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출 수 없는 하나님 나라
사도행전 28:16~31
/이재훈 위임목사
“바울은 만 2년 동안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신에게 찾아오는 모든 사람을 맞아들여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고 담대하게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을 가르쳤습니다”(30~31절).
바울은 찾아오는 사람들만 만날 수 있는 매우 제한적이고 수동적인 상태에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증언하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을 가르칩니다. 바울이 로마에서 두 번 갇힙니다. 오늘 본문이 첫 번째 갇힌 것인데, ‘자택 연금’ 수준입니다. 비교적 자유로운 상태입니다. 그러나 1차, 2차, 3차 선교 여행 때 많은 지역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모습은 아닙니다. 찾아오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가르칠 수 있을 뿐입니다. 매우 조용한 말씀 사역으로 <사도행전>이 끝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용한 말씀 사역이 로마 제국을 뒤집는 역사의 통로가 되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도행전>은 바울에 대한 위인전이 아닙니다. <사도행전> 마지막 순간 초첨이 바울에서 하나님 나라로 옮겨 가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또한 과거의 책이 아니라 미래를 향해 열려 있는 책입니다. 우리가 그 역사에 참여하도록 초대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서문은 있지만, 결론이 없습니다. 미완성같이 끝납니다. 바울이 쓴 모든 서신서를 보면 서론과 결론이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당시 모든 글이 그랬습니다. 누가가 그것을 몰랐을 리 없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은 바울이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증언하고, 찾아오는 이들을 가르치는 진행형으로 끝납니다. 이 시대 교회들이 <사도행전>의 주인공이요, 갇힌 상태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하나님 나라에 대해 증언했던 사도 바울처럼 우리를 <사도행전> 주인공으로 초대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Acts29’ 비전이 나오고, 이 비전은 변하지 말아야 할 닻과 같이 내려져야 하는 온누리교회의 비전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어떠한 방해에도
결코 멈추지 않는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담대한 증인으로 쓰임받기 위해서 기억해야 할 하나님의 나라의 중요한 메시지들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 나라는 어떠한 방해에도 결코 멈추지 않습니다. 본문 31절에서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다’고 합니다. 바울의 인간 승리를 말씀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어떠한 방해도 멈추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 어떤 권세도 하나님 나라를 가로막을 수 없습니다. 유대 지도자들과 로마의 권력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을 수없이 핍박해도 하나님 나라는 멈추지 않습니다. <사도행전>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란, 파키스탄, 중국, 이슬람 지역에 있는 여러 지도자의 고백이 동일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그 어떤 세상 권세가 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방해가 심하면 심할수록 하나님 나라의 역사가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복음을 전하려고 하면 얼마나 많은 방해가 있는지 모릅니다. 이슬람 세력도,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독재 국가에서도 기독교를 핍박하는 수많은 세력이 역사 속에 있었지만, 어떠한 방해에도 하나님 나라를 멈출 수 없었습니다. <사도행전> 전체에서 보여주고 있는 진리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말씀의 증거가 계속 승리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는 말씀 그 자체가 살아있는 인격적인 능력의 존재로써 계속 퍼져 나갔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우리를 통해서 전해지는 것입니다.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말씀이 멈추지 않고 퍼져 나갔습니다, 지금도 온 세상에 퍼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섭리로
결코 멈추지 않습니다
둘째,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위대한 섭리로 결코 멈추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그분이 이루어 가시며 섭리하십니다. 역사를 사람들이 써 가는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 역사는 하나님이 쓰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통치하시고, 섭리하고 계십니다. “바울이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다”는 것은 그의 위대함을 설명하는 게 아닙니다. 바울의 담대함은 하나님이 모든 상황에서 복음이 증거되기 위하여 섭리하고 계시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나온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그분의 뜻을 따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해 선을 이루는 줄을 알기 때문입니다”(롬 8:28).
담대함은 넓은 시야에서 옵니다. 숲에 들어간 사람이 지도가 없으면 두려워합니다. 어디로 갈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숲에 들어가도 담대한 사람은 지도를 볼 줄 알기 때문입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담대할 수 있습니다. 지도를 보면 길이 보입니다. 이것을 영적 생활에 적용해 보면 지도는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실지 우리가 아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이 섭리하시고, 모든 일을 통하여 역사를 이루신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앞길도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이 섭리하고 계신다는 믿음이 지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지도입니다. 성령님이 우리의 지도입니다. 그분을 따라갈 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형제들이여, 내가 당한 일이 오히려 복음의 진보를 가져온 사실을 여러분이 알기 바랍니다”(빌 1:12).
“내가 이렇게 사슬에 매인 것이 온 친위대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분명히 드러나게 돼”(빌 1:15).
바울이 갇히면서 로마의 최고 지도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고, 당시 세계의 중심인 로마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영적 지도를 볼 수 있는 눈입니다. 그가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섭리가 여전히 역사하고 계심을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옥중서신을 썼지 않습니까?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가 그것입니다. 이 복음서가 없었다면, 특히 <에베소서>가 없었다면 우리가 복음과 교회의 관계를 깊이 깨달을 수 있었겠습니까? <골로새서>가 없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이, 만왕의 왕이신 그분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의 위대한 섭리는 바울을 로마까지 이끌 뿐만 아니라 그가 로마에 갇힌 기간에 하나님이 행하신 놀랍고 위대한 섭리와 구원 계획을 이루시고, 그 일들을 기록으로 남김으로써 중요한 영적 진리들을 나누게 했습니다. 바울만이 아닙니다. 마틴 루터도 로마 교황청의 압박에 시달리면서 보름스의회에 불려가 종교 재판을 받고, 비텐베르크로 돌아오는 여정이 있었습니다. 언제 암살당할지 모르는 위기에 처한 상태였습니다. 루터는 독일에서 숨을 곳이 없는 상황에 있었습니다. 그것을 안 비텐베르크의 선제후 프리드리히가 루터를 살리기 위해서 납치극을 꾸밉니다. 자신이 신뢰하는 부하들을 시켜서 보름스에서 비텐베르크로 돌아오는 길에 무장 강도로 위장해서 루터를 납치합니다. 산꼭대기에 있는 바르트부르크 성으로 루터를 납치합니다. 루터가 납치를 당했고, 그가 어디선가 살해당했다는 소문이 났습니다. 루터에 대한 관심을 로마교황청으로부터 끊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곳에 10개월 동안 가둡니다. 프리드리히가 루터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를 살리기 위해서 가둔 것입니다. 이 기간 루터가 많은 책을 씁니다. 가장 큰 업적은 헬라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신약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했습니다. 당시 교회에서는 사제들이 라틴어로 예배를 인도하기 때문에 성도들은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그냥 있었습니다. 사제조차 헬라어 성경을 거꾸로 들고 읽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루터의 납치극으로 모든 독일 국민이 성경을 읽게 됐습니다. 이 사건이 없었더라면 종교 개혁은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 독일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면서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루터가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이 어떤 섭리를 행하고 계신지를 우리가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능력으로 인해서
결코 멈춰지지 않습니다!
셋째,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완전한 능력으로 인해서 결코 멈춰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바울이 탄 배를 폭풍 속에서 지켜 주시고, 몰타섬에서 독사에 물려도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도록 하신 것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 증거를 위해 그분의 능력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바울을 대적하는 것은 사단의 세력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한 것이고, 하나님의 섭리를 훼방한 것이고, 하나님의 능력을 대적한 것입니다. 역사에 하나님 구원의 역사를 방해하고 대적하는 세력들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바로를 통해 모세를 제거하려 했고, 헤롯을 통해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고, 하만을 통해 유대인들을 전멸시키려고 했고, 산헤드린 공회를 통해 사도들을 무너뜨리려고 했고, 바울을 제거함으로 복음의 확산을 막으려고 했습니다. 끊임없이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는 세력들이 일어나지만, 하나님이 그때마다 대반전의 역사를 일으키셨습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멈춰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사도행전> 28장은 하나님이 바울을 의지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가장 유능해 보이는 일꾼에 기대어 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바울이 약할 때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완벽하지 않은 상황을 통해서도, 우리 연약함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능력이 계속 나타납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들은 완전한 이들이 아닙니다. 미완성의 사람들입니다. 도리어 영적인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미완성이라는 것을 압니다. 교만한 사람, 하나님이 쓰시지 않는 사람은 자신이 완전하다고 착각합니다. 예수님은 완벽한 사람을 찾으시지 않고,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의지하는 이들을 찾으십니다. 성령 충만은 하나님의 전적인 능력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어떤 방해도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지금도 계속 퍼져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완전하신 능력으로 퍼져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향해 나가지 않을 때 쇠퇴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의 관심이 하나님 나라가 아닐 때 존재 목적이 합당하지 않기 때문에 쇠퇴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갈등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초점을 갖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하나님 나라 통로가 되기로 작정할 때 위기가 기회가 되고, 연약함이 능력이 되고, 우리의 미완성과 부족함이 하나님의 완전하신 능력의 통로가 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