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 신문 - [주일 강단] 하나님의 노크(Kn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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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강단] 하나님의 노크(Knock) 

 2024-06-22      제149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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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노크(Knock) 
 
<사도행전> 12:1~17
/ 이재훈 위임목사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행적만을 다룬 책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신 큰 구원의 역사를 성령님이 온 세상에 전파하는 기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복음을 세상에 증거하기 시작했을 때  복음을 대적하고, 복음을 전하는 이들을 핍박하는 일들이 동시에 일어났습니다. 그 핍박과 박해,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하고 계심을 친히 보여 주셨습니다. <사도행전> 12장에도 예루살렘교회에서 일어난 핍박 가운데 하나님이 그들과 어떻게 함께 하시는지를 보여 주는 귀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 분봉 왕이었던 헤롯 아그립바 1세가 유대인들의 마음을 얻으려고 예루살렘교회 지도자들을 핍박했습니다. 그가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면서까지 유대 사람들의 환심을 사려는 이유는 로마 제국의 지지를 받고자 함이었습니다. 로마가 통치하는 모든 피지배 민족들 가운데 어떠한 분란이나 소동 없이 평안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소수의 반란이나 소동, 다수를 따르지 않는 이들이 나타나면 가차 없이 제거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유대 사람들이 불편해 하고 싫어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을 제거함으로써 다수 유대인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목적으로 초대교회 지도자들을 핍박했습니다. 이 무지막지한 생각에 의해서 야고보가 처형 됐습니다. 아주 단순하게 ‘처형되었다’고 기록되었지만, 어떤 공정한 절차와 이유 없이 표적이 돼 살해된 것입니다. 성경의 유일하게 나오는 사도의 죽음입니다. 베드로와 바울, 기타 사도들의 순교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내려오지만, 성경에 기록된 사도의 순교는 야고보가 유일합니다. 
야고보는 ‘우레의 아들’이라고 별명이 붙여진 제자입니다. 그의 형제 요한과 더불어 “예수님이 영광스럽게 되실 때 좌우편에 앉게 해 달라”고 요청해서 책망을 받기도 했지만,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중요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야고보를 ‘칼로 죽였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이 선호하는 방식으로 사형을 집행했다는 것입니다. 이 또한 유대인들의 마음을 사고자 한 것입니다. 로마인들은 십자가형을 선호했지만, 유대인들은 칼로 죽이는 방법을 선호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다수의 유대인들을 기쁘게 하려는 정치적인 목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야고보를 죽였더니 유대인들이 기뻐하고, 지지를 표명했습니다. 우쭐한 헤롯이 예전에 산헤드린공회와 부딪힌 적이 있었던 베드로를 다음 표적으로 삼았습니다. 
 
야고보의 죽음과
감옥에 갇히는 베드로
 
무교절은 유월절이 끝난 다음날 시작되는 일주일입니다. 유월절은 하루 저녁입니다. 유월절 그 다음날부터 한 주간이 무교절이기 때문에 넓은 의미에서는 유월절과 무교절이 서로 붙어 있습니다. 그때 많은 유대인들이 모입니다. 이 기간을 선택한 이유는 더 많은 유대인들에게 더 큰 화젯거리를 만들려는 것입니다. 헤롯 아그립바가 베드로를 처형하면 유대인들에게 더 많은 지지를 얻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이 기간을 선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야고보가 갑작스럽게 죽임을 당했을 때 성도들이 큰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는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죽음은 하나님의 버리심이 결코 아닙니다. 때로 갑작스런 사고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가 죽게 되었을 때,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나 버리심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며 경외하는 자를 가장 아름다운 때에 부르시는 것입니다. 갑작스러운 부르심은 도리어 하나님이 강하게 끌어당기시는 부르심이라고 해석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야고보의 죽음이 성도들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베드로마저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이 또한 충격과 두려움을 가져다줬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현실이자 실제, 역사
 
베드로가 감옥에 갇힌 것은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첫 번째는 <사도행전> 4장에서 전도하다 하룻밤 갇혔던 때가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사도행전> 5장에서 산헤드린공회원들의 미움과 시기를 받아서 감옥에 갇혔습니다. 세 번째 갇힌 것은 성격이 다릅니다. 앞서 두 번 감옥에 갇힐 때는 산헤드린 공회가 주도했고, 공회 나름대로 의견을 피력하고, 변호할 기회도 줬습니다. 산헤드린공회가 베드로를 잡아 가둔 것은 위협하고, 협박하는 목적이었지 그를 죽이기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감옥에 갇힌 것은 야고보를 갑자기 죽인 것처럼, 베드로를 죽이려는 것입니다. 헤롯 아그립바의 정치적인 야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베드로가 죽음을 앞두고 감옥에 갇혀 있는 것입니다. 두 개의 쇠사슬에 묶인 채 두 명의 군인들 사이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베드로가 잠들어 있었습니다. 물론 피곤해서 잤겠지만, 이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평강을 체험하고 있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 뒤에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힙니다. 그들도 감옥에서 찬양을 했습니다. 그들 또한 평안 가운데 감옥에 있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이 상황에서 담대함과 평안 가운데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 때 갑자기 주의 천사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옆구리를 찔러 깨웠습니다. 저는 천사가 나타나서 베드로의 옆구리를 찌르는 것이 하나님의 노크로 보여졌습니다. 하나님이 지금 베드로와 함께 하시고, 성도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려주는 위로의 노크라고 해석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고난 가운데 있는 성도들을 결코 버리지 않으십니다. 특히 예수님의 지상명령에 순종하는 이들 가운데, 박해 속에서도 함께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려주시는 하나님의 노크입니다. 
“하나님, 곧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자비의 아버지, 모든 위로의 하나님께서는 찬양받으실 분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 우리를 위로하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 인해 우리도 환난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치는 것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를 통해서 넘칩니다”(고후 1:3~5). 
넘치는 환란 가운데 있는 베드로와 성도들을 천사를 통해 깨우시며 하나님의 위로의 노크를 주고 계십니다. 천사가 베드로의 사슬을 풀고 감옥 밖으로 나오게 인도해 주었습니다. 베드로는 환상인 줄 알았습니다. 실제라고 하기에는 너무 엄청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문 밖에 나와 거리를 지나고, 천사가 떠난 이후에야 비로소 하나님이 자신을 감옥 밖으로 인도해 주셨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경험하는 하나님의 구원, 하나님의 역사는 엄청난 일이기 때문에 때로 ‘과연 사실일까?’ 믿어지지 않기도 합니다. 환상처럼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은 환상이 아니라 현실이자 실제,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하는 ‘기도의 노크’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은 감옥에 갇힌 베드로를 위해 함께 기도하려고 모였습니다.  
“이렇게 베드로는 감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5절). 
“이 사실을 깨달은 후 그는 마가라고도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으로 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모여 기도하고 있었습니다”(12절). 
그들이 함께 모여 베드로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위기 속에 있는 성도들의 유일한 무기입니다. 아마 베드로가 야고보처럼 희생되지 않기를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마가라고도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모여 함께 기도했습니다. 그들이 모인 장소는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후 오순절이 임하기까지 열흘 동안 열두 제자들이 거주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마가라고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마가의 집이기도 하고, 마리아의 집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는 큰 집이었기에 성도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성도가 함께 모여 기도하는 집, 얼마나 아름다운 성도의 섬김입니까? 
‘마리아의 집’을 떠올리면서 생각난 분이 지금은 천국에 계신 故 이상자 권사님입니다. 이상자 권사님은 한남동의 집을 선교사님들을 위한 중보기도 장소로 제공하셨습니다. 선교사님들을 파송하거나 돌아왔을 때 언제나 식사 대접을 하고, 기도모임을 정기적으로 하는 것을 소명으로 생각하셨습니다. 혼자 계시기 때문에 큰 집이 필요 없고, 관리도 힘들고, 아파트로 이사를 가시는 게 맞는데 선교사님을 위한 기도모임 때문에 이사하지 않으시고 돌아가실 때까지 그 집에서 섬기셨습니다. 마리아의 집이 바로 그 장소였습니다.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함께 모여 있었다는 것은 아마 그 집에서 많은 성도들이 함께 숙식하며 기도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감옥에서 나온 베드로가 문을 두드렸을 때 여종이 바깥 현관까지 나와 문을 열어줬습니다. 현관과 뜰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함께 모여 베드로를 위해 하는 기도를 저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하는 기도의 노크’라고 해석합니다.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기에 우리가 기도로 하나님을 깨워드린다는 뜻이 아닙니다. 도리어 기도란 위기를 통해 우리를 깨우시는 하나님의 노크입니다. 우리가 기도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많아지시는 게 아닙니다. 기도할 때 우리가 더 능력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란 위기 때 성도들을 깨우시는 하나님의 노크입니다. 야고보의 순교와 베드로의 투옥이라는 위기가 없었다면 성도들이 함께 모여 늦은 밤 간절히 기도했을 이유가 없습니다. 위기와 고난은 기도로 우리를 깨우는 하나님의 노크입니다. 성도들이 베드로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을 때 하나님이 능력을 베푸셨고, 믿음의 성도들이 함께 기도할 때 기적을 허락하셨습니다. 감옥 문이 열리고, 모든 사슬이  풀어졌습니다. 
 
베드로의 노크, 
하나님의 구원 알리는 ‘전도의 노크’
 
감옥에서 천사의 도움으로 풀려난 베드로가 마리아의 집에 모여 있는 성도들을 찾아갔습니다. 베드로가 성도들이 함께 모여 있는 마리아의 집을 노크할 때 그 마음이 얼마나 설레고, 떨리고, 감격했겠습니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고,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성도들이 있는 곳에 가서 문을 두드릴 때 얼마나 설렜겠습니까? 여종이 베드로의 목소리를 금방 알아차리고 너무 기뻐서 문을 열어주는 것도 잊어버린 채 성도들에게 “베드로가 돌아오셨어요”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때 성도들이 여종에게 “너 미쳤구나”라고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베드로를 구해달라고 기도했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기도가 응답되어서 베드로가 돌아왔는데 “너 미쳤구나”라고 말합니다.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입니까? 베드로는 밖에서 계속 문을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20여 년 전 병원심방을 갔습니다. 어르신이 열이 떨어지지 않고, 약을 먹어도 회복이 되지 않아서 심방을 갔습니다. 기도해 드렸습니다. 목회자로서 당연히 요청이 있으면 기도를 해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제가 심방을 마친 뒤에 연락이 왔습니다. 제가 기도하고 난 뒤에 열이 내렸다는 것입니다. 너무 기뻐하시는데 그때 제가 했던 생각이 ‘해열제가 늦게 작동했나?’입니다. 정작 제 자신이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분명 열 내리기를 기도했고, 그것이 응답되었다는 고백을 기도한 제가 믿지 못한 것입니다. 마리아의 집에 모인 성도들이 그랬습니다. 간절히 진실로 기도했고, 그 응답으로 하나님이 역사하셨는데, 그 소식을 전하는 여종에게 “미쳤다”고 하고 문을 안 열어 주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계속 문을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베드로의 노크는 하나님의 살아 계신 역사, 하나님의 구원을 알리는 전도의 노크라고 해석됩니다. 베드로는 세 번 갇혔지만, 세 번 모두 감옥에서 나왔고 승리했습니다. 그런데 야고보는 순교했습니다. 부르심이 다른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담대한 순교로 승리를 전하고, 어떤 이들은 계속 살아남아 승리의 복음을 전합니다.
 
하나님 사랑하고, 경외하며, 
복음 전하는 일이 우리의 사명

 
베드로가 깜짝 놀라는 성도들을 조용히 하도록 했습니다. 자신이 감옥에서 나온 것보다 중요한 게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을 조용히 하도록 하고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들을 전하며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알려주라고 하고 다른 곳으로 떠났습니다. 여기서 야고보에게 전하라는 것은 앞서 순교한 야고보가 아니라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입니다.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는 이 사건 이후 예루살렘교회의 중요한 지도자가 됩니다. 베드로가 다른 곳으로 떠나야 했기에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예루살렘교회의 중요한 역할을 맡겨 둔 것입니다. <사도행전> 15장 이후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가 예루살렘교회의 중요한 지도자로 부각됩니다. 베드로가 인수인계를 한 것입니다. 리더십을 이양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 ‘다른 곳’이란 헤롯 아그립바를 피해 죽지 않을 곳에 숨어있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른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겠다는 뜻입니다. 베드로의 부르심은 또 다른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기에 이제 야고보를 중심으로 공동체를 계속 이어가야 한다고 권면한 것입니다. 
베드로가 1~2년 뒤 안디옥에 나타났다가 첫 번째 공의회에 참여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돌아올 때까지 예루살렘교회의 리더십이 교체된 것입니다. 야고보는 순교했고, 베드로가 떠났지만, 예루살렘교회는 새로운 리더십에 의해 공동체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어느 한 두 사람의 지도자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예루살렘 밖에서 사역하겠지만, 예루살렘교회는 여전히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를 비롯한 또 다른 리더십에 의해 이끌어져 갔습니다. 이것이 교회가 사람에 의존되지 않고, 말씀과 성령에 의존되는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만일 감옥에서 풀려나지 못했을지라도 여전히 그리스도의 담대한 증인으로 생을 마쳤을 것입니다. 어쩌면 야고보가 그렇게 순교했을 것입니다. 또 성도들이 베드로만 위해서 기도한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야고보에 대해서도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기도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에 대한 기도는 응답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야고보는 미워하시고, 베드로는 사랑하셔서 그렇게 하신 것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권적인 뜻을 따라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기도 하고, 다르게 응답하심으로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복음을 전하는 일에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핍박과 박해 가운데 있는 예루살렘 성도들에게 하나님이 천사를 통해 노크하시고, 성도들의 기도를 통해 깨우시고, 또 다른 곳에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이 노크가 <사도행전>에서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에 기쁨으로 참여하기를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작성자   김다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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