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끝에 선 증인들
<요한계시록> 10:1~11, 11:15~19
/이재훈 위임목사
세상에서 진리를 말하는 것은 어렵고, 위험한 일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진리를 들으려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때로 진리를 말하는 사람이 죽임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들으려 하지 않는 진리는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최후의 심판이 있을 것이며, 그 기준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여부로 영원한 운명이 결정된다는 진리를 사람들은 거부합니다. 1세기 말에는 순교자가 없는 그리스도인의 가정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가 구세주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경배 받으셔야 된다는 진리를 증거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요구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마지막 심판이 임하기 전에 더 많은 영혼이 진리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구원받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는 사람들만 구원하고, 반역자들은 처벌하는 것으로 도래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먼저 받아들인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순교적 증언을 통해, 반역하는 사람들까지도 회개하고 구원받도록 역사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심판이 임하기 전에 진리를 증거하도록 증인들을 부르시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0장과 11장은 그리스도인들이 반역한 세상을 향해 증거할 때 일어날 일들을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10장은 사도 요한을 증인으로 다시 세우셔서 진리를 증거하도록 격려하는 내용입니다. 11장은 두 증인으로 상징되는 교회 공동체에게 권세를 주셔서 진리를 증거하도록 격려하는 내용입니다.
요한, 다시 증인으로
<요한계시록> 10장에 나타난 환상은 밧모섬에 유배되어 게시의 말씀을 듣는 요한이 다시 증인으로 세움을 받는 것입니다. 요한에게 많은 백성과 나라와 언어와 왕들에게 진리를 증거하는 소명을 주셨습니다. 요한이 강한 천사가 구름과 함께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봤습니다. 머리 위에는 무지개가 있고, 얼굴은 해 같으며 다리는 불타는 기둥 같았습니다. 그의 오른발은 바다를 딛고 있고, 왼발은 땅을 딛고 있었습니다. 그의 손에는 작은 책 하나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천사의 웅장한 모습입니다. 작은 책 하나가 펼쳐져 있는데 그것은 <요한계시록> 5장에 나온 어린 양이 인봉을 떼는 바로 그 책을 의미합니다. 섬에 유배되어서 사람을 만날 수도 없고 위축되어 있으며 단념한 요한에게 “다시 세상을 향하여 진리를 증거할 수 있다”는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부르고 계시고, 모든 역사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입니다. 이 강한 천사가 말씀해준 내용은 순교자들이 던져왔던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이기도 합니다.
“그때 내가 본 바다와 땅을 딛고 서 있던 천사가 하늘을 향해 오른손을 들고 하늘과 그 안에 있는 것들과 땅과 그 안에 있는 것들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것들을 창조하신 영원토록 살아 계신 분을 두고 맹세했습니다. ‘더 지체하지 않을 것이다. 일곱 번째 천사가 나팔을 불어 소리 내는 날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분이 그분의 종들, 곧 예언자들에게 선포하신 대로 이루어질 것이다’”(5~7절).
순교자들의 첫 번째 질문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합니까?”입니다. 그 질문에 “더 지체하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선지자를 통해 게시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지체하지 않고 이루어질 거라고 하셨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그러면 그때까지 우리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입니다. 그 대답은 “하나님의 진리를 증거하는 증인의 사명을 다해야 한다”입니다.
“나는 그 천사에게 가서 그 작은 책을 내게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가 내게 말했습니다. ‘이것을 가져다 먹어라. 이것이 네 배에는 쓰겠지만 네 입에는 꿀같이 달 것이다.’ 나는 천사의 손에서 작은 책을 받아서 먹었습니다. 그것이 내 입에서는 꿀같이 달았지만 먹고 난 뒤에 배에서는 썼습니다”(9~10절).
에스겔 선지자와 요한에게 동일한 명령을 주셨습니다. 그 상황을 보면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에스겔은 포로기 시대의 선지자입니다. 완전히 나라를 잃어버리고 절망적인 시대, 이방민족에게 사로잡혀 있던 그 시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적대적인 시대에 에스겔도 부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조차 적대적인 상황에서 진리를 전해야 하는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에스겔에게 주었던 명령을 요한에게 주신 것은 그가 처한 상황과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 책을 취하여 먹으라”고 말씀하셨을까요? ‘말씀을 먹는다’는 것은 내면화되고 인격화된다는 의미입니다. 진리를 증거한다는 것은 내가 체험하고, 내 인격의 일부가 된 진리가 증거되는 것입니다. 증인의 능력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증인의 능력은 말씀의 체험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 오묘하고, 은혜롭고, 마음에 평안이 옵니다. 그런데 말씀대로 행하려고 할 때는 매우 씁니다. 인격화되려면 순종이 있어야 하고, 자기를 부인해야 하기 때문에 쓴 것입니다. 그래서 달고 오묘한 말씀으로는 좋아하지만, 쓰고 어려운 말씀으로는 거부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증거하려고 할 때, 진리를 증거하려고 할 때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고 심지어는 핍박하는 세상이기 때문에 씁니다.
“그때 그들이 나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많은 백성과 나라와 언어와 왕들에게 다시 예언해야 할 것이다”(11절).
이 말씀을 우리가 굳게 믿을 때 요한이 밧모섬에서 조용히 사라진 인생이 아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0장은 선교의 부름과 함께 마칩니다. 요한이 많은 나라와 백성과 언어와 왕들에게 진리를 다시 증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교회도 여러 민족을 향하여 진리를 증거하는 증인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증거 사역, 증인으로서의 삶에는 은퇴가 없습니다.
교회는 충성된 증인
<요한계시록> 11장에서는 두 증인의 이야기를 통해서 교회가 세상을 향하여 충성된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이 두 증인은 교회를 의미합니다. <신명기> 19장을 비롯한 율법에 보면 믿을 만한 증거가 되기 위해서는 두 명의 증인이 있어야 합니다. 이들에게 권세를 줘서 1,260일 동안 예언하도록 하셨습니다. 1,260일은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까지 지속되는 교회 고난의 기간을 의미합니다. 두 증인은 하나님이 마지막 시대에 부르신 모든 교회, 증인된 사명을 감당하는 우리를 의미합니다. 이 증인에게 권세를 주셨습니다. 어떤 권세를 주셨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 두 명의 구약 선지자들을 상기시킵니다. 모세와 엘리야입니다. 신약에서 두 사람이 함께 등장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마가복음> 9장에서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변화하셨을 때 모세와 엘리야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 또 등장합니다. 두 증인의 이야기를 보면 예수님의 이야기와 겹치는 것 같습니다. 두 증인의 이야기가 세 장면으로 전개되는데, 첫 번째 장면은 예수님의 초기 사역처럼 권세 있는 능력을 보여줍니다.
“누구든지 그들을 해치려고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 그들의 원수들을 집어삼킬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들을 해치려고 하면 반드시 이같이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이들은 하늘을 닫을 권세를 가지고 있어 그들이 예언하는 날들 동안 비가 내리지 않게 할 것입니다. 또 그들은 물을 피로 변하게 하며 언제든지 원하는 때 갖가지 재앙으로 땅을 칠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계 11:5~6).
엘리야와 모세가 하나님이 주시는 권세로 그 시대의 증거자가 되었습니다. 모세는 율법의 수여자였습니다. 엘리야는 예언의 모범적인 모습으로 어린 양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모세를 통해 나타난 율법은 하나님의 진리이고, 엘리야를 통해 나타난 예언은 하나님의 진리를 개인과 역사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가 우리 삶과 역사에 적용되어야 하는데, 그것을 <요한계시록>에서는 예언이라고 말합니다. 예언을 미래의 일들을 점치는 듯이 말하는 것으로만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예언이란 하나님의 진리를 전해주는 것입니다.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 그 진리를 적용하는 것이 예언입니다.
두 번째 장면에서는 권세를 가지고 능력 있게 행했던 이들이 위기를 경험합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처럼 두 증인도 죽임당하고 모욕당합니다.
“그들이 그들의 증언을 마칠 때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을 공격해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시체는 큰 도성의 거리에 놓일 것입니다. 이 도성은 영적으로 소돔과 이집트라 불리는 곳으로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입니다”(계 11:7~8).
예수님이 모욕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셨던 것처럼, 이 증인들도 짐승에게 죽임당하고, 짐승의 추종자에게 모욕을 받고, 그 시체가 거리에 놓입니다. 로마 황제들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할 때 군대가 전쟁에서 돌아오면 환영하는 가로등을 사용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시체에 기름을 부어서 장대에 매달아 불태워서 밤에 로마 군인들이 들어올 때 ‘예수 믿으면 이렇게 된다’는 치욕과 멸시를 줬습니다. 예수님이 골고다 언덕에서 못 박히시고 대적들이 승리한 것처럼 보인 것처럼, 이 세상 짐승 같은 이들의 권력이 승리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세 번째 장면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것처럼 두 증인도 부활 승천합니다.
“그러나 3일 반 후에 생명의 영이 하나님께로부터 그들 속으로 들어가니 그들은 제 발로 일어섰습니다. 이에 그들을 지켜보던 사람들에게 큰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그때 그들은 하늘에서 그들에게 말하는 큰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리로 올라오라.’ 이에 그들은 원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계 11:11~12).
생명의 영이 그들 속에 임함으로 부활했고, 그리스도가 승천하듯 함께 승천했습니다. 증인들은 예수님과 연합된 자로 그분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에 함께 참여합니다. 증인들의 권세와 능력은 어린 양의 승리로부터 나옵니다. 증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이며, 마지막 그분의 다시 오심과 함께 우리의 모든 증언이 진리임이 증거될 것입니다. 그들이 부활하는 일로 인하여 세상에 일어나는 변화가 있습니다.
“바로 그때 큰 지진이 일어나 도성의 10분의 1을 무너뜨렸고 7,000명의 사람들이 그 지진으로 죽었습니다. 이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몹시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계 11:13).
그들의 증언이, 그들의 순교가 사람들을 회개하게 하며 하나님께 돌아오게 했습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며 하나님 앞에 영광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그 자체가 회개를 이끌어내지 못했지만, 증인들의 증거가 회개를 가져왔습니다. 물론 그 증거는 심판과 함께 결합되어 나타납니다. 심판 없이 증거만으로 이루지 않고, 심판과 함께 주어지는 증언이 사람들을 회개하게 한 것입니다. 증인들이 죽음으로 허무하게 끝나지 않고 부활로서 확증되었기에 이것을 보는 사람들이 모두 회개하는 것입니다. 최후의 심판이 임하기 전 하나님은 증인들의 증거를 통해 사람들을 회개로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세상 마지막 증인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증인들의 증언을 통해 회개 역사가 일어난 뒤 마지막 일곱 나팔이 불어집니다.
“일곱 번째 천사가 나팔을 불었습니다. 그때 하늘에서 큰 음성이 나며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됐으니 그분이 영원토록 왕 노릇 하실 것이다’(계 11:15).
일곱 나팔의 재앙에서는 마지막 심판을 긍정적인 관점에서 설명합니다. 인을 떼는 재앙에서는 모든 것이 끔찍한 재앙으로 멸망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면, 나팔 재앙에서는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온전히 임하는 것을 설명합니다. 완전한 그리스도의 통치가 이루어지면 모든 악과 모든 대적의 세력들이 완전히 멸망당하기 때문에 같은 사건을 다른 시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는 마지막 종말의 시대 증인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교회란 세상 끝에 서 있는 증인들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부활 승천으로 세상을 끝내지 않으셨습니다. 성령을 보내시고 제자들에게 권능을 주심으로 증인이 되게 하셨고,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는 증인으로 존재합니다. 이 시기의 의미는 오직 선교에서만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 기간 두 증인으로 존재합니다. 권세와 능력과 표적만으로 사람들이 변하지 않습니다. 무서운 심판만으로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처럼 고난 받고 죽임 당했으나 부활의 생명으로 살아가며 증거하는 순교자들의 증언을 통해서는 반역자들이 회개합니다. 모세와 엘리야의 권세로도 이루어지지 못했던 영혼들의 회개가 가장 강력한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두 증인에게 주어진 축복입니다. 증인된 이들의 축복에 참여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