫게 하며 생명을 살아나게 한다.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 김수민 권사(동대문중랑공동체, 칼럼니스트, 기업인)
<발문>
“사람이 쓴 책은 불완전하고 한계가 있다.
인생과 미래에 대한 답은 성경에 있다.
세상 만물의 시작과 끝, 죄의 문제와 해결,
인격과 삶은 성경을 통해 알 수 있고, 변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