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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 온전한 소원

 2020-02-16      제12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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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소원


열왕기상 3장 4~15절

/이재훈 목사

 

어떤 소원을 갖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누군가 당신에게 한 가지 소원을 말해보라고 한다면 어떤 소원을 말하고 싶습니까? 우리의 삶을 건강하게 변화시키는 소원입니까? 아니면 우리 삶을 변질시키는 소원입니까?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하나님께서는 깊은 뜻을 이루실 때 우리 안에 소원을 심어 주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심어주신 소원을 무시하고, 외면하고, 자기 자신이 만든 소원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자유의지입니다. 소원은 자유의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자유의지는 스스로 소원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억지로 변화시킬 수 없는 이유가 자유의지 때문입니다. 거룩한 삶,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삶은 반드시 우리 안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소원이 형성되고, 그 소원이 열매 맺어야만 일어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영적 생활의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는 자신의 소원을 계속 점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이 나의 소원인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슬퍼하시는 뜻이 나의 소원인지를 민감하게 점검해야 합니다.

 

솔로몬의 온전한 소원
       

“왕은 제물을 드리러 기브온으로 갔습니다. 그곳에 큰 산당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그 제단에서 1,000마리 짐승을 번제물로 드렸습니다. 여호와께서 밤중에 기브온에서 솔로몬의 꿈속에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구하여라. 내가 네게 무엇을 주랴?’ 하고 말씀하셨습니다”(왕상 3:4~5).
솔로몬이 드린 1천 번제란 1,000마리 짐승을 제물로 드린 국가적 번제입니다. 솔로몬은 무엇인가를 바라고 1천 번제를 드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신 것은 솔로몬에게 필요한 것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먼저 찾아오셔서 함께 해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솔로몬에게만이 아니라 저와 여러분에게도 언제나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저는 한 번도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찾아오시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내가 듣지 않으려 했고, 보지 않으려 했고, 나의 생각과 욕심에 사로잡혀 있기에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지 못한 것뿐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삶 속에 찾아오십니다. 솔로몬처럼 꿈으로도 찾아오시지만 예기치 않은 만남과 사건, 받아들이기 힘든 문제와 질병, 재난을 통해서도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질문으로 찾아오셨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에는 수많은 하나님의 질문들이 나옵니다. 아담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라는 질문부터 시작해서 마음의 소원을 잃어버린 병자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질문하신 예수님까지 끊임없이 우리에게 질문으로 찾아오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정말 내가 무엇을 원하고, 나의 소원이 무엇인지를 묵상하고 되새겨 봄으로써 우리의 자유의지를 변화시키려는 하나님의 동기부여입니다. 왜냐하면 정말 나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품었던 소원조차 때로는 필요하지 않은 것일 뿐만 아니라 우리 삶을 무너뜨릴 수 있는 소원일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우리가 많은 것을 바라고 구하지만, 정말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구하고 있는지, 내 마음속에 가득한 많은 소원들이 나에게 꼭 필요한 소원인지를 우리 자신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소원을 구하도록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질문 앞에 솔로몬이 응답하는 모습은 적어도 이때만큼은 온 맘 다해 하나님만 사랑한 것이 분명합니다. “온 맘 다해 하나님만 사랑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이기적인 요구가 아닙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가장 행복해질 수 있는 축복된 삶을 살 수 있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올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온 맘 다해 하나님만 사랑하는 영혼에게 하나님은 음성을 생생하게 들려주시며, 그에게 있어야 할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것을 채워주십니다. 솔로몬의 응답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오직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너희에게 더해 주실 것이다”(마 6:33)라는 말씀 그대로의 응답입니다. 솔로몬의 소원은 예수님의 이 말씀이 이루어지는 소원이었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할 뿐만 아니라 ‘오직’이라는 단어가 덧붙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할 뿐만 아니라 ‘오직’ 구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온전한 소원입니다. 오직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은총에 대한 감사

 

첫째, 솔로몬이 소원을 구하는 동기가 ‘하나님의 은총’이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응답할 때 자신의 소원 내용을 말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은총을 감사하며 고백했습니다. 
“솔로몬이 대답했습니다. ‘주께서는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에게 큰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가 주께 충성스러우며 의롭고 정직했기 때문입니다. 또 계속해서 이 큰 은총을 베풀어 오늘과 같이 그 왕위에 앉을 아들을 그에게 주셨습니다’”(6절).
6절에서 두 번 반복되는 단어가 ‘큰 은총’입니다. 히브리어로는 ‘헤세드’입니다. 우리말로는 은총이라고 번역하기도 하고, 인내, 은혜, 사랑이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 다양한 단어로 번역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의미가 매우 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을 지키시는 신실한 사랑, 성실한 사랑, 인간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배역할지라도 버리지 않는 사랑, 구약 호세아서에서 음란한 아내가 끊임없이 자기를 버리고 떠나도 버리지 않는 호세아의 사랑이 바로 헤세드입니다. 영어로는 더 다양하게 번역합니다. NIV에서는 ‘실패하지 않는 사랑’(unfailing love)이라고 하고, 또 다른 번역에서는 ‘견고한 사랑, 무너지지 않는 사랑’(steadfast love)라고 합니다. 신실한 사랑, 성실한 사랑, 포기하지 않는 사랑, 버리지 않는 사랑 등 다양한 의미로 번역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단어가 ‘헤세드’입니다. 솔로몬이 자신의 소원을 말하는 동기, 자신의 소원의 내용을 말하기 전에 자신의 아버지 다윗과 함께 하신 헤세드가 나에게도 주어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가 흘러넘치고 있다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소원을 이루는 동기가 하나님의 헤세드에 대한 감사일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온전한 소원이 됩니다. 빌립보서 4장 6~7절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여러분이 구할 것을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아뢰십시오”라고 하신 것은 모든 소원과 기도의 밑바닥에 흐르는 마음의 동기가 하나님의 헤세드에 대한 감사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자신이 왕이 된 것이 자신의 탁월함 때문이 아니라 아버지 다윗에게 함께 하신 하나님의 헤세드가 자신에게도 이어지고 있다는 은총에 대한 감사라는 것입니다. 이 시대는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감사를 잃어버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조상들의 헌신과 기도와 피 땀 흘린 헌신으로 받은 무조건적인 은혜에 대한 감사를 잃어버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쟁의 잿더미에서 이 나라를 일으키고, 믿음의 조상들이 새벽마다, 철야하며, 기도로 이 나라와 민족을 일구었던 것에 대한 감사를 통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헤세드에 대한 감사가 사라진다면 그 소원은 매우 위험한 소원이 될 수 있습니다. 부모님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헤세드에 대한 감사를 잃어버린 자녀라면  결코 복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솔로몬에게는 은총에 대한 감사가 가득했습니다. 이것이 그의 소원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온전한 소원이 되었던 첫 번째 이유입니다.

 

겸손은 인정하는 것
 

둘째, 솔로몬이 소원을 구하는 태도가 겸손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자신이 왕으로서 판단력을 아직 갖추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정직하게 인정합니다. 이것이 겸손입니다. 
“내 하나님 여호와여, 이제 주께서 제 아버지 다윗을 대신해 주의 종을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나 아직 저는 나이가 어리고 어떻게 제 임무를 수행해야 할지 모릅니다”(7절).
솔로몬은 자신을 종이라고 고백했고, 나이가 어리다고 표현했습니다. 자신을 왕이라고 하지 않고 종이라고 했습니다. 이때 솔로몬의 나이가 20대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어린 나이가 아니라 젊은 나이입니다. 왕의 리더십을 발휘하기에는 경험과 지혜가 부족한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겸손입니다. 겸손은 인정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사실을 사실대로 받아들이고, 상황을 상황대로 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겸손입니다. 교만은 정반대입니다.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왜곡합니다.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자기기만에 빠지는 것입니다. 자신의 소원과 야망을 구별하지 못합니다. 자신을 속이는 삶을 살게 됩니다. 소원이 교만을 만나면 욕망이 됩니다. 그러나 소원이 겸손을 만나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통로가 됩니다. 솔로몬은 겸손하게 소원을 구했습니다. 솔로몬의 겸손이 우리에게 있어야 하나님의 은혜를 계속 누릴 수 있습니다. 이 시대 이 나라와 민족의 위기는 그 밑바닥에 교만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가난은 이겼습니다. 그러나 부유함은 이기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재난은 이겼습니다. 그러나 평화는 이기지 못했습니다. 겸손을 잃어버릴 때 우리 자신을 속이고, 능력이 많은 것처럼 교만해질 때 우리의 소원은 타락하는 것입니다.

 

사명에 필요한 분별의 지혜

 

셋째, 솔로몬의 소원의 내용이 자신의 사명을 이루는 데 가장 필요한 분별의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주의 종이 여기 주께서 선택하신 백성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의 큰 백성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니 주의 종에게 옳고 그름을 가려내는 마음을 주셔서 주의 백성들을 잘 다스리고 선악을 분별하게 해 주십시오.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들을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8~9절).
솔로몬이 구한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고, 분별하고, 순종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 ‘듣는 마음’을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듣고 순종하려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주의 뜻을 행하고자 하면 주의 뜻이 깨달아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분별의 지혜는 경험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인생의 경험이 많을수록 지혜가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분별의 지혜는 단지 오래 살았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경험이 아닙니다. 학습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물, 곧 성령의 은사로 주어지는 지혜입니다. 세상의 많은 지식은 경험을 통해 축적됩니다. 그래서 전문가가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지식과 기술에는 전문적인 기술과 지식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전문가가 없습니다. 솔로몬이 지혜를 받았지만 한순간 교만에 빠지면 지혜는 없어지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의지하는 겸손한 자만이 계속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믿음에 있어서는 전문가가 없습니다. 끊임없이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솔로몬이 20대에 받은 지혜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사로 주어진 것입니다. 요셉의 은사가 그랬고, 다니엘의 은사가 그랬습니다. 요셉이 꿈을 해석하고, 다니엘이 환상을 해석할 수 있었던 것은 성령의 특별한 은사로 주어진 분별의 지혜입니다. 솔로몬에게도 분별의 지혜가 주어졌습니다. 왜 그들에게 분별의 지혜를 주셨습니까? 자신의 야망과 욕심을 위해 구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도 오직 하나님만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의 은총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오직 한 가지를 구하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은 분별의 지혜를 주십니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오직 한 가지만 구하라고 하시지 않았지만 솔로몬은 오직 한 가지만 구했다는 것입니다. 다른 소원은 감추어두고 우선 구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한 가지만 구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소원을 기뻐하신 이유입니다. ‘오직’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한 소원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소원을 기뻐하셨고, 축복하셨고, 그가 구하지 않은 것을 더해 주셨습니다.
“솔로몬이 이렇게 구하자 주께서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이것을 구했구나. 너 자신을 위해 장수나 재산을 구하지 않고 네 원수들의 목숨도 구하지 않고 판결할 때 필요한 분별의 지혜를 구했으니 내가 네가 구한 대로 할 것이다. 내가 네게 지혜롭게 분별하는 마음을 줄 것이다. 전에도 너와 같은 사람이 없었고 네 이후에도 너와 같은 사람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네가 구하지 않은 것, 곧 부와 명예도 내가 네게 주겠다. 그러면 네 평생에 왕들 가운데서 너와 같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또 네가 만약 네 아버지 다윗이 한 것처럼 내 길을 걷고 내 규례와 명령을 지키면 네가 장수하게 될 것이다”(10~14절).
솔로몬은 많은 사람들이 구하는 것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고대 왕들이 자신들에게 필요했던 정적을 제거하는 것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솔로몬의 소원은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단 한 자기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에 필요한 분별의 지혜입니다. 솔로몬이 분별의 지혜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았기에 잠언이 나왔습니다. 오늘 이 시대 분별의 지혜를 붙잡는 자가 과연 있는지, 제 자신도 돌아보며 깊은 반성을 하게 됩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뜻을 섬기고, 순종하려는 소원 속에 분별의 지혜를 구했습니다. 흔히 위치가 사람을 만든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떤 소원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정반대가 될 수 있습니다. 위치가 사람을 만들 수도 있지만, 위치가 사람을 망가뜨릴 수도 있습니다. 많은 지도자들이 타락하는 이유가  위치가 자신을 만들고, 안전하게 보장한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분별의 지혜가 없는 것입니다. 겸손하게 지혜를 구하는 영혼이 아니라면 그 위치가 그를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에게는 왕이 된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이라는 감사와 자신은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겸손이 있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기에 필요한 분별의 지혜를 구했습니다. 이것이 이 시대에 필요합니다. 특별히 지도자들에게 필요합니다.
솔로몬의 사례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분별의 지혜는 머리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IQ의 문제가 아니라 영성의 문제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특별히 자녀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분별의 지혜가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솔로몬은 자신의 경험에 기초하여 잠언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한 분을 아는 것이 슬기의 근본이다(잠 9:10).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온 맘 다해 하나님만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온 맘 다해 하나님만 사랑하는 사람은 그 소원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소원일 수밖에 없습니다. 오직 먼저 하나님 나라와 의를 소원으로 구하면 하나님께서 분별의 지혜를 더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분별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 나라와 민족의 미래를 위해서도 분별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소명을 이루기 위해서도 분별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 특별한 성령의 은사가 온누리교회 모든 성도들과 자녀들에게 부어지기를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작성자   홍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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