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3일(목) ‘교회, 선교로 꽃피우다’
주제강의 7
교회, 선교의 촉매제
/ 이재훈 위임목사
모든 교회는 세 가지 유형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입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교회가 이에 해당합니다. 교회가 선교적 소명을 잃으면 두 번째 유형, ‘현상 유지에 급급한 교회(Maintenance Curch)’가 됩니다. 생존을 위해 존재하고, 소명을 잃어버린 자신만을 위한 교회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역사가 오래될수록 세 번째 유형인 ‘박물관 같은 교회(Museum curch)’가 됩니다. 교회 존재 자체가 박물관처럼 되버리고, 모든 의사결정이 과거에 머물며, 미래에 대한 소망과 헌신, 도전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많은 교회가 복음을 전하고, 영혼을 구원하겠다는 헌신에서 출발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박물관 같은 교회가 되는 경우를 봅니다.
선교가 교회의 심장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말씀은 영혼의 양식이고, 기도는 영혼의 호흡입니다. 하지만 양식을 먹고 호흡만 한다고 사람이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운동을 해야 합니다. 선교가 영혼의 운동입니다. 교회를 있게 한 것은 세상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선교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위해 선교하시는 게 아니라, 그분의 선교를 위해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교회가 교회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네 가지 기능이 필요합니다. 첫째,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예배로 부르셨습니다. 정기적인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데 필요합니다. 하지만 예배 자체로만 존재하면 소명을 다할 수 없습니다. 둘째, ‘제자 훈련’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기 위해 말씀과 기도로 공동체를 훈련하는 것입니다. 셋째 ‘공동체’입니다. 과거의 목회 패러다임에서 목회자의 주요 일과는 ‘심방’이었습니다. 그러나 심방, 즉 공동체의 만남만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이 세 가지 기능을 촉진하고 형성시키는 교회를 가리켜 우리는 ‘선교적 교회’라고 말합니다. 선교에 헌신한 교회는 예배, 제자 훈련, 공동체가 살아 있습니다.
교회가 ‘선교의 촉매’라는 것은 세 가지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첫째, 교회와 선교는 분리할 수 없습니다. 세상을 창조하고, 독생자와 성령을 보내시는 하나님의 선교에 교회가 참여하는 것이 선교입니다. 둘째, 교회의 선교는 세상에 복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교회는 생존이 아니라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모험하는 공동체입니다. 생존이 교회의 최고 목표가 되면 길을 잃어버립니다. 복음이 증거되기 위해 고난을 기쁘게 감당하는 것이 교회다워지는 것입니다. 오늘의 교회가 선교적 교회로 계속 쓰임 받기를 바랍니다.
주제강의 8
변화에 잘 대응하는 선교
/ 넬슨 제닝스 박사(GMLF 이사장)
그동안의 역사에서 하나님은 백성들이 새로운 상황과 도전, 변화에 잘 적응해서 선교를 감당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과정을 통해 성장하고 배울 기회를 얻습니다. 구약의 요셉을 생각해 보십시오. 형들이 그를 이집트 노예로 팔아버렸습니다. 그는 변화하는 환경에서 성장하며 이집트 사람처럼 변해갔습니다. 형들이 요셉을 알아보지 못한 것은 그가 이집트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바로의 왕가에서 왕자로 성장했습니다. 광야에서 40년을 보내며 위대한 아내를 맞이했고, 위대한 사람처럼 살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이집트로 돌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탈출시켰습니다. 신약의 베드로는 처음에는 유대인에게만 복음을 전했지만, 성령님이 이방인들에게도 임하시는 것을 보고 하나님이 그들에게도 역사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변화를 경험하며 적응했고, 그 속에서 자라고 성장했습니다. 우리도 변화 속에서 씨름하며 기도하고, 적응하며 성장하고, 배웁니다.
온누리교회는 변화에 적응하면서 하나님의 선교를 지속해 왔습니다. 지난 40년 동안 한국 사회가 어떤 변화를 거쳐왔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992년 중국과 국교가 정상화되면서 중국인들이 한국에 들어오게 됐습니다. 온누리교회는 그 변화에 반응해서 이 땅에 온 중국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 중국어 예배를 시작했습니다. 1990년 중반부터 위성방송과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미디어를 통해 복음을 전하는 일들을 온누리교회가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변화한 환경에서 함께 기도하고 적응하며 선교를 감당하는 것입니다.
온누리교회가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해야 할 세 가지를 말씀드립니다. 첫째, ‘온누리교회가 대형교회로서 어떻게 반응하느냐’입니다. 온누리교회는 대형교회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생명력을 잃지 않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나아갔습니다. <사도행전>의 역사를 계속 써가자는 ‘Acts29 비전’은 놀라운 선포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온누리교회만이 <사도행전>을 이어간다’는 외부의 오해를 불식시켜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둘째, ‘교만과 안주함’의 도전입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볼 때 한국 경제는 안정적이고, 부유한 나라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이 번영이 자만과 안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온누리교회가 계속 하나님 앞에 겸손한 마음을 유지한 채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셋째, ‘다양한 민족의 교회와의 동역’입니다. 다양한 민족의 교회와 함께 사역하는 것은 도전입니다. 가나, 일본, 인도네시아 교회가 한국과 비교해서 연약해 보이고 배울 것이 없다고 느끼는 게 아니라 그들로부터 배우고 동역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변화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배우고 성장하게 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변화하는 상황에 적응하며 배우고 성장하십시오.
주제강의3
글로벌 선교 협력
/ 유병국 선교사(WEC)
지금 우리 눈앞에 마지막 남은 선교지들이 있습니다. 이 지역들은 어떤 곳보다 조직적이고 격렬하게 복음에 저항하고 있어서 이전보다 훨씬 많은 일꾼과 전략적인 연합이 필요합니다.
안타깝게도 지난 2세기 동안 세계 선교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서구 교회가 심각한 선교사 인력 감소를 겪고 있습니다. 제가 속한 선교단체 WEC의 통계를 보면, 서구 선교사 수가 불과 10여 년 만에 70%가량 줄었고,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 지역도 50%가량 감소했습니다. 특히 한국에 장로교를 처음 전한 선교사들을 배출했던 ‘미국 북장로교 선교회’마저 올해 3월 말 문을 닫았습니다. 남아 있던 선교사 57명 중에서 54명이 사역을 지속할 수 없게 된 충격적인 상황입니다. 한국 교회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2010년 3만 명에 가까웠던 한국 선교사가 현재 2만 1천여 명으로 8천 명가량 감소했습니다.
하지만 희망은 여전히 있습니다. 제가 현장에서 만난 아시아와 아프리카 교회들의 모습이 놀랍습니다. 베트남은 공산국가이지만 3천여 개 교회가 있고, 200만 명의 개신교인이 있습니다. 아프리카 에티오피아는 전체 국민 70%, 케냐는 1,800만 명이 개신교인입니다. 심지어 세계에서 무슬림 인구가 가장 많은 인도네시아에도 2,500만 명의 개신교인이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동남아시아, 서남아시아, 아프리카에 하나님이 세워 놓은 일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WEC가 이 지역에서 선발한 선교사들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젊고 헌신적이며, 이미 다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어서 현지에 바로 적용되는 효율적인 인력입니다. 그런데 현지 교회의 경제적 여건상 월 200불에서 400불 정도의 적은 선교비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일꾼들은 많지만 경제력이 부족한 곳이 있는 반면, 한국이나 서구 교회는 경제력은 있지만, 보낼 일꾼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사고의 전환을 해야 합니다. 한국의 대기업들이 저비용 고효율을 위해 생산 기지를 해외로 옮기는 ‘글로벌 경영’을 하듯이, 선교 역시 ‘글로벌 선교 협력’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WEC와 같은 선교단체가 아프리카나 아시아에서 선교사를 선발하고 훈련해서 파송하고, 한국이나 서구 교회가 이들에게 부족한 선교비를 지원한다면 어떨까요? 국적을 초월해서 하나님의 일꾼이라면 모두가 함께하는 것이 이 시대의 진정한 글로벌 선교 협력입니다. 어떤 나라의 일꾼이든 힘을 모아 마지막 남은 선교지에 복음을 전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저녁집회 3
선교사역 완성(Finishing the task)
<마태복음> 24장 14절
/ 이재환 선교사(컴미션)
저는 하용조 목사님과의 만남을 평생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과 비전, 사랑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하용조 목사님은 ‘2천1만 비전’을 선포하셨습니다. 그 비전이 이미 이루어졌고, 그 현장에 계신 온누리교회 성도님들을 보면 감개무량합니다.
제가 영국에서 선교 훈련을 받을 때 ‘Finished Task’라는 주제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선교라는 과업을 빨리 끝내야 한다는 의미였습니다. 이제 시작하는 선교를 빨리 끝내라니, 처음에는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서양 사람들이 선교에 대한 굉장한 전략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선교는 끝내야 하는 사역입니다. 반드시, 언젠가는 끝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끝내시는 게 아니라 우리가 끝내야 할 사역이라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마 28:18~19).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교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 모든 교회는 이 사명을 반대하거나 거절할 수 없습니다. 이 사명을 이루는 데 게을러서도 안 되고, 그만두어서도 안 됩니다. 선교하지 않는 사람은 마귀에게 속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난을 겪으면서도 단 한 번도 선교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선교는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요, 명령이요, 의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과 교회가 현실의 기준을 잣대로 ‘선교를 할 수 있다, 없다’를 판단합니다. 현실은 우리의 신앙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모자라고 부족하고 연약해도 하나님이 하십니다. 보내는 능력을 주시든지, 가는 용기를 주시든지 하나님이 하십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
여러분, 모든 민족에게, 온 세상에 천국 복음이 전파되면 예수님이 오십니다. 우리가 복음을 열심히 전하는 이유는 이 땅에 예수님이 오시기를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것이 죽어서 가는 천국입니까? 아니면 선교를 통해서 이 땅에 올 하나님의 나라입니까? 저는 이 땅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우리가 선교를 통해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킹덤 빌더’라고 믿습니다.
온누리교회가 한 번 더 하용조 목사님이 가르치신 선교의 비전과 열정을 가지고 선교의 자리로 나아간다면, 저는 21세기에 예수님이 오신다고 믿습니다. 죽어서 가는 천국이 아니라, 이 땅에 예수님이 오시게 하는 일에 우리가 귀하게 쓰임 받기를 원합니다.